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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77화 (77/130)

77화

—아무튼! 너 데리고 오고 나서 멜로디가 자진신고한테 길드전 선포할 줄 알았거든? 근데 이상하게 얌전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네가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더라?

“아, 그랬죠.”

—우리도 벼르고 있었는데 당사자가 싫다고 하니까 일단 놔뒀지.

—근데 이렇게 알아서 각성시켜 주셨네?

—카젤 형! 쟤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 같으니까 눕혀 주죠!! 진짜 가만 안 둔다!

—우리 뒤치기 당한 것도 갚아 줘야 해! 아무것도 못 하고 다섯 번이나 죽었단 말이야! 적어도 백 배, 천 배로 갚아 줘야 발 뻗고 잘 수 있어!

개인주의와 일시불의 화력에 바나나와 Snow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개주와 시불이를 누가 키웠던가. 그 둘은 카젤이 허락만 하면 씹고, 물고, 뜯어 저들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의 멘탈을 갈아 버릴 공포의 주둥이도 달고 있으니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 두 사람의 뿌듯한 미소가 막둥이들에게 향했다.

“…….”

반면 당사자인 주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팀원들이 저보다 먼저 나서서 화낼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했달까. 안 그래도 자진신고 녀석들을 이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도와달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양해라도 구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제가 말하기도 전에 팀원들은 이미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주하는 팀원들을 보며 짧게 웃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단순히 시간으로만 쌓이는 건 아니다. 짧은 순간에도 같은 일을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떠올려 보면 자진신고에서의 5개월은 리프 길드에서의 하루만도 못한 날들이었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더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팀원을 건드린 자진신고에 대한 분노는 커져 갔다.

—나 왔어! 어떻게 됐어? 애들 잡았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눈가가 아릴 정도로 조용히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데 월차연차휴가와 리미티드가 뒤늦게 합류했다.

—한번 밀었어요. 지금 대치 중.

—무슨 PC방에 사람이 이렇게 많아. 게임 하고 있는 학생한테 용돈 주고 자리 양보받았어. 미치겠다.

월차연차휴가는 본인도 어이없던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도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리미티드와 함께 접속했다.

—형들 없는 동안 우리 카젤 형 흑화했음!

—아, 진짜?

—조용히 으르렁거리는데, 난 우리 대장님인 줄 알았잖아?

—오…… 마냥 순둥이는 아니었네?

—모기 형도 그 말 했는데, 흐흐.

—원래 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서운 법이야. 그래서 봐줄 때 잘해야 해. 깝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둬.

—카젤아, 그럼 이제 합법적으로 죽여도 돼? 나 좀 많이 참았는데.

리미티드의 질문에 주하는 목울대를 울리며 웃었다. 저 사냥꾼들은 자진신고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제게 빨리 허락하라며 압박을 가할 정도였으니.

그래,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어, 보이는 족족 죽여.”

—크으! 이래야지.

—쟤들이 개주랑 시불이만 상대해 봐서 모르나 본데, 우리 길드 PVP 담당이 리밋이랑 나라는 걸 알려 줘야지.

—아! 월차 형! 억까에요! 진짜! 우르르 몰려왔다니까요? 힐러도 있는데 어떻게 이깁니까아!

—한 놈이라도 죽였어야지.

—그럴 상황이 안 되는……! 아오! 형, 누나들! 깡패 마법사가 전투 전에 아군 사기 떨어트린대요!

—팩트인 걸 어째? 리밋이랑 나는 전장 최고 칭호인 ‘사령관’도 달았는데, 너희는 ‘장군’이잖아.

—그, 그래도 사령관 아래가 장군인데요! 서버당 스무 명밖에 못 단다고요!

—응, 사령관은 서버당 한 명. 그리고 너희는 나랑 리밋이한테 한 번을 못 이겨 봤을 텐데? 얌전히 있자, 우리 막둥이들.

—크흑.

—이 설움을…… 저 자식들한테 다 풀어 버릴 테다! 카젤 형 말대로 보이는 족족 죽일 거야아!

월차연차휴가는 길드 막내들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곤 뿌듯해하며 웃었다. 이렇게 먹이를 앞에서 흔들어만 줘도 눈빛을 빛내며 날뛰는 녀석들이다. 단순한 PVP면 몰라도 자진신고 녀석들이라면 완전히 뭉개 버리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것도 눈도 마주치지 못하도록 확실히.

—그걸로 되겠어? 아예 게임을 접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그동안 조용히 듣고 있던 리프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정령사 랭킹 1위 유저, 대장이라 칭해지는 멜로디가 월차연차휴가의 계획을 웃도는 공략법을 지시했다.

동시에 서버 전체에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리프 길드가 자진신고 길드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화끈하다! 우리 대장!

—이거지!

—설마 쪽팔리게 거절하지는 않겠지?

—에이 그럴 리가. 지들이 먼저 공격했는데 안 받을 리가 없지. 옳다구나 하고 수락할걸?

—근데 방금 너무 발려서 고민할 거 같은데요.

—가능성 있네……. 좀 살살 때릴 걸 그랬나? 아, 제발. 바로 받아 줘.

—걱정하지 마. 쟤들 무조건 받는다.

—왜요?

—월드 창 보면 알아.

걱정과 안도, 의아함이 뒤섞인 대화를 나눌 때였다. 월드 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월드] 모르는개산책: ㅁㅊ!! 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길드전 가나!

[월드] 아프니까아프리카: ㅈㄴ 기다렸닼ㅋㅋㅋㅋ 리프vs신고

[월드] Cocomon: 전쟁 선포에 줄로디의 빡침이 느껴지는 건 나만 그래? ㅋㅋㅋㅋㅋ

[월드] 내일의집: 코코님.. 돈 뜯기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심?ㅠㅠ 그러다 님 길드에도 전쟁 선포하면 우짤라고 그래;;;

[월드] Cocomon: ㅈㅅ;; 제가 잠시 정신이 회까닥했음; 정신 차려! 나님! @[email protected];;;

[월드] 렌지: 축의금 동지들이 여기 있넼ㅋㅋㅋ ㅅㅂ;; 웃안웃ㅠ

[월드] 무새는멈추지아나: 자진신고 빨리 수락 ㄱㄱㄱㄱ

[월드] 꼴에스벅오신: 근데 설마 자진신고ㅋㅋㅋ 포기하는 거 아니지? •ㅇ•?

[월드] 이주민받아라: 전쟁 포기하면 ㅈㄴ쪽팔린뎈ㅋㅋㅋ

[월드] 닥쳐슬럼프: ㅇㅇ나 같으면 얼굴 못 들고 다닌다ㅋㅋㅋ

[월드] 무새는멈추지아나: 자진신고 빨리 수락 ㄱㄱㄱㄱ

[월드] 무새는멈추지아나: 자진신고 빨리 수락 ㄱㄱㄱㄱ

[월드] 아무리: 얼굴만 못 들어?

[월드] 생강캐도: 게임도 못하짘ㅋㅋㅋ

[월드] 난마늘: 자칭 전섭 ★2위 공대★신데 포기할 리가????

[월드] 무새는멈추지아나: 자진신고 빨리 수락 ㄱㄱㄱㄱ

리프 길드가 가만히 있어도 유저들이 알아서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 싸움 구경이 아니던가.

—아유, 우리 구경꾼들 잘하네.

—와……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쪽팔리겠다. 평생 겁쟁이 타이틀 달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백 퍼센트 수락해요. 이런 취급 받고 얌전히 있을 놈들이 아니지.”

주하가 확신하는 순간 화면 가득 서버 알림이 떠올랐다.

<자진신고 길드가 리프 길드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좋았어!

—대장님, 쟤네들이 항복해도 절대 안 받아 줄 거죠?

—당연한 걸 뭘 물어? 멜로디가 게임 접게 만든다잖아! 쟤가 게임 접게 만든 유저가 몇 명인데. 게다가 수락을 누른 순간 이미 카운트 들어갔어. 버스 떠남!

리프 길드원들은 신나서 제자리서 폴짝폴짝 뛰었다.

길드전을 선포하고 상대가 수락하는 순간, 어디서든 공격이 가능한 전장으로 바뀐다. 안전 지역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마을에 있는 경비병조차 중립적으로 변한다. 쉴 수 있는 곳은 대도시와 던전뿐이었다.

길드전이 무서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대 길드의 동의 없이는 아무리 항복해도 전쟁을 끝낼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패배자는 필드를 포기해야만 했다.

—길드 경험치 싹 빼먹어 주마!

—쟤네 길드 레벨 떨어지면 깃발도 사용 못 하지? 그럼 라흐니스 아예 못 잡겠네?

—그것뿐이야? 다음 패치에 나오는 레이드도 못 하게 평판작도 방해해야지.

—오…… 다들 멜로디화되는 거다!

—우리 대장님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설렌다, 설레.

전쟁 중인 길드는 서로를 죽이면 상대방 길드의 레벨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전에는 길드 레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번 3.1 패치로 인해 무조건 4레벨을 유지해야만 했다.

다들 전의를 불태우며 무기를 꺼내 들 때였다.

길드에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길드 공지: 필드 나갈 때는 최소 3인 1조로 팀 꾸려서 나갈 것(PvP 템 착용) / 자진신고는 보이는 즉시 사살 or 제보 / 자진신고 다 접을 때까지 전쟁 유지]

주하는 길드 공지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선율 형이 말하는 대로 되는구나, 하고. 참고 외면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니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밟아 줘야겠다.

그때 리미티드와 월차연차휴가가 도착했다. 자진신고도 길드원들을 불렀는지 점점 인원이 늘어나고 있었다.

[월드] 천상검: 먼저 전쟁 선포한 거 후회하게 해 드림

[월드] 온별: 누가 무개념들 아니랄까 봐 얼굴 철판이 상당하네

[월드] 베르메르: ㅈㄴ 뻔뻔한 ㅅㄲ들

[월드] 살금: ㅅㅂ *밥들이 한번 이겼다고 기세등등이야

[월드] 개인주의: ㅋㅋㅋㅋㅋ 머라 ㅆㅂㄹ는 거지 >ㅅ<

[월드] 일시불: 말보단 행동이지 얘두라 (ง˙∇˙)ว

[월드] 월차연차휴가: 주둥이는 전섭 1위네ㅋㅋㅋㅋ

허세 부리는 자진신고 녀석들을 보며 리프 길드원들은 코웃음 쳤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클래스 랭킹 30위에 들어 놓고 뭐에 그리 자신만만한지 모를 일이었다. 레이드 던전 순위와 클래스별 랭킹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단순히 컨트롤이 좋은 것만으로는 올릴 수 없었다.

리프 길드원들은 최소 랭킹 10위 안에 꾸준히 들어와 있는 유저들로, 웬만한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노련함에 있어서 차이가 났다.

준비를 마친 리프 길드원들은 자신들보다 인원이 더 많은 적진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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