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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68화 (68/130)

68화

길게 숨을 내뱉고 다시 심기일전해서 합성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0.01%의 벽을 고작 25개로는 뚫을 수 없나 보다.

또다시 랜덤 박스 99개를 열고 17개의 합성 재료를 얻었다. 재료는 잘 나오는 거 같은데……. 가볍게 손을 털며 긴장감을 덜어냈다. 마우스를 잡고 다시 합성을 시도했다. 그러나.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실패.

“…….”

—괜찮으니까 계속해 봐.

“진짜, 형이, 내 운…… 다 가져간 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스피커 너머에서 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가 책임져야겠네.

“책임?”

—응, 책임. 내가 다 가져갔으니까 내가 네 행운 하면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팔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어쩜 형은 이런 낯간지러운 말도 잘하는지 모르겠다. 주하는 팔을 거칠게 긁었다. 그러다 문득 리프 길드에 오기까지의 일들이 떠올랐다.

죄악의 탑 앞에서 만났던 일, 같이 던전을 돌았던 일, 요리 재료도 선물 받았던 일, 저를 위해 지역 대화창에 나타났던 일, 그리고 제 자리를 남겨 두고 기다려 준 일 등등. 선율 형은 항상 제게 행운이 되어 돌아왔다.

이만큼 확실한 지표가 또 어디 있을까. 정말로 운을 가져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좋은 영향을 줬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투덜댄 게 무색해져 볼을 긁적였다.

—SS등급 나올 때까지 지원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돌려 봐.

“무슨 지원까지 해? 괜찮아.”

—네 운 가져갔으니까 책임져야지.

“장난으로 한 말, 다큐로 받지 맙시다.”

—그럼 뇌물? 아이템 대리 강화 잘 부탁드립니다.

“오…… 그건 좀 당기는데?”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빨리 합성 계속해 봐.

이유는 그저 핑계였다. 어떡해서든 지원해 줄 생각인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주하는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조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자 이깟 펫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하는 남은 랜덤 박스를 모두 열고 총 52개의 합성 재료를 획득했다.

별 기대 없이 합성을 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실패를 거듭하는 것을 보면서도 무작정 클릭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에 폭죽이 터지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카젤 님이 SS등급 펫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합성 성공을 알리는 팡파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월드 알람으로 널리 퍼졌다. 0.01%의 확률을 뚫고 SS등급 펫을 획득한 것이다.

—생각보다 금방 되네.

“으, 그러게. 괜히 초조해했네.”

—역시 네 행운은 난가? 이렇게 바로 되는 거 보면.

“예에, 예에, 그러시겠죠.”

주하는 적당히 대꾸하며 화려한 이펙트를 뽐내는 자신의 고양이를 감상했다. 스탯 및 능력치 10% 증가, 공격력 10% 증가. 아름답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한 옵션이었다. 캐릭터 능력치 창을 열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했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길드] 개인주의: 아니!!!!!!!!!!! 카젤 형!!!!!! 형까지 이러깁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 대장이랑 놀더니 옮으셨나? ㅠㅠㅠ

[길드] 일시불: 두 분이 연달아 그러시면....ㅠㅠㅠ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 카젤아 축하해

[길드] Snow: ㅊㅋㅊㅋ

[길드] 월차연차휴가: ㅊㅋㅊㅋ!! 그런데 우리도 발등에 불 떨어졌다;;; 무조건 SS 뽑아야 하잖아;

[길드] 카젤: ㅋㅋㅋㅋㅋㅋ ㄱㅅㄱㅅ!!

[길드] 멜로디: ㅋㅋ 갈굴 준비 끝났다

[길드] 여름n모기: 아놔;;;;;; 운 나쁜 건 우리도 어떻게 못 한다고ㅠㅠㅠ

[길드] 멜로디: 30강 돌리는 것보단 확률 높잖아.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 ^^

[길드] 리미티드: .......

[길드] 지구침략: ;;;;;

SS등급 펫을 가진 카젤과 멜로디는 여유로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좌절했다. 패치 첫날이라 S등급으로 일단은 만족하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팀원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주하는 가방에 남아 있는 합성 재료를 확인하곤 멜로디에게 물었다.

“형, 남은 재료 팀원들 줘도 돼?”

—응, 알아서 나눠 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길드 창에 말했다.

[길드] 카젤: 저 재료 좀 남았는데 드릴게요ㅋㅋ

[길드] 개인주의: 카젤 형!!!!!!!!!! 우리 멋진 카젤 형!! 제 사랑을 받아 주세요! >3< ㅉㅉㅉㅉ

[길드] 멜로디: 야 김개주 혼날래?

[길드] 개인주의: 헐;;; 맞다;; ㅈㅅ;;;;;

[길드] 멜로디: 주하야 개주는 빼고

[길드] 개인주의: 아아아아앜!!!! 안 돼!!!! ㅠㅠㅠ 잘못했어요 대장니뮤ㅠㅠ 카젤 형 자비 좀ㅜㅜ

[길드] 카젤: 나도 선율 형한테 받은 거라 ^^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길드] 개인주의: 으허허허허허허헝ㅠㅠㅠㅠㅠㅠ

[길드] 바나나: 한 명 떨어져 나갔으니 분배가 달달하겠군ㅋ

[길드] 월차연차휴가: 개주 땡큐 ^^

[길드] 일시불: 고맙다 칭구야 ^0^

[길드] 개인주의: ヘ(;´Д`ヘ)

개인주의는 카젤에게 뽀뽀를 날렸다는 죄로 합성 펫 재료를 받지 못했다. 정말로 제외될 줄 몰랐던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처절하게 무릎을 꿇었다. 한참이나 쩔쩔매고 나서야 멜로디의 짜증이 풀렸는지 랜덤 박스 50개를 선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얻은 노력의 산물로 다시 합성을 시도했지만, 결국 SS등급 펫은 뽑지 못했다.

개인주의는 본인의 운을 한탄하며 또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

10인 토벌전.

라나텔에 있는 레이드 유형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것이 토벌전이었다.

아이템 레벨을 맞추고, 간단한 입장 퀘스트만 하면 진입할 수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일반 몹 없이 보스만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레이드는 아니다.

일반 토벌전은 누구나 쉽게 보스를 잡을 수 있지만, 영웅 토벌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진짜’ 레이드를 가기 위한 마지막 스펙업 구간이라 그런지 난도가 꽤 높기로 유명했다.

거기다 이번 확장팩은 영웅 던전부터 어려워져서 더 걱정이었다.

3.1 패치가 되고 나온 토벌전은 총 3개. 그중 한 녀석이 무기를, 두 녀석은 액세서리를 떨군다.

방어구는 숍에서 판매하는 두루마리로 옵션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하나만 먹어도 상관없지만, 무기와 액세서리는 변환 두루마리가 없어서 무조건 최상급 옵션이 나올 때까지 던전을 돌아야 했다.

[공격대] 개인주의: 어디 얼마나 어려운지 봐 볼까!

[공격대] 일시불: 오랜만의 10인 레이드라 가슴이 뛰네 –0-

[공격대] 바나나: 다들 입장퀘는 끝냈어?

[공격대] 카젤: ㅇㅇ

[공격대] 여름n모기: 당연;;

[공격대] 연차월차휴가: 말해 머해ㅋ

[공격대] 멜로디: 아이템 내구도 확인하고 도핑 챙겨서 던전 앞으로 모여. 다들 보챗 들어오고

[공격대] 개인주의: 옛설!

[공격대] Snow: 잠깐 나 커피 좀 타 오고. 생명수가 필요하다

[공격대] 일시불: 아 난 콜라 가져와야지ㅋㅋ

주하도 오랜만에 하는 10인 레이드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알아내는 재미는 역시 레이드가 최고였다.

죄악의 탑이나 영웅 던전에서 약간 맛을 보긴 했지만, 10인 레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여러 명이 손발을 착착 맞추어서 해냈을 때의 그 뿌듯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역시 라나탈의 꽃은 레이드였다.

아이템 내구도와 도핑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주하는 멜로디가 기다리고 있을 레이드 던전 앞으로 이동했다.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 울리고 있었다.

7시 정각이 되자마자 세 개의 토벌전 중 무기를 주는 판결자 라흐니스를 선택해서 들어왔다.

녀석은 한 손엔 천칭을, 다른 손엔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외형은 긴 은빛 머리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 아름다운 외모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격대] 바나나: 이야! 잘생겼다! +_+

[공격대] 개인주의: 와... 나나 누나 너무하네

[공격대] 바나나: 왜? 잘생긴 걸 잘생겼다고 말도 못 해?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그치 잘생긴 건 잘생긴 거지. 나처럼

[공격대] Snow: ...ㅋ 누구 밑으로는 조용히 하자 ^^

[공격대] 개인주의: ......

[공격대] 일시불: ......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

[공격대] 여름n모기: ......

[공격대] 지구침략: ......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주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격대] 카젤: 왜요? 누가 잘생겼나 보네?

[공격대] 개인주의: ㅇㅇ 우리 대장님이요. 컨트롤만큼이나 얼굴도 압도적입니다. 후...

[공격대] 일시불: ㅁㅈㅁㅈ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 딴 건 몰라도 그건 인정

[공격대] 카젤: 오호라

목소리도 좋은데 얼굴까지 잘생겼다니. 거기에 건물주? 역시 신은 공평하지 못했다. 설마 키도 큰 건 아니겠지? 머릿속에서 형태가 없는 미남이 일렁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도핑이나 해

얼마나 잘생겼길래 다들 반박도 못 하나 궁금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화제를 바꿔 버렸다. 부끄러워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일단 공략부터 하고 보자. 궁금한 건 나중에 해결하면 되지.

주하는 각종 도핑과 음식을 먹고 보스 앞에 섰다.

—준비됐으면 바로 가자. 외계인 형 먼저 출발.

멜로디의 출발 신호에 지구침략을 앞세워 공대 전원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보통 어그로가 좋은 혈기사가 메인 탱커를 맡기 때문에 지구침략은 익숙하게 시선을 돌리고 자리를 잡았다.

처음은 별다를 것 없이 진행되었다. 탱하고, 힐하고, 딜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터라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90%부터 기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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