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주하는 갑작스럽게 저와 멜로디 듀오를 이야기하는 개인주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지난주야 어쩔 수 없이 같이했지만, 이번 주부터는 각자 길드원들이랑 돌 텐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파티] 개인주의: 헐... 카젤 형 나쁜 남자였네?
[파티] 카젤: 그러니까 뭐가요?
[파티] 개인주의: 우리 대장님 홀려 놓고 버리는 거예요?
[파티] 개인주의: 어떻게... 듀오를 그렇게... 쉽게... 깨 버릴 수가 있지? 불쌍한 우리 대장님ㅠ
[파티] 카젤: ....개주님 낮술 했어요?
[파티] Snow: ㅋㅋㅋㅋㅋㅋㅋㅋ 낮술 했녜ㅋㅋㅋ
[파티] 바나나: 술 안 먹어도 술 먹은 것처럼 보이는ㅋ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 마음씨 넓은 카젤 형만이 우리 대장님을 포용할 수 있답니다. 자세히 보면 나름의 장점도 있는 사람이에요. 다시 생각해 주세요^^
[파티] 멜로디: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흩어져
[파티] 개인주의: 저는 형을 믿습니다! 카젤 형의 자비를!!
개인주의는 뜨거운 감자를 투척하고는 신나게 웃어 대는 바나나, Snow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다들 밥 먹고 죄악의 탑을 돌려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저건 대체 무슨 헛소리야?”
주하는 이제야 조용해진 파티 채팅창을 보다가 멜로디를 응시했다. 개인주의가 한 말이 사실이면 멜로디에게 지금 듀오나 5인 팀이 없다는 뜻 아닌가? 왜?
[파티] 카젤: 너 길드원이랑 악탑 안 해?
[파티] 멜로디: 이번 주도 따로 해야 해
[파티] 카젤: 왜?
[파티] 멜로디: 인원수가 안 맞거든
[파티] 카젤: 안 맞...을 수가 있나?
[파티] 멜로디: ㅇㅇ
팀원이 짝수로 남아도, 홀수로 남아도 어찌 되었든 죄악의 탑을 굴리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만약 총 열 명이면 5/5로 할 수도 있고, 한 명이 빠졌다고 해도 5/2/2로 할 수 있고, 두 명이 빠졌다고 해도 2인으로 4팀을 만들 수 있으니까.
고로 멜로디가 혼자 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파티] 카젤: 말이 안 되는데...
[파티] 멜로디: ㅋㅋㅋ
[파티] 카젤: 사실대로 말해라
설명하는 게 귀찮았던 것뿐인지 멜로디는 곧바로 알려 주었다.
[파티] 멜로디: 이번 주까지는 다들 듀오로 한다고 해서. 손발 맞춘 것도 있으니까 그게 편하겠지.
[파티] 카젤: 그래도 조율은 했어야지
[파티] 멜로디: 저번에 못 온다고 했던 딜러가 와서 나랑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온다네. 일이 아직 다 마무리가 안 됐다나?
[파티] 카젤: 너무 늦으시는 거 아냐?
[파티] 멜로디: 어쩔 수 없지
[파티] 카젤: 아니... 그럼 다시 짜면 되잖아 5/2/2로
[파티] 멜로디: 이미 세 팀이 아침에 2인으로 돌았어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ㅋㅋ
애가 타는 건 본인이어야 하는데, 왜 저렇게 해맑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상위 공격대에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3위 안에 들진 못하더라도 플래티넘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멜로디와 듀오를 하는 건 무리였다. 아니, 불가능했다. 왜 저번부터 계속 당사자는 태연하고 저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웃지나 말던가.
[파티] 멜로디: 신경 쓰지 마
과연 저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보통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신경 써 달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멜로디의 성격을 보면 그런 식으로 우회해서 말하진 않았을 것 같긴 하다. 문제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거다.
멜로디 덕분에 혼자 아등바등했어야 할 일반 던전을 쉽게 끝내기도 했고, 평판 노가다와 채집하기 좋은 곳에 불러 주기도 했다. 저는 도움받아 놓고 정작 그가 필요로 할 때는 도와줄 수 없다니. 이런 게 빚쟁이가 된 기분인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가 길드원들 버리고 멜로디랑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주하는 골치가 아파졌다. 미간을 문지르는 손길에 고민이 묻어났다.
[파티] 멜로디: 그만 앉아 있고 저기 몹 좀 데려오지?
하지만 속이 타는 주하와 달리 멜로디는 평소와 같았다. 농땡이 그만 부리라며 닦달하는 그를 본 주하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이 자식 봐라?
‘설마 다 방법이 있어서 저렇게 여유로운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제가 지금까지 쓸데없는 고민을 한 기분이었다. 쥐가 고양이 생각해 주는 것 같달까? 걱정할 사람을 걱정했어야지. 괜히 신경 썼다 싶어 허탈해졌다.
하긴, 누가 봐도 멜로디는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파티] 멜로디: 엉덩이로 땅 파고 있네
[파티] 카젤: 시꺼
[파티] 멜로디: ㅋㅋㅋ 내 걱정 했어?
[파티] 카젤: 아니? 내가 왜?
[파티] 멜로디: 매정하긴
[파티] 카젤: 너한테만 매정함
[파티] 멜로디: 나한테 매정한 만큼 몹에도 매정해져야지
주저앉아 있던 카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죄악의 탑은 멜로디가 알아서 하겠지. 계속 신경 써 봤자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찝찝함을 훌훌 털어 버린 주하는 다시 노가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할 때보단 느리지만, 둘이서도 충분히 몰이할 수 있었기에 카젤과 멜로디는 열심히 몹을 잡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멜로디와 늦은 저녁까지 함께했더니 이제는 파티 창에 멜로디가 있는 게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거기다 중간중간 리프 길드원들도 번갈아 가며 노가다에 합류하자 어느새 Snow와 바나나까지 친해져 버렸다.
정작 제 길드원들은 확장팩이 열리고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앙숙이라 칭해지는 리프 길드원만 매일매일 보게 된다니. 이런 얄궂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리프 길드원들 덕분에 평소보다 더 즐거운 건 사실이었다.
마음이 미세하게 변화한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주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인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였다.
평판 작업은 사흘간 계속 이어졌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할 수는 없어서 다른 구역도 몇 군데 찾아냈더니 유저들도 따라서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채널도 늘어나서 유저끼리 부딪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PVP 지역임을 감안하면 정말 평화로운 필드였다.
아침 일찍 게임에 접속한 주하는 친구 창에 있는 멜로디를 보며 낮게 혀를 찼다.
“항상 나보다 늦게 나가고 일찍 들어오네.”
단 한 번도 멜로디가 친구 창에서 오프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제가 먼저 게임을 껐고, 멜로디보다 늦게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대체 언제 자는 건지, 얼마나 자는 건지, 아니, 잠은 자긴 하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멜로디는 평판작과 채집을 위해 울부짖는 평원에 있었다. 그런데 이쯤이면 슬슬 먼저 귓속말을 해 왔을 그가 조용했다. 잠깐 자리 비운 건가?
그제야 주하는 길드 창을 확인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드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레이드 팀원들도 접속한 사람이 없었다. 어제 일반 던전을 마무리하느라고 늦게까지 한 모양인데 아마 영웅 던전을 다 열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던 영웅 던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이 차올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방을 연 주하는 가득 채워져 있는 채집물을 보았다. 사흘 동안 모은 것들은 수량이 꽤 됐다.
라나탈에 비전투 콘텐츠인 전문 기술은 다양하다. 재봉, 가죽 세공, 대장장이, 연금술사, 보석 세공, 마법 부여, 요리사, 목공사, 상인, 고고학까지.
채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문 기술은 한 캐릭터당 한 가지만 가능했다.
주하의 전문 기술은 음식 도핑을 만드는 요리사였다. 그에게 필요한 건 동물형 몹을 잡고 나오는 고기나 낚시로 낚은 생선인데, 그동안 평판 작업과 함께 모았던 풀과 광석, 나무와 보석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두 다른 전문 기술을 가진 길드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주하는 며칠간 열심히 모은 재료를 길드 창고에 모두 올려 두었다. 창고의 절반이 자기가 올린 재료들로 가득 차자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서도 멜로디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지역도 여전히 울부짖는 평원 그대로였다. 주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멜로디에게 물었다.
[귓속말] 카젤: 채집 중?
처음으로 귓속말을 먼저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말로 자리를 비운 건가? 접속하고 나서 5분이 지난 지금, 보통은 자리 비움 표시가 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답하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주하는 울부짖는 평원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하얀 고양이를 타고 채집 지역으로 향했다.
그동안 멜로디와 함께 찾아낸 구역은 총 여섯 곳이라 가까운 곳부터 찾아갔다. 첫 번째 위치는 다른 유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엔 세 번째 위치로 달려가는데, 문득 지역 채팅창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 악킬: 와ㅋㅋ 잘 튄다
[지역] Britz: ㅋㅋㅋㅋㅋㅋ 역시 랭커값 하네
[지역] ILLHVHL: 그만 좀 죽어 줘 제발ㅋㅋ 그렇게 도망 다니는 거 지겹지도 않냐곸ㅋㅋㅋㅋ
[지역] OvOmlm: ㅅㅂ 정령사 이속 너프 좀
[지역] 힐판매중: 왜? 도망 잘 다녀서 재미있구만ㅋㅋㅋ
주하는 지역 채팅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유저 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 같은데,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이 왠지 제가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령사, 이속 너프, 랭커값, 거기다 오랫동안 살아 있다는 것까지. 설마…….
“멜로디?”
지금 멜로디가 필드에서 싸우고 있는 건가? 아니, 도망 다니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