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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15화 (15/130)

15화

[귓속말] 카젤: 걱정 안 해도 돼요ㅋㅋ 지금 파티 잘 들어와서 숙련 올리는 중

[귓속말] 벌꿀오소리: 진짜? 막공으로 하나씩 돌면서 구라 치는 거 아냐? 숙련 게이지 올리는 파티 맞음?

[귓속말] 카젤: ㅇㅇ 맞다니까

[귓속말] 벌꿀오소리: 오 다행이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근데 그 파티 던전 다섯 개 다 가는 거예요? 아니면 하나만?

[귓속말] 카젤: 다섯 개 다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오올? 파티 잘 잡았나 보네? ㅋㅋㅋ

[귓속말] 카젤: 와달라고 사정 사정을 해서... 후

[귓속말] 벌꿀오소리: 헐? 증거 없다고 막말하는 거 보소?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렇긴 하지ㅋㅋㅋㅋ

벌꿀오소리는 기분이 풀렸는지 아까와 달리 밝은 모습이었다. 다행이었다.

[귓속말] 카젤: 다 올리고 갈 테니까

[귓속말] 카젤: 걱정하지 말고 영웅 던전에서 봐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ㅋ 영웅 던전에서 봅세ㅋㅋㅋ

벌꿀오소리와 대화를 끝낸 주하는 기지개를 켜며 뭉친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여덟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던전을 돌았더니 피로감이 말도 못 하게 쌓여 있었다.

[파티] 일시불: 카젤 형님

[파티] 카젤: ㅇㅇ

[파티] 일시불: 계셨네? ㅋㅋ 이만 출발할까요?

얼마나 쉬었다고 벌써? 시간을 확인하니 고작 10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분 지나 있었다.

경쟁과 골드에 진심인 이들이라 좋긴 하지만, 저보다 더 하드한 유저들은 처음 겪어서 기분이 미묘했다. 다른 사람들이 날 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뭐랄까, 조금…… 제정신 아닌 사람들 같았다. 여러모로, 상당히.

이렇게 보니까 나는 그저 고인물, 그리고 저들이 진짜 썩은물이었구나. 주하는 썩은물에 대한 진정한 정의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더 쉬기는 그른 것 같아 결국 마우스를 잡았다.

정신을 반쯤 놓은 채 던전을 돌고 있을 때였다. 몰이하는 여름n모기의 뒤를 쫓으며 보석 폭탄을 심고 있는데, 조용했던 길드 채팅창이 시끄럽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드] 천상검: 내일 저녁에 가까운 사람들 모일까? 어때?

[길드] 온별: 번개?

[길드] 살금: 술 먹으려고?

[길드] 천상검: ㅇㅇ

[길드] 베르메르: 난 찬성

[길드] 온별: 우리야 뭐 상관없지

[길드] 세렌디피티: 오! 저도 찬성ㅋㅋ 술 고팠음

[길드] 벌꿀오소리: 갑자기?

[길드] 천상검: 그래야 재미있죠ㅋㅋ 참고로 벌꿀님은 필참^^

[길드] 벌꿀오소리: 전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ㅈㅅ

[길드] 벌꿀오소리: 아니 그보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모임이요 ㅠㅠ 던전 돌기도 빡세 죽겠고만

그러게. 확장팩 오픈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웬 모임이지. 일일 퀘스트만 놓치지 않는다면 조금 여유 부릴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타이밍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길드] 천상검: 할 일 다 끝내 놓고 저녁에 모이면 되죠. 술 먹고 다음 날 아침에 헤어지면 오후엔 접속 가능!

[길드] 벌꿀오소리: ;;;

[길드] 블랙체리: 어디서 모이나요?

[길드] 살금: 영등포역이요 체리님도 오세요

[길드] 온별: 체리님도 ㄱㄱ

[길드] 블랙체리: ㅇㅇ;;

[길드] 천상검: 벌꿀님도 오세요. 제가 비행기 표 끊어 드림 ㅎㅎ

[길드] 벌꿀오소리: ㄱㅊ;; 전 길드를 지키겠습니다;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은 어쩔?

주하는 소용돌이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몹에 보석 폭탄을 심으며 채팅창을 열었다. 스킬을 시전하는 동안 대화를 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길드] 카젤: 저도 벌꿀님과

[길드] 카젤: 길드를

[길드] 카젤: 지키겠습니다

물론 한 문장을 끊지 않고 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하도 모임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고, 리프 길드원들과 던전을 돌아야 하니까. 무엇보다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귀찮음이 절반, 만나고 싶은 정도의 친분이 없다는 것이 나머지 이유였다.

지난 시즌 마지막 레이드 때 합류하고 이제 4개월이 지났다.

자진신고 길드는 실친과 지인으로 만들어진 길드여서 연이 없던 저는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같이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해도 레이드 말고는 할 게 없었고, 있다 치더라도 친한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기만 하니 제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처음엔 저도 거리감을 줄여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그런 반응이 이어지니 결국 저도 적당히 지내기 시작했다. 레이드 때문에 들어온 길드니까 레이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이렇게 모임을 한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길드] 벌꿀오소리: 역시ㅋㅋㅋㅋ

[길드] 카젤: 같이 길드를 지킵시다 벌꿀님

[길드] 벌꿀오소리: ㅇㅋ

[길드] 천상검: 흠

[길드] 온별: 다른 사람들은?

[길드] 베르메르: 우리 쪽 파티원들은 다 된대

[길드] 살금: 인원 좀 되면 예약할까?

불참을 선언한 벌꿀오소리와 카젤을 제외하고 길드 대화창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정리된 인원은 총 스무 명. 그중 레이드 팀 인원은 여덟 명이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출석률은 상당했다.

장소와 시간까지 잡은 사람들은 재미있겠다며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본다며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고, 처음이라 기대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아직 포기하지 못한 천상검만이 벌꿀오소리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주하는 단호하게 철벽 치는 벌꿀오소리를 응원하며 뒤늦게 던전에 집중했다. 하지만 제 반응이 느렸던 게 티가 났던지 멜로디가 말을 걸었다.

[파티] 멜로디: 카젤님

[파티] 카젤: 네?

[파티] 멜로디: 혹시 피곤함?

[파티] 카젤: 아뇨; 길드 대화창 좀 보느라; 죄송해요 집중할게요

[파티] 멜로디: 길드가 왜? 무슨 일 있어요?

멜로디는 제 사과보다는 길드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걱정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걱정할 만한 게 있나?”

딱히 문제 되는 일은 없……지 않구나.

혹시 길드에 들켜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가 먼저 같이 던전을 돌자 제안하긴 했어도, 신경 쓰이긴 할 테니까 말이다. 이 상황에서 제가 빠진다면 던전도 그렇고, 내기도 힘들어질 게 뻔했다.

충분히 걱정할 만한 상황이었다. 주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빠르게 대답했다.

[파티] 카젤: 아뇨. 현모17)한다고 해서요

[파티] 멜로디: 현모?

[파티] 카젤: 내일 한다고 하네요. 전 안 가지만요

[파티] 멜로디: 흠... 그거 말고 다른 말은 없어요?

[파티] 카젤: 길드엔 안 들켰어요. 걱정 마세요 ㅋㅋ;;

다들 던전 돌기도 바쁘고, 현모 한다고 들떠 있으니 제게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땐 종종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 멜로디: 그 걱정 한 건 아닌데ㅋㅋ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문제없다니 뭐... 아직은 확실하지 않나?

멜로디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짧게 웃었다. 무슨 말이냐 물을까 했는데 그의 의문스러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귓속말이었다.

[귓속말] 멜로디: 나중에라도 무슨 일 생기면 꼭 말해요

[귓속말] 카젤: 무슨 일이요?

[귓속말] 멜로디: 무슨 일이든

[귓속말] 카젤: --?

[귓속말] 멜로디: ㅇㅇ

[귓속말] 카젤: 아니 말을 해 줘야 알죠

[귓속말] 멜로디: ㅋㅋㅋ

[귓속말] 카젤: 웃지 말고

[귓속말] 멜로디: 모기가 몹 모는데 빨리 쫓아가죠?

[귓속말] 카젤: 저기요?

[귓속말] 멜로디: ㄱㄱ

뭐야 이 사람,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더 캐묻고 싶었지만, 멜로디의 말대로 탱커가 몹을 몰고 있어서 바삐 손을 놀렸다.

이번엔 새로운 던전이라 다시 손발을 맞춰야 했는데, 하늘 정원 던전과 달리 요정의 숲 던전은 마법사 몹이 많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파티] 여름n모기: 지형에 숨는 것도 일이네;

[파티] 개인주의: 뭔 놈의 마법사 몹이 이리 많지?

[파티] 일시불: 모기 형님 능력을 보여죠!

마법사 몹들은 지형에 숨으면 예쁘게 모을 수 있지만, 그만큼 잘 숨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몸이 지형 밖으로 나온다면 따라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여름n모기는 투덜대는 것과 달리 아주 능숙하게 몹을 모았다.

주하는 몇십 번이고 눌렀던 스킬을 누르며 멜로디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쉴 때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이후로 쉬는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곱 시간 내내 요정의 숲 던전을 돌고 마지막 바퀴에 다다랐을 때였다. 화면이 두세 개로 흔들려 보이는 착각이 일었다.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떠 봤지만, 시야는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손목도 욱신거리는 것 같고 어깨도 잔뜩 뭉친 것 같다. 스탠스 변경을 하진 않았지만, 한 번의 몰이에 서른 마리 이상을 번갈아 가며 스킬을 썼더니 몰려드는 피로감이 무서울 정도다.

중간중간 정신을 잃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자신이 제정신인지조차 판단할 여력이 없었다.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눈꺼풀도 너무 무거워서 마냥 내려놓고 싶었다.

이대로 잠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그러다가도 퍼뜩 정신을 차려 다시 스킬을 썼다. 거의 본능만 남아 움직이는 격이었다.

어찌어찌 마지막 보스를 잡고 드디어 두 번째 던전을 마무리했다. 정신이 혼몽해진 주하는 참지 못하고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파티] 카젤: 던전 두 개 완료했으니까... 이제 쉬면 안 될까요?

[파티] 여름n모기: ㅠㅠㅠㅠㅠ 맞아요. 쉬자 제발;;

[파티] 개인주의: 아닛! 나약한 소리를!

[파티] 일시불: 엥? 몇 시간 깨어 있었는데여?

[파티] 카젤: 못해도 서른 시간은 넘을걸요

[파티] 개인주의: 아... 맞다. 우리 대장님이랑 똑같이 하셨지

[파티] 개인주의: 대장님도 피곤하신가? ㅇㅅㅇ?

[파티] 멜로디: 쉴 때 됐지

17) 현실 모임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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