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64화 (64/130)

64화

[파티] 멜로디: 그럼 앞으로 형이라고 하면 되지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내가 먼저 말 놓으라고 했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ㅋㅋ 대신 앞으로는 짤 없다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존댓말 하진 말고 평소처럼 해

[파티] 카젤: 뭔가... 진 기분이네...

[파티] 멜로디: ㅋㅋㅋㅋㅋ

힘겨웠던 산 하나를 드디어 넘었다. 다행히도 정상참작을 해 줘서 죄가 가벼워진 기분이다. 앞으로는 봐주지 않겠다고 하니 조심해야겠다.

그럼 호칭 정리도 됐고, 이젠 길드원들과 얘기하는 것만 남았다.

[길드] 카젤: 다시 인사드릴게요. 아무래도 나이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 22살입니다. 편하게 말해 주세요

[길드] 개인주의: 크!!!!! 드디어!!!!!!!

[길드] 일시불: ㅋㅋㅋㅋ 형님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길드] 바나나: ㅋㅋㅋ ㅇㅋ 그럼 앞으로 편하게 말함^^ 난 26

[길드] Snow: 나도 말 놓을게ㅋㅋ 26임

[길드] 월차연차휴가: 난 24ㅋㅋ

[길드] 지구침략: 나도 잘 부탁해^^ 27

[길드] 여름n모기: 나도 26이야ㅋㅋ 잘 지내 보자

[길드] 리미티드: 동갑이네. 너도 말 편하게 해

개인주의와 일시불은 동생인 걸 알고 있었으니 상관없고, 리미티드는 동갑, 다른 분들은 다 형과 누나들이었다. 외우기엔 어렵지 않은 것 같다.

[길드] 카젤: ㅇㅇ; 아. 그리고... 그동안 봤던 하극상은 잊어 주세요;; 멜로디 형이 봐준다고 하셨음;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Snow: ㅋㅋㅋㅋㅋㅋ 진짜 우리랑 동갑인 줄 알았어

[길드] 카젤: 후... 평생 너, 너 할 수 있었는데... ㄲㅂ

[길드] 멜로디: 연하가 그러려면 애인만 가능하지 않나? 내 애인 하려고? 그럼 나야 좋지ㅋ

[길드] 월차연차휴가: 아닠ㅋㅋ 대장님!! 미1쳤냐곸ㅋㅋㅋㅋ

[길드] 바나나: ?? 둘이 이미 연인 사이 아니었어? 설마 쇼윈도였음? 우리 사전에 그런 건 용납 안 됨!

[길드] 개인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카젤 형한테 왜 그래옄ㅋㅋㅋ 불쌍해... ㅠ

[길드] 멜로디: 누가 불쌍해?

[길드] 개인주의: 아앗... 아뇨 대장^^;; 제가 잠시 헛소리를;

[길드] 일시불: 카젤 형님... 크흑...

[길드] 카젤: ㅋㅋㅋ 아니 그런데 애인하고 말 놓으면 내가 이득 아닌가? 형 소리도 어색한데... 그래 봐?

[길드] 월차연차휴가: ;;;; 정신 차려;;;;; 상대는 대장님이라고;;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 아잌ㅋㅋ진짴ㅋㅋ 너무 좋아ㅋㅋㅋㅋ 난 이렇게 안 빼고 잘 노는 애들이 좋드라 ^^

[길드] 카젤: ㅋㅋㅋㅋ

처음엔 가볍게 시작한 대화가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주하는 내내 웃음을 물고 있었다. 커플 비슷하게 되었는데, 뭐 전부터 그랬으니 이제 와서 내외하고 뺄 이유도 없었다.

[길드] 멜로디: 그럼 오늘부터 1일?

[길드] 카젤: 형 정신 차려 ^^

물론 진짜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당사자가 저렇게 나오니까 괜히 손끝이 간질거렸다. 길드에서는 신나게 웃어 대느라 바빴는데, 저는 손가락을 꾹 누르며 알 수 없는 열기를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다.

[파티] 멜로디: 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해? 그럼 빨리 익숙해져야지. 보챗 들어와

[파티] 카젤: 아니... 길드랑 파티 말 할 때 온도 너무 다른 거 아니냐고요

[파티] 멜로디: 그럼 진짜로 애인 해 줘?

[파티] 카젤: 대체 왜 기승전 애인이지...

주하는 고개를 저으며 보이스 채팅을 열었다. 가끔 저렇게 나올 때면 감당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1절로 끝나지 않는 걸 보니 놀리는 데 재미 붙인 듯하다.

한숨을 쉬며 헤드셋을 착용하고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네에, 왔습니다.”

—왜 뚱해 있어.

여전히 나긋한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다 알면서 저러는 걸 보면 확실히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 애인 소리는 언제까지 하려고요?”

—쇼윈도인 거 들켰으니까 진짜로 해야지 않아?

“……안 그래도 되거든요.”

—그런데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그야, 어색하니까요?”

—그게 더 어색해. 하던 대로 하고 형이라고만 부르면 되잖아.

“채팅이랑 음성은 느낌이 달라서, 좀 그러네요.”

—그럼 그냥 내 애인 하고 너라고 하든가.

“제정신인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제가 양심 없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아, 말할 때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 ‘멜로디 형’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

“그럼, 선율 형?”

—그래, 주하야.

아, 이건 좀 기분이 이상한데…….

아까 통화했을 때 듣긴 했어도 확실히 실명으로 불리는 건 조금 민망했다. 그것도 성이 붙지 않은 이름으로만 불리는 것이.

남자들끼리는 보통 “야, 강주하”라고 부르지 “주하야”라고 부르진 않으니까. 선율 형은 그런 경계가 없는지 익숙하게 불렀다. 제가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반말은 힘들 것 같아?

반말이라……. 아무래도 네 살 차이면 꽤 크긴 하다. 학교에서도 26살은 까마득한 선배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에게 반말이라니, 가능할까?

“음.”

—말했잖아. 하던 대로 하고 뒤에 형만 붙이면 된다고.

“왜 그렇게 반말에 집착하시는지.”

—계속 그렇게 지냈는데 갑자기 존댓말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괜히 멀어진 느낌도 들고. 다른 애들한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한테는 존댓말 쓰지 마. 알겠지?

“으, 모르겠다. 하던 대로 하지 뭐.”

—그래, 잘하네.

“형 진짜 이상한 거 알지?”

—이상한 게 아니라, 평소대로 하는 거야.

그게 이상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존댓말 한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뭐,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근데 에어컨 A/S 신청은 했어?

“아, 맞다.”

—요즘 같은 날은 신청해도 바로 안 오니까 미리 해 놔야 해. 핸드폰도 수리해야 하지?

“응, 액정이 다 깨져서 화면이 하나도 안 보여.”

—액정이 다 깨졌어? 그럼 내가 너 잠수 타는 동안 메시지 보낸 거 하나도 못 봤다는 소리네.

“그……렇지? 미안, 집에 가서 컴퓨터로 확인해 볼게.”

—보고 놀라지나 마. 내 평생 그렇게 애타게 기다린 적은 처음이었어. 말없이 게임 껐다고 그래서 접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제가 게임 접는 걸 걱정할 사람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나쁘지 않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았다. 상대방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예전엔 그런 게 부담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아니었다. 제가 변한 건지, 아니면 걱정해 주는 사람이 달라서 그런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게임 접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멜로디, 아니, 선율 형이 지금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는 뻔했겠지.

“고마워, 형.”

진지하게 말하는 건 좀 낯간지러웠지만,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싶은 말이었다.

주하는 저도 모르게 흐무러지도록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건 반칙인데?

“응?”

—아니, 아니야.

“무슨 말인데 소곤거려?”

—일퀘나 하러 가자고.

“아, 맞다. 늦었으니까 얼른 가자. 지금 시간에는 사람 많아서 시간 좀 걸릴 거야.”

확장팩이 나온 이후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건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해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선율 형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근데 주하야. 그거 알아?

“어?”

—PC방 헤드셋이 은근히 성능 좋다는 거.

“……갑자기 무슨 소리야?”

—주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게 오늘만큼은 좀 마음에 안 들어. 옆자리도 그렇고.

“주변 소리가…… 안 들리면 좋은 거 아냐?”

—그러니까. 평소엔 좋았는데, 오늘은 영 그러네. 자리도 원하던 자리가 아니라서 별로야.

“그럼 다시 옮겨.”

—여기가 제일 가까워서 안 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헤드셋 성능이 좋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고, 어디랑 가깝길래 자리를 바꿀 수 없다고 하는지. 중요한 것만 쏙 빼고 말하니 전혀 공감해 줄 수 없었다.

가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저는 늘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 알겠으니까 일단 일퀘부터 하러 가자.”

제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선율 형은 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즐거움은 조금 더 미뤄 둘까?”라며 중얼거리곤 캐릭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퀘스트 구역에 늦은 사람 500골.

“뭐? 아, 잠깐!”

먼저 포탈을 타고 사라진 멜로디를 따라 주하도 부랴부랴 이동했다. 제발 페어플레이 좀 하라며 한소리 한 그는 하얀 고양이를 타고 앞서 나간 멜로디를 쫓아갔다.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주하를 보며 선율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 슬쩍 왼쪽을 돌아보고 모니터에 집중한 남자를 응시했다.

옆모습만으로도 콧대와 턱선이 반듯하다는 게 드러나 자꾸만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각보다 도톰한 입술도, 쌍꺼풀 없이 긴 눈매도. 시선이 마주쳤을 때 봤던 검은 눈동자도.

성격도 좋으면서 실력도 좋은데 거기다 잘생기기까지 하면 어쩌라는 건지. 속으로 웃음을 삼킨 선율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헤드셋에선 여전히 단정한 주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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