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80화 (80/130)

80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에 주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다니. 의아해하며 화면 속 캐릭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월드 채팅에 멜로디가 등장했다.

[월드] 멜로디: 자진신고 애들 지금 어디 있음?

[월드] 크리넥스: 앗ㅋㅋㅋ 추노 시작인가?! +_+

[월드] 띠부띠부씰: 옵저버 출똥!!

[월드] Cocomon: <링크: 지역> 여기요!!!

[월드] 내일의집: <링크: 지역> 여기도 있음!!

[월드] 라잌댓: ㅋㅋㅋ <링크: 지역> ㄱㄱㄱㄱ

[월드] 더워죽겠다: <링크: 지역>

멜로디의 질문에 곧바로 호응하는 유저들을 보며 주하는 허탈하게 웃었다. 싸움 구경이 재미있긴 하다만, 이렇게 유저들이 먼저 달려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월드 곳곳에 있는 특파유저들이 자진신고들의 위치를 보도해 준다면 일반 길드원들은 당하기 전에 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녀석들을 쫓는 것도 수월해질 테고.

[길드] 멜로디: 개주랑 스노우가 <링크: 지역> 여기 가 보고

[길드] 멜로디: 모기랑 월차랑 <링크: 지역> 여기

[길드] 멜로디: 리밋이랑 시불이는 <링크: 지역> 여기

[길드] 멜로디: 바나나랑 외계인 형은 <링크: 지역> 여기 가 봐

[길드] 바나나: ㅇㅋ

[길드] 지구침략: ㅇㅇ

[길드] 개인주의: 넵!! >.<

[길드] 멜로디: 애들 안 보이면 월챗으로 또 물어보고

[길드] 일시불: ㅋㅋㅋ역시 우리 대장님!

다들 배정된 구역으로 자리를 이동할 때였다. 자진신고 녀석들이 월드 창에 나타났다.

[월드] 살금: ㅈㄴ 비매너 짓 하네

[월드] 베르메르: 지들이 찾아다닐 생각은 안 하고 남한테 기생하는 꼬락서니 봐라ㅋㅋㅋ

[월드] 온별: 괜히 무개념 길드겠냐?

[월드] 개인주의: ㅇㅅㅇ?? 꼬와? 꼬우면 너네도 부탁해ㅋ 리프 길드원들 어딨어용? 하고 물어바바

[월드] 일시불: 일반 길드원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우리 발견하면 도망 다니는 것들이 입만 살았눼ㅋㅋㅋㅋㅋㅋ

[월드] 월차연차휴가: 우리가 너희를 얼마나 보고 싶으면 이러겠냐? 그러니까 도망 다니지 마 애들아 ^^ 보고 싶다고∼

[월드] 블랙체리: ^^ㅗ

[월드] 세렌디피티: 지들이 피해 다니면서 뭔 개소리ㅋㅋㅋ

[월드] 바나나: 그래? 그럼 다시 모여서 한판 할까?

하지만 늘 그렇듯 리프 길드원들의 반격은 통쾌했다. 바나나가 다시 만나서 싸우자 제안하니 자진신고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월드] Snow: 얘두라 대답 좀??? ㅇㅂㅇ??

[월드] 개인주의: 보고 싶다!!!! 얘두라!!!!!

[월드] 일시불: 저기요? 똑똑똑. 계세요? 쾅쾅쾅! 잠시만 나와 볼래요? 해치지 아나여!!

[월드] 월차연차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칠 거면서

[월드] Cocomon: ㅋㅋㅋㅋㅋㅋ 퇴장이 빠르네

[월드] 렌지: 자진신고 얘들아 <링크: 지역> 여기 개인주의랑 스노우님 지나간다! 빨리 텨!

[월드] 개인주의: 아낰ㅋㅋㅋㅋ 튀라고 알려 주면 어뜨케!!

[월드] Snow: 가서 없으면 렌지님 쫓아갈 거임 +_+ 내가 아니라 멜로디가

[월드] 렌지: ;;;;; ㅈㅅ

[월드] Cocomon: 렌지님;; 우리 몸 사려야 한다는 거 잊지 말라구;;;;

[월드] 렌지: ㅠㅠㅠㅠ

[월드] 렌지: 개인주의님 거기 큰 바위 뒤쪽에서 자진신고 애들이 몰래 포탈 타고 있어요!!!!

[월드] 개인주의: ㅇㅋㅋㅋㅋㅋㅋㅋ

[월드] Snow: ^^

[월드] 렌지: ;;

월드 창을 보며 주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자진신고 잡겠다고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저만 재미 볼 거냐며 멱살을 짤짤 흔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저렇게 망아지처럼 뛰노는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확신이 섰다.

“……난리네.”

허탈하게 중얼거리자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벼르고 있었거든. 이렇게 터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야.

“하긴, 전부터 사이는 안 좋았으니까.”

—전부터? 아…… 그거.

“그러고 보니까 왜 여태 그냥 뒀어? 화 안 났어?”

지난 시즌 레이드 때 리프 길드는 자진신고의 도발에도 그저 채팅으로만 싸울 뿐이었다. 보통 그렇게 감정싸움을 하다 보면 길드전을 신청할 텐데 조용하기만 했다. 자진신고는 자신들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그런다며 길드 창에서 한껏 비꼬았는데 말이다.

—별로 화 안 났는데.

“왜? 엄청 약 올리고 조롱했잖아.”

—그냥, 귀찮아서. 어차피 우리가 1등 할 텐데 지금 열심히 놀아 두라고 놔뒀지.

“이상한데……? 형 성격에 그럴 리가 없는데.”

—내 성격이 왜? 나 엄청 착해.

“양심은 언제 챙기려는지…….”

—형 못 믿어?

“응, 못 믿어. 그런데 그거 꼰대 멘트 아니야? 이상해.”

—꼰대라니, 나 아직 창창한데.

“창창한 나이에 그렇지 못한 말투가 문제인 거겠지. 어쨌든, 다른 이유는 없어?”

—흐음, 혹시 네가 있어서 그랬다는 대답 듣고 싶어서 그래?

순간 마우스가 미끄러져 캐릭터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다급히 원래 자리로 돌아온 주하는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외쳤다.

“무슨, 헛소리를 그리 창의적으로 해?”

—뭔가 다른 이유를 계속 찾길래, 혹시나 해서.

“내가 있는 거랑 안 싸우는 거랑은 상관이 없잖아. 형은 그때 카젤이란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을 텐데.”

—누군지는 알았지. 우리랑 열심히 싸울 때도 한 번을 나오지 않던, 그 어렵다는 보석술사로 딜 2위 하는 사람. 처음부터 흥미는 있었어. 이렇게까지 빠져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빠…….”

주하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좀 평범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건가? 항상 저 묘한 말투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아도 이럴 때마다 마음이 물렁물렁해져 버렸다. 혹시나 제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만약, 정말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본 적도 없는 사람한테 그런 마음이 드는 게 가능한가? 랜선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임은 알고 있지만, 우리 사이가 그렇게 될 일은…….

무엇보다도 둘 다 남자인데. 설마, 내가 괜히 부풀려 생각하는 거겠지?

주하는 고개를 흔들며 살짝 올라오려는 새싹을 밟아 버렸다. 그저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리는 걸 테니 괜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계속 듣다 보면 언젠가 적응하고 받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을 때였다. 어느덧 제보받은 위치에 다다르자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길드원들을 발견했다.

[길드] 선생: ;;; 길마님이다! 살려죠요;;

[길드] 장회장: 죽을 거 같아;;

[길드] 멜로디: 뒤 보지 말고 쭉 달려

피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길드원들을 본 멜로디가 곧장 탈것에서 내려 보호막을 둘러 주었다. 막타32)를 치기 위해 달려왔던 살금과 천상검이 그제야 카젤과 멜로디를 보고 멈춰 섰다.

겨우겨우 살아남은 길드원들은 멜로디와 카젤을 스쳐 지나가며 뒤쪽으로 쭉 내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서야 멈춰 선 그들은 재정비하며 멜로디에게 물었다.

[길드] 장회장: 길마님 우리도 합류해여?

[길드] 멜로디: 아니 풀파 만들어서 평작이나 하고 있어

[길드] 선생: ㅇㅇ;;;;

주하도 탈것에서 내려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살금은 은신 상태로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테고, 눈앞에는 천상검만이 양손 도끼를 들고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제는 떼쟁이라 특정 대상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레이드는 무조건 같이한다며 저를 안심시켜 놓고 마지막이 돼서야 못 하겠다며 말을 바꿨던 천상검. 그때 실친들이 길드 창에서 천상검이 가장 질 나쁜 녀석이라고 했던 이유가 아마 이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내칠 생각이었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나았을 텐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는 저를 가지고 놀았다. 3.1 패치를 앞두고 질질 끌다가 다른 레이드 팀에 갈 수 없다고 판단되자 그제야 통보하고 길드에서 퇴출시키지 않았던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보통 제 눈앞에 보이지 않길 바라지 않나? 참았다고 하기엔 그동안의 행동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곤란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살금이나 베르메르처럼 감정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신사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앞에선 깔끔한 척하고 뒤에서 조롱하는 천상검이 가장 음흉한 놈이었다.

주하는 코웃음을 치며 천상검을 노려보았다.

“형, 일대일 할까?”

—그럴래? 네가 천상검 맡을 거지?

“어, 저 자식은 내 손으로 죽여야 할 것 같아.”

—오…… 박력 봐. 반할 것 같아.

“여기서 더 반하면 곤란해요, 멜로디 님. 마음 가다듬으시죠.”

—매정하다, 우리 주하.

“걱정하지 마. 천상검한테 더 매정할 테니까.”

주하는 새로 바꾼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전에 쓰던 무기보다 화려함은 덜했지만, 상위 아이템이란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보란 듯이 무기를 휘두르자 천상검이 짜증 났는지 제게 달려들었다.

아직 팀원을 구하지 못해 토벌전도 못 가는 그에게 이 무기는 일종의 급소였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역린. 자신은 리프 길드에 들어가서 첫 주에 무기까지 바꾸었으니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그래서 어제 유독 제게 달라붙은 걸지도 모른다.

천상검은 돌진으로 카젤에게 달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그때, 갑작스레 뒤에서 살금이 나타났다. 그는 멜로디에게 기절을 걸어 놓고 천상검과 함께 카젤을 공격했다.

힐러가 해롱대는 사이 단번에 죽일 생각인가 본데,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주하는 스탠스를 변경했다.

“디버프 가져간다.”

—오케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