12화
멜로디도 거절은 못 할 거라 예상했는지 곧바로 파티 초대를 걸었다. 고민을 끝냈더니 수락을 누르는 데 머뭇거림은 없었다.
[파티] 여름n모기: 어서 오세요
[파티] 개인주의: 어서 옵쇼 ㅇㅂㅇ
[파티] 일시불: 지ㅋ옥ㅋ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ㅋㅋㅋ
파티에 들어가자마자 환영 인사가 쭉 올라왔다. 제가 누군지 뻔히 아는데도 누구 하나 불편한 낌새를 보이지 않는 게 조금 신기했다. 하긴, 저와 직접 부딪친 건 아니라 거부감은 덜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파티] 카젤: 안녕하세요
[파티] 일시불: 카젤님! 이야기 다 듣고 오셨져? 던전 숙련 다 채울 때까지 도망 못 가여ㅋㅋㅋㅋㅋㅋ
[파티] 카젤: 네ㅋㅋ 들었어요
[파티] 개인주의: 계산해 보니까 던전당 30판씩 돌면 돼요 ㅇㅅㅇ
[파티] 일시불: 던전 한 번에 30분씩 잡으면 열다섯 시간이고 그걸 다섯 번 해야 하니까 총 75시간 입니다ㅋㅋㅋ 4일 이내에 다 끝내면 돼여
[파티] 개인주의: 물론 중간에 일퀘도 같이 할 거예요. 4일 동안 이 파티에서 벗어날 수 없어 ㅇㅂㅇ/
[파티] 개인주의: 게임은 역시 켠왕이져ㅋㅋ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야? 던전 하나만 하는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다섯 개로 늘어난 거지? 주하는 채팅창을 올려 멜로디의 귓속말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던전 파티, 게이지 채울 때까지. 두 가지는 확실한데 그 어디에도 던전 하나인지 다섯 개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파티] 카젤: 설마 던전 다섯 개 다 가는 거예요?
[파티] 개인주의: ㅎㅎㅎㅎㅎㅎ
[파티] 일시불: 내 이럴 줄 알았짘ㅋ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무를 수 없어요ㅋ
[파티] 일시불: 중간에 자는 시간은 조금 드려여^^ 저희 길마님이 그렇게까지 악덕 고용주는 아니에여ㅋㅋㅋ
[파티] 여름n모기: 역시 우리 길마님 낚시 숙련도가ㅋㅋ
[파티] 멜로디: ㅋㅋ
낄낄거리며 웃는 리프 길드원들을 보며 주하는 헛웃음을 토해 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날 무시하네. 내가 걱정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그쪽 팀 딜러라고. 이렇게 외부 인원을 데리고 게이지를 다 채워 두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데?
[파티] 카젤: 원래 팀원은 어쩌시고요?
[파티] 일시불: 알아서 하기로 했어여^^
[파티] 개인주의: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걱정 ㄴㄴ
[파티] 여름n모기: 아니 그런데 카젤님 시간은 괜찮으신 거 맞죠? 저희 길마님이 제대로 설명 안 하고 납치한 거 같아서;;;
[파티] 카젤: 저는 괜찮긴 한데...
[파티] 멜로디: 됐지? 문제없으니까 출발하자
[파티] 개인주의: 넵 대장 ㅇㅅㅇ7
[파티] 일시불: 저쪽 파티 벌써 출발했어! 우리도 빨리 ㄱㄱ
진짜 이렇게 그냥 한다고? 뭔가 대충대충 넘어가는 분위기 같은데……. 무엇보다 자기 길드원을 버린다는 게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당사자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급하게 할 이유가 있나?”
의아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리프 길드가 안고 갈 페널티였다. 경쟁 상대 길드원을 데려가기로 결정한 것은 그들이니까 제가 뭐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득을 보면 이득을 봤지.
“아니…… 그래서 더 불편하다고.”
그래도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더니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주하는 파티원들을 따라 던전으로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주춤거렸다. 정작 본인들은 별생각 안 하고 있는데, 저만 불편해하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어 있었다.
결국 이동을 멈춘 채 고민하던 주하는 멜로디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귓속말] 카젤: 진짜 괜찮아요? 길드원 안 데려가도?
[귓속말] 멜로디: 괜찮아요. 사실 2주 정도 못 온다고 했거든요
[귓속말] 카젤: 아... 그래요?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니, 영웅 던전을 가야 아이템도 바꾸고 강화도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 한 명을 기다리기는 힘든 일일 테다.
주하는 찌꺼기처럼 남아 있던 불편함을 털어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던전으로 향했다.
[파티] 개인주의: 근데 카젤님
[파티] 카젤: ㅇㅇ?
[파티] 개인주의: 길드 레이드 팀원들은 다 던전이던데 카젤님은 왜 안 갔어요?
[파티] 카젤: 제가 늦게 와서요
[파티] 개인주의: 늦게?
[파티] 일시불: 얼마나 늦으셨길래여?
[파티] 카젤: 자리 비운 건 한 시간 정도쯤?
[파티] 개인주의: 저희 대장님 때문인 거 같은데;; 타워 한다고 오래 붙잡고 있었죠? 으이구 대장님 진짜 너무하네!
[파티] 카젤: ㅋㅋ 아뇨 그게 아니라 밥 먹고 늦게 왔거든요. 찾다가 없어서 먼저 갔대요
[파티] 개인주의: ㅇㅅㅇ... 아항
[파티] 일시불: 아하?
[파티] 여름n모기: 덕분에 우리가 납치 성공ㅋㅋ
[파티] 개인주의: 거럼거럼! 지옥행 열차에서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7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ㅋ
리프 길드원들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경쟁 상대인 제게 이렇게 격의 없이 굴 정도로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더니. 주하는 가볍게 웃었다.
[파티] 여름n모기: 자 첫 번째 던전입니다
수다 떨면서 이동했더니 어느새 첫 번째 던전인 하늘 정원에 도착했다. 공중에 떠 있는 정원이 콘셉트라 그런지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주변에 있는 뽀얀 구름도 느릿느릿 흘러가는 게 정말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미 한번 와 봤던 곳이라 그런지 전보다 감동은 덜했다. 앞으로 이곳을 서른 번이나 돌아야 한다니. 떨어진 꽃잎 한 장, 나뭇잎에 붙은 벌레까지도 외워 버리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조금 남아 있던 감동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배경보다는 정면에 있는 몬스터 무리를 보며 영약과 요리를 먹었다. 앞으로 지지고 볶으며 몇 시간 동안 잡아야 할 놈들이었다. 파티원들도 준비를 마치자 마지막으로 정령사의 버프가 들어왔다.
“와…….”
주하는 오랜만에 받는 가속과 치명 버프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너무 찬란해서 눈이 멀 지경이다.
보석술사가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능력치는 가속과 치명, 두 가지였다. 다른 클래스보다 높은 효율을 보이기 때문인데, 그 버프를 줄 수 있는 클래스는 정령사가 유일했다. 그렇다 보니 정령사와 보석술사는 상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자진신고의 힐러는 사제와 바드라서 받을 수 있는 버프가 공격력 증가뿐이었다. 몬스터의 방어력을 깎아 주는 디버프도 있지만, 물리 딜러에게만 유효한 시너지라 마법 딜러인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만약 레이드 팀에 정령사가 있었으면 항상 1위 하던 벌꿀오소리를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멜로디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파티] 멜로디: 버프 끝
말풍선으로 떠오른 멜로디의 준비 완료 소식에 주하는 짧게 웃었다. 멜로디와 함께 레이드를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 버리다니. 역시 딜러는 평생 딜 미터기와 함께해야 하나 보다.
[파티] 여름n모기: ㅇㅋ 카젤님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파티] 카젤: ㅇㅇ
다른 팀원들도 모두 준비를 마쳤는지 탱커인 여름n모기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파티] 여름n모기: 일반 몹은 두 무리씩 몰아서 잡을 건데요 제가 가디언이라 어그로 수치가 좀 낮아요;; 몹 몰아올 때는 도트 스킬도 안 쓰시는 게 좋고 그 후론 어그로 보면서 광 치시면 됩니다
[파티] 카젤: 네 조절할게요
안 그래도 버프 때문에 전보다 대미지가 잘 나올 터였다. 가디언은 몸이 튼튼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그로 수치가 낮기 때문에 딜러들이 신경 써야 하는 클래스였다.
눈치껏 잘해야겠네. 주하는 가볍게 손을 풀며 화면을 응시했다.
여름n모기가 두 무리를 풀링12)하는 동안 암살자인 개인주의는 은신해 있었고, 궁수인 일시불은 덫을 깔아 놓았다.
드디어 여름n모기가 일시불이 깔아 놓은 덫 위에 몹 두 무리를 데려왔다. 덫이 발동하자 바닥에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하도 그제야 몹에 번갈아 가며 도트 스킬을 걸어 놓았다.
[파티] 일시불: 우리 작전은 정공법이다!
[파티] 일시불: 탐13) 해야 하는 저쪽과 달리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지! 마법사가 없어서 아쉬운 건 절대 아님!
[파티] 개인주의: 맞아! 마법사 따위 필요 없다규!
[파티] 개인주의: 으윽... 근데 월차 형 약 올리는 것 봐 ㅂㄷㅂㄷ
몰이에 가장 좋은 클래스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마법사를 지목한다. 마법사는 일명 정통 클래스로 광역 스킬이 좋기로 유명했다. 라나탈도 그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게임이었다.
리프 길드에는 월차연차휴가라는 닉네임을 가진 마법사가 있는데, 그는 현재 마법사 랭킹 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마법사가 없는 이쪽 파티를 놀리고 있는 듯했다.
주하는 도트 광역 스킬 중 하나인 보석 가루를 바닥에 깔며 대화창을 응시했다.
[파티] 개인주의: 와나! 나나 누나 -“-!
[파티] 일시불: 헐! 대장님! 저쪽 팀 그대로 놔둘 겁니까? 내기하자고 약 올리고 있는데??
[파티] 개인주의: 자존심이 있지! 무조건 고! gogo!! 가즈아!
[파티] 여름n모기: 잠 안 자게?
[파티] 일시불: 당연하져!
[파티] 개인주의: 대장님! 50만 골드로 해요! 나나 누나네 좀 눌러 줘야 되겠음!
[파티] 일시불: 지금까지 당한 세월을 한 번에 풀 기회다
[파티] 개인주의: 대장님 빨리 승인!
[파티] 일시불: 승인!! ㅅㅇ!! ㅃㄹㅅㅇ!!
[파티] 여름n모기: 그런데... 너희 지금 파티에 카젤님 있다는 건 기억하고 있냐?
미친 듯이 불타오르던 일시불과 개인주의가 여름n모기의 한마디에 순간 조용해졌다. 주하는 자신의 존재도 잊고 밤새워서 던전을 돌겠다는 두 망나니를 보며 짧게 웃었다.
12) 멀리 있는 몹을 유인해 오는 것
13) 휴식이나 요리를 사용해서 생명력과 마나를 채우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