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파티] 카젤: 두 번이면 충분하죠
[파티] 개인주의: 아... 아앗! 맞다! 오늘 카젤 형은 죄인이지ㅋㅋ
[파티] 개인주의: 그럼 죄인의 나이는?!
[파티] 카젤: 성인^^
[파티] 개인주의: 아놔
[파티] 여름n모기: 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는 개인주의를 무시하고 주하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드보다는 강하고 던전치고는 약한 몹을 잡으면서 주변을 꼼꼼히 확인했다. 여긴 창문이 있고, 저기는 촛불이 세 개 있고, 여기는 바닥에 얼룩이 져 있고, 저기는 횃불이 기울어져 있다.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외우며 이동하다 보니 첫 번째 보스 방 앞에 모두가 모인 것은 30분이 지난 후였다. 재미있는 점은, 저뿐만이 아니라 멜로디를 제외한 파티원 전원이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지?
[파티] 여름n모기: 아니, 딜러님들 왜 이렇게 늦으셨담 ^^;;
[파티] 개인주의: 탱커님 속도에 맞춰서 왔죠 ㅇㅂㅇ
[파티] 일시불: 이쪽은 몹이 좀 많네여;;
[파티] 카젤: ㅋㅋㅋㅋ
오는 길이라도 외우고 싶었던 평범한 자들의 발악이었다. 누구든 멜로디처럼 한번 봤다고 다 외울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파티] 멜로디: 두 번 돌 테니까 맵 다 외워
[파티] 개인주의: 크윽... 이건 사람마다 다른데...
[파티] 일시불: 대장님이 우리 기억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음;; ㅠㅠ
[파티] 멜로디: 지금 외우든가 다음 판부터 죽으면서 외우든가
[파티] 개인주의: 자체 하드모드 돌입이라니 ㅠㅠ 기억력아... 날 도와줘...
[파티] 일시불: 그런데 카젤 형님은 괜찮겠어여...?
[파티] 카젤: ㅇㅇ?
[파티] 일시불: 다 외울 수 있냐구우... ㅠㅠ
[파티] 카젤: 그거야...
[파티] 개인주의: ㅇㅅㅇ?
방금 온 길도 가물가물한데 두 번 둘러봤다고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멜로디의 말대로 죽으면서 터득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파티] 카젤: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죠;; 난 모르겠음ㅋㅋ 정 안 되면 죽지 뭐... 다 같이 삽질하는 거다
[파티] 멜로디: ......
[파티] 개인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여름n모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아 ㅁㅊ 이게 뭐라고 통쾌하지;; ㅋㅋㅋㅋ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멜로디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되었다. 주하는 흐릿하게 웃으며 멜로디를 응시했다.
[파티] 카젤: 초조해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닐지도
주하는 범인 사이에 있는 천재가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을 콕 짚어 말했다. 같은 배를 탔으니 결국 기다려야 하는 것은 너라고.
[파티] 개인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하긴ㅋㅋㅋ 답답해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지
[파티] 여름n모기: 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와...
[파티] 개인주의: 우리 대장 저격당한 거 처음 봐서 심장이 뛴다... 카젤 형 최고! 충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ㅋㅋㅋ ∠(・ㅂ・)
[파티] 카젤: 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엄훠? 대장님 카젤 형님이랑 파티할 때는 길드 대화창 쓰지 말라고 해 놓고 먼저 어기심 어쩌십니카^^
[파티] 개인주의: ㅁㅈㅁㅈ 나빴다
[파티] 여름n모기: 길마님 너무하네ㅋㅋㅋㅋ
나랑 파티할 때는 길드 대화창 쓰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지 못했던 배려에 주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내기 이야기 이후로 리프 길드 이야기가 안 나온다 했더니 멜로디가 신경 쓴 거구나. 제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의외의 모습에 신기하기도 한 한편, 본인이 그렇게 말해 놓고 어긴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파티] 카젤: 뭐라고 하는데요?
[파티] 개인주의: 닥1치라네요ㅋㅋㅋㅋ
[파티] 일시불: ㄷㅊ라고 했어여ㅋㅋㅋㅋㅋ
[파티] 여름n모기: 패배자는 구차한 법이죠
[파티] 개인주의: 구차하지 구차해 ㅉㅉ
[파티] 일시불: 어휴, 대장님... 절레절레
이때다 싶은 리프 길드원들은 멜로디를 놀리기 시작했다. 흔치 않은 기회였던지 물고 늘어지는 게 마치 거머리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쩐지 이들의 평소 모습을 엿본 기분이 들어 주하는 가볍게 웃었다. 분위기 진짜 좋은 길든가 보다.
[파티] 멜로디: 그만 놀고 이제 움직여
결국 멜로디는 두 번이 아닌 네 번의 기회를 주었고, 그제야 어느 정도 적응한 파티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각 층의 보스를 잡고 밖으로 나온 파티원들은 던전을 리셋하고 다시 진입했다. 역시 위치는 랜덤인지 모두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주하는 자신이 떨어진 맵을 쭉 둘러보았다. 익숙한 인테리어 사이에 각기 다른 소품들이 눈에 띈다. 깨진 접시랑 부서진 촛대가 있는 방. 주방으로 가는 길목의 두 번째 방이었다.
[파티] 카젤: 저 주방 쪽 두 번째 방이요
[파티] 멜로디: 응접실 쪽
[파티] 여름n모기: 음... 여긴 뒷문이네
[파티] 개인주의: 지하 창고 내려가는 계단 앞!
[파티] 일시불: 입구임다
머릿속에 겨우겨우 욱여넣은 맵을 떠올리며 파티원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데, 멜로디가 말했다.
[파티] 멜로디: 모기만 젤 머니까 지금 출발하고
[파티] 여름n모기: ㅇㅇ
[파티] 멜로디: 나머지는 대기
[파티] 개인주의: 이게 몬데 심장이 둑흔거리지?
[파티] 일시불: 나도 떨려 ㄷㄷ;;
던전에서의 몰이는 당연히 탱커의 영역이다. 워렌스워드 저택은 특성상 파티원 전원이 몰이해야 하는 상황이라 딜러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몹을 얼마나 몰 수 있고,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얼마 정도고, 지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없으니 이제부터 그것을 몸으로 터득해야 했다. 저 또한 긴장돼서 괜히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때, 응원을 하려는 건지 부담을 주려는 건지 멜로디의 살벌한 말이 올라왔다.
[파티] 멜로디: 삽질하기만 해 봐
[파티] 개인주의: ;;;;
[파티] 일시불: ;;;;
[파티] 개인주의: 왜요;;; 뭐, 뭘 하려고 그러는데요;
[파티] 멜로디: 한 번 실수할 때마다 길드 창고에 만 골씩 넣어
[파티] 개인주의: 헐!!! 잔인해!!!!!
[파티] 일시불: 만 골이라니;;; 안 돼... 그럴 순 없어!
[파티] 여름n모기: 아놔;; 몰이하다가 놀라서 벽에 낄 뻔;
[파티] 개인주의: 이건 불평등합니다!! 카젤 형은요!
[파티] 일시불: 맞아! 카젤 형님은요!
나는 왜? 방금까지 충성한다 어쩐다 해 놓고 태세 전환하는 속도 봐라? 물귀신도 한 수 접어 줄 만큼 뻔뻔했다.
주하는 개인주의와 일시불의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다.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틀린 말 하나 없었다.
[파티] 카젤: 다른 길드라 ㅈㅅ
[파티] 멜로디: 카젤님은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내 딜 노예 할 예정
[파티] 카젤: ...네?
[파티] 개인주의: 어.......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이 더 불쌍해졌는데?
[파티] 일시불: 카젤 형님 죄송함다...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시간 됐다 나머지 다 출발
주하는 무슨 소리냐고 묻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출발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파티원들과 속도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쓰지 않고 몸으로 몹을 풀링하면서 주하는 뒤늦게 중얼거렸다.
“내 딜 노예라니…….”
멜로디 전용 딜 노예가 되라는 건가? 보아하니 던전에서 필요한 건 아닌 것 같고, 죄악의 탑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일일 퀘스트? 평판이나 채집 노가다도 가능성은 있다.
힐러는 보통 혼자 콘텐츠를 즐기기에는 적합한 클래스가 아니었다. 아무리 딜 세팅을 한다고 해도 효율이 높지 않으니까. 그래도 멜로디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음껏 굴릴 수 있는 딜 노예를 세워 두고 편하게 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면 더더욱 실수할 수 없지. 주하는 비장하게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복도로 나와 각각의 방문을 열자 몹이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뿔뿔이 흩어진 유저가 각자 몹을 잡으면서 이동해야 하니 던전에 있는 몹치고는 피가 상당히 적었다. 스킬을 사용하게 된다면 금방 죽을 것 같아 주하는 평타로 한 무리씩 끌어 몰이를 시작했다.
쫓아오는 몹들의 생명력 바를 보며 달리던 주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비물 영화에서 쫓기던 주인공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고. 생각보다 많이 달려오는 몹을 보고 있자니 괜히 등 뒤가 서늘했다.
‘잘못해서 다굴 맞으면 1초 만에 순삭될 것 같은데.’
그나마 원거리 몹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복도 끝에 다다랐다. 주하는 오른쪽으로 꺾어 달리다 세 갈림길에서 잠시 주춤했다.
어디더라? 왼쪽이었나? 중앙이었나? 오른쪽은 입구로 가는 게 확실한데 다른 쪽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 맞다. 왼…….”
뒤늦게 떠올라 이동하려 했는데, 언제 쫓아왔는지 몹들이 바로 뒤에 붙었다. 이대로 왼쪽으로 간다면 몰매 맞고 죽게 되는 상황이라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하고 중앙 길로 달렸다. 그러고 보니 중앙은…… 어디였더라?
아무것도 없는 긴 통로를 달리다가, 순간 아차 했다. 이 복도 끝에는 커다란 방 두 개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와…… 큰일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