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50화 (50/130)

50화

아직 어린아이 빙의가 안 끝났나? 제가 원하는 것만 앵무새처럼 말하는 멜로디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호하다 못해 결연했다.

사실 예전에 다른 길드에 있을 때, 연락처 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을 겪어서 그동안 꺼렸는데, 멜로디한테는 알려 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테 쉽게 내 연락처를 돌리거나 할 것 같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 너만 알고 있어.”

—당연하지.

주하는 멜로디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스피커를 끄고 전화를 받자 이제는 익숙해진 멜로디의 나긋한 음성이 들렸다.

—카젤?

“응, 맞아.”

—내 번호도 저장해 둬.

“알았어.”

웃음기 서린 음성은 보이스 채팅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들렸다. 사탕보다는 말랑말랑하고 초콜릿보다 탄력 있는 마시멜로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그런 목소리였다. 이제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감탄을 자아냈다.

저런 목소리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혹시 욕도 하는 걸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물론 그 대상이 자신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좀 쉴 거지?

“아니. 아까 먹은 로브 강화하려고. 재료는 좀 되니까 20강까지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밥 먹기 전까지는 쉬는 게 어때? 너 지금 던전 여덟 시간 정도 돌았어.

“여덟 시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렇게 됐지.

“으……. 잠시만.”

지금까지 못 느끼고 있었는데, 멜로디가 말하니 괜히 찌뿌둥한 느낌이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 보자 확실히 몸이 굳어 있는 게 느껴졌다. 게임 하다 보면 너무 몰입해서 중간에 스트레칭을 해 줘야 한다는 걸 매번 잊는다.

멜로디의 말대로 잠시 쉬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주하는 보이스 채팅을 아예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그대로 매트리스에 몸을 맡기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근육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이랄까?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침대가 천국이구나.”

중얼거리며 말하자 핸드폰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같아.

“일곱 살 어린이가 보면 아저씨는 맞지.”

—나 일곱 살 아닌데?

“그러시겠죠. 라나탈은 18세 성인 게임이니까 어린이가 하면 큰일 나요.”

—아닌 척 먹이는 거 잘하는지는 알고 있었는데, 은근히 까는 것도 잘하네.

“못하는 거 빼고 다 잘하죠.”

실없는 소리에 멜로디는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영던 같이 해 보니까 어땠어?

“말해 뭐해. 당연히 최고지. 너는 막공이나 공팟을 안 가 봐서 모르겠지만, 진짜 지옥에 있다가 천국으로 간 기분이야.”

—1위 공댄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뭐, 그건 인정.”

최상급 막공을 굴린다고 해도 리프 공대만큼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이 게임 하면서 느꼈는데, 다들 반응 속도나 적응력이 상당했다. 클래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그에 따라 응용도 잘하고, 공략에 있어서 굉장히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딜도 잘하고 탱도 잘했다. 그저 잘한다기보다는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 자리 잡는 거나 무빙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 좋았던 건, 실력만큼이나 성격도 좋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서 던전 도는 내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스트레스도 없이 쾌적하고 편하게 플레이했다. 이보다 더 좋은 파티를 구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애들이랑 잘 놀던데.

“다들 편하게 대해 주셔서 그렇지, 뭐.”

—네 적응력도 만만치 않아.

“칭찬 같은데 왜 칭찬처럼 안 들리지? 너도 묘한 재주가 있다?”

멜로디는 또 한 번 웃음을 흘렸다.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가 너무 즐겁게 웃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입매가 흐물거렸다. 참 중독성 있는 웃음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배달시킨 음식이 도착했다. 현관 앞에 내려둔 음식을 가져와 컴퓨터 앞에서 포장을 풀고 있는데, 멜로디가 말했다.

—보챗으로 옮기자.

“나 밥 먹는 소리까지 들으려고?”

—그게 왜? 타자 치기 귀찮으니까 빨리 들어와.

“잠깐만 기다려 봐. 일단 전화부터 끊어.”

—너 들어오면.

“와…… 세기의 사랑꾼 나셨네요.”

—너랑 나랑 커플이잖아. 한시도 혼자 놔둘 순 없지.

“금시초문인데? 언제 커플이 된 건데?”

—바나나가 이쁜 사랑 하라잖아.

순간 입에서 풉 하며 웃음이 튀어 나갔다. 하여튼 멜로디도 제정신 아닌 건 알아줘야 해. 그 드립을 이렇게 써먹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설마 그 컨셉을 유지하려는 건 아니지?”

—못 할 게 뭐 있어.

“허…… 말이라도 못하면.”

—알겠으면 빨리 보챗 들어와.

“에휴, 알겠습니다.”

멜로디의 요청대로 보이스 채팅에 들어가자 방 하나가 새로 생긴 게 보였다. 두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는데 방제가 로미멜&줄리젤로 되어 있었다.

주하는 방제를 보자마자 다급히 외쳤다.

“방제 뭐야! 당장 바꿔!”

—아무리 봐도 내가 로미멜인 게 더 어울리는데.

“로미멜이든 줄로디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차피 우리 팀원들밖에 못 봐.

“방제 안 바꾸면 안 들어간다.”

—아쉽네에.

멜로디는 길게 웃으며 보이스 채팅의 방제를 바꿨다. 이번엔 다행히도 무난하게 2인 방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항상 훅 치고 들어오니 항상 뒤통수 맞는 기분이었다.

매번 이렇게 당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주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인 방에 들어가자 멜로디가 “어서 와”라며 환영했다. 멜로디의 목소리가 보이스 채팅과 핸드폰에서 두 번 울렸다.

“전화 끈다.”

—그래.

핸드폰을 끄고 가지고 온 햄버거 포장지를 하나씩 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소음은 감수해야 했다.

음식 냄새를 맡았더니 출출함을 넘어서 허기가 졌다.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주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곧바로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안 가득 고소한 풍미가 넘실거렸다.

—맛있어?

“몰랐는데, 진짜 배고팠나 봐.”

—보니까 잘 안 먹는 거 같던데. 좀 챙겨 먹어.

“적당히 먹고 있습니다.”

세 입 정도 먹자 허기짐은 가라앉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감자튀김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까 강화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이제 해 보려고.”

주하는 그동안 모아 둔 강화 재료를 창고에서 꺼내며 개수를 확인했다. 죄악의 탑에서 1등 해서 얻은 것과 업적 50% 달성으로 얻은 덕분인지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었다.

—어디 그 좋다는 운 좀 볼까?

“안 좋으면 강화 안 맡기려고?”

—마트에 괜히 시식 코너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믿음이 없으시면 거래는 없던 일로 합시다, 고갱님.”

—지금 선택해야 해?

“예, 당연하죠. 고갱님.”

멜로디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웃었다. 그러더니 별 고민 없이 하겠다며 대답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신의 한 수였는지는 곧 알게 될 터였다. 주하는 눈을 길게 휘며 멜로디에게 말했다.

“그럼 고객님 강화부터 시작할까요?”

—네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재미없죠.”

잠시 침묵하던 멜로디는 이내 반쯤 포기한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해 보자. 모 아니면 도지.

“좋은 선택 하신 겁니다, 고객님. 후회 없으실 거예요.”

—그러길 빌죠. 강화 대리인님.

주하는 맥주를 홀짝이며 강화 NPC 앞으로 먼저 달려갔다. 조금 기다리자 저 멀리서 멜로디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주하는 문득 죄악의 탑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나 가볍게 웃어 버렸다. 잔뜩 기대했다가 멜로디인 걸 알고 나서 얼마나 좌절했던가. 지금 떠올려 보면 그때가 제게 행운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멜로디가 왜 웃냐고 물었지만, 주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검은 고양이를 탄 멜로디가 카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

<자유게시판>

제목: 멜로디랑 카젤 미친 거 같음;;; [베스트]

작성자: 모르는개산책

나는 지금껏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었거든? 다들 보면 무언가를 잘하면 뭐 하나 부족한 게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오늘 그게 아님을 깨달았음ㅅㅂ;;;

확팩 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멜로디랑 카젤이 강화 성공을 월드 알림으로 울려 버리냐;;; 20강 이후부터 성공하면 서버 전체에 뜨는 거 알지?

멜로디가 20강부터 첫 알림을 울리더니 22강까지 성공시킴; 그다음엔 카젤이 23강까지 성공함;

얘네 진짜 미친 거 아님? 아무리 악탑 1등을 해서 아드룬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저 성공률은 사기 아니야??? 나만 그렇게 생각해?

근데 더 무서운 건 둘 다 로브 강화였음;;;

어둠의 심장 막넴 개어렵다고 소문났는데 그걸 또 잡아서 벌써 먹었어 ㅠㅠㅠㅠ ㅈㄴ 부럽다.

나는 언제쯤 20강이라도 해 볼까……?

ㅅㅂ 세상은 불공평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펼치기)

―너 꿈꿨냐? 어케 벌써 22강 23강이 나와?

└나왔어... ㄹㅇ루

└ㅁㅈ 그때 월챗 폭발함;;;

└나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때 악탑 돌고 있었는데 너무 놀라서 몹 사이로 돌진해서 죽어 버림... ㅠㅠㅠ

└놀랐다는 핑계 ㄴㄴ 네 실력임

└네 실력임 22

└네 실력임 333

└-_-...

―근데 진짜 어떻게 23강까지 하지? 그게 가능한가?

└기존 아이템 강화 수치 이전할 수 있잖아. 상급 아이템으로 넘길 때 최대 15강까지 이전됨

└둘 다 30강이었나?

└ㅇㅇ 둘 다 30강임

└그럼 강화 수치 넘겨서 15강부터 시작했겠네

└아무리 그래도 23강까지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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