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친 나비
“저번과 비슷한 카드들이 또 나왔네요.”
“또요??”
한 대학로 구석진 곳에 있는 타로 컨테이너.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그곳의 매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는 주 고객층인 여대생도, 미래가 막막한 취준생도 아니었다.
바로 지금, 타로를 보고 있는 남자 손님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자신의 근황을 속속들이 맞혀 버리는 타로집 사장님의 신기에 매료되어, 이제는 숫제 출석을 하듯 타로집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가 그러기를 이제 보름째였다.
사장이 뒤집은 다섯 장의 카드는 딱 봐도 어두컴컴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었다. 사신의 카드, 열 개의 칼을 등에 꽂고 누워 있는 카드, 하트에 세 개의 칼이 박힌 카드, 악몽에서 깬 어떤 자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고뇌하는 카드, 악마 카드 등등. 타로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영 밝은 메시지로 읽을 수 없는 카드만 골고루 뽑혀 나왔다.
“네. 여성분은 돌아오실 생각 안 하시고 계신데…… 손님. 이쯤이면 단념하시고 새 사랑 찾아 떠나시는 게…….”
이곳의 사장인 김민수는 웬만해서 단골에게 이런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밥줄임을 잘 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카드가 개같이 나와도 ‘그래 뭐. 이 정도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수도 있겠네요’ 하며 입 발린 말을 하는 건 그가 가진 경영 노하우였다. 그러면 꼭 다시 찾아오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민수라도 더 이상 제 눈앞의 손님에게는 이런 말을 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리 지독한 이별의 후유증을 겪었어도 보름 내내 자신의 가게에 출석하는 자는 남자가 처음이었다.
이제 그만 오고 네 삶 찾아 떠나라고 하려던 민수는 말을 모두 잇지 못했다. 손님이 커다란 두 손을 펼쳐 제 얼굴을 파묻고는, 어깨를 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님. 우시나요……?”
눈치 없는 민수는 훌쩍이기 시작하는 그에게 물어봤다. 그는 민수의 말을 기점으로 눈에 수도꼭지를 틀었다.
“어허허헝-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민수는 난감했다. 그것도 매우 많이. 눈앞의 손님은 씨름선수라고 해도 될 만큼 몸집이 있는 남자였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정장만 입으면 깍두기로 활동해도 될 만한 분위기의 인상파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남자가 펑펑 울고 있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아주 애절한 순정을 지녔다는 건 얼추 알았지만, 그가 눈물까지 보이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민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곽티슈를 벅벅 뜯어 손님에게 건넸다.
“저, 손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손님 마음 상태 보면 못 잊는 건 알겠는데. 손님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습니까.”
눈물을 어룽거리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눈물, 코에는 콧물로 엉망이었다. 민수가 건넨 티슈를 낚아채고 코를 풀던 손님이 되물었다.
“더 중요한 거요……?”
“뭐, 이를테면…….”
민수는 다른 카드 덱을 꺼내 섞으며 한 장의 카드를 뽑아내었다. 뒤집으니 거북이 그림이 큼직하게 박혀 있는 초록색의 카드였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거북이는 물을 헤엄치며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하고 계시던…….”
또 다른 카드를 하나 뽑았다. 빛나는 거미줄을 짜고 있는 거미가 박힌 보랏빛의 카드가 떴다. 카드 전체적으로 걸려 있는 은빛의 거미줄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보라색 거미의 겹눈 머리 위에는 화려한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림……?”
민수의 말을 들은 손님이 훌쩍임을 멈췄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눈 안의 눈물을 비워 낸 남자는 놀란 듯 숨을 들이켜며 민수에게 상체를 디밀었다.
“제가 그림 하고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깜짝 놀라 다가오는 폼이 가히 폭발적이다. 눈 깜빡할 새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에 민수는 두 손을 들어 남자와의 격차를 유지했다.
“카드가 말해 주던걸요.”
“이야. 역시 사장님은 잘 맞히신다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저보고 전공이 운동이냐고 물으시던데요. 그리고 다른 집 사장님들은 카드 뽑기 전에 제게 이것저것 묻느라 바쁘신데, 아무것도 안 물어보시고 어떻게 이렇게 잘 맞히시지? 신이라도 들린 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신들린 게 맞긴 하지.’
그러나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민수는 땀을 삐질 흘리며 허허 웃을 따름이었다. 그 작은 사실을 하나 맞힌 것만으로, 이미 높아 더 이상 오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민수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했다. 그는 눈물이 쏙 들어간 눈으로 사장님의 신통방통함을 외쳤다.
“네네. 칭찬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이 여자분에 대한 거 말고 다른 일로 찾아와 주세요.”
하지만 그 말이 지뢰였다. 다시금 자신의 전 여자 친구가 생각난 손님은 눈에 달린 수도꼭지 밸브를 힘껏 열어 버렸다.
“어헝헝헝…… 지민아!!”
1평이 조금 안 되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서러운 남자의 울음소리만이 구슬프게 울렸다.
❊ ❊ ❊
민수는 고단한 마음으로 컨테이너의 문을 닫았다. 시간은 자정을 이미 넘겼다. 오늘은 보름간 출석하시고 눈물로 바닥을 적신 그 단골손님 이후에도 많은 손님이 민수를 찾아 주었다. 보통 하루 목표만 달성하고서 하루치의 장사를 접는 민수는 자꾸만 타이밍 좋게 나타나는 다음 손님 때문에 결국 날을 넘기고야 말았다.
문을 자물쇠로 잠근 민수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일이었다. 심지어 사람과 마주하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 주어야 한다. 타로를 만지는 일은, 사람과 마주치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민수로서는 천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그나마 이 일이 제일 나았다. 저노동 고임금. 심지어 민수는 카드에게 약간의 조언만 받으면 내담자의 상황을 정말이지 신들린 듯 알아맞히어 버리니, 좌판을 벌이기만 하면 목돈 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짐은 단출하다. 민수는 가게 열쇠와 유니버셜 타로 한 덱. 그리고 오늘의 매출이 들어 있는 지갑. 타로는 굳이 챙길 필요는 없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습관적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한참을 조용히 걷고 있던 민수의 앞에 검은색 나비가 팔랑이며 나타났다.
‘아, 재수 없게.’
마법사의 식신이다.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 나비는 이리저리 어지럽게 비행했다. 민수는 자신이 그 나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비에게 들키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딴청을 피웠다.
허접한 연기임에도 나비는 민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민수를 감지할 수 있는 식신을 만든 마법사가 있다면, 그는 이미 세계를 제패하는 대마법사가 되었을 거다. 민수는 아직 이 세상에 그런 마법사는 태어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마법사들은 식신을 풀어 마력을 감지하고 그를 제 것으로 취하는 데에 혈안이었다. 가장 마력이 높다고 자부하는 민수가 근 몇백 년간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 다닐 수 있었던 것, 아니, 대놓고 대로변에 장사를 벌여도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과는 격이 다른 마력 차이 덕분이었다.
민수는 제 마력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 능했고, 이는 식신이 아닌 마법사가 코앞에 와도 자신이 ‘그’인지 모를 정도였다. 민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나아갔다.
‘그래도 오늘은 한 마리밖에 안 보이네.’
식신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민수는 그들을 나비가 아닌 나방 취급했다. 까딱 마력이라도 한 줄기 흘린다면 공기 중에 뿌려져 있는 식신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발각당할 판이다. 덕분에 평소에도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던 민수다.
‘심지어 낮보다는 밤에 더 잘 보이니, 나방이지 나방.’
고로 민수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식신의 수에 따라서 달라졌다. 평균적으로 열댓 마리 보이던 식신은 그나마 오늘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0마리를 기록하는 곳으로 이사하리라 다짐한 민수는 양손을 들어 뒷목을 받치고 달을 보기 위해 고개를 꺾었다.
“어…….”
그리고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재앙과 같은 수의 나비 떼가 언뜻 보면 강풍에 휩쓸려 나가는 양, 한곳을 향해 날아갔다. 무서울 정도의 나비 떼는 점점 규모를 불렸다. 민수가 현대에서 지금까지 봐 왔던 식신의 수를 다 합해도 저 정도는 되지 않을 거다.
가끔씩 고장 난 식신들이 몰려와 일반인을 해할 때가 있다. 일반인 중에 유별나게 달콤한 마력을 지닌 자들이 그 표적이 되었다. 신선한 꿀을 찾아다니는 나비처럼, 그럴 때만큼은 식신은 제 주인의 속박을 끊고 의지가 있는 듯 행동했다.
“그래도 저건 심하잖아.”
그럴 경우엔 마력의 향에 따라 평균적으로 열 마리 남짓한 식신이 일반인에게 달라붙는다. 그러나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나비들은 못해도 천 마리가 넘어 보였다. 저 정도의 식신이 일반인에게 달라붙으면 최소한 사망이다.
몰랐으면 몰랐지, 그 광경을 본 이상 민수는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는 나비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잃은 듯 보였던 한 마리의 식신은 정말 길을 잃은 게 맞았다.
‘저 위에 합류했어야 하는 나방 새끼였군. 어쩐지 오늘따라 거리에서 잘 안 보이더라.’
민수는 소소한 마력의 도움을 받아 나비 떼보다 빨리 이동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팔린 식신들은 민수가 사용한 극미한 범위의 마력을 감지해 내지 못한 듯했다. 민수는 그들이 향하는 목표로 한발 앞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찰나였다.
하늘에서 우글거리던 나비 떼는 웬 남자의 등 뒤로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등 뒤로 벌어지는 상황을 알지 못한 채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를 향해 벼락처럼 들이닥치는 나비들과 다르게 평화로워 보였다.
그 나비군대는 멀리서 보면 하늘을 덮는 한 마리의 커다란 나비 같았다. 앞뒤 상황을 잴 것도 없던 민수는 그 둘 사이로 달려가 시커먼 나비 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순간 힘없이 껌뻑이는 가로등의 미약한 불빛 탓에 어두컴컴하던 골목길이, 타오르는 불길에 의해 환해졌다. 민수의 마법은 식신 뭉치에 불을 붙였다. 깨끗하고 뜨거운 마법의 불길은 남자를 덮치려고 했던 나비들을 깔끔하게 불살랐다. 불길은 나비들을 삼키며 하늘에서 타올랐다.
일반인의 눈에는 트럭만 한 나비 화염이 뜬금없이 하늘에 나타난 것처럼 보이리라. 마법사가 아닌 자의 눈에는 식신이 보이지 않지만, 마법은 똑똑히 보이기 때문이다.
민수의 불 마법이 식신들을 순식간에 삼켜 버리면 좋겠지만, 식신의 발화 속도는 다급한 마음과 다르게 느긋했다. 불길은 거대 나비의 날개 끝에서부터 천천히 사라졌다.
물론, 허공에 나타난 나비 모양 화염이 표적이 되었던 남자에게 들키지 않으리란 요원했다. 민수는 기감을 넓게 펼쳐 또 다른 식신이 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뒤를 돌았다.
“…….”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자신 앞의 기현상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펼쳐진 상황은 웬 남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집채만 한 나비 화염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양새다. 골목길에 있는 사람은 민수와 식신의 표적인 자신, 그 둘뿐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건 민수였다.
민수는 제 마력을 탐색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식신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직 타오르고 있는 화염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자의 얼굴이 화염의 세기에 따라서 색을 달리했다. 주홍빛, 붉은빛, 노란빛. 온색을 온통 얼굴에 비치고 있는 남자는 뒷걸음질조차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어떻게 수습한다.’
민수는 불길에 뜨뜻해지는 오른팔을 아무렇지 않게 놔두고서 생각했다. 남자의 캐주얼한 옷차림에 편한 머리를 보니 근처에 자취하는 대학생인 듯싶었다. 그는 제 앞에 나타난 화염 나비를 보고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커다랗게 뜬 눈과 살짝 벌어진 입술이 그가 가진 감정을 대변했으나, 일반인치고 저 정도만 놀라면 양반 축에 속했다.
그런데 남자의 초점이 미묘하게 핀트가 나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허공에 갑자기 상상도 못 할 기현상, 이를테면, 굉장히 정교한 나비 모양의 화염이 나타나면 거기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나? 그러나 남자는 나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있는 민수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나 방화범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불 앞이라 더워서 땀을 흘려도 모자랄 판에 민수는 괜히 식은땀을 흘렸다. 나비의 중심부로 불길이 모여들며 드디어 허공에서 사그라들었다. 따뜻할 정도의 화기가 사라지자, 가을의 차가운 밤바람이 불길에 데워졌던 온기를 앗아 갔다. 방금 전의 불난리는 마치 꿈인 양 골목에는 정적과 어둠만이 흐를 뿐이었다.
남자는 나비 불이 사라질 때까지. 아니, 처음 기현상이 발생하고부터 지금까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민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수는 그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양손을 펼쳐 어색하게 말했다.
“짜잔. 지금까지 깜짝 마술쇼였습니다.”
“…….”
민수는 휑하니 둘 사이로 지나치는 밤바람이 아까보다 싸해진 느낌을 받았다.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핑계였다. 마술쇼는 선을 넘었다. 바보도 아니고, 그런 걸 누가 믿겠어. 차라리 방송국에서 나왔다고 할걸.
민수는 자신의 대사 선택에 미스를 느꼈다. 민수의 앞에 있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제 어이없는 대처에 저 홀로 부끄러워진 민수는 남자의 말을 기다려 주지 않고 재빨리 그와 눈을 맞췄다.
민수가 몇백 년간 살며 마법을 아무렇게나 써도 마법사들에게 제 위치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마력을 잘 갈무리해서도 아니었고, 식신을 잘 피해서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요소일 따름이다. 민수가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잘 피할 수 있던 이유. 그것은 자신이 마법을 쓸 때 있었던 목격자들을 모두 꼼꼼히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민수의 자랑인 기억 소거 마법으로.
민수는 남자가 말을 모두 잇기 전에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었다.
딱-
골목길에 민수의 손가락 소리만이 메아리로 울렸다.
❊ ❊ ❊
민수는 가게 문을 열며 어제의 식신 사건을 생각했다. 다음부터 그런 일이 또 생기면 마술쇼니 방송국이니 그딴 얘기 하지 말고 곧바로 기억 소거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애초에 일반인에게 식신이 그렇게까지 달려드는 건 그리 잦은 일이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민수도 초동 대처가 어설펐었다.
가장 최근에 이런 일을 목격한 것은 백 년 전 웬 아저씨. 그리고 그 전은 2백 년 전 한 꼬마. 그러니 어제의 그 학생은 거의 백 년 만에 일어난 기현상을 제 몸 바쳐 체험하고 있었던 거다. 기억을 소거하면서 저자가 혹시 은둔한 마법사인가 스캔해 봤지만, 그는 확실히 일반인이었다.
민수는 그에게 기억 소거 마법을 건 후 마법이 실효될 시간 전에 텔레포트로 집에 도착했다. 기억 소거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그 직후부터 대략 10초간 혼이 나간 듯 멍해진다. 기억의 재편성에 의한 현상이다. 민수는 그에게서 딱 자신이 나타난 그 기억만 사라져 있음을 확신했다.
민수의 자랑이 기억 소거 마법인 이유였다. 민수는 다른 마법사들보다 섬세하게 기억을 지울 줄 알았다. 미숙한 마법사들에 의해 허술한 기억 소거 마법에 걸린 대상은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민수는 쪽창을 열고 좁다란 컨테이너를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환기한 후, 습관적으로 카드 덱 하나를 꺼내 셔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장을 무작위로 뽑았다. 화려한 나비 카드가 뽑힌 걸 본 민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웩.”
카드에 그려진 나비를 보자마자 어제의 식신이 생각나 버렸다. 검기만 한 식신 나비와 다르게 카드에는 오색찬란한 나비가 제 날개를 뽐내고 있었지만, 민수에게 나비는 한낱 나방의 친척일 뿐이었다. 카드를 뽑고 기분이 하강 곡선을 타기 시작한 민수는 다른 카드를 한 장 더 뽑았다.
이번에는 심지어 나방 카드였다. 보기만 해도 불길해 보이는 뻘건 바탕에 그려진 나방 카드가 떠 버렸다. 송충이같이 털이 북슬북슬 달린 더듬이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생했다. 민수는 두 장의 카드를 뽑고 나서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카드 더미에 두 장을 넣고 미친 듯이 섞었다.
아무리 어제 이에 대한 사건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딱 이 둘이 뽑혀 나올 건 뭐란 말인가.
‘이래서 내 앞날 내가 안 뽑아 보지.’
민수는 타로를 읽으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제 인생은 제가 뽑지 않았다. 제 눈에 대들보라고, 해석이 지극히 주관적인 타로는 제가 제 상황을 봐 보았자 좋을 쪽으로만 해석될 따름이다. 좋은 카드를 뽑으면 당연히 좋게, 좋지 않은 카드를 뽑아도 좋게 해석해 버리는 거다.
물론 타로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 좋은 카드와 나쁜 카드의 구분이 모호하긴 하다. 하루의 시작을 나비와 나방 카드를 뽑아 버려 기분만 잡친 민수는, 그래도 이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오늘의 운세를 생각하며 한 장 더 뽑았다.
‘좋은 카드 나오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심혈을 기울여 섞고서 뽑은 카드는, 또다시 붉은 바탕의 나방 카드였다.
“아놔.”
민수는 포기하지 않고 나방을 카드 더미에 넣어 다시 섞기 시작했다. 갑자기 쓸데없는 곳에 불타올라 버렸다. 어느새 민수만의 인디언 기우제가 시작되었다. 민수가 생각하기에 좋은 카드가 나올 때까지 뽑아 보는 거다. 물론, 뽑을 때마다 다른 카드가 나올 확률이 높으니 기분 전환 용도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는 않다.
……그게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말이다.
“…….”
민수는 자신이 또다시 뽑은 뻘건 나방 카드를 노려봤다. 인과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잘 읽어 내는 마법사들에게 우연은 없다. 하물며 마법사 중에서 가장 마력이 크다고 자부하는 민수다. 그걸로 일반인을 상대로 밥벌이까지 하고 있으면서 왜 다시 뽑아 본 걸까. 어차피 처음 잡친 기분은 카드를 뽑을수록 더 심해질 텐데.
민수는 제 손에 있는 붉은 카드를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팔랑이며 책상에 내려앉은 나방이 얄미워 보였다. 그림 속 나방의 눈을 찾을 수 없어 좁쌀만 한 나방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눈치 없이 세 번씩이나 뽑힌 나방이 원망스러웠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나비라도 나오게 해 줘.”
부탁해 보았으나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라고는 민수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 민수의 말을 듣는 이라고는 카드들뿐이다. 그때, 가게 문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여기. 기가 막히게 잘 맞힌다니까?”
어제까지 보름간 개근이라는 어마무시한 업적을 남기신 손님의 목소리가 쪽창을 통해 들렸다. 기어코 오늘도 오신 모양이다. 저번과 다른 점은, 누군가를 데려오는지 발소리가 두 명분이다. 심지어 그가 누군가에게 가게를 소개하고 있었다.
왠지 그가 데려온 자도 자신의 단골이 될 것 같은 느낌에 민수는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 봤자 조금뿐이긴 하지만.
살아가기 뻑뻑한 이 세상에서 민수의 힘이 되어 주는 건 인간들의 온정도, 배려도 아닌 돈 그 자체였다. 돈만이 민수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구원이었다. 저를 쫓는 마법사들에게 꼬리가 밟히면 모은 돈을 한순간에 버리고 튀어야 했지만. 뭐, 그러면 또 벌면 되지 뭐.
민수는 사람 좋은 영업용 미소를 장착했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가게 밖에서 부산스럽게 있던, 미술을 한다던 개근 손님은 가게의 문을 옆으로 밀어 열며 민수에게 인사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또 왔어요.”
“어서 오세요.”
“들어와, 들어와.”
손님이 제 뒤에 있는 자에게 손짓하자 한 사람이 낮은 문턱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민수와 눈을 맞추었다.
“안녕하세요.”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민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단골의 뒤에 따라 들어온 그는 어제 미친 나비들의 과녁이 된 그 남자였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제 그 난리를 치고 기억까지 지운 자가 다음 날 가게에 들어오다니. 이 무슨…….
그러나 당황한 것은 민수뿐이었는지, 단골을 따라 들어온 남자는 민수를 보고서도 평온했다. 단골은 자신의 옆에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를 톡톡 치며 제가 데려온 일행을 앉혔다.
“제가 오늘도 여기 올 거라고 하니 이 친구도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데려왔어요.”
잘했죠? 하고 묻는 얼굴이 묵직하게 상큼하다. 민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친구를 따라 앉은 남자를 관찰했다. 어제는 정신도 없고 어둠에 묻혀 제대로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불길에 비친 얼굴을 보았을 때도 여자 꽤 울리겠구나 싶던 비주얼이 돋보이기는 했었다.
민수는 ‘美’라는 개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그런 민수의 눈길마저 끌 만했다. 골수 속 백혈구까지 운동할 것처럼 투박하게 생긴 단골의 옆에 앉아 있으니 그의 섬세한 외모가 더 돋보였다.
오늘도 그는 편한 차림이었다. 회색 후드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나는 옷 태에, 사진 찍어 걸어 두면 완판은 예약이지 싶다. 아직 대학생인 단골의 친구라고 했으니 학교 친구일 가능성이 제일 크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 정도 나이쯤 되어 보이긴 했다.
밝은 한낮에 그의 얼굴을 보니, 저 정도면 나비들이 그의 달콤한 마력에 이끌려 달려든 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민수와 다르게 미적 감각이 뛰어난 나비들은 가끔 제 미적 기준에 꼭 맞는 얼굴이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다. 목표가 마력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았다. 미인박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거 다 마법사의 식신이 얼굴 보고 달려들어서 해를 당한 거다. 하여간 기분 나쁜 나방 새끼들.
“크흠…….”
단골이 헛기침했다. 그제야 번뜩 정신을 차린 민수는 자신이 식신의 표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멋쩍어진 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도 오셨네요. 오늘도 같은 주제?”
단골은 좋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아니, 습관적으로 물은 건데 진짜 어제와 같은 질문일 줄이야. 어제 제 몸의 1% 정도 되는 눈물을 쏟아 내고 간 단골이기에, 눈물과 함께 그 여자를 같이 보내 준 줄 알았다. 정말로 전 여친에 대한 질문을 할지 몰랐던 민수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정말요?? 또요??”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떡인다. 저 정도면 상사병이다. 민수는 카드 덱 하나를 꺼내 천천히 셔플하며 물어봤다.
“그래, 오늘은 그 여자분의 뭐가 궁금하신데요?”
“남편을 언제 만났는지.”
빠르게 카드를 섞던 손이 그의 말을 듣고 멈췄다. 카드에 집중하고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어차피 믿지 않을 것 같아 함구했던 이유를 단골은 기어코 알아냈다. 어떻게 알았지?
‘분명 어제까지 몰랐을 텐데?’
민수의 입이 뇌를 배반하고 속마음을 흘렸다.
“아니, 그건 어떻게…….”
“역시 사장님은 아시고 계셨네요.”
침체된 기운을 두른 단골의 고개가 툭 떨구어졌다. 찰나에 우울한 기운을 가득 담고 그가 말했다.
“이 친구가 알려 줬어요. 아이와 함께 다니고 있던 지민이를 봤다고. 아이가 지민이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웬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고…… 그 얘기를 듣는데 사장님께서 다른 사람 만나는 게 절대적으로 신상에 이로울 거라고 했던 말이 팍 하고 떠올라서….”
일말을 말하는 소리가 점점 죽었다. 민수는 그가 또 울까 싶어 미리 곽티슈를 그의 앞에 가져다 두었다.
‘저 목격담이 사실이어도 절대 믿으려 들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믿게 했지?’
단골은 민수의 말을 경전처럼 받들었다. 그러나 그런 민수가 진실을 알린들 여자에 대한 신뢰를 절대 잃지 않을 사람이었다. 콩깍지가 이리 무섭다. 새삼스럽게 그 어려운 걸 해낸 나비의 표적을 바라봤다.
표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근육질 불독이 안쓰럽지도 않은지 정신을 빼놓고 있었다. 그것도 민수에게.
표적을 보자마자 마주친 눈에 한 번 더 당황한 민수는 빠르게 눈을 돌려 단골에게로 고정했다.
‘기억을 없애기 전에도 저러더니.’
단골의 슬픈 기분에 동조하고 싶었지만 그가 데리고 온 자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했다. 표적의 시선을 한 번 의식하니 계속 신경 쓰였다. 표적의 눈빛은 여전히 제게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마법이 안 들어서 어제 일 안 잊어버린 거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절대 없다. 혹시 몰라 표적이 가게로 들어온 순간, 민수는 한 번 더 표적이 지닌 마력을 스캔했다. 마법사가 마법에 방어하려면 최소한의 마력은 필수다. 다만 가끔씩 일반인이라도 소량의 마력을 가지고 있으면, 미국의 로또, 파워볼을 맞을 확률로 마법 저항이 일어나긴 한다. 하지만 표적의 마력은 명실상부 0이었다.
나비가 달콤한 마력이 아니라 화려한 얼굴에 이끌려 덮쳤다는 가설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연은 없다는 걸 지론으로 삼고 있었던 민수지만, 표적이 가게에 온 이번은 확실히 우연이 맞았다.
눈물을 가까스로 참은 단골이 지갑에서 주섬주섬 오천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입금 완료. 프로다운 민수는 냉큼 돈을 회수하고 곧바로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언제 결혼하셨나 물으시는 거 확실하시죠? 그…… 지민 씨라는 분.”
단골이 고개를 힘겹게 끄떡인다. 민수는 카드를 섞고 단골 앞에 쫙 펼쳐 두었다.
“다섯 장만 꺼내 볼까요.”
솔직히 그거 알아보려면 민수는 한 장이면 된다. 그래도 질문 하나당 오천 원인데 카드라도 많이 뽑아 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단골은 이렇게 신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중하게 다섯 장의 카드를 뽑아내었다.
일렬로 세워 두고 뒤집어 보았다. 교황, 쓰러진 세 개의 컵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망토의 남자, 교회를 지나치고 있는 거지들, 싸우고 있는 다섯의 사람, 떠나는 자들을 바라보며 검 세 개를 들고 씨익 웃는 남자까지. 다섯 장의 카드가 참 골고루 한 가지 사실만을 알려 줬다.
“5년 전에 결혼하셨네요. 남편이 바람난 걸 보고 맞바람을 피웠나 봐요. 애는 네 살이고요.”
더 알아보니 난리에 난리다. 애가 네 살이니 5년 전에 결혼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민수의 입장에서만 그랬지 앞에 있는 단골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카드를 보니 단골과 만난 기간은 2년 남짓이었다. 여자의 실체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민수의 말을 들은 단골이 큰 손으로 눈을 덮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나?’
어제의 일을 겪고 이 손님에 대한 경험치가 늘어난 민수는, 그에게 우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곽티슈를 그의 몸통 쪽으로 더욱 밀어 놓을 뿐이었다.
“알게… 되었으니…… 이제 됐어요…….”
단골의 보름 하고도 하루 동안의 출석이 드디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민수의 입장에서 시원섭섭했지만 손님의 입장에서는 좋은 결정이란 건 변함없다. 속으로 축하를 건네던 민수는 단골의 옆을 보고 흠칫 놀랐다.
자신의 친구가 울먹거려도 표적은 개의치 않고 민수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쯤 되자 부담스러워진 민수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표적에 말을 걸었다.
“친구분께서도 궁금한 게 있으신지…….”
제가 말을 걸자 표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읊조렸다.
“글쎄요.”
‘아니, 그럴 거면 왜 온 거야. 괜히 무섭게!’
제 앞의 곽티슈에서 티슈를 한 장 꺼낸 단골이 티슈를 가져가 기어이 몇 방울 흘린 눈물을 찍어 내었다. 그러고는 코맹맹이 소리로 표적에 말했다.
“너도 궁금한 거 있어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 아니었어? 내가 불편하면 나가 줄까?”
나가 준다니. 단골은 역시 섬세한 미술학도였다. 표적은 드디어 민수에게 눈을 떼고 제 친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의 속박에서 벗어난 민수는 순간 쾌적함을 느꼈다. 표적은 눈물 몇 방울을 쏟아 내어 벌건 눈가를 하는 제 친구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느리게 저어 주었다.
그러고는 민수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물어도 상관없는 겁니까?”
괜한 박력에 민수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민수의 어깨가 본인만 알 정도로 움츠렸다가 서서히 풀어졌다. 왠지 저 남자가 하는 질문은 시시한 게 아닐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긴장하고서 고개를 끄떡였다.
“뭐…… 질문이 구체적이기만 하다면요.”
옆에서 단골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여기 사장님 진짜 잘 맞힌다니까. 완전 신 내린 거 그 이상이야. 지민이 때문에 점집도 갔었는데, 거기보다 더 잘 알아맞히셔.”
‘기어코 거기도 다녀왔나.’
“구체적이기만 하면 뭐든 괜찮다고요.”
표적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짧은 고민을 했다. 단골 또한 그가 어떤 질문을 할지 궁금했는지,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뭐, 그렇죠.”
천장의 모서리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던 표적은 마침내 입을 떼었다.
“그러면 이런 것도 가능합니까.”
한참을 뜸 들이던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과 제가 언제 처음 만났는지.”
“네?”
“뭐?”
단골과 민수 모두가 그의 질문에 벙쪘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너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야?”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간 단골이 그에게 우렁차게 물었다. 민수는 어느새 식은땀이 삐질 났다.
‘마법이 안 들었나?’
민수는 다시 한번 표적의 마력을 스캔했다. 저자에게만 대체 몇 번이나 마력 확인을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표적이 지닌 마력은 0에 수렴했다. 저렇게까지 마력이 없는 거면 본능적인 마법저항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마법을 걸 때마다 백이면 백 잘 받는 체질일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심지어 민수 자신은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심지어 어젯밤에 마법이 잘 먹은 걸 확인하고 순간이동 한 건데?’
민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모르쇠로 굴었다.
“하. 하. 분명 손님이랑 저랑은 오늘 처음 만났는데요.”
사실 이런 대처가 정답이긴 하다. 지금 카드 뽑아 봤자 오늘이 아닌 어제 처음 만났다고 나올 게 뻔했다. 카드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적어도 일반인을 상대로 카드를 읽는 데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민수는, 제 신념을 지키고자 머리를 굴렸다.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책상 밑에서 앞의 두 사람 몰래 손가락을 부딪쳤다.
딱-
쿵---
민수가 손가락을 부딪치자마자 가게의 옆으로 무거운 무언가가 스쳐서 떨어지는 소리가 시내에 울렸다.
민수도 예상 못할 만큼 엄청나게 큰 소리가.
바깥에서 난 굉음과 거의 동시에 쪽창에서 불청객이 들어왔다. 잎사귀가 노랗게 바래기 시작하는 은행나무 가지가 그것이었다. 민수의 마법에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의 허리가 아작 나 버린 것이다.
“어이쿠.”
살짝만 조작하려고 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커졌다. 민수는 진심으로 놀라서 모든 걸 내팽개치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난여름 내내 컨테이너의 옆에서 파라솔이 되어 주던 은행나무가 부러진 채 가게 옆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는 없었다. 그 밑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가게도 흠이 나지는 않았고. 피해라면 제 컨테이너의 천장 침범 정도.
민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냥 그 상황을 피할 조그만 해프닝을 만들려고 했는데, 마력 조절 미스였다. 건장한 남자의 허리둘레만 한 나무가 쿵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한순간에 쓰러지니, 사람들이 이 구석까지 찾아와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가 실수하다니.’
이 순간 민수가 생각한 건 어젯밤 일이었다. 혹시 내가 기억 조작을 지금처럼 실패한 거라면? 하지만 그럴 리는 분명 없었다. 섬세한 마법이기에 마력 조절을 지금보다 몇 번이나 더 하고, 검산도 수십 번을 넘게 했다. 표적에게 건 마법은 완벽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어느새 다가온 단골손님이 민수의 옆에서 이 참사를 지켜봤다. 식신의 표적 또한 가게에서 비집고 나와 단골의 옆에서 안쓰럽게 누워 있는 은행나무를 발견했다.
‘뭐… 목표 달성을 하긴 했네.’
민수는, 일주일 치 식량을 한가득 카트에 담고 계산대에 왔더니, 유일한 카드가 잔액 부족 떴을 때의 표정을 재현해 내려고 애쓰며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를 어쩌죠. 오늘 장사 접어야 할 것 같은데.”
곤란한 질문에는 타로를 대충 뽑고 그럴듯하게 거짓말하면 될 일이건만 제 신념 때문에 참 어렵게도 가는 민수였다. 가게 옆에서 얌전히 서 있던 가로수가 한순간에 쓰러지다니, 장사를 접을 당위가 충분했다. 단골과 표적 또한 민수의 말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민수가 첨언했다.
“그리고 저는 손님 오늘 처음 본 게 확실합니다. 아마 제가 흔하게 생겨서 손님께서 착각한 모양이에요.”
민수의 말에 단골 또한 팔짱을 끼고 고개까지 끄떡여 격하게 공감해 주며 민수가 흔한 얼굴임을 인정했다. 그 반응에 민수는 괜히 뿌듯해졌다. 흔한 얼굴만을 일주일간 연구해 제 얼굴에 덮어씌워 영업해 왔기 때문이었다. 표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띨 뿐이었다. 단골이 쓰러진 나무를 살피며 말했다.
“사장님, 시청에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네네. 여기는 걱정 마시고, 다음에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 주세요.”
단골과 표적의 등을 슬쩍슬쩍 바깥쪽으로 밀쳤다. 한순간에 가게에서 50m는 멀어진 둘은, 민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후…….”
민수는 뒷수습을 하러 가게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미 시청에 연락을 하는 듯 보였다. 민수는 가게에 들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처 덱에 집어넣지 않은 오늘의 카드, 붉은 바탕의 나방 카드가 책상의 가운데에서 제 존재를 발하고 있었다. 민수는 카드의 밑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한순간 몸이 싸해지는 걸 느꼈다.
[Surrender Now] (*지금 항복하라)
‘뭐, 별 뜻 있겠어.’
민수는 애써 무시하고 카드를 정리했다. 굉장히 긴 하루였다.
❊ ❊ ❊
민수는 그로부터 다음 날인 오늘까지 가게를 닫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나비들이 표적을 향해 습격했던 그날, 장사가 잘되어서 하루 이틀쯤 장사를 쉰다고 하더라도 생활에 타격이 크지 않았다. 덕분에 민수는 오랜만에 게으름을 늘어지게 피웠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하던 민수는 침대와 한 몸이 된 지 열여섯 시간이 지나서야 나태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늘어지게 켰다.
자동으로 나오는 하품을 아무렇게 놔둔 민수는 침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나서도 눈을 감고 비몽사몽 했다. 뇌보다 먼저 깬 민수의 배가 천둥소리를 내며 얼른 일어나 제게 먹거리를 공급하라고 잔소리였다. 뇌보다 배가 더 힘이 센 민수의 신체는, 배의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무겁던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민수의 무겁기만 하던 엉덩이가 드디어 침대를 딛고 이륙했다. 민수는 추적추적 미니 냉장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쩍 소리와 함께 냉장고의 문이 열렸다. 있는 건 역시나 생수 두 병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보통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민수에게 집 안의 냉장고란 물 냉각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민수는 비어 있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다가 쭈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냉동고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그 안에 든 건 각 얼음 두 통뿐. 물로는 배를 채울 수는 없으니 나가야 한다.
민수는 위대한 배님의 명령을 듣기 위하여 모자를 눌러쓰고 슬리퍼를 대충 꿰어 신었다. 나가기 전에 현관에 달린 거울을 바라봤다. 한량 같은 옷차림과는 다르게 단정하게 생긴 남자가 거울 밖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깨끗한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투명하게 빛났다. 여하간 사람들 눈에 안 띌 정도로 평범한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이크. 귀찮을 뻔했군.’
민수가 손가락을 부딪쳤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 속의 남자는 인상을 180도 바꾸었다. 사이다나 샘물 광고에나 나올 것 같던 외모의 남자는 길거리에서 열에 네 명은 본 듯한 흐린 인상의 사내로 변했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가 아직 살아 있을까 싶었지만, 뭐든 철저한 게 중요한 거다. 마법을 이용해 다른 얼굴로 바꾼 민수는 그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마력의 흔적 또한 이중으로 지워 버리고서는 밖으로 나갔다. 그냥 대충 살고 싶은데, 나갈 때마다 이러고 나가려니 귀찮아 죽겠다.
민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중형마트에 도착했다. 민수는 곧바로 고기 코너로 가서 세일 상품을 심도 있게 바라보았다. 턱을 쓸며 세일하는 고기의 육질을 바라보는 민수의 눈은 날카로운 눈으로 미술품을 감정하는 감정사의 그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에 민수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향해 하는 인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분명 자신을 향해 있었고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는 거다. 민수는 제게 인사한 인물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식신의 표적이었다.
그가 자체 발광하며 민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민수는 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흠칫 몸을 움츠렸다.
“여기 근처에서 사시나 봐요.”
표적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입에 가볍게 걸린 미소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왜 이렇게 잦게 마주치지?’
어제, 엊그제, 그리고 오늘까지 세 번이나 연이어 만났다. 조심성이 많은 민수는 순식간에 표적의 마력 확인을 한 번 더 했다. 그러나 역시나 돌아오는 거라곤 마력 0이라는 깨끗한 결과뿐이었다.
‘인간 맞는데.’
마력 확인까지 깔끔하게 마친 민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에…… 안녕하세요.”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저에게 인사하는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는 민수는 이 상황 자체가 지극히 새로웠다. 그리고 가장 신선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눈에 띄는 걸 극도로 기피하는 민수에게 눈앞의 남자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천연 자석이었다.
‘심지어 그 눈 높은 식신까지 끌어들이니.’
민수는 웬만해서는 저자와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외모로 인해 군중의 시선과 나방, 제가 싫어하는 두 가지가 들러붙는 인간이라니. 어쩌다 마주친 연예인들도 관중의 시선을 몰긴 했지만 적어도 나비가 천 마리를 웃도는 정도로 따라다니지는 않았었다. 이자는 정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순식간에 이 자리가 불편해진 민수는 제 손이랑 가장 가까운 고기를 하나 낚아채고 플라스틱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하하. 그럼 이만.”
그러나 그는 민수를 호락호락하게 보내 주지 않았다.
“사장님. 이게 더 싸고 맛있어요.”
표적은 정육 코너에서 꺼낸 고기를 민수에게 내밀었다. 양이 너무 많아 포기하던 차인 원플원 소고기였다. 민수는 그를 보고 자기가 바구니에 뭘 집어넣었는지 그때 확인했다.
제가 정신없이 집은 고기를 보니, 15% 세일을 하고 있던 닭고기도, 20% 세일을 하고 있던 돼지고기도 아니었다. 원플원 소고기보다 한 등급이 낮고 가격은 그보다 배로 비싼 소고기를 실수로 집어 버렸다.
‘아뿔싸.’
민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서 한 바퀴 돌고 다른 고기로 바꿔 가지고 가야겠다고 재빠르게 작전을 짰다. 표적의 이어지는 말만 아니었다면 민수는 분명 작전을 이행하고 20% 세일하는 돼지고기를 집어 들었을 거다.
“이거 저랑 반씩 나누실래요?”
합리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상대가 저자라는 게 문제다. 뇌는 피하라고 난리였지만 배는 응하라고 난리였다. 한 몸에서 뇌와 배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언제나 이기는 건 배의 의견이었다.
민수는 고개를 끄떡였다.
❊ ❊ ❊
“안도언이라고 해요.”
표적은 싱글싱글 웃으며 제게 인사를 해 왔다. 결국 원플원 고기에 낚여 버린 민수는 고개를 대충 끄떡이며 대답했다.
“김민수입니다.”
통성명까지 마친 표적, 그러니까, 도언은 민수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어제 제가 착각했었나 봐요. 제가 만났던 사람은 사장님이 아니라 다른 분인 거 같아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민수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민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렇죠? 제가 손님 오천 원 아껴 드렸다니까요? 쓸데없는 데에다가 돈 쓰지 마시고 차라리 그걸로 돈가스 사 드세요.”
타로리더 민수에게서 타로를 지양하라는 말이 나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 말에 쿡쿡 웃던 도언은 고개를 끄떡였다.
“타로집 사장님 말씀 새겨들을게요.”
그가 눈을 접어 웃기까지 하니 주변이 환해진다. 저런 청년이 나비들의 표적이 되었었다니.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친구인 단골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인생의 곡선을 그렸을 거다.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면 민수 씨. 같이 돈가스 먹으러 갈래요?”
“네?”
잘못 들었나?
“돈가스 먹으러 가요.”
민수의 몇백 년간의 삶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민수는 제게 하는 말임을 머리로는 알겠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웬 돈가스…… 아니, 그보다 이렇게 갑자기요……?”
“민수 씨가 타로 볼 바엔 돈가스 먹으러 가자고 하시길래.”
도언은 제가 한 말이 당황스러운 제의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평화롭게 제 옆의 사과 한 알을 들고 품질을 확인하고 있었다. 요새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이에서도 저리 아무렇지 않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하나? 이거 좀 급발진 아니야?
민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세기에 들어오고 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이라곤 손님들과 집주인,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밖에 없는 그로서는 인간의 사교 활동에 대한 그럴듯한 데이터가 없었다. 도언은 지금 비닐에 사과를 담고 있었다.
‘먹으러 가라고 했지 같이 가자고는 안 했는데.’
“제가 왜…….”
“사 드릴게요.”
“손님이 왜 제 밥을…….”
“많이 배고파 보이시던데.”
“아니, 그건 어떻게…….”
“제 귀에까지 배 소리가 들리던걸요.”
민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배에 가져다 대었다. 하여간 배고프다고 울 줄만 알지 쓸모라곤 없는 배였다. 간간이 나는 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으나 그게 도언의 귀에까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저도 아직 밥을 안 먹어서요. 오늘따라 혼자 먹기는 싫어서.”
다섯 개의 사과를 야무지게 담은 도언이 제 바구니에 봉지를 넣었다. 도언의 바구니에는 각종 식료품이 담뿍 담겨 있었다. 고기 하나만 달랑 들어 있는 민수의 바구니와는 어떻게 봐도 차이가 났다. 도언은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 듯 첨언했다.
“그리고 급하게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오늘은 영업 안 합니다.”
영업을 이야기하는 건가 싶어서 민수는 숨 가쁘게 말했다. 물론 제 주머니에 카드 한 덱이 있긴 했다. 그러나 어제 도언의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은행나무 한 그루까지 희생시켰는데, 저자가 또 이상한 질문을 하면 쓰러진 나무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게다가 이 남자를 향해 꽂히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됐다.
“타로값, 네 배 드릴게요.”
“질문부터 들어 볼까요.”
상황이 가파르게 흘러갔다. 애초에 민수가 도언에게 돈가스 말을 꺼낸 건 타로를 보지 말라고 꺼낸 취지였으나 어찌 된 게 돈가스도 먹고 타로도 보게 생겼다. 이게 다 돈 좀 꽤나 있는 것 같은 도언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랬더니 네 배를 더 준단다.
두 배를 불렀으면 대학생 돈 떼어먹는 게 부담스러워서 거절이다. 세 배를 불렀다면 고민은 좀 했겠지만 거절했겠지. 그렇지만 네 배라면? 한 푼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대학생은 저런 대사를 저리 선뜻 치지 못한다. 도언은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는데 있는 집 자식이라도 되나 보다.
왜 있는 집 도련님이 직접 장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 보니 도언이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범상치 않은 메이커였다. 민수는 저쪽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선에 대한 부담? 내게 쏠리는 것도 아닌데 뭐. 마법으로 제대로 변장했으니 마법사들은 민수 자신을 눈치채지 못할 거다. 차라리 도언의 옆에 있으면 민수가 눈에 더 안 띌 수도 있다. 다 도언만 쳐다볼 테니.
그리고 이상한 질문이면 애초에 안 받으면 되겠지. 그런데 이상한 질문 같은 걸 하겠어? 도언은 민수가 껄끄러워하는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었다. 심지어 어제 했던 의미심장한 질문은 제 착각이라고까지 했으니, 민수가 곤란한 질문은 할 리가 없다.
“보고 싶은 사람에 관한 질문인, 이런 것도 괜찮을까요?”
자신과 관련된 질문만 아니라면 당연히 된다. 심지어 제3자에 관한 근황을 알아보는 건 민수의 자랑이었다. 그런 게 밥도 사 주고 돈도 네 배나 줄 정도로 급하다니. 소개팅이라도 했나 보지. 민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 ❊ ❊
저녁이라기엔 꽤나 이르고 점심이라기엔 매우 늦은 시간이다. 덕분에 줄 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인 식당 또한 운 좋게 바로 착석할 수 있었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의 냄새를 맡자 민수의 뱃가죽이 더 흉포하게 성냈다. 민수는 배에 힘을 주어 위장을 쥐어짰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함이었지만 뱃가죽은 마지막 사력을 다해 죽어 가는 소리를 내었다.
꼬르륵-
“많이 배고프셨나 봐요.”
‘미치겠네.’
때맞춰 서버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민수는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라 가장 기본 메뉴를 시켰다. 이거 양심적으로 타로값 안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네 배는 준다고 했으니 얼마를 받아야 하나.
예전에는 분명 안 그랬었는데 살아갈수록 점점 세속적으로 변하는 민수였다. 민수는 어제 처음 봤던-맨 처음 만남은 기억을 지워 버렸으니 제외하고서- 손님에게 밥을 얻어먹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돈 계산을 하는 걸 깨닫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저를 달랬다.
‘내가 사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뭐.’
부담과 간편함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마음은, 식당으로 따라 들어오자마자 간편함 쪽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부담스러웠다면 굳이 따라오지 않고 거절해도 되었을 일인데 화려한 꽃, 자기합리화는 오늘도 민수의 마음속에서 군락을 이루어 피어났다. 부담을 싹 없애 버린 민수는 서버가 음식을 가져올 동안 일단 가볍게 봐 볼까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항상 가지고 다니시나 봐요. 그거.”
도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카드를 보고 물었다. 민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며 카드를 섞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덕분에 이렇게 불시에 일도 하고 밥도 얻어먹고. 좋죠. 그래서, 알고 싶으신 분은…….”
민수는 빠르게 카드 한 장을 뽑았다. 한 천사가 두 명의 남녀를 향해 인자하게 손을 펼치고 있는 카드. 6번 메이저 아르카나, 연인 카드였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민수는 제 예상과 한 치 오차 없는 카드를 보고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싶어 온 거면 백이면 구십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연애운이다. 심지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도 했고. 저리 잘난 남자를 애타게 한 아가씨가 누굴지 참으로 궁금했다.
“좋아하시는 사람인가 보네요?”
턱을 받치고서 민수가 하는 모양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도언은 민수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도언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테이블 안을 가득 메웠다.
“친구에게 듣기는 했지만 정말 잘 알아맞히시네요.”
민수는 카드를 도로 집어넣고 섞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 이제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면 된다는 거지. 민수는 누군지 알 수 없는 도언의 사랑을 생각하며 한 장 더 뽑았다. 별을 가둔 새장을 들고 있는 설산의 노인, 은둔자 카드가 떴다. 민수는 카드를 보며 직관적으로 해석했다.
“그분께서 숨어 버리셨네요. 잠수라도 하셨나? 그래서 근황이 궁금하셨군요.”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원래 타로는 답답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찾는다. 은둔자 카드가 떴다면 그녀는 도언과 연락을 끊고 잠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수의 추측에 도언은 눈을 빛냈다.
“최근까지는요. 그래도 지금은 그분이 뭘 하며 살고 있는지는 알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은둔했는데 뭘 하는지 알 정도는 되었다니. SNS라도 뒤졌나. 민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요새는 그런 거 많으니까 말이다.
저런 남자도 사랑에 절절매기는 하는구나. 카드를 뽑으면 뽑을수록 민수는 그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카드를 다시 섞고 있는데, 웬 검댕이 나비 한 마리가 민수와 도언의 테이블에 기웃기웃하고 있는 걸 포착했다. 마법사의 식신이었다. 나비는 달콤한 꿀에 취한 양 도언을 향해 비실비실 날아오고 있었다.
나비가 조명 근처로 날아올 때까지 기다린 민수는 테이블 아래에서 빠르게 손가락을 부딪쳤다. 하얀 스파크가 일어 나비를 깔끔하게 튀겨 없애 버렸다. 나비 군락이라면 불이 효율적이지만, 한 마리쯤은 이런 미미한 마력의 운용이 효과적이다.
민수는 다른 나비가 눈치채기 전에 자신의 마력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다. 그리고 그 일대에 다른 식신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근방에는 없다.’
조그만 식신 한 마리까지 탈탈 털어 내 근방의 식신을 탐지한 민수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 식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민수 입장에서 쉬웠지만, 귀찮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역시나 도언은 식신을 끌어당기는 체질이었다. 어찌 보면 모른 척할 수도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돈가스도 얻어먹는 입장에서 이 정도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민수 씨?”
수색 작업에 집중하느라 도언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민수는 자신을 부르는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민수는 다시 카드를 들고는 어설프게 웃으며 카드를 섞었다.
“아하하. 그러면 지금 그분이 뭐 하시는지 보면 될까요?”
“그보다 저를 왜 잊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그런 것도 나옵니까?”
‘오. 잊어버리기까지?’
도언은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미 도언을 잊었나 보다. 다른 남자 만난 거 아니야? 상담 중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물을 필요도 없어서 사담은 하지 않는 민수는 드물게 도언에게 물었다.
“헤어지실 때 이유는 못 들으셨나 봐요?”
도언은 민수의 질문에 씁쓸하게 물 잔만을 바라봤다. 기다려도 대꾸 없는 대답에 민수 또한 캐묻지 않았다.
‘하긴, 모르니까 나한테 물었겠지. 알면 물었겠어.’
흔한 이별의 후유증인가. 그래도 유부녀에게 걸려 지독하게 앓고 있는 그의 친구보다는 상황이 낫지 싶다. 엉엉 울지는 않잖아.
민수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펼쳤다. 카드는 균일한 간격을 두고서 예술처럼 펼쳐졌다.
“어디 보자. 넉 장만 뽑아 보실까요.”
도언은 큰 고민 없이 오른쪽부터 네 장을 한꺼번에 뽑았다. 신중하게 뽑는 사람이 태반인 상담에서 이렇게 성의 없이 뽑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민수는 그에게서 카드를 받고 한 장씩 뒤집었다. 민수는 떠오른 그림을 보고 머뭇거렸다.
“어… 이건…….”
민수는 카드를 뒤집고서 읽지도 못하고 한참을 버벅였다. 뽑은 네 장의 카드는 바보, 마법사, 여사제, 여황제 카드였다. 순서대로 0번, 1번, 2번, 3번 아르카나다. 넉 장을 뽑았는데 번호가 순서대로 뽑혔다. 이런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내가 너무 대충 섞었나?’
도언은 끝에서부터 네 장을 순서대로 꺼내 들었고, 나온 카드는 거짓말처럼 순서대로 나와 버렸다. 카드를 대충 섞었는가에 대한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민수가 상담을 끝낼 때마다 번호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다면 말이다.
그러나 민수는 단 한 번도 카드를 번호대로 정리해 본 역사가 없었다. 1번 아르카나인 마법사 카드가 마치 제게 사기 치는 양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민수는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카드를 회수하고 다시 섞었다.
사실 바로 해석해도 해석이 나오기는 하나 민수의 감이 말했다. 이건 그 질문에 관한 결과가 아니라고. 민수는 직감에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타로를 시작하며 키워드보다는 직감으로 읽으며 살아왔었다. 민수는 제 직감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죄송해요. 제가 카드를 잘못 섞었나 보네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민수는 카드를 다시 쫙 펼치고서 넉 장만 다시 뽑아 보라고 물었다. 도언 또한 별말 없이 민수의 지시를 따랐다. 도언은 저번에 오른쪽에서 네 장을 뽑았다면, 이번에는 왼쪽부터 네 장을 꺼내 들었다. 민수는 이번에도 그가 뽑은 네 장의 카드를 순서대로 진열해 놓고, 왼쪽부터 하나하나 뒤집었다. 첫 번째 카드는 황제, 두 번째 카드는 교황, 세 번째 카드는 연인, 마지막 카드는 전차.
“…….”
순서대로 정확히 4번, 5번, 6번, 7번 카드다.
떠오르는 직감으로 카드를 읽으며 살아온 민수의 타로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자신이 가진 마력이 최강이란 걸 자각하고 있는 민수에게 이번 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수는 팔짱을 끼고 카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결론만 머릿속에 울렸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직거리는 TV처럼,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 해석에 답답한 건 민수였다.
‘혹시 저 사람 마술사 아니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서버가 식사를 들고 등장했다. 민수는 테이블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카드를 치워 음식이 올라갈 장소를 만들었다. 뽑은 카드의 의미에 정신이 팔려 있는 민수는 모든 행동이 기계적이었다. 돈가스에서 모락모락 나고 있는 김만 영혼 없이 바라보고 있던 민수는, 제 앞에서 들린 작은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도언이 가볍게 웃고 있었다.
“카드가 많이 어려운가 봐요.”
도언의 말에 민수는 제 속마음을 들킨 양 부끄러워졌다. 경력 있는 타로리더의 자존심은 그 말에 수긍하고 싶지 않았으나,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카드들만 뽑혀 나왔다.
어떻게 총 여덟 장을 뽑았는데 다 순서대로 나올 수 있는 거지? 마법사인 민수로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도언은 마법사도 아니었다!
‘다시 뽑아 보라고 할까?’
하지만 이미 한 번 더 뽑아 보라고 했던 민수였다. 한 번이면 몰라도 두 번이면 우연이 아니다. 어째서 상대가 도언을 잊었냐고 했었지. 그 질문은 민수의 역량을 넘어섰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제 카드로도 알 수 없는 질문이라니. 대체 상대가 누구이길래 그렇다는 건가. 적어도 도언이 평범치 않은 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여덟 개의 카드 중 마법사 카드가 자꾸 머릿속 잔상에 남았다. 아무래도 도언이 궁금해한다던 그자는 일반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진심으로 알아보려면 카드 치우고 마법으로 제대로 알아내야 하는 수준이다.
“범상치 않으신 분 좋아하고 계시네요.”
도언이 웃으며 끄떡였다.
“많이 어려운 사람이죠. 일단 드세요.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듣죠.”
민수는 돈가스를 입에 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카드만 생각했다. 도언이 뽑은 총 여덟 개의 카드. 0번,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그중에서 그나마 제일 느낌이 오는 카드는 마법사. 마법사 카드만 뇌리에 박혀 떠나가지 않았다. 혹시 도언이 궁금해한다는 그자가 마법사인 걸까? 대체 어떤 정신없는 마법사가 인간을 홀리고 다니는 건지 알 수 없다.
민수는 머릿속으로 끝없이 생각했다. 도언은 정신 팔린 민수를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도언이 뽑은 것으로 유추해 낸 사실은, 상대가 마법사라는 것. 그뿐이었다. 그녀가 뜨내기 마법사는 아닌가 보다. 이 기현상은 마력을 가진 상대가 남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정보를,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차단했기에 나오는 현상이었다.
언제 입에 들어 있던 건지 입안에서 뜨거운 튀김과 고기가 뭉개지고 있었다. 카드를 읽느라 정신없어서 자신이 돈가스 한 점을 입에 넣었단 사실조차 잊었었다. 민수는 느리게 저작 운동을 하며 카드에 신경을 쓰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던 손님을 바라보았다. 카드를 해석하는 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도.
“죄송합니다. 이런 적이 처음인데 정말 모르겠어요.”
상대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알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당신이 연심을 품고 있는 상대가 마법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런 적은 진짜 처음인데…… 저도 당황스럽네요. 돈은 안 받겠습니다.”
밥값도요……라고 이어 말하는 민수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오늘 산 고기나 구워 먹을걸. 괜히 외식했다. 포식 한번 해 보려다가 커리어와 프라이드에 흠집 한번 제대로 났다.
마법사인 민수에게 카드는 한없이 가벼운 잡기였다. 그렇기에 마력이 꽤 있는 자들에 대해 알아볼 때 카드는, 그것도 그들이 숨기려고 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애초에 그런 자들에 대해 묻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여태 상담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민수의 말을 들은 도언은 가만히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제 팔뚝을 치고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던 도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쉽네요. 정말로 궁금했었는데.”
“다음에 만나셨을 때 그분께 한번 물어나 보시죠.”
“글쎄요. 그 사람이 제 존재 자체를 까먹은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
듣기만 해도 여자 쪽이 정말 가차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짝사랑인가 싶었으나, 도언은 그녀가 제 존재 자체를 까먹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어찌 되었건 쌍방으로 무언가 관계가 있던 사람이라는 건데.
‘하여간 마법사들이란.’
얼마나 도언을 칼같이 끊어 냈으면…… 끊은 걸로도 모자라서 도언은 상대가 저를 완전히 잊었다고 했다. 얼마나 도언을 하찮게 봤으면 싹 잊어버릴 수 있냐.
인간을 하찮게 보는 게 마법사의 특징이기는 하나 그것도 다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정전일 때 손가락으로 빛을 만들고, 급할 때는 순간이동으로 이동하는 민수였지만, 오늘도 마법사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졌다.
“그러면 손님이 그 사람과 다시 인연이 될지나 한번 알아볼까요. 다시 만난다거나, 뭐 그런 거요. 돈은 안 받을게요.”
“재밌겠군요.”
솔직히 의미 없는 질문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안다고 했던 도언이었다.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뭔들 못할까. 그러나 영업 개시 날인 내일까지 못 참을 정도로 궁금한 질문에 시원하게 해답을 못 내려 주다니, 김민수 타로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수는 적어도 자잘한 질문 몇 개라도 해결해 주자, 마음먹었다. 잡다한 질문 받기가 아무리 의미 없이 보이더라도 언제나 시간만은 잘 갔다.
카드를 섞던 민수는 본인이 한 장 뽑았다. 검은 배경의 무시무시한 카드가 나와 버렸다. 피막 날개를 하고 염소의 뿔을 달고 있는 악마 하나. 그리고 그 악마의 양옆으로 목에 사슬을 채운 남녀가 서 있었다. 악마의 머리 위에는 거꾸로 뒤집힌 오망성이 하얗게 빛났다. 인간들의 머리에도 조그맣고 하얀 악마 뿔이 달려 있었다. 15번 아르카나, 악마 카드였다.
“그래도 그분이랑 인연은 인연인가 봐요. 깊게도 얽혀 있네요.”
사람들은 보통 악마 카드가 나오면 겁을 먹고 물어보기 마련이다. 나쁜 카드냐고. 그러나 카드에서 좋은 카드와 나쁜 카드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상담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인연을 나타내는 카드로 읽기도 한다.
남녀의 목에 매인 사슬을 보고 긍정의 문장을 읊는 민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법사랑 속박의 인연이라니, 대체 저 사람 인생은 어찌 저리 꼬인 걸까. 일반인은 마법사랑 엮이지 않는 게 세상 이롭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민수였다. 그러나 카드는 그들의 확실한 재회를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도언의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그는 민수의 점사를 듣고 고개를 살짝 끄떡이기까지 했다. 당연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 태도였다. 민수는 거기에서, 그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걸 직감했다. 도언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인연을 만들 작정이었다.
‘쯧쯧. 안쓰럽기도 하지.’
하필 마법사에 코가 꿰이다니. 앞날도 창창해 보이는 청년이 말이다. 솔직히 그 마법사는 양심이 있으면 기억 조작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가지고 놀았길래 애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
애초에 스스로 타로를 보러 오게 만드는 사람은 본인에게 좋지 않은 연인일 가능성이 컸다. 보통 단골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연인을 가지고 있는 자가 많았다. 민수가 카드를 다시 섞으려고 하자, 도언이 그를 제지했다.
“궁금한 건 대충 알았으니 드시죠. 식기 전에 드셔야 맛있습니다.”
민수는 그 말에 고민도 하지 않고 카드를 집어넣었다. 가게 내부가 소란해서 도언은 몰랐겠지만 민수의 배는 배고프다고 열창하던 중이었다. 나태함으로 인해서 온종일 굶었던 민수는 카드에 대한 생각을 꺼 버렸다. 진정한 영업 종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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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계좌 번호라도 주시면…….”
“괜찮습니다. 제가 사 드린다고 한 걸요.”
“아니, 그래도….”
깔끔하게 더치 하고 나오려고 했던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쯤 도언에게 전화가 와서 도언이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설마 그때 계산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제가 생각해도 영 깔끔하지 못한 타로리딩이었기에 제 밥값은 제가 계산할 생각을 하고 있던 민수는, 그에게 밥을 얻어먹은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민수는 안 그래도 마법사와 그들의 식신으로 인해 인생이 대차게 꼬일 예정인 인간에게 밥까지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연민에 제가 사 주면 사 줬지. 마법사를 혐오하는 마법사 민수는 인간들에게는 많이 유했다. 마법사에게 피해를 입은 인간들에게는 그보다 더 유했다.
도언은 제 앞에서 머뭇거리는 민수에게 말했다.
“그럼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것 좀 처리해 주시겠어요?”
도언이 무언가 내밀기에 민수는 얼떨결에 받았다. 도언이 민수에게 내민 것은 마트 비닐봉지였다. 그 안에는 아까 마트에서 샀던 모든 식료품이 들어 있었다. 고기 하나와 맥주 몇 캔만 달랑 들어 있는 민수의 장바구니와는 다르게 도언이 내민 비닐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 고기와 밑반찬이 풍성하게 담겨 있었다. 민수는 봉지 안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처리해 달라고 하시는 게……?”
“네. 그거요.”
“이걸 다요? 장 잘 봐 놓으시고 왜요?”
민수의 질문에 도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까 전 전화가 본가에서 온 건데, 급히 처리할 일이 있다고 곧장 오라고 하더군요. 한번 내려가면 오래 있을 것 같아서. 본가에 장 본 걸 가져가긴 별로고. 그렇다고 환불하기엔 그렇고. 버리자니 아깝고. 저 대신 이거 좀 처리해 주신다면 그걸로 밥값 셈했다고 칠게요.”
이 있는 집 도련님께서는 민수의 냉장고를 꽉꽉 채워 넣기 위해 내려온 천사가 틀림없었다. 민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하기 위해 용썼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씰룩대는 입꼬리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민수는 헛기침 몇 번으로 표정을 고쳤다.
“크흠… 처리가 그리 어려우시다면 뭐…….”
민수는 그 순간 진심으로 도언의 평탄한 삶을 응원했다. 가능한 마법사랑 엮이지 말거라, 착하고 돈 많은 어린양이여. 그러나 마법사와의 인연에서 악마 카드가 뜬 이상, 그는 어쨌건 마법사와 인연이 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도언이 식신만큼은 몰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언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겠지만.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곧 해 질 녘,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그때는 식신이 얼어붙는 시간이다. 식신이 움직이며 마력을 찾는 것보단 일광욕하듯 벽에 붙어 마력을 쐬는 편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해가 질 적, 식신이 가장 많고, 그들이 움직이며 활동하지 않아 가장 무해한 시간이다. 식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숙련도가 낮은 마법사들은 이 시간에만 바짝 식신을 만들어 마력을 흡수한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고서 곧장 식신을 회수한다.
해 질 녘 후인 밤에도 식신을 움직이는 건 꽤 연차가 된 마법사나 할 수 있었다. 고로, 마력이 한미한 낮에 식신을 만들어 풀어놓는 건 정말 심심하고 마력도 많은 마법사나 할 수 있는 기행이었다.
민수는 웬만해서 이 안전한 시간에 도언이 집에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럼 곧바로 본가에 가시나요?”
“네. 곧바로요.”
도언은 20m쯤 앞, 갓길에 서 있는 차를 가리켰다. 차를 잘 모르는 민수가 봐도 빡빡한 도로를 홍해처럼 가르고,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10초나 기다려 준다는 기적을 갖춘 차였다. 도언이 차를 가리키자, 안에 있던 사람이 부리나케 나와 뒷좌석의 문을 열고 도언이 올 때까지 대기했다. 일사불란하고 절제된 동작이었다.
‘생각보다 더 귀한 집 도련님이었잖아.’
“다음에 가게 놀러 갈게요. 그래도 되죠?”
“아, 네. 매출 늘어나면 좋은 건 저죠. 뭐. 잘 먹었어요. 그리고 잘 먹을게요.”
봉지를 살짝 흔든 민수는 도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등을 돌려 제집을 향해 미련 없이 걸어갔다. 도언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 ❊ ❊
일주일 후, 어스름이 넘은 시간, 민수는 그날 장사를 슬슬 접을 생각 하고 있었다. 민수는 약간의 아쉬움에 딱 한 손님만 받고 가자고 결심하고는 떼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그리고 5분 정도가 지나자 가게 입구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민수 씨.”
도언이었다. 도언 덕분에 지난 일주일 동안 집에서 풍요롭게 섭식 활동을 했던 민수였기에 다른 손님보다 손톱만큼은 더 반가웠다. 민수가 반쯤 일어나 도언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나무가 드디어 정리되었군요.”
“쓰러질 때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죠.”
도언은 자연스럽게 민수의 반대편 의자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가게 옆 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오신 건지…….”
“아뇨. 그냥 가던 길에 가게가 보이길래 들렀어요. 그 녀석은 그동안 안 왔나요?”
“네. 그 이후로 안 오시네요.”
단골 말하는 걸 거다. 마지막 상담 때 체념하는 것 같더니 드디어 마음 정리를 끝냈나 보다. 그때 얼추 직감하긴 했지만 정말 일주일 내내 얼굴을 안 비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 번쯤은 올 줄 알았는데.
‘그래, 차라리 안 오는 게 낫지.’
어떻게 붙여도 안 될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은 차라리 빠르게 단념하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았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팔짱을 낀 커플이었다.
“어머, 손님이 있었네. 다음에 올게요.”
도언을 확인하고 나가려는 그들을 도언이 제지했다.
“전 손님이 아닙니다. 여기 앉으시죠.”
도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수의 뒤쪽에 있는 여분의 의자로 옮겨 앉았다.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여자 손님은 아무런 이상한 점을 못 느꼈는지 신나 하며 민수 앞의 자리를 차지했다. 손님이 오면 나갈 줄 알았던 도언이 제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양에 민수는 멈칫했다. 안 가나?
여자는 도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긴, 저 남자는 존재 자체만으로 가게의 인테리어 몫을 톡톡히 해냈다.
“크흠.”
그녀 옆의 남자가 헛기침하며 제 여자 친구에게 눈치를 주었다. 함께 들어온 남자는 이곳을 영 못마땅해했다. 그건 비단 도언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제 여자 친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보는 민수의 기분 또한 하락했다.
‘마법사잖아.’
그는 온몸에 자신의 마력을 두르고 나타났다. 애초에 마법사란 존재들은 제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는다. 워낙 수가 적기도 했고, 그러다가 저를 알아보는 마법사를 만나면 인맥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보통 폐쇄성이 짙다지만 그건 일반인 앞 한정이었고, 같은 마법사에게는 지나친 관종이었다. 저런 식으로 마력을 몸에 두르는 건 제 명함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것과 똑같았다.
이마에 명함을 붙이고 다녀도 마법사들은 개의치 않았다. 두르는 마력의 크기가 곧 제 실력의 증명이었다. 나 정도면 괜찮은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마법사들이 가지는 이유 없는 근자감이었다. 저리 쓸데없이 마력을 허공에 뿌리고 다니기에 마법사 근처로 식신이 더럽게도 꼬였다.
‘2백 년 전에도 저렇게 마력을 낭비하더니.’
보수적인 마법 사회는 보통 정략혼으로 결혼이 이루어졌고, 마력이 하나도 없는 인간과의 결혼을 쉽게 허하지 않았다. 쉽게는 무슨, 없다시피 했다.
만일 너무 사랑하는 자가 인간이라면 마법사들은 가문과의 연을 끊어 버리고 인세에 종속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랑과 마법을 맞바꾼 마법사들은 이따금 돌연변이처럼 나타났다. 마법사와 인간의 피를 반씩 물려받은 그들의 자식은 떠돌이 마법사로 탄생했다.
민수는 앞의 일반인과 마법사 커플을 보며 생각했다.
‘저 마법사도 사랑의 도피를 한 건가?’
남자가 사랑의 도피를 한 마법사라고 하기엔 제 몸에 향수처럼 흩뿌린 마력이 이상하다. 보통 인간과 도피를 하게 되면 쫓아오는 가문의 눈을 피하고자 마력을 숨기기에 급급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여자는 일반인이었다. 느껴지는 마력 또한 전무했을뿐더러, 이런 곳에 손수 찾아올 정도면 마법사일 리가 없었다.
마법사들이 특히 싫어하는 인간들의 사업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점집이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는 마법사들에게 인간들이 보는 점은 어린아이의 재주, 혹은 잡기에 불과했다. 마법사가 돈 주고 타로를 본다니, 고흐가 돈 주고 두 살짜리 낙서를 살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민수가 업종을 타로로 선택한 것도 이에 기인한다. 적어도 손님으로 마법사를 만나지 않을 거 아닌가. 이 근처에서 마법사를 보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민수는 마법사를 보고 굳었던 표정을 억지로 풀어냈다. 여기서 얼굴을 굳혀 봤자 쓸데없다. 게다가 저 마법사가 어떤 마음으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지도 대충 눈치챘다.
‘가지고 놀고 있네.’
진심이라면 마력을 숨기고 비밀 연애했을 거다. 꼭꼭 숨겨 봤자 민수에게는 들켰을 테지만.
남자는 좁은 가게를 둘러보며 눈썹을 찌푸리고, 민수의 카드를 보고 입술을 내밀었으며, 저 홀로 빛나는 외모의 도언을 보고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제 불쾌함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있는지도 몰랐던 가게가 신통하면 얼마나….”
“타로로 궁합도 봐 주시나요?”
남자가 중얼거리기 위해 입을 떼자, 여자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남자는 존재감 없는 가게에 대해서 불평했지만 이는 민수가 의도한 바였다. 마력 교란 결계를 가게 중심으로 10m 정도 깔아 두었다. 얕은 마력을 지닌 식신이나 조무래기 마법사들은 집중하지 않으면 민수의 가게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조무래기급이란 걸 인정했다.
민수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굳이 이런 거 안 봐도 궁합 좋다니까 그러네.”
“뭐 어때, 좋은데 또 좋은 소리 들으면 더 기분 좋잖아.”
민수는 카드를 꺼내 들고 섞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가게 근처에서 이자보다 낮은 마력을 지닌 마법사 세 명이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 마법사들이 모여들고 있지?’
민수의 생활 범위 근처는 이 세상에서 마법사들이 그나마 없는 장소였다. 게다가 엉덩이가 무거운 마법사들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제 구역에서 굳이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활동력이 지극히 짧고 적어서 마법사들이 바깥에서 뭉치는 건 보통 가문에서 큰일이 있을 때뿐이다.
하루에 마법사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발견하다니.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마법 사회는 매우 좁기에 앞의 남자와 저들이 아는 사이일 가능성은 컸다. 민수는 마력 교란 결계를 회수했다. 그들이 타로집 안에 있는 마법사를 발견하면 부끄러움에 그를 어떻게든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갈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오늘 마법사와 인간과의 데이트는 끝나겠지. 그리고 어째서 그들이 이곳에 모이는지에 대한 얕은 단서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모인 입의 수와 풀릴 정보는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불순한 목적을 가진 마법사와는 빨리 찢어지는 편이 여자에게도 이득이었다. 민수는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셌다.
‘3… 2… 1…….’
“어? 세원이 아니야?”
드디어 마법사들이 가게 안에 있는 남자 마법사를 발견했다.
남자 또한 그들을 발견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앉아 있던 의자가 나뒹굴며 쓰러졌다.
제 갈 길을 가던 마법사들은 타로 가게에 앉아 있는 친구를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리 중 한 명이 컨테이너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야, 너는 아무리 여자가 좋아도 쪽팔리게….”
“아, 수현아. 오빠가 지금 회의 있는 걸 깜빡했다. 이만 가 볼게.”
“어? 오빠. 어디 가!!”
남자는 제 친구로 보이는 자의 말을 끊고선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저를 발견한 마법사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자는 한밤에 회의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떠나는 제 연인을 붙잡으려 자리를 떴다.
“…….”
순간 비워진 가게 안에 일말의 정적이 흘렀다. 민수는 눈을 감고 그들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1분쯤 후에 번쩍하고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 분명 마법사 무리가 여자에게 기억 소거를 건 것이라. 민수는 카드를 빠르게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하죠.”
저들이 어째서 이곳에 모였는지 알아봐야 할 시간이다.
민수는 급하게 가게를 마무리했다. 이에 도언 또한 부산스러워진 민수를 따라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바깥을 보니 나비들이 가로등 앞 나방처럼 이리저리 산재해 있었다. 민수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로 이렇게까지 많은 개체 수는 도언 사건 이후로 처음이었다. 가게 근처면 민수가 건 마력 교란 결계 때문에 괜찮겠지만 나가고 나서 문제다. 물론 민수가 아니라 도언이.
민수는 도언이라는 불쌍한 어린양이 집에 갈 때 늑대 같은 나비들에게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남에게 적당히 관심 없는 민수였지만 그건 마법사들과 관계없는 사람들 한정이었다. 민수는 마법사와 관계된 일이 생길 때면 감정이 격해졌다. 같은 효과로, 마법사에게 피해를 받은 일반인에게 민수는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
나비들은 물리적 공간을 투과하며 다니지 못했다. 사방이 열려 있는 바깥보다는 사방이 꼭 닫혀 있는 집 안이 나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때는 최적이라는 거다. 심지어 식신은 방충망도 못 뚫었다.
이렇게 많은 식신이라면 도언은 여기서 벗어나 제집으로 가는 길이 고비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법사의 뒤를 쫓아야 하는 민수가 도언을 집까지 바래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법사들의 기척이 점점 멀어졌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꼬리를 잡아야만 한다.
결국 가게의 문에 자물쇠를 잠근 후, 민수는 도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님, 핸드폰 좀 줘 보세요.”
급해 보이는 민수의 태도에 도언이 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패턴을 재빨리 풀어냈다. 그는 다이얼 화면을 띄우고 나서야 민수에게 제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어째서 다이얼 화면으로 건넨 건지 의문이었지만 물을 정도로 궁금하지 않아서 묻지 않았다. 그저 처음에 제 생각대로 핸드폰에 마력 교란 마법을 걸기 위해 짧게 집중했다.
보통 마법사가 물건에 마법을 심으려면 빨라도 5분은 걸린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그 시간이 단축된다. 민수는 제가 마법사 중에 가장 숙련되었다고 자부할 정도로 실력이 높은 마법사였다. 민수는 밝게 빛나는 화면의 스마트폰을 쥔 채 딱 5초간 눈을 감고 집중했다.
가게 근처, 민수가 걸어 둔 결계권 내에 있으면 가벼운 마법은 그나마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민수는 도언의 휴대폰에 마력 교란 마법을 심었다. 도언이 핸드폰만 지니고 있으면 적어도 나비에 대한 피해는 없을 것이다. 현대인은 개인마다 스마트폰을 제 심장처럼 지니고 다니니, 반경 15m 정도의 결계면 충분하겠지.
민수는 제 짧은 조치로 도언의 안전에 대한 부담을 내려 두었다. 마법이 잘 걸렸나 확인하고 나서 스마트폰을 도언에게 돌려주었다. 모든 일은 불과 6초 안에 벌어졌다. 도언은 어떤 번호도 찍히지 않고 돌아온 제 핸드폰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저는 민수 씨가 번호 알려 주실 줄 알고….”
“저 번호 없어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수는 도언의 말을 자르고 손을 흔들며 빠르게 가게 앞을 벗어나 달려 나갔다. 민수의 머릿속에는 이미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도언에 대한 생각은 지워 버렸다. 제 마법이 나비들로부터 도언을 보호해 줄 건데, 뭐가 걱정인가. 마법사들이 사라진 쪽으로 달릴수록 식신들이 점점 더 많이 출몰했다. 대체 몇 명의 마법사가 이곳에 모인 건지.
애초에 수가 적은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다. 그 무슨 일이 저와 관계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들의 분위기를 대충이라도 살피고 이 지역을 뜰지 뜨지 않을지 결정해야만 한다.
민수는 숨이 차기도 전에 아까 봤던 마법사 무리를 발견했다. 민수는 근처 벽 뒤에 몸을 숨기고 본격적으로 미행했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제 손끝에 마력을 피워 나비 한 마리를 만들어 냈다. 마법사의 손끝에 피어난 검은 나비는 검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그 나비의 날개 모양이 일반 식신과 다르게 화려했다.
“그래도 내 식신이 너희 것보다 더 예쁘지 않냐? 줄무늬 모양 날개 좀 봐 봐.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어.”
“염병한다. 식신이 예뻐서 어따 쓰냐? 연합은 뭔 이상한 경연을 한다고 지랄….”
“아, 아까 걔 예뻤는데. 그래도 다섯 시간은 공들였다고.”
“병신아. 정신 좀 차려. 우리가 놀러 왔냐?”
총 네 명의 마법사가 왁자지껄 골목을 누비며 나아갔다. 민수는 방금 마법사의 손끝에서 태어난 얼룩덜룩한 나비 식신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나아갔다.
마법사들은 마력 감지에 뛰어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육체 능력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 편이었다. 체력보다 정신력을 숭상하고, 운동보다는 연구에 시간을 쏟았다. 그들은 동물적 직감보다는 영적 감각에 특화되어 있었다.
민수가 아무리 허접하게 미행을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다 그 이유다. 심지어 민수는 제게 풍기는 마력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갈무리하였으니, 저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여기다.”
마법사 중 한 명이 골목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야만 하는 어둠의 구석에 자리 잡은 가게였다. 간판도 없이 칵테일 모양의 네온사인만이 그 가게가 술집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굳이 인간들이 영업하는 곳에서 집합해야 해? 난 그런 거 싫은데.”
“그것 때문에 땡땡이치고 ‘인간’인 여자랑 놀아나려고 했냐? 어차피 이곳은 우리가 있을 동안 마력 있는 사람들만 발견하도록 마법 걸어 두었다니까 괜찮잖아. 마력을 가진 얼빠진 인간이 들어오면 우리야 좋지.”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남들보다 감이 뛰어나거나 예지몽을 잘 꾼다거나 하며 제 마력을 저도 모르게 피워 낸다. 그런 자들이 마법사의 눈이나 식신의 눈에 띄면 으레 높은 확률로 마법사에게 제 마력을 빼앗기게 된다.
인간으로 살 거면 마력을 빼앗겨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빼앗는 과정에서 식신이 들러붙어 인간에게 불행의 인과를 심어 준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을 제 아래로 여기는 보통의 마법사들은, 제 마력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하지 인간들의 평안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그렇기에 일반인이 타고난 마력이 많을수록 제게 들러붙는 식신이 많아져 높은 확률로 심한 사고나 병에 걸리게 된다. 물론 마력이 식신이 느끼기에 달콤할수록 그 정도는 훨씬 심해진다.
마법사들에게 인간이란 그저 손쉬운 사냥감 정도의 가치였다. 고고한 그들은 인간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지 않고 인간들이 이륙해 놓은 것을 마법으로 손쉽게 빼앗으며 살아갔다. 해적이 따로 없었다.
마법사 무리는 낡아 보이는 가게의 철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안쪽에 펼쳐진 것은 밑으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민수는 가게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장사 더럽게 안 될 것 같은 이 구석에 가게를 차려 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길 어떻게 들어간다냐.’
더욱 오래, 그리고 안전하게 은둔하기 위해 마법사들의 정보를 얻으려 덮어놓고 따라왔지만 저 장소는 자신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일반인인 척하고 들어가면 마법사들의 표적이 되겠지. 그렇다고 제 마력을 드러내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때마침 어리바리하게 생긴 마법사 한 명이 허공에 제 식신을 빚으며 가게 앞으로 걸어왔다. 얼마나 화려한 나비를 만드는 중인지 제 손가락 끝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날개 한 장, 한 장을 제 손끝으로 누르며 나비를 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가게의 문 앞에 섰다.
“아씨, 오른 날개가 오늘따라 왜 이리 잘 안 되지.”
그 마법사를 보는 민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한눈팔고 있고, 혼자며, 마법사고, 기색을 살펴보니 가게에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심지어 혼잣말하며 제 목소리까지 민수에게 들려주었다. 민수에게 있어 완벽한 먹이였다. 민수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퍽-
가게의 문이 갑자기 열리며 제 앞에 있는 마법사의 이마를 가격했다. 예상치 못하게 문에게 기습을 받은 마법사는 제 신형을 스르르 무너뜨렸다. 제 작전이 들어먹은 과정을 보는 민수가 슬쩍 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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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화장실로 자리를 옮긴 민수는 쓰러진 마법사의 옷을 뒤져 그의 이름과 소속을 알아냈다. 게다가 그자에게 기억 소거 마법을 걸어 뒤처리까지 확실히 했다. 그자의 몸 또한 근처 화장실 안에 잘 수납해 둔 상태였다. 그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외투 안주머니에서 사원증을 발견하고 민수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법사가 인간 사회에서 을이 되어 돈을 번다고?’
그러나 사원증을 뒤집고 회사의 정보를 확인한 민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납득했다.
‘마법 연합이라니.’
사원증에는 최선우라는 이름과 그의 얼굴, 뒷면에는 마법 연합 행정부 소속이라는 신분이 크게 박혀 있었다. 마법사 녀석들, 아예 연합을 차린 모양이다. 가문이 아닌 연합이라니. 가문끼리 손이라도 잡은 걸까.
손을 가볍게 턴 민수는 그 마법사를 그대로 카피하기 시작했다. 그의 마력을 일부 빼앗아 제 몸에 두르고 흡수한 마력으로 몸을 바꾼 후, 화장실에서 나와 가게 앞으로 향했다.
민수가 가게의 철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오, 선우선우. 생각보다 일찍 왔네. 연습 좀 많이 했어?”
오른쪽에서 한 명의 남자가 손을 크게 흔들며 민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였다. 성큼 다가온 그가 민수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 만든 식신은 어떻게 생겼는가 좀 보여 줘라.”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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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오늘은 평소보다 더 번쩍번쩍한데?”
민수에게 어깨동무를 한 잔챙이 마법사가 민수의 손에서 피어난 식신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관찰력과 동체 시력, 그리고 마력이 모두 뛰어난 민수에게는 이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어려운 건 이 끔찍한 걸 제가 제 손으로 만들어 내야 한단 점이다.
아까 전 한 땀, 한 땀 식신을 주조하고 있던 선우라는 마법사의 손끝을 유심히 본 보람이 있었다. 그자에게 빼앗은 마력을 이용하여, 민수는 그자가 어려워했던 오른쪽 날개 또한 완벽한 완성도로 만들어 내었다.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는 민수의 손을 떠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팔랑거리는 나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민수는 조용히 손가락을 부딪쳐 제가 만든 식신을 소멸시켰다. 애초에 민수는 남에게 마력을 빼앗을 정도로 마력이 빈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가 된다니. 그는 그저 공기처럼 살고 싶은 민수의 철학에 맞지 않았다.
민수의 목에 팔을 두른 마법사는 싱글벙글하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식신 예술 대회에서 우승할지도 모르겠어. 네 염원이었잖아. 좀 더 잘해 보라고.”
민수는 자신에게 어깨동무한 그의 행동에 숙였던 고개를 바로 들 수 없었다. 제 옆의 마법사는 민수의 목에 팔을 둘러 장난스럽게 아래로 끌어내며 친밀감을 표현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 민수는 그의 목에 달랑거리는 사원증을 확인했다.
강혁민
마법 연합 관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