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2/16)

1장.

오후 5시 50분.

수민 덕에 시작한 과외의 기념비적인 첫 시간이다. 은찬은 하얀 손가락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였다. 긴장할 때마다 빼꼼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혀가 입술을 한 차례 축이고 곧장 모습을 감추었다.

초조한 마음에 컨버스 앞코를 콘크리트 바닥에 툭툭 문질렀다. 저택 뒤로 일렁이는 낙조에서 파생된 그림자가 은찬의 낡은 신발 끄트머리에 맞닿았다. 어느덧 부딪쳐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아. 할 수 있다!”

은찬은 크게 숨을 들이켠 다음,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중얼거렸다. 위이잉, 대형 차량도 통과할 수 있을 듯한 육중한 대문 입구 위, CCTV 카메라가 붉은빛을 깜빡이며 부단히 움직였다.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동작에 은찬의 몸이 움찔 움츠러들었다.

진정해. 도둑질하러 온 거 아니잖아. 초대받은 몸이라고.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는 시각을 고심하다 약속한 때보다 정확히 10분 이르게 도착한 참이었다. 은찬은 긴장으로 인해 칼칼해진 목을 가다듬고 대문 옆에 설치된 초인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곧이어 청아하고 맑은 벨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 누구세요.

“오늘 이예담 학생 과외 건으로 온 유은찬이라고 합니다.”

- 들어오세요.

스피커를 통해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철컹, 쇳소리가 나면서 대문이 열렸다. 부드럽게 열린 문 틈 사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찬이 심호흡을 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문 안은 바깥세상과 완연히 결을 달리했다. 방금까지 제가 밟고 섰던 언덕진 아스팔트길을 떠올릴 수 없는 장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6월, 초여름을 피부로 느끼게끔 하는, 울창하고도 녹음이 가득한 정원이 은찬을 맞이했다. 휘둥그레진 눈을 한 차례 굴린 은찬이 제 처지를 상기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현관은 이미 열려 있었다. 은찬은 상상을 뛰어넘는 웅장한 내부에 압도당한 채 쭈뼛쭈뼛 제 발등만 바라보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열린 문을 따라 들어서자 집 안 가득 은은한 향기가 났다. 현관 여기저기에 걸린 고풍스러운 예술 작품에 걸맞게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후각화한 듯, 폐부를 채우는 향기마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어정쩡하게 문틈에 발을 걸치고 있던 은찬의 어깨가 한 차례 더 둥글게 말렸다.

“흐음. 오늘 시범 과외 하러 온다던?”

낮은 어조의 담담한 목소리가 머리꼭지 위로 떨어졌다. 그제야 은찬은 현실로 돌아왔다. ‘시범’ 과외라니……. 계약직인데, 아직 면접도 통과하지 못한 셈이었다.

“어…… 네…….”

은찬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일 먼저, 촉감이 부드러워 보이는 스웨이드 실내화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 실내화를 신은 발등을 거쳐 곧게 뻗은 다리, 셔츠로는 가릴 수 없는 탄탄한 상체로 눈길이 이어졌다.

목 빗근이 뚜렷한 목선을 지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술, 높은 콧대가 가른 기다랗고 깊이감 있는 눈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집약된 얼굴을 보자 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와…….”

뭐 이렇게 생겼담. 부족한 점이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물주가 특별히 신경 써 빚어낸 듯한 외모였다. 오밀조밀하게 생긴 제 모습과는 대조되는, 남성성이 뚜렷한 얼굴에 질투심마저 일었다. 게다가 덩치 차이가 너무 나는데…….

은찬은 괜히 은근슬쩍 까치발을 들어 마주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봐야 훌쩍, 한 뼘이 넘게 차이 나는 눈높이였다.

“이예담이에요. 유은찬 선생님 맞으시죠?”

“아…… 응……. 반갑다.”

서둘러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곤 맞은편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제 손을 꺼내길 기다렸다.

1초, 2초, 3초……. 기나긴 적막만이 흘렀다. 남자는, 이예담은, 멀거니 공중에 뜬 은찬의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올라가실까요.”

싱긋, 예의를 갖춘 상냥한 웃음을 내보였으나 여전히 은찬의 손은 마주 잡지 않은 채다. 초면에 너무 친한 척했나……. 양 볼을 붉힌 은찬이 민망해진 손을 슬쩍 거두었다.

“……예.”

다짜고짜 말을 놓는 건 아니었나 보다. 선을 긋는 듯한 모습에 급히 말을 높여 대답했고, 더더욱 겸연쩍어진 은찬은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풋. 머리 위에서 잔잔하게 떨어지는 웃음소리에 은찬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착각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엔 차분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이예담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긴장한 탓에 괜한 환청을 들은 게 분명했다. 저보다 어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어른스러운 이예담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 일어난 일일 터였다. 윤기, 찬영이……. 뭐 그런 녀석들보다 고작 한 살 더 많다는 게 말이 되나? 앞서가는 이예담의 너른 등만 보던 은찬이 입술을 삐쭉이며 중얼거렸다.

광활한 미로 같은 공간을 따르다 보니 어느덧 서재에 도착했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책꽂이와 볕이 잘 드는 창가 앞에 놓인 넓은 책상, 그리고 비워진 가죽 의자 두 개가 은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저기에서 과외를 하라는 거겠지. 은찬은 눈치껏 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허겁지겁 수업을 시작했다.

“그럼, 첫날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괜찮지, 예담……아?”

옆자리로 고개를 돌린 순간, 밝게 웃음 짓던 은찬이 말끝을 흐렸다. 쉽게 풀리지 않는 유형의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던 심산을 들킨 것일까. 마주한 녀석은 대답 대신 조용히 허벅지에 얹은 제 손가락만을 규칙적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토독, 토독. 마디진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리듬을 탔다.

순간 낭패감이 인 은찬은 붉은 혀를 꺼내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적셨다. 어떡하지. 당연히 심화 문제까지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준비하지 않았더니 이런 사달이 났다. 제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곧게 뻗어 오는 시선에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젠장. 이번 과외는 튼 게 분명했다. 문제 푸는 수준을 보아서는 대강 넘겨도 될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

“…….”

은찬은 슬그머니 목을 뒤로 빼며 이예담의 시선을 피했다. 도저히 그러지 않곤 견딜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석연찮았다. 밀려오는 압박감에 짓눌려 계속해서 제 입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짓씹다가, 혀로 쓸다가, 모았다가. 행동에 대한 일말의 자각 없이 이어지는, 오직 초조한 마음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눈동자의 초점은 이미 이예담의 어깨 너머, 미색을 띤 실크 벽지로 넘어간 채였다. 도저히 녀석과 눈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죽겠다. 도망치듯 먼저 일어날 수도 없고.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하든, 알겠다고 하든 뭐라고 말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은찬은 계속해서 입술만 달싹였다. 도톰한 입술이 부지런히 꼬물대면서 애타는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와 상반되는 이예담의 시선이 은찬의 몸짓을 따라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되풀이되는 자극에 부푼 점막에서 피가 맺히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맞은편에서 길고 곧은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오물대는 살덩이 중앙으로 안착했다.

“……?”

삽시간에 입술이 잡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은찬이 놀란 눈을 둥그렇게 치뜨자, 이를 바라보는 이예담의 입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풋. 또다시 아까 들었던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선이 또렷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은찬은 애꿎은 벽면만을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이예담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말캉한 살덩이를 누른 엄지가 느릿하게 표면을 문질렀다.

“그렇게 물고 빨면……. 입술 상하잖아요. 선생님.”

기다란 눈매가 접히며 날 선 기색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나긋하게 풀어졌다.

낯선 공간이라 제가 괜한 오해를 한 걸까. 어느 순간 정말, 과외 선생의 입술 상처를 걱정하는 상냥한 소년만이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몸을 굳힌 은찬이 차분한 음색에 홀린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웅. 아아어.”

알았어. 진짜. 조심하겠단 의미로 눈도 맞추었고…… 이제 좀 떨어져도 되겠지. 제 얼굴만 한 어린애 손아귀에 입술이 잡힌 채 사지를 굳히고 있자니 슬슬 자존심이 상했다. 뭉개진 발음이 엉망이라 위신도 서질 않았다. 조금 느슨해진 분위기에 안심한 은찬은 어색하게 웃으며 제 입술을 그러쥔 손을 벗어나기 위해 턱을 비틀었다.

“……아!”

그새 단단한 손끝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여린 점막을 지그시 누르는 손가락 힘은 더욱 거세졌다. 보드라운 점막이 폭 파이며 예담의 손가락에 짓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응…… 은찬은 눈썹을 찡그린 채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흐하하!”

하나도 위협이 되지 않을 말투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징징대는 것 같기도 했다. 은찬은 손을 뻗어 제 입술을 쥔 갈라진 팔뚝을 툭, 날카롭게 쳐 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기색을 실어 힘껏 힘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팔뚝은 바윗덩이라도 되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때린 제 손바닥만 아팠다.

이게 진짜. 암만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갓 20살이 된 녀석이 사람을 갖고 노는 것만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은찬은 발칵 일어난 역정에 말아 쥔 주먹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음…….”

예담의 굳게 닫힌 입술 사이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쏟아졌다. 연이어 바짝 마른 입술에 닿은 엄지가 다시 한번 느린 속도로 표면을 쓸다가, 돌연 아랫입술을 더더욱 밑으로 끌어당겨 안쪽 점막을 뒤집었다.

그 덕에 붉은 입술 속에 자리한 여린 분홍빛 속살이 드러났다. 삼키지 못한 타액 때문에 윤기를 머금은 물기가 촉촉하게 고여 있었다. 예담이 깊은숨을 들이켜며 젖은 점막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세포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느리고 나긋한 움직임이다.

부러 뜸을 들이듯, 천천히 속살을 비비는 손가락에 은찬은 어쩐지 발끝이 저릿했다. 양말 속 발가락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저들끼리 대거리를 하고, 발끝에서 생겨난 감각이 혈관을 타고 몸속 여기저기에 야릇한 열감을 전달했다.

후으……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열기에 은찬이 습한 숨을 내쉬었다. 간질간질, 미묘한 감각에 다급한 호흡이 이어졌다. 불쾌감과 불안감이 엉겨 공존하는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은찬의 얕은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을 때였다.

“여기는…… 상처가 안 났네요. 다행이네. 앞으로 제 과외 선생님이 되실 텐데 걱정돼서 살펴봤어요.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선생님.”

한참을 그렇게 입술만 조몰락거리던 이예담이 천천히 손을 물렸다. 제일 부푼 입술 중앙을 뭉근히 문지르다 톡, 가벼이 표면을 치고 물러나는 손가락 끝에 은찬의 타액이 묻어나 은실처럼 길게 늘어지다 뚜욱 끊겼다.

여전히 굳은 채로 눈만 끔뻑이는 은찬과 시선이 마주치자 예담은 조용히 입매를 끌어당기며 웃음 지었다. 제 손가락을 적신 타액을 닦아 내는 손동작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어? 어…….”

“제가 형제가 없어서 이렇게 한두 살 차이 나는 분만 보면 괜히 형 같고…… 그래요. 일종의 로망이죠.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가끔 선을 넘을 때도 있는데…….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기분 나빴어요?”

“아니? 아니, 괜찮아.”

“다행이네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선생님.”

“어……. 나, 나도 잘 부탁해.”

방금까지 입술을 제 것처럼 주무르던 단단한 손마디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한 타액이 질척하게 묻어났던 곧은 손가락이 휘휘, 공중을 가른 것이다. 은찬이 그걸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하자 안 잡고 뭐 하냐는 듯, 살살 흔들리는 손목과 함께 예담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어렸다.

더듬더듬 은찬이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예담의 커다란 손이 은찬의 손등을 단번에 덮었다. 그러곤 마주 잡은 손바닥을 은근하고 느릿하게 문질러 왔다. 기분 탓이겠지만, 천천히 따라오는 끈덕진 느낌에 은찬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손도 부드럽네.”

혼잣말하듯 잔잔한 속삭임이었다. 그 중얼거림을 알아듣지 못한 은찬이 곧바로 되물었다.

“뭐라고?”

“하하. 별말 안 했어요. 그냥, 이렇게 알게 된 거 수능 때까지 쭉 같이해요. 선생님. 잘 가르치시던데, 아마 어머니가 섭섭지 않게 챙겨 주실 거예요.”

돈……. 중얼거린 말을 되짚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페이 문제가 남아 있었다. 수민이 보통 고3 과외비 두 배 정도는 될 거라고 귀띔했는데.

내가 좀 예민했지. 같은 남자끼리 접촉치곤 유난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워낙 외동으로 곱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부자들은 대인관계 수업도 따로 받는다지 않는가.

이미 은찬의 머릿속엔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만이 떠올라 이성적 판단력 역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최대한 제 눈앞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 은찬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은찬을 바라보는 검은색 눈동자가 반달을 그리며 휘어졌다. 다정한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좋은 애 같았다.

* * *

“선생님, 어서 오세요. 시간이 애매한데 식사는 하셨나요.”

“응. 안녕? 먹고 왔어.”

밀려드는 시험과 과제, 그리고 눈앞의 이예담 과외 준비까지. 말과는 달리 아침에 집을 나선 뒤로 목구멍 안에 밀어 넣은 것은 오로지 편의점 삼각 김밥 하나가 다였다. 하지만 은찬은 예의상 하는 빈말에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미리 1층에 내려와 있던 예담은 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을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는 됐어요.” 하는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예담은 정갈하게 깎인 과일과 탄산수가 담긴 우드 트레이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이를 받친 팔뚝에 선명히 갈라진 잔근육이 유독 은찬의 눈길을 끌었다.

좀처럼 근육이 잘 붙지 않아 말랑말랑한 살성이 콤플렉스인 은찬에게 선망을 일으키는 몸이었다. 수험 생활 중이면서 운동이라도 하나……. 은찬은 은근슬쩍 볼품없는 제 팔과 예담의 팔을 번갈아 살피며 곁눈질했다. 묘한 정적에 뒤늦게 팔뚝에 둔 시선을 올리자,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예담과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갈까요.”

“어? 어. 흠!”

멋쩍은 마음에 괜히 숨을 골랐다.

두 번째 방문. 서재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미로 같았고, 이리저리 길이 나 복잡한 복도를 통과해 목적지에 도달하자 첫날의 아찔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예담이 눈치채지 못해서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시범 과외만 하고 다시는 이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할 뻔했다.

오늘은 잘해야지. 은찬은 속으로 다짐하며 어깨에 멘 백팩을 책상 모서리에 올려놓았다. 부쩍 더워진 날씨 탓에 은찬의 등 부근에 옅은 땀 자국이 묻어나 있었다.

“더워요? 에어컨 온도 좀 조절할까요.”

종일 집에서 머물렀는지, 바깥 기온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한 얼굴로 이예담이 물어 왔다. 땀 한 방울 찾아볼 수 없는 보송한 피부, 거기에 더해 청량한 느낌을 주는 체향까지. 같은 남자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아니야. 집은 괜찮은데 바깥이 조금 더워서 그래. 혹시 땀 냄새 나? 미안.”

그 말에 예담이 바투 다가와선 은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흐음, 서늘한 공기와 대조되는 따스한 숨결이 은찬의 살갗에 습하게 내려앉았다. 느릿하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호흡이 느껴지자 어쩐지 입 안이 바짝 말라 왔다. 은찬은 어깨를 움츠리며 잘게 돋은 소름을 진정시켰다.

“땀 냄새 안 나요.”

“다행이네……. 앞으론 좀 더 신경 쓸게.”

슬쩍 몸을 비틀어 예담에게서 한 걸음 멀어진 은찬이 백팩을 열자 온갖 책과 종이들이 책상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각종 매체에서 최신형이라고 광고해 대는 검은색 노트북에까지 두꺼운 책이 쿵, 떨어지자 은찬은 작게 미안하단 말을 내뱉으며 노트북을 슬슬 이예담 쪽으로 밀었다.

은찬은 종이 더미에서 밤을 새워 준비해 온 정리 파일을 솎아내 꺼내기 시작했다. 종종 뽑아 온 문제가 너무 많아 순서가 뒤섞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예담은 잔잔히 웃음 지으며 그럴 수도 있죠, 하며 허둥지둥하는 그를 기다려 주었다.

일련의 동작들엔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가 뒤따랐다. 적지 않은 과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 과외는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할 게 분명했다. 바쁜 손과 달리 은찬의 마음이 평온해졌다.

예상한 대로 두 번째 수업은 별 탈이 없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 두 배의 시급을 받자니 어쩐지 민망해 끝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을 끌기까지 했다. 이예담도 이를 흔쾌히 받아 주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수업도 원만히 흘렀다. 그래서 긴장을 풀어서였을까. 다섯 번째 수업에선 조금 문제가 있었다. 한참 수업하던 도중 꼬르륵, 빈 위장이 수축하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울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

“……미안. 그게…… 밥을 먹었는데…….”

“음, 선생님. 마침 저도 저녁 식사가 아직이긴 하거든요.”

은찬은 난처한 듯 두 뺨에 이어 귓바퀴까지 울긋불긋하게 물들이곤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이예담은 더 묻지 않고 가사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께 말씀드리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찬은 제 손목을 움켜쥔 이예담의 손길에 이끌려 다이닝룸으로 내려갔다. 도착한 장소에는 진수성찬이라 일컬을 만한 저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담은 손목을 감싼 손아귀 크기 역시 키만큼 커다래, 이와 비례한 악력으로 은찬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했다.

“저기, 예담아. 손…….”

“아, 미안해요. 집이 복잡해서 안내한다는 게 그만. 앉으세요.”

여태 은찬의 손목을 쥐고 있던 예담이 조용히 웃으며 제 손을 물렸다. 그러곤 식탁 중앙에 위치한 의자를 자연스럽게 꺼내 주며 앉으라는 듯 턱짓하였다.

쭈뼛대는 것도 잠시였다. 곧 상을 차린 아주머니가 모습을 감추자 제 방만 한 넓은 식탁 위에 올라간 윤기 흐르는 음식들이 은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버섯이 올라간 솥밥에 갈비찜과 장어구이, 각종 나물 반찬까지……. 은찬은 먼저 수저를 움직이는 예담을 따라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렸다.

맞은편에 앉은 이예담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어느새 식사가 끝났다. 같이 밥을 먹은 게 아니었다면 방금 식사를 마쳤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주변은 깨끗했다. 은찬은 조금 더러워진 제 앞 테이블에 민망해 버릇처럼 혀를 꺼내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렇게 몇 번 할짝이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이예담과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이예담은 그런 은찬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식사 끝났으면 이제 올라갈까요.”

“응. 덕분에 잘 먹었어. 고마워.”

맛있게 먹긴 했지만 눈치를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어 중간중간 물을 많이 마신 참이었다.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의에 은찬은 빠르게 서재 근처 화장실을 찾았다.

달칵, 달칵. 문이 잘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절차다.

과제 때문에 방문했던 동기 집에서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린 이후로 들인 습관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엔 별일이 없었지만 만약 타이밍이 어긋나 바지와 속옷을 내렸을 때 문이 열렸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은찬은 고개를 저으며 잠긴 문을 응시하다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런 다음, 또 한 번 미동 없는 문을 확인한 뒤에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렸다. 그제야 변기 위에 엉덩이를 대고 걸터앉으며 경직된 몸을 이완했다.

“하아…….”

묵직한 요의에 소변을 보려는 의도였지만 대부분 남자가 그러하듯 서서 해결하지 않고 앉는 데엔 모종의 이유가 있다. 고작 소변을 배출하는데도 흘끔흘끔, 자꾸만 화장실 문을 향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와 동일 선상에 있는 원인이었다.

쪼르르, 노란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연한 살굿빛 기둥을 붙들어 탈탈 털고 난 뒤, 은찬은 고개를 숙여 이와 이어진 은밀한 부위를 살폈다. 움켜쥔 자지를 비스듬히 젖히고 둥그렇게 달린 고환까지 치운 뒤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일반적인 남자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기관이 보인다.

보지였다.

음모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간 둔덕 아래, 옅은 분홍빛을 띤 틈새를 내려다본 은찬이 허벅지를 활짝 벌린 뒤 벌어진 구멍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젖은 살갗을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부드럽게 가르자,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올라오는 야릇한 감각에 잇새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으…….”

겨우 손가락 끄트머리만 맞붙였을 뿐인데. 보지 구멍을 감싼 점막이 파르르, 떨리며 흠뻑 물기를 머금었다. 미끄럽고 축축한 표면을 살짝 튕기자 손끝에 반질거리는 점액질이 묻어나면서 변기로 퐁, 보짓물이 떨어졌다. 혹여 소리가 들릴까 긴장한 은찬이 허벅지에 힘을 주며 가랑이 사이를 재차 모았다. 그새 쪼그라든 자지가 보짓살을 때리며 늘어졌다.

날 때부터 이런 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간 적도 있었고, 또래 친구들과 실컷 장난을 친 뒤 더러워진 몸을 다 함께 욕실에서 씻어 낸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2차 성징이 일어나며 친구들에게 거뭇거뭇한 변화가 일어날 때, 저에게는 이와 사뭇 다른, 아래가 쪼개지는 변화가 일어났으니.

은찬은 예담만큼은 아닐지언정 나름 여유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만 받기에도 바쁜 외동아들이었다.

문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은 성장률을 보인 아버지 사업에 있었다. 가파른 성장세에 고무된 아버지가 무리하게 투자금을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끌어온 투자금은 들어오는 족족 신기술 개발에 투입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이와 비례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잉꼬부부라 불리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은찬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 또한 그즈음. 주변이나 그 어디에서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신체 변화에 당혹스러워 몇 번이나 부모님께 운을 띄워 보려 했지만 부모님 사이는 물론, 가계 상황도 위태해진 차에 제 신체적 문제까지 얹을 순 없었다.

은찬은 결국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2차 성징을 지나 성인이 되었고, 부모님은 그사이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개인 회생을 위해 지방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이따금씩 전화로 안부를 전해 오고 어머니는 은찬이 20살이 되던 해에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 때문에 남성기와 여성기가 혼재한 몸의 비밀은 오롯이 은찬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되었다.

은찬은 다시금 자지를 아랫배로 붙인 뒤, 진득하게 녹아드는 보짓살을 꼬집듯 쥐어 바깥쪽을 향해 벌렸다. 쩌억, 일자로 다물린 젖은 속살이 엎어둔 쐐기 모양으로 갈라지며 붉은 살점을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조개처럼 다물린 속살은 여름이면 쉽게 열기가 고이고 축축해져 묘한 수치심을 자아냈다. 이렇게 날이 더운 때에는 굳이 직접적인 자극을 주지 않아도 끈적끈적한 액을 내뿜은 점막끼리 제멋대로 들러붙는다. 살덩이와 마찰하는 손가락 끝에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은찬은 손가락 힘을 빼자마자 빠듯하게 좁아 드는 입구로 반대편 손을 가져갔다. 왼손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둔덕을 짓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드러난 속살을 쓸어내리며 보짓물의 양을 가늠했다. 왈칵 쏟아져 나오는 야한 물과 동시에 애액을 뒤집어쓴 여린 점막이 잘게 경련했다.

“흐응…… 응, 으응…….”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신음성이 쏟아지고 움찔움찔, 허리가 떨렸다. 반투명한 물에 절어 버린 구멍을 제멋대로 조였다 풀어 대는 보지는 음란하기 짝이 없어 손끝만 닿아도 저릿저릿, 아찔한 감각을 선사해 통제가 어려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만지지 않으려 해도 이런 날씨에는 그냥 두기 찝찝해 손을 안 댈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 습한 속살을 닦아 내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읏…….

녹진녹진 흐무러진 속살에서 손가락을 빼내던 중,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칫솔 가져왔어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음성에 화들짝 놀란 은찬이 제 팬티를 위로 끌어 올렸다. 손가락엔 보지에서 묻어난 뜨끈한 액이 녹아내린 젤리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 왜?”

“찝찝하잖아요. 양치질 안 하실 거예요?”

“하, 할 거야. 잠시만.”

시간을 끌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급히 옷을 갖춰 입은 은찬은 제 바지춤에 눅눅한 보짓물을 닦아 내며 욕실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담이 칫솔을 그의 얼굴 앞에 흔들며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은찬은 손을 높이 뻗어 예담의 손에 들린 칫솔을 건네받았다. 이예담이 유난히 스치는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또. 과민 반응일 게 분명해 은찬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 * *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한 번에 1등급으로 올라가지. 너 여태 일부러 공부 안 했던 거지?”

“그럴 리가요.”

“이렇게 단번에 성적이 뛰는 건 처음 봐서…….”

“선생님. 그 이야기는 됐고, 이제 저번에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주세요.”

“어?”

“이번 모의고사 결과 괜찮으면 이어서 이야기해 준다면서요.”

예담이 기울였던 고개를 바로 하며 은찬을 빤히 응시했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시선에 절로 어깨가 빳빳이 굳었다.

“어어……. 그치, 해 주기로 했지…….”

은찬은 콧잔등을 살짝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일단 저지르긴 했으나 수습이 힘들 것 같아 모의고사 1등급 받으면 마저 알려 주겠다고 둘러댔던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우연히 저녁을 얻어먹은 날 이후로 수업 전이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수업 후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과외 일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예의 바르고 편한 제자가 생긴 것도 좋았고, 이예담이 수능을 칠 때까지는 과외 자리가 유지될 거라는 안도감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꽤나 들뜬 은찬은 이예담이 운을 띄우는 주제마다 빼지 않고 열을 올렸고, 그 결과로…….

에휴. 누굴 탓하겠나. 다 제 잘못이었다.

“음…… 그러니까……. 거기는 분위기만 좋게 하면…… 충분히 젖거든. 그러면 그때 넣으면 되는데.”

“아아, 보지 말이죠. 어떻게 젖게 하는지는 안 알려 줘요? 그게 중요하잖아요.”

“그게…… 너, 너도 봐서 알겠지만 살이 갈라지는 곳이 있는데 거기를 자극하면…….”

“아. 저는 본 적이 없어서.”

예담이 시무룩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대강 넘어가려 했던 은찬의 양심을 자극하는 처연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러면 예를 들면……. 여기 손등을 그…… 거기라고 하면.”

은찬은 급한 대로 손등을 이예담 가까이 가져다 댔다. 긴장해 움찔거리는 하얀 손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예담이 제 손가락을 그 위로 얹었다. 만지라는 말은 안 했는데. 의아한 손길이었지만 여기서 선을 그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은찬은 제 손등을 내어 준 채로 설명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속살 어디를 문지르면 흥건하게 젖어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부지런히 손등 위를 덧그렸다. 제가 생각해도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설명을 듣느니 차라리 야동 한 편을 보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찰나였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던 예담이 일순 가만히 얹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살짝, 아슬아슬 손등과 겨우 끝만 닿을 정도로 거리를 둔 손가락이 느린 속도로 살갗 위를 배회했다. 지나치게 진득하고 은근한 움직임에 맞닿는 살결이 아릴 정도로 간지러웠다.

질척한 살덩이로 핥기라도 하듯 뭉근하게 느껴지는 접촉에 반사적으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콱 조인 아랫배가 덜덜 떨려 오자 얌전히 팬티 속에서 다물려 있을 보지가 펄떡이며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왜 이러지. 은찬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밭은 숨을 참아 내는 순간이었다.

예담은 기다렸다는 듯 서슴없이 눈을 맞춰 왔다. 그러곤 슬며시 뒤로 빠지려 하는 은찬의 손등을 단단히 그러쥔 채, 악력을 자랑하는 손과는 결이 다른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선생님. 손등은 잡히는 게 없어서 실감이 안 나서요. 기왕이면 좀 더 그럴듯한 곳으로 알려 주세요. 명색이 상이잖아요?”

“사, 상이지. 그치. 근데 너도 알다시피 나한테 여자 거기가 달려 있진 않잖아.”

은찬이 웅얼거리며 다시 한번 손등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손등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 주어도 이예담의 손아귀는 도통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등을 덮은 손가락이 맞닿은 면적을 더욱 늘리며 은근하게 다가올 따름이다.

손바닥으로 축축한 땀이 고여 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느라 숨만 고르던 사이, 예담의 상체가 천연스레 은찬에게로 기울었다. 까딱하다 서로의 숨결까지 공유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그렇게 안 생겨선, 여자 얘기에 회까닥 돌기라도 한 것 같았다.

거리를 좁힌다고 더 실감 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분위기가 어째 묘했다.

“아, 잠깐만!”

퍽. 은찬이 잡힌 손 반대쪽을 들어 다급히 예담의 이마를 밀어냈다. 예상외로 예담은 금세 밀려나 주었지만 힘 조절이 안 된 탓에 외려 은찬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본능적으로 책상을 붙잡으려 팔을 뻗다 음료가 담긴 잔을 쓰러뜨렸다.

“아…….”

진득한 점성의 망고 주스가 삽시간에 책상을 거쳐 은찬의 바지를 적셨다. 엎어진 컵이 데구루루 구르다 문제집에 걸리며 펼쳐진 종이까지 물들였다. 은찬을 향해 고정된 시선이 그제야 떨어져 나가면서 예담이 컵을 바로 세웠다.

“어떡해. 휴지 어디 있어?”

은찬은 쏟아진 액체를 닦기 위해 허둥거리며 티슈를 찾았다. 질척하게 적셔진 본인의 옷보다는 비싸 보이는 원목 책상과 최신형 노트북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이예담이 자주 사용하는 듯, 늘 책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노트북 위치를 파악하려던 은찬은 곧 오늘은 예외적으로 문제집과 필기구만이 책상을 차지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노트북, 여기에 없는 거 맞아?”

“네. 쓸 일이 있어서 제 방에 뒀어요. 안 다쳤죠?”

“어? 응…… 근데 책상이…….”

“그보단 선생님 옷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

그제야 은찬은 노란색 물이 들어 얼룩덜룩해진 제 아래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과외를 진행하면서 거의 입을 대지 않은 탓에 커다란 컵 가득 채워진 주스를 그대로 옷 위로 쏟아부은 격이었다.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망고 향을 뒤집어쓴 단내가 진했다. 뒤늦게 축축한 아랫도리를 느끼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선생님, 아무리 여름이라도 이러고 집에 가실 순 없을 거 같네요.”

작게 한숨을 내쉰 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는 듯 은찬의 팔목을 쥐었다. 당혹감에 버벅대는 사이 예담에게 이끌려 들어선 곳은 서재와 반대편에 위치한,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방이었다.

커다란 침대 위엔 오늘은 서재에서 볼 수 없었던 노트북이 덮개가 닫히지 않은 채 놓여 있었고, 그 옆엔 읽다가 만 듯한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휑할 만치 넓은 방을 채우는 몇 안 되는 가구를 더 살펴볼 새 없이 은찬은 방과 연결된 드레스 룸 중문을 여는 예담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음……. 이게 괜찮겠네요.”

예담은 망설임 없이 걸린 옷들 중 하나를 골라 은찬에게 건넸다. 고작 트레이닝복 반바지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은 다림질이라도 한 듯 주름 하나 없었다. 긴 바지를 주면 어린아이가 아버지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질질 끌려 웃음거리가 될 뻔했는데, 여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찝찝하잖아요. 어차피 빨고 건조기에 넣으면 곧 마를 테니까 기다리는 동안 이거 입고 계세요.”

“아……. 고마워…….”

“그럼 갈아입고 나오세요. 저는 서재에서 기다릴게요.”

은찬은 예담이 무던히 건넨 트레이닝복 바지를 받고선 드레스 룸을 살폈다. 바닥엔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 제 옷을 벗어 두었다가 망고 물이 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중문을 다시 열고 이예담 방으로 건너가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으아…….”

생과일을 갈아 걸쭉해진 주스는 은찬의 바지를 넘어 팬티까지 적시고 있었다. 온통 축축해진 하체에 울상을 지은 은찬은 바지와 속옷을 모조리 벗은 뒤 제 생살을 살폈다.

덜렁거리는 자지를 비스듬히 치워 내고선 끈적끈적한 느낌을 자아내는 더욱 깊숙한 아래를 바라보았다.

살이 없는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달리 토실토실 살이 오른 보지 틈새 사이에 주스가 흘러든 탓에 시큼한 보지 냄새와 달콤한 주스 냄새가 엉겨 코를 찔러 대고 있었다.

마침 눈앞의 협탁에 갑 티슈가 보였다. 은찬은 주욱 티슈 두어 장을 뽑아낸 뒤 침대 매트리스 위로 한쪽 다리를 올렸다. 허벅지를 닦아 내곤 가랑이 사이를 쩍 벌려 다물린 보지가 벌어지도록 자세를 취했다. 붉은 보짓살은 투명한 애액과 노란 주스로 뒤덮여 고작 벌리는 것만으로도 찔걱이는 야릇한 소리를 냈다.

“응…… 흐, 아.”

은찬의 잇새에서도 끈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직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공기 중에 노출된 보지가 옴찔거리며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은찬은 티슈로 손가락을 감싼 뒤 조심스레 갈라진 속살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뜨끈한 보짓물과 차가운 과즙이 뒤섞인 보지 속 온도는 뜨뜻미지근했다. 새하얀 티슈가 주름진 대음순을 지날 때엔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며 항문마저 벌름거렸다. 저도 모르게 모든 구멍을 조이던 은찬은 흐물거리는 대음순을 거쳐 여린 소음순까지 꼼꼼히 닦아 냈다.

더운 날씨에 물크러진 속살은 건조한 티슈를 뭘로 아는지 자꾸만 쩍쩍 들러붙어 반대쪽 손으로 보지를 벌려 붙잡고 있어야 했다. 보지에 달린 양 날개까지 가감 없이 펼친 채로 예민한 속살을 비벼 대고 있자니 자극받은 자지가 서서히 힘을 받으며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미쳤어. 또…….

은찬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보지를 닦아 내던 손길을 멈추었다. 자지 역시 자극에 반응하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마음먹고 주물러 대지 않는 한은 잘 서지 않았는데, 보지는 늘 이렇게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도 민감했다. 어느새 음부 속 온도는 다시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 은찬의 숨결 또한 달떠 있었다.

선홍빛 살점을 가르고 지나자 펄럭이던 티슈는 점성 있는 액체를 흡수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은찬이 은밀한 속살에서 티슈를 떼어 낼 때는 그새 조그만 음핵에 말라붙은 티슈가 달라붙어선 지이익, 티슈 조각이 보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기까지 했다.

은찬은 짜증 섞인 한숨을 토해 내며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든 다음, 공알에 붙은 티슈를 떼어 냈다. 그 잠깐의 접촉에도 흥분한 클리토리스가 바짝 부풀어 발씬거렸다. 은찬은 붉게 부푼 클리토리스를 잠시 바라보다 벌려진 사타구니를 붙였다. 금세 축축해질 보지에서 애액이라도 흘러 이예담의 침구를 더럽히면 큰일이었으니까.

얇은 티슈를 넘어 제 손에 묻어난 끈적한 액체를 새로 뽑은 티슈에 닦아 냈다. 마지막으로 귀두 끝에 묻어난 물기까지 말끔히 닦아 낸 뒤, 협탁 아래 빈 플라스틱 통에 질펀해진 티슈를 버렸다.

이제 이예담이 준 옷을 입으면 되겠지. 5부 트레이닝복이라 한들 품 자체가 저에게 클 게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옷이 마를 동안 알몸으로 있을 순 없었다. 은찬은 생자지 위에 바지를 입곤 제 속옷과 바지를 옆구리에 끼웠다. 시간이 지체된 것 같아 미처 주변을 살필 새 없이 곧바로 방을 나섰다.

“고마워. 이거 옷은…….”

“옷은 지금 세탁해 달라고 할게요.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제 옷이 잘 어울리네요.”

옷을 갈아입은 은찬을 본 이예담이 자상한 웃음을 지었다. 왠지 눈길이 닿은 곳곳이 간지러워 어색하게 웃어넘기자 이예담은 미소가 번진 얼굴로 은찬의 옷을 받아 들고 1층으로 향했다. 우두커니 그가 사라진 방문을 바라보던 은찬은 고개를 숙여 제 아래를 확인했다.

잘 어울린다고? 암만 고무줄로 죄어 준다 한들 차이 나는 체구 때문에 바지 천이 축 늘어져 있었다. 팬티를 미처 입지 않아 둔중하게 떨어진 천에 덜렁이는 자지 윤곽이 비치는 듯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게 문제가 아니라…….

이예담이 돌아오면 앞으로는 여자 이야기 같은 건 하지 말자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겠다.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한 걸 듣긴 했지만 오늘 이예담이 한 행동은 암만 다른 문화라 한들 이해할 수준을 넘어섰다. 눈치 보느라 어린애가 하자는 대로 휘둘린 것 같아 뒤늦게 자존심을 챙기게 됐다.

“옷감이 얇아서 한 시간만 있으면 건조까지 다 될 거래요.”

어느샌가 돌아온 이예담이 제 의자에 앉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곤 운을 띄우기 위해 망설이는 은찬을 바라보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금세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찬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참, 선생님.”

어색해진 공기를 가르고 이예담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텅 빈 책상 서랍 속엔 하얀색 봉투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아직 과외비 받는 날 아닌데.”

“저희 어머니가 선생님 드리래요. 성적 올려 주셨잖아요.”

한눈에 보기에도 두둑한 봉투였다. 얼핏 보기엔 과외비를 담아서 주는 봉투만큼, 아니 그보다도 두꺼운 듯도 했다.

“어……?”

“그간 아무리 해도 안 나오던 성적이 선생님이랑 과외 시작하고 단번에 올랐으니 기쁠 만도 하죠.”

정말 기쁜 일이라는 듯 이예담이 짧게 웃으며 봉투를 내밀었다.

“아니야. 내가 할 일 한 건데…….”

“그동안 몇 명이 달라붙어도 안 되던 일이에요. 선생님이 정말 친형처럼 잘 대해 주셔서 저도 자꾸 열심히 하게 돼요. 그러니 선생님 덕이죠.”

“몇 명이나? 그게 무슨…….”

“저 선생님 오기 전까지 과외 선생님 꽤 여럿 바뀌었거든요. 이렇게 오래 한 선생님이랑 같이한 거 처음이라 어머니가 기대가 크신가 봐요.”

은찬은 예담이 내민 봉투와 그의 휘어진 입술을 번갈아 살피다 헛숨을 들이켰다. 기껏 한 다짐이 무색했다. 이러면…… 하려던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

은찬은 침대에 누워 제 손에 쥔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간 과외 학생 성적이 오르거나 명절이 다가올 때면 종종 보너스를 받은 경험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큰 금액을 한 번에 받는 일은 경험해 본 적 없었다. 이걸 받고, 또 앞으로 이예담 과외를 수능까지만 이어 간다고 해도 내년 상반기까지 생활비 걱정은 없을 듯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속된 말로 싸가지 없이 구는 것도 아니고 형 같아서 그런다는데. 예민하게 보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살갑게 구는 행동일 뿐이다. 몇 살 차이 안 나지만 혈기 왕성한 20살에다 수험 생활로 에너지를 억눌러야 하는 상황이면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지 않나.

거기다 주변 친구들은 죄 대학생이 돼서 여자 친구랑 놀러 다니고 이거저거 다 하고 다닌다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예담처럼 다 갖춘 애라면 친구들보다 뭐 하나라도 뒤지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억지로 호기심을 누르게 했다간 괜히 여자라도 만나러 나간다고 들고, 그랬다간 단번에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모처럼 맡게 된 꿀 빠는 과외에서 잘리는 수순으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인간적으로 일어난 측은지심에 더해 생계를 위해서라도 이예담과의 사적인 관계는 좀 더 돈독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계속 얘 흥미를 끌어 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선생님. 그렇게 말하니까 실감이 별로 안 나서요.〉

뒤늦게 보지가 생긴 까닭에 은찬은 아직도 늘 어릴 때 하던 버릇 그대로 자위는 자지로만 해 왔다. 보지는 그냥 두면 축축해지고 가려워지기 일쑤라 씻을 때나 닦을 때 주로 접촉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정도만 해도 자꾸 몸이 배배 꼬이고 야릇한 성감이 도는 탓에 더는 만질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이예담에게 여자 성기에 대해 알려 줄 때 제 몸을 생각하며 묘사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표현이 두루뭉술하긴 했지. 여자랑 자 본 경험은커녕 키스조차 해 본 적 없으니까. 보지를 흥분시키는 방법부터 설명이 서툴러져 조금 지루해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해 보고 알려 주면 되지.”

은찬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 아래에 떨어져 있던 거울을 침대 위로 가져왔다. 베개에 비스듬히 거울을 기댄 다음, 각도를 조절해 정확히 제 아랫도리가 비치게 했다. 그러고 나서 순식간에 하반신에 걸친 모든 옷을 벗었다.

형광등 아래 뽀얗고 말랑말랑한 살성의 둔부가 드러나고, 그 사이에 자리한 살굿빛 자지와 불알까지 남김없이 거울에 담겼다. 은찬은 늘 하던 대로 자지 기둥을 움켜쥐는 대신 상반신을 침대 쪽으로 기울이곤 배꼽을 향해 늘어진 자지 아래, 갈라진 틈새가 존재하는 겉보짓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으응…….”

이런 촉감이었구나. 부드럽고 여린 살점에 집중한 채 손끝을 가져다 대자 지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여태껏 인지해 본 적 없는 살결의 느낌에 도취되어 은찬은 느릿느릿, 제 보지 곳곳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도톰하게 살 오른 둔덕을 한참 매만지던 은찬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은 틈으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털 한 올 없이 말간, 매끄러운 입구가 오물대며 손가락을 씹어 삼켰다.

“아……!”

보지는 뒤늦게 생긴 탓인지 입구가 작고 조밀해 검지 한 마디만큼 찔러 넣기만 해도 힘겹게 벌어져선 금세 질 근육이 수축하며 조여들었다. 은찬은 점막이 좁아 들며 손가락을 물어대는 야릇한 감각에 발가락을 오므리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푸드득 경련하듯 떨려 오는 볼기짝이 탐스러웠다. 보지 구멍은 어서 더 들어와 보라는 것처럼 은찬의 손가락에 달라붙은 채로 옴쭉거렸다.

은찬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손등 뼈가 입구에 걸릴 때까지 제 손가락을 내밀한 곳으로 푹 찔러 넣었다. 그러자 의도치 않게 엄지가 돋아난 음핵을 꾸욱 짓눌렀다. 그게 버튼이라도 되는 것처럼 뜨끈한 보짓물이 왈칵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흐으…… 응, 읏.”

폭신한 질 벽이 부풀어 올라 손가락을 빈틈없이 감쌌다. 은찬은 예전에 봤던 야동을 상기하며 보지 입구에 걸린 손가락을 잘게 털어 댔다. 손가락이 오고 갈 때마다 벌어진 구멍 사이에서 흐른 끈적한 애액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찌익, 쩍, 젖은 살 비비는 소리와 함께 은근하게 일어나던 전율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은찬은 양 뺨을 붉게 물들인 채 밭은 숨을 내쉬며 여린 점막 안을 들쑤시고 긁어 댔다. 보지 속에서 시작된 아찔한 감각에 색소 옅은 눈동자가 게게 풀려 갔다. 아흐으…….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본능적으로 보지를 조이며 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질 벽을 비벼 댔다. 녹아내리는 점막이 만들어 내는 물기 어린 소리와 억눌린 신음이 좁은 방 안을 채워 갔다.

“후으, 아…….”

하지만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닿을 듯 말 듯 감질나는 느낌은 더더욱 커져만 갔고, 완성하지 못한 절정감에 보지 속이 허전해 늘어난 구멍을 벌름거리게 됐다. 겨우 이런 손가락 말고, 꽉 차는 무언가를 보지 깊숙한 곳으로 찔러 넣고 싶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음부 안을 더욱더 뜨거운 것으로 가득 채우고픈 욕망이 들끓었다.

은찬은 덜덜 떨리는 허벅지를 조이며 제 손목을 지그시 보지에 가져다 붙였다. 손목과 허벅지를 통해 가해지는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었다. 보지를 밀어 대는 힘이 더더욱 거세지고, 꽉 짓눌린 보지에서 아릿할 만큼의 쾌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은찬은 손목마저 빠르게 문질렀다. 마찰이 일어난 보지로 얼얼하리만큼 진한 전율이 모여들었다.

그저, 이예담에게 해 줄 이야기에 살을 붙여 보려던 것뿐인데……. 본래 목적과는 달리 점점 더 제 몸에서 일어나는 성감에 매몰되기 시작한 은찬은 허리를 띄우고 요란하게 엉덩이를 뒤흔들었다. 마구잡이로 짓뭉개지는 보지에 오늘 내내 건드리지도 않은 자지가 일순 고개를 쳐들고 바들바들 요동쳤다.

“읏, 으응, 후아…….”

어느새 손가락을 세 개로 늘려 보지 안을 푹푹 들이박고 있었지만 역시 이걸론 부족했다. 손가락이 빠져나갈 때마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붉은 살점에 은찬은 과도한 흥분으로 가물가물해진 시선을 내려 제 보지를 응시했다. 지금, 이 음탕한 보지 안에 살아 날뛰는 커다란 자지를 쑤셔 박는다면 어떨까.

“흐으…….”

눈앞에 선액으로 뒤덮인 검붉은 살덩이가 아른거렸다.

공중목욕탕이나 샤워장, 혹은 남자의 벗은 몸이 전시된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흉흉한 살덩이가 꺼떡이는 형상이 뇌 속을 진탕으로 휘저었다. 몸통만큼이나 굵다란 핏줄이 기둥을 휘감고 좆을 감싼 표피는 선득할 만치 불그죽죽했다. 은찬은 당장 머릿속을 유영하는 성기를 꺼내 제 보지 안에 짓이겨 넣고 싶은 충동에 엉덩이를 더욱 높이 쳐들었다.

“하으, 흐으…….”

억누르지 못한 충동으로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가쁜 숨을 이겨 내려 힘을 준 엉덩이 살이 움푹 파이면서 둔근이 모습을 드러내고, 딱딱하게 심을 세운 자지 끝에서 뚜욱, 뚝 말간 선액이 흘러내렸다. 투명한 액은 귀두를 따라 궤적을 그리며 음낭까지 흠뻑 적셨고, 음란한 상상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손가락을 타고 보지 속으로 조르륵 흘러들어 갔다.

온갖 체액으로 절어 버린 보지는 점막을 잔뜩 부풀린 채 농도 짙은 열감을 내뿜고 있었다. 아랫배까지 치미는 열기에 은찬은 하반신 전체가 저릿한 소양감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일순 균형을 잃을 뻔한 은찬은 자지 기둥을 감아쥔 손을 내려 침대 시트를 받치고 이불보를 말아 쥐었다.

“응, 으응…… 아, 제바알…….”

큼지막하고 둥근 선단을 구멍 안에 푸욱, 푹 쑤셔 넣으면 질척거리는 점막에서 피어오르는 근지러움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원하는 자지는 존재하지 않아 오로지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에 의존할 따름이었다. 흐으…… 입술을 말아 문 은찬이 손목의 위치를 고정한 채로 엉덩이를 물렸다가 단번에 거리를 좁혔다.

“하으으…… 아, 아!”

물컹거리는 점액질이 가득 차오른 보지에서 젖은 살을 쳐 대는 소리가 났다. 긴장한 손가락이 사정없이 구멍으로 처박히면서 생겨난 마찰 때문에 충혈이라도 인 듯, 새붉어진 보지 안은 홧홧한 열기로 가득했다.

파들대는 엉덩이를 물리며 거울을 들여다보니 붉은 보짓살이 빼꼼 딸려 나오다 스르륵, 안으로 말려들어 가는 모습이 시야에 가감 없이 펼쳐졌다. 제 보지인데도 무어라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야해 빠진 광경이라, 은찬은 벌어진 사타구니를 더욱 바깥을 향해 활짝 벌린 채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꼿꼿이 선 자지 덕에 보지는 허벅지를 벌린 것만으로도 둔덕과 틈새, 음순까지 모조리 내보이고 있었다. 보지 속살은 헤플 정도로 많은 양의 보짓물을 게워 내며 샅을 적시고 있었고, 손가락 세 개를 모은 채로 젖은 음순을 빠르게 문지르며 밀어 넣자 쩌걱, 쩌억 음란한 소리와 함께 야릇한 감각이 등허리를 날렵하게 관통하였다.

“흐으……! 응!”

여린 점막을 잘게 비벼 대자 침대 시트를 받치고 선 은찬의 발가락이 절로 곱아들고, 발등은 둥글게 휜 채 가늘게 떨려 왔다. 감질나게 느껴지는 쾌감에 은찬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보지 앞을 퉁, 퉁 문질러 대는 큼지막한 귀두를 가진 자지를 다시금 불러들였다.

“아, 흐응, 응, 조…… 흐, 응!”

질 벽을 파고드는 손가락 대신에 굵고 뜨거운 살덩이가 빠른 속도로 보지 구멍 안을 슬슬 긁어 대다 쿵, 한 번에 처박았다. 무언가를 품고 싶어 연신 발랑거리던 구멍은 곧 성기에 들러붙어 맞닿은 점막을 질펀하게 적셨다. 막연히 손으로 자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명확한 이미지와 상황까지 더해지니 예민해진 보지에서 격정에 가까운 쾌감이 피어올랐다.

“으응…… 흐으, 아……!”

은찬은 구멍 속을 가득 채운 손가락을 쩌억 바깥쪽을 향해 벌렸다. 좁아터진 보지가 힘겹게 늘어나면서 거대한 자지로 안을 메운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손가락, 아니, 빠듯하게 들어찬 자지로 인해 안달이 났다. 온몸을 장악한 세포가 꿈틀거려 요부라도 된 듯 은찬은 제 보드라운 엉덩이를 뒤흔들었다. 철썩, 철썩 찹쌀떡 같은 볼기끼리 맞닿는 천박한 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울렸다. 귓가를 자극하는 질척한 소리에 보지 안이 경련하듯 떨려 왔다. 격하게 수축이 일어났다.

수십 번 엉덩이를 흔들어 화끈거리는 열감이 엉덩이 살을 잠식해도, 하반신에 감겨든 기묘한 감각은 떨어질 생각을 않고 절절 끓어오르기만 했다. 보지 점막이 톡톡 튀어 오르며 맥동하는 움직임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절정이라고 생각한 곳에 닿으면, 또 다른 절정이 은찬을 기다리며 그의 흥분감을 배가해 나갔다.

“응, 으으, 흐으응…….”

손등을 타고 흐르던 야릇한 물은 어느덧 팔꿈치까지 타고 내려왔다. 배꼽 쪽을 향해 늘어진 고환에도 투명하게 번들거리는 보짓물이 고여 은찬의 몸은 물에 빠졌다 건져진 것처럼 곳곳에 물기가 어렸다.

육중한 살덩이가 미끌거리는 소음순을 비집고 들어가선 집요하게 철퍽철퍽, 보지 구멍을 후벼 파냈다. 검붉은 귀두를 질구 안에 쑤셔 넣은 채 같은 지점만 짓찧어 대자 마찰하는 점막으로 점차 불길이 일었다. 외설적인 물소리가 짙어져 가면서 사정없이 보지를 자극하는 자지에 은찬의 허리가 덜컹 튀어 올랐다.

“아, 아…….”

은찬의 고개가 뒤로 꺾이면서 절박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보지에서 일어난 발화가 옮겨붙은 듯, 안구까지 번진 열기에 눈앞이 온통 시뻘겠다. 여린 질 벽 안은 계속되는 추삽질에 진탕 녹아내려 켜켜이 쌓인 성감을 고조했고, 곧 이는 거대한 쾌감으로 되돌아와 은찬을 적셨다.

연속된 출납에 힘이 빠진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자 짓이겨진 점막이 제멋대로 펄떡거리며 손끝을 죄어들었다. 쫀득하게 조여드는 보지가 주는 느낌에 은찬이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주곤 격렬히 보지 안을 털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이제 정말 조금만 더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입술 사이에서 흐느낌을 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안달 난 나머지 저 혼자 방아질하는 엉덩이가 철썩이며 뒤흔들릴 때마다 투명하게 엉긴 체액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툭, 툭. 침대 시트 위로 점액질이 산란하게 떨어져 내렸다.

“흐으, 아, 흣, 응……. 어떡, 흐응! 아……!”

복근이 바짝 조여 오면서 눈앞이 일순 번쩍거렸다. 외마디 비명이 신호탄이 된 것처럼 농축된 정액이 자지 끝에서 하늘을 향해 후드득 분사되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정액은 둔부를 비추는 거울과 이불보를 덮은 보짓물 위를 또다시 덮었다. 바쁜 일상에 제때 빼 주지 못했던 터라 탁한 색깔을 띠고 뭉텅이로 덩어리진 모습이었다.

“흐으……. 후우, 흐.”

은찬이 자지러지며 사지를 매트리스 위로 떨어뜨렸다. 오동통한 볼기가 매트리스에 짓뭉개지고, 전신에 전류라도 관통한 듯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시트와 맞닿은 살결 모두가 끈적거리는 체액으로 젖어 들었고, 보짓물에 흠뻑 적셔진 음핵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흐으, 흐으……. 한참 동안 헐떡이던 숨을 고르던 은찬은 곧 제 아래 거울을 찾았다.

엉덩이를 들지 않아서인지 이 각도로는 절정 후의 모습이 가늠되지 않았다. 은찬은 제 팔 상완에 오금을 걸고 온전히 엉덩이를 거울을 향해 내비쳤다. 무릎이 접히자, 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 살이 벌어지며 사이에 위치한 선홍빛 음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울에 비친 항문은 제가 보지 구멍이라도 되는 것처럼 뻐끔대며 주름을 조여 댔다. 둔부에 점철된 체액으로 인해 주름진 연분홍빛 항문 어귀까지 반투명한 분비물이 질척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은찬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촘촘히 오그라드는 아랫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다 엉망으로 젖은 보지로 시선을 주었다.

정말 자지로 안을 헤집기라도 한 것처럼 흐물흐물하게 풀린 보지는 희멀건 액으로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감각의 여운이 벌벌 보짓살을 떨리게 하는 탓에 보지 위를 덮은 액체가 꾸물럭, 꾸물럭 거품을 뿜어 대고 얇은 회음부까지 제멋대로 잘게 경련해 댔다. 움찔거리는 보지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미미한 진동이 손가락을 타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 헛숨을 내뱉은 은찬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손등을 교차해 얼굴을 가리고서 눈을 감았다. 졸지에 받쳐 주던 팔뚝을 잃은 종아리 역시 힘이 빠진 채 매트리스 위로 낙하했다. 그 반동에 말랑말랑한 엉덩이 살이 뒤흔들리면서 잠시 침대 출렁이는 소리가 울렸다. 곧 방으로 고요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 * *

“음……. 오늘은 이걸 먹어 볼까.”

냉장 가판대 앞에서 오랫동안 고심하던 은찬은 금박 스티커가 붙어 있는 도시락을 골라 들었다. 지내는 옥탑방은 불법 증축된 건축물이라 주방이 없는 탓에 이렇게 매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도 주변 시세에 비해 월등히 싼 월세라 큰 불만은 없었다.

‘스페셜 정식’이라는 단어가 나타내듯 반찬 가짓수가 특별히 많은 도시락을 고른 건 이예담 과외 덕분에 당장 눈앞의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해진 지갑 사정 덕분이었다. 늘 반찬보다는 가격대를 먼저 고려했던 은찬으로서는 흔치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저질렀던 자위는…… 납득이 가능한…….

“아 씨, 또 왜.”

되짚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져 은찬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중간에 살짝 자지를 만지긴 했지만 오롯이 보지로만 절정에 오른 셈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대한 쾌감에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자괴감이 든 은찬이 도톰한 입술 여기저기를 짓씹다 편의점 코너에 설치된 반사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일순 과외 첫날 이예담이 제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던 손길이 연이어 떠올랐다.

그저 상처를 살핀다는 명목이었지만 느릿하고 은근하게 표면을 문지르던 손끝과 진득하게 들러붙던 시선, 웃음기 어린 낮은 목소리……. 그날 그 시간을 재연한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오감에 은찬의 잇새에서 뜨거운 숨결이 새어 나왔다.

왜 이러지. 이대로 집에 갔다간 도시락을 펼치긴커녕 성욕의 노예가 된 채로 다시 한번 자위에 매몰될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보지 안이 축축하고 끈적한 것이, 틈새를 뚫고 나온 점액질이 팬티 속을 척척하게 적셔 가는 감각이 선연했기 때문이었다.

이따 과외도 가야 하는데. 자위로 힘을 빼느니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달아오른 몸을 가라앉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한산한 편의점 안을 둘러보던 은찬은 창가로 몸을 옮겨 도시락을 펼쳤다.

의자에 앉자마자 두 발을 동동거리며 반바지 속으로 서늘한 공기를 통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곤 인위적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야한 거랑 거리가 먼 거……. 이따 알려 줘야 하는 수학 문제, 다음 학기 등록금,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재빨리 제가 처한 온갖 상황 속 문제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보짓살 위에 맞닿은 음낭까지 열기에 절어가는 느낌이 감지되었다. 은찬은 씨근덕거리는 숨을 삼켜 넘기며 애꿎은 젓가락을 부술 듯이 꽉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젓가락을 움켜쥐었을 때였다.

“은차니. 잘 지냈어?”

도시락 앞으로 자그마한 손이 쑥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이예담 과외 건을 소개해 준 수민이 옆에 서 있었다. 은찬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친구이자 심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몇 안 되는 동기 중 하나였다.

수능 성적이 나온 후 배치표에서 가리키는 대로 원서를 쓴 은찬과는 달리 한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동기들은 내로라하는 집안 자식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일반적인 경영학과 재학생의 목표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취직보다는 작든 크든 직접 경영할 회사를 위해 비전을 세우고 도움이 될 이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평범한 축에도 들지 못하는 은찬은 딱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거리감에 늘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생활하고 있었다. 굳이 나서서 박탈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어, 응……. 안녕. 언제 왔어?”

“방금. 계절 학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너 앉아 있는 거 보이길래 왔지.”

“잠깐만.”

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 수민이 즐겨 마시던 브랜드 커피를 골라 계산한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캔 커피를 바라보던 수민은 이내 배시시 웃음 지으며 은찬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잘 마실게.”

“이걸로 퉁 치려는 건 아니고, 비싼 건 못 사도 밥 한번 사 준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근데 그거 사실 민선우 선배가 넘겨준 거거든? 남자 선생만 구한다고 해서 너한테 알려 준 거니까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학기 시작하면 간단하게 한 끼 먹자.”

제 주머니 사정을 어렴풋이 아는 수민이 말하는 ‘간단한 한 끼’란 냉동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수준을 일컫는 거겠지만 민선우라니, 접점 없는 선배의 이름이 나오자 은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저와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과 굳이 사적으로 알아 가고 싶은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불편했다. 하지만 제 밥줄을 소개해 준 인물을 알고도 무시할 만큼 뻔뻔한 성격도 아니었다.

정말 엮이기 싫은데……. 은찬은 줄곧 씹어 대 엉망이 된 입술을 초조하게 물었다 놓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민이 다 마신 캔 커피를 흔들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 * *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은찬이 고개를 들어 언덕길을 바라보았다. 무심코 바라본 길의 끝엔 저택 슬레이트 지붕이 주홍빛 태양에 녹아드는 광경이 비쳤다. 은찬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버스 정류장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진 길을 반복적으로 걷다 보니 무심코 머릿속 한구석에 치워 두었던 상념이 떠올랐다. 아, 젠장. 은찬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한 차례 내쉰 뒤, 입술을 사리물었다.

“하…… 미쳤어.”

은찬은 힘없이 공중에서 늘어진 손을 끌어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다른 건 다 상관없었다. 아득한 쾌감도, 보지를 자극했던 경험도.

문제는…….

당시 은찬은 당장 눈앞에 닿을 듯 말 듯 한 쾌감을 움켜쥐는 것이 중요했다. 뜨거운 덩어리들이 뭉쳐 배 속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면서 아래가 제멋대로 펄떡거렸다. 구멍이 움찔거리면서 축축하게 젖어 들고, 무언가를 조여 물고 싶어졌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재빠르게 음부를 비벼 대면서 자극해 나가자 보지 구멍 안으로 뭉근한 열기가 몰려들었다. 끝 모르고 모여드는 열기에 절어 버린 보지 점막은 액체처럼 흐물흐물 무르녹았고, 본래 자지를 받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라 그런지 빈 구멍이 허전하고 휑하게까지 느껴졌다. 그 안을 뜨겁고 커다란 무언가로 채워 넣고 싶어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렸다.

마침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떠올린 건……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체가 아닌, 흉측하리만치 크고 두툼한 좆이었다.

그리고 자위 내내 은찬은 제 안에 자지를 욱여넣는 상상에 매몰된 채 허리를 부지런히 떨어 댔다. 종래엔 흥분에 젖은 신음까지 흘려 가면서.

“하아. 씨…….”

당시엔 처음으로 느낀 절정감 때문에 미처 짚지 못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게이도 아닌 자신이 자위 도중 느닷없이 남자 성기를 떠올린 것,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정말 말이 되지 않는, 결단코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은찬이 정의하는 남성성이란 그러했다.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의 몸을 보면 흥분하고, 같은 남자끼리 붙어먹는 건 상상만으로도 역해 몸서리치고, 구역질하는. 그건 20살이 넘도록 변하지 않았던 본인의 가치관과도 정확히 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은찬은 그런 자신의 자아를 의심해 본 적 없다. 후천적으로 생겨난 보지가 당혹스럽긴 해도,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며 자신의 남성성은 굳건하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따라서 애써 고개를 저으며 합리화를 위한 여러 변명을 떠올렸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변명거리였다.

여러 명제가 은찬의 머릿속을 혼탁하게 휘저으며 얼기설기 엉켰다.

“후…….”

그렇게 고뇌하며 소비한 시간 덕에 높다란 대문 앞에 도달할 때 즈음엔 꽤나 그럴듯한 변명이 완성됐다.

떠올린 건 단순히 도구 역할을 한 자지일 뿐, 남자라는 대상은 아니었다. 보지를 잘 안 만지다 보니 자위하는 방법을 제대로 모른 탓에 일어난 실수와도 같았다. 의식적으로 외면한다면 두 번 다시는 겪을 리 없는 경험이니 괜히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보단 기억 저편으로 넘기고 무시하는 게 옳았다. 그편이 현명했다.

은찬은 그렇게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저를 내려다보는 CCTV 카메라를 응시했다. 곧이어 초인종을 눌렀다.

스륵, 누구냐는 물음 대신 자연스레 대문이 열렸다.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마다 방문하는 은찬이 익숙해졌다는 방증이었다. 새삼 이예담과 제법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과외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 피부로 스몄다.

그래. 그러니까 그런 과외를 위해 필수 불가결했던 일은 이제 잊고, 눈앞의 과외에나 집중하면 될 일이다.

은찬은 중얼거림을 멈춘 다음, 가볍게 제 뺨을 톡톡 치곤 대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목덜미로 쏟아지는 뙤약볕이 따가웠다. 은찬은 땀이 점점이 맺힌 살결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정원을 지나치다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정원 아래, 그새 떨어진 꽃잎 몇 장이 잔디 위를 수놓고 있었다. 여름도 곧 끝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부작. 잔디가 밟히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예담이 그를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

“어? 예담아? 왜 나왔어. 아직 시간 안 됐는데.”

항상 일관해 오던 무던함 대신 알 수 없는 기색이 어린 눈동자가 시선을 고정해 왔다. 대답 대신 예담은 혀를 꺼내어 입술을 얕게 핥았다. 붉고 뾰족한 살덩어리가 느른하게 입술 위를 덧그리며 쓰다듬었다. 입꼬리의 끝에서 끝까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여유를 가지고 몸체를 비트는 살덩이가 지나는 자리마다 척척한 타액이 묻어났다.

무언가를 훑고, 핥고, 발라먹기 전초전이라도 되는 듯 서슴없는 혀 놀림이었다. 그 노골적이고 느긋한 움직임에 은찬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 주먹을 꼬옥 쥐었다. 단전에서 느껴지는 아찔함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마침내 입술 위를 기던 붉은 혀가 종적을 감추었을 때, 굵은 목선 사이를 가르는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타액이 넘어갔다. 선이 뚜렷한 입술 표면에 투명한 액이 흔적을 남겼다.

은찬은 이제 말아 쥔 손끝마저 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간질거리는 감각이 순식간에 전신 말단으로 번지고 어딜 뛰어갔다 오기라도 한 것처럼 호흡이 거칠어졌다. 계속되는 침묵에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이예담이 있는 곳까지 들릴까 걱정될 만큼 전신이 가쁘게 반응했다.

“……예담아.”

계속되는 적막을 깨뜨려야 했다. 본능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기묘한 위압감에 초조해진 은찬은 머뭇거리던 몸을 이끌고 이예담에게 바투 다가갔다.

“이예담!”

“……아아.”

음험하게 빛나던, 검은색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여상히 바뀌었다. 예담은 바짝 다가온 은찬을 찬찬히 훑다가 언제 다른 분위기를 풍겼냐는 듯, 느긋하게 입술을 휘면서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상냥한 웃음기가 스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딴생각했어요.”

“딴생각?”

“밤새 공부했거든요. 그랬더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가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잘하잖아. 뭐 하러 새벽까지…….”

“음. 왤까요. 또 선생님한테 좋은 얘기 들으려고?”

예담의 긴 눈이 접히면서 호선을 그렸다. 방금 전의 고요한 위압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퍽 그 나이다운 천진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어린애가 맞았다. 그런데 왜…….

“저녁 먹으러 가요. 전에 보니 복지리탕 잘 먹는 거 같아서 그걸로 준비해 뒀어요.”

은찬의 생각을 끊고 예담이 집 안을 향해 고갯짓했다.

“일부러? 미안하게…….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과는 달리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미각이 살아나 혀에 침이 고였다. 지난번에 먹어 본 바로는 밥 한 공기는 금세 비우게 하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내심 언젠가 다시 먹을 기회가 있을까 혼자 떠올린 적도 있었다. 취업을 하게 되면 일 순위로 사 먹어 보리라 다짐할 정도였다.

“좋아하는 거 먹으면 좋잖아요.”

“너, 너는 좋아해?”

그 말에 예담이 잠시 멈칫하다가 느긋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고 잔잔한 웃음소리가 넓은 정원에 울려 퍼졌다.

“네, 좋아해요.”

이 바보야. 집주인인데 그럼 복지리탕 싫어하면서 저녁상에 올렸겠냐고. 은찬은 예담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자꾸만 엉뚱하게 튀는 생각에 입 안의 연한 살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입술을 잘근거리며 움직이던 은찬은 곧 앞장서서 걷던 이예담이 걸음을 멈추고 다시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로 부푼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종일 짓씹은 터라 엉망이 된 입술은 붉은 립스틱이라도 바른 것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은찬은 뒤늦게 제 입술을 괴롭히던 짓을 멈추고, 손바닥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몰랐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자 끈덕지게 들러붙던 이예담의 시선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소리 없는 미소와 함께.

* * *

유난히 묘한 기류가 흐르던 그날 이후, 이예담은 사제 간에 통용되는 사회적인 합의선을 고심한 듯 은찬을 깍듯이 대하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그 앞에서 긴장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정갈한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기라도 한 것처럼.

예담은 예의 바르고 다감한, 어디도 나무랄 것이 없는 제자의 본보기와 같았다. 종종 헷갈리게 굴던 태도는 종적을 감추고, 착실하게 수업에 임한 뒤 수업이 끝나면 떨어질 보상 역시 ‘학생다운’ 태도로 얌전히 기다렸다.

여느 아이들처럼 여상히, 선망과 부러움을 적절히 섞어서.

하는 말마다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흘러나오는 감탄사까지 동반했다. 동경해 마지않는다는 반응에 은찬은 내내 어깨가 으쓱 올라간 채로 더 할 말은 없는지 찾아보게 되고, 필요 없는 말도 자꾸 보태게 됐다. 종종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했던 사담 시간에서조차 그 느낌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매번 추켜세우는 예담 덕에 은찬은 점차 과감해져 갔다. 살면서 다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에까지 화제가 옮겨가도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형님, 형님 하며 서열질하는 놈들을 비웃었던 과거가 겸연쩍어졌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녀석들이 형님 소리들을 듣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됐다.

오늘도 그렇게 어느덧 ‘일상’이 된 나날들 중 하루였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었다면.

“은찬아. 너…… 보지 달렸잖아.”

“무슨…… 무슨 말이야. 이예담?”

은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겠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끌어 올리고선 이예담에게 되물었다.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미 충실한 제자인 이예담이 제 이름을 부르고, 높임말 따위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짚어 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경은 온전히 예담에게 까발려진 채였다.

“많이 놀랐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티 내면 어떡해요.”

안타깝다는 듯 예담이 눈썹을 끌어 내리며 쯧, 작게 혀를 찼다. 속살거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감미로울 만큼 부드러웠고, 걱정하는 말과는 달리 입가에 느긋하게 번진 미소가 아찔했다.

은찬은 그 어울리지 않는 괴리감에 잠시간 이 순간이 꿈이 아닐까, 생각하며 입 안 살을 세게 깨물기까지 했다. 하지만 짓씹은 살은 생생하게 아팠고,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이예담 역시 어딘가로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은 채 제 눈앞에 있었다.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보지라니. 제가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키자 손발이 벌벌 떨려왔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방어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참아 주지. 미, 미쳤어? 미친 새끼, 이거 놔.”

이 과외는 파국이다. 대체 이예담이 어떻게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알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분명히 찔러보는 헛소리일 게 분명했지만, 그렇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든 이렇게 된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깟 돈, 다른 알바 자리로 채워 넣으면 됐다. 결심한 은찬은 예담을 노려보며 결박된 손목을 애처롭게 비틀었다.

“음. 이 정도는 애매하긴 하죠?”

예담은 은찬의 반항에도 바위처럼 꿈쩍도 않은 채 담담히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귓가로 파고드는 지나치게 낮고 자상한 목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은찬은 짜증이 서린 목소리로 예담의 혼잣말을 되받아쳤다.

“뭐?”

“이 밑에 뭐가 있는지 알려 주기엔.”

“……아!”

마디를 구부렸던 손가락이 펼쳐진 뒤 천천히 위로 기어올랐다. 그러곤 천 뒤에 숨어 있는 클리토리스를 정확히 짓누르며 힘을 싣고 압박하였다. 꾸욱, 거친 손가락이 정점을 찌그러트릴 듯 콱 문질러 오자 이미 잔뜩 젖어 있던 속살이 경련하듯 떨려 오며 열기를 내뿜었다.

잔잔한 파동처럼 이는 진동을 느낀 이예담의 잇새에서도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 짙은 숨결을 내쉰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고, 팬티 천을 적나라하게 가른 세로의 자국을 따라 슬슬, 느릿하게 손가락을 내리며 쓰다듬었다.

“이, 씨이! 그만두라고 했지! 좋은 말 할 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어느덧 질척해진 천은 예담의 손가락을 경계로 둔덕을 정확히 둘로 가르고 있었다. 그렇게 도끼로 찍히기라도 한 것 같은 자국을 고요히 바라보던 예담은 돌연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빠르게 보지를 짓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민감해진 점막끼리 비벼지며 찔걱거리는 난잡한 소리가 났다.

“아! 이, 미친…… 으, 흣! 으응!”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인데.

보지 안이 난폭하게 들끓고, 팽팽해진 자지가 고개를 쳐들어 곧 팬티 천을 뚫을 것처럼 불룩 솟아올랐다. 보지 자위를 하면서 상상했듯이 단단하고 커다란 타인의 신체가 예상할 수 없는 속도와 세기로 보지를 자극해 왔다. 벌어진 음순 날개 사이를 부지런히 문지르고 찔러 댈 때마다 무섭도록 선명한 쾌감과 함께 요란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앙, 응, 흐으……!”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앞이 점멸했다. 헐떡대는 숨만큼 구멍이 제멋대로 움찔움찔 조이고 풀리며 보짓살이 오르내렸다. 아주 얇은 천을 사이에 둔 이예담이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신체적 변화였다.

“정말 보지가 아니에요?”

은찬을 내려다보는 예담의 눈동자는 한없이 짙게 가라앉아 있어 속을 알 수 없었다. 예담이 중지 대신 손바닥을 대고 음부 두덩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질척하게 젖은 보짓살이 흔들리면서 찐득한 액이 비벼지는 소리가 났다. 말랑말랑하던 속살은 짓칠 때마다 차지게 변하면서 육벽끼리 들러붙었다.

보지 전체를 가린 손바닥이 잘게 흔들리며 보지를 압박하고, 손가락으론 퉁, 퉁, 보짓살 위에서 덜렁이는 고환을 조몰락거렸다. 그에 따라 예담의 손바닥이 미끌미끌한 애액으로 적셔져 갔다.

“아흣! 아, 니야! 손, 떼에, 흐, 아…… 힉!”

은찬은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허벅지가 땅겨 오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가랑이를 모으려 했다. 하지만 이예담에 막혀 할 수 있는 일이란 까무러치듯 신음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신경은 별개인지, 짓무를 정도로 무지근하게 보지를 눌러 대는 손바닥과는 달리, 음낭을 쓰다듬는 손길은 은근해 자지와 보지에서 다른 종류의 쾌감이 피어올랐다. 뇌가 진탕 녹아내렸다.

안 돼. 이대로 가면 안 되는…….

“앗! 흐응! ㅆ…… 흣……!”

이예담이 엄지를 푹, 구멍 안에 쑤셔 넣었다. 동시에 은찬이 자지러지며 허리를 튀었다.

보지 구멍과 엄지 사이를 가로막는 얇은 천이 있었지만 보짓물에 절어 버린 천은 존재가 무의미했다. 예담은 천을 통과해 흠뻑 비집고 나오는 보짓물을 뒤집어쓴 자신의 엄지를 보고 작게 어렸던 웃음기를 지웠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촉촉하고 여린 속살의 감촉에 간신히 유지하던 이성의 끈이 끊겨 나갔다.

“……씨발. 보짓물이 한강이네.”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예담이 문드러질 듯 끈적해진 엄지를 떼어 내자, 찐득찐득한 애액이 늘어지면서 공중을 갈랐다. 그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예담은 곧 손톱 모양대로 옴폭 파인 속옷에 다시 엄지를 갖다 대고서 아래위로 긁으며 보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질척하게 젖은 천은 엄지가 움직일 때마다 보지에 바짝 들러붙어 이미 생보지가 드러난 것과 다름없었고, 예담이 조금 만져 준 음낭 때문인지 자지는 터질 듯 꼿꼿해져선 드로어즈를 꿰뚫고 나가기 직전이었다. 그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갉작이는 손길에 일어난 자작한 전율은 예담의 손가락을 뜨끈하게 덥히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아, 아……! 흣! 하지, 마! 하윽!”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거부를 내뱉는 입술과는 달리 보지 점막은 더, 더 안으로 들어와 쑤석여 달라는 듯이 엄지 둘레에 들러붙어선 꿈틀거리며 사방을 틈 없이 조여 왔다. 흥분해 부푼 음핵마저도 맞닿은 손등 뼈에 바짝 밀착한 채 발발 떨렸다. 모처럼 찾아온 이물질을 기꺼이 빨아올리면서 쫄깃하게 경련하는 육벽의 조임에 예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차례 낮은 한숨을 내쉰 다음, 예담은 손등 뼈에 짓눌린 동그란 공알을 집요하게 압박하며 바삐 손가락을 놀렸다.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하으으…….”

볼록 솟아오른 음핵과 움찔거리는 보지 구멍이 우악스럽게 후벼 파이는 자극에 은찬의 턱이 덜덜 떨려 왔다.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번쩍번쩍 눈앞에 별이 튀고, 호흡이 가빠졌다. 아랫배를 잠식한 홧홧한 감각이 버거워 반사적으로 허리가 뒤틀렸다.

쿠쿵, 은찬이 들썩이면서 의자 모서리가 벽에 부딪혀 파열음이 났다.

“이런. 다칠라. 조심해야죠.”

균형을 잃은 몸이 갈피를 잡지 못하자, 예담이 돌연 은찬의 허벅지를 넓게 벌려 팔걸이에 오금을 걸었다. 그러곤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두꺼운 몸을 밀어 넣어 하반신은 의자에, 상반신은 억센 손아귀에 붙들린 은찬을 박제하듯 고정했다.

바지를 허벅지 아래로 끌어 내리진 않은 터라 가랑이 아래 허연 살까지 드러나진 않았지만 엉덩이가 들려 이외에 샅까지는 남김없이 내보인 상태였다. 당황한 은찬이 엉덩이를 뒤채자 면바지가 밀려 내려가며 고간이 더더욱 훤하게 모습을 내비쳤다.

“이예ㄷ……으, 흐으…… 읏.”

은찬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려웠다. 아래가 뜨거우면서도 근질거렸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조금만 더 달려가면 끝이 보일 듯한 쾌락의 기로에서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쑤실 때마다 왈칵왈칵 터지는 보짓물이 엄지를 타고 흐르다 핏줄 선 손등마저 적셨다. 순두부를 푹푹 짓눌러 안이 으깨지며 물기가 터져 나오는 형상이었다. 예담은 천 밖으로 새어 나간 애액이 묻어난 손가락을 잠자코 주시했다. 그러곤 쭉 뻗은 콧날 가까이에 가져가더니 흐음, 하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보지 냄새.”

예담은 제 손등을 흠뻑 적신 점성 있는 액체를 가만히 바라보다 혀를 내었다. 할짝이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과도한 농탕질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은찬이 간신히 눈동자의 초점을 맞추었을 땐 이예담의 정갈한 혀가 게걸스럽게 제 손등을 핥고 있는, 아연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뒤였다.

“너, 뭐, 흐읏, 뭐 하는…… 흣, 아!”

공기 전체를 짙게 물들인 긴장감에 은찬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붙잡힌 손목을 흔들었다. 그 동작을 차분히 바라보던 이예담은 완력으로 다시 한번 은찬을 가벼이 제압했다.

이예담이 곤란한 듯 웃음 지으며 애액이 남아 번들거리는 엄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를 마주한 은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붉은 입술 사이에 엄지를 쑤셔 넣고는 적나라하게 쭙, 빨아 먹어 치웠다.

“야한 맛이네요.”

말을 던진 이예담이 사악, 혀를 내어 요사스럽게 아랫입술을 핥았다. 눈앞에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동작이었다.

그러곤 탄탄하고 거대한 몸을 굽히고 바닥에 무릎을 대었다.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은찬을 올려다본 예담이 고개를 숙였다. 항상 높이 있어 보이지 않던 이예담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하아. 이 개……! 흐응!”

잠시 숨을 고르던 순간, 뜨끈한 입술이 축축한 아래에 들러붙었다. 츄, 춥. 젖은 천이 은근하게 빨리는 끈적한 소리가 나면서 습한 숨결이 보지 틈 사이로 쏟아졌다. 은찬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비명처럼 신음을 내질렀다.

“아, 아, 흑! 하지, 흐으, 마하! 응!”

두꺼운 혀가 폭 파인 보지 구멍을 뭉개면서 젖은 살을 쳐 댔다. 침으로 점철되어서인지 손가락보다 수월하게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와 점막을 들쑤시고 헤집었다. 오물거리는 보지 구멍이 붉은 살덩이를 옥죄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 감각이 단숨에 허벅지까지 번져 팔걸이에 걸쳐진 양다리가 파들파들 요동쳤다.

아, 흐으……! 은찬이 의자 헤드에 뒷머리를 기대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여태 넣어 본 거라곤 손가락뿐인 보지에 닿는 말캉한 살덩어리의 감촉 때문에 흐느끼듯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랫배 근육이 움칠 조여들고 보지 구멍이 잘게 수축하면서 질 점막이 벌겋게 익어 갔다.

뜨끈한 보지에 뜨거운 혀가 맞물리며 열기가 퍼부어졌다. 타액과 애액을 흡수해 무거워진 천은 보지 둔덕에 찰싹 들러붙은 채로 감도를 높였다. 쭙, 쯔읍, 이예담이 바짝 보지를 빨아들일 때면 여린 살점과 팬티가 함께 딸려 가며 흐물흐물해지고, 혀를 이용해 보지를 짓치고 가를 때면 들쑤시는 대로 조여들었다.

척척하고 묵직한 살덩이가 은찬의 아래를 난잡하게 휘저었다. 처음 느낀 수치심을 잊은 채 은찬은 이예담의 혀가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이상한데, 분명 이상한데 더, 더 빨리고 싶었다. 보지가 쑥 빠질 만큼 강하게 빨리고 싶은 욕구로 저도 모르게 가랑이를 벌린 채 엉덩이를 치들었다.

“흐으응, 아, 앙……! 안, 대애, 응!”

보지가 벌렁거리며 요동치는데도 이예담은 초연히 아래를 자극하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경련으로 좁아 드는 구멍을 무도하게 들쑤시며 같은 지점을 짓찧어 댔다. 흣, 흐으…… 들이치는 야릇한 전율에 은찬이 신음하며 보짓물을 가득 쏟아 냈다.

범람하는 애액에 가죽 의자 시트가 물들어 갔다. 걸쭉한 액체가 살짝 뜬 엉덩이를 스치며 굵은 줄기를 만들었고, 얇은 바지 천과 맞닿은 의자 면면을 흠뻑 적셨다. 축축해진 아래는 불쾌감은커녕 기묘하고 야릇한 전율을 선사하며 거듭 쾌감을 쌓아 갔다. 마침내 켜켜이 쌓인 감각이 둑을 넘어 넘실넘실, 흘러넘치기 직전이 되었을 때.

“아……! 아……!”

한 줄기 남은 이성은 쾌감을 참아 내려 했지만 제멋대로 쌓인 감각은 결국 허락 없이 절정에 이르렀다. 어찔한 쾌감이 격랑처럼 밀려오는 순간, 흐리멍덩하게 초점을 잃은 은찬의 몸이 일순 작게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절정에 도달한 자지가 팬티 속에 갇힌 채로 시원하게 정액을 내뿜은 것이다.

“아, 흣! 흐으, 흐…….”

꿀렁꿀렁, 끝도 없이 백탁액이 쏟아지며 팬티 안을 질척하게 메웠다. 참고, 참았던 사정감이 분수처럼 터지면서 은찬은 격렬한 해방감을 느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방울마저 뽑아낸 뒤 지나친 탈력감에 내몰린 그가 색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출의 여운으로 온몸이 힘차게 조여 오면서 이예담과 맞닿은 부위가 거세게 떨려 왔다.

소름이 일 만큼 아찔한 쾌감의 잔여물이 은찬의 아랫도리를 은밀히 맴돌았다. 보지가 야릇하게 푸들거리며 둔덕과 맞닿은 날카로운 콧날을 비비적거렸다.

이예담이 쭙, 보지에 입 맞춘 뒤 고개를 들었다. 색욕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그답지 않게 몽환적이었다. 습윤한 보지에 얼굴을 묻고 있다 떼어 낸 탓인지 잘 뻗은 콧날 아래로 온통 번들거리는 물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하아…….”

좆을 쑤셔 넣은 것도 아닌데 보지를 빨며 꽤나 흥분했는지 예담의 숨결 또한 거칠었다. 제 모습이 의외로웠던 예담이 픽, 작게 웃으며 얼굴에 묻어난 체액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은찬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척척한 정액이 좁은 면적의 천 안에 가득 퍼지고, 각종 체액이 엉겨 무게감이 생긴 드로어즈가 스르륵 내려가며 은찬의 새하얀 장골을 드러냈다. 거뭇거뭇한 체모가 드러나야 하는 지점마저 깨끗했지만 이예담은 이미 예상했던 바인 양 태연하게 눈을 내리깐 채 발갛게 상기된 은찬을 샅샅이 훑었다.

“……미친 새끼. 빨리 이거 놓으라고!”

“앙탈은.”

이예담이 하하, 짧게 웃곤 양 손바닥을 공중으로 들며 진저리치는 은찬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졌다는 듯 손목을 압박하던 손아귀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은찬은 벌떡 일어나 이예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윽!”

예상외로 탁음은 예담이 아닌 은찬에게서 새어 나왔다. 하반신을 잠식한 쾌감이 격렬했던 탓에 제대로 서지 못해, 목표했던 이예담의 얼굴을 가격하지 못한 채로 고꾸라진 것이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은찬이 작게 욕설을 뇌까리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르륵, 순간 사타구니를 타고 진득한 체액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곧장 종아리까지 미끄러진 체액은 발목을 지나 양말을 적셨고, 암회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서재 바닥에 희멀건 자국을 남겼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감촉에 놀란 은찬이 어정쩡하게 한 발을 모로 내디디며 몸의 균형을 잡았다.

“와, 선생님 화 많이 났구나.”

무섭다는 듯 혀를 내둘렀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이예담은 웃음기 스민 얼굴로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극렬했던 호흡은 깔끔하게 진정된 채였다.

“좀 억울해지려고 해요. 선생님이 매번 알려 준 거 복습한 거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야?”

“복습하는 건 좋은 자세라면서.”

“……이!”

더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은찬은 다시 한번 주먹을 뻗었고, 얼른 치라는 듯 눈을 감은 채로 순순히 얼굴을 내어 준 이예담의 뺨을 정확히 명중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퍽, 소리와 함께 티 없이 말간 피부가 순식간에 불그스름하게 물들며 부풀어 올랐다.

“아야. 세다……. 공부 열심히 한 제자한테 하는 훈계치곤 아팠어요. 이제 화 좀 풀렸어요? 아니면 더 때려도 되긴 하는데.”

이예담이 한쪽 뺨이 부푼 채로 천연히 웃음 지었다. 도톰한 입술 끄트머리가 터져 붉은 피가 맺혔음에도 상관 않고 입꼬리 끝을 쭉 찢고선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강제로 공부만 하다 보니 돌기라도 한 걸까.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랬는데. 은찬이 미간을 구기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매번 과외 할 때마다 선생님이 얘기해 준 거, 실제로 겪으니 흥분돼서 조금 오버하긴 했어요. 보짓물 맛은 묘사를 안 해 줘서 처음 느끼긴 했는데 제 감상은…….”

“그러니까! 그 보…….”

보지라니. 한 번도 제 입에 올린 적 없는 단어였다. 은찬이 따지고 들려다 입술을 말아 물었다.

“보지요?”

“그…… 미친 새끼. 그딴 거, 없다고! 왜, 왜 멀쩡한 남자한테!”

“이상하네. 방금 전에 분명히 보지 빨았던 거 같은데.”

“……너 대체 언제까지 그, 그거 타령할 건데?”

흥분해 말을 더듬는 은찬을 바라보며 예담이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우아한 기색을 유지한 채 담담하게 말을 잇는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늘 과외 끝나고 보지 타령한 건 선생님이었잖아요. 보지 대신 거기, 거기 해 대긴 했지만?”

“…….”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여태 제가 알던 이예담과 눈앞의 남자가 도무지 일치되지 않는 탓에 은찬은 그가 제 치부를 알게 된 경로를 따져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만 아찔하게 연상될 따름이다.

〈근데 그거 사실 민선우 선배가 넘겨준 거거든? 남자 선생만 구한다고 해서 너한테 알려 준 거니까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수민은 몰라도 일면식 없는 선배가 저를 감싸 줄 리 없었다. 자신에게 보지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마 남자 동기들과 함께 화장실에라도 가 아래를 까지 않는 이상 소문을 잠재우기 어려울 게 뻔했다.

거기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매번 과외 때마다 성적인 이야기를 화두에 올린 쪽은 자신이 맞았고, 그렇기에 은찬 또한 완벽하게 무결하진 않았다. 잘못의 경중을 떠나 문제 삼으려면 문제 삼을 요소가 충분히 있단 뜻이었다.

여러모로 제게 불리한 판이다.

은찬은 세상의 이치를 잘 알았다. 모든 건 돈과 권력으로 귀결된다. 그게 없어서 제가 이 꼴이었다. 제 처지를 상기한 은찬이 하얀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너 입조심해. 어디서 오늘 일 들리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다시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서.”

은찬은 눈앞의 잘생긴 또라이를 한번 노려보곤 곧바로 주섬주섬 벌어진 바지춤을 끌어 올렸다. 신경질적으로 제 짐을 챙긴 뒤, 옷을 수습할 정신도 없이 저택에서 뛰쳐나왔다. 이예담도 제가 지은 죄를 아는지 은찬이 저를 밀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제압도, 말도 더는 얹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손목을 가벼이 결박했던 일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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