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57화 (57/130)

57화

[길드] 천상검: 역시 우리 팀 딜러는 풀셋을 해야지^^

[길드] 블랙체리: 당연하죠ㅋㅋㅋ 꼭 풀셋 맞추고 갑니다!

[길드] 세렌디피티: 누가 풀셋 만들어 준댔냐! 앞으로 던전 한 번당 천 골씩 받을 테니까 그리 알앗!

[길드] 블랙체리: 세렌 형도 허리랑 망토 아직이잖아요 –0-!

[길드] 온별: 탱커랑 힐러는 황족이라 괜찮아^^

[길드] 블랙체리: 으윽ㅠㅠㅠㅠ

주하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천상검을 불렀다.

[귓속말] 카젤: 천상님 잠시 대화 가능한가요?

[귓속말] 천상검: 뭔데요?

귀찮아하는 듯한 대답에 멈칫했지만,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천상검이 말한 ‘우리 팀 딜러’에 위화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공대장인 천상검이 한 말은 쉬이 넘길 수 없었다.

[귓속말] 카젤: 블랙체리님이 팀에 합류한 건가요?

[귓속말] 천상검: 네

[귓속말] 카젤: 그럼 11명이지 않아요? 혹시 누가 빠졌나요?

[귓속말] 천상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상검은 카젤의 질문에 길게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하의 낯은 잔뜩 굳어 있었다.

[길드] 천상검: 귓말하지 말고 길드창에서 말하죠 카젤님

[길드] 살금: 아! 드디어?

[길드] 온별: ㅋㅋㅋ 그날인가?

[길드] 베르메르: D-Day ㅋㅋㅋㅋ

[길드] 블랙체리: ㅋㅋ

다들 무언가 알고 있듯이 웃어 대는 팀원들이 낯설었다. D-Day? 그날? 드디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 자꾸만 머릿속을 들쑤셨다.

차마 손이 움직이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제가 채팅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천상검과 팀원들은 그동안 숨기고 있던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길드] 천상검: 죄송한데 카젤님 자리는 뺐어요

[길드] 천상검: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길드] 천상검: 다른 레이드 팀 구하셔야 할 듯

[길드] 살금: 이렇게까지 안 맞는 사람은 처음이었음ㅋㅋ

[길드] 베르메르: ㅋㅋㅋㅋㅋㅋ

[길드] 온별: 아직 3.1 패치 안 나왔으니까 레이드 하고 싶으면 빨리 구하세요ㅋㅋ

이제 와서 다른 팀을 구하라니. 주하는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길드 채팅창을 응시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외면했던 상황이 실제로 제 앞에 드리웠다.

그동안 느꼈던 불안감은 이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아니라며 천상검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 역시나 현실은 잔인했다.

[길드] 천상검: 레이드가 실력도 실력인데 솔직히 친목도 무시 못 하잖아요. 그렇게 마이웨이로 하다간 다른 공대 가도 오래 못 할 거예요. 기분 나쁘셔도 조언은 받아들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길드] 카젤: ...마이웨이요?

천상검의 말대로 레이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람이 하는 이상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했다. 그래서 아무리 공과 사를 구분한다 해도 저 또한 이런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고민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으니까.

그런데 마이웨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길드] 살금: 솔직히 처음 레이드 할 때부터 좀 그랬어요ㅋㅋ 혼자 공략하는 것도 아니고, 이거 찾았다 저거 찾았다 그러면서 확인해 보자고 강제했잖아요. 그건 공대장인 천상검의 영역 아닌가?

[길드] 카젤: ...패턴 알아내기 위해서 여러 방향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다들 놓치셔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의견일 뿐 강제한 적도 없는데 무슨 말씀을...

제가 의견을 냈을 때는 공략에 제동이 걸렸을 때뿐이었다.

아무래도 뒤늦게 합류했던 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초반 공략 때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기믹을 넘기지 못하고 지쳐 있기에 제가 알아낸 공략을 알려 주고 다시 해 보자며 격려했는데, 그걸…… 이렇게 받아들였다고?

[길드] 온별: 그럼 천상이한테 귓말로 말했어야죠. 엄연히 공대장이 있는데 혼자 날뛰드만

[길드] 카젤: 모두 다 처음 보는 보스였잖아요. 상의하면서 다 같이 공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길드] 베르메르: ㅋㅋㅋㅋ 아니 이 답답한 사람아... 당신 학생이죠? 직장 안 다녀 본 거 같은데ㅋㅋㅋㅋㅋㅋ 게임이라도 엄연히 상하 구분은 해야지

대체 무슨 헛소리지? 게임에서 무슨 상하 구분? 공대장이 어느 정도 권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공략을 위해 의견 내는 것을 공개로 하면 안 되고 공대장에게만 말해야 한다니?

아니, 백번 양보해서 그런 규율이 있다고 치자. 그럼 미리 말을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인제 와서 혼자 날뛴다고 그러면 어쩌라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길드] 온별: 난 카젤님이 공대장인 줄 알았지 뭐야

[길드] 베르메르: 나도ㅋㅋㅋ

[길드] 세렌디피티: 근데 공략도 공략인데 리프 공대랑 싸울 때도 좀 그랬음. 우리가 공격당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던데. 우리한테만 그만하라고 하면서

[길드] 살금: 맞아ㅋㅋ 혼자 선비 모드

[길드] 카젤: ...먼저 도발한 건 리프 길드가 아니잖아요

리프 길드와 앙숙이 된 사건의 시발점은 살금이었다.

공략 상황이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터라 누구든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저희가 앞서 나가면 살금이 월드 채팅으로 리프 길드를 놀려 댔다.

[월드] 살금: 1위 공대도 별거 아니네.

[월드] 살금: 공략 ㅈㄴ 쉬운데 저기는 아직 못 잡았나?ㅋㅋ

[월드] 살금: 우리 50% 넘김ㅋㅋㅋ 구 1위 길드는 어디쯤임?

[월드] 살금: 퍼클은 우리가 하겠닼ㅋㅋㅋ

당연히 리프 길드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나서서 살금과 같이 동조했던 사람들에게 랭킹에 올라온 적도 없는 놈들이 나댄다며 비꼬았다. 결국 살금과 팀원들은 참지 않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건가?

엄연히 잘못한 건 우리였다. 살금이 혼자 시작하긴 했지만, 길드 이름을 달고 저쪽을 저격했으니 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도를 넘어서자 그때부터는 리프 길드의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나타났다.

그 와중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총 네 명이었다. 자진신고의 저와 벌꿀오소리, 리프 길드의 멜로디와 리미티드.

벌꿀오소리를 잡고 늘어지려는 건 아니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이런 싸움을 싫어해서 같이 팀원들을 말렸었다. 경쟁도 좋지만 일단 공략부터 하자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마치 저 혼자 깨끗한 척했다는 것처럼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

[길드] 살금: 그래도 팀원이 당하는데 어케 가만히 있지? 그게 되나? 난 안 되던데

[길드] 블랙체리: 당연히 안 되죠ㅋㅋ

이젠 어이가 없다 못해 소멸할 것만 같았다. 벌꿀오소리가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개소리냐며 한바탕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길드] 살금: 거기다 우리가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멜로디랑 악탑 돌아서 1위 먹고ㅋㅋ 상대 팀한테 좋은 것만 넘겨주네?ㅋㅋㅋ 나 같으면 천상이랑 벌꿀님이 1위 할 수 있도록 도왔겠다

[길드] 베르메르: 아 맞다 100층 보스 공략법 알려 달라고 했는데 안 알려 줬지 참ㅋㅋㅋㅋㅋ 리프 길드한테 의리가 참 대단함

[길드] 카젤: ...저 혼자 공략한 게 아니잖아요. 멜로디도 길드원에게 공략법 알려 주지 않았어요. 게다가 벌꿀오소리님도 알아서 공략하겠다고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길드] 베르메르: 그건 본인의 이기심을 포장하는 것밖에 안 되죠. 힌트 정도는 줘도 괜찮지 않았나 싶은데ㅋㅋ 1위는 양보 못 한다고 하면 적어도 2위는 밀어줄 수 있지 않나?

[길드] 블랙체리: 허... 다시 들어도 정말 너무하네;;

벌꿀오소리가 완강히 거부할 때는 가만히 있더니 인제 와서 힌트도 안 줬다며 제 인성을 의심한다.

주하는 눈 뒤가 크게 부푸는 듯한 느낌에 눈가를 문질렀다. 아무리 제가 웬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혈압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길드] 천상검: 그리고 계속 멜로디랑 붙어 다니시던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길드] 살금: 진짜 어이없어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온별: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허락이라도 받은 줄 알았나 본데 적당히 눈치는 챙겨야지 ㅉㅉ

[길드] 블랙체리: 저번에 보니까 마을에서 리프 길드원들이랑 옹기종기 앉아서 놀고 있던데 누가 보면 리프 길드 모임인 줄 알았겠음;

[길드] 세렌디피티: 이 정도면 배신잔데ㅋㅋ

[길드] 살금: 혹시 던전도 걔들이랑 다닌 거 아냐?

[길드] 온별: 게시판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길드] 살금: 근데 거기도 10명 아닌가? 어케 같이 다니지?

[길드] 베르메르: 친해졌으니까 번갈아 가면서 돌아 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지ㅋ 동시에 로브 강화 돌릴 때부터 알아봤어ㅋㅋㅋㅋ

[길드] 살금: 와... 그게 사실이면 아무리 적 길드라고 해도 불쌍해지네;;; ㅈㄴ 민폐아님?

이제는 두통이 오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한 손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불편한 속을 달래는 동안에도 길드원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변명이나 해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의지조차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제가 무어라 말해도 들어줄 생각이 없을 테니까.

길드원과의 사이는 레이드에 합류했던 4개월 전부터 이미 금이 가 있었고, 제가 멜로디와 죄악의 탑을 진행한 시점에서 완전히 깨져 있었다.

그렇다면 레이드는 같이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이유는 뭐고, 이때까지 질질 끌고 온 이유는?

차라리 일찍이라도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불만이나 오해가 있으면 말해서 풀든지, 그게 아니라 정말 끝내고 싶었더라면 이미 정리했어야 하지 않나?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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