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대체 그 재미있다는 일은 무엇이길래 이러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주하는 닦달하는 멜로디를 이길 수 없어 결국 재료를 받았다. 가방에 들어온 값비싼 황금 알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데, 선율 형이 한 곳으로 자신을 불렀다. 도착하고 보니 눈앞에 아이템 강화 NPC가 서 있었다.
[파티] 카젤: 아이템 강화하게?
[파티] 멜로디: ㅇㅇ
[파티] 카젤: 그럼 형이 가지고 있어야지. 왜 나한테 줘?
[파티] 멜로디: 나 말고 너 하라고
[파티] 카젤: 헐?
[파티] 멜로디: 네 무기 월드 알람으로 강화 띄우자ㅋㅋ
주하는 멜로디의 계획에 짧게 감탄했다. 이런 방법이?
자진신고는 오전에 일어난 전투에서 한번 밀린 뒤 죄악의 탑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는 던전, 죄악의 탑, 토벌전, 그리고 오늘부터 아이돌뿐이었으니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토벌전은 아직도 마지막 인원이 모이지 않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인원을 모으려고 했다면 적어도 모집 스펙을 내리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건 또 자존심 상해서 싫은가 보다. 여전히 자진신고는 전섭 2위 공대를 내세우며 홍보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티] 멜로디: 마침 다 접속해 있으니까 지금이 딱이지. 어때?
[파티] 카젤: 새삼 다시 느끼는데... 형이랑 같은 편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파티] 멜로디: 같은 편 ㄴㄴ 넌 딜 노예 ㅇㅇ
[파티] 카젤: ...으응... 그래^^
[파티] 멜로디: ㅋㅋㅋㅋㅋㅋㅋㅋ
딜 노예든 뭐든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암. 주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화 NPC를 클릭했다.
[파티] 카젤: 나중에 재료 모으면 돌려줄게
[파티] 멜로디: 노예는 노예답게 딜이나 하시죠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강화도 노예답게 ㄱㄱ
노예답게 강화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이 형도 가만 보면 제정신 아니라니까? 주하는 그와 달리 자신은 정상이라며 철석같이 믿었다.
드디어 강화가 시작되었다.
무기를 올리고 재료와 골드도 올리니 강화 버튼이 활성화되었다.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버튼을 보고 있던 주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강화 운이 좋았지만, 오늘은 뭔가 그 운이 증폭된 기분이랄까?
게이머들에겐 일종의 ‘감’이라는 게 있는데, 주하의 경우 아이템 강화에 그 감이 대부분 몰려 있었다. 오늘은 되겠다, 오늘은 안 되겠다. 그런 느낌이 든달까?
오늘은 특히 그 감 중에 ‘된다’에 느낌이 빡 왔다.
주하는 마우스 커서를 버튼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다 넘실거리는 이펙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머뭇거림 없이 버튼을 눌렀다. 재료와 골드가 부서지며 가루가 되더니 그것들이 한데 모여 무기로 흡수되었다.
강화 중임을 알리는 화려한 빛이 일렁이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계까지 다다르자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수축했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때.
<카젤 님이 불타는 루비의 지팡이 20단계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폭발하듯 화면을 가득 채운 빛이 서버 알림과 함께 성공을 알렸다.
[길드] 개인주의: 헐??? 카젤 형???
[길드] 일시불: ㄷㄷㄷㄷㄷㄷ 무기 20강이라니!!!!
[길드] 바나나: 와... 무기 20강은 처음 아니야?
[길드] Snow: 빨라도 다음 주에나 나올 줄 알았는데;;;
[길드] 월차연차휴가: 개부럽다ㅠㅠㅠ
[길드] 지구침략: ㅋㅋㅋ 축하해 주하야
[길드] 리미티드: ㅊㅋㅊㅋ
[길드] 카젤: ㄱㅅㄱㅅ 이제부터 시작임
[길드] 여름n모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길드] 카젤: ㅇㅇ 방금 강화 첫 시도에 뜬 거에요ㅋㅋ
[길드] 개인주의: 미쵸따!!!!! 대박ㅋㅋㅋㅋㅋ
첫 시도에 바로 20강이라니. 솔직히 이 정도로 잘 붙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열 번은 실패할 줄 알았는데. 이러다 25강까지 올리는 건 아니겠지?
길드 창과 똑같이 경악하는 월드 창과 지역 창을 보며 주하는 슬그머니 입술을 말아 올렸다.
[파티] 멜로디: 첫 시도에 20강??ㅋㅋ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멜로디: 이렇게 보면 너랑 나랑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파티] 카젤: ...어울리다니??
누구랑 어울려? 나랑 형이? 형이 나랑? 당혹스러움에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데.
[파티] 멜로디: 너한테 없는 행운은 나한테 있고
[파티] 멜로디: 나한테 없는 행운은 너한테 있잖아ㅋㅋ
[파티] 멜로디: 악탑 게이트랑 아이템 강화^^
“……아.”
순간 오해할 뻔했다. 라나탈 썩은물한테 바랄 걸 바라야지. 슬그머니 빨라지는 심장을 느끼며 숨을 가다듬었다.
[파티] 카젤: 헛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파티] 멜로디: 응? 당황했어?
[파티] 카젤: 안 했거든요?
[파티] 멜로디: 침묵이 길었는데ㅋㅋ
[파티] 카젤: 강화 돌리는 중임
[파티] 멜로디: 실제로도 잘 어울린단 말 듣고 싶어서 그랬어?
[파티] 카젤: 강화 돌리는 중이라니까?
[파티] 멜로디: 그랬구나... 내가 너무 눈치 없었네. 미안
[파티] 카젤: 나 누구랑 대화하니...
이대로 또 말려들기 전에 주하는 냅다 강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서버 알림이 울렸다.
<카젤 님이 불타는 루비의 지팡이 21단계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파티] 카젤: 오......
[파티] 멜로디: ㅋㅋㅋ 강화 운 진짜.... 미쳤네;
서버 알림을 연속으로 울렸더니 사람들이 드디어 자진신고 이야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월드] 뿌엉이: 21강 무기에 맞으면 ㅈㄴ 아프겠지;?
[월드] Cocomon: ㅇㅇ 살살 녹을 듯ㅋㅋ
[월드] 왕자탄백마: 어뜨카냐 자진신곸ㅋㅋㅋㅋㅋ
[월드] 뱃살공주: PVP셋팅인데도 녹으려나???
[월드] 팀킬: 원래 PVP셋팅이라고 해도 무기는 레이드 무기 썼자나ㅋ 게다가 20강부터는 수치가 확 올라서 체감될걸?
[월드] 렌지: 그러고 보니 자진신고 라흐니스는 잡음?
[월드] Cocomon: 놉! 지금도 인원 모으는 거 안 보임?ㅋㅋㅋ
[월드] 렌지: 앗,,, 저런,,,,,,
[월드] 푸다다닥: 지금 전 서버에 라흐니스 잡은 팀 딱 5팀임ㅋㅋㅋ 광역 공격에서 못 넘어간다 그러던대? 피 모자라서ㅋㅋㅋ
[월드] 왕자탄백마: “아이템 강화하고 와라.”
[월드] Cocomon: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격차가 너무.....
[월드] 살금: 격차가 뭐?
[월드] 렌지: 앗! 자진신고 등장 +_+ㅋㅋ;;;;;
[월드] 베르메르: 누가 주둥이 함부로 놀리냐?
[월드] Cocomon: 저용! (^▽^)/
역시 자존심을 건드리니 자진신고가 반응해 왔다. 주하는 이때다 싶어 계속 무기 강화를 시도했다. 녀석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제대로 약 올려 주고 싶었다.
“제발 돼라.”
20강이랑 21강을 한 번에 성공했더니 이후 강화는 주춤했다. 펑펑 터지는 이펙트와 함께 화면 가득한 실패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솔직히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로 두 번 성공한 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거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계속 시도하는데, 역시나 강화의 신은 저를 버리지 않았다.
<카젤 님이 불타는 루비의 지팡이 22단계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길드] 개인주의: ㅇㅁㅇ!! 미쵸따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바나나: 와... 이 속도면 거의 10회 내외로 성공하고 있다는 뜻 아니야? 미쳤는데????
[길드] 일시불: ㅋㅋㅋㅋㅋ;; 너모하시네 ㅠㅠㅠ
[길드] 지구침략: 자진신고 애들 엄청 약 오르겠다ㅋㅋ
[길드] 월차연차휴가: 오! 그런 거라면 난 찬성이오!
[길드] Snow: 나도 찬성ㅋㅋㅋㅋ
[길드] 카젤: 그것 땜에 일부러 강화하고 있는 거죠ㅋㅋㅋ
[길드] 바나나: 그렇다면... 이건 백퍼 멜로디 계획이다
[길드] 여름n모기: 대장 계획 맞네...
[길드] 개인주의: 여기서 우리 대장님의 인성이...
[길드] 멜로디: ?
[길드] 개인주의: 멋지시다구요 (>Д<)ゝ
<카젤 님이 불타는 루비의 지팡이 23단계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길드] 바나나: 어...?
[길드] 월차연차휴가: ;;;
[길드] 개인주의: ......
[길드] 일시불: 형님... 쟤들만 약 올리시지... 우리까지 처참하게 발라 버리시믄.... 어뜨카라고.....
[길드] 카젤: 그게... 이상하게 계속 성공하네?;;;
[길드] 리미티드: ......
주하도 설마, 설마 했다. 지금까지 아이템 강화 운이 좋다고 자부하긴 했지만, 오늘처럼 대박인 건 처음이었다. 25회 강화 돌려서 네 번 성공이라니? 말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길드원들조차도 믿기지 않는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파티] 멜로디: 강화 몇 번 남았어?
[파티] 카젤: 음... 두 번?
[파티] 멜로디: 나머지 다 돌려 봐
[파티] 카젤: ㅇㅇ;;
이젠 자신도 이 운이 무서울 정도였다. 설마 두 번 남았는데 또 성공하진 않겠지? 24강은 성공 확률이 6%다. 말이 6%지 실제 유저가 느끼는 수치는 1% 이하였다. 그걸 두 번 만에 성공한다? 오늘은 무조건 로또를 사야 하는 날이었다.
주하는 다시금 재료와 골드를 넣고 활성화된 버튼을 응시했다. 일렁이는 오라를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강화가 성공할까 봐 두렵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드디어 강화 버튼을 눌렀다.
밝은 빛이 화면 가득 일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