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4. Special Make (18/18)

외전 4. Special Make

  

  “SM 클럽이요?”

  “어.”

  먹기 좋게 자른 스테이크 접시를 여지운 앞에 내려놓은 선연홍이 와인을 주문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

  인사와 함께 직원이 멀어지자, 여지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갑자기 거긴 왜요?” 하고 물었다. 

  여지운이 입 안의 음식을 어금니로 씹었다. 도톰하고 보드라운 고기가 갈라지며 풍부한 육즙이 흘렀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값비싼 음식답게 맛있었다.

  “며칠 전에 백선우 만났거든.”

  “백선우? 그 남자는 무슨 일로 만났어요. 혹시 둘이 연락합니까?”

  “눈에 힘이나 풀고 말하지?”

  한껏 치켜 올라갔던 선연홍의 눈꼬리가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았다. 그는 눈 사이를 살짝 좁히며 여지운을 살폈다. 

  “여기 음식 잘하네.”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한다. 뒤가 구린 일을 했다면 저렇게 당당하진 않았을 거다. 아니,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듯 ‘내가 백선우를 만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말했겠지. 

  진정하자, 선연홍. 

  “설마 개인적으로 만난 건 아니겠죠?”

  “가게 인테리어 바꾼다고. 곧 해 바뀌잖아.”

  “인테리어…… 허락했어요?”

  “아니.”

  당연히 허락했을 줄 알았는데. 선연홍의 의문을 알아차린 여지운이 뚱하게 내뱉었다.

  “너 지랄할까 봐.”

  “네?”

  “선연홍, 네가 지랄 지랄 개지랄할까 봐 거절했다고.”

  여지운은 “그거 때문에 내가 사장한테 얼마나 핀잔 들은 줄 아느냐?”, “부장이 어찌나 잔소리하던지 사표를 던지고 나올 뻔했다.” 하고 투덜댔다. 

  선연홍이 이마를 찌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장? 부장? 그 회사 사람들이 지운 씨 괴롭힙니까?”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말만 해요.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돌려줄 테니까.”

  “어휴, 사회성 떨어지는 자식. 오버 좀 하지 마라. 뭔 얘기를 못 하겠네.”

  여지운이 고개를 끄덕이면 돈과 인맥, 그리고 권력을 끌어들여서 수 천 배로 되돌려 주려던 선연홍이 아쉬운 숨을 내뱉었다. 

  “아니면 사표 던져요. 제가 책임질게요.”

  “네가 왜 날 책임져? 본인 몸뚱이는 본인이 챙겨야지.” 

  여지운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건 안다. 하지만 저렇게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뉘앙스로 말할 때마다 섭섭했다. 제게는 저 남자가 세상이고 세계인데.

  하지만 선연홍은 그것을 드러내는 대신 제 몫의 고기를 그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한 듯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내 건 내 거고, 네 것도 내 거다. 근데 내 건 네 게 아니야. 알아들었어?”

  이기적인 소리를 아주 당당하게 하는 여지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제 모든 건 지운 씨 겁니다.”

  선연홍은 오히려 기꺼워했다. 갖지 않겠다고 해도 억지로 쥐여 줄 생각이었는데 잘됐지 뭐. 

  “그나저나 백선우와 SM 클럽이 무슨 상관인데요.” 

  “재밌다고 심심하면 가 보라고 하더라.”

  선연홍의 시선이 여지운의 입술로 향했다. 육즙이 묻어 번들거렸다. 발간 혀가 그것을 핥는 모습까지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선연홍이 습관처럼 미소 지었다. 

  흥, 여지운이 코웃음을 치며 남은 와인을 들이켰다. 선연홍과의 식사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갑자기 SM 클럽이라니 상당히 의외군요. 지운 씨, 혹시……” 

  선연홍이 말 내뱉음과 동시에 발을 뻗었다. 단단한 구두코가 여지운의 종아리를 은근하게 긁어내렸다. 되바라진 발끝과 달리 테이블 위로 드러난 상체는 늘 그렇듯 아주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저랑 섹스하는 게 지루한가요?”

  그렇지 않다는 건 말을 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알았다. 두 사람이 교제한 지 1년이 넘어가지만, 선연홍은 여지운의 모든 것을 갖고 싶은 듯 여전히 탐욕스러웠다. 

  이러다 복상사하겠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였다. 온몸이 정사흔으로 가득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아주 선명한 흔적 위에 또 다른 집착을 덧씌웠다. 계속, 계속. 

  겨울에는 목폴라로, 여름에는 밴드를 덕지덕지 붙여 잇자국과 울혈을 가렸다. 놀란 회사 사람들이 혹시 싸움이라도 했냐고 물으면 ‘고양이를 키우는데, 살짝 정신이 나갔다.’ 하고 농담 섞인 진담을 했다.

  그나마 여지운이 출근하는 평일에는 자제하지, 주말에는 침대 밖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초저녁, 아니, 초저녁이 다 뭐야. 해가 훤히 뜬 낮부터 새벽까지 섹스하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한데, 손끝이 쾌감으로 떨릴 정도로 좋았다.

  배 속의 정액은 시트를 흠뻑 적시고도 여전히 가득했다. 선연홍의 좆은 도무지 시들 기미가 안 보였다. 아무래도 무슨 약을 처먹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섹스가 끝나면 선연홍은 여지운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복부를 꾹 눌렀다. 그러면 안에 남아 있던 것이 질질 흘렀다. 번들대는 시선이 정액을 토하는 구멍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때로는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하얀 얼굴을 물들인 것은 아주 노골적인 욕망과 욕구였다.

  선연홍과의 섹스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지쳤다. 극도의 쾌감은 몇 번을 겪어도 버거웠다. 본인의 몸과 정신을 제어할 수 없는 그 느낌은 좆같이 짜릿했다. 

  그런 남자와의 섹스가 지겹냐고? 그럴 리가.

  “응.”

  여지운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하는 거 좀 지루한 것 같아. 늘 똑같잖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요? 좋습니다. 색다른 것도 좋죠.”

  여지운은 도발했고, 선연홍은 그 깜찍한 도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갑시다. 지운 씨가 말한 SM 클럽.”

  “혼자 가도 되는데?”

  “같이 가요. 이게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그러니 선 넘지 마세요. 뒤에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짐작됐다. 그 같잖은 경고에 여지운이 비웃었다.

  “웃기지 마. 널 봐주고 있는 건 나거든?”

  

  

  * * *

  

  

  

  그 주 주말 당장에라도 갈 것 같던 분위기와 달리 두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원인은 늘 그렇듯 여지운의 회사 일 때문이었다. 디자인 3팀 팀장이었던 그는 선연홍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굵직한 계약 몇 개를 더 따내고 VIP 전담 팀장으로 옮겼다. 기존의 팀원들을 포함한 쾌조의 승진이었다. 

  결국, 얘기가 있었던 날로부터 2주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시간이 났다. 

  금요일 저녁, 여지운은 누구보다 빠르게 퇴근을 했다. 곧장 집으로 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리 봐도 잘생겼네. 나이 들수록 더 멋있는 것 같아.”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SM 클럽 갈 때는 뭘 입어하나?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껍데기가 이렇게 괜찮은데, 뭘 걸쳐도 어울리지.

  

   

  

  “…….”

  그리고 그 말을 아주 잘 실현하는 사람과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지운 씨. 오늘도 예쁘…… 흠, 멋있네요.”

  여지운을 발견한 선연홍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딱딱한 정장 차림을 벗어 던진 그는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코트에 검은 티와 검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이 하얘서인지 짙은 색상이 잘 어울렸다. 앞머리까지 내리니 마치 이십 대 중반처럼 보였다. 

  “젊어 보이려고 발악을 했네.”

  솔직한 감상 대신 폭언을 퍼부었더니 선연홍이 눈꼬리를 휘었다. 그는 여지운의 뺨을 잡고 눈두덩과 귓가에 뽀뽀를 퍼부었다.

  “말하는 거 진짜 귀여워요.”

  “이게 귀엽냐? 하여튼 이상한 놈이야.”

  “근데 꼭 SM 클럽에 가야 해요? 지금이라도 그냥 맛있는 저녁 먹고 호텔로 가요.”

  “너 변태잖아.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으음. 선연홍이 말끝을 흐리며 애매하게 웃었다. 

  “알았어요. 가요.”

  선연홍이 손을 내밀었지만, 여지운은 이미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같이 가요, 지운 씨.”

  그의 뒤를 졸졸 쫓았다.

  

  

  * * *

  

  

  흔히 SM 클럽이라 하면, 외관이 망측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오히려 더 깔끔했다. 

  하긴, 내용물이 수상할수록 화려한 껍데기로 감추는 법이지. 저 남자처럼. 

  여지운이 어느새 옆으로 와 슬그머니 손을 잡는 남자를 쳐다봤다. 그는 여지운의 시선이 좋은 듯 웃었다. 

  어휴, 불쌍한 자식……. 물끄러미 보자, 깍지 낀 손을 들고 손등에 뽀뽀를 했다.

  여지운은 선연홍을 달랑달랑 매단 채 입구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백선우 씨 소개로 왔습니다. 여지운입니다.”

  “게스트 여지운 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통은 신원 노출을 꺼려 닉네임으로 짓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아 그냥 실명을 써 냈다.

  클럽 ‘스피드 볼’은 SM 관련 가게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용되어 가입비만 기백이었고, 매년 회원 갱신을 할 때마다 또 수백이 들었다. 회원 정보는 극비에 부쳐져 은밀한 취미를 가진 높은 분과 돈 많은 인간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 안에서도 이성과 동성…… 레즈와 게이 전용으로 나뉘었다. 두 사람이 들어갈 곳은 당연히 게이 전용이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정보 확인을 마친 직원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평범하네.”

  “그런가요?”

  “넌 여기 와 봤냐?”

  “아니요. 건즈앤로즈…… 게이 클럽도 사실 처음이었어요. 지운 씨를 찾으러 간 게 아니면 평생 안 갔을지도 모르고.”

  “야, 그렇게 말하니까 꼭…….”

  그 말은 나만 특별하다는 뜻 같잖아. 여지운은 그리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저런 간지러운 말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연홍이 하는 말은 ‘진심’이라는 걸 아니까. 

  “지운 씨?”

  “너 짜증 난다고.”

  “그런 선명한 감정을 제게 느꼈다니, 기쁘네요.”

  떠오른 말 대신 다른 걸 내뱉었더니, 선연홍이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수줍게 웃었다.

  

  마치 레드 카펫처럼 길게 이어진 복도 끝에 출입문이 보였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쓴 심플한 간판 아래에서 중세 시대 무도회장에서나 쓸 법한 화려한 가면을 쓴 남자 둘이 양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곧바로 제지했다. 

  “회원증 확인하겠습니다.”

  입구에서 받은 1회용 출입권을 내밀었다.

  “게스트 여지운 님, 선연홍 님. 확인했습니다. 가면 드릴까요?”

  “됐습니다.”

  선연홍을 돌아보자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맨얼굴로 들어섰다. 

  안쪽 공간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구조가 상당히 특이하네.”

  지금 두 사람이 서 있는 2층을 기준으로 아래와 위쪽으로 계단이 연결돼 있었다. 

  1층 한가운데의 넓은 무대엔 폴 댄스 출 때 쓸 법한 기다란 봉과 침대, 소변기가 있었다. 옆에 작은 책상도 있었는데, 그 위에 노골적인 형태의 기구가 가득했다. 

  2층에는 여러 개의 룸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늘어져 있었다. 아예 문짝 없이 뻥 뚫린 곳, 유리로 만들어 방 안쪽이 훤히 보이는 곳, 평범하게 문 달린 방 등 여러 가지였다.

  SM이라는 단어가 주는 효과 때문인지, 괜히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아, 미안합니다.”

  누군가가 여지운의 어깨를 쳤다. 여지운은 그제야 자신들이 아직 입구에 있었다는 걸 깨닫고 한 발짝 들어섰다. 안과 밖, 겨우 한 걸음뿐인데, 겨울에서 곧바로 여름으로 넘어온 것처럼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전, 여지운을 친 남자가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스쳐 지나갔다. 가면으로 눈을 가린 그의 손에는 타원형의 손잡이가 들려 있었고, 길게 이어진 끝에는 개목걸이를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따라 걷고 있었다. 여지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갔다.

  계단 앞에서 멈춰 선 가면 남자가 개목걸이 남자에게 다가가 뭐라 말했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개목걸이 남자가 곧장 그 자리에 엎드렸다. 양 손바닥과 무릎으로 바닥을 딛고 네발로 기어갔다. 가파른 계단을 앞에 두고 머뭇대자 가면 남자가 개줄을 짧게 잡고서는 잡아당겼다. 가죽끈이 목을 조이며 개 목걸이 남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콜록콜록 기침하자 가면 남자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 

  “어느 개가 사람처럼 기침해? 짖어야지.” 

  이번에는 아주 잘 들렸다. 

  “멍멍.”

  헉. 여지운이 짧은 숨을 들이켰다. 개목걸이 남자는 개처럼 짖으며 네발로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지운은 말이 없었다. 

  “지운 씨?”

  “왜.”

  “불쾌하면 나갈까요?”

  “아니.”

  유쾌한 건 아니지만, 딱히 불쾌하지도 않았다. ‘이상한 취향의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바로 제 옆에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지운은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보니까 무슨 패션쇼장 같네. 내려가 보자.”

  “……네.”

  선연홍에게선 잠깐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지만, 결국은 여지운을 따랐다. 

  내려와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둘처럼 평범한 차림에 평범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이 클럽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 주는 이들도 있었다.

  개중 가장 특이했던 건 셔츠와 정장 바지를 깔끔하게 입은 남자가 밧줄에 묶인 모습이었다. 성기 모양이 도드라지게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제 앞에 있는 남자의 성기를 빨고 있었다. 축축한 혀끝이 살덩이를 핥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렸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개 귀와 꼬리를 단 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양쪽 유두에 피어싱을 한 남자도 많이 보였다. 

  “지운 씨, 여기서 뭘 할 것 같아요?”

  선연홍이 무대 위를 가리켰다. 침대, 소변기, 탁자…… 방처럼 꾸며 놨지만, 사방이 뻥 뚫린 걸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뭘 하는데.”

  “신청받은 사람에 한해서 공개 조교를 합니다. 발을 핥은 풋워십부터 스캇같은 하드 플레이도 있습니다.”

  “스캇? 그게 뭐야?” 

  선연홍의 입매가 묘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쉽게 풀어 말하면 대변을 이용한 플레입니다. 보통은 도미넌트…… 음, 주인님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아무튼, 지배자 성향의 돔이 피지배자인 섭의 몸에 대변을 바르기도 하고 먹…….”

  “야! 됐어. 더럽게.”

  “왜요? 더 재밌는 얘기가 남았는데.”

  더 재밌는 얘기가 뭔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한 선연홍이 이번에는 다른 쪽을 가리켰다.

  “저기 의자 보이죠?”

  선연홍의 손끝에는 알 수 없는 얼룩들이 덕지덕지 묻은 의자가 있었다. 쿠션 하나 없이 쇠로 만들어져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저기에 섭을 앉혀 놓고, 마취 하나 없이 유두 피어싱도 하고, 성기 제모도 합니다. 날카로운 면도날이 예민한 성기 주변의 털을 사각사각 깎는 거죠. 어때요, 기분 좋을 것 같죠?”

  선연홍이 해맑게 웃었다.

  “좋겠냐?”

  그러니까 저 무대는 조교, 이른바 공개 플레이를 하며 즐기는 것 같다. 

  여지운이 아는 SM이라고 해봤자, 괴롭히는 거 좋아하는 사디스트와 괴롭힘당하는 걸 선호하는 마조, 그게 다였다. 근데 설명을 듣다 보니 생각보다 이쪽 세계는 아주 넓고 깊었다.

  여지운의 시선이 탁자 위로 옮겨졌다. 이상한 기구들이 즐비한 가운데 딜도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흉물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흉측했다. 

  설마, 저걸 넣는 건 아니겠지? 분명 찢어질 텐데. 여지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하. 집중하는 거 봐, 귀여워.”

  고개를 돌린 여지운은 제 뺨을 누른 채 빙그레 웃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 자식이 지금 웃냐? 넌 아직 나한테 한참 멀었거든. 

  “선연홍, 저거. 네 존만 한 좆보다 크네.”

  “예? ……지운 씨. 지금 저보다 딜도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겁니까?”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보드라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던 선연홍의 입매가 기울어진 달처럼 미미하게 굳었다. 

  왠지 한 방 먹여 준 것 같아 통쾌했다. 

  “궁금은 하네.”

  아무리 취향이라지만, 저걸 넣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면상이 궁금하다.

  “그래요. 궁금한 거군요…….”

  선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더니 존나 세세하게 알고 있으시네요, 선연홍 씨?”

  “지운 씨가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아서 공부 좀 했어요.”

  여지운의 지적에 선연홍이 쑥스러운 척 눈을 내리깔았다. 기다랗게 뻗은 속눈썹이 가느다랗게 팔락이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뒤늦게 내숭 떨어봤자 버스는 이미 떠났다. 

  두 사람이 무대를 구경하는 사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네 명이 그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 지금 시각이 저녁 8시니까, 곧 쇼가 시작하겠네요. 볼래요?”

  “아니.”

  

  

  * * *

  

  

  2층에는 룸 말고 앉아서 술 마실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틀어도 1층이 훤히 보였다. 여기서 플레이 구경이라도 하라는 건가?

  “자, 여기요.”

  선연홍에게서 받아 든 술잔을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도수가 꽤 높은 액체가 목구멍을 뜨겁게 긁으며 내려갔다. 

  “너무 많이 마시진 말아요.”

  빈 잔을 확인한 선연홍이 다시 술을 따랐다. 

  1층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웅성대는 소리가 났다. 슬쩍 살펴보니 남자 둘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여지운 또래의 정장을 입은 남자와 그보다 10살은 더 어려 보이는 앳된 청년. 

  “어?”

  “좀 전에 옆에서 펠라티오 하던 사람들이었죠? 돔이 스물한두 살 정도로 보이네.”

  두 사람을 알아본 건 여지운 혼자만이 아니었다. 선연홍 역시 무대를 보고 있었다. 덤덤한 표정과 달리, 내리뜬 눈에는 흥미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저 남자는 사디스트에 가까운 마조였다. 가끔 욕을 해 달라느니, 뺨을 때려 줬으면 기쁘겠다는 둥 소름 돋는 말을 하지만, 여지운에게 제 성향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마음은 어떨까? 

  “선연홍.”

  “네.”

  아래에 향해 있던 시선이 여지운에게 되돌아왔다. 까만 눈동자에는 별빛 같은 애정이 가득했다. 여지운은 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한번 해 볼래?”

  “섹스요? 우리 지운 씨, 좆 받아먹고 싶나 보네요. 어제 부족했나 봐요.”

  저 자식 말하는 거 봐라.

  “아니. 플레이.”

  여지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던 선연홍이 “네?” 하고 되물었다.

  “SM 플레이 인가 뭔가 해 보자고.”

  “SM 플레이…….”

  선연홍이 머리를 쓸었다. 눈썹까지 내려와 있던 머리카락이 감겨 올라가며 반듯한 이마가 드러났다. 당황한 것 같기도 했고, 황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직접적인 물음에 여지운이 침묵했다. 

  그는 SM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부러 남을 괴롭히는 것도 내키지 않고, 당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런데도 이곳을 방문하고, 플레이라는 걸 굳이 해 보려는 이유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여지운이 머리를 흔들었다. 

  “내 맘이야. 백선우 씨도 한 번쯤 경험해 보라고 했고.”

  “백선우? 또 그 남자군요.”

  백선우, 백선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선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운 씨가 원한다면, 뭐든지.”

  선연홍이 제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드러난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탁. 유리잔이 건조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젖은 입술이 반들거렸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거 하고 싶어요? 지운 씨는 수치스러운 상황을 좋아하니까, 음…… 도그 플레이?”

  “지금 나보고 개새끼 노릇 하라는 거냐?”

  눈을 휙 치켜뜬 여지운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선연홍이 빙그레 웃었다.

  “귀엽네요.”

  “개소리하지 마.”

  “가장 기본적인 건 주인과 노예가 있고.”

  “주인님? 네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그거? 이 새끼가 완전 임도 보고 뽕도 따려고 하네.”

  먼저 도발한 건 자신이었지만, 모른 척 선연홍을 비난했다. 

  “기왕이면 뽕까지 따는 게 좋죠. 아, 역할 놀이도 있어요. 부하와 상하, 후배와 선배 같은 하극상, 또 뭐가 있으려나.”

  “도그플인지 뭔지 빼고 아무거나 해.” 

  생각하기도 귀찮아 손을 휙휙 내저었다. 

  “괜찮겠어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면 후회할 텐데.”

  “아이고, 이거 무서워서 어쩌나.”

  여지운이 놀리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본디지와 딥쓰롯, 골든 샤워 정도만 할게요. 기본적인 거예요.”

  “그러든지.”

  사실 그것들이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선연홍이 하는 웬만한 또라이 짓은 겪어 봤으니까. 대충 비슷하겠지 뭐.

  “지금이라도 싫다고 하면, 그만둘게요. 사실 그렇게 내키진 않아요.”

  “좋아할 줄 알았더니, 웬 내숭이야.”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요.”

  “내가? 야. 네 걱정이나 해.”

  곤란한 듯이 살짝 찡그린 얼굴에는 걱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같잖은 표정에 여지운이 가운뎃손가락으로 응수했다. 짧은 한숨을 내쉰 선연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안전어’를 정하죠.”

  “안전어? 그게 뭔데.”

  “세이프 워드, 혹은 경고어라고도 하는데, 플레이를 중단시키는 단어예요. 피지배자가 상황을 견딜 수 없을 때 내뱉으면 즉시 멈추는 거죠.”

  “별것이 다 있네.”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건 강제 행위일 뿐이니까요.”

  “그렇군.”

  여지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어…… ‘연홍’은 어때요?”

  “뭐?”

  여지운이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연홍’이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았다. 

  질색하는 표정을 읽은 선연홍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저렇게 싫어하니까 꼭 이걸로 해야겠다.

  “안 부르면 되는 일 아닌가요? 혹시 자신 없어요?”

  “없을 리가. ……좋아.”

  “플레이 시간은 1시간으로 하죠. 끊지 않고 연달아 이어 갈게요. 물론 그사이에 지운 씨가 안전어를 말하면 바로 그만두고.”

  “1시간 동안 버티면 내가 이기는 건가?”

  “……그냥 즐기면 되는 건데, 굳이 승자를 따져야 하나요?”

  “내 맘이라고.”

  “지운 씨가 원하면 그렇게 해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룸 문 앞에 섰다. 들어가기 전 1층을 살펴보니, 어느새 아래를 헐벗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앳된 청년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이걸로 네 젖꼭지를 뚫을 거야. 벌써 좆이 섰네.”

  역시 저 청년 쪽이 주인님인가 보다. 유두 피어싱을 하려는 건가? 아프겠다.

  “지운 씨.”

  의외의 상황을 좀 더 살피려는 순간, 고개가 돌려졌다. 두 손으로 여지운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 선연홍이 시선을 차단했다.

  “나한테 집중해 줘요.”

  쪼옥, 입술이 닿았다. 아주 가볍고 보드라웠다. 그는 혀를 넣지 않고 입술만 붙인 채 말했다. 까만 눈동자가 전등 빛을 받아 번들번들 빛났다. 

  “들어가면, 바로 시작이에요.”

  달칵, 문이 열렸다.

  

  

  

  전등 빛이 날카롭게 눈을 찔렀다. 

  이 방의 전체적인 구조는 일반 호텔과 비슷한 것 같지만, 묘하게 달랐다. 

  방 한가운데 커다란 침대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벽 1/3은 전신 거울이 붙어 있었는데 반대편에는 문 없는 화장실이었다. 씻는 거나 용변 보는 게 거울을 통해 그대로 비칠 것 같았다.

  탁자 위에는 역시 온갖 종류의 기구가 가득했다. 로프, 수갑, 개와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부터 복슬복슬 털이 붙은 꼬리, 요도에 쑤셔 넣는 얇고 긴 막대와 1층에서 봤던 딜도도 있었다. 그 옆에는 콘돔과 러브젤, 비타민 음료 2병과 알사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저 음료와 사탕은 대체 뭘까? 하다가 체력 달리면 당 보충이라도 하라는 건가?

  코트 벗은 선연홍이 여지운에게 거칠게 내던졌다. 난데없이 옷을 뒤집어쓴 여지운이 욕설을 내뱉었다. 

  “야, 지금 뭐 하는……?”

  “반말하지 마.”

  뭐라고? 너야말로 웬 반말이야. 

  코트를 잡아 내리며 여지운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늘한 얼굴의 남자가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뭐지? 할 말을 찾는 사이 선연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손 내밀어.”

  “손은 왜?”

  “아직 이해를 못 했네. 반말할 때마다 엉덩이 맞을 줄 알아.”

  “엉덩이를 맞아? 미쳤냐? 뭔 헛소리야.”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모습을 보며 선연홍이 픽 웃었다. 늘 보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웃음이었다. 평소에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면, 지금은 비웃음과 비슷했다. 비슷하지만 좀 더 오만한 느낌의.

  그는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린 채로 탁자 위의 밧줄을 들었다.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할까.”

  “설마 그걸로 날 묶겠다는 건 아니겠지?”

  성큼성큼 다가온 선연홍이 여지운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악!” 

  턱이 들리며 두피가 뽑힐 것 같은 고통에 입이 벌어졌다.

  “아직 네가 ‘여지운’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너.”

  선연홍이 여지운의 귀를 깨물었다. 애정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움직임이었다. 여린 살이 무자비하게 짓이겨지며 따끔한 고통이 흘렀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말대꾸하지 마.”

  “어윽!”

  무릎 뒤쪽에 충격이 가해졌다. 몸의 중심이 기우뚱 흔들리다가 침대에 걸치듯 엎어졌다. 

  무표정으로 그의 무릎을 가격한 선연홍이 여지운의 팔을 뒤로 꺾었다. 얇은 밧줄이 겹쳐진 양 손목을 구속했다. 팔뚝을 지나 가슴을 감고 반대편으로 내려와 손을 묶은 줄 안쪽으로 넣어졌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는 사이 여지운은 어느새 뒷짐을 쥔 모양새로 결박됐다. 

  손을 흔들어 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시작했구나.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겼다. 여지운은 절대로 안전어인지 뭔지를 내뱉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부터 재밌는 걸 할 거야. 기대되지?”

  선연홍이 여지운의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꿇어앉았다. 굴욕적인 자세에 여지운의 뺨에 희미한 열기가 어렸다. 

  “기대 같은 소리…….”

  따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꿀밤을 맞았다. 검지 끝이 이마를 딱 소리 나게 가격했다. 아픔보다 기분 나쁜 게 더 컸다.

  “내가 허락할 때까진 말대답하지 마.” 

  선연홍이 탁자 위에 놓인 천을 집었다. 안쪽을 까만 벨벳으로 덧댄 기다란 끈이었다. 설마 저걸로 눈을 가리려는 건가? 

  선연홍이 천 끝부분을 이로 살짝 물었다. 유난히 희고 고운 손가락이 검은 천 위를 두드리듯 훑었다. 평범한 행동이 야릇하게 보이는 건, 저 남자의 욕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지운의 눈이 가려졌다. 보드라운 부분이 감은 눈두덩에 닿으며 세상이 점점 닫혔다. 

  “이렇게 블라인딩 하면 육체 자극이 좀 더 극대화 되지.”

  그때까지도 여지운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선연홍은 아주 많이 이상한 놈이지만, 아주 많이 순종적인 남자였다. 

  “너.”

  머리 위로 목소리가 떨어졌다. 시야가 차단돼서인지 지각 능력도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여지운은 일어서려고 했지만, 어깨를 누르는 힘에 다시 바닥에 앉혀졌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어깨가 욱신거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괴롭힘당하는 거 좋아하지?”

  “뭐? 그게 무슨…….”

  ‘무슨 개 소리냐. 괴롭힘당하는 거 좋아하는 건 너잖아.’ 하고 말하려던 여지운이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시선, 선연홍의 시선이 곳곳에 닿았다. 

  “흣.”

  성기가 잡혔다.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몸이 오그라들었다. 

  “잠깐, 손 놔.”

  놓기는커녕 좀 더 세게 조이는 손에 숨이 거칠어졌다. 떨쳐 내려고 해도 손이 묶인 상태라 다리를 오므리는 게 최선이었다.

  “변태니 뭐니 상대방을 매도하면서 제 성향을 감추는 거지.”

  여지운의 성기는 어느새 반쯤 발기한 채였다. 선연홍이 꿈틀대는 성기와 음낭을 꽉 쥐었다가 놓으며 말했다.

  “이래놓고 뭘 아니래.”

  씨발, 그럼 좆을 만지는데 안 서고 배기냐? 여지운이 이를 악물었다.

  “부끄럽나 보네. 얼굴이 빨간데?”

  선연홍은 모른 척하지 않았다. 미묘한 온도가 섞인 목소리로 여지운을 자극했다.

  “손으로 좆을 주물거리는 것보다 더 좋은 걸 주지. 대신.”

  “…….”

  “네 밑바닥까지 내보여야 할 거야.” 

  내게.

  귓가에서 속살거리던 목소리가 멀어졌다. 

  이어진 것은 금속이 서로 스치는 소리였다.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 같다. 예상이 틀리지 않은 듯 뜨거운 살덩이가 뺨을 툭툭 쳤다.

  “잘 빨아.”

  “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성기가 쑥 들어왔다. 반응을 보일 틈도 없었다. 

  과거 그렇게 놀아날 때도 남의 것을 문 적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단 한 번도. 

  여지운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물리자 선연홍이 그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휘어 감고, 

  “크읏, 욱!”

  강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성기가 목구멍을 거칠게 찔렀다. 기침과 구역질이 동시에 올라왔다. 숨을 들이쉬려 입을 벌렸더니, 그 사이로 더 밀고 들어왔다. 목젖이 눌릴 정도로 깊었다. 

  우욱.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며 발가락들이 굽어졌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젖혀지며 가슴이 조여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열기가 몰렸다. 눈두덩이 따가워지며 어찌할 사이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귀두가 여지운의 혓바닥을 누르며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숨, 숨 막혀. 여지운이 상체를 흔들었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원초적인 공포는 이성을 단번에 날렸다. 

  “우욱, 후, 후욱.” 

  씨발. 이 미친 자식아, 좀 빼.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혀를 아래쪽으로 붙이고 입술을 좀 더 오므려 봐. 목구멍을 연다는 생각으로. 숨을 급히 들이마시면 몸이 긴장하니까 힘들다고. 천천히, 그렇지.”

  사람이 혼란에 빠지게 되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마련이다. 여지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여지운은 혀를 아래로 딱 붙이며 몸의 힘을 뺐다. 잔뜩 좁아졌던 목구멍이 조금 편안해지는 듯했다. 여전히 구역질은 나왔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온기를 가진 손끝이 여지운의 귓불을 살짝 매만졌다가 떨어졌다. 

  선연홍이 허리를 살짝 물렸다. 깊숙이 들어갔던 성기가 입천장을 긁으며 빠져나갔다. 미묘한 간지러움에 발끝에 힘이 쫙 들어갔다. 

  “자아, 한 번 더.”

  “흐, 우욱, 욱.” 

  겨우 자유로워진 입 안으로 다시 성기가 쑤셔 넣어졌다. 

  “잘 빨라고 했잖아.”

  건조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여지운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여지운은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며 치아가 성기를 긁지 않도록 했다. 

  “옳지, 잘하네.” 

  칭찬을 받자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발기한 성기는 한 번에 삼키기에 너무 버거웠다. 반쯤 들어왔다가 살짝 빠지고 다시 반쯤 넣어졌다가 반복하며 깊숙이 닿았다. 

  “어깨 내리고 좀 더 힘을 빼. 그래야 좆을 잘 받아먹지.” 

  선연홍이 허리를 들이밀며 발끝으로 여지운의 성기를 밟았다. 제법 강한 힘이었다.

  “흣.”

  “목구멍 닫지 마.”

  겨우 진정됐던 심장이 또다시 쿵쿵 뛰었다. 얼굴을 흠뻑 적신 땀방울이 타액과 섞여 길게 늘어졌다. 

  단단한 구둣발이 여지운의 귀두를 밟았다. 낯선 고통과 익숙한 쾌감이 동시에 터졌다. 상체에 힘이 들어가며 허리가 꼿꼿하게 섰다. 뒤로 묶인 손가락들이 옹송그리다가 쫙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아, 아파. 찌릿찌릿한 감각이 점점 몰렸다. 

  자극을 받은 살덩이가 꿈틀거렸다. 선연홍의 좆을 먹으며 그의 발에 발기하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라 치부하기엔 이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데, 기묘한 쾌감이 일었다. 짓밟힌 성기에서 터진 짜릿함이 신경을 따라서 전신에 퍼졌다. 이게 무슨 감각일까? 마치 맨발로 뜨거운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뜨겁고 숨 막혔다.

  여지운이 어깨를 살짝 뒤틀자 선연홍이 그의 귓불을 꼬집었다.

  “딴생각도 하고, 여유 있네?” 

  “으, 아핫.”

  그의 경고에 여지운이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숨이 조였다. 

  그 상태에서 예민한 곳이 자극되니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쿵쿵쿵.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맛있어?”

  선연홍이 피식 웃으며 여지운의 귀두를 아주 세게 밟았다. 

  크읏. 순간 온몸을 꽉 채우는 고통에 허리가 튀어 올랐다. 새빨개진 목덜미의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도드라졌다.

  “흐으, 흐.” 

  계속 입을 벌리고 있으니 턱이 아팠다. 여지운이 힘든 기색을 보이자 크고 따뜻한 손이 이마를 쓸었다. 이상하지. 평소에는 바로 내쳤을 손길이 위로가 됐다. 

  발뒤꿈치 위에 놓인 궁둥이가 들썩였다. 하체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했다. 마치 섹스할 때 구멍을 조이는 것처럼.

  “다리 좀 더 벌려 봐.”

  그 한마디에 반 뼘쯤 벌어져 있던 허벅지가 좀 더 열렸다. 구둣발이 고간을 좀 더 깊숙이 파고들며 성기 전체를 한 번에 눌렀다.

  아, 아흣! 아.

  “감도가 좋네.”

  여지운의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를 정도로 아팠지만,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선연홍은 구두코로 여지운의 바지 위를 문지르다가 구두 바닥으로 성기를 뭉개듯이 눌렀다. 

  견딜 만하다 싶으면 고통이, 참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약해졌다. 위쪽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흐르고 구역질이 나는데 선연홍의 성기가 목구멍과 입천장을 쑤시고 긁을 때마다 야릇한 감각이 일었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근지러움이었다.

  여지운의 어깨가 젖혀지며 등이 조여들었다. 목덜미에 맺힌 땀이 척주기립근을 따라 주루룩 흘렀다. 등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하으, 으.”

  선연홍이 여지운의 옆머리를 잡고 앞으로 뒤로 당겼다. 으, 으. 뜨거운 것을 물고 있으니 그 열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아, 숨 막히고, 따갑고, 간지럽고…… 그냥, 그냥 다 미칠 것 같았다.

  빨고 있는 성기가 딱딱해지더니 곧 정액이 터졌다. 열려 있던 목구멍 안으로 그대로 쏟아졌다. 

  “!”

  여지운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선연홍이 그의 뒤통수를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쿨럭. 윽, 으윽.”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비린 맛이 참기 힘들었다. 끄윽, 끅. 넘어가지 못한 정액이 목구멍에 걸려 기침이 터졌다. 선연홍은 마지막까지 털어 내고 나서야 물러섰다. 

  여지운의 고개가 밑으로 확 꺾였다. 

  “우엑, 쿨럭, 크흐.” 

  벌어진 입 사이로 정액 섞인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선연홍이 그의 턱 끝을 잡고 들어 올렸다. 뺨에는 눈물 자국이 확연했고, 입술은 발갛게 부었다. 정액이 묻은 입가를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넋이 나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지운이.

  눈을 가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선연홍이 짧은 숨을 두어 번 내뱉었다. 

  “야, 너 진짜 보기 좋다.”

  “흐, 으.”

  “딥쓰롯하는 거 처음일 텐데 역시 소질 있네. 잘했어.” 

  여지운의 턱을 잡은 손을 살짝 당겨 키스를 했다. 건조한 입술과 젖은 입술이 서로 맞물렸다. 섞인 혀에서 비린 맛이 났지만 상관없었다. 상냥하고 다정한 키스가 오갔다. 

  여지운은 그 키스에 매달렸다. 쓴 것을 먹고 난 뒤에 단것을 접하면 맛이 극대화되듯 행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통 뒤에 오는 다정함은 더욱 간절했다. 입술에 닿아 있던 온기가 떨어지자 여지운이 저도 모르게 그것을 쫓았다.

  선연홍이 여지운을 냉정하게 쳐냈다. 

  “상은 여기까지야.”

  어째서? 잘했다며 더 해 줘도 되잖아. 

  “그럼 이번에는 벌 받을 차롄가?”

  ‘벌’이라는 단어가 여지운을 위축되게 했다. 

  “일어서.”

  손이 뒤로 묶인 탓에 몸이 잘 가눠지지 않았다. 여지운이 비틀댔지만, 선연홍은 도와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버티고 섰다. 

  구둣발에 농락당했던 성기는 여전히 발기해 바지가 불룩했다. 

  “쌌으면 혼내 주려고 했는데 안 쌌네.”

  사실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았지만, 기다렸다. 무엇을?

  눈앞에 있는 남자가 허락해 주기를.

  지금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했다. 모르겠다. 상황이 그를 극한까지 몰아갔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동물처럼 초조했다. 육체가 구속되고 시야의 자유가 빼앗기자 생각과 감각이 좁아졌다. 

  여지운은 이제 눈앞의 남자가 선연홍인지, 아니면 ‘주인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열이 몰린 성기가 아플 정도로 욱신거리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허리가 뒤틀리자 살갗이 밧줄에 쓸렸다. 아픔보다 간지러움이 더 컸다. 꼬인 밧줄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쾌감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그대로 엎드려.”

  “방금 일어서라고…….”

  “말대꾸하지 말라고 했잖아.”

  “…….”

  아랫입술을 깨문 여지운이 그 자리에 다시 꿇어앉았다. 그대로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들었다. 움직임이 제한적이라 엎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끌어내렸다. 드러난 엉덩이에 서늘한 공기가 닿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말대꾸와 반말이 총 다섯 번. 스물다섯 대 때릴 거야.”

  때린다고? 어딜? 

  “소리 내면 5대씩 추가니까 입 잘 다물고 있어.”

  찰싹. 

  “……!”

  이, 이게, 뭐야. 지금 저 남자가 자신의 엉덩이를 때린 건가? 

  안대에 가려진 여지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당황스러웠다.

  “핫.”

  찰싹. 제법 매서운 손길이 닿자, 참을 사이도 없이 신음이 터졌다.

  “5대 추가.”

  짜악.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볼기를 쳐 댔다. 아주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살갗이 터지는 소리가 방 안을 커다랗게 울렸다. 여지운의 엉덩이에 딸기를 짓뭉갠 듯 발간빛이 번졌다.

  지금 ‘엉덩이를 맞고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가 밀려왔다. 

  “잠…….”

  입을 열려다가 급히 다물었다. 혹시 그가 들었을까 봐 긴장됐다. 

  철썩, 철썩, 철썩. 연달아 세 번을 더 맞을 동안 선연홍에게서 ‘추가한다.’라는 말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엉덩이 더 들어. 그럼 줄여 줄 테니까.”

  명령이 떨어졌지만, 여지운이 머뭇댔다. 바닥에 깊숙이 박힌 이마가 아팠다.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피가 얼굴로 몰리며 숨이 조금 막혔다. 아직 정액 맛이 나는 타액을 힘겹게 삼켰다. 따가운 느낌에 콧등을 찡그렸다.

  “흣!”

  선연홍의 손끝이 실수인 듯 여지운의 엉덩이 사이를 살짝 긁었다. 소름이 쫙 돋으며 허리가 흔들렸다. 선연홍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철썩, 철썩.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성기가 튀어 올랐다. 고통과 수치도 지금의 기묘한 흥분을 누르진 못했다. 

  “뭐야, 엉덩이를 처맞으면서도 좆을 세우잖아.”

  “씨, 발 새끼가 터진 입이라고…… 아읏.”

  “씨발? 못된 아이네.”

  짜악. 이전과 다른 고통이 여지운을 흔들었다. 몸뚱이가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어디서 아픈 척이야, 일어서지 못해? 내가 뭘 할지 궁금하면 다시 욕해 봐.”

  으윽, 흐. 윽. 여지운이 참았던 숨을 토했다. 

  선연홍은 욕 듣는 걸 좋아했다. 뺨을 물들인 채 수줍게 웃으며 더 해 달라고 눈을 반짝였다. 지금 저 남자는 달랐다.

  ‘못된 아이’라는 소름 돋는 단어를 지적할 여력도 없었다. 온몸이 떨리고 맥박이 쿵쾅쿵쾅 뛰었다. 팽팽하던 정신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여지는 게 느껴졌다. 불쾌감과 고통, 그리고 희열이 한 덩이가 되어 머릿속을 휘저었다. 

  여지운은 지금 제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허리를 들어 올려 엉덩이가 잘 드러나게 했다. 손자국이 선명하게 난 궁둥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눈을 가린 천이 땀과 눈물에 흠뻑 젖었다. 불현듯 개목걸이를 차고 네발로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가 떠올랐다. 

  안 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여지운은 더는 여지운이 아니게 될 것 같다. 

  짝, 짝. 체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 아흐. 아파, 미친놈아, 아프다고. 

  지금 여지운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통을 참는 게 전부였다.

  “이제 마지막이야. 참으면 상 줄게.”

  상? 유독 선명하게 울리는 말에 여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곧 다시 엎어졌지만. 

  짜악-!

  흡.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아가 잘못 스쳤는지 입술이 따끔했다. 비린 맛이 혀끝에 날카롭게 닿았다. 

  어깨를 웅크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끄, 끝난 걸까? 상을 준다고 했으니까, 어서, 어서.

  “후.” 

  아…….

  열감이 번진 살갗 위로 뜨거운 바람이 닿았다.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곧추선 성기가 덜렁댔다. 선연홍이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고 여지운의 엉덩이에 입김을 뿜어냈다.

  “아흐윽.” 

  무릎과 종아리가 들썩이며 바닥을 겨우 디디고 있는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여지운이 상체를 아래로 조금 더 붙였다. 허리를 느리게 움직이며 바닥에 젖꼭지를 비볐다. 조, 좀 더…….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존재하는 선명함이라곤 수치를 동반한 쾌감. 그리고 남자의 명령뿐이었다.

  젖꼭지의 자극으로만 만족 못 한 여지운이 하체도 슬쩍 내렸다. 

  “흐읏!”

  귀두가 차가운 바닥에 닿자 소름이 쫙 돋았다. 발기한 지 오래인 성기는 핏줄이 불거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허억, 억, 헉.”

  싸고 싶다. 쌌으면 좋겠다. 

  바닥에 성기를 비비며 자위하는 여지운을 선연홍이 내려 봤다. 안광이 섞인 날카로운 시선 안에 만족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이르지.

  선연홍이 구둣발 끝으로 바닥에 처박고 있는 여지운의 턱을 들어 올렸다. 피로 범벅된 입술이 요망하게 빛났다. 

  “누가 혼자 비비고 있으래.”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여지운이 흠칫했다. 

  싸고 싶은데,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 종전과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육체가 구속된 것과 다른, 정신적인 압박이었다.

  “무릎 꿇고 일어서.”

  여지운이 시퍼렇게 멍이 든 무릎으로 바닥을 디딘 채 상체를 일으켰다. 허벅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물에 분 미역 줄기처럼 늘어진 머리카락이 이마와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몸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살갗엔 서늘한 소름이 돋아 있다. 기분이 이상했다.

  “흐읏.”

  갑자기 솜털이 바짝 섰다. 여지운의 상체가 흠칫하더니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이마를 누른 손가락이 콧등을 타고 내렸다. 코끝에 멈춰 섰다가 손톱을 세워 긁었다. 윗입술이 손톱 끝에 눌렸다. 그 손길에서 번진 감각이 여지운의 하체까지 이어졌다. 애써 외면하던 극심한 배뇨감이 다시 찾아왔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달달 떨렸다. 넘치고 넘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밧줄에 묶인 손을 거칠게 흔들어 봤지만, 풀릴 리가 없었다. 

  “좀 싸게, 해…….”

  “해?”

  눈앞의 남자가 내뿜는 숨이 뺨을 간질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이 짐작됐다. 

  화난 걸까? 왜? 반말해서? 그럼 존댓말 하면 싸게 해 주는 걸까? 

  여지운이 입술을 깨물었다. 안쪽의 여린 살을 씹으며 고통도 사정감도 잊으려 했지만, 더 예민해질 뿐이었다. 조급함에 숨이 넘어갔다.

  “주, 주세…….”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뜨거운 기운이 눈두덩으로 몰렸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굴욕이었다. 

  “……주세요.”

  이 와중에 좆은 여전히 발딱 서 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싸게 해 달라고 비는 이 상황이 너무, 너무……. 

  흥분해서 비참한 것인지, 비참해서 흥분한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다. 뺨 위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이게, 이게 뭐야. 

  “알았어.”

  여지운의 턱이 휙 들렸다. 다정함이 아주 조금 섞인 목소리에 콧등을 훌쩍이며 눈물을 삼켰다.

  싸게 해 주는 거겠지? 기대감에 궁둥이가 들썩였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싸 줄게.”

  뭐? 싸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싸 준다고……?

  “골든 샤워.”

  이번은 확실히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골든 샤워라니, 그게 뭔데.

  “알면서 모른 척하네. 앙큼하게.”

  “…….”

  “소변을 이용한 플레이지. 몸에 바르거나, 먹이거나.” 

  뭐라고? 그러니까 저 남자가 지금 자신에게 소, 소변을 먹이겠다는 말일까? 

  “얼굴에 싸 줄게.”

  보드라운 손바닥이 여지운의 뺨을 살짝 쓸었다가 떨어졌다.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여지운의 몸이 떨렸다. 치아가 서로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기대되나 보네.”

  아니야. 기대라니. 

  “싫…….”

  “마시고 싶으면 계속 지껄여 봐.”

  온몸에 피가 빠지는 것 같다. 정신이 구석으로 몰린 정도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싫다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정말 저 남자가 제 입을 벌리고 쌀 것 같아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과호흡에 걸린 사람처럼 들숨과 날숨이 거칠게 이어졌다. 머리가 핑 돌며 손발에 경련이 일었다. 

  한껏 예민해진 귓가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에 온갖 것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공포에 사로잡혀 생각이 좁아지고 상황 판단이 안 됐다. 혀가 굳어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저벅저벅 이어지던 발소리가 여지운의 앞에 딱 멈췄다. 송곳을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감각이 예민해졌다.

  “아윽.”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을 감쌌다. 강제성 없는 부드러운 동작이었지만, 벼락을 맞은 것처럼 벌벌 떨렸다. 극도의 긴장이 밀려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살갗이 따갑고 아프기까지 했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어도 이처럼 두렵지는 않으리라. 예민해진 귓가에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울렸다. 

  하지 마. 제, 제발. 제발. 뭐든 다 할 테니까 그만둬. 

  만약 여지운의 손발이 자유로웠다면 빌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하지만 현실은 입술을 달싹이는 게 다였다.

  쪼로록. 위에서 쏟아진 액체가 여지운을 비웃듯 떨어졌다. 

  “!”

  머리카락을 타고 흐른 액체가 얼굴을 흠뻑 적셨다.

  아, 아아. 아!  

  인중에 고여 있던 것이 충격으로 벌어진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미묘한 짭짤함이 혀끝에 닿는 순간, 여지운이 흔들렸다. 

  “흐, 흐, 흐으.”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잇새에서 흘렀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여지운이 목을 늘어트렸다. 여전히 정수리 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다. 쭈르르륵. 아마도 선연홍의 소변일 그것이.

  “기분이 어때?”

  그만해.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선연홍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는 여지운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웃었다.

  “대답이 없네. 건방지게. 기분이 어떠냐고.”

  “…….”

  “이번에도 입 다물고 있으면 다음엔 네 입에 쌀 거야.” 

  “…….”

  “혹시 그걸 기다리나? 좆이 아직 서 있는 걸 보면.”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대로 여지운의 성기는 시들지 않았다. 소변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바짝 서 있다. 핏줄이 불거진 기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 상황에서 딸랑딸랑. 귀엽네.”

  퉁. 보드라운 손끝이 좆대가리를 가볍게 쳤다.

  “아흐, 으. 그, 그…… 만해.”

  “또 반말이라니, 여태껏 교육한 보람이 없잖아. 뒤돌아서 엉덩이 들어.”

  “그만…….” 

  선연홍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여지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입을 바짝 붙였다.

  “정말 그만하길 원하면 그 말이 아닐 텐데.”

  “…….”

  “빨리해. 마지막 자비야.”

  여지운이 숨을 껄떡댔다. 혀끝에 매달린 말을 몇 번이나 삼키고 끌어 올리다 겨우겨우 토해 냈다. 

  “‘연’…….”

  연홍아. 그 한마디를 못 해서. 

  목이 멨다. 비참한 흥분에 점철된 몸뚱이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여지운이 끅끅대며 울음을 삼켰다. 목울대가 몇 번이나 움직였다. 

  더는 안 돼. 

  “후.”

  잠시 침묵하던 선연홍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여지운의 눈을 가린 천을 풀었다. 

  그때까지도 여지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허락’ 없이 눈을 떴다가 ‘벌’을 받을까 봐 무서웠다. 

  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눈꺼풀이 힘을 준 채로 참았다. 속눈썹 위에 맺혔던 눈물방울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이런, 가여워라. 흥분과 공포에 점철된 여지운의 맨얼굴은 선연홍의 생각보다 훨씬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선연홍이 입매를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운 씨.”

  지운 씨……. 그 목소리는 아주 다정하고 상냥했으며 꿀 같은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꿀이라는 건 그저 달기만 한 게 아니었다. 끈적끈적하고 질척이지. 

  “괜찮아요, 눈 떠요.”

  떠, 떠도 되는 건가? 

  보드라운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여지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흐려진 시야 너머로 선연홍이 보였다. 낯선 남자가 아닌 선연홍이.

  그를 보는 순간, 설움이 왈칵 차올랐다. 내내 참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 

  “으, 으윽.”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손을 들었지만, 손목이 힘없이 툭 꺾였다. 

  씨발, 이게 뭐냐고. 아무것도 못 하고 어린애처럼 우는 여지운을 선연홍이 끌어안았다. 젖은 머리통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고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놀란 아이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온기가 닿으며 선연홍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 속도에 맞춰 여지운의 심장 박동도 잦아들었다.

  “울지 말아요.”

  “흐으, 으.”

  “이건 제대로 된 플레이도 아니에요. 근데 이렇게 울면 어떡합니까. 마음 약해지게.” 

  무섭고 짜증 나고 너무 서러웠다. 그 와중에 발딱 서 있는 제 좆이 너무 좆같아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싫다, 싫다고 했잖, 입에 싸지…… 말…….”

  젖은 문장들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드문드문 끊겼다. 

  “쉬이, 쉬. 알았어요, 안 할게요.”

  선연홍이 여지운의 이마를 쓸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넘어가며 매끈한 얼굴이 드러났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돼 엉망이었다. 

  새빨갛게 익은 눈가와 턱 근처에 말라붙은 정액, 퉁퉁 부은 채로 눈물을 후두둑 흘리는 모습을 보니 오싹오싹했다. 귀여워. 

  선연홍은 흥분 섞인 숨을 내쉬며 여지운의 눈두덩과 뺨, 그리고 귓가에 입맞춤을 했다. 솜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다정했다.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네. 그래도 예쁘지만요.”

  “흐, 으, 으윽, 짜증 나. 씨발.”

  예쁘니 뭐니 헛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제가 알던 선연홍인 것 같아서 마음이 진정됐다. 여지운이 코를 훌쩍이며 욕을 내뱉었다. 

  “너 내가 반드시 죽이고 만다.”

  난데없는 살인예고를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자꾸 우니까…… 존나 박고 싶잖아요.” 

  뜨거운 혀가 눈꺼풀을 핥았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도 따끈따끈한 살갗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지운 씨.”

  선연홍이 혀끝으로 달큼한 사탕을 굴리듯 내뱉었다.

  “지운 씨는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게 너무 귀여워요.”

  아니,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위로는 못 할망정 개소리를 지껄이는 선연홍에게 죽빵을 날리기 위해 주먹을 휘둘렸다. 하지만 근처에 닿기도 전에 붙잡혔다. 그는 눈을 살짝 내리뜬 채 여지운의 손목 살갗을 잘근잘근 씹었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팔뚝을 통해 전해졌다.

  “아, 손, 놔…… 아.”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목소리 끝이 떨렸다. 너무 쪽팔렸다. 하지만 또다시 선연홍이 제 볼기를 후려치고 목 깊숙이 좆을 넣을 것 같아 무서웠다. 저 남자에게 무서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무서웠다. 

  선연홍은 제 치열이 선명하게 찍힌 손목 위에 쪽, 뽀뽀한 뒤 일어섰다.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겠죠?”

  “아…….”

  안정을 주던 온기가 떨어졌다. 

  여지운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선연홍을 멍하니 보다가 무릎을 세웠다. 두 팔로 종아리를 감싸 안고 그 틈으로 고개를 떨궜다.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 불안함을 눌렀다.

  가라앉은 시선 끝으로 여전히 사정하지 못하고 파들거리는 귀두가 보였다. 호되게 맞은 엉덩이 역시 욱신거렸다. 엉덩이가 바닥에 눌리며 뜨겁고 차가운 감각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후우, 후.”

  진정하자, 진정하자. 여지운. 괜찮아. 끝났어. 끝난 거다. 그건 현실이 아니라 그냥, 그냥 역할극일 뿐이다. 저 남자는 주인님 따위가 아니라 제 욕에 반응하는 이상한 놈일 뿐이다.

  느리게 숨을 쉬어 보려 애썼지만, 호흡은 거칠고 조급하게 흩어졌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액체를 외면할수록 신경이 곤두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또,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극도의 긴장이 피곤한 육체를 지배했다.

  “지운 씨.”

  머리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낯섦 속의 유일한 익숙함은 편안함과 안도를 전해 줬다. 

  “선연…….”

  땀에 젖어 늘어진 머리카락이 팔락일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들었던 여지운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 무릎을 잡고 있던 팔이 풀리며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퉁퉁 부은 엉덩이를 물리며 구석으로 숨었다. 벗어난 거리만큼 선연홍이 다가왔다.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마무리 짓겠다고 했잖아요.”

  “무슨…… 마무리.”

  탁. 어느 순간 등과 뒤통수가 벽에 닿았다. 더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 곁눈질로 벽을 확인한 여지운이 선연홍을 올려 봤다. 새하얗게 쏟아지는 전등 아래의 남자는 참으로 이상야릇했다. 

  “궁금해했잖아요.”

  이거.

  선연홍이 손에 쥔 것을 살짝 흔들었다. 여지운의 시선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딜도. 그것도 어린아이 팔뚝만 한 둘레에 이상한 돌기가 잔뜩 달려 있다. 절로 혐오감이 드는 모양새였다.

  “아…….”

  “내 존만 한 좆보다 크다고 했잖습니까, 경험해 보라고요.”

  선연홍의 성기는 평균보다 훨씬 컸다. 저게 사람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의 귀두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올 때 몸 안의 장기들이 위로 밀리고 배 속이 꽉 차는 게 느껴졌다. 입을 벌리면 정말로 선연홍의 좆이 튀어나올까 봐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엔 받아들였다. 

  하지만 선연홍이 들고 있는 저 딜도는 무리다. 구멍을 찢고 들어가 몸을 쪼갤 것이다. 그리고 설사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싫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고 뭐고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부서진다. 

  안 돼.

  그 순간 여지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힘이 풀린 몸뚱이로는 멀리 가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대며 무릎이 꺾이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으, 윽.”

  “이런, 도망 못 가서 어떻게 해요.”

  웃음기가 맺힌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그는 여지운의 어깨를 잡아 돌려 저와 마주 보게 했다. 

  나한테 왜 이러냐는 말도 못 했다. 가느다란 정신 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얇아졌다. 

  여지운의 머릿속은 잔뜩 엉킨 실타래만큼이나 엉망이었다. 생각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버거웠다.

  모난 곳 없이 매끈한 손끝이 여지운의 뺨에 닿을 듯 다가왔다. 말랑한 귀 끝을 슬쩍 건드리다가 손톱을 세워 귓등을 긁어내렸다. 스스슥, 살갗이 긁히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렸다.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등이 조여졌다.

  “내가 무서워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지운을 응시하는 시선엔 흥미가 가득했다.

  “안, 안 한다며.”

  “그건 당신 입에 싸지 않겠단 거고 이건 다르지. 지운 씨가 원하는 거, 제가 다 해 주는 거 알잖아요.”

  선연홍이 여지운의 뺨에 입맞춤을 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던 여지운의 얼굴엔 선연홍의 타액까지 추가됐다. 두려움과 닮은 쾌감이 입술을 따라 번졌다. 귓가에 딱 달라붙은 입술이 벌어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불안함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을 보며 선연홍이 눈을 휘어 웃었다. 달 꼬리가 길게 내려앉은 것 같다. 

  “지운 씨.”

  “…….” 

  그가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숨결에 턱이 내려가며 어깨가 솟아올랐다. 살갗이 오그라들며 손가락 사이가 간지러워졌다.

  “다리 벌려요.”

  “싫…….”

  여지운이 말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너, 너나 처넣으라고.”

  “겁먹은 얼굴로 그렇게 말해 봤자, 꼴리기밖에 더해요?”

  그는 한 손으로 여지운의 무릎 사이로 손을 넣고 등허리를 감싼 뒤 일어섰다. 적지 않은 키의 성인 남자를 안아 들고서도 가뿐했다.

  “이렇게 벌벌 떨 거면서, 왜 그렇게 나댔어요.”

  선연홍이 여지운을 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보드랍고 폭신한 시트는 오히려 엉덩이를 자극했다. 

  “헉, 허억.” 

  여지운이 숨을 내뱉는 사이 선연홍이 척척하게 달라붙은 셔츠를 벗겨 냈다. 여지운은 어느새 아무것도 걸친 게 없었다. 

  선연홍 역시 옷을 벗었다. 상의가 바닥으로 스르르 떨어지며 탄탄한 육체가 드러났다. 

  반듯하고 고운 손이 흉측한 딜도를 손에 쥐었다. 

  하지 마. 여지운은 절박한 심정으로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존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예상치 못한 행동인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던 선연홍이 웃었다.

  “지운 씨가 나한테 매달리기도 하네요.”

  평소 자신감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은 고통 앞에서, 또, 쾌감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온갖 감각이 엉망으로 뒤엉켜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서, 선연홍.”

  그의 짐작대로 여지운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육체도 정신도 온전히 누군가에게 지배되는 그 느낌이 너무 낯설고, 흥분됐다.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더 하면 안 돼. 이건 신세계가 아닌 늪이다. 아주 까맣고 질척한 곳. 

  또한, 그 늪의 주인은 선연홍이었다. 떨어지면 다신 올라올 수 없다. 자신의 모든 게 저 남자의 손에 굴러떨어진다.

  본능에 기이한 불안과 경고야말로 가장 본질에 가까운 법이었다. 

  “좀 떨어져 봐요. 그래야 구멍을 쑤셔 주지.”

  아니, 싫어. 여지운은 그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후후, 작은 웃음소리엔 묘한 음률이 섞여 있다. 선연홍은 무척 기분 좋아 보였다.

  “안 해, 안 할래.”

  “아니요. 할 겁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는 드물게 여지운의 말에 거부하며 제 목을 두른 손을 부드럽게 떼어 냈다.

  으으. 힘을 잃은 팔이 허공을 허우적댔다. 

  “도와줘. 살려 줘…….”

  여지운은 선연홍이 자신을 구해 주길 바랐다. 눈앞에 남자가 자신을 밀어 넣는지도 모른 채. 

  선연홍이 여지운의 가슴을 눌렸다. 활짝 열린 다리 사이로 들어온 딜도가 구멍 주변을 은근하게 문질렀다. 구멍이 뻐끔대며 수축과 이완을 했다. 

  드륵드륵 울리는 진동 소리는 벌이 날개를 비비는 소리와 비슷했다. 소름 끼쳤다. 여지운의 낯이 두려움으로 새하얗게 질렸다. 

  저게 안으로 들어오면, 아래가 찢어지거나 혹시 쾌, 쾌감이라도 느끼게 된다면…….

  “서, 서, 선연홍.”

  “지운 씨. 딜도가 너무 무섭게 생겼죠? 가려 줄게요.”

  선연홍이 여지운의 눈을 덮었다. 뜨겁고 보드라운 손바닥이 시야를 가리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디 이번에도 즐겨 봐요, 응?”

  “잠…… 어, 어억!”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지며 뭔가가 밀고 들어왔다. 여지운은 뒤집힌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린 채 몸을 바르르 떨었다. 

  들어온, 들어온 건가? 진짜, 그게 몸 안에 들어오고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선연홍은 반쯤 눈을 내리뜬 채 여지운을 보고 있었다.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무너진 자존심과 자존감을 견디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딜도를 뒷구멍에 꽂고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믿을 수 없겠지.

  최고다. 그의 반응과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짜릿하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목덜미를 핥았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살갗이 너무 달았다. 

  “아, 아. 아으읏.”

  여지운은 느끼지 않으려 했다. 턱 근육이 튀어나올 정도로 입을 꽉 다물었지만, 잇새로 흐르는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씨발, 왜, 왜. 이런 기분…… 이 드는 걸까. 이게 나라고?

  입구를 파고든 것이 느리게 안쪽을 밀고 들어왔다. 여지운의 등과 엉덩이가 침대 바닥에 붙으며 허리가 붕 떴다. 전류가 팍팍 터지는 것처럼 짜릿한 기운이 잔뜩 오므라든 발바닥을 통해, 그리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배 속으로 퍼졌다. 

  미칠 것 같았다. 이미 미쳤다. 그게 아니면 이런 기분은, 느낌은, 감정은, 감각은 말이 안 됐다.

  “어윽, 하지 마. 그, 만. 선연홍. 제, 제발.” 

  “이런, 가여워라.”

  지금 이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선연홍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원인이건 뭐건 이제는 상관없었다. 

  “그만, 살, 어흐, 으. 빼, 흐읏……좀 빼 줘.”

  “딜도로 지운 씨 구멍 안 쑤시면 뭘 해 줄 건데요?”

  “뭐든. 다, 그러니까…….”

  꾸욱, 꾹. 그사이에도 그것은 여지운의 속살을 휘저었다. 아흐으읏. 침대를 애처롭게 긁던 손이 시트를 꽉 쥐었다. 손등뼈가 허옇게 불거지고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 올랐다. 

  선연홍이 만족스러운 숨을 토해 냈다. 땀에 젖은 얼굴은 반짝반짝 빛났고, 눈동자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유쾌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있죠, 지운 씨가 항상 저보고 미친 새끼라고 욕했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아으, 흣. 조, 좋…….”

  “근데, 지운 씨가 나한테 매달리는 거 보니까, 애처롭고 가엽고, 가소롭고, 예뻐요. 우는 거 더 보고 싶은 거 보면, 내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여지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속살을 꾸역꾸역 밀며 들어오는 그것에 쾌감을 느끼지 않으려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백선우 만나지 말아요. 당신 입에서 다른 남자 얘기 나오는 거 진짜 좆같다고 했잖아요. 왜 사람 말을 안 들어요. 예?”

  “알았어, 알, 알았어. 안 할, 안 만날게.”

  “그리고 주말 내내 출근하면 어떻게 합니까? 일부러 수작 부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그, 그건 네가 너무 끈질기게 몰아붙이니까…… 아, 아니야. 알았어. 앞으론 절대 주말에 회사 안 갈게. 응? 선연홍, 제발. 네 말대로 할게.”

  여지운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퍽 만족스러운 듯 선연홍이 여지운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내렸다. 

  흐으, 눈을 깜빡이자 눈꼬리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윽!”

  그 순간 딜도가 아래를 깊게 파고들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튀어 오를 정도로 깊고 거칠었다. 여지운이 눈을 홉 떴다.

  그만둔다며, 왜, 왜. 

  “그만한다고 했…… 잖아. 씨발 새끼야. 죽인다.”

  “애원할 땐 언제고 바로 욕하네. 귀여워라.”

  선연홍의 손끝이 여지운의 눈가를 빠르게 쓸었다. 잔뜩 부은 살갗이 눈물과 함께 밀렸다.

  “딜도 아니에요.”

  “헛소리하지 마. 그럼 지금 밑에 있는 건 뭔……, 아흣, 뭔데.”

  “이거? 내 좆. 처음부터 내 좆을 쑤셔 넣은 거예요.”

  “……뭐?”

  “저런 흉측한 걸 지운 씨 몸 안에 넣을 순 없죠. 당신은 내 거예요. 나 말고 그 무엇도 지운 씨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여지운이 눈동자를 굴렸다. 정말로 선연홍의 좆이 제 구멍에 꽂혀 있었다.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굵은 기둥이 슬쩍 보였다.

  “자, 플레이 끝.”

  웃음띤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행히 퍽 만족스러운 듯 선연홍이 여지운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내렸다. 

  흐으, 눈을 깜빡이자 눈꼬리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윽!”

  그 순간 딜도가 아래를 깊게 파고들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튀어 오를 정도로 깊고 거칠었다. 여지운이 눈을 홉 떴다.

  그만둔다며, 왜, 왜. 

  “그만한다고 했…… 잖아. 씨발 새끼야. 죽인다.”

  “애원할 땐 언제고 바로 욕하네. 귀여워라.”

  선연홍의 손끝이 여지운의 눈가를 빠르게 쓸었다. 잔뜩 부은 살갗이 눈물과 함께 밀렸다.

  “딜도 아니에요.”

  “헛소리하지 마. 그럼 지금 밑에 있는 건 뭔……, 아흣, 뭔데.”

  “이거? 내 좆. 처음부터 내 좆을 쑤셔 넣은 거예요.”

  “……뭐?”

  “저런 흉측한 걸 지운 씨 몸 안에 넣을 순 없죠. 당신은 내 거예요. 나 말고 그 무엇도 지운 씨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여지운이 눈동자를 굴렸다. 정말로 선연홍의 좆이 제 구멍에 꽂혀 있었다.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굵은 기둥이 슬쩍 보였다.

  “자, 플레이 끝.”

  웃음띤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여지운을 그렇게 두렵게 한 딜도는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징징, 몸을 흔들어 대며. 

  시야가 닫히기 전까지 본 게 딜도라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제 아래에 박힌 건 선연홍의 좆이었다. 딜도에 쾌감을 느낀 게 아니었어.

  “다행…….”

  “내 좆이라서 다행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선연홍이 자신을 속였다는 분노보다 안도가 먼저 들었다. 여지운이 목구멍에 걸린 타액을 삼켰다. 눈물과 뒤섞여서인지 짭짤했다.

  “지운 씨.”

  선연홍이 허리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단단한 귀두가 민감한 곳을 찔렀다. 음낭이 궁둥이에 딱 달라붙으며 눌렸는데도 부족하다는 듯이 더, 더 치고 올라왔다. 여지운의 속살이 선연홍의 성기에 빈틈없이 달라붙으며 꽉 조였다.  

  “아, 아앗, 아흑, 흐으읏.” 

  “플레이와 섹스가 어떻게 다른지 이제 알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아으, 으…… 하, 으.”

  상체가 퉁퉁 튀어 오르며 궁둥이와 허리가 높게 들렸다. 그 사이로 손을 넣어 허리를 감싼 선연홍이 여지운을 일으켰다.

  “아후읏. 씨, 씨발, 좋아, 좋…… 아. 아악!”

  어느새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선연홍이 제 허벅지 위에 여지운을 앉혔다. 가뜩이나 깊게 연결된 성기가 여지운의 몸 안을 쑤셔 박았다.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잔뜩 벌어진 구멍을 빠르게 쳐올렸다. 구멍을 헤집는 좆, 그 사이로 이상야릇한 소리가 울렸다. 

  여지운이 허리를 세우고 상체를 선연홍에게 비볐다. 바짝 선 젖꼭지가 짓이겨질 정도로 서로의 몸뚱이 사이엔 틈이 없었다.  

  “아흑! 너무, 아, 아으으읏.”

  달뜬 숨소리가 터지듯 흩어졌다. 민감한 곳이 뭉개지듯 처박히자 온몸의 감각이 바짝 섰다. 

  어, 어흑, 흐으. 눈앞이 까맣게 점멸된 시야 안으로 여러 가지 색깔이 튀어 올랐다. 새빨갛고, 노랗고, 파래졌다가, 점점 더 하얘졌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뭘?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몸이 터질 것 같으니까.

  쿵쿵쿵쿵, 심장이 귓속에 달린 것처럼 크게 울렸다. 

  여지운의 손이 선연홍의 등을 긁어내렸다. 손바닥이 크고 손끝이 단단해서 그런지 멍 자국처럼 흔적이 새겨졌다. 여지운이 발기한 제 것을 선연홍의 복부에 비비며 흔들었다. 핏줄이 불거진 굵은 성기가 퍼득퍼득 떨리며 쾌감을 견디고 있었다. 

  “좋아요, 더 해 줘요.” 

  선연홍 역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흰 얼굴엔 선연한 욕망이 번져 있었고, 그걸 감출 생각도 없었다. 

  여지운을 조교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섹스가 좋았다.

  “아윽, 읏, 으읏.”

  자극을 이기지 못한 목이 넘어가며 허리가 뒤로 휘어졌다. 여지운은 선연홍의 허리에 제 다리를 감고 엉덩이를 미친 듯이 흔들며 조였다. 허벅지에 눌린 엉덩이 살 틈으로 진득진득한 땀이 흘렀다. 

  선연홍 역시 상기된 얼굴로 여지운의 귓등을 물었다. 맛있었다. 두 손으로는 여지운의 날개 뼈를 비비듯 매만지다가 손으로 등을 쓸었다. 

  옆구리를 움켜잡고 귀두가 구멍 입구에 걸릴 정도로 상체를 들어 올렸다가 강하게 내리꽂았다. 

  “허윽!”

  여지운의 달큼하고 끈적한 소리를 토해냈다.

  “아, 아, 아윽! 아흐으으, 미, 미쳤, 아, 아흣, 존나 좋아, 크흣. 아흐읏.”

  배 안에 가득했던 쾌감이 손끝과 발끝 머릿속까지 퍼졌다. 뇌가 녹아내리고 시야가 점멸됐다. 

  순간, 터질 듯 부풀어 있던 성기 끝에서 정액이 튀었다. 허옇고 끈적끈적한 것이 두 사람의 복부에 달라붙었다. 여지운의 귀두는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선연홍의 손바닥이 그것을 쓸어 여지운의 얼굴에 처덕처덕 발랐다. 새빨개진 얼굴에 희끄무레한 정액이 흔적을 남겼다. 

  “후우, 보기 좋네요. 역시 맨얼굴이 예뻐.”

  “아흣, 더, 더 박, 세게, 멈추지 말라고. 이 새끼야.”

  여지운은 속에서 부글거리는 쾌감을 욕설과 함께 뱉어냈다. 쇠를 긁어내는 것처럼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선연홍의 허리를 감은 발뒤꿈치에 힘을 줘 그가 좀 더 깊게 박을 수 있게 했다.

  “알았어요. 조르지 말아요.”

  “그냥…… 다, 크흣, 닥, 치고 박기나 해. 아니면 꺼져.”

  “꺼질 생각은 없으니까 닥치고 박을게요.”

  젖은 것들이 접붙는 듯 쩔걱대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온갖 액체들로 범벅된 곳이 질척하게 들러붙어다가 떨어졌다. 

  선연홍이 여지운의 목덜미를 빨았다가 놨다. 딱 근지러울 만큼의 얕은 자극이었다. 손톱을 세워 마구 긁고 싶었다. 

  여지운이 턱을 살짝 들자, 곧은 목덜미와 목울대가 선명히 드러났다. 선연홍의 치아가 불룩 튀어나온 뼈를 긁고 강하게 삼켰다.

  “흣, 흐읏.”

  급소가 빨리자 순간적으로 숨통이 조여들며 숨이 멈췄다. 궁둥이에 힘이 들어가며 아래를 조였다. 울대뼈를 문 채로 선연홍이 씩 웃었다. 눈을 치켜뜬 채 쾌감에 점철된 여지운을 올려 보았다. 

  “아, 후으, 으.”

  “나는 지운씨가 괴로워하며 흥분하는 모습이 좋아요. 반대로 지운 씨가 내게 욕을 내뱉고 때리는 것도 좋습니다.”

  딱딱하게 부푼 좆이 구멍을 거칠게 쑤시며 여지운을 자극했다. 

  우주가 그대로 쏟아지는 것처럼 숨 막히고, 눈부시고,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당신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게 가장 좋아요.”

  “아, 흐.”

  “그러니까 딜도 따위에게 지지 않게 노력할게요.”

  지금 선연홍은 여지운을 밧줄로 요령 좋게 육체를 구속하고 맨 엉덩이를 때리며, 소변까지 보던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했다. 

  여지운의 미간에 잔주름이 졌다.

  “미친 새끼…….”

  선연홍의 등에 둘린 손이 목덜미를 타고 와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당겨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온전한 키스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선연홍은 그마저도 기뻐했다. 여지운이 제게 해 준다면, 그게 무엇이든.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잠시 멈칫했던 남자는 곧 빙그레 웃으며 뽀뽀를 했다. 한 번, 또 한 번. 새가 부리로 쪼듯이 가볍게 이어졌다. 

  장난치냐? 여지운이 얼굴을 구기자 선연홍이 눈꼬리를 휘며 입술을 꾹 눌렀다. 고개를 모로 틀고 얇은 표피를 혀로 핥았다. 묘한 간지러움에 어깨가 밀렸다. 

  선연홍의 손바닥이 여지운의 귀를 막았다. 위아래로 틈 없이 맞붙은 입술이 비벼졌다. 혀가 섞이고 입 안이 헤집는 소리만이 막힌 손바닥을 통해 울렸다.

  혀 천장을 긁듯이 훑고 안쪽의 여린 살을 강하게 빨았다. 볼이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깊숙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는 여지운의 혀끝을 툭툭 치고 그 밑에 고인 타액을 삼켰다. 입 안의 것을 모조리 빼앗고 싶은 듯 탐욕스러웠다. 

  아래는 여전히 연결된 채였다. 농밀하게 맞붙은 입술과 달리 거칠고 사나웠다. 

  침대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하, 하, 씨발, 진짜 미친, 좋아. 아!”

  이런 기분이 드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다. 항상, 늘 새롭다. 육체와 정신이 거대하고 커다란 감각에 휘말려 모조리 빨려 가는 것 같다.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쾌락들이 여지운을 높이 들어 올리다가 한 번에 떨궜다. 절정에 올랐던 몸뚱이가 아래로 추락하며 가속이 붙었다. 지금 몸에 닿는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간지럽고 따갑고, 뜨겁고 사납고 거칠었으며 흥분됐다. 

  “허윽, 헉, 허억. 아, 앗, 씨발, 좀 어, 으읏.” 

  숨을 쉬고 있는데도 숨이 부족했다. 한 번 사정했던 성기가 다시 곧추선 채 꺼덕였다. 

  “아! 아, 앗, 큿! 서, 선…….”

  “네, 지운 씨. 저 여기 있어요.”

  “우욱, 욱, 후욱.”

  또 정액이 터졌다. 순식간에 두 번이나 싼 여지운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꺽꺽대며 모자란 숨을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내내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리며 무너졌다. 여지운의 이마가 선연홍의 어깨에 닿았다. 그의 허리를 감고 있던 다리 역시 미끄러졌다. 때에 맞춰 선연홍 역시 사정했다. 정액이 배 속에 처덕처덕 달라붙는 느낌은 언제나 묘했다. 

  “하아, 하. 하아.”

  침대에 누운 선연홍이 여지운을 제 몸 위로 올렸다. 목과 쇄골, 그리고 어깨를 물고 빨며 열심히 흔적을 남겼다. 

  여지운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모든 생각이 새하얗게 타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출근해야 하니까 흔적 남기지 말라고 난리 쳤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 무겁게 느껴졌다. 만족할 만큼 뽀뽀를 퍼부은 선연홍이 여지운을 조심히 내려놓고 일어섰다. 탁자 위의 생수 두 병 중 하나를 들고 흔들었다.

  “물 마실래요?”

  아무 반응도 없는 여지운을 보다가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의 턱을 잡고 손끝에 힘을 줬다. 입술이 맞붙으며 벌어진 틈 사이로 물이 흘러들어 왔다. 찬물에 섞인 뜨거운 혀가 여지운을 툭툭 건드렸다. 꿀꺽, 꿀꺽. 그렇게 세 번을 더 반복한 후에야 떨어졌다. 

  “정액 맛이 나네요. 야해라.”

  본인이 입에 싼 주제에 볼을 붉혔다. 

  하여튼 제정신 아니야. 입 밖으로 낼 힘도 없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어땠어요?”

  윙윙대며 굴러다니는 딜도를 집은 선연홍이 입을 열었다. 전원을 끄고 탁자에 올려놨다. 

  “가장 처음 한 게 본디지인데 쉽게 말하면 결박 플레이에요. 그 뒤에 이어진 게 성기를 목구멍까지 넣는 딥쓰롯.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 빨아서 놀랐어요.”

  선연홍이 수줍게 웃었다. 가증스러웠다.

  “손바닥으로 때린 거라 엉덩이에 흔적이 남진 않을 거예요. 저 착하죠? 집에 가서 찜질해 줄게요.”

  여지운은 저 남자에게 엉덩이를 맞을까 봐 벌벌 떨던 제 모습을 기억해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선연홍은 그 사실을 굳이 꼬집지 않았다. 귀여웠으니까. 

  “마지막이…… 상대의 몸이나 입 안에 소변을 보는  골든 샤워인데.”

  여지운의 어깨가 흠칫했다. 머리에 쏟아지던 액체의 느낌과 혀끝에 닿았던 그 생소한 맛이 잊히질 않았다. 겨우 진정됐던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닥, 닥쳐. 설명 할 필요 없으니까.”

  동요하는 여지운을 보며 선연홍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사랑스러운 지운 씨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 사랑스러운 여지운의 목구멍에 정액을 싼 남자가 다정한 척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오줌 싼 자식이 말은 잘하네. 길 가다가 뒤통수 깨지면 내가 때린 줄 알아라.”

  “음료였어요.”

  “뭐라고?”

  “비타민 음료.”

  선연홍이 탁자를 턱짓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놓여 있던 비타민 음료 2병 중 하나가 없었다. 

  “눈이 가려지면 감각도 둔해지기 마련이죠.”

  “너, 너 이 자식…….”

  선연홍이 아직도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액체를 손끝으로 찍었다. 그리고 여지운의 입으로 넣었다. 혓바닥을 꾹 누르는 손끝에서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신맛에 섞인 달착지근함. 소변 맛을 익숙하다고 느낄 리는 없으니까.

  “미친 새끼. 날 갖고 놀아?”

  여지운이 선연홍의 목을 감싸 쥐고 흔들었다. 인정사정없는 손속에 목덜미 핏줄이 불거지며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큭, 와아. 이거 브레스 컨트롤인가요? 짜릿하네.”

  “씨발.”

  목이 졸리면서도 되레 흥분하는 모습에 기겁하며 손을 털어 냈다. 

  선연홍이 남은 호흡을 거칠게 쏟아냈다.

  “좀 더 해도 되는데. 음, 앞으로 비타민 음료 마실 때마다 오늘 일……, 내 생각나겠죠? 기쁘다.”

  선연홍은 금세 표정을 수습하고 상큼하게 웃었다. 교제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완전 양파 같은 새끼야. 

  한편으론 적어도 소변을 맞지 않았다는 안도가 들었다.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지운을 보던 선연홍이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집어 들었다. 단추는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제대로 붙어있는 게 없고 온통 구겨졌다.

  “옷이 엉망이 돼서 어쩌죠. 사 올까요?”

  “됐어. 어차피 주차장까지만 가면 되는 거 아냐.”

  “알았어요.”

  바닥에 떨어진 옷을 챙긴 선연홍이 “입혀 줄까요?” 하고 물었다. 여지운이 고개를 젓자 아쉬워하면서도 별말 없이 건네줬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엉망이네.”

  팬티는 아예 정액 범벅이라 바지만 입고, 나머지 옷도 꾸역꾸역 걸쳤다. 

  다리를 꼰 채 그를 보던 선연홍이 다가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발목을 감싸 쥔 채 발등에 키스했다. 아주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지운 씨, 내 주인님. 집으로 돌아갈까요?”

  조금 전까지 그를 지배하던 남자가 온순하게 웃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앓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를 쫓아갔다. 

  사지를 쫙 벌린 채 침대 기둥에 묶인 남자가 보였다. 아래엔 딜도가 꽂혀 있었고 양쪽 젖꼭지에는 에그 진동기가 매달려 있었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봤던 남자였다. 그는 헐떡이며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괴로운 듯 보였지만, 허리를 들썩이는 모양새라든가 엉덩이를 비비는 걸 보면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다른 새끼는 보지 말아 줄래요?”

  보드랍게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선연홍이 있었다. 그를 잠시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1층의 저 남자처럼 공개 조교에 흥분을 느끼는 부류도 있겠지. 하지만 여지운은 더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네 인생 좆된다고 맹렬한 경고가 울렸다.  

  “그래요. 나하고만 해요, 그게 뭐든.”

  그 생각을 읽은 듯 선연홍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신 뒤 남은 말을 뱉어냈다.

  “평생.”

  

  * * *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선연홍이 방금 두 사람이 나온 가게로 되돌아갔다. 

  혼자 남은 여지운이 좌석에 상체를 깊숙이 기댔다. 목이고 턱이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멍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똑똑 소리가 울렸다. 창문을 내리자 선연홍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왜?”

  “보고 싶어서요. 진짜 갔다 올게요.”

  쪽. 그는 여지운의 입술 위에 뽀뽀를 한 뒤 다시 돌아섰다.

  뒷모습을 보다가 담배를 물었다. 선연홍이 싼 정액이 아직 목구멍에 달라붙은 것 같다. 

  틱, 틱. 몇 번이나 라이터 휠을 돌린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 담배를 든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깊게 빨아들였다가 반은 삼키고 반은 뱉어 냈다. 가슴과 폐가 빠듯하게 차올랐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 심경이었다. 고개를 들자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백미러 너머에 비쳤다.  

  사실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희미했다. 압도적인 두려움과 그에 필적하는 기묘한 흥분의 잔재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휴대폰을 열고 한참을 머뭇대던 손가락이 느리게 움직였다. 

  검색 화면에 [SM플레이]를 쳤다가 그냥 닫았다. 그 언젠가의 기억과 겹쳐졌다. 분명 그때는 선연홍의 성향을 비난했던 것 같은데. 씨발, 왜 이렇게 됐을까.  

  변태랑 지내다 보니까 나도 변태가 되는 걸까?

  “씨발, 알 게 뭐야.”

  결국, 나만 좋으면 되지.

  

  

  

  하나를 다 피우고, 새로운 것에 막 불을 붙였을 때 선연홍이 돌아왔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선연홍이 여지운의 손에 들린 담배를 빼앗고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자동차 글로브 박스 안에는 그를 위한 사탕과 초콜릿, 젤리가 가득했다. 

  여지운이 입 안에 퍼지는 단맛을 굴렸다. 볼록한 뺨이 움직이는 걸 보던 선연홍이 그를 끌어안았다.

  “뭐 하냐?”

  “멋있어요, 귀여워요, 잘생겼어요.”

  “그렇지. 난 멋있고 잘생겼어. 그건 나도 인정한다.”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지운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나 중에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아?”“당연히 지운 씨죠.”

  “네 정신세계는 회까닥 했지만, 눈은 멀쩡한 것 같아 다행이야.”

  그리 대답하는 선연홍의 얼굴엔 아주 조금의 의문도 없었다. 진심으로 여지운이 더 잘났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예뻐요.” 

  “그놈의 예쁘다는 말 좀 그만해. 소름 돋아.”

  “지운 씨의 몸에 돋은 소름도 사랑합니다.”

  소름에게까지 사랑 고백을 한 남자는 여지운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애정이 넘치고 넘쳐서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입술이 붙으며 혀가 감겼다. 쓴맛과 단맛이 섞인 혀를 빨고 타액을 삼켰다. 선연홍의 키스는 입 안의 초콜릿이 녹을 때까지 계속됐다. 

  아랫입술의 타액까지 깔끔하게 핥고서도 아쉬운 듯 몇 번이나 쪽쪽 대다가 여지운을 놔 주었다. 

  “저녁 먹으러 갈까요? 피곤하면 집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피곤해.”

  “알았어요. 그럼 좀 자요. 도착하면 깨울게요.”

  선연홍이 뒷좌석에 있는 담요를 끌어와 여지운의 몸 위에 덮었다. 그리고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린 뒤 핸들을 잡았다.

  “야, 선연홍.”

  “네.”

  “오늘 저기서 있었던 일…… 혹시 말하면 가만히 안 둔다.”

  선연홍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몇 번이나 생각했던 말을 내뱉었다. 

  “저기서 있었던 일 뭐요? 지운 씨가 애원한 거? 내 좆을 딜도로 착각하고 허리 흔든 거요? 아니면 얼굴에 소변 맞고 흥분…….”

  “닥쳐! 그리고 음료수라며!”

  하하. 유쾌한 웃음소리가 자동차 안을 울렸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질색하니까 하고 싶잖아요. 음, 누가 있지? 지운 씨 회사 동료? 아니면 가족? 백선우?”

  “야 이 또라이야.”

  “그러니까 왜 기어올라요. 뭐, 귀엽긴 하지만.”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여지운은 지금 덮고 있는 담요로 저 남자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선연홍이라면 괴로워하기는커녕 더 해 달라고 흥분할 것 같다. 조금 전처럼 말이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널 만났을까.”

  급기야는 전생의 자신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게요. 지운 씨 전생에 나쁜 짓 많이 했나 보다. 저는 착한 일만 했나 봐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데 진짜 한 대 치고 싶었다. 

  헛소리 그만하라는 경고를 담아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뚜둑뚜둑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지운 씨가 먼저 꺼냈으니 하는 말이지만, 백선우에게는 뭐라고 말할 거죠?”

  “뭘?”

  “그 남자가 가 보라고 했다면서요. 재밌었습니까? 덧붙이자면 플레이는 아주 가벼웠어요. 뭐, 당연한 건가? 내가 당신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는 애정이 담겨 있으니까요.”

  사실 골든 샤워나 딥쓰롯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모른 척 했다. SM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 여지운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이상한데서 헐렁했다.

  “나와의 섹스가 지겨우면 언제든지 말해요. 지루할 틈이 없게 뭐든 다 할 테니까.”

  대답 대신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는 여지운을 보며 선연홍이 입꼬리를 올렸다. 

  무섭겠지.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괴롭히는 맛이 있는 남자다.

  하지만 괴롭힘보다 사랑을 더 많이 주고 싶다.

  세상에 이 남자처럼 예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도 될까요?”

  “아니.”

  “지운 씨는 제게 주인님이라고 들었고, 이번에는 절 주인님으로 불렀잖아요.”

  곧바로 뚱한 답이 돌아왔지만 선연홍은 개의치 않았다. 

  “헛소리 하지 마. 내가 널 언제 주인님으로 불렀냐?” 

  “둘 중 어느 게 더 좋아요?”

  주인님 소리 듣는 거와 부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냐고? 둘 다 또라이 같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그나마 주인님…….”

  아니, 근데 이런 고민을 왜 해야 하는 거냐?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던 여지운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선연홍과 눈이 마주쳤다. 눈매가 좀 더 보드랍게 휘어졌다. 그제야 저 남자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다는 말이 있지만, 여지운은 침이 아니라 더한 것도 뱉을 수 있는 남자였다.

  “나를 갖고 놀아? 요새 살만해 졌지? 강냉이 털리기 전에 적당히 해라.”

  “갖고 놀다니요. 지운씨와 함께 노는 건 좋지만 갖고 놀진 않아요. 제가 어떻게 감히.”

  아무리 생각해도 쟤는 일부러 순종적인 척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 출발할게요.”

  안전띠를 맨 선연홍이 액셀을 밟았다. 여지운의 사심 담긴 권유로 산 고급 외제 차는 별다른 소음 없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조용히 내려앉은 어둠을 가르며 달렸다. 음악 하나 틀지 않은 차 안은 고요한 공기와 부드러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정면을 보며 운전하던 선연홍이 어느 순간 말을 툭 내뱉었다.

  “저 때문인 거 압니다.”

  여지운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반대편 차량에서 번진 빛이 번지며 반듯한 선을 그리는 옆모습이 드러났다.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선연홍은 무척 진지했다. 

  “제가 사디 성향도, 마조 성향도 있으니까 맞춰 주려 한 거잖아요. 하지만 전 플레이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과 연애를 하고 싶은 거지.”

  “…….”

  “그러니까 저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지운 씨의 그 알량한 싸가지까지 다 포함해서 좋아하니까요.”

  칭찬이야 욕이야. 애매한 소리가 어이없었다. 가만히 보면 은근히 잘 맥인다니까. 

  “무슨 헛소리야……. 내가 너 때문에 무리를 왜 하냐. 착각도 정도껏 해.”

  턱을 괸 채 밖을 응시하고 있던 여지운이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냉정한 대답에도 선연홍은 미소 지었다. 시야 끝에 걸린 여지운의 귓등이 붉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색이었다.  

  “물론, 지운 씨가 원하는 거라면 저도 좋아요.”

  그는 여지운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육체에 흔적이 남지 않게 잘 조교 할 자신 있어요. 밖에서는 능력 좋고 인정받는 팀장, 집에서는 알몸으로 귀와 꼬리를 단 개. 어때요? 아까 보니까 좆 잘 빨던데 마음껏 먹게 해줄게요.”

  이 새끼 봐라? 애정이니 뭐니 지랄하더니.

  “…….”

  “그게 싫으면 지운 씨가 날 밟거나 채찍으로 때려 줘도 좋아요.”

  뭘 상상했는지 선연홍의 뺨이 살짝 상기 됐다.

  설마 저게 본심인가? 

  “무엇이든 좋습니다, 다 좋아요. 당신이 좋아요.”

  “작작 해. 미친놈아. 둘 다 할 생각 없어.”

  여지운이 짜증을 드러내자 선연홍이 이때다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제가 제일 좋죠?”

  “그래. 차라리 지금이 좋다. 그냥 이대로 평범하게 연애하자.”

  이미 평범함과는 억만년 떨어진 것 같지만, 지금이 가장 최선인 것 같다. 평범한 연애…… 하다 하다 선연홍에게서 평범함을 찾게 되네. 

  “와아.”

  마침 신호에 걸린 차가 멈추자 선연홍이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다. ‘평범하게 연애하자’ 하는 말에 진심으로 설렌 것 같다.

  “하하, 하하하. 미친.”

  나도 갈 때까지 갔구나.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그를 보며 선연홍이 따라 웃었다. 

  선연홍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

  “네.”

  평범하게 밥 이야기를 하는 지금, 참 평화로운 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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