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8)

5.

  

  “여지운씨.”

  여지운은 그동안 해피 게이라이프를 즐겼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본인의 생각이었고 상대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무의미했고, 과정은 가벼웠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진심이 깊을수록 상처는 깊었다. 여지운의 행동에 눈물만 뚝뚝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매달리기도 했다. 개중에서는 너 죽고 나 죽자며 칼을 들고 설치는 또라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진상을 스치면서도 지금처럼 낯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하룻밤에 200만 원 가까이하는 방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 중 이었다. 이 좁은 곳에서 키스하고 딸 치다가 서로 치고받으며 기어코 피까지 봤다.  

  “하지만 여지운씨가 내 주인님이 돼 좋으면 좋겠습니다. 지운씨라면 날 어떻게 대해도 좋아요. 때리고 욕해도 당신이라면.” 

  “변태새끼.”

  미친 새끼가 맞구나. 여지운은 곧장 문을 열고 튀려고 했으나 선연홍이 더 빨랐다. 그는 여지운의 팔을 꺾으며 앞으로 밀었다. 어깨가 불편하게 뒤틀리며 뺨이 현관문에 닿았다. 차갑고 서늘했다. 

  “변태라, 음……. 여지운씨 말고는 모두 쓰레기로 보이는데 그래도 변태일까요?”

  등 뒤에 밀착한 선연홍이 허리를 슬쩍 밀며 여지운의 엉덩이에 성기를 비볐다.  

  “미, 친 새끼.” 

  여지운은 제가 뱉은 욕이 선연홍을 더 흥분하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역효과일 뿐이죠.” 

  귓가에 쏟아지는 숨결은 뜨거웠으며 그 속에는 새빨간 흥분이 가득했다. 다정하고 느긋한 목소리와 달리 아주 깊고 끈적한 욕망 또한 존재했다.

  “지운씨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기억납니까? 8년 전. 학교에 다닐 때.”

  여지운씨가 저를 구해 줬다고 말했었죠? 그 이후부터 여지운씨는 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남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게 멋져 보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동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여지운씨가 제게 욕을 했지요.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납니다. ‘이 씨발. 좆같은 새끼야. 귀찮게 질척이지 말고 제발 좀 꺼져.’ 그리고 ‘미친 새끼야. 씨발, 내가 얼마나 공들이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망했잖아. 진짜 뒈지고 싶냐? 아가리 터지고 싶으면 계속 얼쩡거려라, 개새끼야?’ 이렇게요. 하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지요? 여지운씨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배 속이 따뜻해졌습니다. 마지막 날, 당신이 절 때렸을 때는 견디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확인을 해야 했는데, 미국에 가느라 그러질 못했네요. 미국, 음……. 그 낯선 곳에서 오직 당신만이 선명했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밤 꿈을 꿨어요. 그리고 일어나면 성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여지운씨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하아.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당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줄 아십니까? 당신이 게이라는 걸 알았을 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성적 취향이 어떻든 어차피 저한테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여지운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거지 성별이나 취향 같은 건 뭐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첫 만남은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대학교 때의 여지운씨는 폭주하는 사냥개 같았는데 다시 만났을 때는 나른한 집고양이 같았거든요. 초반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역시 여지운씨는 그대로더군요. 사람을 깔보는 거 말입니다. 그 시선과 마주하면 온 전신이 짜릿해요. 너 따위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오만한 눈. 하하, 특히 무릎을 꿇으라 했을 때는 오싹했습니다. 너무 황홀하더군요. 근데 그거 압니까? 당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불쾌하기만 해요. 근데 왜 여지운씨만 이렇게 흥분될까요?

  “왜, 그런지 당신은 알겠어요?”

  귓가에 속삭여지는 말들은 작고, 비밀스럽고, 뜨거웠으며 또, 야릇했다. 달 뜬 숨이 함께 뒤섞인 말들이 이어질수록 여지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충격과 경악으로 술기운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대학생, 대학생 때 내가 네게 욕하고 때렸다고 지금 이 지랄 하는 건가? 복수냐고.” 

  “복수? 내가 왜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을 떠나 이제는 무섭기까지 했다. 차가운 철문도 여지운의 혼란을 삭혀주진 못했다. 욕, 황홀, 흥분……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아다녔다. 

  “왜? 왜 흥분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나 보다. 선연홍이 어깨를 떨며 웃었다. 지나치게 밀착된 탓에 미묘한 떨림까지 온전히 느껴졌다.

  “글쎄, 왜 흥분될까요? 그 이유는 모르지만, 확실한 게 있다면.”

  등 뒤로 몸뚱이가 조금 더 맞붙였다. 옷 위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무게감이 여지운의 허리가 들썩였다. 지금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는 이 좆같은……기분.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겁니다. 오로지 여지운씨만 절 흥분시킵니다.” 

  이제껏 만난 사람 중 관계 중 거칠게 다뤄 달라든가 욕을 해달라고 했던 섹파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였다. 누구도 지금 저 남자처럼 체계적이고 독특하게 맛이 가지는 않았다. 이건 뭐 포지션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선연홍 새끼는 미친놈이었다. 그냥 미친 새끼. 미친 변태.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미친 새끼라 그런지 힘도 셌다.

  “개, 씨발. 씨발 새끼.”

  “네, 좀 더 해주세요. 좀 더 말해줘 봐요. 더 짜릿하고 흥분되게.” 

  “마조냐?”

  “마조? 마조히스트요? 그런 게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는데, 여지운씨 이외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취급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분 나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이름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지운씨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마조라고 하지요.”

  “다른 사람은 기분 나쁘다면서 나는 왜.” 

  “그걸 알기 위해서 여지운씨를 찾아온 거지 않습니까. 그 옛날을 못 잊어서요.” 

  촉촉한 목소리와, 그보다 더 젖은 혀가 여지운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물을 들이부은 듯 귀 안이 질척댔다. 귀 끝이 파르르 떨리며 목이 자꾸 뒤로 넘어갔다. 

  “여지운씨.”

  “……후, 으. 변태 새끼야.”

  여지운은 자꾸만 손끝이 간지러워지고 허리가 굽어지려는 것을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밀착된 상태에서 선연홍이 그의 상태를 모를 리 없었다.

  “아흐.”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침묵이 쌓였다. 가볍고, 팔락거리고, 동글동글한 알 수 없는 색의 침묵이었다. 

  “너, 그, 어……. 변, 태인 거 알겠으니까. 일단 손 놔. 놓고 얘기해. 이래서는 서로 불편할 뿐이잖아.”

  “놓으면 도망갈 거지 않습니까.”

  귀 끝을 깨문 채로 말을 하니 숨결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팔위로 좁쌀 같은 소름들이 돋아나 긁고 싶었는데 팔이 붙들린 채라 괜히 어깨만 움찔댔다.

  “안가, 씨발놈아. 너 좋아하는 욕 마음껏 해줄 테니까. 좀……. 허억.”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부분이 뜨거운 점막에 감싸이자 숨이 훅 터져 나왔다. 여지운의 몸이 한순간 긴장하며 뻣뻣하게 굳었다.

  “쌍욕 쳐 해줄 테니까 일단 좀, 놓으라, 고.”

  “…….” 

  선연홍은 대답 대신 여지운의 팔을 붙잡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았다. 호텔문과 선연홍 사이에 눌려 있던 성기는 귀를 애무한 덕인지 살짝 부풀어 있었다.

  “이대로, 말 해봐요.”

  “흐, 으읏, 손을 놔야……아.”

  “욕 해봐요, 좀 더, 더. 씨발이라고. 예?”

  “미친, 새끼.”

  개미 같은 열기가 퍼지기 시작하는 살덩이를 붙잡은 선연홍의 손이 야릇하게 움직였다.

  “하아.”

  선연홍은 여지운의 성기를 조금 아플 정도로 꽉 쥐었다가 풀어 주고 천천히 문질렀다가 빠르게 마찰하기를 반복했다. 아흣, 흣. 

  “지운씨, 그거론 부족한데요?”

  “개……소리 좀 작작 지껄여.”

  “하하, 부족하다니까.”

  귀로 쏟아지는 숨에 여지운의 몸뚱이가 달아올랐다. 성감대가 괜히 성감대겠는가. 거기다가 성기까지 주물러지니 이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여지운의 어깨가 굽어들며 현관문에 뺨을 비볐다. 그에겐 이 열기를 식혀줄 것이 필요했다. 

  “하으으.”

  선연홍의 시선이 눈앞의 남자에게 닿았다. 드러난 목덜미에서 번진 붉은 기운이라든가, 따끈해진 귓등 것들이 그를 흥분시켰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아직, 더.

  “절 무릎 꿇릴 때처럼, 거만하고 도도한 얼굴로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어 봐요.”

  “하앗. 으……흐.”

  생각보다 예민하네요, 작게 중얼거린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을 길게 핥아 내렸다.

  “여지운씨가 교제 신청을 했을 때 좀 놀랐습니다. 사실 당신과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한 적이 없거든요. 지운씨를 찾은 것 역시 욕을 해주거나 재수 없는 낯짝으로 봐주길 바라서였지 교제는 음, 생각을 못했습니다.”

  담담한 어조로 담백하게 말하면서도 아랫도리를 만지는 손은 거침없었다. 그는 무릎으로 여지운의 허벅지 사이를 갈랐다. 흥분에 잠식되어 숨이 가빠지는 와중에도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흐으……. 나 혼자 김칫국 마시고 그 지랄병을 틀었다고 말하는 거 ……하아.” 

  “지랄하는 모습 귀여웠으니까 괜찮습니다.”

  개소리도 뭐 이런 개소리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좆과 구멍이 꽉 들어맞아야 차진 떡을 만들 수 있듯이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원나잇이나 섹스 파트너가 아닌 이상 혼자 쫓아다닌다고 사귀는 게 아닌데 선연홍이 말하는 꼴이 딱 그랬다. 자신은 별생각이 없었는데 네가 하도 들이대서 만나 줬다. 이런 뉘앙스.

  “개소리하네.”

  그 와중에도 그 말만은 잘 들려 더욱 기분이 개떡 같았다. 하지만 그 여지운이 분노를 분출하기도 손톱이 귀두 끝을 긁어 내렸다. 아, 좋다. 가장 직접적인 성감대를 잡고 흔드는데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지운은 저도 모르게 발끝이 들썩이며 종아리를 수축했다.

  “아흣.” 

  아, 조금만, 조금만 더, 더 하면……, 조, 조금만, 아, 흐, 아? 아! 

  “아흐, 아. 악!”

  곧 뿜을 것처럼 절정에 달했던 감각이 돌연 콱 막혔다. 여지운의 어깨가 들썩이며 현관문을 짚은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렸다.

  “잠……, 하아.”

  선연홍이 여지운의 성기를 꽉 움켜쥐었다. 여지운이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이며 하체를 오므렸다. 미친 듯이 뛰던 쾌감과 절정이 한순간에 탁 막힌 것도 모자라 급소가 쥐어 짜이자 미칠 것 같았다. 

  “너, 아, 미친……. 소, 손.”

  “손?”

  “좀, 놓……앗, 악. 손 놓으라고 이 새끼야! 야, 이 미친놈이! 헉!”

  핏줄이 툭툭 불거질 정도로 성기 기둥은 꽉 잡고 있으면서 손톱으로는 귀두 끝을 갉작였다.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프다? 좋다? 좋고 아프다, 아프면서 좋다. 

  고통과 쾌감이 이리저리 반복됐다. 어느 한 쪽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감각이 점차 극대화됐다. 하지만 그것도 선연홍이 여지운의 성기를 쥐어 터트릴 듯 세게 움켜쥐자 쾌감도 고통도 아닌 공포가 뒤덮었다.

  “악, 미친 새끼!”

  성기를 쥐고 흔드는 행위, 평소라면 더 해보라며 허리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손가락질 좀 잘 해보라고. 잘 빨아 보라고 킬킬댔겠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떨림은 선연홍에게까지 전해졌다. 귓등과 목덜미, 그리고 등의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후욱, 훅. 여지운이 뿜은 숨들이 차가운 문짝에 달라붙었다. 

  이상하네. 선연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리 아래, 아니,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정확한 이름은 찾지 못하겠지만 분명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여지운이 욕을 하거나 거만한, 오만한 낯짝으로 내려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좀 더 뜨겁고 깊은 것. 선연홍은 혀끝으로 입천장을 두드렸다. 입 안에 고여 있던 타액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꿀꺽. 

  “이, 미친 개새끼. 욕, 해 준다고! 해줄 테니까! 손 좀, 놓으라, 고.”

  “…….”

  “너도 남자니까 좆이 쥐어 짜이면, 후…… 얼마나 아픈지 알 거 아니냐? 솔직히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좋으니까 일단 놓고 얘기 먼저 하자. 아니, 합시다. 아, 변태니까 반말을 더 좋아하려나? 좆이라도 밟아 줄까? 원하는 대로 맞춰 줄게. 개자식아.”

  지금 여지운은 매일 꿈에 나올 정도로 원하던 얼굴로 거친 말을 내뱉고 있었다. 평소의 선연홍이었다면 모르는 척 그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러보고 끝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데려다 줬겠지. 아주 정중하고 신사답게. 사실 그를 안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가 좀 더 화를 내줄까 싶어서 한 말이었다.

  “……여지운씨, 주인님.”

  “아, 아. 그래, 노예 새끼야. 이제 손 좀 놔.”

  ‘주인님.’ 10년 가까이 매일 밤마다 상상하던 단어를 내뱉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끓는점이 아주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 지금보다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그러니까, 여지운이 좀 더 헐떡이는 모습이라든가, 아, 우는 것을 보는 것도 꼴린, 아니. 끌린다. 

  선연홍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비슷하긴 하되 좀 더 원초적이고 관능적이었다. 그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여지운은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이거, 터지면 니 새끼가 책임 지냐?”

  “네.”

  “뭐?”

  “책임질게요. 그럼 터트려도 됩니까.”

  “개소리 좀 그만하라고! 악! 씨발! 진짜, 진짜 터진다!”

  “터져도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이, 미, 친……새끼. 아롱다롱 이어지는 감각들 사이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경악이었다. 욕 듣는 게 좋다고 안했냐? 나른하고 도도한 얼굴로 본인을 깔아뭉개는 것이 좋다며,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말했잖아. 그래서 허락했는데 왜 또 이 지랄이야.

  “너, 이 새끼. 마조라며. 걔네들은 원래 막 다뤄지는 거 좋아하지 않냐?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전 여지운씨가 막무가내로 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게, 그거 아니야?” 

  “다르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 른……거? 다른 거 뭐?” 

  다른 생각이 뭔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여지운의 입은 달싹이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상상 됐다. 아니, 사실 안됐다. 무슨 말을 해도 상상을 초월할 것 같았다. 여지운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선연홍이 역시 생각에 잠겼다. 교제하면서 여지운은 망나니 같은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바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풀었다. 누군가는 욕하고 얼굴을 찌푸리겠지만, 당사자인 선연홍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고 다른 걸 보고 싶었다. 

  다른 것, 다른 것, 다른 것. 

  “아, 뭐든 좋으니 좆은 좀 풀어 줘야 하지 않겠냐? 이대로라면 정말…….”

  선연홍의 시선이 여지운의 귀 끝에 머물렀다. 축축하게 젖은 귓불과 귓등은 예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들이 뺨과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가련하네. 선연홍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것이라, 보면 되잖아.

  “헉! 야, 힘, 힘주지 마.”

  “네.” 

  선연홍은 착하게 대답하며 여지운의 성기를 잡고 있던 손을 뗐다. 오랫동안 졸려 있던 살덩이가 자유를 찾으며 파르르 떨렸다. 자유가 된 여지운이 선연홍의 고간을 발로 찼다. 그리고 곧장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빨리, 빨리 나가야, 나가야 해,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여지운은 카드 키를 문에 대야 열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을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었지만, 미동도 없었다. 이 씨발, 왜, 왜 안 열려! 

  “어디 가요, 못 간다고 했잖아.”

  “이, 미친!”

  선연홍이 여지운의 뒷목을 잡아챘다. 몸뚱이가 뒤로 질질 끌려가며 갈 곳을 잃은 손이 허공을 허우적댔다. 

  “이건 또 무슨 지랄이야? 미친 새끼야!”

  한동안 몸싸움이 이어졌다. 엎고 깔리고 치고 빠지고. 체격 좋은 두 남자의 싸움은 맹수들이 영역 싸움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셔츠는 이미 단추가 다 날아가 넝마가 되었다. 땀이 후두둑 떨어지고 열기 어린 먼지가 폴폴 날렸다. 술기운과 흥분으로 필사적인 여지운과 달리 선연홍은 여유로움 마저 엿보일 정도로 가뿐해 보였다. 

  “이제 그만 합시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손목을 꺾으며 상황은 종료됐다. 여지운의 입에서 거친 숨을 연신 뱉어졌다. 술이 완전히 깨지 않아서인지  몸이 무거웠다. 그러니까 이건 힘이 달려서 그런 건 아니다. 절대, 절대로.

  “이게 지금, 무슨 좆같은 상황…….”

  선연홍은 여지운의 허벅지에 앉은 채 두 손을 한 번에 틀어쥐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여지운이 상체를 뒤틀어 봤지만, 상황이 너무 불리했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지며 맹렬한 경고가 울렸다. 여지운은 최대한 침착하려 했지만 내뱉는 목소리에는 이미 조급함과 불안이 묻어났다.

  “욕해준다잖아. 해준다고! 주인님이라고 지껄여도 된다고 했잖아. 와, 진짜. 미치겠네. 뭘 더 바라냐? 뭘 해주면 떨어질 건데?”

  손이 자꾸 헛돌고 심장이 쿵쾅댔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여지운을 핥듯이 훑던 선연홍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좋지만.”

  그의 입안은 여전히 새빨갰다. 살점이 너덜거리는 혀끝과 터진 입술은 달싹 일 때마다 춤추듯 움직였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이 미친 새끼야.”

  “그런 얼굴로 욕을 해 봤자 화나기보다 흥분될 뿐입니다.”

  가만히 웃은 선연홍이 여지운의 성기를 다시 한 번 꾹 눌렀다. 충격에 쪼그라들었던 성기가 퉁 튕겨 올랐다. 그림을 그리듯 여지운의 몸을 쓸며 올라오던 손이 그의 입술을 눌렀다. 아주 작은 틈, 그 사이로 곧은 손가락들이 들어 왔다. 

  “빨아 봐요.”

  “내가 왜, 우훅.” 

  여지운은 제 입에 들어온 손가락들을 뱉어내려 했지만, 목구멍을 찌르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컥.’하고 졸린 신음만 나왔다. 눈두덩에 열이 모이더니 생리적인 눈물이 맺혔다. 눈앞이 흐려지며 노란 전등 빛이 강 위에 저무는 노을처럼 번졌다. 

  “하아…….”

  반듯한 모양새와 달리 선연홍의 손은 자비가 없었다. 목구멍 깊숙이 들어온 손이 이번에는 여지운의 혀를 꾹 눌렀다. 나머지 손으로 여지운의 코와 눈을 덮었다. 목구멍은 손가락에, 코는 손바닥에 막혀있다.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고여 있던 액체가 옆얼굴로 주룩 흘렀다. 고통스럽다, 괴롭다. 숨이 막힌다. 공기가 모자란 몸뚱이가 간헐적으로 튀어 올랐다. 씨발, 이렇게 인생을 마감하는구나. 미친 사이코 손에 기어코……. 

  “고작 손가락인데. 아픕니까? 괴로워요?”

  “커흐.”

  “풀어 줄 테니까 제 부탁 하나 들어줄래요?”

  여지운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제는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의 긍정을 어렵지 않게 알아챈 선연홍이 살짝 웃었다.   

  “지운씨랑 섹스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까?”

  아, 씨발. 섹스든 나발이든 알겠으니까…….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여지운의 입 안을 한참이나 헤집던 손이 빠져나갔다. 잔뜩 조여 있던 심장이 터질 듯이 팽창하며 기침이 터졌다. 쿨럭쿨럭,  몸을 웅크리려 했으나 허벅지에 앉은 선연홍 덕에 어깨만 움츠렸다. 입가를 타고 흐르는 타액도 닦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을 살짝 쳤다. 툭. 

  “정신 차려요, 지운씨. 아직 일러요.”

  뭐가? 여지운의 몸 위에서 내려온 선연홍이 그의 한쪽 다리를 들어 무릎에 걸린 속옷을 잡아 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단 한 번도 그의 사정 하지 않았던 성기는 위로 곧추서 있었다. 그는 기둥을 잡고 여지운의 구멍을 누르듯이 비볐다. 가슴과 목 안에 걸린 숨을 토해내며 퍼덕이던 여지운의 몸뚱이가 딱 굳었다. 화장실에 갈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에 닿는 감각은 생소하기보다 공포스러웠다.

  “선, 연홍?”

  “왜 그런 표정을 합니까? 여지운씨, 지금 되게 예쁜 거 압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다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해주세요.”

  그는 눈꼬리에 꽃망울 같은 웃음을 잔뜩 매달며 허리를 꾸욱 밀었다. 

  “아!”

  여지운의 인생에서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생각조차 못한 일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꿈 아닌가? 술에 취해서 쳐 잤는데 악몽을 꾸고 있는 거 아니냐고. 머릿속에서는 선연홍을 쥐어 패고 있는데 현실은 참혹했다. “어흑.” 여지운은 숨까지 멈춘 채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데 딱 그 짝이었다.  

  “아니, 잠, 이건, 아니……, 아, 윽!”

  단 한 번도 뭔가를 받아 본 적 없던 구멍이 빠듯하게 열렸다. 닫혀 있던 살이 열리는 감각에 여지운의 몸뚱이가 몸서리치듯 튀어 올랐다. 

  지금, 뒤에, 뭐가……?

  “헉! 아악.” 

  “후, 조금만요.”

  “지……흐, 금.”

  지금. 여지운의 허벅지가 덜덜 떨리며 숨이 급박하게 넘어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고통과 공포가 다였다. 겨우 털어냈던 눈물이 또다시 고였다. 이번에는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줄줄 흘렀다.

  “뭐가. 아, 아프, 하으……으.”

  “쉬, 이런, 울지 마세요.”

  그렇게 우니까 제가 더 못 참겠지 않습니까. 선연홍이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여지운의 눈가를 핥았다. 어미 개가 새끼를 핥는 듯 다정했지만, 허리는 난폭하게 디밀고 있었다.

  “아, 앗, 하아. 이, 씨,발. 크으.”

  더 들어 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계속 들어 왔다. 몸 안의 살들이 위로 밀렸다가 성기에 달라붙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윽, 미친 새끼. 이거. 입안에 맴도는 말은 단어가 되지 못하고 거친 숨으로만 토해졌다. 죽을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게 아닐까? 아니면 고문당하고 있나? 아흐으, 으윽. 살려, 아! 여지운의 머릿속에선 온갖 말들이 뒤엉켜 있는데 정작 나오는 거라고는 껄떡거리는 숨이 전부였다. 흐려진 눈 위로 뜨겁고 축축한 것이 닿았다.  

  “……선연홍, 제, 발. 멈…….”

  “아니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침착하려 하지만 그 안에 잔뜩 묻은 흥분은 숨길 수 없었다. 천천히 들어오던 것이 한 번에 쳐들어왔다. 

  “아, 어흑.”

  음낭이 엉덩이에 착 달라붙으며 철벅대는 소리가 났다. 동공이 더 벌어지며 눈꺼풀 위에 매달린 속눈썹들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있잖아요, 지운씨 우는 거 보니까. 꼴리네요.”

  “어흑, 흐.”

  “파들파들 떨리는 거 봐, 진짜 귀엽다.”

  여지운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목덜미가 드러났다. 선연홍은 여지운의 턱을 잡고 내렸다. 빨갛게 물든 젖은 눈이 보였다. 그 안에 담긴 것은 고통과, 치욕과, 수치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를 비웃던 남자는 이제 온통 젖은 채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거기에서 오는 간극이 선연홍을 부추겼다.

  “그래요. 이제 알겠습니다.”

  다정한 웃음을 띤 미남이 고개 끄덕였다. 얼굴에는 그 동안의 고민을 벗어던진 듯 홀가분함이 묻어있었다. 매끄러운 입매가 양쪽으로 올라가며 봄처럼 웃었다. 

  “그동안 여지운씨를 만나면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뭐, ……이 새끼가. 내가 부족하다고?”

  이 와중에도 그건 또 잘 들리나 보다. 여지운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얼굴로 노려보는 건 선연홍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못했다. 흥분시키려고 한 거라면 성공한 것이고. 

  선연홍은 미국에 있을 때도, 대학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도 여지운을 떠올렸다. 계속, 계속. 어느 날은 흐리고 아련했고, 또 어떤 때에는 선명하고 강렬하게 자신을 지배했다. 여지운의 꿈을 꾸고 일어나면 항상 속옷이 축축해졌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해본 적 없는 몽정을 그를 대상으로는 수십, 아니 수백 번 했다. 사람을 깔보는 얼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는 듯한 오만함, 싸가지, 가벼움.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서 한국으로 왔다. 예전과 달리 점잖은 척하는 걸 보고 잠시 실망했지만, 성격을 드러냈을 땐 기뻤다. 로비에서 꽃이 내팽개쳐지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더 화내도 됩니다. 욕을 내뱉고 막무가내로 굴어줘요. 내 주인님이 돼줘요. 여지운씨, 지운씨.

  선연홍은 그렇게 말했지만 늘 부족했다. 무엇인지도 모를 것을 더 갈구하고,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알겠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

  “아흐, 으, 크.”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 끊임없이 원하고 갈망하던 게 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연홍은, 여지운의…….

  “후, 이렇게 좋은걸, 왜 지금껏 몰랐을까요?”

  뻣뻣하게 굳은 허리를 잡아내리는 손은 무자비했다. 여지운은 끌려가지 않으려 팔을 버둥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나동그라진 신발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의 좆이 제 구멍을 쑤시고 들어오는 것도, 질질 짜고 있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겨우겨우 움직여 잡은 순간,

  “흐윽.”

  “쓸데없는 짓 하시네.”

  팔을 틀어쥔 선연홍이 그의 손목 안쪽 살을 핥았다. 잔뜩 긴장한 몸뚱이 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혀끝엔 욕망이 넘실대고 있었다. 여지운의 손가락이 쫙 펴지며 그 끝에 아슬아슬 걸려 있던 신발이 떨어졌다. 툭. 힘없이 떨어진 신발은 선연홍이 집어 방 안으로 던졌다. 

  “아, 욱. 으읏.”

  여지운이 제 허리를 잡고 있는 팔을 떼어 내려냈지만,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주먹으로 쳐봤지만 선연홍은 오히려 기쁜 듯이 웃었다.

  “미, 친…… 아, 아으, 윽.”

  선연홍을 떨쳐내는 것을 포기한 여지운이 제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입을 벌리면 금방이라도 뭔가가 나올 것 같았다. 이를테면 지금 밑을 헤집는 뜨겁고 단단한 어떤 것이라든가. 또는 아주 끈적이고 원초적일지도 몰랐다. 

  “하, 으, 윽. 아, 프, 아악. 움직이지, 흣, 으, 읏”

  “움직이지 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이제껏 단 한 번도 포식자의 자리에서 내려 와 본 적 없는 제왕은 이제 피식자가 되어 철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사고가 정지한 것 같다. 그는 그저 선연홍이 움직이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우, 흐으.”

  “뭐라고요? 잘 안 들립니다.”

  땀, 눈물, 타액이 뒤섞인 살갗은 조금만 건드려도 파르르 떨렸다. 아, 이제껏 깔린 놈들이 ‘ 좋아. 좀, 더 세게, 세게.’ 했던 것은 다 거짓이었구나. 이게 뭐가 좋다고. 뾰족한 고통이 온몸을 난도질하는 혼몽한 머릿속으로 애인 새끼들이 퍼부었던 악담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아랫도리 휘두르고 다니니까 좋냐? 이 나쁜 자식아. 꼭 너보다 더한 남자 만나서 당해봐라. 피눈물 흘려 보라고.’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제 아래를 헤집는 걸 뽑아낼 수만 있다면 전 애인들 발가락이라도 핥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 발가락…….”

  “발가락? 발가락 좋아합니까?” 

  선연홍은 자꾸만 거칠어지는 숨을 억지로 삼키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여지운의 발목을 잡고 발가락과 발바닥을 핥았다. 입안이 터진 덕분에 그의 혀가 지나는 자리마다 붉은 길이 그려졌다.

  “좀 전에, 말하다 말았죠? 여지운씨를 만나면서 아주 조금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마도.”

  “…….”

  “여지운씨의 주인님이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선연의 입가에 말라붙었던 피는 땀방울과 섞여 여지운의 뺨 위에 툭 떨어졌다. 그 말은 들은 여지운은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육체의 고통마저 잊었다. 

  “뭐……가 되고 싶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뿐이니까.” 

  다행이다.

  “우리는 서로의 주인님이 되는 겁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상큼한 얼굴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선연홍은 정말 미친놈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내뱉지 않았다. 정말로 미친 짓거리를 할까 봐 무서웠다.

  “그렇지 않으면 여지운씨가 이렇게…….”

  “아, 씨발, 아…….”

  “헐떡이는 것에 흥분을 느낄 리 없잖습니까?”

  충격에 충격을 받고 거기에 더 강한 충격이 쏟아졌다. 지금 이 상황이 개꿈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아래를 쑤시는 것이 뜨겁고 선명해 현실도피도 하지 못했다. 

  “아, 그만. 아프, 아프……. 흐으.”

  여지운이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닫았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행위였으며 욕정과 정욕에 가득 찬 사내를 부추기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선연홍은 여지운의 다리를 잡아 벌리며, 안쪽으로 허리를 밀어 넣었다. 여지운의 궁둥이에 음모와 음낭이 눌릴 정도로 깊게 닿았다. 선연홍은 그 상태에서 조금 더 쑤셔 넣었다. 엉덩이 근육이 바짝 조여질 정도로 강하게. 그 순간 여지운의 눈앞이 하얘지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아?”

  “…….”

  차가운 공기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나, 둘. 눈물과 콧물 그리고 선연홍의 핥아 놓은 타액으로 엉망인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던 여지운의 시선이 선연홍과 마주쳤다. 그는 어느새 웃음을 거둔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살짝 뺐다가 다시 처넣었다. 

  “아, 아흣? 아.”

  눈앞에서 빛이 터졌다. 수만 개의 전구가 동시에 폭발하며 반짝이는 잔재를 남겼다. “아흑.” 목구멍 안에 걸린 숨이 한참을 맴돌다가 뱉어졌다. 강렬하고, 따갑고, 간지럽고, 폭발적인…….    

  “무, 뭐, 이게, 방금.”

  아하. 선연홍이 아랫입술을 핥았다. 찢어진 입술에 닿는 혀가 따가울 만했지만, 그것보다 다른 감각이 앞섰다. 다른 감각, 이를테면 눈앞의 남자의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같은. 

  귀두 끝이 안쪽 살을 지그시 누르자 여지운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쫙 벌어진 손가락 끝, 손톱이 대리석 바닥을 긁었다.

  “하, 허으!”

  사납다, 눈초리가 나쁘다고 평해지는 눈꼬리에 흐르지 못한 눈물과 당황이 매달려 있었다. 

  “뭐, 어어, 이거, 하…….”

  뭐냐고 물어봤자, 선연홍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거, 뭐, 흐, 냐고…….”

  “글쎄, 뭘까요.” 

  여지운의 양옆을 짚은 선연홍이 이마와 양 뺨, 그리고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뭔지는 직접, 겪어 보면, 후. 알지 않겠습니까.”

  그때부터는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자국이 날 정도로 여지운의 허벅지를 세게 잡아 벌린 선연홍이 여지운의 구멍을 거칠게 박으면서 시작된 섹스는 난장판이었다. 

  “아, 아핫, 아아. 잠, 으, 깐, 좋, 흐읏, 아, 씨발, 존, 아…… 거기, 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미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뒷구멍이 뚫리는데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몸을 반으로 가르고 들어온 쇠몽둥이가 쇠고기들 다지듯 두들기던 고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픔을 덮은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간지러움이었다. 눈이 멀 정도로 번쩍이는 쾌감이 여지운을 후려쳤다. 아, 미칠 것 같다. 빨갛게 물든 세상 위로 하얀빛이 번져갔다.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움츠러들고 쪼그라들었던 몸뚱이는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숨을 쉬는 것도, 소리를 내는 것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그 감각들까지도 새삼스럽다. 

  “아흣, 으, 씨발, 더, 더, 크읏, 흐, 읏.”

  여지운은 제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감정과 욕망을 토해냈다. 숨을 쉴수록, 들이마실수록 배 속이 뜨겁고 가쁘고 좋고, 좋아서 미치겠다. 선연홍의 음낭과 허벅지가 쳐대는 여지운의 궁둥이는 이미 벌건 멍이 번져 있었다. 이성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지금 여지운을 지배하는 것은 미칠 듯, 아니, 이미 미친 쾌감. 그것이 전부였다. 

  여지운의 사지가 떨리며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입 안으로 선연홍의 손가락이 들어와 목구멍을 후볐다. 좀 전과 같은 행동이었지만 좀 전과 다른 감각이 피어올랐다. 아, 좀 더, 해줬으면.

  “어흑, 으흣, 아, 앗.”

  새빨간 혀가 여지운의 뺨을 쓸고, 광대를 깨물고 눈가의 얇은 살들을 빨았다. 발등이 일직선으로 쫙 펴지며 발가락이 안쪽으로 굽어들었다. 손은 바닥을 더듬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자극 의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선연홍의 귀두가 구멍을 벌리고 안쪽을 쑤실 때마다 몸뚱이가 제어가 안 됐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속살이 멋대로 밀렸다가 쓸려 내려가고 엉겨 붙기를 반복했다.

  아, 뭐가, 뭐가 이래. 왜 이래, 이게 대체 뭐야, 무슨,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으, 으, 그, 만, 이제…… 하읏, 읏.”

  “내가 왜.”

  “나, 좀, 아흐.” 

  쩍쩍이며 닿았다 떨어지는 살결 위로 쾌감이 지르르 번졌다. 선연홍의 성기는 뜨겁고, 무자비했다.  

  “죽을 것 같이.”

  “아……, 아아.”

  “좋잖아?” 

  금방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방망이질 쳤다. 빠르고 또 빠르게. 허억, 헉. 작은 불씨들이 몸 안쪽을 기어 다녔다. 간지러운데, 그 간지러움에서부터, 그게, 아. 흐. 으. 좋, 좋……! 이거. 아흣.  

  “아, 윽, 씨, 아, 발, 미친, 악……! 흣”

  처음으로 열린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지며 성기가 그 안을 쑤셨다. 비처럼 쏟아지는 땀 덕분에 미끄러질 만도 한데 선연홍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움켜잡았다.  단정한 손이 무자비하게 엉덩이를 갈랐다. 성기에 처박히는 구멍이, 구멍을 드나드는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선연홍은 순간부터 웃음을 거두고 있었다. 땀에 젖은 얼굴은 집요하고 진지했다. 그는 여지운의 표정, 행동, 말, 숨 어느 하나도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여유가 없다. 꾹 감은 눈과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 발갛게 변한 눈가와 코끝, 예쁘게 물든 뺨과 목덜미 그리고 뒤로 살짝 젖혀진 얼굴과 빳빳하게 일어선 젖꼭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쾌감에 들썩이는 허리와 허벅지까지. 아주, 굉장히, 보기 좋았다. 

  “후. 지운씨, 여지운씨.”

  선연홍은 여지운의 뺨을 깨물었다. 한 번으로는 자국이 나지 않아 또 한 번 깨물었다. 또, 또다시. 잇자국이 선명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멈추지 않았다. 치열이 그대로 찍히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 입맞춤을 했다. “아.” 입술 사이로 미끄러진 선연홍의 혀가 여지운의 입천장을 두드렸다. 위에서 내리누르고 있어서인지 먹어 치우는 것 같았다. 아주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키스는 입안의 살들까지 모두 빨고 핥은 후에야 멈췄다. 

  “좀 전, 이게 뭐냐고 물었죠? 이제 좀 알겠습니까? 무엇인지.”

  “아, 흑, 더, 으으, 거, 거기.”

  “이렇게, 이런 표정을 지을 거면서 그동안.”

  “흐, 읏.”

  선연홍이 여지운의 쇄골을 빨았다. 꽉 깨물면 피가 날 것 같은데, 그럼 더 울어 줄까. 더 흔들려줄까? 더, 더 더. 수치심에 부들부들 떠는 게 보고 싶었고 제발 그만두라는 애원도 듣고 싶었다. 물론 그래도 그만 둬 줄 생각은 절대 없었지만. 

  “여지운씨, 그동안 재밌게 잘 놀았죠?” 

  “아, 씨, 흐. 존나 좋, 아.”

  “많이 해봤잖습니까, 그럼 이제 영원히 안 해도 되겠네, 안 그래요? 여지운,씨.”

  여지운의 과거, 그와 관계된 사람들과 기억들이 새삼 다가왔다. 

  “이거.” 

  그는 곧추선 채 정액을 질질 흘리는 여지운의 성기를 움켜잡았다. 창공을 유유히 날던 매가 한순간에 먹이를 잡아챈 것처럼 빨랐다.

  “앞으로 쓸 일 없을 텐데, 많이 아쉽겠어요.”

  사실 선연홍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내뱉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다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쾌감과 여지운이 좀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 선명할 뿐.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오만하고 도도한 남자가 쾌감에 푹 젖은 모습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그때 미국에 가는 게 아니고 한국에 계속 있었을 텐데, 그럼.

  “좀 더, 빨리 이럴 수 있지, 있었을까요, 여지운씨.” 

  “아, 아아, 닥치, 흐,흣. 닥쳐.” 

  “뭐 상관없어요.”

  “흐, 아, 아, 앗, 좀, 그, 만.”

  “그만큼 하면 되니까.”

  선연홍이 거칠게 박아 넣자 여지운의 몸 역시 거세게 들썩였다. 허공을 휘젓던 손은 어느새 깍지가 껴져 있었고 다리는 번쩍 들려 선연홍의 어깨에 걸쳐진 채 달랑이고 있었다. 허리 사이에 틈이 생기며 엉덩이가 자꾸 들썩였다. 도무지 통제가 안 됐다. 머릿속도 몸속도 제멋대로 날뛰었다. 허벅지가 벌려지고 엉덩이 구멍 안으로 씨발, 좆이, 좆이 들어 왔는데 이게 이렇게 좋다니. 밑이 안 보일 정도로 아득하고 깊은 곳으로 떨어질 것 같은 감각은 공포와는 닮았지만, 확연히 다른 고양감과 부유감. 그리고 쾌감.

  “그, 만. 좀. 이러다가……, 앗.”

  “이러다?”

  “너무, 흐.”

  여지운의 눈앞에서는 여전히 빛들이 반짝였다. 그것은 바에서 봤던 크리스마스 전구와 비슷했지만, 그것보다 수배는 밝았다.  

  “아.”

  “이러다 뭐.”

  이러다가, 이런, 이건, 아니……. 

  “어떻습니까? 박히는 기분은요.” 

  귓바퀴를 느리게 쓸어내리며 속삭이는 말들은 밀어처럼 비밀스러웠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여지운의 속이 뒤집혔다. 지금 이게, 이 상황이, 남자에게 뒤를 뚫려 온갖 질척이는 감각들에 흔들리는 게 믿을 수 없어서, 믿을 수 없는데 너무 좋아서. 좋다는 말을 몇 번 하는지 모르겠는데 달리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다.

  여지운이 고개를 모로 돌리자 선연홍이 그의 턱을 들어 올려 입맞춤했다.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웠다. 

  “씨, 발 새끼야, 죽어…….” 

  겨우 내뱉은 목소리는 이미 잔뜩 갈라져 거칠었다. 여지운은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지만 짓물린 눈가와, 치열 자국이 선명한 뺨인 채였으니 선연홍에겐 가소롭, 아니. 귀엽기만 했다. 

  “그래요, 죽어 봅시다. 복상사 좋겠네.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야, 이…… 하악, 아앗, 악, 아, 아흐, 아, 읏, 아! 아!”

  여지운의 발목을 잡은 선연홍이 그의 발가락을 빨았다. 예민한 부분이 따뜻한 점막에 삼켜져 오므라들었다. 미칠 것 같이 수치스럽고, 또, 또.

  “……으흣!”

  무섭게 날뛰던 감각이 몸 안으로 쏟아지며 그 위를 나른함이 덮었다. 끝까지 치달았던 절정의 쾌감이 흩어지며 여지운의 입에서 긴 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후.”

  얼굴을 쓸어내리려 했지만, 손을 들 힘도 없었다. 바닥을 짚은 손가락들은 다 녹은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쾌감은 여지운의 육체를 점령한 채 자존심과 자신감을 박살냈다. 그야말로 개박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보다 처음 겪어본 거대한 감각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다. 방금, 그 것들은 대체 뭐였을까. 좀 전 절정 때처럼은 아니지만, 여지운의 심장은 여전히 쿵쿵 울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 절정……? 절정이라니. 무슨 절정? 

  “지운씨.”

  여지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단정하고 다정했다. 또한, 익숙하기도 했다. 지난 두 달간 거의 매일 듣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이전과 다른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저 매끈한 껍데기 안쪽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 개……. 씨발, 씨발 새끼야! 억!”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선연홍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선연홍의 좆을 구멍에 끼운 채였다. 몸 안에 틀어박힌 것의 감각이 더 신명 해질까 봐 움직이지도 못했다.   

  “미친 새끼, 개새끼. 죽어라, 제발.”

  예전 여지운이 만났던 원나잇 상대가 둘 다 되는 놈이었는데 박는 것과 박히는 느낌은 완전 다르다고 말했었다. 처음 뒤를 뚫리면 남자로서의 중요한 뭔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 우울한데 쾌감이 그 상실감을 덮을 정도라나. 그때 여지운은 ‘새끼, 지랄하네.’ 하고 웃고 말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상실감이고 자존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필요 없다고 할까,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이 미칠 것 같은 쾌감을 더 달라고. 

  아니, 아니다. 여지운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미쳤다. 영원히 계속 됐으면 좋겠다니, 뒷구멍에 선연홍의 성기를 쑤셔 박은 채로, 그 무기력함과 탈력, 그리고 통제되지 않은 채 멋대로 날뛰는 쾌감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이 내가? 섹스 따위는 단물 섞인 껌에 지나지 않다고 여기는 여지운이. 남자의 성기를 꽂고 흔들리는 게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괜찮습니까? 물 마실래요?”

  여지운을 미친 듯이 밀어붙이며 모든 감각을 터트리고 녹아내리게 한 남자는 다시 다정한 가면을 쓰고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괜찮……냐고? 지금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 본거냐?”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서요.”

  눈물도, 애원도 모두 씹어 넘기고 제멋대로 하던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을 천천히 쓸었다. 치열과 울혈로 엉망인 살갗을 훑는 손바닥은 다정했고 손끝은 조심스러웠다. 여지운의 구멍을 쑤시고 있는 성기만 아니었더라면 깜빡 속았을 정도로 진실해 보였다. 

  “끝났으면 빼. 빼라고 이 새끼야.”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도 못 한 여지운이 밀려오는 수치를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연홍이 물러서자 버거울 정도로 밀려있던 안쪽 살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 소름 돋는 느낌에 헛숨을 들이키는 순간 몸이 들렸다. “헉.”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던 여지운은 저를 안아 올린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누가 끝났댔습니까?”

  그는 여지운의 무릎과 어깨를 감싸 안고 들어 올렸다. 여지운은 평균보다 키도 체격도 좋은 편이었는데 가뿐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키스, 자위, 몸싸움 그리고 섹스까지 모두 현관 입구에서 뒹굴던 두 사람은 이제야 겨우 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안 내려놔?”

  “내려가 보든가.”

  “뭐?” 

  “크리스마스 내내 뒹굴 예정이었다고 안 했습니까?”

  안 쪽 방까지 성큼성큼 걸어간 선연홍이 제 품 안의 남자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온기가 돌지 않는 공기와 낯선 시트는 차가웠다. 그리고 선연홍의 얼굴은 그보다 조금 더 서늘했다. 

  “병신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욕 같은 건……. 왜 이렇게 학습력이 없어요.”

  선연홍은 한쪽 무릎을 침대 위에 올린 채 여지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는 선연홍의 손이 얼굴 가까이 오자 몸을 살짝 움츠렸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처럼 다가섰던 선연홍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줬다.

  “걱정하지 마요.”

  “…….”

  “크리스마스는 멀었으니까.” 

  

  * * *

  

  색색의 전구, 달랑달랑 울리는 종소리, 쌀쌀한 바람과 그 사이로 흩날리는 눈, 커다란 리본이 달린 선물상자, 팔뚝만 한 뿔이 돋아난 루돌프와 그 옆에 선 넉넉한 체형의 산타클로스. 어딘지 모르게 들뜬 기운들, 기분들. 

  크리스마스. 여지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 역시 없다. 커다란 트리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화목한 가족 따위는 말 그대로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엘리트코스를 착착 밟은 부모님은 전형적인 상류층 인간으로 제 자식들에게까지 완벽을 바랐다. 공부 잘하는 아들,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존재. 그들에게 자식의 기준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형은 부모님께서 바라마지 않는 그런 완벽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여지운은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운동도. 최상위권에 있는. 하지만 부모님께서 원하는 건 잘하는 것 따위가 아닌 완벽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여지운은 미운 오리 새끼였을지도 모르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아니, 분명 덜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이고 약하게 깨무는 손가락도 역시 있을 것이다. 차별이 슬프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글쎄? 그때는 그런 차별이 당연하다고 느꼈으니까 외롭거나 서러울 것도 없었다. 가진 게 있어야 빼앗겼을 때 억울할 텐데, 애초에 가진 것도, 받은 것도 없었다. 아, 하나 있네. 한심함이 가득한 눈빛. 그건 실컷 받았다. ‘네 형은 안 그런데 넌 왜 그러니?’, ‘우리는 안 그랬는데, 지운이 넌 왜 이것밖에 못 하니.’, ‘넌 왜, 왜, 왜.’ 

  한때는 잘하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뭘 해도 부모님에겐 부족했다.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해도 돌아오는 것은 부정이었다. 넌 안 돼, 부족해. 그래서 차라리 집을 박차고 나올 땐 후련했다. 무더운 여름, 반장 새끼랑 방에서 뒹굴다가 들켰을 때,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면서 처음으로 웃었다고. 어차피 나는 당신들한테서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근데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건데? 

  “지운씨……? 지운씨.” 

  비명 섞인 부모님 목소리 위로 애틋한 목소리가 겹쳐졌다.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저렇게 다정하게 불러 준 적이 없는데, 누굴까? 눈이 왜 안 떠지지, 왜 이렇게 따갑고, 무겁고, 숨이 막……히는 거야.

  “헉, 흐읏.” 

  등허리가 붕 뜨자 여지운이 본능적으로 하체에 힘을 줬다. 후, 달뜬 숨이 살갗에 닿았다. 눈을 뜨고 했지만, 뭔가가 눈두덩을 꾹 누르는 듯 무거웠다. 말을 내 뱉으려 입을 열었으나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닌 목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잔뜩 절여진 달콤한 신음. 

  한참을 노력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뜬 여지운은 눈앞에 가득 찬 하얗고 검은 것과 마주했다. 유난히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하얀 남자가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선……연홍?”

  “잘 잤습니까?” 

  눈꼬리를 휘며 웃은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이게 대체? 아흑. 흣.”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불덩어리가 확 치솟았다. 뜨겁고, 간지럽고, 따갑고 소름 돋을 정도로 짜릿한 감정들은 마치 전기가 통하듯이 몸 전체로 퍼졌다. 

  “뭐, 뭐하는, 설마…… 이 씨발, 새끼가…….” 

  “하하.” 

  쌍욕에 대한 답은 가벼운 웃음이었다. 경악한 여지운과 달리 그는 무척 기분 좋은 듯했다. 발그레한 꽃물이 든 눈가와 뺨이 어여뻤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 따위를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뭉근하게, 또 거세게 터지는 감각에 선연홍의 팔을 붙들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 어제부터, 아직, 크흐, 읏.”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 

  그 사이에 정액을 얼마나 싸질러 놨는지 선연홍이 움직일 때마다 뱃속이 출렁거렸다. 기분탓으로만 여기기엔 정액 특유의 비린 냄새가 진동했다. 

  “뭐하긴, 다리 벌리고 나한테 박히고 있죠. 그리고 지금, 오후 2시.”

  속으로 중얼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모양이다.   

  “…….”

  어두웠던 방안은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커다란 창 너머로 뿌연 솜털들이 날리고 있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것들, 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지운은 목이 거의 뒤로 꺾인 채 창밖을 응시했다. 선연홍 역시 고개를 들어 흩날리는 눈을 쳐다봤다.

  “눈 내리네요, 하지만 지금은 저것보다 저에게 집중해주시지 않겠어요?”

  “흐으, 밤, 밤새……. 이 짓, 아,” 

  “그렇긴 한데 당신은 자고 있었으니 체감 시간 얼마 안 되잖습니까? 그렇게 세게 박히는데도 잘만 자던데.”

  “어으, 흐. 흣.”

  “실망 안 해도 됩니다. 쉽게 끝낼 생각 없으니까.”

  눈이 따가 울 만큼 처 운 것 같고,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가물가물한 기억 끝에는 애원도 있었다. 자존심 상하고 말고 그때는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선연홍은 아주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 죽어요.’

  그게 여지운이 붙들고 있는 기억의 마지막이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전히 선연홍의 성기가 여전히 박혀 있었다. 조금만 스쳐도 따갑던 살갗은 이제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미친 새끼, 미친, 미……미친.”

  “좋네요. 더 해봐요, 더.”

  “아, 씨발, 지금, 더 커졌어.”

  이번에야말로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여지운이 욕을 할 때 마다 제 안에 있는 성기가 꿈틀댔다. 자연히 속살이 밀리며 당황과 쾌감이 뒤엉긴 소리가 흘렀다. 은밀하고 야릇했다. 

  이건 정말, 정말…… 미쳤다고 할 수밖에.

  “허리 흔들어 봐요. 그래야 끝내죠.”

  “하으.”

  “더 하고 싶으면 그렇게 뻣뻣하게 굴던가. 물론 저는 그게 더 좋긴 합니다.”

  하룻밤이 지났으니 분명 술이 깼을 텐데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고 뱃속은 울렁거렸다. 여지운의 육체도 정신도 허우적댔다. 몽롱한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마치 구원 같았다. 여지운이 허벅지에 힘을 주며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다. 뭐라도 좋으니까, 이 죽을 것 같은 쾌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짓이든. 

  선연홍이 여지운의 옆구리를 움켜쥐고 상체를 밀었다. 발끝이 머리 옆에 닿을 정도로 몸이 뒤집혔다. 이건 뭐 배를 드러내 복종하는 개도 아니고,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그 치욕도 쾌감 앞에서 꼬리를 말았다.

  “옳지, 그래요. 울지는 말고.” 

  “아윽, 흣.” 

  자신의 꼬리뼈를 지그시 누르는 손에 여지운의 발바닥이 오므라들었다. 그러자 선연홍이 딴딴한  엉덩이를 움켜쥐고 처박듯이 쑤셔 넣었다. 찰싹찰싹, 살갗이 서로 붙었다가 떨어지며 야한 소리를 자아냈다. 

  “후, 잘했습니다.” 

  그는 여지운의 이마와 옆머리에 연신 입을 맞추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유두가 서로 눌리듯 스치며 찌르르한 감각이 퍼졌다.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소름에 여지운의 몸이 감전된 것처럼 떨렸다. 

  “흣!”

  선연홍의 속눈썹 위에 땀방울이 마치 빗물처럼 맺혀있었다. 맞닿은 몸이 순간적으로 바짝 섰다가 곧 안쪽에 뜨뜻한 기운이 번졌다. 끝났구나. 다행이다. 신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 했다. 이제는 나올 정액도 없는 여지운의 귀두에서는 묽은 정액만 찔끔찔끔 나왔다. 선연홍이 힘없이 늘어진 성기를 힐끔 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요. 지운씨 구멍에서 많이 나옵니다.”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이 이어진 접합부에서 넘친 정액이 여지운의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좆같았다. 

  “흐으, 씨발.”

  “웁니까? 울지 마요, 울면 또 박고 싶잖아요.”

  하얀 손끝이 잔뜩 짓물린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냈다. 

  “누가 운, 운다고. 개소리를, 지껄여.”

  “이제는 안 건드릴 테니까, 자요.”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 역시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이야말로 미친 것이었다.

  선연홍은, 미쳤다고. 지금 여지운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밤새 지나치게 시달린 몸이 피곤을 호소하고 있었다. 섹스의 격렬함과 사정의 나른함이 여지운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반드시 널 죽일 거다.”

  여지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선연홍은 아무 감정도 띠지 않은 무표정으로 그를 내려 보았다. 부은 눈이나 빨간 콧등, 젖은 뺨은 평소의 오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하네, 이상해. 정말 이상했다. 선연홍이 매일 밤 그리고 기대했던 것은 제멋대로인 여지운이었다. 자신을 사로잡고 귓가에 유혹을 속삭였다. 그 도도한 얼굴로 혼내줬으면 싶었다. 자신을 지배하고 막 대해주는 게 너무 좋아서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지금은.

  여지운을 지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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