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파티] 개인주의: 아... 카젤 형
[파티] 일시불: 카젤 형님...
[파티] 개인주의: 제발 자비를...
[파티] 일시불: 제발 자비 점... ㅠㅠ
[파티] 카젤: 3일 동안 밤새우자고요?
[파티] 일시불: 이기면 10만 골 드림! 져도 돈 달라고 안 할게여 ㅠ 저희와 함께 달려 보지 않을래여? 환상의 나라로 같이 가시져!
[파티] 카젤: 거긴 저승일 텐데 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에이 형님! 우리 같은 젊은 고인물은 3일 밤새워도 안 죽어요! 괜찮습니다!
설득력 없는 말로 잘도 사기 친다 싶었다. 당연히 죽진 않겠지만, 후폭풍은 절대 무시 못 할 강행군이었다. 3일 동안 밤을 새우고 나면 온종일 기절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절대 사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멜로디가 그들을 전혀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상황을 살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는 게 마치 어떻게 꼬실까 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파티] 카젤: ...멜로디님
[파티] 멜로디: ㅇㅇ?
[파티] 카젤: 설마 내기하실 생각은 아니죠?
[파티] 멜로디: ㅋㅋ
멜로디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인가. 개인주의와 일시불처럼 그도 경쟁심에 불이 붙은 듯했다. 대체 어떻게 놀림당했길래 이래?
[파티] 멜로디: 카젤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제게 결정권은 없죠
[파티] 카젤: ;;;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
[파티] 일시불: 카젤 형님!!
잠깐, 이걸 이렇게 떠넘긴다고? 망나니들이 형과 형님을 부르짖으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이러다 반말까지 나오게 생겼다.
파티원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손은 착실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몹 한 무리를 잡자 펫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주하는 제 하얀 고양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고민했다. 10만 골드라…….
사실 저도 좀 끌리기는 했다. 10만 골드에 흔들리지 않을 고인물이 어디 있을까. 아이템 강화에 들어가는 골드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골드는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내기에서 져도 골드를 내놓지 않아도 된다지 않는가.
“흠.”
하지만 3일을 밤새운다는 건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가능하지 않다는 것쯤은 그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부딪혀 보겠다는 오기를 꺾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상대방이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던전 도는 시간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마법사가 있는 상대 팀의 던전 하나당 클리어 타임은 대략 25분. 우리보다 5분이 더 빨랐다. 마법사의 광역 스킬이 마나를 많이 잡아먹어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고 해도 마법사의 존재는 역시나 무시할 수 없었다.
주하는 스탠스를 변경해 광역 스킬 창을 쭉 훑어보았다. 그러다 폭탄 모양을 한 스킬 아이콘 위에 마우스를 올렸다. 툴팁14)에 스킬 설명이 떠올랐다.
[보석 폭탄: 대상에게 120초간 폭탄을 심어 둔다. 폭탄은 다른 유저가 800 이상의 대미지를 넣어야만 터지며, 터지는 순간 15미터 내의 모든 적에게 약 2,000의 피해를 준다. 위협 수준이 크게 오른다. (단, 유저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솔플일 때나 PVP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파티에서도 탱커들이 어그로 튄다고 싫어해서 후반부에나 겨우 몇 번 사용하는 스킬. 보석 폭탄이었다.
이 스킬을 잘만 활용하면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주하는 여전히 저를 설득하기 바쁜 파티 대화창에 슬쩍 미끼를 던졌다.
[파티] 카젤: 던전만 빨리 끝내면 되는 거죠?
[파티] 개인주의: ㅇ0ㅇ 네네!! 그럼요!
[파티] 일시불: 크! 역시 고인물의 근성!
[파티] 카젤: 그럼 <링크: 보석 폭탄> 이거 주력으로 써 볼래요?
주하는 파티에 보석 폭탄 스킬을 링크했다.
보석 폭탄은 마법사의 광역 스킬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누킹15)면에서는 마법사의 광역보다 더 좋았다. 보석 폭탄을 여러 몹에 붙여 놓고 한 번에 터트렸을 때의 대미지가 꽤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것이 바로 위협 수준이었다.
[파티] 개인주의: 음... 어글 많이 튈 텐데요;;
[파티] 일시불: 모기 형님이 어글 못 잡을 것 같은데; 위협 수준이 크게 오른다는 말은 보통 탱커 스킬에 붙어 있는 거라;;
[파티] 여름n모기: 아, 저 스킬
여름n모기도 스킬을 읽더니 과거를 떠올린 듯했다. 한때 보석술사가 민폐 클래스로 불리던 시절,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스킬이 바로 보석 폭탄이었다. 그러니 초반부터 지금까지 탱커를 해 왔던 여름n모기도 당연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파티] 여름n모기: 보석 폭탄 쓰시면 제가 아예 어글 못 먹을 텐데요? CC기로 발 묶는 데도 한계가 있고 전체 도발도 쿨이 3분이라 매번 커버해 줄 수가 없어요ㅠ
[파티] 일시불: 카젤... 그는 탱커 울리는 남자였돠ㅠㅠ
[파티] 개인주의: 크흡ㅠㅠ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파티원이 가지고 있는 CC기로는 쿨타임16)이 맞지 않아 비는 시간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쫓아오는 몹을 피해 도망 다니다 보면 우왕좌왕하다 전멸할 가능성이 컸다.
내기에서 이겨야 하는 지금 같은 순간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파티원들은 어떻게 하면 카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름대로 클리어 타임을 줄이기 위해 고안해 낸 것 같은데, 거절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파티] 멜로디: ㅋㅋㅋ
[파티] 멜로디: 해 보죠
[파티] 멜로디: 재미있겠네
멜로디가 상의도 없이 흔쾌히 승낙해 버렸다. 당황한 리프 길드원들이 다급히 멜로디를 불렀다.
[파티] 개인주의: 대장?;;;
[파티] 일시불: 대장님???
[파티] 여름n모기: ...길마님?
주하는 그들의 당혹감을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다가 멜로디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멜로디는 제가 보석 폭탄을 어떻게 운용할지 알아챈 것 같았다.
[파티] 멜로디: 최대 몇 무리까지?
[파티] 카젤: 중간 보스 앞에 있는 무리까지 쭉이요
[파티] 개인주의: 헐?
[파티] 일시불: 헐?
[파티] 여름n모기: ;;;;;;;;;
이제라도 잡는 방법을 설명해 줄 만도 했지만, 파티원들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주하는 속으로 웃기만 했다. 보아하니 멜로디도 딱히 설명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중간 보스 앞까지 몹을 몰게 되면 최소 일곱 무리였다. 아무리 탱커가 튼튼하다고 해도 그 많은 몹을 탱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무리에 4~6마리가 뭉쳐 있다 치면 최소 서른 마리의 몹에게 두들겨 맞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눈 깜짝하는 순간 바닥과 진한 키스를 하게 될 것이다.
[파티] 멜로디: 모기는 보스 앞까지 달려서 예쁘게 모아 봐
[파티] 여름n모기: 길마님... 정말 하려고?;;;;;
[파티] 멜로디: ㅇㅇ
[파티] 여름n모기: 탱 못 할 텐데;;
[파티] 멜로디: 생존하면서 몰기만 해
[파티] 여름n모기: ㅠㅠㅠㅠㅠ
[파티] 카젤: 전 모기님이 몰이할 때 같이 쫓아가면서 보석 폭탄 미리 심어 둘게요
[파티] 멜로디: ㅇㅋ 모기가 다 모으면 시불이랑 개주가 폭탄 터트리면 되겠네. 기왕이면 동시에 터트려
[파티] 개인주의: ㄷㄷㄷ
[파티] 일시불: 진짜 할 생각이구나...
[파티] 멜로디: 나머지는 상황 보면서 눈치껏 해
[파티] 여름n모기: 난 모르겠다ㅠㅠ 두 사람이 무슨 생각 하는지
[파티] 멜로디: 보면 알아
너무나 간단하게 설명을 마친 멜로디는 여름n모기에게 물의 보호막을 씌웠다. 바로 출발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여름n모기는 한숨을 쉬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파티] 여름n모기: 갑니다......ㅠㅠ
선두에 서서 달리기 시작한 여름n모기는 한 무리를 풀링하고 다음 무리를 향해 달렸다. 그 뒤에 바짝 붙어 있던 카젤은 몹 하나하나에 보석 폭탄을 심어 두고 모기를 쫓아갔다. 시전 스킬이라 조금씩 탱커와 거리가 벌어졌지만, 이동 속도가 빠른 보석술사라 따라잡는 건 금방이었다.
그렇게 일곱 무리를 모으는 동안 몹 전체에 보석 폭탄을 심어 둔 주하는 몹과 자신 사이에 보석 하나를 설치했다. 그것은 히든 특성이 붙어 있는 스킬, ‘보텍스 문’이었다.
[파티] 멜로디: 터트려
[파티] 개인주의: ㅠㅠ 가즈아!!
[파티] 일시불: 에라이! 발할라로 떠나 보자!!
딜러들은 반 포기 상태로 예쁘게 모인 몹에 스킬을 난사했다. 그러자 폭탄 터지는 이펙트가 화려하게 빛을 냈다. 족히 서른 개의 보석 폭탄이 중첩된 이펙트였다.
심어 둔 폭탄이 모두 터지자 몹들의 피가 절반 이상 사라졌다. 엄청난 대미지에 모두가 감탄했다. 하지만 채 음미하기도 전에 몹들이 모두 카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난장판이 될 거라 예상한 파티원들이 걱정스럽게 카젤과 멜로디를 응시했다.
그때, 몹 아래에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멜로디의 군중 제어 스킬인 얼음 장판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가던 몹들이 장판에 닿자마자 느리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음 장판을 벗어나면 그마저도 끝이라 궁수인 일시불이 속박의 덫을 깔려고 할 때였다.
[파티] 개인주의: 엥????
[파티] 일시불: 어?
[파티] 여름n모기: 뭐야 저게?
갑작스레 빛이 번쩍하더니 작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처음 보는 스킬 이펙트에 의아해하기도 전, 효과를 확인한 파티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14) 부연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 마우스를 올리면 설명 창이 따로 나타난다.
15)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대미지를 가하는 행위. 폭딜, 또는 극딜이라고도 한다.
16) 스킬을 사용한 이후, 동일한 스킬을 다시 사용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