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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129화 (129/130)

129화

—……이 하이에나들이?

—우리 빼고 만나는 건 무효! 무효입니다!

—정모 아니라고 이놈들아! 그리고 너희들은 나한테 두루마리도 안 주면서?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나면 무조건 달려갈 거예요!

—카젤 형님, 기왕이면 참치나 회로 부탁드립니다. 요즘 날 게 당기네요.

“그럴까?”

주하가 긍정하자 Snow의 한숨은 깊어졌다.

—참 나…… 마음대로 해라, 해.

—으하하하하! 그날을 기다리며 힘내서 강해지겠습니다!

곧 있을 비공식 모임을 떠올리며 리프는 다시 옵션 뽑기에 집중했다. 주하는 남아 있던 두루마리를 Snow에게 건네고 추가 요청에 따라 경매장에 있는 두루마리도 사다 바치고 있었다. 팀원들도 모자랐는지 모두 경매장 앞에 모여서 구매하고 옵션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다.

경매장에 있던 두루마리를 죄다 리프가 사들이고 있으니 판매하던 유저들은 물론이고 구매하려던 유저들까지 과다 경쟁에 휘말린 것이다. 전자는 기쁨의 환호성을, 후자는 치솟는 가격에 눈물을 흘렸다.

[지역] 창고캐릭1: 누구십니까? +_+ 대체 어떤 회장님이시죠?

[지역] 두유금고: 방두 직거래 가능합니다!!!

[지역] 7거억: 아니;;; 대체 두루마리를 누가 이렇게 사가는 거야?;;; 가격 미친 거 아님? 10분 만에 두 배로 뛰었네?;

[지역] 블랙얍쿤: 경매장 보다가 졸도할 뻔;

[지역] 차아앙고오오: 방두 ㅍㅍ 30개 보유! 개당 천 골! 거래주세요!

[지역] 뜨거운민초: 헐? 방두가 개당 천 골이라고????

[지역] 차아앙고오오: 쿨거래 감사함미다 ^0^

[지역] 블랙얍쿨: 엥? ㄹㅇ팔림???

[지역] 차아앙고오오: ㅇㅇ 우리 리프 회장님들 난리나셨음!

[지역] Cocomon: 잉? 리프?

[지역] 렌지: 리프??? 줄로디님 계시는 그곳?

[지역] 차아앙고오오: ㅇㅇ거기

[지역] Kov: ...지금인가? 지금이 방두를 팔 때인가!!

[지역] Roou: 팔 생각하지 말고 너부터 스펙업이나 해;;

구매하는 이들이 리프라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서버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아직 퍼클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리프가 방어구 두루마리를 싹쓸이하고 있다? 레이드가 얼마나 힘들지 어렴풋이 짐작 가능한 소식이었다.

그런 난리통에도 리프는 우직하게 두루마리를 사용하며 아이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식을 들었는지 벌꿀오소리에게 연락이 왔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니!!!!! 지금 방두 싹쓸이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야????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놔!!! 우리도 지금 그 얘기 하고 있었는데!

[귓속말] 카젤: 저런... 조금 늦었네? ^^

[귓속말] 벌꿀오소리: ㅅㅂ;;; 개당 천 골이라니;;;;

[귓속말] 카젤: 지금은 1100골임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야!! 그만 사!

[귓속말] 카젤: 아니네... 1200골이네?

[귓속말] 벌꿀오소리: ......

저 멀리서 부랴부랴 달려오는 벌똥 길드원들이 보였다. 주하는 흐뭇하게 웃었다.

“별똥에서도 두루마리 사러 나왔네요.”

—진짜?

“옆에 있잖아요.”

어느새 경매장 앞에 별똥 길드원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아이템 수리도 못 했는지 내구도가 바닥을 보이는 게 똥줄이 탄 듯했다.

“와, 1,300골까지 올라갔네. 이러면 사는 것보다 랜덤 박스 돌리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요?”

—맞아. 이 가격으로 사는 건 이제 적자지. 차라리 랜박 굴리는 게 나아. 충전 좀 해야겠다.

지구침략을 필두로 이번엔 모두 숍에 들어갔다. 리프 머리 위에 장바구니 아이콘이 둥둥 떠 있자 그것을 발견한 별똥 길드원들이 한탄을 쏟아 냈다.

[일반] 응꼬에모양깍지: ㅠㅠㅠㅠㅠ아니 이분들.... 방두 가격 다 올려놓고 랜박 돌리러 가셨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반] 벌꿀오소리: 아오!!!!!!!!! 얄미워!!!

[일반] 항문의영광: ㅠㅠㅠㅠㅠㅠ 늦은 우리가 죄인이다...

[일반] 카젤: ㅋㅋㅋㅋ ㅈㅅ

숍을 정신없이 쓸어 버리고 있을 팀원들을 대신해 주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더 늦기 전에 별똥 길드도 숍에 들어갔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장바구니 아이콘을 머리에 띄우고 있는 걸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들을 한참 구경하다가 더는 할 게 없어지자 고개를 돌렸다.

계속 조용한 선율이 뭘 하나 싶어 슬쩍 화면을 보는데, 경매장에서 새로고침을 누르며 무언가가 올라올 때마다 재빠르게 구매하고 있었다.

“형, 뭐 해?”

주하가 묻자 선율은 가방을 열어 보여 주었다. 그 안에는 아이템 강화에 사용되는 아드룬이 쌓여 있었다.

“이거 사고 있어.”

거래할 수 없는 아드룬은 이미 다 사용한 후였다. 이제 구할 수 있는 곳은 경매장뿐이었다. 주간 퀘스트로 받는 희귀 재료라 물량도 부족할뿐더러 가격도 상당했다.

선율이 시간 날 때마다 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개당 얼만데?”

“만 골?”

“만 골? 가방에 있는 20개 전부 다?”

“그렇지? 레이드 나와서 더 비싸졌어.”

주하는 황당해하며 선율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에도 주하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강화 한번 하면…… 40만 골이 사라지는 거야?”

“뭐, 이론상으로는.”

“…….”

이런 게 진정한 플렉스구나.

수영장이랑 헬스장에서 평생회원으로 카드를 긁는 것보다, 게임 내에서 골드를 팍팍 쓰는 게 더 대단해 보이다니. 자신도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알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답이 없다는 소리다.

“너랑 나는 스펙업할 방법이 강화밖에 없잖아.”

“……그렇긴 해도.”

“마지막 보스에서 우리가 부족했던 건 아이템이었어. 오랜만에 스노우가 잘 생각했지.”

—오랜만이라니. 거, 막말하시네!

보이스 채팅에서 듣고 있던 Snow가 투덜거렸지만, 선율은 한 귀로 흘려보냈다.

“성기사는 크리티컬이 1순위 옵션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앞으로는 가속도를 중요하게 봐야 해. 세팅하고 나면 확실히 Snow 반응 속도가 차이 날걸? 그럼 죽는 애들도 없겠지.”

—뭐야, 웬 칭찬이지? 괜히 불안하네?

“불안할 게 있나? 퍼클이 곧이라는 소린데.”

—…….

“어쨌든, 다른 애들도 옵션 올리고 있으니까 우리도 업그레이드나 하자. 나도 여유가 생기면 스노우를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수월할 거야.”

그렇게 말한 선율은 창고로 가서 모아 두었던 아드룬을 꺼내 와 주하와 반으로 나눴다. 무기를 강화하는 건 아직 무리고, 방어구 쪽에서 스탯을 올려보기로 했다.

“그럼 강화의 신, 강주하 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주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정말로 웃음이 터져 버렸다.

팀원들이 노력하는 만큼, 공대장인 그도 제대로 보답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술렁였다. 역시 ‘멜로디’는 믿고 따르고 싶은 ‘대장님’이었다. 누구와는 너무 달라서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예, 대장님. 그럼 가 보실까요?”

언젠가 선율 형이 천상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했는데, 저야말로 인사하고 싶었다. 자진신고 길드에서 추방해 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리프에 올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말해 주고 싶었다.

“주하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건 처음 같은데?”

“대장은, 대장님이니까.”

—맞습니다! 대장은 대장님이죠!

개인주의의 맞장구에 주하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바나나가 말했던 어렵다는 뜻의 ‘대장님’도 맞는 말이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에 가까울 것이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호칭은 아마도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선율 형이 최고야.’

또다시 콩깍지가 씌는 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주하만이 만족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

방어구 옵션을 최상급으로 맞춘 딜러들과 능력치를 아예 리셋시킨 Snow는 확실히 전과 달랐다.

몇 번 트라이를 하고 나서 느낀 건 ‘되겠다’라는 확신이었다. 이전에는 막막함이 컸지만, 지금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카젤이 정신 지배당해도 팀원들이 죽지 않으니 확실히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개주 살렸고.

—여유 있네요, 눈 누나!

—보이는 거만큼 쉽지는 않거든? 빨리 좀 잡아 봐.

—……죄송, 저희도 쉽지 않네요.

그렇다고 아스모덴이 만만한 건 아니었다. 10%로 떨어지자 밟아서 없애야 하는 장판이 하나 추가되었다. 랜덤 위치에서 나오는 터라 차라리 캐릭터 두 개를 조종하는 게 쉬울 것 같다며 막내들은 투덜거렸다. 적응도 적응이지만, 운도 필요한 기믹이었다.

—시불아! 왼쪽! 네 왼쪽에 장판 나왔어!

—으아악! 밟으러 갑니다아아!

—가는 길에 창은 피해라.

—디버프 생겼다. 각자 버프 확인해!

—유령도 나왔어요!

—정배는 얼마나 남았어?

—5초요.

화면처럼 보이스 채팅방도 여유 따윈 없었다. 쏟아지는 기믹에 눈이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주하도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트라이만 30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도 뻑뻑하고 손목은 아리고, 잔뜩 긴장했다가 풀리길 반복하는 신체도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일명 ‘각성제’라 불리는 에너지 드링크를 몇 잔은 원샷한 기분이었다. 팀원들 모두가 그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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