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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28화 (28/130)

28화

가만히 서서 고민할 시간은 없어서 일단 알을 공격했다. 도트 광역을 바닥에 깔고 다음 스킬을 사용하려는데, 순간 멈칫했다. 대미지 수치가 올라와야 할 곳에서 보여선 안 될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어이없어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면역?”

[파티] 멜로디: 왜 그래?

카젤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멜로디가 물었다. 다른 스킬도 사용해 보던 주하는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파티] 카젤: 면역 떴어

[파티] 멜로디: 면역?

[파티] 카젤: 광역, 도트, 단일 딜 모두 면역이야

대미지가 하나도 안 들어간다는 소리에 멜로디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파티] 멜로디: 다른 거 쳐봐

알이 나오는 곳은 총 네 방향. 그중 한 곳만 쳤으니 다른 곳도 쳐 보라는 뜻이었다. 주하는 최단 거리로 달려 다른 구역에 있는 알을 쳤다. 이곳도 면역. 또 다른 곳으로 달려 알을 쳐도 면역이 떴다. 마지막 구역까지 공격해 봤지만, 알은 모두 면역이었다.

[파티] 카젤: 다 면역인데;

[파티] 멜로디: 주변 살펴봐 봐. 클릭할 수 있는 오브젝트 있는지

멜로디는 예상했다는 듯이 다음 공략법을 지시했다. 머뭇거림 없이 바로바로 이어지는 확인 절차에 감탄하며 주하는 착실하게 주변을 살폈다.

바닥도 보고, 보스 주변도 보고, 기둥도 확인하고, 알 주변도 둘러보다가 문득 벽에 붙어 있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마우스를 쓱 가져다 대자 커서가 변경되며 상호 작용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곳으로 다급히 달려가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알들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새끼들을 보며 주하는 작게 한탄했다.

[파티] 카젤: 아... 벽에 횃불 발견했는데

[파티] 멜로디: 지금 안 눌러져?

[파티] 카젤: ㅇㅇ 알 부화하니까 못 누르네

[파티] 멜로디: 빠르게 전멸

멜로디는 전과 달리 바로 전멸 사인을 내렸다. 시간 끌 필요가 없었기에 주하도 빠르게 죽었다.

트라이는 바로 이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초반 기믹들을 가볍게 넘기고 다시 알 공략으로 들어섰다.

주하는 노란색 알이 나오자마자 횃불이 있는 벽으로 달려갔다. 마우스로 클릭하자 갑자기 화면이 빙글 돌더니 맵 전체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로 변경되었다. 스킬 바도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보스 기믹 전용 스킬 바였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한 개. 주하는 마우스를 올려 스킬 설명을 확인했다.

[죽은 자들의 안배: 일정 범위에 7,000의 피해를 줍니다. 공격은 피아 구분이 없습니다.]

죄악의 탑에서 죽은 자들이 도와주는 설정인가 보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유령 중 하나는 어디선가 본 NPC였다. 머리 위에 쓰여 있는 파이톤의 이름을 보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받은 퀘스트가 떠올랐다. 죄악의 탑에 들어간 두 명을 찾아 달라고 했지만, 파이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지. 그의 영혼은 지금 이곳에서 유저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주하는 스킬 명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알을 조준했다. 그러자 범위가 바닥에 표시되었다. 둥근 히트 박스 안에 알을 모두 넣은 주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푸른 불꽃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알은 한 번의 공격으로는 깨지지 않았다. 세 번은 써야 한 구역의 알을 모두 깰 수 있었다. 그렇게 총 세 곳의 알을 깨고 마지막 알을 조준하는데, 문득 스킬 설명이 떠올랐다.

설명 마지막에 있던 ‘공격은 피아 구분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혹시…… 파티원도 맞나?”

마지막 한 방을 남겨 두고 주하는 멜로디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는 어그로를 충분히 끌어 뒀던지 들어오는 공격을 모두 피하고 있었다. 알 깨는 건 약간의 여유가 남아 있었기에 주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파티원에게도 공격이 들어갈까? 절대 불순한 의도가 아니었다. 스킬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보려는 것뿐이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멜로디의 다음 위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바닥 꼬리 치기 다음에 앞발. 멜로디가 피할 자리는 저곳이었다.

주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스킬이 발동되었다.

멜로디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공격을 피하다가 갑작스레 쏟아지는 푸른 불꽃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몸에 두른 멜로디가 피가 닳은 자신의 생명력 바를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파티] 멜로디: ????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뭐야?

[파티] 카젤: 뭐가?

[파티] 멜로디: 알을 쳐야지 왜 나를 쳐?

혹시나 제가 공격한 것을 모르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나 멜로디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스 기믹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파티] 카젤: 그쪽으로 갔어? 조준 잘못했나 봐

[파티] 멜로디: 그러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나?

[파티] 카젤: 에이, 아냐. 진짜 실수

[파티] 멜로디: ...ㅋ 한번 해 보자 이거지?

[파티] 카젤: 아니라니까 ^^;

점점 살벌해지는 멜로디를 피해 주하는 냉큼 남은 알을 공격했다. 알이 모두 깨지자 이번에도 라스탈리온은 그로기 상태로 변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주하는 공략에 열심인 척 스킬을 난사했다.

[파티] 멜로디: 그런데 그 공격 같은 팀도 맞네?

[파티] 카젤: 그러게

[파티] 멜로디: 설명 제대로 안 쓰여 있었어?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전멸하자. 나도 확인해 보게

[파티] 카젤: ...굳이 왜?

[파티] 멜로디: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게 좋지

무서운 놈. 기어코 스킬 설명을 보겠다네. 어차피 곧 걸릴 게 자명했기에 주하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파티] 카젤: ㅎ 사실 스킬 설명에 피아 구분 없다고 나와 있어서 확인해 보려고 그랬어

[파티] 멜로디: ㅋ

[파티] 카젤: 우리 일단... 공략부터 할까? ^^

[파티] 카젤: 개인주의님도 100층 트라이 중인 거 같은데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99층에 있던 개인주의도 현재 보스를 트라이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예상은 적중했는지 멜로디의 공격성이 한층 잦아들었다.

[파티] 멜로디: 끝나고 보자

[파티] 카젤: 끝나면 탑 계속 올라야지

[파티] 멜로디: 오르면서 보면 돼 ㅋㅋ

[파티] 카젤: ㅋㅋ;;

분명 멜로디는 딜러 해도 잘할 것이다. 주하는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로기 상태였던 보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후, 다른 기믹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주하와 멜로디는 반응형 기믹을 피하며 공격을 이어 갔고, 드디어 라스탈리온은 그들의 손에 쓰러졌다.

맵 중앙에 팡파르가 터지며 성공 안내가 떠올랐다. 100층 보스를 잡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처음 소환 마법진과 알 문양의 기믹을 빨리 알아낸 게 아마 한몫했지 싶다.

주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새로 생기는 두 개의 문을 보았다. 이번엔 내가 선택해 볼까? 느낌이 좋아서 발을 떼는데, 멜로디가 눈치챘는지 곧바로 달려가 왼쪽 문을 열었다. 절대로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속도였다.

[파티] 멜로디: 문에 손댈 생각은 하지도 마

[파티] 카젤: --;;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가 열린 문을 보자마자 운빨 망겜을 외쳤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역시나 황금 게이트였다. 그 문이 주하가 선택하려 했던 문이 아니라는 것은, 멜로디도 알고 주하도 아는 사실이었다.

[파티] 멜로디: 이러기도 참 쉽지 않아

[파티] 멜로디: 그렇지? ㅋㅋ

“짜증 나…….”

게임한테 따돌림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황금빛 게이트를 타고 다음 층으로 향했다. 클리어 안내와 함께 나타난 두 개의 문을 뚱하게 보고 있는데, 벌꿀오소리가 그새 제 층수를 봤는지 경악했다.

[길드] 벌꿀오소리: 뭐야! 카젤님 벌써 101층임?!

[길드] 카젤: 뭐지...? 스토커인가...?

[길드] 벌꿀오소리: 하! 찐 스토커가 뭔지 보여줌?

[길드] 카젤: 아뇨;;

[길드]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벌꿀오소리: 암튼!! ㄹㅇ 빠르긴 빠르네... 우리 아직 초반 기믹도 못 찾았는데;;; 제길

벌꿀오소리는 여전히 100층에서 고전 중이었다. 주하는 시선을 옮겨 현재 등수가 쓰여 있는 창을 보곤 사르르 웃었다. 실시간 랭킹 1위. 황금색 메달이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에 떨떠름했던 마음이 완전히 풀려 버렸다.

그래, 어차피 같은 팀인데 황금 게이트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지. 결국 혜택은 동일하게 받는 거잖아?

주하는 문으로 향하는 멜로디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길드] 베르메르: 공략 물어봐요 벌꿀님 ㅋㅋ

그때, 베르메르가 벌꿀오소리에게 은근슬쩍 공략을 물어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 공략을 왜 물어봐요?

[길드] 베르메르: 빨리 잡고 넘겨야죠ㅋㅋ

[길드] 벌꿀오소리: ㄴㄴㄴㄴㄴㄴㄴ 안 됨! 절대 안 돼! 내가 공략을 알아내야 재미있지 물어보면 뭔 재미임?

[길드] 천상검: ;;;;;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 혹시 저쪽 길드에 공략 알려 줬어요?

[길드] 카젤: 아뇨 멜로디도 알려 줄 생각 없다고 하던데요;;

[길드] 벌꿀오소리: 거봐! 이건 자존심 대결이라고!

[길드] 베르메르: ㅋㅋㅋㅋ;;;;

[길드] 천상검: ;;;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도 알려 줄 생각하지 마요 --^

[길드] 카젤: ㅋㅋㅋㅋ ㅇㅇ

역시 벌꿀오소리. 곤란해질 뻔했는데 다행이다. 저도 멜로디처럼 말하지 않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벌꿀오소리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는 다시 죄악의 탑에 집중했다. 주하도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음 층으로 향했다.

죄악의 탑은 리셋 시간인 6시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순위 변동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중 확고하게 순위를 유지한 팀은 1위인 카젤과 멜로디뿐이었다.

황금 게이트와 함께하는 죄악의 탑은, 무척이나 쾌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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