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8)

4.

  

  여지운과 선연홍. 선연홍과 여지운. 두 사람은 손안에서 굴려지는 뜨거운 감자였다. 바에 출입하고 있지 않아도 관심의 대상이고 소문의 중심지였다. 한 달, 두 달. 두 사람이 연애한다는 소문이 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오래전부터 왕좌를 지키던 제왕 여지운과, 그 제왕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미남자. 

  내놓으라 하는 탑 둘이 붙어먹었다는 소리와 함께 시작 됐던 내기는 점점 판돈을 불려 나갔다. 술, 담배, 돈. 심지어 섹스까지 내기의 조건으로 굴러다녔다. 선연홍은 여지운이 이제껏 만났던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여지운은 보통 연애보다는 원나잇이나 섹파를 더 자주 만들었고 그들에게서 따지는 것은 단 하나였다. 몸, 혹은 속궁합. 얼굴은 보지 않느냐는 물음에 ‘내가 잘 생겼으니 됐다. 남의 얼굴 같은 거 알게 뭐냐.’라는 대답은 아직도 회자 됐다. 취향이랄 게 특별히 없는 잡식이긴 하지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쪽을 선호했다. 그게 더 맛이 더 좋다나? 얼굴도 안 따져, 몸매도 그렇게 신경 안 썼던 게 무색하게 지금 애인은 얼굴도 몸매도 지나치리만큼 완벽했다. 여지운이 아니어도 금방 누군가와 교제할 수 있을 정도로. 

  요즘 여지운이 바쁘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빨리 헤어질 것이라는 쪽에 판돈이 더 걸렸다. 그는 바쁠수록 짜증이 늘어났다. 게다가 그 짜증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일이 몰리는 연초와 연말에는 거의 100% 확률에 가깝게 쫑났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지운이 선연홍에게 막 대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사람들은 이제 여지운이 선연홍에게 차였다는 말이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내기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이 올해를 넘길 거라는 데에 건 사람은 백선우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수의 바람과 다르게 선연홍은 여지운을 참아내고 견디고 있었다. 여지운이 그 어떤 패악을 부리고 지랄을 해도 그저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 하는 얼굴로 오히려 여지운을 위로하고 다독였다. 

  

  * * *

  

  크리스마스가 이틀 남은 12월 23일. 여지운은 일찌감치 연차를 냈다. 공휴일인 25일을 제외하고 24일, 26일 이틀. 그러니까 24,25,26일 내리 3일을 쉬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선연홍이 픽업에서부터 장소선택, 음식점 선택 등 모든 것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지운이 미리 다 짜 놓았다. 

  “음, 아무래도 와인이나 샴페인을 사야겠지?”

  그는 요새 자신이 선연홍에게 얼마나 멋대로 구는지도 알고 있었다. 알고만 있을 뿐이지만. 그러니까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정말 홍콩에 보내줄 작정이었다. 물론 몸은 한국, 호텔에 있겠지만, 머릿속은 홍콩을 누비는 것처럼 황홀하게 해 주면 되잖아.

  야경이 좋기로 소문난 호텔을 예약했다. 역시 사흘간이었다. 결제 창에 카드 번호를 넣는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결제 문자가 왔을 땐 나름 돈에는 박하지 않은 여지운조차 아주 살짝 후회했다. 좀 비싸야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선연홍이 정말 헤어지자고 할 것 같았다. 아직 뭘 제대로 해 본 것도 없는데……. 정확히는 섹스도 못해봤는데 벌써 헤어지는 건 안됐다.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미리 말해 놨기 때문에 여지운이 미련 없이 일어섰다.  

  “팀장님, 메리 크리스마스! 잘 쉬다 오세요.”

  인사하는 팀원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선연홍에게 연락했다. 

  -선연홍씨. 오늘 언제 옵니까?

  문자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왔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 선연홍씨, 언제 도착합니까? 사실은 내가…….”

  그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사실 선연홍에게는 크리스마스 계획을 얘기하지 않았다. 나름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분위기 좋은 바에서 술을 마시고,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은 뒤, 야경 좋은 호텔에서 온종일 뒹굴 예정이었다. 사흘 내내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선연홍의 예쁘장한 얼굴이 눈물범벅 되고, 애원이 나올 정도로 박아 줄 생각이었다.

  [음…….]

  곧바로 응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짧은 침묵 뒤 내뱉은 목소리에는 곤란함이 담겨 있었다. 

  [지운씨, 사실은 오늘 저녁에…….]

  

  *  *  *

  

  여지운이 체크인과 함께 룸 키를 받았다. 선연홍이 올 때까지 눈이나 붙일까 했지만 그만뒀다.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기념일을 챙기는 성격이 아닌데도 하룻밤에 이백만 원 가까이하는 방을 예약할 만큼 이번에는 신경을 썼다. 여지운은 제 성격이 군말 없이 받아주는 선연홍이 신기했고, 나름 고마웠다. 

  좀 전 통화에서 선연홍은 곤란한 목소리로 선약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가족 행사라고 하는데 차마 빠지라고 할 수 없었다. ‘끝나면 11시쯤 될 것 같은데 그때 볼까요.’ 하는 말에 알았다고 대답하며 호텔 주소를 찍어 줬다. 어차피 8시쯤 볼 생각이었으니 고작 3시간 뒤에 만나는 건데도 왜 이렇게 짜증 나는지 모르겠다. 거듭 되는 선연홍의 사과에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남는 시간 뭘 하면 좋을지 여러 생각을 하다가 결국 호텔에 미리 가 있기로 했다. 룸에 올라가려다 발길을 돌려 지하로 내려갔다. 

  [BAR EVEN]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재즈 음악이 느리게 흐르는 바 안은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여지운은 구석에 앉아 넓적한 유리잔에 얼음을 몇 개 넣고 그 위로 술을 따랐다. 졸졸졸. 쏟아지는 액체를 온몸으로 받은 얼음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알싸한 냄새와 함께 입안에 가득 찬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배 속에 뜨거움이 확 번졌다.  

  선연홍이 딱히 잘못을 한 건 아닌데 바람맞은 기분이었다. 

  “후우,”

  꽉 차 있던 술병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주를 시켜 놓긴 했지만,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자 시야가 흔들리고 몸이 늘어졌다. 원래 술이 약한 편은 아닌데 연거푸 마신 탓이 큰 듯했다. 흐느적대며 시계를 내려 보자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었다. 11시에 온다던 선연홍은 소식이 없었다. 테이블에 엎어진 휴대폰을 봤지만 역시 아무 연락도 없었다. 느릿하게 흐르던 재즈 음악은 어느새 라이브 밴드 연주로 바뀌어 있었다. 귀를 꽉 채우는 음악으로도 풀리지 않을 만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뺨이 화끈댈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술을 마셨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여지운의 손이 다시금 술병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봤을 때는 새벽 1시 2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하, 씨발.”

  내뱉는 숨에는 잔뜩 뭉친 욕설과 독한 술 냄새가 가득했다. 머릿속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금 속을 뒤집어 보면 술이 아니라 짜증과 화로 가득할 것이다.

  여지운이 얼음도 넣지 않은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들이켰다. 화끈대던 식도는 이제 무감각 해 졌다.

  진짜 기분 더럽네. 여지운 혼자 멋대로 준비하고 당일 통보했다. 선연홍도 사생활이 있을 것이고 거절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여지운에게 맞췄다. 하도 많아서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였다. 헌신적, 열정적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사다 바친 물건들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게 더 컸다.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다 풀어도 됩니다.’ 하고 말하던 선연홍의 얼굴엔 진심이 가득했다. 심지어 쌍욕까지 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풀리면 그렇게 하라고 고요한 미소를 지으면서, 홍조를 띄웠다. 선연홍의 눈동자에는 온통 다정하고 상냥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때로는 알 수 없는 반짝임이 있었지만, 부정적인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름을 붙이자면 설렘과 들뜸 같은, 흥분한 것 같기도 했……고? 

  음? 뭐지? 흥분? 여지운이 머리를 흔들었다.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 내는데 흥분할 이유가 어딨어. 그 남자가 변태도 아니고. 아무래도 빈속에 술을 퍼붓다 보니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들었다. 별, 이상한 생각들이. 

  이제껏 여지운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몇 시간 늦는 건 애교에 가까웠다. 하지만 자꾸 욕이 비어져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씨발, 바람을 맞혀? 나를?

  “지운씨.”

  너무 화가 나면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까. 여지운은 제게로 뛰어오는 남자를 멍하니 봤다. 그는 얼마나 급하게 뛰어 온 것인지 이 날씨에 이마에는 땀이 방울방울 져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는 겨울바람이 잔뜩 묻어 있고, 가쁜 숨 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선연홍은 미안함이 그대로 드러내며 여지운 앞에 섰다. 

  “선, 후……. 선연홍? 술에 취하니까 헛것이 보이나.”

  ‘헛것’으로 치부된 남자는 여지운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에 가만히 웃었다. 여지운이 턱을 괸 채 선연홍을 올려 보았다. 살짝 내리뜬 눈과 짧게 내뱉는 숨 같은 것들에는 불편한 기운이 다분했다. 

  “술 마셨습니까?”

  “아이고, 이게 누구야. 선연홍씨,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이 시간에 다 오시고. 하하, 기분 진짜 좆같네. 연락도 없이 이렇게 바람을 쳐 맞히시네요.”

  말린 혀끝에서는 싸한 술맛이 느껴지고 눈두덩은 뜨거웠지만, 여지운은 애써 멀쩡함을 가장했다.

  “미안합니다.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급하게 오다 보니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 접촉사고가 나셨어요? 변명하려면 그럴싸한 걸로 하든가. 접촉 사고란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분노는 충동질했다. 평소라면 이해하고 넘겼을 일까지도 크게 다가왔다.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지운씨 화가 풀리겠습니까? 원하는 거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꿇어.”

  “예?”

  선연홍이 눈이 커졌다. 당황이 어린 얼굴이 여지운에게 미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안 들려?

  “꿇, 후……. 꿇으라고.” 

  말끝이 뭉개졌다. 여지운이 놀란 얼굴의 남자를 비웃었다.   

  “미안하다며. 거짓말 이었나?”

  “아니오, 미안합니다.”

  “말만으로 됩니까? 그걸로 다 될 거면, 법이 왜 있어. 행동으로 보여야지.”

  “…….”

  계속되는 막말에도 선연홍은 화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여지운을 보고 있었다.

  “하, 존나 멀뚱히 있네. 싫다는 거네. 그럼…….”

  벌어진 입은 아무 말이나 쏟아 냈다. 사실 여지운도 그냥 지껄인 거였다. 부글대는 분노를 쏟아 내고 싶은 순간 마침 그 대상이 앞에 있을 뿐이었다. 쓰고 독한 술은 여지운의 머릿속도 육체도 다 추락시켰다. 턱을 괴고 있는 손이 엇갈리며 고개가 자꾸 떨어졌다. 피곤하다. 뭐든 좋으니까 빨리 자고 싶다. 

  “그럼 말든지.”

  룸으로 가기 위해 일어서려던 여지운이 그 자리에 멈췄다. 

  “……어?”

  여지운의 시선이 제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에게 향했다. 질 좋은 천에 감싸인 선연홍의 양쪽 무릎이 천천히 바닥에 닿았다. 되레 놀란 것은 말을 내뱉은 여지운이었다. 술기운에 푹 젖은 눈동자가 당황스럽게 깜빡였다. 

  “지금 뭐…….”

  뭐합니까? 어두운 조명 아래의 머리카락은 반짝반짝 빛났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두 사람을 힐끔거리던 사람들 틈에서도 웅성거림이 흩어 나왔다. 술을 마시고 있던, 라이브 밴드 음악을 듣던, 각자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오만한 얼굴의 남자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에게.

  “지운씨, 미안합니다, 화 풀어요.”

  “아니…….”

  “지운씨.”

  주위의 웅성거림은 노랫소리를 뚫을 정도로 커졌지만, 선연홍은 묵묵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잘못을 말했다. 자신의 연인이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여지운은 여지운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여기서 제일 놀란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그일 것이다. 화도 나고 피곤해 그냥 되는대로 내뱉었는데 설마 정말로 꿇을지는 몰랐다. 순간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보는 줄 알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여기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오바 같은데. 보통 이 정도까지 하나 생각하면서도 우습게도 화가 가라앉았다. 배를 드러내고 항복을 하는 개처럼 납작 엎드린 모습을 보니 유쾌했다. 누가 봐도 잘난 사내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여지운을 흥분시켰다. 뿌듯한 고양감이 술에 절은 머리를 두드렸다. 개새끼 같긴 하지만, 개새끼건 뭐건 알게 뭔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후우.”

  선연홍은 명령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꿇은 무릎을 펴지도 숙인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고개, 들어.”

  굴욕적이고 순종적인 얼굴, 아주 좋았다. 저기에 정액 싸질러 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여지운이 입매를 비스듬히 올린 채 그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이리 와.”

  영원히 멈춰 있을 것 같은 무릎이 조금씩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선연홍의 바지는 바닥에 쓸려 먼지로 엉망일 것이다. 여지운이 손가락이 어느새 바짝 다가온 선연홍의 뺨을 쓸었다. 매끈하고 탄력적이다. 애무하듯이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을 받은 선연홍의 광대 부근이 발갛게 물들었다. 검은 눈동자는 벽에 달린 색색의 전구 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착하네. 지금 엄청 말 잘 듣는 개, 같아.”

  후, 흔들리는 숨을 내뱉으며 손끝으로 선연홍의 턱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 보면 모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손길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딱히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얌전히 들리는 턱은 여지운을 향한 그의 감정이었다.

  샛노란 정복감은 여지운의 입술을 끌어 올리고 만족하게 했다. 좋네, 좋아.  

  “지운씨가 원한다면 뭐든지요.”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줘야 하는 법이지. 여지운이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눈앞이 흐려지고 빙글 돌았다. 짧은 시간에 급하게 퍼부어서 그런지 머리끝까지 알코올이 들어찬 기분이었다. 

  순간 발이 엇갈리며 몸이 휘청댔다. 

  “지운씨.”

  자리에서 일어선 선연홍이 제게로 쏟아지는 여지운을 어렵지 않게 받아 안았다. 그의 품에서는 알싸한 겨울 향기가 났다. 여지운은 이 차가운 남자가 제게는 선명한 봄 같이 구는 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괜찮아요?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일어나요, 데려다 줄게요.”

  홀씨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집……. 그래. 가긴 가야지.” 

  흐리게 뜬 눈으로 여지운이 중얼거렸다. 옆에 선 선연홍이 그의 어깨를 잡고 부축했다. 

  “야, 어깨.”

  “아팠어요? 미안합니다.” 

  옷 위로도 느껴질 정도로 강한 악력이 어재운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얼굴을 찌푸리자 선연홍이 순순히 사과했다. 하지만 손가락들은 여전히 강한 힘으로 여지운을 움켜잡은 채였다. 

  “천천히, 업힐래요?”

  순수한 걱정이 담긴 얼굴을 보며 여지운이 비웃었다. 여기서 데려다 주겠다니. 신사 아니면 병신이네. 호텔까지 부른 거 보면 대충 각 나오지 않나. 순진한 척을 하는 건가, 아니면 고자? 답답한 새끼. 

  줘도 못 먹는 새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걸 먹는 건 자신일 테니까.  뺨이 발그레한 게……. 되게 맛있겠네. 

  “여기 호텔. 방, 잡아 놨는데.”

  여지운이 선연홍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의 입술은 쏟아내는 숨까지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귓구멍 가까이 붙었다. 혀 끝에 닿은 바짝 선 솜털을 살짝 핥았다. 사나운 눈매가 휘어지며 농밀한 유혹이 달랑달랑 매달렸다.  

  올라가. 

   

  * * * 

  

  여지운은 섹스를 좋아했다.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조절했지만 스물 초중반에는 그야말로 좆이 문드러질 정도로 뒹굴었다. 플라토닉, 정신적 사랑이 어쩌고. 그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아니었다. 섹스, 육체적 쾌락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좋은 걸 왜 안 하겠다는 건지. 정신적인 충족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육체의 절정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에 아랫도리를 걸 수도 있다. ‘손만 잡고 잘게.’ 같은 건 그야말로 개소리고요.  

  물론, 선연홍을 만났던 지난 두 달은 고자로 지냈다. 회사가 바빴던 이유도 있지만, 선연홍 역시 그런 식으로 엉겨 붙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떨어졌다면 모를까. 물론 키스할 때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저돌적이었지만 야릇하고 축축한 감정도 입술이 맞닿은 그때뿐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사실 같은 포지션이라 그런지 더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더는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좆이 썩을지도 모른다고. 딱 봐도 맛있을 것 같은 게 눈앞에 있는데 쳐다보기만 하려니까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오래 참았으면 이제 먹을 만도 하잖아. 

  “지운씨, 괜찮아요? 엘리베이터 타야죠.”

  새벽 2시에 가까운 시간이라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쪽 벽면에는 호텔 광고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말이 적혀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지. 

  “몇 층입니까?”

  “18층.”

  하하, 십팔층이네. 여지운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말을 용케 알아들은 선연홍이 여지운의 셔츠 안쪽을 더듬어 키를 찾아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지운씨, 속은 괜찮습니까. 숙취, 음……, 으음.”

  여지운이 선연홍의 넥타이를 잡았다. 손안에 부드럽게 스치는 것을 움켜쥐고 당기자 입술이 맞닿았다. 

  “닥치고, 입이나 벌려.”

  오만한 얼굴의 여지운이 선연홍의 멱살을 잡았고, 그는 여지운의 뒤통수를 붙잡았다. 엘리베이터 천장에는 CCTV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지금 두 사람의 머릿속은 그저 상대방과 닿아야겠다. 더 깊이, 깊이. 그 생각만이 전부였다. 엘리베이터가 18층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물고 빨다가 겨우 내렸다. 어떻게 방을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지운씨, 잠깐, 문부터 열어야 합니다.”

  말소리조차 집어삼키는 키스가 계속됐다. 술에 취해서인가 아니면 기분에 취해서인가 필요 이상으로 둥둥 떴다. 뜨거운 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만족스러움이 가슴을 빠듯하게 채웠다. 선연홍의 혀를 빨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타액이 흘렀지만, 그것마저도 흥분됐다. 

  하아, 하.

  선연홍은 여지운의 키스를 받아들이며 겨우 방문을 열었다. 삐. 삐삐빅. 현관 앞에 선 두 사람은 신발도 벗지 않고 서로를 덮쳤다. 이성적으로 보이던 선연홍도 여지운의 흥분에 전염된 것처럼 조급하게 굴었다. 그의 두 뺨을 그러잡고 입술을 물어뜯을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이제껏 담담하고 잔잔한 스킨십만 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아.”

  벌린 입으로 혀가 미끄러져 왔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여지운의 입안을 휘저었다. 입천장을 훑는 느낌은 간지러웠고 혀의 끝을 씹는 치아는 짜릿했다. 입술을 맞붙인 채 코트 깃을 잡아 벌리고 선연홍의 셔츠의 단추를 쥐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급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손이 자꾸 헛돌았다. 

  “으음.”

  그 사이 선연홍은 여지운의 옷을 다 벗겼다. 코트, 수트 상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셔츠가 벌어지며 잘 단련된 가슴팍이 드러났다. 벗은 몸 위로 서늘한 공기가 달라붙었다.

  “하아, 선연홍.”

  여지운은 몇 번의 헛손질을 더 한 뒤에야 선연홍의 상의를 벗길 수 있었다. 노란 불빛 아래의 상체는 상당히 탄탄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예쁘고, 건장했다.  화사한 얼굴 아래의 목선은 곧았고, 딱 벌어진 어깨는 반듯하게 각이 져 있었다. 매끄러운 근육이 붙은 가슴과, 복근은 불빛의 음영 덕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수축과 이완 반복하는 몸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선연홍은 피부가 하얬다. 젖꼭지 또한 옅은 갈색이었다. 흰 피부에 옅은 솟아오른 유두는 유난히 외설적이고 관능적이었다.   

  “오늘, 내가, 너를…….”

  여지운은 뜨거운 숨을 뿜어내며 선연홍의 복근을 더듬었다. 배꼽 주위를 문지르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그리고 이윽고 가장 예민한 살덩이를 쥐었다. 흥분과 술기운이 남은 손은 상당히 뜨거웠으나 선연홍의 성기는 그 뜨거움을 웃돌고 있었다. 한 손으로 빠듯하게 잡히는 크기에 어지러운 정신에서도 내심 놀랐다.

  뭐가 이렇게 커.

  여지운 역시 크기로는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다. 사우나에 가면 아랫도리에 수건도 두르지 않고 나체로 당당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선연홍은 여지운보다 훨씬…… 더 컸다.

  아니. 발기해서 그렇겠지. 그리고 크면 뭐 어쩌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사이 선연홍 역시 여지운의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보드라운 손바닥과 달리 손마디는 셌고, 손끝은 단단했다. 

  “으음, 아.”

  팬티를 벗지 않은 채라 속옷과 손 사이의 공간이 좁아 신경이 더 예민해졌다. 딱딱한 손끝이 기둥을 긁을 때마다 여지운의 허벅지가 자꾸 오므라들었다. 술기운은 몸뚱이를 더 뜨겁게 달궜고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각이 전신에 번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저릿한 기운이 아랫도리, 귀두 끝에 몰리며 간지러움이 찾아들었다. 여지운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선연홍의 속옷을 내렸다. 

  “…….”

  손으로 더듬으며 크다고 예상했던 것은 또다시 그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씨, 씨발. 그래 봤자 좆이잖아. 두 개의 성기를 한 번에 잡은 여지운의 손이 움직였다. 민감한 살덩이들이 서로 엉키며 그 사이로 쾌감이 번졌다. 

  “으음.”

  “아아…… 아. 하아.”

  흥분한 것은 선연홍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가 특히 도드라졌다. 여지운의 입술이 선연홍의 눈썹과 이마 위에 닿았다. 그리고 선연홍은 제게 입맞춤하는 남자의 목을 빨고 깨물었다. 그 사이에도 빠듯하게 부푼 성기는 발정기의 뱀처럼 적나라하게 엮였다.

  “하아, 좋, 아.”

  여지운의 입이 벌어지며 흥분이 터졌다. 조금 아프다 싶을 정도로 빨려지는 목덜미의 감각까지도 짜릿했다. 이런 식으로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도 지금의 쾌감은 달랐다. 그냥 만지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좋으면 실제로 하면 얼마나 더 좋은 걸까. 선연홍의 구멍에 꽂아 넣는 건 이렇게 딸 치는 것 따위는 상대도 안 될 것 같다. 

  상상은 흥분을 만들었고 흥분은 쾌감으로 변했다. 딱딱한 귀두가 서로 닿으면서 파르르 떨렸다. 점점, 욱신대는 감각 끝으로 두 개의 거친 숨이 섞였다. 허억, 헉, 읏, 흐으, 으.

  손이 점점 빨라지며 여지운의 허리가 들썩였다. 손톱 끝이 기둥을 긁고 눌려졌다. 여지운의 성기는 뜨거웠고 선연홍 것은 더 뜨거웠다. 아찔한 감각이 모이고, 모여서 이윽고,

  “흐, 앗. 아앗.” 

  아, 하아, 하, 하…….

  욕망을 풀어냈다. 순간적으로 경직됐던 몸은 거친 숨과 함께 풀렸다. 여지운의 귀두에서 정액이 비어져 나왔다. 후, 하아. 내뱉는 숨소리에는 단내가 묻어날 것 같았다.

  여지운이 본능적으로 선연홍을 봤다. 광대와 뺨은 유난히 붉었고,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 끝에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니 다른 감정이 생겼다. 뭔가 괴롭히고 싶은 표정이네. 하지만 지금은 생긴 것보다 선연홍의 벗은 몸이라든가, 다리 사이의 구멍이 더 궁금했다. 

  하지만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희극이라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는 했다.

  “……? 선연홍씨, 지금 뭐합니까?”

  여지운은 처음에 선연홍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다. 사정의 여운과 앞으로 다가올 흥분에 젖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연홍의 손이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허리를 당겼을 때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 새끼가 내 엉덩이는 왜 만지는 거지? 여지운이 의문을 표했지만, 그는 대답 대신 허리를 좀 더 당겼다. 하체가 맞붙으며 여지운의 성기가 눌려졌다. 

  “어?”

  여지운은 그제야 선연홍이 아직 사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정을 한 덕에 늘어진 성기에 닿는 딱딱한 뜨거움을 믿을 수 없었다.  

  “저기, 선연홍씨? 뭐하냐고 물었는데요?”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선연홍이 여지운의 꼬리뼈 끝 움푹 들어간 부분을 문질렀다. 단단한 손끝이 그림을 그리듯이 느리게 쓰다듬다가 엉덩이를 타고 내려와 허벅지 안쪽까지 닿았다. 그 은근한 감각에 여지운이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치나?

  “뭐 합니까? 손, 안 치워?”

  “왜요?”

  “왜요라니?”

  “제가 손을 왜 치워야 합니까?”

  “뭐라고?”  

  손을 치우라는 말에 대한 답은 자신이 왜 그래야 하냐는 거였다. 여지운은 순간, 스무고개를 하는 줄 착각 했다. 말을 내뱉었더니 되돌이표로 돌아온다. ‘왜’라는 말이 여기서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허벅지 안쪽을 더듬던 선연홍의 손이 더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가벼웠지만 선명했고, 야릇했다. 애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지는 그 순간 선연홍의 손이 여지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순간 놀란 숨이 터질 정도로 억센 아귀힘이었다.

  “헉, 이 새끼, 가 후……. 미쳤나?” 

  이제껏 예의를 차리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여지운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성질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모습에 선연홍이 눈을 깜빡였다. 기다란 속눈썹이 느리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갔을 때에는 새카만 눈동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 반짝이는 눈빛에 불길한 예감이 여지운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저기. 선연홍씨, 혹시, 나를, 깔……, 씨발.”

  말도 다 끝내지 못했다. 벌레를 씹은 것처럼 혀끝이 깔깔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가정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자신이 남자도 된다는 걸, 아니 남자와 하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온갖 사람들과 놀아났다. 동급생은 물론이고, 선배, 후배……. 심지어 교사까지 있었다. 그때 그 체육 선생님, 엉덩이도 잘 빠지고 위도 아래도 빠는 힘이 굉장히 좋았지. 처음 남자랑 뒹군 후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지운은 위쪽 말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연홍과 처음 미묘한 관계에 있을 때 ‘같은 포지션인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곧 박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려주겠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다. 손발이나 키, 체격 같은 것은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니까. 

  일단 선(先) 섹스, 후 연애라고 생각하던 여지운 답지 않게 지금까지 선연홍과 굉장히 풋풋한 연애만 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드라이브로 마무리되는, 애들이나 할 것 같은 그런 가볍고 상큼한 연애. 그런 분위기만 되면 선연홍은 슬쩍 피했다. “섹스, 섹스!”하고 노골적으로 외치는 게 여지운의 성격이었지만 이번에는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런 마음의 저변엔 아마 선연홍에 관한 호감이 있었을 것이다. 

  여지운에겐 특별한 취향이랄 게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몸의 합이었다. 그 외에는 오징어처럼 생기든, 성격이 개 같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선연홍은 달랐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여지운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저기요.”

  여지운의 입에서 알코올 향이 섞인 숨이 터져 나왔다. 몸뚱이가 불안한 기분에 뻣뻣해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는.”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럴 리 있겠어? 그리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제껏 전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떠한 가정이 번개처럼 내리쳤다. 믿고 싶진 않지만, 때로는 그 불길이 현실이 된다. 여지운의 시선이 점점 벌어지는 선연홍의 입술로 향했다.

  “지운씨를. 안고 싶습니다.”

  “씨발.”

  마주친 눈동자에는 장난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샛별처럼 반짝이는 진심은, 날카롭고 선명하게 여지운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와, 돌겠네. 이제껏 흐물대던 머릿속에 찬물이 퍼부어진 것 같다.

  “진짜 뭣 같네.”

  “뭐라고 했습니까?”

  “진짜 좆같다고.” 

  혹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생각보다 더 짜증 나고 아쉬웠다. 

  여지운은 사람의 몸뚱이와 그에 수반되는 반응을 쥐고 흔드는 걸 즐겼다. 허벅지를 강하게 움켜쥐고 엉덩이를 벌리고, 살갗이 뭉개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하게 박으면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쾌감이 얼굴에 확 번진다. 사내새끼가 눈물 콧물에 범벅돼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보는 게 참 좋았다. 선연홍은 예쁘게 생겼으니까, 입안의 사탕처럼 녹아들 거라 생각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의로 깔려 줄 것 같진 않다.

  하, 씨발. 좆 됐네. 

  조금만 건드려도 뻥 소리와 함께 터질 정도로 부풀어 올랐던 흥분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이미 텄다는 걸 알면서도 여지운은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내가 선연홍씨를 안고 싶다면?”

  “처음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나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아주 좋을 텐데?”

  “그럼 그 좋은 거 지운씨가 한 번 해보는 겪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거기까지 말 한 선연홍이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지운씨라도 양보 못 할 것 같습니다.” 

  낮은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진지했다. 반짝반짝 빛난다고 생각했던 눈은 이제 보니 번들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내뿜는 숨결 역시 미약한 흥분이 실려 있었다. 

  “미친! 와, 나……. 진짜, 미친.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네.”

  여지운이 선연홍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맨 정신이었다면 좀 더 노련하게 구슬렸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것조차도 귀찮았다. 

  “그럼 볼일 끝났습니다. 그동안 즐거웠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 씨발, 내가 이 짓거리 하려고 그렇게 미친 듯이 야근을 했다고? 연차 빼려고 내가 얼마나 그 좆같은 부장 새끼한테 고개를 조아렸는데. 꺼져, 이 새끼야.”

  “…….”

  오늘, 지금, 이 상황이 되기 전까지 분명 기분이 좋았다. 초, 중학생 때나 하던 풋풋한 연애를 서른이 넘어서 한 것도 서로 좆대가리를 마주 비빈 것도 꽤. 하지만 더는 볼 일이 없다.

  여지운이 종아리까지 흘러내린 속옷과 바지를 추켜올렸다. 소매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헛손질하면서 셔츠도 껴입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욕을 내뱉었다. 발음이 뭉개져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구겨진 얼굴에는 짜증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난데없이 쌍욕을 먹은 선연홍도 기분이 안좋겠지만, 그거야말로 알 바가 아니다. 당장 내 기분이 이렇게 더러운데. 

  건전한 연애……. 그 끝은 결국 파국.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술기운과 사정의 흥분은 아직 여지운의 배 속에 남아 있었다. 이 야릇한 기분을 함께 할 상대가 선연홍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구멍이야 다 같으니까. 일단 클럽에 가자. 거기 가서……. 

  “아무하고나 뒹굴어야겠다. 선연홍, 다시는 만나지 말자. 후, 좆같은 새끼…….”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데 손안에 닿은 문고리는 선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왜 이렇게 차갑지, 하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가 뒤에서 여지운의 목을 감싸 안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달리 목덜미에 닿는 온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뜨거웠다. 누군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뭐합니까? 진짜.”

  여지운은 몸을 뒤틀며 밀어내려 했지만 밀쳐지지 않았다. 뒷목을 감싼 손이 목을 타고 죄어오는 통에 오히려 숨이 막혔다. 여지운의 머리카락이 등 뒤에서 뿜어지는 숨결에 팔락였다. 뒷목에 뜨겁고 축축한 것이 닿았다. 입술 같기도 하고 혀 같기도 했다. 여지운이 귀찮은 파리를 떼어내는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아, 진짜 앞뒤 분간 못 하네. 이것 보세요, 선연홍씨. 장난합니까? 씨발, 지금 뭐하자고 하는 건데?”

  등 뒤의 남자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뾰족하게 세운 팔꿈치로 뒤를 가격했다. 제대로 먹혔는지 밀착됐던 몸이 물러나며 동시에 그를 옥죄던 팔이 풀렸다. 그대로 뒤를 돌아 선연홍의 광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뻑’ 제법 묵직한 감각이 말아 쥔 손에 느껴졌다. 

  “그러니까 비키랄 때 비키지.”

  선연홍의 볼이 발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혀로 입안을 더듬는 듯 뺨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자신의 입안을 헤집던 선연홍이 혀를 날름 내밀며 웃었다. 입안 쪽이 터지기라도 한 것인지 혓바닥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미친. 저 새끼 왜 저렇게 야릇하게 웃고 지랄이야. 흰색과 붉음의 대비는 사람의 눈을 홀려 놨다. 선연홍은 비릿한 피마저도 선정적이게 느낄 정도로 묘하게 웃었다. 이미 산화한 줄 알았던 아쉬움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깔려 주기만 한다면 진짜 잘해 줄 자신 있는데, 위고 아래고 진짜 쾌감에 부들부들 떨게.

  아무래도 안 될까. 

  “선연홍씨. 진짜 아래 해 볼 생각 없습니까? 자랑 같지만, 아니, 사실 자랑인데 내가 엄청 잘하거든요. 못 믿겠으면 건즈앤로즈 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됩니다.”

  “……아무나 말입니까?”

  “아무나.”

  “……아무나,라.”

  선연홍의 표정은 미묘했다. 아무나, 아무나……. 몇 번이나 입안에 굴리는 게 확실히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했지만 여기서 자기가 화 낼 이유는 없다. 여지운이 남은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술에 완전히 깨지 못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그 사이로 흥분이 얇게 저며졌다.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안 되는가 보다. 선연홍이 포지션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만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싫다면 됐습니다.”

  여지운의 손이 선연홍의 가슴에 닿았다. 그대로 미는 순간, 현관을 비추던 전등이 꺼졌다. 

  어? 위로 향했던 여지운의 시선이 다시 내려온 순간 어둠 속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헉.” 놀란 몸뚱이가 균형을 잡지 못하며 허우적댔다. 여지운의 눈알을 찌를 듯이 다가왔던 손이 그의 목과 어깨를 감싸 안고 당겼다. 어찌할 사이도 없이 끌려갔다.

  “어, 흑! 뭐, 대체 뭐야.”  

  쿵. 발이 서로 엉긴 두 사람은 마치 춤추듯 움직이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부딪히는 줄 알고 몸에 힘을 주던 여지운의 뺨을 스친 손이 뒤통수를 감싸 안았다.

  “아무나?”

  어둠을 가르고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는 둥둥 울리는 심장 소리를 뚫고 올 만큼 선명했다.

  “아무나라니, 그동안 참 재미있게 놀았나 보네, 요. 여지운씨.”

  “허억, 너 뭐야? 지금 뭐 하는 거……!” 

  드러난 살갗 위로 찬바람이 달라붙었다. 추켜올렸던 바지와 속옷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떨어져 내렸다.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여지운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렸지만, 곧 잡혀 바닥 위로 눌러졌다. 

  “뭐, 뭔데. 안 보여. 불 좀 켜라고.” 

  “네.”

  착하게 대답한 선연홍이 여지운의 허리춤에 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른 뒤 손을 뻗어 전등불을 켰다. 순간 터져 나오는 빛에 여지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선연홍은 여지운을 내려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다정한 눈매에 깃든 상냥 감정은 언제 나와 같았지만, 그 속의 것은 달랐다.

  “너 왜 웃고 난리냐, 뭐가 재밌다고.”

  “충분히 재밌습니다.”

  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여지운은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불쾌, 불안. 긴장 따위의. 선연홍의 입술이 벌어지며 그 안으로 빨간 혀가 보였다. 여지운의 눈동자가 저절로 그에게 향했다. 시선을 느낀 선연홍이 좀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 하며 고개를 숙였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여지운의 뺨에 닿았다. 간지러움과 미묘한 소름이 전신을 타고 올랐다. “핫.” 선명한 감각에 멍하게 풀어져 있던 정신을 수습했다. 

  방금, 뭐지.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일부러 더 화가 난 척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가.”

  어설프게나마 이어지던 존댓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지운씨를, 갖고 싶습니다.”

  갖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 우수에 차 보였다. 예쁘긴 되게 예쁘네.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어이없어 웃었다. 그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선연홍이 따라 웃었다. 휘어진 눈꼬리 끝에서는 잘 익은 과일이 톡톡 터질 것 같았다. 여지운이 기다랗게 뻗은 속눈썹을 보며, 아주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좆 까.”

  “네.”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착실하고 얌전했다. 문제는 여지운의 아랫도리를 헤치고 있는 손이었다. 선연홍이 마치 입맞춤을 하듯 목덜미를 깨물었다. 술기운에, 사정의 여운에 나른하게 가라앉아 있던 몸이 파득 떠올랐다. 흐느적대는 머릿속에서 새싹 같은 간지러움이 피어올랐다.

  “핫.”

  선연홍이 여지운의 턱 끝을 붙잡고 키스했다. 짙고 농밀한 행위가 이어지며 빠르게 뱉어지는 숨이 녹아내렸다. 쌉싸름한 혀끝도, 질척한 입안도 모두 같은 맛이 났다. 비린, 피 맛.

  초옥. 젖은 입술이 턱 끝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축축하고 뭉근한 혀가 여지운의 귀를 삼켰다. 뜨거운 혓바닥에 여린 귓불이 사정없이 짓씹어졌다. 흐으. 찌릿한 쾌감이 목덜미를 타고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여지운이 허리를 살짝 들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들어온 손이 솟아오른 유두를 굴렸다. 검지와 중지 사이 끼워놓고 살짝 아플 정도로 잡아 뜯자 퉁 튀어 오른 살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아.” 여지운이 어깨가 등허리를 타고 오는 소름을 애써 참으며 손목과 손가락을 꺾었다. 미친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지? 우둑우둑 꺾어지는 손마디가 마치 프로 복서가 링 위에 올라가기 직전 몸을 푸는 것 같았다. 

  선연홍은 여전히 여지운의 목덜미에 집착하고 있었다. 살갗이 뜨거운 입 안으로 빨려들었다가 씹히는 감각이 선명했다. 물기 어린 소리와 더운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곳에서부터 번진 열이 가뜩이나 달아오른 몸뚱이를 더 부추겼다. 여지운이 손을 뻗어 선연홍의 뒤통수를 감싸듯이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흐트러지는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거칠게 잡아채고 뒤로 확 꺾었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목에 거의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기에 가능했다. 

  “!”

  손안에 감긴 머리채를 인정사정없이 잡아당기자 곧은 목선이 드러났다. 손날을 빳빳하게 세운 여지운이 그 가운데를 강하게 쳤다. “큭” 급소를 강타당한 선연홍이 신음을 흘렸다. 숨이 졸린 탓인지 흰 얼굴이 금세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눈을 피하지 않고 여지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야, 이거 해보자는 거냐?

  “이 꽉 깨물어라. 아니면 턱 날아간다.”

  들린 턱을 후려갈기는 손은 가차 없었다.

  “큭!”

  콜록콜록. 선연홍이 몸을 웅크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쏟아진 머리카락 덕분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코피가 터진 듯 새빨갛고 뜨거운 것들이 여지운의 뺨 위로 후두두 떨어졌다. 여지운이 그를 옆으로 밀어내며 일어섰다.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기침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곧 그러니까 누가 덤비래. 자업자득이지. 좀 심하게 친 것 같지만 알게 뭔가. 꼬우면 경찰서 가시던가요. 허벅지 근처에 걸린 속옷을 위로 당기며 침을 퉤 뱉었다.

  “미친 새끼.” 

  선연홍 때문에 잃은 게 많았다. 호텔 숙박비, 잔뜩 구겨진 코트. 그리고 그에게 쏟아 부었던 시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선연홍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못내 분해 숨을 몰아쉬는 사이 웅크리고 있던 선연홍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쏟아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그 모습은 귀족이 찻잔을 드는 것처럼 아주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헝클어졌던 머리가 정리되자 반듯한 얼굴이 드러났다. 

  “야?”

  여지운은 제가 본 것을 확인하려는 듯 눈 사이를 가늘게 좁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연홍의 뺨이 이상할 정도로 발그레하게 물들어서였다. 맞아서 부었다거나 멍 자국이 아닌, 그것보다 좀 더 부드럽고 생기 있는…… 그래. 생기 가득한 얼굴은 활짝 핀 꽃 같았다. 달꼬리처럼 늘어진 눈매에는 단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매끄러운 입술은 양옆으로 올라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과 그 미소는 기이했다. 왜냐하면, 얼굴이 피범벅이었거든. 

  뭐가 재미있는 걸까? 왜 저렇게, 웃고 있지? 잘생겼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짝임보다는 번들거림에 가까웠다. 아주 어두운 곳, 노랗게 빛나는 짐승의 눈동자처럼.

  “하하.”

  그 순간 선연홍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불안하고 긴장된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

  공포 영화를 보는데 이제 곧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불안하고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따라 올라왔다. 무서움을 느낄 이유 따위 전혀 없는데, 이 기분은 무엇일까? 

  여지운이 혀로 아랫입술을 더듬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거칠어졌던 숨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느슨하게 풀려있던 공기가 점차 팽팽해졌다. 조금씩, 조금씩 더.

  여지운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나가야 한다. 

  여지운은 젊었지만 어리진 않았다. 만기 전역 후 졸업해 사회생활 한지도 한 손에 꽉 찼다. 이 나이에 팀장 자리까지 오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일하거나 연애를 하면서, 혹은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과 떡을 치는 짓거리를 하면서도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은 눈치가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해서였다. 

  꿀꺽. 뾰족한 바늘처럼 따가운 공기가 목구멍 안으로 넘어갔다. 작고 따가운 그것은 촉이었다. 촉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곳을 벗어나라고.

  “아, 꽤 아프다. 잘 싸우네요. 힘도 세고.”

  선연홍의 목덜미에는 여지운의 손자국이 그대로 나 있었다. 누군가 조른 것 같이 붉은 기운이 올라와 상당히 아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붉은 자국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경계 가득한 여지운의 눈초리가 선연홍에게 닿았다.

  “그……러니까 누가 개짓거리하래.”

  그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늘여 놓았다.

  “여지운씨, 이름으로 불러도 됩니까?”

  “뭐?”

  “지운아. 라고 불러 봐도 됩니까.”

  이 상황에서 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던 말이었다. 여지운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선연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운아. 음, 좋네요.”하고 중얼거렸다. 

  “어린 새끼가 개념 상실했네. 내가 너보다 3살이나 많은데 지운아?”

  여지운은 평소 호칭에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본인부터가 예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회사에서야 을의 입장이니 망나니처럼 굴진 않지만,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달라졌다. 저보다 대여섯 살 많은 사람에게 말을 툭 놓는 것은 의외도 아니었다. 물론 본인이 막 나가는 만큼 어린 애들이 반말하는 것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선연홍과 이제껏 존대하고 있었던 것이 더 특이한 경우였다. 

  “싫습니까? 좀 아쉽지만 지운씨가 내켜 하지 않는다면 알겠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목을 처맞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게 이상했다. 코피가 터져 새빨간 코와 멍이 번지기 시작하는 광대와 턱, 그리고 찢어진 입술 위에 날카롭게 맺힌 핏방울까지. 엉망인 얼굴로 선연홍은 환하게 웃었다. 선연홍은 잔뜩 경계하는 여지운을 보며 엄지손가락 끝으로 제 아랫입술을 쓸었다.

  “예상대로 감이 좋네.”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은 그의 입안에서만 굴려지다가 흩어졌다.

  “지금 웃음이 나오냐?”

  “나오지 않을 이유도 없지요. 지운씨는 좋지 않나요, 지금 이 상황이?”

  선연홍의 미소는 확실히 매력적이었지만 여지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건……, 저 남자는 생화가 아니고 조화일 뿐이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양보가 없다면 남은 것은 없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갈 뿐. 애정 없는 연애는 할 수 있었어도 섹스 없는 연애는 없었다. 그러니 선연홍이 아무리 얼굴이, 혹은 성격이 어떻든지 쓰다듬고, 훑고, 빨고, 쑤실 구멍이 없다면 예쁜 장식물일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좋다고? 아, 씨발. 머리야……. 토할 것 같네.”

  짧은 시간 술을 쏟아 부은 여파가 아직 남은 듯 머리와 속이 울렁댔다. “휴우” 내뱉는 숨결 역시 아직 술 냄새가 배어 있다. 여지운이 지끈대는 머리를 손등으로 꾹 눌렀다. 애매하게 움직이다 보니 속만 더 답답했다. 허탈함과 짜증, 그리고 허무함 같은 것들이 한 대로 뭉쳐서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선연홍씨, 더 맞기 싫으면 알아서 피해 다녀요. 포지션 바뀌면 제일 먼저 개통해줄 테니까 연락하고. 뒤가 쑤셔지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해줄게.”

  이미 최악의 상황이고 지저분한 끝이었지만, 손을 흔들며 산뜻한 안녕을 고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연홍이 여지운의 팔을 잡아끌면서 사라졌다.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달라붙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키스였다. 야, 집에 좀 가자. 집에 좀. 

  얼마나 빨고 핥았는지 이제는 혀끝만 스쳐도 아릿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고통이 아닌 따갑고 찌릿한 쾌감에 가까웠다. 

  “야, 이 씨……, 으음, 흠.”

  내치면 들러붙고, 또 내쳐도 또 들러붙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질척한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 아, 대학생 때는 이상할 정도로 따라다니긴 했지.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선연홍의 혀가 들어왔다. 사실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혀끝이 입을 억지로 열고 들어와 그 안을 빨았다. 쫓기는 것 같은 갈급함이 가득했다. 선연홍은 지금 처음 사탕을 먹는 어린아이처럼 서툴게 굴었다. 평소 농밀한 키스를 하던 사내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늘 선연홍은 이상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새빨갛고 질척했다. 다정하고 상냥하게 굴다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행동했다. 이지적이고 예의 바른 사내는 지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고 있다.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순식간에 휙휙 바뀌는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렇게 좆같이 굴 이유는 되지 못했다.

  “음.”

  여지운은 입안에 고인 타액을 빨아 먹으려는 혀를 콱 깨물었다. 단단한 치아 끝이 축축한 살덩이를 찍으며 비리고 짭조름한 피 맛이 퍼졌다. 오늘 피를 몇 번 마시냐, 대체?

  “야, 피……흡!”

  “마셔요, 다.”

  선연홍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더 입을 붙여왔다. 바로 앞에서 보이는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여지운의 목젖을 꾸욱 눌렀다. 그렇지 않아도 비릿한 맛에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데 목젖까지 꾹 누르자 숨이 막혔다. 입 안을 점령한 살덩이를 더 세게 깨물었다. 살덩이가 갈라지는 섬뜩한 감각에 감각이 곤두섰다. 아픈 건 선연홍일텐데 왜 자신이 소름 돋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비린 타액을 넘겼다. 너덜거리는 살점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여지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헤진 혀를 또다시 씹었다. 몇 번을 더. 그제야 선연홍이 떨어져 나갔다.

  “으음, 아프네요.”

  “그런 말 하는 거 보니 멀쩡한가 보네. 씨발, 비려. 퉤.”

  선연홍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울 정도라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으나 ‘피네.’, ‘아프네.’, ‘아픈가.’, ‘하, 좋네. 짜릿한 건가.’등등 도대체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선연홍은 다정한 연인이었지만 웃음이 많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상할 정도로 많이 웃었다. 그것도 아주 예쁜 얼굴로. 그러나 차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선연홍이 한 발짝 다가왔다. 단지 그뿐이었는데도 여지운이 뒷걸음질쳤다. 주춤. 자리에 멈춰선 선연홍이 물러선 여지운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운씨?”

  자신도 왜 물러섰는지 이해가 안 돼 당황스러웠다. 그냥 본능이었다. 본능. 좀 전에도 느꼈던 직감이 다시 말했다.

  도망가라고 했잖아. 여기서 벗어나라고 아까 말했잖아. 병신아. 왜 아직 안 갔냐.

  잠시 멈춰 있던 선연홍이 또다시 다가왔다. 움직일 때마다 반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근육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그가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여지운은 물러서고 있었다.

  “왜 피합니까?”

  “내, 가 언제 피했다고…….”

  “지운씨, 봐요. 저 피났습니다.”

  선연홍이 입을 벌리고 너덜너덜한 혀를 마치 자랑하듯 내밀었다. 온통 붉은 입안과, 혀. 그리고 여전히 흐르는 피를 보고 있으니 어딘가를 긁고 싶었다. 이를테면 손가락 사이라던가, 팔뚝 같은 곳들을. 입안에 고인 타액을 꿀꺽 삼킨 여지운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누가 주둥이 비비랬습니까. 그만 하자고 몇 번이나 말합니까? 그쪽도 나도 박는 쪽이잖아. 박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어째서 둘 다 박는 쪽이죠?”

  눈을 깜빡이며 묻는 얼굴은 청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서른 가까이 된 남자에게 청순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박히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럼 엎드려서 다리 벌리던가요.”

  “저는, 여지운씨랑, 자고 싶습니다. 지운씨를 쥐고 흔들고 싶어요. 섹스 합시다.”

  “…….”

  선연홍의 말 안에는 짙은 욕망이 담겨 있었다. 여지운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가 ‘섹스’인데 저 남자의 입에서 나오니 색달랐다. 깜빡임조차 없는 눈이나 피가 번진 입가를 보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지운은 마치 유혹당한 사람처럼 뜨거운 숨을 뿜어내며 선연홍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선연홍의 체취가 비린 피냄새와 섞여 코안으로 스며들었다. 

  씨발, 모르겠다. 억지로 하고 싶진 않지만, 섹스하자는데 해야지. 조금 전만 해도 선연홍을 후려치고 쌍욕을 내뱉던 여지운이 홀리듯 그에게 다가갔다. 

  “여지운씨에게 하나 더 부탁해도 됩니까?”

  “……박게 해준다면 뭐든지.”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

  뭐? 뭐로 부른다고? 선연홍의 목덜미에 키스를 퍼붓던 여지운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술에 취해서 환청을 들었거나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뭐……로 부른다고?”

  “주인님이요.”

  하지만 선연홍은 진지했다. 그 어디에도 농담이라든가 놀리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퍼렇게 멍이 오른 광대와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로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여지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떼어냈다.

  “뭔 개소리를 합니까, 날 왜 주……인님으로 부른다는 건데요? SM플레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미치기라도 했습니까?”

  “더 해주십시오.”

  “뭘 더 해줘요?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놀리냐고. 이런 좆같은…….”

  “그래요. 더 해봐요. 더, 더.”

  선연홍은 꽃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좆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

  여지운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지금 들은 말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주인님이라니, 주인님이라니? 주인님? 무슨 주인님? 지금 맞게 들은 거 맞나? 미친 거 아냐? 미쳤나? 선연홍 미친놈이야? 아니면 내가 미쳤나? 머릿속에는 갈고리 같은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하하, 농담…….”

  쨍하니 말라붙어 있던 공기는 선연홍의 미소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기묘할 정도로 반들거리던 눈빛이 조금 잦아들자 정상처럼 보였다. 하긴, 주인님이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당연히, 당연히 농담이겠지. 여지운이 저도 모르게 내 쉰 숨 안에 녹아든 감정은 우습게도 안도였다. 선연홍은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입술이 맞닿을 것 같이 가까워졌다. 

  “……이라고 말하면 안심하겠어요?”

  “이 미친 새끼가.”

  다시 한 번 주먹을 들었지만, 선연홍에게 닿기 직전에 붙잡혔다. 그는 조금 전 허무하게 나뒹굴던 것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아주 여유롭게 여지운을 제압했다. 타인에게 이런 식으로 막힌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몇 번이나 팔을 흔들어봤지만 그럴수록 더 조여 올 뿐이다.

  “아무리 지운씨라도 세 번은 곤란합니다.”

  “놔, 이 새끼야.”

  “사실 저는…….”

  거기까지 말하고 조금 뜸들이던 선연홍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꽃망울이 터지듯 유쾌했다. 

  “여지운씨가 욕을 할 때마다 흥분됩니다.”

  “뭐……?”

  “그러니까 당신이 이 예쁜 입술로.”

  손가락 끝이 여지운의 입술 위를 두드렸다. 얇은 표피가 살짝 눌렸다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욕을 하면 흥분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요.”

  무슨 개소리야. 선연홍은 뻣뻣하게 굳은 여지운의 손목을 끌어 제 고간 사이로 가져갔다.

  “이, 미친 새끼가!”

  손안에 느껴지는 그 묵직한 감촉이 소름 끼쳤다. 손이 닿자마자 더 커졌다고. 더. 

  조금 전 서로의 좆을 비비며 딸 칠 때 선연홍의 성기는 딱딱하게 부풀었다. 그건 육체적 자극에 의한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 이유가 뭔데? 사정하지 않아서라고 하기엔 느낌이 달랐다. 여지운이 기겁한 얼굴로 제 팔을 잡고 있는 선연홍을 털어 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얼마나 꽉 잡았는지 피가 통하지 않은 손등에는 핏줄이 여러 갈래로 불거져 있었다. 

  “더 해봐요.”

  뺨에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라 있는 남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아주, 상당히 기분 좋아 보였다. 내뱉는 숨결은 뜨거웠으며 그 안에는 미약한 흥분이 실려 있었다. 

  미쳤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라고? 변태, 변태야? 주인님에 이어서 욕을 해주면 기분이 좋다니. 흥분된다니. 무슨 그런 개소리가……. 선연홍은 여지운의 심정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한 건지 제 할 말만을 내뱉었다. 

  “조금 전 여지운씨가 절 때린 것도 꽤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내가 지금 술에 취해서 헛소리가 들리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선연홍씨는 맞, 후……. 맞는 게 좋다 이겁니까?”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담담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들은 여지운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엿 먹으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니까 당황한 거겠지. 자존심이 상해서 이런 이상 행동을 하는 걸 거다. 그럼, 음. 그래. 그는 애써 저 자신을 이해시켰다. 이제는 선연홍에게 박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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