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14화 (14/130)

14화

소용돌이에 닿은 몹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몹이 카젤을 쫓으려 한 걸음 빠져나가면 소용돌이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끌어당겼다. 벗어나려 하면 당기기를 기계처럼 반복하는 소용돌이는 완벽한 개미지옥이었다.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살짝 외곽에 빠져 있던 몹들도 카젤이 좌우로 움직여 소용돌이에 닿도록 유인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멜로디가 바닥에 깔아 둔 얼음 장판을 활용하니 어렵지 않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결국 카젤을 쫓으려 했던 몹은 모두 발이 묶이게 되었다.

그 많은 몹이 소용돌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본 파티원들은 경악했다.

[파티] 개인주의: 미1친!! 저 스킬 뭐지?

[파티] 일시불: 허얼! 카젤 형님 건가??

[파티] 개인주의: 보술한테 저런 스킬이 있다고??;;

[파티] 일시불: 아니 그보다... 저거 왜 안 끝나? 광역 CC기는 길어야 4초 아님? 대체 유지 시간이 얼마여;;

[파티] 여름n모기: 지금 5초 지남;;;;;

[파티] 개인주의: 사기다... 사기 스킬이다!

혼란스러워하는 파티원들을 놔두고 카젤은 몹에게 보석 폭탄을 심었다. 적어도 열다섯 개는 더 터트려야 하기에 남은 25초 동안 바쁘게 손을 놀려야 했다.

[파티] 멜로디: 소용돌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터트려

[파티] 개인주의: ㅇ0ㅇ;;

[파티] 일시불: ㅇㅋ;;

30초를 꽉 채우자마자 ‘보텍스 문’의 보석이 깨지며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스킬을 쏟아붓자 보석 폭탄이 연속으로 터졌고,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몹은 일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전투가 끝나자 뭉쳐 있는 시체들 위로 펫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시끄럽게 울리는 루팅 소리를 들으며 망나니들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파티] 일시불: 끄아아악! 카젤 형님!!!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 >3<

[파티]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1친! 너무 좋아!

[파티] 개인주의: 으하하하하!!

[파티] 개인주의: 가즈아아아아아아!!

[파티] 개인주의: 내기 가즈아아아아!

[파티] 개인주의: 이건 무조건 승리하는 게임이드아아아!!

[파티] 개인주의: 미리 축배를 들자아아! 우리는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

[파티] 일시불: 몰이의 신! 우리의 구세주! 카젤느님과 함께 하고 있드아아!!

[파티] 개인주의: 꺄하하하하하

주하는 시끄럽게 난리 치는 일시불과 개인주의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제가 속한 자진신고 길드원들과 서버 창에서 싸울 때부터 저 텐션과 타속에 감탄한 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똥꼬발랄한 강아지가 아니라 미친개 같았다.

[파티] 여름n모기: 정신 차려 이것들아;;

같은 생각이었던지 여름n모기가 제재했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저 가슴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열을 만끽하기 바빴다.

[파티] 개인주의: 겁나 조아 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10만 골이다 10만 골! 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아... 금액 더 올릴걸! ㄲㅂ

[파티] 개인주의: 엌ㅋㅋ 지금이라도 올릴까? +_+?

[파티] 일시불: ㄴㄴㄴㄴ 갑자기 올리자고 하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어. 나나 누나 눈치 엄청 빠르잖아

[파티] 개인주의: 마따마따

[파티] 일시불: 길드에선 조용히 있자ㅋㅋ 이럴 때 아니면 누나 형님들 뒤통수 언제 쳐ㅋㅋ

[파티] 개인주의: 당연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카젤 형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다니! 충성충성^0^777

[파티] 개인주의: 역시 대장이 선택한 그분!!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 최고 ㅇ.<

마나를 모두 소모한 카젤이 앉아서 음식을 먹는 동안 두 사람은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주하는 웃음이 나는 한편, 제게 공을 떠넘기는 그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자신이 큰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저 혼자 무쌍을 찍은 건 아니었다. 이 방법이 먹혔던 이유는.

첫 번째로 탱커가 여름n모기였기 때문이다.

여름n모기는 가장 튼튼하다고 알려진 가디언 클래스이기도 하고,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이 좋아 몰이하는 동안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방어 스킬과 공격 스킬을 사용하며 알아서 물약을 먹으니 힐러에게 어그로가 튈 일이 없었다. 몹도 예쁘게 모으기도 했고.

두 번째로는 멜로디의 판단 능력.

그는 몰이하는 탱커에게 맞춰 최소한의 힐을 하며 CC기를 이용해 몹을 컨트롤했다. 너무 빠른 놈들은 속도를 늦추고, 탱커가 위험하다 싶을 땐 재우기도 하면서 보조한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스킬을 쓰면서도 절대 탱커의 위협 수치를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딜러들의 타깃 전환 능력과 적절한 스킬 사용이었다.

보석 폭탄은 시전자의 스킬로는 절대 터지지 않는다. 보석 폭탄 하나가 터져 주변에 대미지를 준다고 하더라도 다른 보석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롯이 다른 유저의 딜에만 터지는 스킬인데, 그것을 거의 동시에 전부 터트렸다는 것은 두 명의 딜러가 타깃 전환을 잘했고, 적절한 스킬을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암살자와 궁수는 광역 딜보단 단일 딜에 더 특화된 클래스였기 때문에 꽤 손이 바빴을 것이다.

이렇게 호흡이 잘 맞았으니 가능한 전략이었다. 보텍스 문의 히든 특성, 탱커의 몰이, 힐러의 보조, 딜러의 센스. 어느 하나라도 삐걱거렸으면 쉽지 않았을 터였다.

[파티] 카젤: 다들 잘해 주셔서 가능했죠ㅋㅋ

주하는 단순 말뿐만이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공을 나눴다. 하지만 망나니들은 끈질겼다.

[파티] 개인주의: ㄴㄴ 젤느님께서 다 하셨죠! ㅇㅅㅇ//

[파티] 일시불: 우리의 영웅! 우리의 구세주!! ^0^

[파티] 개인주의: 보문으로 뙇! 히든 특성으로 뙇! 푸헤헤!! 젤느님 어깨를 주물주물!!

[파티] 카젤: 그만하셔도 될 듯;

[파티] 일시불: 형님! 우리 사이에 존댓말이라니!

[파티] 일시불: 편하게 시불이라 불러 주시져!

[파티] 개인주의: 저는 개주라고 불러 주세요 ㅇㅅㅇ/

찬양이 멈춘 건 좋았지만,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꽂힌 두 사람이었다. 말을 놓으라니. 10만 골드의 힘이 대단한 건지, 두 사람의 친화력이 대단한 건지 정확하게 판단할 순 없지만, 둘 다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주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파티] 카젤: 싫어요 ^^

[파티] 일시불: 헐... 형님?

[파티] 개인주의: ;;;;

[파티] 개인주의: 뭐지? 이 단호함은?!

[파티] 개인주의: 뭘까? 묘하게 익숙한데...

[파티] 일시불: 왜여 왜여 왜여 ㅠㅠ 왜 싫은데여

주하는 비글 두 마리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오늘 처음 대화하는 이들과 갑작스럽게 형, 동생 하는 것도 별로였다. 지역 창이나 서버 창에서 반말하는 이들과 장난식으로 대화하는 거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파티] 카젤: 탐 다 했는데 다시 출발할까요?

[파티] 일시불: 아... 아아앗!

[파티] 개인주의: 아닛! 여기서 무적기를 사용하다니!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

[파티] 여름n모기: 그러게 적당히 좀 들이대;;;;

[파티] 개인주의: ㄴㄴ

[파티] 개인주의: 이건 마치...

[파티] 개인주의: 레이드 보스를 마주한 기분인데?

[파티] 개인주의: 그럼 당연히 공략해야 하는 거 아님? +ㅅ+

[파티] 일시불: 하,,,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다니,,, 제법,,,,,,

졸지에 보스 몹이 된 주하는 턱을 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여전히 저를 가운데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개인주의와 일시불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엽게들 노네.”

이들은 자진신고 사람들과는 완전 달랐다. 저렇게 달려드는데도 부담스럽지 않다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가? 철없는 막냇동생이 있다면 딱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아니라 내기였다. 이렇게 쉬고 있는 동안 상대방은 열심히 달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다시 인식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보다 먼저 멜로디가 나섰다.

[파티] 멜로디: 내기에서 이길 생각부터 해야지?

[파티] 개인주의: 아, 맞다! 내 10만 골!

[파티] 일시불: 까먹을 뻔;;

[파티] 일시불: ㄱㄱㄱㄱ 달리자!

[파티] 개인주의: 모기형 달렷!

[파티] 여름n모기: 난 가끔 쟤네들이 무서워;; 자아가 몇십 개 있는 거 같아;;;

[파티] 개인주의: -3- ㅉㅉ

[파티] 여름n모기: 징그러워하지 마;;

개인주의의 뽀뽀를 차단한 여름n모기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녀석들의 입을 닥치게 할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듯이.

[파티] 여름n모기: 갑니다 ㄱㄱ

하늘 정원 던전의 첫 번째 보스 몹에게 달려가는 탱커 뒤로 파티원들이 주르륵 따라나섰다.

바야흐로 던전 노가다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귓속말] 벌꿀오소리: 카젤님 바빠요?

하늘 정원 던전 게이지를 모두 채우고 다음 던전에 미리 진입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길드원인 벌꿀오소리의 부름에 주하는 마시던 음료를 내려놓았다.

[귓속말] 카젤: 잠깐 쉬는 중요. 와이?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니... 그냥

벌꿀오소리는 자신 없이 계속 던전을 도는 것을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팀원들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제가 노력을 더 해야 하니 걱정이 되나 보다.

원래대로라면 꼼짝없이 공팟을 돌아야 했겠지만, 아주 다행히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리프 길드원들과 파티를 맺고 던전을 다 돌게 됐으니 말이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