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슬슬 정리하고 마을로 이동하려던 주하는 알겠다며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귓속말이 폭주했다.
[귓속말] 여름n모기: 카젤님!! 요리사라면서요!
[귓속말] 개인주의: 형!! 요리사예요?! +0+
[귓속말] 일시불: 카젤 형님! 요리사였어요?
[귓속말] 바나나: 카젤님! 우리 카젤님! 완소 요리사님!
[귓속말] Snow: 안녕하세요 카젤님^^;; 요리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ㅎㅎㅎㅎㅎㅎㅎ
너무 순식간에 밀려온 귓속말이 채팅창을 쭉쭉 밀어 버렸다. 주하는 다급히 채팅창을 확장시켰다. 시끄러운 지역 채팅창이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의 속도라 주하는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귓속말] 여름n모기: 최상급 요리!!! 저도 필요합니다 ^^;
[귓속말] 개인주의: 혀엉! 나도나도나도나도!! 나도 만들어죠요!
[귓속말] 일시불: 허억,,,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귓속말] 바나나: 저도 요리 좀 부탁해도 될까요?ㅎㅎ
[귓속말] Snow: 우리의 구세주님ㅠㅠ 제게도 자비 좀...
정말로 구세주라도 만난 사람인 양 리프 길드원들은 절절하게 애원하고 있었다. 당연히 만들어 줄 수 있긴 한데……. 한 명 한 명에게 대답하기는 무리라 멜로디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파티] 카젤: 야; 나 귓말 폭주함
[파티] 멜로디: ㅋㅋㅋ 기다려 봐
[파티] 카젤: 어;; 그런데... 다들 음식 없어?
[파티] 멜로디: 거의 다 먹었을걸
멜로디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친 듯이 올라오던 귓속말이 한 번에 뚝 끊겼다. 그제야 다시 채팅창을 원상 복구시킨 주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티] 멜로디: 최상급 요리 제작자가 드물어서 다들 흥분한 거 같은데
[파티] 카젤: 하긴; 도안을 4넴24)이 줬지;
[파티] 멜로디: ㅋㅋ 다 만들어 줄 수 있어?
[파티] 카젤: ㅇㅇ 그냥 내가 마을로 갈게
[파티] 멜로디: 아냐 거기 있어 우리가 감
그렇게 말한 멜로디는 차례대로 길드원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넘어가자 공격대 창으로 전환해서는 초대를 이어 갔다. 그런데 분명 귓속말을 한 사람은 다섯 명이었는데, 세 명이 추가로 더 늘어났다.
모두 리프 공격대 팀원들이었다.
[공격대] 지구침략: 안녕하세요 카젤님. 처음 뵙네요^^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카젤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공격대] 리미티드: 안녕하세요
음식 하나 때문에 전원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멜로디가 다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던 질문은, 남은 세 사람까지 포함한 것 같다. 갑자기 아홉 명분의 요리를 만들게 된 주하는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받았다.
[공격대] 카젤: 네; 안녕하세요
[공격대] 지구침략: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
[공격대] 카젤: 괜찮아요ㅋㅋ;;
[공격대] 개인주의: 하... 카젤 형! 우리 진짜 운명 같지 않아요? 이 정도면 ㄹㅇ 하늘이 짝지어 준 인연인데! >ㅁ<
[공격대] 카젤: 그거 아님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ㅋㅋ 이런 와중에 단호하심
[공격대] Snow: ㅋㅋㅋㅋㅋ
[공격대] 개인주의: 쳇... 카젤 형! 그런데 아까 제 귓말 못 봤어요? 자리 비웠을 때 귓말 했었는데
[공격대] 카젤: 언제요? 못 봤는데
주하는 일부러 보지 못한 척 시치미를 뗐다. 봤다고 하면 왜 대답 안 했냐며 닦달할 모습이 눈에 훤했다.
[공격대] 개인주의: 췌엣... ㅠㅠ
[공격대] 카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공격대] 개인주의: 아니에요... ㅎ
[공격대] Snow: ㅎㅎ 귀찮으면 그냥 무시해도 돼요
[공격대] 개인주의: 눈누나!! ㅠㅠ
[공격대] 카젤: ㅇㅋ
[공격대] 개인주의: 아놔! 카젤 형까지 ㅠㅠ
아침에 있던 일은 이미 멜로디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사사게 갈 정도의 일도 아니고, 저보단 불법 프로그램을 썼던 다섯 명의 유저와 그들을 잡아낸 멜로디 이야기가 불타올랐을 뿐이었다. 가끔 피해자로 카젤의 이름이 언급됐지만,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좋지 않은 일을 들출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개인주의는 조용히 넘겨 버렸다. 천방지축 막내였지만, 의외로 속이 깊은 녀석이었다. 주하는 가볍게 미소를 그렸다.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그나저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ㅋㅋㅋ 경매장은 터무니없이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격대] 일시불: 맞아; 겁나 비쌈; ㅠㅠㅠㅠ
지난 시즌 최종 레이드 던전에서, 그것도 막넴 바로 전인 네 번째 보스에게서만 나오는 최상급 요리 도안의 완성품은 대부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최종 레이드 콘텐츠를 깬 제작자가 드물기도 했고, 재료도 레이드에서 나오고. 그러다 보니 요리사는 팀원들의 요리만 만들어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 경매장에 올라온 음식들은 확장팩이 열리고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만들어 파는 것들이었다.
[공격대] 바나나: 우리 그래서 악탑도 포기하고 왔어요!
[공격대] 카젤: 네? 그러면 횟수 아깝잖아요;
[공격대] 바나나: 플래티넘에만 들면 돼서 괜찮아요. 우리는 현실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ㅋㅋ
[공격대] 지구침략: 바나나 듀오가 접니다 ^^
[공격대] 개인주의: 외계인 형ㅋㅋㅋㅋㅋㅋ 거의 울면서 나오던뎈ㅋㅋㅋ 3위라도 하고 싶다몈ㅋㅋㅋ
[공격대] 바나나: 진짜 울었어?
[공격대] 지구침략: 설마;; 개주가 장난치는 거야;
[공격대] 개인주의: 읍읍읍!!! 형! 입 막... 으읍!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 개주야 잠깐 누나랑 면담 좀 할까?
[공격대] 개인주의: 시정하겠습니다
개인주의는 꼬리를 말고 슬금슬금 도망쳤다. 평판작 하면서 매번 보던 모습이라 주하에게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공격대] 여름n모기: 그런데 이렇게 우르르 몰려가도 되나? 요리 만드는 데만 해도 꽤 걸릴 것 같은데;;
[공격대] 멜로디: 만들 때 한 번에 만드는 게 나아.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그게 더 민폐지
[공격대] Snow: ㅁㅈㅁㅈ 한 방에 끝내는 게 나을 듯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근데 이것도 민폐긴 해ㅋㅋㅋ
[공격대] 카젤: 괜찮아요ㅋㅋ 어차피 낚시하고 있어서
[공격대] 바나나: 우와 카젤님 너무 스윗하다///
[공격대] 개인주의: 멋짐이 폭☆발☆한☆다☆ >0<
[공격대] 일시불: 너 제발 그런 유물 꺼내오지 좀 마;;
[공격대] 개인주의: 이럴 때 쓰라고 나온 거니까 써 줘야 댐!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주하는 피식 웃어 버렸다. 주접과 칭찬, 갈굼이 함께하는 대화에 웃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썩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덕분에 조금은 나아졌다.
그렇게 낚시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리프 길드원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오면서 말을 맞췄는지 동글동글한 병아리 옷을 입고 제 주변에 앉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병아리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제가 엄마 닭이 된 기분이다. 그 와중에 개인주의와 일시불은 뺙뺙대며 ‘밥 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공격대] 개인주의: 밥 주세요! 뺙!
[공격대] 일시불: 배고파요! 뺙뺙!
[공격대] 바나나: ...난 저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공격대] 지구침략: 귀여운데 왜 ㅎㅎ
이번엔 지구침략의 말에 동의한다. 은근히 귀여운 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주하는 괜스레 입꼬리를 문지르며 웃음을 갈무리했다.
[공격대] 카젤: 왼쪽부터 한 분씩 거래 주세요
차례대로 재료를 받고 요리를 시작하자 다들 놀이는 끝내고 낚시하기 시작했다. 멜로디를 제외한 여덟 명이 주르륵 앉아서 그러고 있으니 참으로 볼만하다.
그러다 제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멜로디를 본 주하는 그에게 물었다.
[공격대] 카젤: 넌 낚시 안 해?
[공격대] 멜로디: 가방 꽉 찼어
[공격대] 카젤: ...몇 개나 만들려고 재료를 꽉 채워 와?
[공격대] 멜로디: 니 거랑 내 거 재료야
[공격대] 카젤: 나?
[공격대] 멜로디: ㅇㅇ 너도 필요할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제게도 재료는 남아 있었다. 영웅 던전에서 먹을 걸 생각하면 부족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급자족은 되는데?
[공격대] 카젤: 내 건 괜찮아
[공격대] 멜로디: 수고비야
[공격대] 카젤: 오... 수고비 줄 거면 골드로 좀 ^^
[공격대] 멜로디: ㅋㅋ 시른데?
[공격대] 카젤: 그럼 안 만들어 주지 뭐
[공격대] 멜로디: 내가 준 거 만들어서 팔아. 골드 꽤 짭짤하겠네
[공격대] 카젤: ㅋㅋㅋㅋ 팔면 가만 안 둘 거면서?
[공격대] 멜로디: 잘 아네^^
멜로디와 카젤의 대화가 이어지자 리프 길드원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치 다시는 보지 못할 신기한 장면을 본 사람처럼. 주하는 그런 분위기를 알지 못한 채 평소처럼 대했다.
그러다 주하가 다시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월차연차휴가가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아! 골드 하니까 생각났다. 카젤님 덕분에 우리가 내기에서 졌어...
[공격대] 바나나: 아... 아아앗!
[공격대] 지구침략: ㅠㅠ 그러고 보니 그러네...
[공격대] Snow: 내 10만 골...
[공격대] 리미티드: ......
상대 팀이었던 사람들은 그날을 떠올리며 침울해했다. 마법사가 있어서 내기에 이길 줄 알았는데, 카젤 덕분에 완전히 죽쑨 꼴이 되었으니 당시엔 꽤 충격이었다.
24) 4넴: 라나탈 이전 시즌, 최상위 레이드 던전의 네 번째 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