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24)
에필로그
(20/24)
에필로그
산들바람에 몸을 태운 분홍색 꽃잎이 하롱하롱 들풀 위로 내려앉았다. 길고 고독한 추위를 이겨 낸 나무들이 너도 나도 꽃을 터트렸고, 언 땅 아래 몸을 웅크리고 버틴 씨앗은 하나둘 푸르게 돋아나 하늘과 마주했다.
생명력을 가득 품은 땅이 꿈질대며 움직였다. 그 사이로 주먹만 한 틈새가 벌어지며 땅을 부수고 하얀 무언가가 머리를 디밀고 나왔다. 지겹도록 겨울잠을 자던 뱀 한 마리다.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낸 뱀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높이 빼들고 봄의 한가운데에서 깨어났다.
만물이 봄이 왔다고 시끄럽게 일러 대니 더 잘 수가 있어야지. 그는 흉부를 부풀리며 바람이 실어 준 녹빛의 마력을 한껏 즐겼다. 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순수한 붉은빛이 파르라니 그의 홍채를 밝혔다. 봄바람이 그를 간질이며 떠남에 사한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한가롭게 입을 열었다.
- 새로운 시작의 바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