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7화 (7/18)

7.

  

  그 후 집에 들어가 씻고 티비도 보고, 자려고 누웠던 여지운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뭘 해도 집중이 안 되고 배 속이 울렁거렸다. 그날 이후로 불쾌와 불안이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답답하고 복잡했다. 찬바람이라도 쐬며 담배라도 피워야겠다.

  “진짜 지친다.”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맞이한 밤은 특유의 서늘한 냄새가 가득했다. 여지운은 밤을 좋아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 무거운 어둠마저도 모두 흩어질 정도로 격렬하게 섹스하고 난 뒤 창문을 열면 밤바람이 쏟아지는 데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남자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섹파도 아니고, 끝나자마자 등 돌리고 담배 피우는 걸 보는 게 얼마나 속상한지 아느냐.’며 툴툴댔다.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여지운이 몸을 돌려 그 남자를 봤다. 

  ‘그럼 이게 섹파가 아니면 뭐냐? 그래서 한 판 더 할 거야 말 거야?’

  그 남자는 정떨어진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여지운에게 엉겨 붙었다.

  그랬던 때도 있었지. 넘실거리는 기억들을 삼켜 넘긴 여지운이 겨드랑이에 양팔을 낀 채 걸었다. 아. 춥다.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내려는 순간 눈앞에서 헤드라이트가 팍 터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뭐야?”

  눈을 쏘는 빛을 피해 옆으로 이동한 여지운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눈가를 좁혔다. 물 흐르는 것처럼 유연하고 매끈한 선을 그리는 자동차는 쉽게 볼 수 있는 기종이 아니었다. 웬만한 사람은 평생을 퍼부어도 사기 힘들거든. 하지만 그는 저 차도, 차의 주인도 알았다.

  “…….”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헤어진 게 오후 11시 좀 넘었었으니 4시간 가까이 이러고 있다는 건데.  

  “선연홍.”

  여지운이 차체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나와. 나오라고. 

  “대체 여기서 뭐하냐. 스토커도 아니고.”

  “스토커라니요.”

  차 문을 열고 나온 선연홍이 가볍게 웃었다. 건즈앤로즈에서 봤을 때 그의 인상은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 탐색할 때에는 다정한 듯하면서도 싸늘했다. 교제하는 동안은 순종적이고 온순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표정 보니까 자다 일어난 건 아닌 것 같네요. 출근, 안 피곤하겠습니까?”

  너 같으면 잠이 오겠냐? 소리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다음 만날 때 이야기할까 생각했습니다만, 기왕 만난 김에 말하겠습니다.”

  “……무슨 얘기?”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뜻한 대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좀 전, 여지운씨에게게 박치기를 당하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싫어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지랄을 해 놓고 뭐, 싫어하는 줄 몰라?”

  겨울의 찬 공기와 깊은 밤 위로 흰 입김이 나풀나풀 춤을 췄다. 선연홍은 어둠 속에 녹아들지 못한 듯 유난히 도드라졌다. 

  “내가 널 좋아할 이유는 없잖아. 네 성적 취향……. 그래, 그럴 수 있다 치자. 맞는 거 좋아하고 흥분할 수 있지. 근데 그게 내가 되면 사양이다.”

  “손대지 않겠다면요.”

  “뭐?” 

  “그때처럼 손대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니 석 달만 제게 시간을 주세요. 그 이후로도 지운씨가 절 여전히 끔찍해한다면 물러나겠습니다.”

  “내가 네게 호감을 느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어.”

  “하지만 그 안에 당신이 날 필요로 하면 내가 이기는 겁니다. 어때요?”

  선연홍이 조심히, 그리고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그 얼굴 위로 그때의 기억이 겹쳐진다.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몸서리칠 만큼 선명했다. 

  처음 느끼는 쾌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주 작은 것까지도 예민하고 민감하게 느껴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뚱이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주도하는 것이 아닌 끌려가는 처지가 심적으로 얼마나 움츠러드는지도 알았다. 가르고, 헤집어지고, 끓어올라서 끝내는 폭발하듯이 터지는데…….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고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목덜미와 귓가에 뺨에 솜털들이 바짝 서고 심장이 쿵쿵, 아니 쾅쾅쾅 울렸었다. 쾅쾅쾅쾅! 부풀어 오르고, 부풀어 오르고, 부풀어, 펑, 곧 펑하고 터질 것처럼. 

  좋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이성 따위야 아주 짝에도 쓸모없이 오로지 본능만이 머릿속을, 공기를 꽉 채웠다. 굴욕적인 상황과 수치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짙고 깊은 쾌감이었다. 그것이 여지운을 충동질했다. 발끝에서부터 찌르르 퍼져 나온 그 느낌이 발목을 타고 와 허리에 번졌을 때는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상승과 추락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해 마지막에는 두려움까지 일었다. 이건 도무지 안 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바랐다. 좀 더 거칠고, 조금 더 질척이게 휘저어 주기를. 여태껏 여지운을 지탱하던 것이 아닌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평생 처음 느껴본, 처음…….

  “여지운씨?”

  먹먹한 귓가를 뚫고 들려오는 제 이름에 여지운이 흠칫했다. 어느새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맺혔다. 

  “얼굴 빨갛…….” 

  탁. 

  선연홍의 손을 치워낸 여지운이 목구멍에 가득한 숨을 내 쉬었다. 자신이 쾌락에 약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더니 손바닥에 당황이 묻어 있었다.

  이렇게 쌀쌀한데도 괜히 열이 났다. 겉이 아닌 속에서. 

  그리고 선연홍은 이마의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와 옷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많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딱 두 방울. 뚝. 뚝.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웃던 선연홍은 여지운과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여지운씨를 포기할 마음, 없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조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싫다는데 조율이고 나발이고가 무슨 소용이 있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납득하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 당신을 포기할 생각 없습니다.”

  “그거야말로 이기적이네.”

  “어차피 여지운씨에게 전 이기적인 변태지 않습니까? 여기서 더 막 나간다고 해봤자…….”

  “…….”

  “좋아요, 알았으니까 그런 얼굴로 보지 마세요. 그래도 전 당신을 못 놓으니까.”

  “그건 네 사정이고. 난 당장 내일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인데? 너 따위는 안중에 없으니까.”

  “그래요.” 

  지랄 할 거라는 여지운의 생각과 달리 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한 긍정에 되레 불안을 느낀 건 여지운이었다. 며칠 간 그가 겪었던 선연홍이라는 인간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요.”

  “협박 하냐?”

  “지금은 권고입니다.” 

  지금은, 이라고 말하면서 선연홍이 살짝 웃었다. 회사에서, 집 근처에서. 그는 여지운이 주춤하게 할 정도의 장소에서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나한텐 이득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지 않으면 여지운씨가 그렇게 말하는 ‘미친놈’이 어떤 건지 보게 되겠죠. 알다시피 전 제정신이 아니잖습니까.”

  “협박 맞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쓰레기네.”

  “협박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선연홍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 없습니까?”

  여지운이 선연홍의 머플러를 노려봤다. 보드라운 면 위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선연홍 같은 인종들은 거부하고 피하면 오히려 더 불타오른다. 차라리 같이 맞장구 쳐주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면 재미없다고 떨어지지. 여지운 역시 그런 감정을 알고 있다. 정복감. 비슷한 예를 들면 노말 남자를 꼬셔서 따먹는 것이다. 그때 정말 짜릿했는데. 그 얘기를 백선우에게 말했더니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거부하니까 더 집착하게 되는, 그런 거 있죠. 그래도 지운씨가 나쁜 남자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요.’ 그렇게 대답했었다.

  아무튼 지금 선연홍이 자신에게 이렇게 집착하며 스토커처럼 구는 것도 그런 것의 일종이 아닐까. 독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말이 있듯 지랄은 더 한 지랄로 응대해야 한다. 핏자국에서 시선을 뗀 여지운이 선연홍을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무해한 얼굴로 여지운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지운의 입술이 위아래로 벌어졌다가 이내 닫혔다. 그는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대신.” 

  “대신?”

  “석 달은 너무 기니까 두 달로 해. 두 달간 마음껏 지랄하다 내 눈앞에서 꺼져.”

  “그렇게 하겠습니다.” 

  깔끔한 대답이었다. 못 들은 척 막무가내로 굴었던 것은 역시 일부러였다. 

  “하지만 지운씨가 내게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내 거예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이건 조잡한 영화 따위가 아니라 현실이야. 현실적으로 내가 네게 손 내밀 일은 절대 없다는 데 내 좆을 걸지.”

  “감사합니다. 기대되네요.” 

  가까이 다가온 선연홍이 손을 내밀었지만, 선뜻 잡지 못했다. 그러자 선연홍이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미소 지었다.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이 마주 닿고 손가락이 얽히는 순간, 심장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들숨에는 차가운 긴장이 가득했다. 잘하는 걸까, 이게 맞는 거겠지. 가슴 한구석 똬리를 튼 불안을 애써 눌렀다. 이게 맞는 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미친놈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두 달이 아니라 이십 년이 흘러도 자신이 저 남자를 받아들일 일은 없다. 

  “그럼 일단은 두 달간 잘 부탁합니다.”

  “두 달 뒤에도 지금처럼 지랄할 수 있는지 보자.”

  퉁명스러운 말에도 선연홍은 나직하게 웃었고, 여지운은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응시했다.   

  결국, 담배에 불도 붙여 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이번에야 말로 잠을 자려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깊은 새벽과 이른 아침의 어드메, 창 너머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만이 지금 완전한 어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후, 씨발. 진짜

  “아아아악!”

  이불 안에서 마구잡이로 발길질했다. 두꺼운 솜이불인 탓에 잘 차지지도 않았지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딴 내기에 왜 응했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이 어떤 개지랄을 해도 평소처럼 무시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악! 아악!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여지운이 이번에는 매트리스를 마구 쳤다.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뒤로 벌렁 누웠다. 

  “홀린 것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을 저주하고 매달린 사람은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협박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한 거다.”

  이대로 애매하게 스토커 짓 하게 놔두느니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낫다.

  띠링, 어둠 속에 울리는 전자음은 유난히 컸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여지운이 손을 더듬어 휴대 전화기를 열었다. 

  -아침에 깨워 드릴 테니, 푹 주무십시오. 좋은 꿈 꿔요. 지운씨.

  선연홍이었다.

  미친 새끼. 여지운은 몇 번째인지도 모를 욕을 중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 * * 

  

  어수선하게 이어지던 기운은 어느새 새해를 앞두고 있었다. 12월 31일. 매번 같은 하루인데도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일 것이다. 여지운은 올해 서른두 살이었다. 생일이 지났으니 만으로 서른하나. 이제는 어떻게 해도 20대가 아니지만, 애초에 나이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설익은 풋풋함이 있었다면 농익은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여지운은 한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평소보다 더 신경 썼다. 물론 하드웨어가 좋으니 뭘 해도 잘났지만. 그는 넓은 어깨와 팔다리를 부각해줄 니트와 파란색 코트를 덧입고 집을 나섰다. 튀는 색이었지만 어차피 누가 뭐라 하든지 본인만 만족하면 됐다. 

  엘리베이터가 주차장에 있어 도착하려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 사이 여지운은 벽 옆에 달린 거울을 응시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겼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봐도 마음에 들었다. 입술 한쪽을 끌어 미소를 지어봤다. 턱을 살짝 들며 거울 속의 자신을 거만하게 내려 봤다. 만족스러웠다.

  “지운씨. 준비는 다…… 음, 다 끝냈습니까.”

  “……올라올 필요까진 없었는데요.”

  “하하. 좀 더 빨리 보고 싶어서 말이지요.” 

  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진 여지운을 발견한 선연홍은 살짝 놀란 듯 “음.”하고 숨을 토해내더니 곧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말을 이었다. 차라리 비웃었으면 나았을 텐데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짜증났다.  

  “지금쯤 출발해야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려갑시다.”

  며칠 전 새벽녘의 약속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평범한 교제’를 하던 때처럼 돌아갔다. 여지운은 선연홍에게 다시 말을 높였다. ‘반말하는 게 더 좋다.’는 선연홍의 개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전에는 젠틀해 보이려고 했다면 지금은 선을 긋는 거였다. 그리고 선연홍은 마치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갔다. 누구나가 뒤를 돌아보는 매력적이며 다정하고 상냥한, 완벽한 연인으로.

  딱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선연홍은 앞을 보고 있었고 여지운은 엘리베이터 내부 문에 비치는 남자를 슬쩍 쳐다봤다. 화려한 생김새의 남자는 목이 곧고 어깨가 넓었다. 날카롭게 빠진 여지운과 달리 부드러운 눈매는 입을 다물자 의외로 차가워 보였다. 그는 오늘도 새 코트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몇 번을 떠올려 봐도 대학교 때의 선연홍과 겹쳐지지 않는다. 지금 저 모습이라면 왕따 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러고 보니…….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하네.”

  “예?”

  “그 왜, 대학 때 당신 괴롭히던 새끼들. 참 오지랖도 그 정도면 병신 급이지. 남을 괴롭히면 뭐라도 나온답니까?”

  “…….”

  “나라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요?”

  “좋은 것을 했겠죠. 누군갈 꼬셔서 강의실에서 떡 친다든가, 화장실에서 떡친다든가, 동아리 방에서 떡친다든가? 아, 다 내려왔네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성큼성큼 앞서 가던 여지운이 뒤를 돌아봤다. 보통 때라면 귀찮게 졸졸 쫓아 붙었을 남자가 멀뚱히 서 있었다. 

  “뭐 합니까? 진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숨 같은 웃음을 지은 선연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대체. 

  고급 빌라인 탓에 지하 주차장에는 제법 값비싼 차량이 곳곳에 주차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차는 선연홍의 것이었다.  

  “점심 드셨습니까?”

  “예.”

  시동을 걸던 선연홍이 여지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왜? 하는 얼굴로 응수하자 머리 위로 선연홍의 손이 닿았다. 마치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머리통을 쓰다듬는 것에 소름 돋았다. 이게 미쳤나?

  “보통 이런 경우는 되묻지 않습니까.”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미친놈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툭 튀어나온 속마음에 선연홍이 선명한 웃음을 토해냈다. ‘쌍욕 먹고도 왜 저렇게 좋아할까?’하고 생각하던 여지운은 곧 저 남자는 욕 처먹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쪽 세계는 원래 다 그런 건가? 도무지 모르겠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선연홍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별하냐고? 아니, 저건 그냥 맛이 갔을 뿐이다. 

  “손 치우십쇼. 손모가지 부러지기 전에.”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거칠게 쳐 내며 창문을 열었다. 벌어진 틈으로 지하 특유의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선연홍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갔다. 여지운은 들어서자마자 인테리어와 구조를 살폈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다. 유난히 높은 천장에는 수십 개의 별과 둥근 달이 투명한 줄에 매달려 있었고 그 한 뼘 아래, 자전거가 통째로 걸려 있었다. 달과 별 조형물이 가까워질수록 높아지는 자전거의 앞바퀴는 꼭 우주로 가는 것 같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인테리어였다. 나무 테이블은 일부러 낡아 보이도록 연출한 듯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벽 앞 테이블에 놓인 영사기가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옛 펍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쪽 벽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는데 개 중 유독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먹으로 그린 백일홍 그림이었다. 하얀 종이와, 검은 선 그리고 붉은 꽃잎은 팝아트 느낌이 가득한 그림 사이에서 유난히 튀었다. 눈가를 좁힌 여지운이 좀 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 찰나, 음식이 나왔다.  

  “지운씨?”

  “알아서 먹을 테니 신경 좀 끄시죠.”

  “여기 쉐프, 꽤 유명한 분입니다.”

  “유명하다고요?”

  “어릴 때 프랑스에 간 분인데 국제 대회에서 입상도 많이 하셨습니다. 국적이 한국이라 그런지 한국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았다고 해요. 쉐프님은 거절하셨다고 하는데 요즘도 종종 연락 온다고 합니다.”

  “거절했다고? 아니, 왜요? 유명해지면…….”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주니 마니 하는 얘기가 있듯이 유명세가 돈을 부르고 돈이 명예와 권력을 부른다. 회사 일이 바빠 피똥을 싸는 와중에도 여지운이 꾸역꾸역 잡지 칼럼을 쓰고 원고 투고를 하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유명해져서 더 돈 잘 벌고 잘 살려고. 그의 궁극적 목표는 맨날 섹스하는 돈 많은 백수였다. 

  “일로 평가받고 싶다는 것이겠죠.”

  “아……. 예에.”

  여지운은 성의 없게 긍정했다. 저 새끼 저번에도 그러더니. 물질 지향적인 자신을 저격하는 건가 싶다가도 담담한 표정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입맛에는 맞으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다행이네요.”

  여지운의 대답에 선연홍이 빙그레 웃었다. 진심으로 기쁜 듯했다. 사실은 그럭저럭이 아니라 굉장히 잘 맞았다. 그는 교제하기 전부터 유달리 먹는 것에 집착했다. 정확히는 여지운을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걸 먹이는 것에 상당히 신경 썼다. 회사일이 바빠 여지운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포장 음식이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꼭 건네줬다.  

  “식사 다 했으면 이동할까요?”

  두 사람의 원래 예정은 저녁을 먹은 뒤 K호텔 라운지에서 야경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참 고상하고 우아하지. 선연홍은 “최상층 룸에서 조용히 보는 게 낫지 않으냐.”하고 넌지시 말했지만 바로 거절했다. 지금이야 정상인인 척하지만 언제 눈이 돌아갈지 모른다. 마치 괴담 속에 나오는 피에로 인형과 단둘이 남은 엄마의 심정이었다. 순간 이렇게까지 몸을 사리면서 이 남자와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지운은 다시금 자신을 다독였다.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고 했으니 지키겠지. 두 달만 견디면 그때 느꼈던 굴욕과 치욕을 되돌려 주리라. 이자까지 쳐서.

  가게를 나와 주차장까지 걷는 중 선연홍이 “잠시만요.”하며 품을 뒤적였다. 그는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내려 보며 여지운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합니다. 짧게 끝내겠습니다.”

  “괜찮으니 통화 하십쇼.”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를 한 선연홍은 발신인을 확인하고 미간을 조금 구겼다. 

  “예, 접니다. 아니요. 지금은 곤란……. 얼마 전에도 말했잖습니까? 아, 알았으니 그만 하세요.”

  대체 누구기에 저런 표정 하는 걸까? 희미한 짜증이 번진 얼굴은 여지운에게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것이었다. 힐끔힐끔 곁눈질하던 여지운이 선연홍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일부러 엿들은 것도 아닌데 왠지 찔끔해 눈동자를 스르륵 굴렸다. 

  “지운씨.”

  “……그쪽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 거지, 일부러 엿들은 것은 아닙니다.”

  “이거 어쩌지요.”

  “예?”

  선연홍은 아주 급한 일이 생겨 지금 집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부가 불러 거절할 수 없었다고 정말 죄송하다며 몇 번이나 사과했다. 하지만 여지운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연홍의 실체를 알기 전이었다면 섭섭했겠지만, 지금은 정말 괜찮았다. 아니, 제발 꺼져줬으면 하고 바랐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좀 막무가내셔서.”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가보셔야죠.”

  “지운씨와 새해를 맞는 것을 정말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거 서운해서 어쩌죠?”

  선연홍이 정말로 아쉬운 듯 한숨을 내 쉬는 사이에도 그의 휴대전화기는 징징 울리고 있었다.  무시하던 선연홍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이윽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알았습니다. 지금 갑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

  그는 여지운의 손을 잡고 싶은 듯했지만, 닿기도 전에 내쳐졌다. 찰싹. 잠시 침묵하던 선연홍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예약은 해놨으니 제 이름 대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쁜 것 같으니 가보세요.”

  좀 가라. 가. 여지운은 몇 번이나 되돌아보는 선연홍을 향해 손을 휙휙 저었다. 귀찮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며 웃던 남자가 차 문을 열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여지운의 코트 깃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 어……. 넘어질 듯 쏠리는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고 이마에 쪽 입맞춤을 했다. 

  “날이 많이 쌀쌀합니다.”

  그는 제가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여지운의 목에 둘둘 감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여지운의 손에 끼웠다. 찬바람에 얼었던 손에 보드라운 온기가 닿았다.

  “야경만 보고 일찍 들어가요. 집에 도착하면 연락하고요.” 

  여지운은 대답 대신 가운뎃손가락을 들었고 픽 웃은 선연홍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떠났다. 그리고 혼자 남은 여지운은 고민할 것도 없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건즈앤로즈.

  “사람 많네.”

  주말에 연말까지 겹치자 유난히 붐볐다. 네온사인이 마치 사이키 조명처럼 번쩍였고 놀고 싶어 하는 영혼들이 마치 좀비처럼 거리를 채웠다. 

  -지운씨, 도착했습니까? 혼자 가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지랄하네. 

  무표정한 얼굴로 문자를 내려 보던 여지운이 답을 하지 않은 채 휴대 전화기를 바지에 밀어 넣었다. 야경 대신 클럽에 왔다는 얘기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야경이나 조명이나 어차피 같은 인공 빛인데 알게 뭐냐. 

  문을 열자 후끈한 공기와 텁텁한 냄새가 확 밀려 들어왔다. 술 냄새, 담배 냄새, 땀 냄새 같은 것이 뒤섞여 얼굴을 불쾌하게 덮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조차 반가웠다.

  “어, 여지운씨?”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원래 주말에 붐비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발 디딜 틈 없네요. 여기 사장은 입 찢어지겠네.”

  “웬일이에요?”

  여지운을 발견한 백선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봐도 서른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6년이나 버틴 걸 보면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웬일이라니, 마치 오면 안 되는 곳에 온 듯이 말하네요.”

  “애인 있잖아요.”

  “제가 애인 있다고 어디 안 왔습니까?”

  스테디를 만드는 일은 잘 없지만, 어쩌다 속궁합이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정착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너와 만나도 할 것은 다 한다. 그런 걸 문제 삼으려면 만나지 않는 게 낫다. 물론 나도 네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 그래도 괜찮나.’ 하고 먼저 자신을 까발리고 난 뒤, 동의한 사람에 한해서만 관계를 이어갔다. 개중에는 여지운이 그냥 한 말인 줄 알고 가볍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다른 사람과 놀아났죠. 근데 혼자 왔어요? 그 미남은 어쩌고.”

  “그 미남은 일 있어서 못 왔습니다. 왜, 아쉬워요? 나도 꽤 미남 아닌가?” 

  여지운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백선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노골적인 유혹에도 그는 반응 없었다. 여지운을 보는 것과 앞에 놓인 마른오징어를 보는 눈빛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되지도 않는 수작은 부리지 마세요.”

  백선우에게 기울였던 몸을 바로 하며 맥주를 들었다. 사실 정말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냉정하네.”

  “난 지운씨를 오래 봐왔으니까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여지운씨를 노리는 사람은 많잖아요. 애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러네.”

  백선우의 말대로 여기저기에서 쏟아진 시선이 여지운을 향했다.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맞받아치며 씩 웃었다. 곧바로 야유 섞인 호응이 날아왔다. 

  “그런데 뭐 어디에서 단체로 왔습니까?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다른 지역에서 단체로 놀러 왔다고 해요.”

  “단체? 남자끼리 단체로 놀러 올 일이 뭐 있습니까?”

  “게이 커뮤니티 같은 게 아닐까요?”

  “아니, 무슨 단체로 놀러 와. 수학여행 가는 고딩도 아니고.” 

  어쩐지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인다 했더니 다른 지역에서 우르르 몰려 왔단다.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부터 오로지 혼자 생활했던 여지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뉴페이스가 많다는 건 언제나 환영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여지운씨 올 줄 알았으면 저 사람들한테 조심하라고 말하는 건데 그랬어요.”

  “조심하라니. 내가 무슨 쓰레기라도 됩니까.”

  “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빠질 수밖에 없는 뭐, 그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거죠.”

  가만히 들어보면 순 욕인데도 포장술은 기가 막혔다. 픽 웃은 여지운이 남은 맥주를 모두 털어 넣고 홀로 나갔다. 여러 가지 색깔 조명이 정신없이 쏟아지며 귀가 먹먹해 질정 도로 큰 소리의 음악이 둥둥 울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닿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그는 단연 돋보였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 훤칠했으며 타일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기존에 이곳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이야 여지운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고, 선연홍의 존재도 알았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보는 듯 했다. 하지만 여지운을 처음 보는 이들은 호감과 호기심이 잔뜩 섞인 시선으로 그를 힐끔댔다.  

  “어……. 아, 죄송해요.” 

  여지운은 제게로 넘어지는 몸을 가뿐하게 감싸 안았다. 안긴 남자가 여지운의 가슴을 더듬듯이 움직였다. 의도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순수해 보였다. 신인 배우가 과장된 연기를 하는 느낌일까? 하지만 여지운은 모른 척 웃었다.

  “괜찮습니까?”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남자도, 여지운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넘어진 것도, 일으켜 준 것도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혼자 왔습니까?”

  “아뇨 친구랑 같이 왔는데……. 어느 순간 없네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원래 사람이 많긴 한데 연말이라 특히 더 붐비네요. 한 번 놓치면 찾기 힘든데. 괜찮으시면 친구분 만날 때까지 저기서 잠시 얘기나 할까요?”

  “네네!” 

  노랗고 빨간 조명 아래에서 드러난 얼굴은 제법 귀여웠다.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둥근 뺨과 둥그런 눈은 순해 보였으며 안으면 품에 남을 정도로 근육 없이 마른 체형이었다. 남자와 함께 바에 돌아간 여지운이 맥주 두 병을 시켰다. 백선우는 묘한 얼굴로 그와 그 옆에 남자를 번갈아 봤다. 여지운이 모럴 없이 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그때 선연홍의 얼굴을 생각하면 필시 큰일이 나지 싶은데.

  “백선우씨? 왜 그렇게 봅니까?”

  “아니에요. 병맥 두 개요? 잠시만요.” 

  들키면 큰일이 나겠지만, 어차피 이것도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까. 슬쩍 보니 둘이 난리도 아니었다. 누가 보면 애인인 줄 알 정도로 딱 붙어 친밀한 분위기가 풍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미남, 보통이 아니었는데. 백선우가 술병을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놨다. 설마 헤어졌나 싶었지만 정말 헤어졌다면 들어오자마자 “오늘 나랑 잘 사람?”하고 노골적으로 소리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래서, 올해 스물둘이라고? 나랑 열 살 차이 나네.”

  “어? 서른 넘었어요? 저랑 비슷한 또래인 줄 알았는데.”

  그게 말이 되냐, 싶으면서도 웃었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필사적인 모습이 귀여웠다. 

  “여기 처음 온 거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아, 네. 맞아요. 여기 유명하잖아요.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고, 사람들도 궁금하고…….”

  스물두 살의 남자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가지런하게 뻗은 속눈썹이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저것보다 좀 더 풍성하고 나른한 느낌에……, 아. 여지운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여기서 이런 생각 따위 할 필요 없었다.

  “그래도 형이 여기에서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그는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장사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었다. 남자 역시 여지운이 알아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름, 나이. 두 사람이 나눈 정보라곤 그게 다였지만 애초에 탐색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사실 여지운은 요즘 미칠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꿈까지 꿨다. 꿈속에서 여지운은 끊임없이 쑤셔 박히고 흔들렸다. 벗어나려고 허우적댈수록 잠식되고 끌려갔다. 쾌감, 절정! 발작하듯이 잠에서 깨고 나면 속옷이 축축했다. 

  아, 씨발. 사춘기도 아니고 그딴 꿈으로 정액을 싸지르는 게 말이 돼? 혈기왕성하던 10대 시절에도 몽정은 잘 안 했다. 그땐 뒹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꿈꿀 여력도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심지어 박는 것이 아닌 박힐 때를 떠올리며 몽정했다는 충격이었다. 

  확실히 그날 이후로 여지운은 아슬아슬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그깟 쾌락이 뭐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쾌락은 굴욕이나 수치 따위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자존심 같은 건 뭉개져도 상관없을 정도로 온몸을 꽉 채우는 그 느낌은 여지운의 근본조차 흔들었다.

  “저기요, 형? 전화 와요.”

  깨를 떨며 숨을 들이쉬던 여지운은 제 휴대전화기에 찍힌 이름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

  하필 이럴 때 선연홍의 전화라니. 받을 생각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여지운은 휴대 전화기를 자연스럽게 엎어 놓으며 미소 지었다. 

  “……미안합니다. 회사 연락이네요. 이럴 때 받으면 계속 연락 와서. 무시해도 됩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노는지 알려 주면 될까요?”

  섹스를 놀이 따위로 치부하는 사람다웠다. 사나운 눈매가 살짝 누그러지며 매끄러운 선을 그렸다. 여지운이 턱을 치켜들자 목선이 도드라졌다. 자신을 긍정하고 매력을 십분 이용하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이 있었다. 원래 몸에 나쁜 것이 더 자극적인 것처럼. 끝 맛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눈이 가는 불량식품이었다. 어린 청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매력적인 남자와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기 룸 있는데 어떻습니까? 어차피 지금 나가봤자 호텔이고 모텔이고 다 찼을 것 같은데.”

  “좋아요.” 

  솔직하네. 여지운이 남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건즈앤로즈의 구석에는 세 개의 룸이 있었다.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좁은 방은 섹스에 영혼을 사로잡힌 이들이 엄한 데서 일을 치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실이나 기둥 뒤, 바 구석을 청소할 때마다 정액이 쳐 발리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하던 백선우는 뒤이어 “아랫도리도 조절 못 하는 짐승들”이라는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곳이었다. 당연히 방음 따위는 되지 않았기에 저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나 떡칠 거다.’하고 광고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여지운은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즐겼다. 상대의 헐떡임이 커질수록 그를 둘러싼 소문은 더 자극 적이 되었다. 성기를 감싸는 속살도 기분 좋았고, 뭉개지는 신음을 듣는 것도 좋았었다. 좋았었……. 뭐야. 왜 과거냐. 

  선연홍과 뒹굴었던 날 이후 몽정으로 깨는 것이 너무, 정말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고작 그 한 번……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이틀만으로.

  불안은 소나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져 견고하던 무엇을 무너트리려고 했다. 정말 휩쓸리기 전에, 그래서 아무 것도 남지 않기 전에 원래의 감각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밑에 깔고 허벅지를 벌리고,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움켜잡아 벌름대는 구멍 안으로 성기를 처넣지 않으면 안 된다. 어서 빨리. 

  뒤가 아니고 앞이다. 앞. 앞을 써야 한다. 여지운. 

  남자의 어깨를 감싸고 걷자 시선들이 따라붙는다. 시기도, 질투도, 호기심도 모두 노골적이다. 여지운은 짐짓 여유로운 척 손을 흔들었다.

  “나머지는 다리 벌리고 대기해. 순서대로 박아 줄 테니까.”

  그 순간 웃음 섞인 온갖 욕이 다 날아왔다. 물론 당사자는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픽 웃은 여지운이 보란 듯이 남자의 옆머리에 뽀뽀하며 룸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음?”

  클럽 안을 울리는 음악이 바뀌는 틈, 아주 짧은 그 찰나의 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딸랑. 마치 짜 맞춘 듯 기막힌 타이밍에 가게 문이 열리자 다수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속에는 여지운도 있었다.

  “어?”

  눈을 깜빡이는 사이 폭발하듯 음악이 다시 쏟아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남자, 선연홍이 들어왔다.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와 겨울 냄새가 묻어날 것 같은 검은 코트에 감싸인 남자는 여지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 마치 여지운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여지운 옆의 남자를 보다가 그의 어깨를 감싸 쥔 손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여지운과 눈이 마주쳤을 땐 미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닌 무의미한 근육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꾸며낸 것 같은. 여지운은 이제 속지 않았다. 

  “이리 와요.”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큰 음악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순 없었다. 

  “오라고 했잖아요. 지운씨.”

  여지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검은 눈 안에 번진 것은 번들대는 저것은 절제하지 못한 분노와 욕망이었다. 저건, 위험하다. 

  여지운은 선연홍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었으나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여지운의 표정을 본 선연홍이 숨을 토해냈다.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던 얼굴은 굳은지 오래였다. 여지운의 생각대로 그는 분노했고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라고 했는데. 뭐, 제가 가도 됩니다.”

  선연홍은 여지운을 향해 걸었다. 뚜벅, 뚜벅. 뚜벅. 우아한 걸음걸이와 달리 표정은 냉랭했다. 이질적인 느낌의 남자는 빽빽한 사람들 틈을 잘도 비집고 상당히, 빨리 걸어왔다. 

  “헉.”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지운이 옆에 있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형?”

  “빨리 와.”

  그는 막무가내로 남자를 잡아끌고 룸을 향해 달렸다. 그 사이에도 선연홍과의 거리는 점차 짧아서 곧 닿을 것만 같았다. 뒷덜미가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금방이라도 그가 자신을 잡아챌 것 같았다. 얼마큼 가까이 왔는지 궁금한데 뒤를 돌아보면 곧바로 잡힐 것 같아 그저 앞만 보고 뛰었다. 귓가에 숨소리가 들리는 건 아마 착각이겠지? 착각이어야 한다. 꺾이려는 무릎에 억지로 힘을 주며 뛰었다. 바로 눈앞에 룸 문고리가 보였다. 잡히면 안 된다.

  빨리, 빨리, 빨리! 뛰라고!! 

  여지운이 남자를 룸 안으로 처넣은 것과, 선연홍이 여지운의 뒷목을 잡아채려 손을 뻗은 것, 그리고 그것을 피한 여지운이 문을 닫은 건 거의 동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쾅!

  “헉.”

  헉, 허억. 한 끝 차이로 닫힌 문틈 사이로 선연홍의 얼굴이 보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어려 있다. 이번엔 만들어 낸 것 따위가 아닌 진심이었다. 온통 새빨간 색으로 점철 된 아주 자극적인 미소였다. 문고리를 붙잡은 여지운이 가쁜 숨을 쉬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쾅대고 가슴이 연신 들썩였다. 이마를 적신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얼굴도 손바닥도 후끈후끈했다.

  “후, 씨, 씨발. 뭐야, 내가 왜 이래야 해.”

  따지고 보면 자신이 선연홍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남들이 쓰레기니 뭐니 해도 그게 뭐 어쨌다고. 쓰레기로 살아 세상 편하다면 그걸로 좋다. 선연홍과 시한부 교제를 시작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친놈을 떨구기 위한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방금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다. 지금 당장 저 남자에게 벗어나. 한 번 학습 된 몸뚱이는 그와 동시에 내달렸다. “하아, 하아.” 여지운이 흥건한 뺨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똑똑.

  “여지운씨.”

  겨우 진정된 듯하던 심장이 크게 튀었다. 여지운은 본능적으로 몸뚱이에 힘을 주며 귀를 문에 바짝 붙였다. 

  “안에 있는 것 아니까 문 열어요. 왜 잠근 겁니까?”

  문을 왜 잠갔냐는 말에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닫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러고 있었다. 조금 전 선연홍은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지운을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유 따위는 중요치 않은 그저 본능이었다. 여지운은 입안의 타액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진 왜 왔습니까. 집에 일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예, 생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아무래도 새해는 지운씨와 함께 보내야 할 것 같아서요.”

  여지운과 교제를 시작하고부터, 선연홍은 항상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지운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는 정상적인 연애를 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온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걱정돼서? 아니면 정말 같이 보내고 싶어서? 

  “여기, 후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K호텔에 전화했더니 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운씨 집에 갔는데 불이 꺼져 있기에, 이곳에 와 본 겁니다.”

  “뒷조사한 겁니까.”

  “뒷조사라니요. 전 그저 당신을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재밌는 것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아니, 웃음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그렇게 느꼈다. 여지운 역시 진짜 뒷조사를 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라도 지껄여서 저 미친놈을 돌려보내야 했다.

  “근데, 문을 열자마자 재밌는 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문밖의 남자는 속지 않았다. 

  “저는 독점욕이 심한 사람이라 제 연인이…….”

  “누가 연인…….”

  누가 연인이냐고 말하려던 여지운은 얼마 전에 동조했다는 걸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미쳤던 것이 틀림없다.

  “다른 것과 붙어 있는 모습은 참기가 좀, 힘드네요.”

  여지운이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오늘 처음 만난 앳된 청년이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듯 무해한 얼굴이다. 선연홍이 말하는 다른 것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 남자를 뜻하겠지. 

  “문 열어요. 굴속에 숨은 토끼같이 구니까.” 

  선연홍은 사람을 열 받게 하는 포인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긴 아닌 척 엿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지.

  “누가 토끼라고……!”

  “더 쫓아가고 싶은 거잖아요.”

  “…….”

  “열어요, 지운씨.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평화롭고 고요해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화난 게 아니었나? 여지운은 잘못 한 게 없었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짜증 났다. 옆에 애와 섹스는커녕 키스도 못했다. 고작 어깨를 감싸 쥔 게 다인데. 언제 여지운이 남 눈치 봤다고. 선연홍을 비난하기 위해 문고리를 도린 순간 “꽝!”소리와 함께 룸 전체가 흔들렸다. 

  “헉! 뭐야.”

  “뭐, 뭐예요? 밖에 저 남자 누구예요, 형?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거야 말로 내가 묻고 싶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 나는지. 

  문고리를 타고 온 충격에 팔이 지르르 울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쾅! 쾅!! 덜커덩. 문짝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덜컹거리자 여지운이 본능적으로 몸으로 막았다. 

  “열라고 했잖아요. 왜 내 말 무시합니까, 지운씨. 빨리.” 

  저렇게 정중하고 침착하게 말을 내뱉으며 문을 막고 이는 여지운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덜컹대고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이 삐거덕대는 이음새 소리에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저기요? 아까부터 대체 뭐하는 거예요.”

  “야!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여기 와서 좀 도와! 밖에 미친 새끼 있는 거 안보이냐?”

  “예?”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뻘소리만 내뱉는 남자를 보자 화가 났다. 밖에 있는 미친놈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여지운은 필사적으로 막으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선연홍. 새해고 나발이고 나 혼자 보낼 테니까. 꺼져라, 좀! 서로의 자유는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터치 안할 테니까 너도 다른 사람 만나, 만나라고!”

  알아들은 것인지 천둥이 치는 것처럼 흔들리던 문짝이 한순간에 멈췄다. 그리고 여지운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은 오누이처럼 문고리를 꼭 붙잡은 채 귀를 기울였다. 눈가를 좁히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문이 허술해 방음이 안 돼서인지 아니면 위기감 때문에 초능력이 발휘된 것인지 물러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가는 건가. ……갔나? 다행이다. 

  안도감이 찾아듦과 동시에 바짝 긴장했던 어깨가 내려앉았다. 여지운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굴도 손도 모두 땀으로 젖어있었다. 특히 문고리를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이 시큰했다. 심장이 쿵쿵 울리며 만들어낸 불안한 숨을 내뱉는 순간, 

  쾅!!!

  “헉!”

  “악!!” 

  꽝! 큰 소리를 내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장신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결국 이렇게 열게 될 걸 왜 그러고 있습니까.”

  “…….”

  클럽 안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자욱한 담배 연기, 그리고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쏟아지는 역광 때문의 선연홍의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됐다. 선연홍이 한 발짝 다가왔고, 여지운은 그보다 반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누가 먹다가 쏟아 놓은 것인지 바닥에 굴러다니던 강냉이가 여지운의 발아래 부스러졌다. 뚜벅 뚜벅, 바삭 바삭. 선연홍이 걸을 때마다 여지운은 점점 더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몇 번을 옮겼을까. 덜컹, 몸이 가로막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끝까지 다다랐다. 이 뒤는 테이블이라 더는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선연홍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여지운은 조금이라도 더 피하려 했다, 어느새 그의 엉덩이는 테이블에 걸쳐지다시피 했다. 

  “선연……!”

  그 이름을 완전히 내뱉기도 전에 쑥 뻗어져 나온 손이 여지운의 목을 감싸 쥐었다. 

  “허억, 하, 앗.”

  선방을 날린 쪽은 선연홍이었다. 이 미친놈이 드디어 목을 조르는구나. 그 생각은 귓가로 쏟아지는 뜨거움과 함께 날아갔다. 커다란 손바닥을 여지운의 뒤통수와 목 사이쯤에 걸친 채 앞으로 당겼다. 입을 열 틈도 없이 목덜미가 물렸다. 여지운의 성감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선연홍은 그곳부터 집중적으로 건드렸다.

  “야이, 비겁한 놈아.”

  여지운의 뺨이 흔들리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뜨거운 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자극이 이마와 눈두덩을 지나 손가락까지 울렸다. 귓구멍으로 질척한 혀가 들어와 그 안을 후벼 파듯 빨았다. 묘하게 소름 돋는 느낌에 여지운이 몸을 뒤틀었다.   

  “후으.”

  선연홍은 그의 귓불을 씹으며 여지운의 머플러를 잡아 내렸다. 헤어지기 전, 선연홍이 직접 매줬던 것이었다. 옆머리로 미끄러진 입술이 뺨을 지나 윗입술에 닿았다. 서로의 입술이 맞물리면서 키스가 시작 됐다. 여지운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든 무릎이 그의 성기를 꾹 눌렀다. “아흐.” 여지운이 뱉어낸 신음은 그와 입술을 맞댄 남자가 모두 삼켰다. 아……. 방황하던 손이 테이블 끝을 잡았다. 끼익. 선연홍이 밀어붙이자 여지운의 몸뚱이가 점점 뒤로 밀렸다. 성기를 누른 무릎이 위와 아래로 문지르다 원을 그리며 자극했다. 바닥을 디디고 있는 여지운의 발이 들썩였다. 머릿속에서는 이 남자에게 죽빵을 날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몸뚱이는 더 한 자극을 원했다. 

  “미친, 변태……새끼가.” 

  “그건 욕이 아닌 것 같은데.”  

  선연홍은 피식 웃자 그 떨림이 고스란히 여지운에게 전해졌다. 어느새 그는 테이블에 거의 누워 팔꿈치로 상체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더는 물러설 수도 없는데 선연홍이 가까이 오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맞붙은 하체가 더욱 밀착되며 아랫도리의 자극이 더 심해졌다. 

  아흐, 으, 씨발. 왜 이렇게, 기분이……. 

  “으, 후으으.”

  뒤늦게 밀어내려고 손을 들었지만,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스스로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밀어내고 싶은지 끌어안고 싶은지, 무엇이 맞고 그런지. 

  점점 달궈지는 쾌감과 여태껏 그를 지켰던 자존심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성기를 자극할수록 이성이 휘발됐다. 마치 손으로 훑듯 무릎으로 여지운의 것을 문지르던 선연홍이 강한 힘으로 내리눌렀다. 

  “아흑!”

  등허리에 긴장감이 돌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고통이 여지운을 강타했지만, 이것을 온전한 고통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 묘한 흥분이 어려 있다. 이걸, 이걸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흥분되고 고통스러우며, 고통스러울수록 흥분됐다. 쾌감과 아픔은 어느 한 쪽이 먼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켰다. 그리고 여지운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충격받았다. 전혀 상반된 두 개가 동일시된다니. 고통받으며 흥분을 하다니. 이건 마치 변…….

  “변태 같잖아…….”

  “애초에 정상이라는 정의도 웃기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변태(變態) 하지요. 그리고 탈피(脫皮)를 하면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할 겁니다.”

  점잖은 목소리와 달리 선연홍은 퍽 흥분한 듯 보였다. 그는 여지운을 울리고 헐떡이게 하고 싶었다. 선연홍의 욕망은 아주 노골적이고 새빨갰다.

  “하, 으으, 읏.”

  찌릿함과 욱신거림이 번갈아 가면서 터졌다. 자극이 향하는 곳은 하나였다. 극심한 배뇨감이 밀려왔지만, 성기는 여전히 선연홍의 무릎에 짓눌려 있었다. 여지운은 하체를 비틀어 봤지만, 오히려 더 예민해질 뿐이었다. “야, 무릎, 좀……흐.” 고개를 흔들자 콧방울과 턱 끝에 매달려 있던 땀방울이 떨어졌다. 발을 얼마나 오므렸는지 구두 발등이 솟아 있었다. 테이블을 짚은 여지운의 손이 바닥을 긁었다.  

  싸고 싶다, 해방되고 싶다. 해방되지 못한 성기는 욱신대며 고통을 호소했고, 바짝 선 귀두에는 쾌감이 가득 모여 있었다.

  “아, 좀……. 좀, 비켜.”

  선연홍은 새빨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여지운을 내려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과거 몸무게의 반을 덜어낸 이후 딱히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여지운만 보면 뭔가를 먹고 싶어졌다.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선연홍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두 손은 여지운의 손을 감싼 채였다. 훅. 여지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은 뜨겁고, 처연했으며 또 안타까웠다. 지나치리만큼 당당한 남자가 어깨를 움츠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선연홍은 이보다 더한 것을 원했다.

  “지금보다 더 엉망으로 애원할 수 있잖아요. 지운씨.”

  선연홍은 무릎으로 성기를 더 세게 누르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속옷과 바지에 갇힌 성기는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발기해 있었다. 아플 정도로 욱신대는데 분출하지 못해서인지 힘들어 보였다. 

  “으, 아. 이 새끼야. 비키라고, 쌀, 싸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고작 무릎으로 발기 당해서 싸는 걸 보여준다고요? 여지운씨가요?”

  선연홍은 도발하듯이 말하며 그의 눈가에 입맞춤했다. 눈 밑의 얇은 살을 깨물다가 잇자국이 나면 그 위를 핥았다. 

  “보여주면 참 좋아하겠다. 안 그렇습니까? 관객 많은 거 좋아하잖아요.”

  흐린 시선 끝으로 앳된 얼굴의 남자를 발견했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 이름도 몰랐다. 그는 상당히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목 한가운데 크게 움직이는 울대뼈는 그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박살 난 문짝 너머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여지운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 저들은 과연 지금 이 상황을, 손도 아닌 무릎에 발정해 좆을 세운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여지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 된다. 보여 줄 수 없다. 

  자신은 항상 여유롭고 자유로워야 했다. 다른 이에게 성기가 눌러져 떠는 게 아니라 거만한 얼굴로 제압하고 이끌어야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안 된다. 나가야, 한다. 

  “……가.”

  여지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겨우겨우 누른 채 입을 열었다.

  “네? 잘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가, 나가자고. 개자식아.”

  “그래요.”

  가볍게 대답한 선연홍이 여지운의 성기를 꽉 누르고 있던 다리를 내렸다. 탁. 딱딱한 구둣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어지러움을 느낀 여지운이 테이블을 짚었다. 그의 어깨를 끌어안듯이 부축한 연홍이 속삭였다. 

  “괜찮아요, 지운씨? 이제 나갈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손 떼, 걸을 수 있으니까.”

  들썩일 정도로 커다랗던 음악은 어느새 끊겨 있었다. 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니. 시선들이란 시선들은 모두 이쪽으로 향한 것 같았다. 그 수치스러움에 여지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좆같다.

  여지운과 선연홍.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확실히 시선을 끌었다. 둘 다 크고 체격도 좋아 포지션이 어떻게 될지 그려지지 않았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묘한 상상을 자극했다. 남의 말을, 감정을 무시하고, 눈치 따위는 하나도 보지 않았던 여지운이 저렇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선연홍은 여지운을 끌고 나가, 아니, 데리고 나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훑었다. 마치 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처럼.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에 잠시 놀랐던 백선우는 금세 특유의 영업 미소를 지었다. 그때 여지운을 데리러 왔을 때도 느꼈지만, 지금은 더 확실해졌다. 그때는 제 것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독점욕이었다면 지금의 선연홍은 그런 귀여운 수준이 아니었다. 

  출입문 가까이에 있었던 백선우는 볼 수 있었다. 선연홍은 분노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고르듯이 길게 들이 마신 후 또 가슴이 부풀 정도로 길게 내쉬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아주 미묘하게. 눈치 빠른 여지운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여지운이 뛰었다. 속된 말로 정말 좆빠지게.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혔다. 그것도 보란 듯이 바람 상대와 함께였다.

  백선우는 처음에 선연홍이 깽판이라도 칠 줄 알았다. 아무리 난장판이 밥 먹듯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 여차하면 경찰이라도 부를 생각으로 전화기를 쥔 채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선연홍은 더없이 정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어요.’ 

  하지만 상냥한 목소리와 달리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분노한 얼굴로 상냥한 척 속삭이는 모습은 상당히 기괴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피식 웃은 선연홍이 중얼거렸다. ‘귀엽네.’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부쉈다. 쾅. 

  혹시 모를 강제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방음도 안 하고 이음새도 약하게 만들었지만, 발길질 몇 번에 떨어져 나갈 줄은 몰랐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쭉 뻗어 안쪽을 살핀 백선우는 선연홍의 무릎으로 여지운을 농락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밤의 제왕이라는 유치하고 우스운 타이틀로 불리던 남자는 온통 새빨개진 얼굴로 자극에 떨고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지 4년이 넘었지만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눈을 꾹 감고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이, ……음.

  거기까지 생각하던 백선우는 따끔한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가 선연홍을 발견했다. 싸늘한 얼굴로 노려보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매너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백선우가 보기에는 여지운보다 저 남자가 한 수 위였다.

  불쌍하네, 여지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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