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105화 (105/130)

105화

“허기져.”

칸막이가 있는 샤워실을 찬양하며 씻고 나온 주하는 평상에 길게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열량 소모가 상당한지 배 속에서 천둥이 치고 난리가 났다.

“배고프지?”

“어, 장난 아닌데.”

“매점에 분식 있으니까 먹고 나가자.”

“형도 떡볶이나 라면 같은 거 먹어?”

“……먹지 그럼?”

선율 형은 입맛이 까다롭게 생겨서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먹는 것에 크게 호불호가 없어 보였다. 거기다 음식도 잘 남기지 않았고, 군것질도 잘했다. 이렇게 보면 제가 더 까다롭게 보일 지경이었다. 다 잘 먹어도 양이 적었으니까.

그런데 지금만큼은 눈앞에 질긴 고기가 있어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빨리 먹으러 가자.”

주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선율의 등을 밀며 탈의실을 나섰다.

매점에 도착하자마자 5인분에 가까운 메뉴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속이 쓰릴 정도로 배가 고프니 매점 진열대에 있는 떡볶이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게 신기했는지 선율 형은 턱을 괸 채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도 다 보네.”

“응?”

“먹는 거에 크게 관심 없어 보였는데.”

“나도 배고프면 먹어.”

관심 없는 거랑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거랑은 다르지 않나? 어쨌든 입이 짧고 먹는 취미가 없으니 신기하게 볼 법했다.

어느새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 주하는 우선 라면부터 흡입하기 시작했다. 얼큰한 국물이 들어가자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듯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움직인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배고플 수 있나 싶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의자에 기대 만족스러워하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주하는 알림을 확인하고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개인주의: #카젤 형!]

[개인주의: #카젤 형!!]

[카젤: ㅇㅇ?]

[개인주의: 언제 들어와여? 지금 자진신고갘ㅋㅋㅋㅋ 머리 쓰고 있어여!]

[카젤: 금방 접속할 거야. 근데 무슨 일?]

[개인주의: 이 자식들ㅋㅋㅋㅋ 길드 새로 파는듯염 ㅇㅂㅇ]

[카젤: ?? 길드를 새로 판다고?]

[개인주의: ㅇㅇ 길드 포인트 못 올리니까 짜증났나바여]

[일시불: 신규 길드 명이 Team자진신고ㅋㅋㅋㅋㅋ]

[바나나: ㅋㅋㅋㅋ이름 개구렼ㅋㅋㅋㅋ]

[월차연차휴가: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Snow: 나도 빨리 들어가서 봐야겠다ㅋㅋㅋ]

주하는 어처구니없어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선율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형, 쟤네 길드 새로 만들었다는데?”

“상관없어. 똑같이 필드 못 나오게 하면 돼.”

“그러다가 잘못하면 학살자 되잖아.”

라나탈은 무분별한 PK36)를 막기 위해 길드전이 아닌 필드 싸움에서 유저를 죽일 때마다 킬러 포인트가 오르도록 만들었다. 이 포인트는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학살자 칭호를 달게 되는데, 그 순간 서버 전체에 알람이 뜨며 학살자의 위치가 표시되고 현상금 퀘스트가 주어진다. 보상으로는 전장 포인트와 골드, 랭킹 포인트를 주고, 반대로 학살자 유저는 세 가지 모두가 줄어든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웬만큼 또라이가 아니고서는 학살자를 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율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다 방법이 있지.”

“무슨 방법?”

“직접 보여 줄게,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율을 따라 주하도 일어섰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있던 그릇을 보았는데, 언제 다 먹었는지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분명 제가 먹은 건 라면 하나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은 튀김 몇 개가 다였다.

주하는 저도 모르게 선율의 배로 시선을 주었다. 납작해 보이는 배에 더 놀라고 있을 때 선율이 물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거기서 더 들어가?”

“하프갤런도 될걸?”

“혼자?”

“나 그렇게 많이 안 먹었어. 분식은 양이 적으니까 인분으로 따지면 안 돼.”

“……으응, 그래.”

방금 먹은 건 선율 형에게 어림도 없는 양이었다. 이제는 제가 익숙해져야 할 때인가 보다. 주하는 득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치우고 느긋하게 수영장 밖으로 나섰다.

***

사사게는 자진신고와 리프,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신나게 싸워 대고 있었다. 스크린 샷과 영상이 정말 조작됐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며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잘 보면 대부분 리프 길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큰 몫을 한 건 벌꿀오소리가 찍은 천상검과의 대화 영상이었다. 한자리에서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닌 터라 채팅 배경이 자주 바뀌는데 그걸 일일이 편집할 리가 없다는 거였다. 물론 그마저도 가능하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은 천상검이 올린 감정서를 추적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있는 회사이니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사게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고, 그에 따라 서버 월드 창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대부분의 유저가 방관자 모드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도와주지도, 그렇다고 괴롭히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것이 현재 라나탈 1섭의 상황이었다.

<길드원 멜로디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원 카젤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 카젤: 안녕하세요 ㅋㅋㅋ

[길드] 멜로디: ㅎㅇ

[길드] 바나나: 요즘 맨날 둘이 같이 온다?

[길드] 개인주의: 어서 오세용! ㄹㅇ 동접하시는득! ㅇㅁㅇ

[길드] Snow: 매일 만나는 거 아냐?ㅋㅋ

[길드] 여름n모기: 그럴리가;; 길마 얼굴은 우리도 보기 힘든데;;;

[길드] 일시불: 형 누나들도 게임만 하자나여;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게임에서만 보면 대찌

[길드] 멜로디: 걔네는 길드 다 옮겼어?

길게 이어지려던 수다는 멜로디의 한마디로 종결되었다. 단톡방에서 주하를 불렀던 개인주의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길드] 개인주의: ㅇㅅㅇ 다 이동했어여. 기존에 있던 길드는 부캐한테 길마 넘긴 거 같던데여?

[길드] 멜로디: 총 몇 명?

[길드] 개인주의: 15명 되겠슴다!

[길드] 바나나: 많이 빠져나갔어ㅋㅋㅋ

[길드] Snow: 길드 바꾸면 못 건드릴 줄 아나 본데? ㅋㅋㅋㅋ

[길드] 일시불: 우리 대장님을 몰로 보고!

[길드] 지구침략: 선율이가 하던 짓을 우리가 하게 될 줄이야...

[길드] 월차연차휴가: ㅋㅋㅋ 계인 형 자신 없으심니까?

[길드] 지구침략: 사실 궁금해서 해 보고 싶었어^^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하는 길드 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심드렁하게 화면을 보고 있던 선율이 시선을 느꼈는지 주하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편법이 있지.”

선율은 주하와 팀원들을 공격대 창으로 초대했다. 옳다구나 초대받은 팀원들은 잔뜩 들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길드] 카젤: 왠지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길드] 개인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답입니다!

[길드] 카젤: ㅡㅡ;;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길드] 바나나: 너도 보면 아∼ 할걸?

[길드] 월차연차휴가: ㅋㅋㅋㅋ 좀 힘들긴 한데∼ 리프 딜러라면 성공시켜야 함!

[길드] 리미티드: 형도 해본 적 없으면서요?

[길드] 월차연차휴가: 난 무조건 성공하기 때무니지!!

[길드] 일시불: ㅋㅋㅋㅋㅋ 넉백은 쓰면 안대는 거 알져? ㅇㅅㅇ

[길드] 월차연차휴가: 후... 그런 기초적인 걸 내가 모를 리가?!

대체 라나탈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거지?

주하는 그동안 사사게나 자유게시판을 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나중에 게시판에서 멜로디를 치고 쭉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리프는 Team자진신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서 천상검과 그 무리가 평판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머리 위 아이디는 수동으로만 공격이 가능한 노란색 이름표로 바뀌어 있었다. 길드전 할 때는 붉은색이라 바로 공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강제 공격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리프 팀원들은 녀석들에게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일반] 살금: 이ㅅㄲ들 제정신인가?

[일반] 개인주의: 왜 도망가써! 왜에!! 보고 시퍼짜나!! ㅠㅠ

[일반] 살금: 아 ㅅㅂ

[일반] 일시불: 안녕 얘두라!!! 길드명 머찌다 ( ͡°Ɛ ͡°)

[일반] 바나나: 싸우다가 그렇게 길드 바꾸면 어쩌니ㅋ

[일반] 월차연차휴가: 그러니까 더 쫓아가고 싶어지자나 ^^

[일반] 천상검: 적당히 좀 하지?

[일반] Snow: 뭘 적당히 해? 싸움 더럽게 만든 건 니네들이면서

[일반] 베르메르: 증거 조작한 ㅅㄲ들이 말 많네

[일반] 개인주의: 아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벨멜이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일찍 눕고 싶구나! ㅇ.< 찡긋

자연스럽게 리프 길드의 첫 번째 공격 목표는 베르메르가 되었다. 힐러에게 침묵을 걸고 탱커들을 멀리 밀어 버린 주하는 일단 팀원들이 하는 걸 구경하기로 했다. 분명 편법을 사용한다고 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다른 녀석들을 견제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잠시 사라졌던 지구침략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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