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공지] 죄악의 탑 시스템 변경 안내
안녕하세요, 라나탈입니다.
이번 확장팩에 새로 추가된 콘텐츠, 죄악의 탑과 관련해서 변경 사항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죄악의 탑에는 랭킹 제도와 함께 그에 따른 보상이 책정되어 있는데요. 순위에 들기 위해선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것입니다. 죄악의 탑 하나를 위해서 다른 콘텐츠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심각한 문제라 판단되어 부득이하게 죄악의 탑 시스템 일부를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내용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사항 안내]
•죄악의 탑 진입 횟수 변경
—기존: 무제한
—변경: 일주일에 10번
•죄악의 탑 아이템 추가
—부활의 서: 죽은 파티원 한 명을 부활시킬 수 있다.
—회귀의 서: 문을 연 게이트를 선택하기 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단, 문은 다시 랜덤으로 설정된다. (일주일에 3번 사용 제한)
—회복 물약: 전체 생명력의 30%를 회복한다. 죄악의 탑에서만 사용 가능
—마나 물약: 전체 마나의 30%를 회복한다. 죄악의 탑에서만 사용 가능
※아이템은 죄악의 탑 앞 문지기에게 구매 가능
많은 유저 여러분께 불편을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리며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수 있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펼치기)
―뭐야? 이렇게 빨리 수정해 준다고? 드디어 정신 차렸나?
―악탑 때문에 다른 콘텐츠가 사장되니까 문제가 심각한 걸 깨달은 거지ㅋㅋ
―예전엔 세월아 네월아 하더니ㅋㅋ
―오랜만의 확팩이라 기강이 잘 잡혀 있군!
―ㅠㅠㅠㅠ 갓패치다 이런 걸 원했다구
―진짜... 어제 온종일 악탑 돌면서 미쳐 버리는 줄 알았음;
―난 악탑 돌다가 일퀘도 못 할 뻔했다-_-
―이건 고인물이나 청정수나 둘 다 좋아할 패치임
―어제 보니까 랭커들 겁나 힘들어하던데ㅋㅋㅋ
―패치 안 했으면 유저들 엄청 떠났을지도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밤 안 새워도 된다!!!
―윗댓... 과연 그럴까? 다른 콘텐츠 한다고 밤샐걸^^
―어제 서버 터지는 줄 알았어;; 와 난 여태 그렇게 많은 채널은 처음 본다? 시골 섭인데도 채널이 300개가 넘었어; 도시 섭은 이보다 더했겠지?
└우리 서버 800개 넘었었음;;
└어디길래 800개가 넘어?
└1섭 ^^;
└거긴 특별시지;;
└그러고 보니까 1섭 1위가 멜로디랑 카젤이던데
└ㅋㅋㅋㅋㅋㅋㅋ기어코 1위를 먹었고만
└로미젤과 줄로디... 세기의 사랑이었다...
└걔네들 140층까지 깨놓고 맵 돌아다니던데?
└2위랑 적당히 거리 벌리면서 챙길 거 다 챙긴 듯
└아ㅋㅋ 그래서 개*주*가 서버 챗으로 겁나 울어 댔구나ㅋㅋ
└*인*의가 운 이유는 3위한테 추월당해서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ㄹㅇ?
└ㅇㅇ 그래도 막판에 다시 2위 탈환함
└ㅈㄴ시껍했을 듯 ㅋㅋㅋㅋㅋ
└3위가 벌*오*리랑 천*검 아님? ㅋㅋㅋ
└걔네는 골드부터 시작해서 플래티넘 쭉 제치고 3위 하다가 2위까지 잠깐 탈환했었어ㅋㅋ 진짜 미친 거 같음;
└어떻게 그렇게 치고 올라올 수가 있지?
└황금 게이트가 많이 나온 듯
└ㅁㅊ;;; 운빨 망겜;
└그래서 더 달린 거 아닐까? 나 같아도 눈에 불을 켰을 듯;
└3위도 부럽다 ㅠㅠ
└리프 길드랑 자진신고 길드가 나란히 1등 먹고, 2등이랑 3등도 걔들이 다 먹었네? 다른 랭커들은 뭐 하고 있었대?
└뭐긴... 팀원 잘못 만났겠지ㅋㅋㅋ
└아, 그 메인 퀘스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리셋됐으니까 앞으로 잘 짜면 됨
└ㅇㅇ 저번 주는 맛보기고 이제부터임
└그런데... 로미젤과 줄로디 또 팀 짜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설마 쓰지 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
―야야 서버 열렸다 ㄱㄱㄱㄱㄱ
―서버 열림 ㄱㄱ
***
하나, 둘, 셋, 넷, 다섯…….
천장 벽지에 그려진 문양을 속으로 하나씩 세며 주하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모양이 이쁘네…… 계속 쳐다보고 싶게.’
사실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싫어서 일부러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천장 문양이 예뻐 봤자 얼마나 예쁘다고 구경하고 있을까.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핑곗거리였다.
그러고 보니 라나탈 확장팩이 이제 한 사이클 지났네.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열심히 달리지 않았나 싶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멜로디와 몇 날 며칠을 붙어서 라나탈에 몸을 갈아 넣었더니 이제는 약간 버겁게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물론 결과를 떠올리면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순 없었다.
리프 길드원들과 던전 게이지도 채우고, 내기도 이겨서 짭짤하게 골드도 벌었고, 죄악의 탑도 랭킹 1위를 차지했으니 이 정도면 다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오랜만에 즐겁게 게임을 한 것 같았다. 그저 몸이 피로해서 오는 탈력감을 이겨 낼 수 없었을 뿐.
“……더 자고 싶다.”
이미 알람이 한 번 울리고, 그 뒤로 여섯 번이 더 울렸다. 적어도 30분은 지났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일찍 일어나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더 자도 괜찮지 않나? 고작 세 시간 자는 걸로 피로가 풀리길 바라는 것도 말도 안 될 테고.
주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결심했다. 조금만 더 자자. 어차피 게임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노가다밖에 없는걸, 뭐. 푹 자고 개운하게 다시 게임을 시작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결정에 만족스럽게 웃은 주하는 네 시간 뒤로 알람을 맞춰 두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가끔은 이렇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쉬어 줘야 하는 때가 필요하다. 너무 달리기만 하다 보면 금방 지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으니까. 확장팩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럴 순 없지.
주하는 가물가물한 정신을 놔주며 조용히 수면에 잠겼다.
양껏 자고 일어난 주하는 개운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게임에 접속했다. 오후 2시는 길드원들이 많이 접속해 있을 시간이라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적어도 던전 두 개는 영웅을 해금했을 테니 하나쯤은 돌아보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를 품고 인사를 건넸다.
[길드] 카젤: 안녕하세요
[길드] 벌꿀오소리: 어서 오소 악탑 1위님 ^^
[길드] 카젤: ㅋㅋㅋㅋㅋ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 공지는 확인했어요?
[길드] 카젤: ㅇㅇ 악탑 횟수 생겨서 그나마 다행인 듯
[길드]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카젤: 근데 지금 뭐 하고 있어요?
[길드] 벌꿀오소리: 그야... 던전 게이지 올리고 있지....
길드 정보창을 확인하니 두 팀이 던전을 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길드 채팅창이 올라오는 걸 보면 한두 명쯤 인사할 만하지 않나? 던전 도느라 얼마나 바쁘길래 이리도 조용하나 싶다.
[길드] 카젤: 다들 바쁜가 봐요
[길드] 벌꿀오소리: ㅇㅇ 방금 몰이 하나 끝냄
[길드] 천상검: 어서 오세요
[길드] 온별: 피곤해 죽을 거 같아
[길드] 살금: ㅋㅋㅋ
[길드] 카젤: 안녕하세요
그나마 인사해 주는 건 천상검뿐이었다.
[길드] 카젤: 지금 영웅 던전 몇 개 오픈했어요?
[길드] 천상검: 지금 세 개 열어 놨고 네 번째 던전 돌고 있어요
[길드] 카젤: 아.. 혹시 오늘 영웅 던전 가나요?
[길드] 천상검: 아뇨 다섯 개 다 열고 가려고요.
[길드] 천상검: 영웅 던전 바로 가면 체리가 붕 떠서
그럼 한동안 영웅 던전은 손도 못 댈 것 같다. 기다리면서 막공을 다닐 순 있겠지만, 그래도 같이 다니면서 미리미리 손발 맞추면 좋으니까 함께 움직이는 게 나았다.
[길드] 카젤: ㅇㅇ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은 영던 다 오픈했어요?
[길드] 카젤: 다 했죠
[길드] 벌꿀오소리: ...헐? 어떻게? 이게 이렇게 빨리 될 일인가?
[길드] 카젤: 고이다 못해 썩은물 팟을 가 버려서^^
[길드] 벌꿀오소리: 아니... 그래도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인데?! 머야! 머 있죠? 카젤님?!
[길드] 카젤: 몰라도 돼요ㅋ
[길드] 벌꿀오소리: !!!
[길드] 카젤: ㅎㅇㅌ
사실 제가 사용했던 방법을 알려주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공략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제가 파티에 합류해서 돌아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저와 교체한 딜러 한 명은 던전을 돌 수 없게 돼 버린다. 그러니 하던 대로 쭉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아! 모야! 알려 줘!
[길드] 카젤: 알아도 못 해요
[길드] 벌꿀오소리: 몬데몬데!
[길드] 카젤: <링크: 보텍스 문> 이거임
[길드] 벌꿀오소리: 아......
보텍스 문의 스킬을 알고 있는 벌꿀오소리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전 시즌 레이드에서 톡톡히 활약했던 스킬이니까.
[길드] 벌꿀오소리: 설마... 쭉 몰았음?
[길드] 카젤: ㅇㅇ
[길드] 벌꿀오소리: 던전 하나당 몇 분 걸렸어요?
[길드] 카젤: 15분에서 20분 정도요
[길드] 벌꿀오소리: 미쳤다....ㅠㅠ
카젤의 보텍스 문과 함께였으면 이미 던전 다섯 개를 다 돌았을 터라 벌꿀오소리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길드] 벌꿀오소리: 같이 돈 행운아들은 대체 누구야 ㅠㅠ
[길드] 카젤: ㅋㅋ
여기서 리프 길드원들이랑 같이 돌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적어도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까.
카젤이 대답 대신 웃고만 있자 벌꿀오소리는 더 캐묻지 않았다. 진심으로 궁금해한 건 아닌 듯 그저 투덜거리기만 했다.
[길드] 벌꿀오소리: 그럼 채집이나 하고 있으셈
[길드] 벌꿀오소리: 돌발 퀘스트! 길드 창고를 채워라!
[길드] 카젤: 보상은?
[길드] 벌꿀오소리: 벌꿀오소리의 사랑?
[길드] 카젤: 퀘스트 포기;;;
[길드] 벌꿀오소리: 포기 불가! 메인 퀘스트임
[길드] 카젤: 돌발 퀘스트라며
[길드] 벌꿀오소리: 돌발 메인 퀘스트! 길드 창고를 채워라!
[길드] 카젤: 반응형 퀘스트도 아니고 진짜ㅋㅋ
[길드]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꿀오소리의 장난에 주하는 고개를 잘게 저었다. 이 사람도 참 한결같은 모습이라 웃음밖에 안 나왔다.
실제도 저런 성격이라면 어떤 무리에서든 중심에 있겠지. 벌꿀오소리가 길드원들과 잘 지내는 게 그 증거였다. 딱히 부러운 건 아니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
주하는 M을 눌러 지도를 펼치고 잠시 고민했다. 어느 구역으로 갈까? 웬만하면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게 좋을 텐데. 겸사겸사 채집물도 많은 곳이면 더 좋고.
벌꿀오소리의 돌발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평판 작업과 채집을 병행할 생각이었다. 다음 패치부터 레이드가 하나씩 열리기 시작하면 도핑 물약과 요리가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자진신고는 재료를 다 같이 모아 레이드에 필요한 준비물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길드 창고를 채워야 했다. 팀원들은 아직 던전을 완료하지 못해 바쁘니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제가 많이 채집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결국 다 상부상조하는 거니까, 뭐.
주하는 지도를 쭉 훑다가 괜찮은 구역을 발견했다. 어제 멜로디랑 돌아다니다가 지나갔던 곳인데, 몹도 많이 있었고 채집물도 예쁘게 몰려 있던 곳이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가장 핫한 자리 중 한 곳이 될 터였다.
탈것을 타고 해당 지역으로 향했다. 카젤은 여전히 하얀 고양이 위에 있었는데, 멜로디를 놀리기 위해 바꿔 놨던 것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고양이를 지켜보던 주하는 문득 멜로디와 티격태격하던 것이 떠올랐다.
‘검은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로 참 유치하게 싸웠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욱했나 싶다. 제가 먼저 시작한 장난이긴 한데…… 이상하게 멜로디가 놀리는 건 꼭 진짜 같아서 괜히 반발심이 생긴단 말이야? 게다가 내가 놀리는 건 잘 안 통하는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