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어떻게 가정을 하고 짜 맞추어 보아도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설마하니 아무리 대저택이라 한들 가정집 곳곳에 CCTV를 설치해 두었을 리도 없고, 엄청나게 크진 않아도 존재감이 확연한 남성기가 있는 터라 난데없이 생각이 그쪽으로 튀었을 리도 만무했다.
“젠장.”
존재감이…… 확연한…… 남성기. 은찬이 입술을 말아 물고선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음. 생각보다 사이즈가 귀엽네요.〉
실제 여자의 반응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러는 자긴 물통만 하기라도 한가. 은찬은 뒤늦게 제 자존심을 짓밟은 이예담의 말을 곱씹으며 분을 삭였다. 아연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상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선 게 못내 분했다.
“더 패 줬어야 했는데.”
여태 붉은 자국이 남은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은찬이 중얼거렸다. 한 손으로 손목을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리던 와중, 적막한 방 안에 웅웅대는 진동음이 울렸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였다.
바닥에 엎어 두었던 스마트폰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2학기 등록금 납부 안내]
잊고 있었다. 이번 주가 2학기 등록금 예치 마감일인데. 미리 신청해 둔 학자금 대출금이 입금되어 자금 융통에 문제는 없긴 했지만……. 얄팍한 통장에서 기백만 원이 빠져나갈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휴, 망했다.”
과외가 안정적이었던 덕에 이번 학기엔 학점을 끌어올리는 데만 신경 쓰려고 했는데 계획이 몽땅 어그러졌다. 과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생업이라 할 수 있는 과외를 늘 최우선으로 두느라 엉망인 학점이 눈앞에 어룽대며 잔상을 만들었다. 잠시나마 차올랐던 희망을 지우는데, 입맛이 썼다.
* * *
어느새 개강이다. 조금의 여유 부릴 틈도 없이 돌아온 2학기에 은찬이 거멓게 내려앉은 눈 아래를 문질렀다. 피로와 무기력이 어깨에 들러붙은 자신과는 달리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은찬이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 뒤편으로도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빨리 과외 구해야 하는데……. 은찬은 밝게 웃는 누군가의 얼굴을 무감하게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외 사이트에 프로필을 업로드한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예약은커녕, 문의조차 뜸했다. 이러다 영영 안 구해지면 어쩌지. 은찬은 손에 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스크롤을 올렸다 내려만 봐도 새로 업데이트된 과외 교사 프로필만 수백 건이다.
막연히 다시 과외 자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은찬을 비웃듯 휴대폰은 내내 잠잠했다. 정 안 되면 학교 근처 고깃집 알바라도 기웃거려야 할 판이다. 선입금에다 시급이 높은 과외에 비하면 형편없는 조건이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은찬아, 뭐 하느라 그러고 섰어?”
가벼이 어깨에 툭, 손을 얹으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생각에 잠겼던 은찬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동기 몇 명과 무리 지은 채 웃고 있는 수민이 시야에 들어왔다. 엉겁결에 눈이 마주친 동기들과 인사한 뒤, 민망해진 은찬이 목을 긁적이며 힘없이 미소 지었다.
“어…… 응. 뭐 좀 생각하느라. 안녕.”
“응. 전필 들으러 가는 거지? 같이 가자.”
활달한 수민을 필두로 전공 수업이면 붙어 앉곤 하는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었다. 이미 어제 한 차례 개강 기념으로 달렸다는 그들은 출석만 하고 집에 가야겠다며 앓는 소리를 해 댔다. 잠자코 푸념을 듣던 수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은찬에게 제안해 왔다.
“수업 끝나면 저녁 시간인데 그럼 우리 둘이 밥 먹고 헤어질까?”
이예담 과외가 좋지 않게, 생각보다 이르게 끝나긴 했지만 수민에게 밥을 대접한다고 한 약속은 지킬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과외 그만두게 됐다고 보고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고……. 은찬은 일단 과외 이야기는 않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에, 또. 그럼 다음 수업 시간에 만나도록 하지요. 수고했습니다.”
필담하기를 즐기는 수민과 옆자리에 앉은 채 노교수의 고루한 잔소리를 흘려듣다 보니 어느새 강의가 끝났다. 수업 전과 다르게 쌩쌩해진 동기들이 개강 기념으로 한잔하자며 졸라대 은찬은 그런 그들에게 다음을 기약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정신 좀 차리라며 혀를 차는 수민 덕에 간신히 무리를 빠져나와 학교를 나섰다.
식사 장소로는 큰 고심 없이 학교 근처의 시끄러운 호프집을 택했다. 대학생 맞춤형으로 푸짐한 안주와 다양한 주종을 판매하는 곳으로 종종 학과 모임을 개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앉자마자 술부터 시킨 수민이 상기된 표정으로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었다. 역시나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하는 수민마저도 은찬과는 많이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수민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와중,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수민이 가방 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다 반가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은찬아, 전에 민선우 선배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지.”
“응. 그 선배가 과외 소개해 줬다고 했잖아.”
“근처라고 연락 왔는데……. 같이 얼굴 봐도 돼?”
“어?”
“좀 불편해? 그래도 과외도 넘겨줬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야. 이 선배 아버지가 KBB 건설 임원이래. 그…… 쫌 재수 없는 애들처럼 젠체하는 것도 없어. 알아 두면 도움 될지도 모르잖아. 나중에.”
수민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몇 번 오고 간 메시지가 보이고, 제일 아래엔 지금 가겠다는 짤막한 문장이 수신되어 있었다.
은찬은 오늘 이후로 수민이 언급하는 선배와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에 반박하고 싶진 않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싹 닦고 있기도 찜찜했던 차에 차라리 잘된 일이다.
“안녕.”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로 불쑥 기척이 들어섰다. 이름은 몇 번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은찬에게는 한없이 낯선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 빨리 오셨네요.”
“응, 학교였거든. 네가 은찬이구나. 반가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수민이 소개를 하기도 전에 등장한 남자가 은찬에게 먼저 악수를 청해 왔다. 아무리 같은 과라 한들 조용히 수업만 듣고 사라지는 제 이름까지 아는 게 신기했다. 은찬은 다가온 손을 맞잡으며 찬찬히 민선우를 살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기다란 눈, 전체적으로 흐릿한 인상의 그는 자신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배경을 미리 알고 만나서인지 괜히 쪼그라들었다. 걸친 아이템은 비슷해도 가격은 상이할 게 분명했다. 이런 허름한 술집과는 유난히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 빠르게 결론 내린 은찬은 곧장 민선우를 향한 주눅 든 시선을 거두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고개를 상에 박은 채 젓가락을 놀리는 은찬을 사이에 두고 수민과 민선우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종종 질문이 은찬에게 넘어올 때를 제외하곤 은찬은 그저 부지런히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다. 민선우가 비스듬히 잔을 기울이며 은찬에게 말을 건넸다.
“은찬아, 여태 내가 과외 몇 번 주선해 봤지만 이번처럼 만족도가 높은 적이 없더라. 예담이도, 그 집 부모님도. 네 덕에 내가 면이 섰어.”
“아…… 그게요, 선배님. 과외 소개해 주신 거 정말 감사했는데.”
잘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말을 꺼낼 차례였다. 망설이던 은찬이 민선우의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려던 순간, 그가 연이어 말을 이었다.
“멀리 보자. 이번 과외 잘 끝나면 내년도 잘 챙겨 주는 집으로 소개해 줄게. 여러모로 조건이 괜찮을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년을 언급하는 말에 은찬이 멈칫했다. 차마 선배가 주선해 준 과외가 엎어졌다고 솔직히 고할 수가 없었다. 언제고 그의 귀에 들어가긴 하겠지만 지금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옆에서 잘됐다고 재잘대는 수민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아…… 예…….”
은찬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더 대꾸하지 않는 은찬에 더는 말을 붙이지 않는 선우 사이로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적당히 취한 수민은 달라진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제 앞의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낭패감을 느낀 은찬이 좀체 가시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하려 부지런히 눈앞의 잔을 꺾어 술을 목으로 넘겼다. 중간중간 앞에 놓인 안주를 집어 먹으며 들뜬 수민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고 있을 때였다.
“……어?”
취했나. 이 새끼가…… 왜 여기에 있지?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은찬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눈두덩을 비볐다. 두 번, 세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보이는 형체는 사라질 생각을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상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부유하는 공기가 달라졌다.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 쿰쿰한 술집이었지만 남자의 주변 공기만 작정하고 솎아내기라도 한 듯, 상쾌하고 싸한 향이 물씬 풍겨 와 은찬의 코끝을 찔렀다.
이예담이었다.
“…….”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찬이 기어코 앞자리에 앉는 예담을 향해 술기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취기가 오른 터라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채였다.
“선배님, 얘가 왜 여기…….”
“아, 미안. 내가 말한다는 게 취해서 깜빡했나 봐. 은찬이 너랑 학교 근처에서 밥 먹고 있다고 했더니 온다고 하더라고.”
“마침 저도 근처에 볼일이 있었어서요.”
웃음기가 덧씌워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각선 방향으로 앉은 수민이 얼굴을 붉혔다. 말없이 흘끔흘끔 이예담 얼굴을 곁눈질해 대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저 멀쩡한 겉가죽에 속아 넘어가도록 둘 수 없었다. 은찬은 소개를 미뤄 두고 물끄러미 테이블만 바라보았다.
“잠깐 들른다고 해서 불렀어. 괜찮지?”
민선우의 말에 수민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곤 잔과 수저를 예담 앞에 놓았다. 은찬은 부러 이를 외면하며 앞에 놓인 파전을 쿡, 쿡 젓가락으로 찔러 댔다.
“다른 거 더 시킬까요?”
난데없는 예담의 제안에 세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은찬조차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하던 손장난을 멈추고 그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밀가루 음식 안 좋아하잖아요. 남은 안주가 전밖에 안 보여서요.”
연인이나 할 법한 소릴 담담하게 내뱉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눈살을 찌푸린 은찬을 대신해 수민이 열렬히 호응했다. 은찬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표정을 한 민선우가 어딘가 미심쩍은 기색으로 이예담의 얼굴을 훑었다.
“와, 은찬아. 네 제자, 그, 이름이?”
“이예담이에요. 선생님이 소개를 안 해 주셔서 제 이름도 못 말했네요.”
“어, 어, 그래요. 예담…….”
“말 편하게 하세요. 제가 한참 어린걸요.”
“그래도 될까? 아무튼 예담이 말하는 거 대박이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다 갖췄네. 어우!”
너스레를 떠는 수민의 모습에 예담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혼재한 와중에도 테이블 위로 흩어지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짜증이 치밀어 아랫입술을 물었다 놓자 일순 눈이 마주친 이예담이 살살 고개를 저으며 벙긋, 입술 모양만으로 제 의견을 전했다. ‘하지 말라니까.’
그 행동에 떠오른 이예담과의 접촉에 은찬이 씩씩대며 눈빛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언짢은 기색을 힘껏 표현하는 은찬과 달리 예담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로 술병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 가볍게 맥주로 시작했던 자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추가적으로 시킨 도수 센 술이 차지하는 분량이 눈에 띄게 많아져 갔다. 정작 그를 여기로 부른 민선우는 이예담이 얼굴을 비친 이후론 말이 없어진 채로 간간이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저럴 거면 왜 부른 거야. 친한 것처럼 굴어 놓고선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민선우와 이예담은 꽤나 데면데면해 보였다. 제 일이 아닌 듯 구는 민선우가 갑갑해진 은찬이 앞에 놓인 물컵을 입술에 대고 기울였다.
하지만 입 안으로 넘어오는 액체는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속이 탈 때마다 마셔 대 컵 안의 물기가 바짝 말라 있던 까닭이다. 바쁜 시간대라 그런지 호출 버튼을 몇 번씩 눌러도 종업원은 자리로 오지 않았다. 민선우는 여전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데구루루, 눈동자만 굴리다 보니 이예담 지척에 놓인 물이 가득 찬 유리컵이 시야로 들어왔다.
은찬은 수민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린 이예담을 잠시 노려보다 그 앞의 물컵을 끌어왔다. 그러곤 꿀꺽꿀꺽, 목으로 내용물을 모조리 삼켜 넘겼다.
“……읏! 이거 맛이…….”
왜 이래. 알싸한 알코올 향이 식도를 타고 역행해 올랐다. 은찬의 반듯한 이마가 마구 구겨지며 경멸스러워하는 눈빛이 예담을 향했다.
저 새끼가……. 그럼 그렇지. 수민이 따라 주는 술마다 상냥한 낯으로 다 받아먹는 척하더니, 제 앞의 물컵에 몰래 털어 넣은 게 분명했다. 어쩐지 점점 더 얼굴이 발개지는 수민과는 달리 처음의 의연한 낯 그대로를 유지한다 했다.
은찬은 영문을 모른 채 이예담에게 한 잔, 저에게 한 잔, 부지런히 술을 따르는 수민을 조용히 응시했다.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수민치고도 꽤 많이 신난 모습이었다. 저런 와중에 선배까지 있는데 산통을 깰 수도 없고…….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다 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으응…….”
“은찬아. 괜찮아?”
“응……. 갠찬지. 응. 수민아. 너 집에 가야대…….”
“아니, 나보다는 은찬이 네가 집에 먼저 가야 할 거 같아서 그래.”
수민이 은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언제 그렇게 마셨는지 잔뜩 취한 은찬이 테이블 위에 뺨을 기댄 채 웅얼거리고 있었다. 한자리에 함께하면서도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던 선우 역시 뒤늦게 의자에서 일어나 은찬을 살폈다.
“은찬이는 술 많이 안 마신 거 같았는데 갑자기 훅 갔네.”
“…….”
예담이 말없이 은찬 앞에 놓인 제 물컵을 내리깐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늘 자리가 파하고 따로 시간을 가지려 하긴 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예담은 차분한 얼굴로 수민이 짚은 테이블 상판을 톡톡, 두드렸다.
“선생님 집 아세요?”
미세하게 느껴지는 진동과 나지막한 음성에 수민이 고개를 들고 예담에게 시선을 돌렸다. 곤란한 듯 난색을 표하는 잘생긴 얼굴이 보이자 취한 와중에도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꽤나 애틋한 사제지간 같았다.
“어? 응. 여기서 멀지 않아.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거든.”
“선우 형.”
대화 도중 민선우의 이름이 불렸다. 예담의 말에 삐딱하게 다리를 짚고 서 있던 민선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멀쩡한 예담과는 대비되는, 피곤함이 어린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먼저 가. 나는 선생님 데려다주고 집 갈게.”
“……그냥 나랑 같이 차 타고 가자. 지금 대리 부르려고 하던 참이야.”
“못 들었어? 다시 말할까.”
서슬 퍼런 목소리에 수민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변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사람들의 음성을 덮을 만큼 커다란 음악이 그들의 대화 사이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수민아, 나중에 보자. 조심히 가.”
민선우는 예담의 말에 불쾌감을 표현 않고 조용히 일별했다. 그 반응에 수민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술집이 왁자지껄하기도 하고 취기가 오른 터라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수민과 예담이 은찬을 챙겨 함께 택시를 잡았다. 자연스레 앞자리에 앉게 된 수민이 흘끔흘끔 뒷좌석을 살펴보았다. 거의 정신을 잃은 수준으로 해롱대는 은찬이 예담의 널찍한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다 왔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빽빽한 원룸촌 초입에 위치한 은찬의 자취방은 안까지 들어가 본 적 없는 수민조차도 정확히 기억할 만큼 주변에 비해 건물 외관이 많이 낡아 있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 택시 타고 바로 돌아가세요.”
“그러지 말고 같이 올라가자. 취한 사람 무겁잖아.”
“골목길이라 택시도 잘 안 잡힐 텐데 더 늦기 전에 먼저 집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가 선생님 집이면 다 온 거니까, 걱정돼서요.”
“그렇긴 한데……. 너는 집에 어떻게 가려고?”
대답 대신 미묘한 웃음을 내보인 예담이 은찬의 허리를 손에 감으며 뒷좌석에서 내렸다. 자연스레 지갑을 뒤져 잡히는 돈을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안전하게 잘 부탁드려요.”
따로 수민의 집을 묻진 않았지만 서울 시내 어디든 도달하고도 남을 충분한 금액이었다. 단호하고도 설득력 있는 예담의 말에 결국 수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윽고 택시가 출발했다.
예담은 손쉽게 은찬을 둘러업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내부엔 먼지가 그득했고 엘리베이터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향하는 발걸음은 서슴없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수민이 귀띔한 대로 철문을 밀고 발을 들이니 조그마한 창고 같은 옥탑방이 보였다.
예담은 은찬의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도어 록도 설치되지 않은 낡은 문고리에 열쇠를 끼웠다. 끼이익, 쇳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작은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펼쳐진 내부 공간에 잠시 미간을 구기고 탐색하던 예담은 곧 은찬을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으응…….”
출렁이는 싸구려 매트리스 때문에 어지러운지 은찬이 앓는 소리를 냈다. 웅얼거리며 몸을 뒤채자 얇은 티셔츠가 살짝 말려 올라가며 판판하고 하얀 아랫배가 드러났다. 조용히 방 안을 살핀 예담의 눈길이 서서히 은찬에게 향했다.
좁고 후덥지근한 방 안, 습한 숨을 내쉬는 도톰한 붉은 입술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나른한 시선은 입술을 지나쳐 기다란 목덜미, 고르게 숨을 내쉬는 가슴, 그리고 폭이 좁은 골반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예담이 다가가 은찬의 바지 버클을 붙들었다. 살짝 들린 청바지 안으로 회색 드로어즈가 비쳤다. 일전에 보았던 팬티와 비슷한 색상의 드로어즈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주욱, 아랫도리를 감싼 불필요한 천들을 끌어 내렸다. 부드러운 살결을 스치는 손가락 끝이 저릿했다.
“하…….”
발목에 걸렸던 천이 발등을 통과하면서 새하얀 아랫도리가 남김없이 눈에 담겼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물로 하얗고 보드라운 몸을 직접 확인하니 아찔했다. 귀여운 사이즈라고 빈정대긴 했지만 일반적인 남자 평균치를 웃도는 성기가 연한 살굿빛을 띠고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알게 된 이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확인했던…….
보지가 있었다.
예담은 은찬의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쥐고 허벅지께로 붙였다. 그러자 고간이 벌어지며 녹아서 갈라진 것 같은 은밀한 둔덕이 드러났다. 더운 날씨 때문에 끈끈하게 달라붙은 살결은 보기만 해도 적잖은 흥분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느다란 솜털을 제외하곤 매끈한, 통통하게 살이 차오른 보지였다. 살집 없는 은찬의 몸과 대조되는 보짓살에 예담이 헛숨을 내뱉었다.
움찔거리는 보지 입구에서 음탕한 냄새가 풍겨 왔다. 몸을 낮춰 가까이 다가가 보지에 슬쩍 코를 박았다. 으음……. 뜨겁고 야릇한 살 내음 사이로 보짓물을 통해 맡아지던 냄새보다 한결 강렬한, 야해 빠진 냄새가 흘러나왔다. 수컷을 유혹하는 냄새였다.
그걸 깨닫자, 숨 막히는 좁은 공간 안에서 더더욱 숨통이 막혀 왔다.
오늘 계획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예담은 손을 내려 오동통한 보짓살 위를 매만지다 쩌억, 바깥을 향해 벌렸다. 하얀 겉보짓살과 대비되는 붉은 보지 속살이 애액으로 뒤범벅된 모습이 드러났다.
이를 바라보는 예담의 바지 천에 눌린 고간이 아플 만큼 커져 갔다. 조급하게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끌어 내리자 퉁, 이미 발기해 꺼떡이는 자지가 튕겨 나왔다.
깨끗하고 단정한 예담의 이미지와는 달리 고간에 달린 살덩어리는 불그죽죽하고 거대했다. 손등과 팔뚝에 불툭하게 솟은 핏줄은 자지에서도 여지없이 불거져 있었고, 이는 탄탄한 장골까지 이어져 위용을 떨쳤다. 민둥한 은찬의 사타구니와는 달리 거친 음모로 덮여선 저 혼자 끄떡거렸다.
“후으…….”
예담이 신음을 억누르며 한 차례 제 성기를 손으로 훑었다. 그런 다음, 시트 위에 무릎을 대고 일어나 선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좆 대가리를 슬슬, 보지 위에 문질러 댔다. 예민해진 귀두로 쫀득거리는 보짓살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예담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약한 침대 프레임이 삐걱거리며 소음을 만들어 냈다.
“하아……. 씹.”
술기운에 뜨끈하게 달아오른 보지와 발기한 자지가 맞닿으며 열감을 높여 갔다. 예담은 허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넣을 듯 말 듯, 벌렁거리는 질 입구의 움직임을 만끽했다.
질척하게 젖은 보짓살은 단단한 귀두를 비빌 때마다 은근하게 벌어지며 차지게 달라붙어 왔다. 젖힐 대로 젖혀진 양 날개로부터 아찔한 성감이 느껴지고, 좆을 삽입한 것도 아닌데 흠뻑 배어 나온 보짓물로 인해 찌걱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났다.
축 처져 있던 은찬의 음낭이 팽팽해지면서 살굿빛 자지가 서서히 단단해져 갔다. 예담이 묵직한 귀두 선단에 힘을 주고 짓치자 도톰한 살덩이가 벌어지며 짜부라졌다. 열이 오른 피부 곳곳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후끈 달아올랐다. 흥분으로 팽창한 보지 속살은 처음보다 더더욱 새붉어진 모습으로 물컹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으으, 응…….”
찌릿한 흥분감에 허리가 휘고 무릎이 솟아올랐다. 은찬의 말랑말랑한 볼기가 파르르, 탐스럽게 뒤흔들렸다.
예담이 불쑥 엉덩이로 손을 가져가 우악스레 볼깃살을 주물렀다. 만지는 족족 뭉개지는 엉덩이 살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고, 은근하게 느껴지는 쾌감에 좆과 맞닿은 둔덕에서 보짓물이 함빡 터져 나왔다.
“으응…… 아!”
사타구니 사이가 흥건하게 젖으면서 은찬의 잇새에서 가느다란 교성이 샜다. 취한 와중에도 느껴지는 야릇한 감각에 은찬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보지 구멍을 옴쭉거렸다. 보지 안을 뜨겁게 조이자 좁아 드는 동굴 속이 찐득하게 고인 보짓물로 녹아내렸다.
흥분으로 도드라진 음핵 알갱이 표면과 질척하게 젖은 점막 안에 자잘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커다란 자지로 욱신거리는 질 안을 마구 긁고, 짓뭉개고픈 충동이 일었다. 젖혀진 소음순을 비벼 대는 자지를 콱 물고 삼키고 싶어 보짓살이 잔뜩 부풀었다.
“흐윽, 읏……, 우으응…….”
더, 더 눌러 줬으면. 그러다 거침없이 퍽퍽 쑤셔 박아 줬으면…….
헛헛했다. 일전에 느낀 진득한 희열이 되살아나 은찬이 가늘게 허리를 떨었다. 시트를 꼭 쥔 손등으로 가느다란 핏줄이 돋아났다.
은찬은 보지를 압박해 오는 홧홧한 이물감에 안달 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겨우 끌어 올렸다. 눈동자는 몽롱해 앞이 흐릿했지만 열감만은 또렷했다. 제 보지에 밀착해 오는 거대한 자지를 보며 흥분에 내몰린 몸을 뒤챘다.
환영일 게 분명했다. 취한 와중에도 상상해 본 적 없는, 흉측할 만큼 무지막지한 길이와 굵기의 좆이 제 보지에 대가리를 맞댄 채 쓸어내리는 이 감각은. 상상보다 훨씬 큼지막한 자지가 주는 무게감에 몸이 달아 조급해졌다. 신음이 절절 끓었다.
“흐읏, 꾸움…….”
꼬인 혀로 웅얼거리는 은찬을 지켜보던 예담이 아쉬운 기색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곧 정신을 차릴 것 같았던 탓이다. 구멍 안에 당장 자지를 쑤셔 박을 생각은 없었지만, 보지에 제 성기를 문지른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솜방망이 같은 주먹을 휘두르며 날뛸 게 눈에 선했다.
“…….”
낡아 방음이 안 되는 건물 안에서 시끄러워지는 건 질색이다. 예담은 자그마한 얼굴이 설핏 찡그려지는 모습을 내려다보곤 허리를 슬슬 뒤로 물렀다.
접붙인 채 문지르던 귀두를 떼어 내자 물기 어린 보지와 검붉은 살덩어리를 잇는 치덕치덕한 액이 얄팍하게 늘어지다 허공에서 끊겼다. 뒤이어 회음으로 줄줄, 반질거리는 즙이 타고 흘러 토실한 엉덩이와 시트를 적셨다. 그러고도 보지는 계속해서 들썩이며 움찔거렸다.
“하아…….”
아랫배가 바짝 조이며 근육이 땅겨 왔다. 겉보짓살에 비비기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안에 박아 넣으면 어떤 맛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초조해진 예담이 붉은 혀로 제 입술을 한 차례 축였다. 마침내 한 발짝 물러나려 할 때, 예기치 못한 간드러진 간청이 들려왔다.
“응, 흐으, 빨리이, 넣어 줘어…….”
“……뭐?”
예담을 홀리게 했던 입술이 달싹이면서 달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트에 엉덩이를 비비적거리며 칭얼거리는 은찬을 내려다본 예담은 잠시간 숨도 쉬지 않은 채 멈춰 있다가 하,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으응…… 너어, 줘…… 우, 으응.”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입술 대신 보지 구멍이 굼실거렸다. 빈 구멍이 벌름거릴 때마다 이를 감싼 점막이 뜨끈한 애액을 쏟아 내며 허물어졌다. 용암이 너울대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요동치는 붉은 점막에 예담이 얼굴을 굳혔다.
“…….”
엄습한 습기와 열기에 전신이 잠식당한 듯 쉬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이 탔다. 예담은 굴곡진 둔덕을 주시하며 조용히 마른침만 삼켜 넘겼다.
꿀꺽, 고요한 새벽을 가르며 목울대가 움직이고, 잘 빠진 턱선에 교근이 두드러졌다. 예담이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던 탓이었다.
“으, 흐으…….”
길어지는 침묵에 은찬이 시트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열락을 주체할 수 없었다. 뼈마디가 드러날 때까지 하얀 손등에 힘을 주다가 별안간 보지로 위치를 옮겼다.
은찬은 아랫배에 힘을 준 채 양 허벅지를 활짝 벌리고선, 이성을 놓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헤프게 보짓살을 비비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 흐으, 응…….”
보지에 닿자마자 흥건하게 젖어 버린 손가락으로 소음순을 비틀듯 붙잡고는 반대편 손가락을 바짝 밀착했다. 예열 따윈 필요 없었다. 더, 더 강렬한 자극을 맛보고 싶어 마구잡이로 손가락을 비볐다.
빼꼼 벌어진 조갯살을 문지르고 볼록 솟은 음핵을 둥글리다 꾹꾹, 내리눌렀다. 그러자 내밀한 자궁 깊숙한 곳에서부터 저릿저릿, 옅은 농도의 열감이 일었다.
이걸론 한없이 부족했다. 나른하게 취한 신경은 은찬이 염원하는 만큼의 속도도, 감도도 선사할 수 없었다. 은찬은 답답한 마음에 아앙……,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씨발. 이게 무슨.”
음탕하기 짝이 없었다. 어리숙해 보이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요분질이었다. 예담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보지를 살폈다. 조밀한 주름이 져 있긴 했지만 늘어지지도, 헐거워 보이지도 않는 보지인지라 종잡을 수 없었다. 지켜보는 저까지 함께 취해 가는 것 같았다.
“읏, 우응, 흐, 응…….”
은찬은 가쁜 숨을 내쉬며 보지를 거듭 자극했다. 허벅지를 버둥거리다 달아오른 질 안으로 손가락을 푹, 쑤셔 넣었다. 녹진해진 질 벽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금세 삼켜 넘기곤 더 넣어 달라고 아우성치듯 오물거렸다.
이런, 이런 거 말고 커다란 거…….
보지를 짓누르던 묵직한 귀두가 사라진 뒤부터 줄곧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었다. 은찬은 아랫입술을 사리문 채로 다급히 손을 움직였다. 이따금 힘이 빠진 팔목이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꾸물꾸물 자세를 고쳐 잡으면서 티셔츠가 점차 위로 말려 올라갔다.
예담은 가느다랗게 눈을 좁힌 채 드러나는 새하얀 피부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윳빛 피부 색에 어울리는, 색소 옅은 유륜이 둥그렇게 정점을 감싸고 있었다. 크진 않아도 융기되어 있어야 할 젖꼭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움츠린 채 유륜 사이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흐으…….”
나직하게 은찬을 부른 예담이 아래를 맞붙인 채 상체를 숙였다.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여전히 혼몽한 눈동자를 확인하곤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왜 걸레처럼 굴고 그래요. 응?”
아랫도리를 밀착하자 아직 박아 넣지 않은 단단한 자지 기둥이 회음부터 주욱 미끄러지며 보짓살을 비볐다. 후우…… 예민한 선단에서 솟구치는 열감에 그 역시 여유롭지 않았으나 당장 눈앞에 걸린 유두를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조바심을 이긴 상태였다.
겨드랑이 사이에 끼어 고정된 티셔츠 아래로 연분홍빛 유두가 심이 풀린 모습을 드러냈다. 예담이 상체를 낮춘 채 검지를 뭉개진 유두 위로 가져갔다. 손끝에 스치는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함몰된 유두는 그저 말캉하기만 한 감촉이었다.
가슴까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치밀어 오르는 욕구에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예담은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망설임 없이 입술을 내렸다. 곳곳에 맺힌 땀방울 때문에 불쾌할 수 있단 생각은 눈 녹듯이 자취를 감춘 채였다.
츄읍, 촉촉하고 뜨거운 점막이 단숨에 젖가슴을 빨아올렸다. 연한 살점은 흡착해 오는 대로 늘어나며 주욱 달라붙었다. 손가락으로 만지니 말랑했던 돌기는 입술에 감싸이자 열기가 몰려 서서히 감촉을 변모시켰다.
흡입과 동시에 혓바닥을 펼쳐 옴폭 들어간 유두를 짓눌렀다. 그러자 거친 혓바닥에 쓸린 알갱이가 단단히 여문 채로 발딱 일어났다. 말랑말랑하던 좀 전과는 판이한 상태 변화로, 딱 빨기 좋은 정도였다.
예담은 뽁, 소리가 날 때까지 젖꼭지를 거세게 흡입했다. 연분홍빛 유륜이 죄 뻘겋게 물들 때까지 뽑아낼 작정이었다.
“후으응…… 아, 으으, 흣.”
빳빳하게 일어난 유두는 남자의 것치고는 컸다. 유선이 발달한 여자의 젖가슴에 달려도 위화감이 없는 크기라 잡히는 것 없는 가슴에 달려 있긴 꽤나 아까웠다. 고개를 들자 침칠로 번들번들해진 유두가 발발 떨렸다. 은찬이 밭은 숨을 몰아쉬면서 뾰족하게 돋아난 도톰한 돌기가 오르내렸다.
오돌토돌한 젖꼭지는 세게 빨린 탓에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예담은 손가락 끝으로 꾸욱, 불어 터진 유두를 짓뭉갰다. 흐으…… 읏! 은찬이 예민하게 허리를 떨었다.
아랫입술을 한번 핥은 예담은 손가락 사이에 젖꼭지를 끼웠다. 힘을 주어 동그란 돌기를 찌그러트리다 뽑을 것처럼 쥐고 비틀었다.
“후…….”
“아, 으! 흐, 후읏!”
은찬과 예담의 잇새에서 끓는 듯한 침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예담은 복부를 뭉근하게 덥히는 열기를 느끼며 통통한 젖꼭지를 살살 굴렸다. 마지막으로 토독, 일어난 유두를 검지로 가벼이 튕긴 뒤 상체를 일으키자, 보지에 맞닿았던 티셔츠 끝자락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무겁게 떨어졌다.
티셔츠 천은 온통 흡수한 보짓물로 범벅이었다. 고개를 숙여 이를 확인한 예담이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끌어 올렸다. 팔을 교차해 티셔츠 밑단을 잡아선 곧바로 상의를 벗어 던졌다.
두툼하고 탄탄한 예담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않은 얼굴과는 달리 목선과 이어진 너른 어깨와 단단한 가슴, 굴곡을 만들어 낸 복근이 숨을 내쉴 때마다 또렷해졌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밀실 같은 방에 꽤 오래 머문 예담의 턱 끝에서 또르르,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며 목 빗근을 타고 내려왔다.
몸이 절반으로 접힌 은찬이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끌어 올리며 제 보지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보지와 맞붙은 예담의 성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성기에서 묽은 액이 솟구치며 둥근 귀두 표피를 적셨다.
그 광경에 보지 속살이 펄떡거렸다. 저 번들거리는 살덩이를 구멍 속에 마구 쑤셔 넣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야릇한 소양감에 보지로 바짝 힘을 주는 순간, 가느다란 발목이 넘어와 발그레한 뺨과 맞닿을 지경이 되었다.
“흐으으……. 응, 읏…….”
제 의지가 아니었다. 잠자코 지켜보던 예담이 종아리를 가슴에 밀어붙이다 못해 침대 시트를 향하게 만든 까닭이다.
은찬의 새하얀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쳐들리고, 사타구니가 훤히 드러났다. 발가락 끝은 침대 헤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담이 둥그런 살점을 거침없이 움켜쥐곤 바깥을 향해 힘을 주어 내벌렸다.
“흐윽! 읏, 으응……!”
그러자 붉은 속살이 벌어지며 뜨거운 공기가 구멍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긴장으로 빠끔거리는 보지 구멍 안에도, 보짓물이 타고 흘러내린 주름진 항문 안으로도 농밀한 공기가 주입된 것이다. 두 구멍이 촘촘하게 조여들었다 늘어날 때마다 붉은 속살이 발름대는 모습이 예담의 손끝을 절절 끓게 만들었다.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을 주어 구멍을 가로로 죽 찢자 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밀한 점막이 요동쳤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의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은밀한 속살이 낱낱이 들여다보였다. 발딱 돋아난 음핵에 가까운 위치가 앞에 있는지, 오동통하고 주름진 회음에 가까운 위치가 앞에 있는지를 가르는 각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유연하네……. 여기까지 닿을 줄이야.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많겠어요.”
예담이 시트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리는 발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내 시선을 보지를 향해 돌리더니 천천히, 느릿하게 젖은 음순을 쓸어내렸다. 이미 달아오른 음순을 자극하듯 같은 지점만 집요하게 문지르자 예담의 손끝이 지나간 살점이 금세 단단히 곤두섰다.
“하으, 흐읏…….”
“똑똑히 기억해요. 누가 박아 달라고 졸랐는지.”
예담이 잔뜩 성이 난 성기를 붙들고 속삭였다. 삽입 직전에 물렸던 탓에 귀두에 난 요도 구멍에서 흘러나온 쿠퍼액이 검붉은 살덩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커다랗고 긴 손가락으로도 다 감쌀 수 없는 체적의 기둥을 느릿하게 탁, 탁 쓸어 올릴 때마다 단단한 팔뚝이 갈라지며 잔근육이 일었다.
반쯤 일어났던 은찬의 자지는 중력에 의해 아래로 쏠려 보지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예담은 안달 나 빠끔대는 구멍에 자지를 맞추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굵은 선단이 다시 무게를 실어 오자 따끈하게 익은 보짓살이 박동하듯 꿈틀거렸다.
“으, 으응……. 아, 흐, 으으.”
은찬의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다시 한번 애끓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 보채요. 좆, 먹여 준다고 했잖아.”
예담이 선단을 보지에 후비듯 문지르기 시작했다. 핏대 선 자지가 위로 밀릴 때마다 보지 입구를 덮은 대음순이 쪼개지고, 선단을 떼지 않은 채 주욱,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물에 적셔진 살점끼리 서로를 비비며 난잡한 소리가 났다.
예담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색색, 숨만 내쉬는 은찬을 내려다보고선 꾸욱, 귀두에 힘을 주며 보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큼지막한 귀두가 좁은 공간에 머리를 욱여넣자 질 벽을 흥건히 메운 질펀한 물이 주륵, 밀려 나왔다.
“흐으으……! 아! 흐, 응!”
“이, 씹…….”
묵직한 선단이 좁다란 구멍과 맞물린 채로 우악스럽게 무게를 실어 왔다. 은찬의 다리가 온전히 폴더처럼 접혀 예담의 허벅지에 짓눌렸다. 하아……. 전신을 내리누른 거대한 몸체에 숨이 막힐 만큼 뜨거운 열감이 올랐다.
“후으……. 물 많은 거 봐. 여태 어떻게 참았어. 계속 혼자 보지 쑤신 거 맞죠, 선생님.”
“흐윽!”
푹, 마침내 보짓살을 파고든 귀두가 구멍을 꿰뚫자 보지 옆에 달린 양 날개가 펼쳐지며 파들파들 떨려 왔다. 예담이 미간을 살짝 구기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귀두 크기에 맞지 않는 좁은 구멍을 밀고 들어가느라 그에게도 상당한 압력이 가해진 까닭이다.
그렇게 먹여 달라 졸라 놓고선 막상 거대한 귀두가 밀려들어 오니 음부 속살이 파르르 떨리면서 침입하는 이물질을 내보내려 들었다. 이 순간만 내리 기다렸던 예담은 그 반응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허리를 내리눌렀다.
“아, 흐, 아파아…….”
난생처음 맞이하는 남근이 주는 압박감이 버거워 아랫배에서 둔통이 느껴졌다. 혼몽한 와중에도 느껴지는 무지근한 통증에 은찬이 작게 파닥였다.
“후으……. 안 들어가잖아. 힘, 빼.”
철썩, 보드라운 엉덩이 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쳐올리며 예담이 중얼거렸다. 티 없이 하얀 볼기짝에 연한 손바닥 자국이 남자 잘 익은 복숭아를 엎어 놓은 것만 같았다. 제 손바닥 모양대로 울긋불긋 부풀어 오르는 살점 모양에 예담의 눈동자가 정욕으로 물들었다. 시커먼 동공 가득 뻘건 불길이 일었다.
“씨발…….”
“흐윽! 아!”
만질 맛 나는 풍만한 엉덩이 살을 재차 움켜쥐었다. 다람쥐처럼 입 안 가득 음식물을 집어넣고 열심히 삼켜 대더니, 먹는 족족 죄 보지와 엉덩이로만 살이 간 것 같았다. 봉긋하게 살 오른 엉덩이를 몇 번 거칠게 주물럭거리니 손가락을 타고 미끈한 애액이 묻어났다.
제 손을 흠뻑 적신 보짓물을 확인한 예담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자지를 깊이 찔러 넣었다.
“후…….”
“아으응! 흣! 응! 흐응!”
격한 삽입에 구멍이 와락 수축하며 오므라들었다. 안을 파고들어 간 성기 표피가 점막과 함께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의도치 않게 성기 선단에 잔뜩 힘이 들어가며 질척해진 속살을 후벼 파냈다.
“흐으, 흐! 아, 아!”
전신이 흔들리면서 눈동자 표면엔 아득한 살색만 가득 차올랐다. 아래가 쪼개지며 한계까지 벌어진 질구가 원래 모양대로 돌아가려 점막을 반죽해 댔다. 짓밟힌 벌레처럼 은찬이 꿈틀거릴 때마다 가뜩이나 좁은 질 벽 안이 더더욱 좁아 들며 들이친 자지를 사방에서 억눌렀다.
“크읏…….”
탄식이 터졌다. 겨우 귀두만큼만 밀어 넣었을 뿐인데 요란하게 반응하는 보지에 살짝 허리를 뒤로 내뺐다. 억지로 기둥을 끌어내자 자극으로 인해 찐득해진 속살이 성기 표면에 달라붙었다.
질질 끌려오는 점막이 주는 뜨끈하고 쫀쫀한 느낌에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전율이 올랐다.
예담은 좆 기둥 전체를 빼내려던 생각을 바꾸어 구멍 밖으로 향하던 자지를 다시금 쾅! 난폭하게 처박았다. 자지에서 가장 굵은 귀두가 거침없이 내벽을 가르며 주욱, 점막을 긁어내렸다.
“응, 흐으……!”
예담은 몇 번 더 허리를 격하게 흔들며 노골적인 추삽질을 이어 갔다. 빠르고 거칠게 사타구니를 접붙였다 떼어 내길 반복하자 간질간질, 아린 감각 사이로 은밀하고도 낯선 쾌감이 피어올랐다. 은찬이 흐느끼듯 신음하며 홍조 가득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릿한 전율에 본능적으로 자궁이 반응했다. 쫀득하게 사방을 조여 오며 성기를 압박하고, 동시에 마사지하듯 자지 표면에 감겨들었다. 꾸역꾸역 진입하는 예담의 잇새에서도 가쁜 호흡이 흘러나왔다.
“하아, 씹…….”
마침내 반쯤 들어갔던 자지를 야금야금 밀어 넣다 뿌리까지 턱, 삽입했다. 막혔던 내벽 어딘가가 무리하게 벌어지며 꿰뚫린 것 같았다. 빠듯해진 자궁구가 성기를 잘라 댈 듯 좁아 들었다.
흐으, 꽉 차아……. 아래를 둔중한 이물질로 가득 채워 넣은 느낌에 은찬이 할딱이며 바르작거렸다.
구멍 안에 거대한 자지가 온전히 담기자 질구를 넘어설 듯 말 듯 아슬하게 고여 있던 반투명한 물이 다시 넘쳐흘렀다. 연이어 표면장력을 넘어선 질 내부가 찰박이는 소리가 울렸다. 표피를 감싼 질 벽이 주는 아늑한 감각에 흥분한 성기가 제멋대로 요동친 탓이었다.
눅눅한 체액이 둔부를 타고 질질 흘러내렸다. 덕분에 구멍 안을 들락거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 후으…….”
퍽, 퍽, 퍼억.
예담의 허리 짓에 박차가 가해졌다. 허리를 성마르게 흔들 때마다 척추 양옆을 따라 뻗은 근육이 길쭉하게 차올랐다. 단단한 몸통과 같은 성질의 것을 사정없이 내리찍자 이어진 음낭이 보짓살을 때렸다. 좆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음낭이 음부를 후려치는 감각에 은찬이 힉힉, 신음을 터트리며 등허리를 떨었다.
파드득, 몸을 뒤채면서도 보짓살은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성기를 쪽쪽 빨아 당겼다. 얇게 저며진 점막이 늘어나면서 버거운 살덩이를 감싸 안았다. 물이 터져 미끈미끈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에 예담이 헛숨을 내뱉었다.
“미치겠네…….”
“응, 흐응, 아……! 흐으! 아응, 응, 으응!”
흥건해진 접합부가 폭발할 듯 화끈거렸다. 빠른 속도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구멍과 열 오른 자지가 마찰하면서 온몸의 신경이 죄 아래로 몰려든 것만 같았다. 의도치 않아도 길쭉한 기둥을 알아서 조여 오는 질 벽 덕택에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끓어올랐다.
덜렁거리던 은찬의 자지는 어느새 은밀하게 일어나 공중에서 뒤흔들렸다. 사방으로 휙휙 돌아가는 살굿빛 자지와 이를 감싼 음낭을 지켜보던 예담이 가벼이 실소를 터트렸다.
“절경이네요……. 진짜.”
보지와 자지가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타고나길 야해 빠진 몸이었다. 평소 제 몸에 달린 성기에도 별다른 감상이 없었는데, 보드라운 피부 결로 감싸인 자지는 어딘가에 박아 넣기엔 지나치게 귀엽게 느껴졌다. 굳이 쓰임새를 따지자면 절정을 파악하는 용도가 최선이었다.
저걸 어느 구멍 안에 집어넣는다는 가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모순이었다.
단순한 상상만으로 기분이 저조해진 예담은 부푼 채로 휘날리는 성기를 그러잡았다. 그러곤 잡은 손아귀에 꽈악 힘을 주었다.
“아, 흐윽……!”
예담은 얇은 껍질을 벗겨 낼 듯, 격렬하게 기둥을 쥐고 흔들었다. 손바닥에 감싸인 자지 표피가 쩍쩍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살덩이와 손바닥 모두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미 젖어 미끄럽던 성기는 마찰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만큼 질척한 액으로 범벅돼 눅진한 쾌감을 이끌어 냈다.
“아, 아, 아……!”
강제로 피어오르는 사정감에 은찬이 까무러치며 사지를 파들파들 굳혔다. 때를 놓치지 않고 굵직한 좆이 보지 안으로 쾅, 매섭게 파고들었다. 풀리다 못해 녹아내린 구멍이 무리 없이 성기를 받아먹으며 놓칠세라 재빨리 오므라들었다.
“후으…….”
“응, 으으, 응! 흣! 조, 흐으, 아! 아윽, 응!”
은찬이 몸을 떨며 자지러졌다. 전신에서 전달된 떨림에 자극받은 성기는 내벽 점막에 박힌 채로 더더욱 거대하게 부풀었다. 퍽, 퍽 사나운 기세로 여기저기를 찧어 대는 좆 대가리 때문에 보지 안이 터질 것처럼 홧홧했다. 맹렬한 온도로 끓어오르는 보지가 바짝 조여들며 예담을 죄었다.
“크읏.”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도는 피가 모조리 음부로 밀집한 것 같았다. 피가 몰려 붉게 충혈된 보지 점막이 벌름거리면서 젖어 든 아랫구멍 또한 바지런히 움직였다. 음란하게 요동치는 구멍은 아래를 조이고 풀 때마다 점차 열기를 더해 가며 성감을 높였다.
제 위에 올라탄 몸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는 은찬은 침대 헤드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잔뜩 구겨진 상태로 밀려난 탓에 발끝이 금방이라도 침대 헤드에 부딪힐 것만 같았다.
“후, 선생님……. 어디 가요.”
예담이 멀어지는 은찬의 허리를 감싸 주욱 아래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장골을 쳐올렸다.
“아, 앙……!”
퍽! 곧추선 예담의 자지에 은찬의 몸이 거칠게 꿰뚫렸다. 하반신을 가닥가닥 쪼개는 듯한 작열감에 침대 헤드를 향하던 발끝이 벌벌 구부러지며 모여들었다. 반으로 접힌 은찬은 반사적인 반응 외에는 하지 못한 채 어지러이 흔들릴 따름이었다.
연한 살이 쓸리고 갈라지면서 애처로울 만큼 경련이 일어났다. 뿌리까지 들어온 성기가 고정된 상태에서 잘게 흔들리자 부드러운 보짓살이 예담의 음모에 짓눌렸다. 거칠한 음모가 계속해서 연약한 음부 살을 비비며 자극했다.
“하으응……!”
여린 보지를 압박하고, 짓누를수록 쾌감이 치밀었다. 따가울 정도로 성긴 음모가 비비적대는 촉감에 은찬은 더욱더 강렬한 열락에 빠져든 채 바짝 엉덩이를 쳐들었다.
“아, 흐윽! 응!”
예담이 은찬을 고정한 채로 빠르게 좆질했다. 본능을 따라 쑤욱 자지가 처박혔다 쩌억 빠져나오는 짓을 셀 수 없이 반복하니 엿가락처럼 늘어진 점막이 자지가 다니는 길에 맞는 둥그런 터널을 만들었다. 쑥쑥 들이박히는 굵직한 기둥이 질 안을 긁어내릴 때마다 울퉁불퉁 돋아난 혈관이 제 흔적을 남겼다.
“흐응……! 아! 힉!”
등골을 타고 전기가 올랐다. 내리치는 자지에 질어진 점막이 성기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한 몸이 되었다. 새빨간 속살이 농염하게 죄어들었다.
예민한 지점이 매번 자극당했다. 특별히 의도할 것 없이 커다란 자지가 안을 짓찧을 때마다 극점을 빻아 댄 탓이었다. 진득하게 익은 보지 안을 뭉그러뜨리는 아찔한 감각에 은찬의 호흡이 가빠졌다. 숫제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하으, 응, 아! 힉, 응! 흣!”
밭은 숨을 내쉬며 헐떡일 때마다 융기한 유두가 갉작갉작 예담의 시야에 걸렸다. 자극하기 전 밋밋했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야살스레 부푼 채였다. 지나친 쾌감 때문인지 끝이 젖은 눈매 또한 시선을 잡아챘다.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에 머무는 예담의 시야가 그답지 않게 어지러웠다.
“흐읏! 응! 아, 앙!”
신음을 내지르며 보지가 바짝 수축했다. 예담은 경련하는 한 부위만을 집요하게 찔러 넣었다. 들쑤셔진 점막이 습윤해져 물컹거리고, 연한 속살 사이에서 반짝이는 애액이 질질 흘렀다. 퍽, 퍽 예담이 자지를 내리 칠 때마다 들썩이는 둥그스름한 골 사이로 질척이는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잘 짜인 근육을 두른 팔이 매트리스를 받친 채로 사정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무자비하게 콱콱 짓누르는 허리 짓에 평평한 매트리스가 쑥 내려갔다 되돌아오며 출렁거렸다. 그때마다 은찬의 전신이 들썩거렸다.
탄탄한 몸에 살 오른 엉덩이가 철썩, 부딪혀 짓뭉개질 때 역시 이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단단한 장골이 물러났다 다시 밀착할 때마다 보드랍고 하얀 살덩어리가 폭 파였다 되돌아오며 잘게 떨렸다. 살덩이가 올라붙으며 풍만한 곡선을 되찾을 때까지 그 떨림은 지속되었다.
찌걱거리는 소리 사이사이로 음란한 물소리가 섞여들었다. 자궁구를 뚫고 들이칠 듯, 과격하게 쑤셔 박는 자지가 주는 쾌락에 전신의 솜털이 빳빳하게 일어났다. 농밀한 농도의 쾌감에 겨우겨우 숨만 할딱이던 은찬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제 자지를 움켜쥐었다. 이제 그만 절정에 오르고 싶었다.
“아…… 이러면 반칙이지.”
예담이 탁, 은찬의 손가락을 뿌리치더니 등허리를 껴안고 몸을 일으켰다. 주르륵, 농축된 액이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며 침대 시트를 적셨다.
균형을 잡지 못하는 은찬이 휘청거리며 온전히 안겨 오고, 갈 곳 잃은 자지가 쿠퍼액을 흘리면서 예담의 복부에 좆 대가리를 퍽, 박았다. 연한 살굿빛이었던 자지 색상은 피가 몰려 한결 짙어진 채였다.
한껏 흥분한 예담의 가슴팍 역시 성기처럼 부풀어 올랐다. 예담이 제 가슴에 은찬을 기대게 한 뒤 다시 한번 마구잡이로 자지를 박아 넣었다. 은찬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채 정신없이 흔들렸다. 신음을 내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흐으…… 아, 아, 응……!”
성기가 수직으로 박혀 들어 압박감은 더더욱 거세졌다. 열점부터 시작해 전신을 옥죄는 듯한 압력에 예담은 은찬을 감싸 안은 채로 빠르게 허리를 털기 시작했다. 딴딴해진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푹푹 들이박히는 질 벽에서 반투명한 물이 터져 나와 접합부를 뜨끈하게 적셨다.
지독한 열감에 아래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 아랫배를 조이며 신음하자, 외려 보지 구멍이 벌름거리며 탐욕스럽게 살덩이를 씹어 삼켰다. 도무지 온몸의 신경과 기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읏…… 으, 흐, 아! 으읏……!”
얇아진 점막과 성기가 찰싹 들러붙자 붉은 점막이 성기의 체적에 알맞게 깊숙이 벌어졌다. 길고 음습한 동굴이 점점 더 크게 파이며 자궁 끝까지 자지를 빨아 당겼다. 자지를 끈적끈적하게 자극하면서 얽혀 드는 속살에 예담은 기다란 눈매를 찡그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미 바짝 힘이 들어간 아랫도리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후으……. 씹. 대체 이게 무슨…….”
음험하게 해온 상상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본인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성기가 온몸의 신경을 쥐락펴락했다.
“하으으, 응, 아으, 흣……!”
은찬은 눈을 꼭 감은 채로 아득한 감각과 씨름했다. 어두컴컴한 시야 사이로 번쩍번쩍, 날카로운 빛이 튀어 오르고 전신이 제멋대로 덜덜 떨렸다.
손끝이, 발끝이, 배 속이……. 신경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부터 홧홧한 열감이 퍼져 나갔다. 부글부글 기포가 끓어오르다 한순간 펑, 사방으로 터져 버렸다. 온몸이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크읏…….”
마침내 예담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떨자, 벌어진 보지 안에 뜨겁고 진득한 것이 잔뜩 차올랐다. 정액이었다.
예담은 정액을 사출하면서도 허리 짓을 멈추지 않았다. 한계까지 가득 차오른 보지에 계속해서 정액을 밀어 넣으며 안을 비벼 올렸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질 안에 싸지를 기세로 아래를 들이받았다.
“흐으, 아앙……!”
꽉 들어찬 자지와 조금의 빈 공간도 없이 메워 넣는 정액에 고대하던 충족감이 밀려왔다. 착실하게 쌓인 열락이 분출되며 황홀경에 내몰린 은찬이 예담을 따라 허벅지를 잘게 경련했다. 뒤이어 그의 자지에서도 정액이 후드득, 뿜어져 나왔다.
빳빳하게 고개를 든 채 픽, 픽 이리저리 흔들리던 살굿빛 성기는 하얀 물을 쏘아 대고는 서서히 쪼그라들었다. 흥분해 팽창했던 음낭까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그러졌다.
“흐으, 흐으으…….”
“하아…….”
예담의 단단한 복부 위로 은찬의 체액이 점철되었다. 침대 시트에 맞닿은 발등이 여운으로 꿈틀거리면서 매트리스를 쳐 댔다. 발등과 연결된 종아리까지도 덜덜 발작하듯 떨렸다.
아래가 뜨끈하게 차오르는 감각을 느끼며 마침내 절정에 오른 은찬이 예담의 가슴팍에 풀썩, 이마를 붙여 왔다. 그림자를 드리운 기다란 속눈썹이 탄탄한 가슴을 간질이며 가늘게 떨려 왔다. 맞붙은 미끈한 몸에 온통 축축한 땀이 흘러내렸다.
“선생님, 보지 좀 쑤셔 줬다고 간 거예요?”
“……으응, 흐으응.”
별일 아닌 것처럼 굴었지만 보지 좀 쑤셨다고 간 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여운에 잠식당한 은찬을 바라보는 예담에게도 오싹한 여운이 밀려왔다. 한참 전신에 감도는 감각을 즐기며 은찬과 몸을 맞붙이고 있던 그가 살짝 허리를 물리자, 스르륵, 내밀한 질 벽 안에서 빠져나오는 성기와 함께 연유 같은 정액이 뭉텅이로 쏟아져 나왔다.
선홍빛 보지 속살과 대비되는 희멀건 정액이 살점을 번들거리게 만들고, 주름진 음순 안의 새빨갛고 탱글탱글한 속살은 게걸스럽게 옴찔거렸다. 걸쭉할 만큼 농도가 짙은 액체인지라 흐르는 속도는 빨랐다. 처치할 새 없이 땀과 애액에 절어든 침대 시트가 곧장 눅눅하게 젖어 들었다.
“……얼굴 들어요.”
예담이 은찬의 뺨을 쥐고서 조그만 얼굴을 끌어 올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꼬리, 오뚝한 콧날 아래 짓씹어 엉망이 된 붉은 입술이 오물거리고 있었다. 막연히 꿈꿔 왔던 것보다 훨씬 색스러운 광경에 예담이 홀린 듯 제 얼굴을 내렸다.
“으음…….”
“흐으, 응!”
입술을 맞붙이자마자 곧장 혀로 안을 휘감았다. 두꺼운 혀가 밀고 들어가자 여린 입 안은 속절없이 함락당하며 내부를 활짝 열었다. 독한 술을 들이켠 탓에 넘어와야 할 알코올 냄새 대신 달달한 단내가 입 안 가득 퍼졌다. 덩달아 오가는 숨도 달아졌다.
예담은 맞닿는 점막 곳곳을 느릿하게 쓸고 가르며 한껏 맛보았다. 혀끝이 여린 점막을 건드릴 때마다 욕망이 절절 들끓어 세기를 조절할 수 없었다. 두터운 혀가 제멋대로 안을 휘젓는 감각에 은찬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할딱거릴 따름이었다.
“으응…….”
얼얼했다. 아득한 감각 속에서 이끄는 대로 고개가 돌아가며 절로 목이 꺾였다. 예담은 제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은찬의 턱을 능숙하게 한 손으로 움켜쥔 뒤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움찔, 움츠러드는 은찬의 반응에 잠시 입매를 비튼 예담은 금세 두툼한 혀를 움직이며 달아나는 혀를 옭아맸다.
여름밤 눅눅한 공기보다 습한 교접이었다. 제멋대로 입 안을 유린하고 유영하던 혀가 빠져나간 뒤에야 마침내 춥, 젖은 점막과 점막이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예담의 입술이 멀어져갔다.
“흣……. 우읏…….”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은찬은 그대로 타액을 길게 늘어뜨렸다. 겨우겨우 버거운 숨만 내쉬었다.
예담은 은찬의 입술을 거쳐 턱으로 떨어지는 타액을 게걸스레 빨아 먹었다. 마무리하듯 혀를 내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어 치운 뒤에야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어깨를 감싼 하얀 티셔츠 아래로 융기한 유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아.”
연한 분홍빛을 띠고 돌기가 큰, 촉감 좋은 젖꼭지를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드라우면서 매끈한 가슴살의 감촉이 그의 손끝에 아릿하게 남아 있었다. 삽시간에 쿡쿡, 둥그런 선단이 은찬의 배를 찌르기 시작했다.
막 사정했다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굳건한 경직도를 자랑하는 자지 표피가 체액으로 진탕 반질거렸다. 투명한 보짓물과 끈적한 좆물이 엉겨 성기 곳곳마다 차이 나는 점성의 액체로 함빡 적셔진 채였다. 검붉은 피부를 둘러싼 허연 체액 덕택에 성기는 보지 안을 쑤시기 전보다 월등히 흉흉한 모습이었다.
“……으흑! 아!”
다시금 단단하게 일어난 성기가 아래를 짓쳐들어왔다. 안에 고였던 애액이 덩어리진 정액에 휩쓸려 몽땅 흘러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질 벽 안은 순식간에 뜨끈한 물로 가득 차올랐다. 또다시 들끓는 야릇한 감각에 보지가 반응한 탓이었다.
* * *
“으으…….”
연녹색 커튼을 투과한 햇살이 작은 방 안으로 쏟아졌다. 눈두덩 위로 드리우는 빛줄기에 은찬이 신음하며 눈꺼풀을 끌어 올렸다. 가느다랗게 뜬 시야로 어물어물 익숙한 장소가 보이고,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어제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녁에 학교 근처에서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고, 뜻하지 않게 불청객이 합류했다. 불청객이 나타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술기운에 불을 붙인 건 다름 아닌 이예담이었다.
그 여우 같은 놈이 슬쩍슬쩍 작업해 둔 술이 채워진 컵 내용물을 물인 줄 알고 몽땅 들이켠 이후로 기억이 뚝 끊겼다. 이예담이 합류하면서부터 추가적으로 시킨 술이 도수가 엄청나게 높았던 탓이다.
은찬은 조각난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벽면 반대쪽으로 돌렸다. 목이 마를 걸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침대 프레임과 맞닿은 바닥에 물이 가득 찬 컵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입 안이 바싹 말라 깔깔한 것이 느껴졌다.
인지하지 못했던 갈증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은찬은 생경한 광경에 의문을 가질 새 없이 우선 컵을 손에 쥐기로 마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하복부에 힘을 주었다.
“아윽!”
벌컥 일어나려 했지만 새된 비명만 흘러나왔다. 제 몸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제어할 수 없었다. 마치 온몸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쇠붙이에 고정이라도 된 듯했다.
허리를 찌르는 통증에 더불어 종아리가 땅겨 오는 낯선 근육통까지 뒤를 잇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골목을 기고 구르기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었다.
“아…… 으.”
요 근래 술을 잘 마시지 않아 모르던 술버릇이라도 생겼나 싶었다. 간밤에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은찬에게는 원인 모를 근육통이었다.
이제야 술자리가 어떻게 파한 건지 궁금해졌다. 은찬은 수민에게 연락해 볼 요량으로 손바닥으로 침대 시트 주변을 더듬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움직임에도 온몸이 뻐근해 앓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읏……. 어디 갔지.”
없다. 늘 잠들 때면 머리맡에 두는 휴대폰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릿한 통각을 참아 내며 주변을 재차 살펴도 모서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취한 정신에 휴대폰이 멀쩡히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아마도 벗어 내린 옷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게 뻔했다. 술자리 중간부터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확인조차 안 했었으니까. 그나마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없어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바지 주머니를 뒤져 보면…….
“어……?”
그러고 보니 이불을 덮고 있는 몸이 휑했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사고에 인지하지 못했는데, 천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그제야 은찬은 지나치게 가벼운 제 몸을 느끼곤 미간을 찌푸렸다.
좀체 저답지 않은 행동만 가득했다. 아무리 더워도 배탈이 날까 얇은 속옷 한 장이라도 걸치고 자는 습관이 몸에 밴 은찬이었다. 뭐지……. 은찬은 아릿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작금의 상황을 곱씹었다.
“하아…….”
숙취가 남아 그런지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잔잔한 이명이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고 몇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귓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서서히 멎어 들었다. 그제야 두통이 진정되는 것 같아 감은 눈을 겨우겨우 뜬 찰나였다.
“일어났어요?”
대체 이게……. 꿈인가 했다. 그게 아니라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아침까지 이어진 교접으로 인해 부르튼 입술 사이에서는 욕설도, 고함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퓨즈가 나간 것처럼 멈춰 버린다는 걸 은찬은 이번에야 알았다. 그저 몸을 굳힌 채 눈만 동그랗게 뜰 따름이었다.
“땡.”
“…….”
“땡 쳤으니까 얼음이 풀려야죠, 선생님.”
“…….”
웃음기 어린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살거렸으나 하등 웃음이 나오지 않는 말장난이었다. 이예담이 제집 화장실 문 앞에 선,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아연해진 은찬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재정비했다.
어제 내내 가당치 않은 짓만 해 대던 여우 새끼가 왜, 왜…… 저리도 당당하게 제집 안에 있는 건지 추측해 봤다.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일전에 제게 해 댄 짓을 봐서는 선의로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게 분명했던 까닭이다.
“무슨 생각 해요.”
이예담이 화장실 문에 기다란 몸을 비스듬히 기댔다. 장신의 몸은 좁다랗게 난 문과 길이가 엇비슷했다.
갸웃, 고개가 기울어지고 다채롭게 변하는 은찬의 표정을 조목조목 살피더니, 이윽고 예담은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잔뜩 졸아붙어선 눈만 굴리는 은찬이 안타깝다는 듯, 비식비식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서.
“혹시나 했는데 하나도 기억 안 나요?”
“…….”
“그렇게 내가 기억하라고 말했는데…….”
“그건 무슨 헛소리야?”
“글쎄요.”
대답 대신 뜻 모를 웃음만 되돌아왔다. 뭐든 좋은 의미는 아닐 게 명백했다.
등골이 서늘해진 은찬이 이불보를 그러쥔 손을 놓고 주먹을 쥐었다. 창백한 손등 위로 돋아난 힘줄이 또렷했다. 금방이라도 침대에서 내려와 이예담을 가격할 기세였다.
“음……. 아무래도 손버릇은 고치는 게 좋겠어요.”
예담이 상냥한 낯을 유지한 상태로,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입가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쳐진 채였다.
“뭐?”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기세라. 한 대 더 맞아 주는 거 일도 아니긴 한데, 이번엔 왠지 안 내켜서.”
“뭔 개소리야. 맞고 안 맞고를 왜 네가 정해?”
“흐음……. 안 될까요.”
“이게…… 윽!”
급격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은찬은 허리에서 느껴지는 둔통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조그만 움직임도 힘에 부쳐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만 씨근덕대며 이예담을 노려보았다.
“선생님. 해 달라는 대로 해 줘서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주먹질은 아니죠.”
인과관계를 알 수 있게 제대로 말할 순 없는 건가. 수학만 담당했어서 본 적은 없지만, 저 녀석 국어 영역 점수는 형편없을 게 틀림없었다.
“자꾸 무슨……! 똑바로 알아듣게 말해. 네가 왜 여기 있어?”
“아아, 술 취한 사람 도와줬더니 이건 또 무슨 반응이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만취했었잖아요.”
“그래서 네가 날 도와주려고 지금까지 이 집에 있던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네 말대로 그런 의도였다면 진작 집에 갔어야지. 왜 아직 여기에 있어? 개소리 작작 해.”
“하아, 선생님…….”
좁은 공간이라 예담이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아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숨결을 공유할 것처럼 가까워진 이예담에 흠칫 놀란 은찬을 내려다보는 남자에게서 잔잔한 웃음소리가 떨어졌다. 이윽고 이예담은 허리를 숙여 말간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톡, 치고 멀어져 갔다. 싸한 향이 은찬의 코끝을 스쳤다.
“잘 생각해 보고, 기억이 다 떠올라도 억울하면 연락하세요. 샌드백처럼 맞아 줄 테니까. 대신에 생각도 안 나면서 먼저 손부터 올리진 마요. 응?”
“뭐…….”
“아, 참. 이건 휴대폰. 하마터면 세탁기에 같이 넣어 버릴 뻔했어요.”
순식간이었다. 이예담은 그 말만 남기곤 홀연히 집을 나섰다.
“저게…….”
쾅, 소릴 내며 굳건히 닫힌 문을 바라보던 은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을 돌렸다. 일단은 수민에게 연락해 보는 게 우선이다. 이예담이 이불 위에 얌전히 놓아둔 휴대폰을 쥐고 화면을 확인했다. 이미 수민으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전수민
속 괜찮아??? 어제 왤케 마신거ㅠㅠ 오전 07:59]
은찬은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조했다. 통화가 연결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기하던 와중, 드디어 수민이 전화를 받았다.
- 은찬아. 이제 깼어? 살아 있었지?
“어…… 응. 저기, 근데. 나 어제 많이 취했어?”
- 그치. 예담이가 엄청 고생했어.
“이예담?”
- 하나도 기억 안 나? 너 완전 취해서 정신 못 차렸잖아. 너한텐 몇 잔 주지도 않았는데 언제 그렇게 마신 거야?
그건…… 그 새끼가 컵에…….
변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원인을 따지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제 이예담이 무슨 고생을 했는데?”
- 나랑 같이 너 데리고 집 앞까지 갔어. 나는 먼저 오긴 했는데……. 어쨌든 내 택시도 잡아 주고, 너도 책임진다고 집까지 데려가고. 어후, 걔는 어린애가 매너 끝판왕이더라. 사람 설레게? 그 얼굴에 그 성격이라니 말이 안 돼. ……그리고…….
수민은 한참 더 이야기를 조잘거렸지만, 이어지는 말은 몽땅 백색소음이 되었다. 더는 그 어떤 말도 은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최악의 상황이다. 술 취한 저를 끌고 이예담 혼자 이 집에 왔다는 말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 여하튼 은찬아. 술 작작 마시고 몸 잘 챙기자?
“응…….”
- 주말이라 다행이다. 숙취 심할 텐데 뭐라도 꼭 챙겨 먹어.
“어? 어…… 너도…….”
은찬은 그렇게 손에 쥔 휴대폰만 바라보며 화면이 시커멓게 내려앉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술 취했던 자신, 멀쩡했던 이예담, 벗겨진 몸, 맞기엔 억울하다는 듯한 태도……. 이대로 찜찜하게 앉아 있기만 할 순 없었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기억의 실마리를 붙잡기 위해 뭐라도 찾고, 떠올려야 했다.
분주히 주변을 훑던 은찬의 시야각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이불이 걸렸다. 저게 왜 화장실 문 옆에 있지. 황급히 아래를 바라보자 그제야 은찬은 제 몸을 덮고 있던 것이 계절감에 맞지 않는 이불이란 걸 깨달았다.
지금 제가 두른 건 지난겨울을 정리하며 옷장 안에 넣어 두었던 겨울용 솜이불이고, 돌돌 말려 구석진 곳에 박혀 있는 이불은 여름용으로 마련해 둔, 어제까지 덮고 자던 이불이었다. 두께 차이가 상당한데 이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어지간히도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대체 이불이 왜 바뀌어 있는 걸까. 어떤 가정을 세우고 결론에 도달하려 할 때마다 고장 난 톱니바퀴가 서는 것처럼 이가 맞지 않는 생각은 굴러가지 못하고 도중에 삐꺽, 멈추기만 했다.
은찬은 갓 태어난 사슴이 된 듯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뻗었다. 아린 몸을 이끌고 빨랫감처럼 처박힌 이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불 끄트머리를 쥐자마자 느껴지는 축축한 촉감에 은찬이 얼굴을 찌푸렸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천의 무게가 묘했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넓게 폈다. 하늘색 침구 곳곳이 얼룩덜룩하게 물이 들어 있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체 이게 무슨…….”
젖은 채로 물을 흡수한 이불은 부위마다 색이 달랐다. 투명한 액으로 번들거리기도, 허연 액으로 굳어 있기도, 또 어떤 곳은 허옇고 투명한 액이 함께 엉겨 있기도 했다. 은찬은 멍하니 그 흔적들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떠오른 기억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빨리이, 넣어 줘어…….〉
틀림없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다만 그 말을 내뱉은 경위는 알 수 없었다. 앞뒤의 일들은 칼로 도려낸 것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오직 제 보지에 맞대 오던 묵직한 좆의 무게감만이 칭얼대는 목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다.
“……말도 안 돼.”
그렇게 큰 크기와 압력을 가진 좆은 실제로는 물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으로도 본 적 없었다. 보지로 하는 자위에서 본능적으로 거대한 좆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때조차도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성기보다는 작은 크기를 그렸었는데.
이건 꿈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했다.
멀끔하고 선이 고운 이예담의 얼굴과는 달리 그의 아래 달린 성기는 흉흉하고 검붉은 낯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흥분했는지 딱딱해진 성기 전체에서 윤기가 흐르는 모습이, 꼭 침을 흘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생명체 같았다. 끝이 휘고 유난히 더 큼지막해 보이는 귀두 부분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간 노출된 팔뚝을 통해 어림짐작하긴 했지만, 어디를 찔러도 튕겨 나올 듯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은…… 학업 대신 운동이 생업이라도 되는 것처럼 탄탄하고 굳건하게 짜여 있었다. 오늘도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었다간 곧장 포박당해 성한 몸으로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이딴 장면이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조바심이 일었다. 스멀스멀 떠오르는 끔찍한 가정을 당장 확인해야만 했다. 은찬은 방금까지 이예담이 비스듬하게 기대 있던 화장실 문을 황급히 열었다.
〈아, 참. 이건 휴대폰. 하마터면 세탁기에 같이 넣어 버릴 뻔했어요.〉
뚜껑이 열린 세탁기 속에 쌓인 빨랫감들이 눈에 띄었다. 허리를 부여잡고 다가서자 익숙한 옷들 사이로 어제 제가 입었던 게 분명한 속옷이 보였다.
“아…… 안 돼. 안 돼.”
은찬은 넋이 나간 것처럼 망연자실한 채 맞은편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뿌연 거울 속에 비친 나신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가슴 정점에 자리한 연분홍빛 유두가 퉁퉁 부어오르다 못해 짓물러 있었다. 밤새 무슨 짓을 했는지 평소보다 퍽 색상이 짙고 알이 크게 여문, 낯선 모습이었다.
은찬은 거울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누가 꼬집고 뜯어내지 않은 이상 멀쩡한 젖꼭지가 하룻밤 사이 이렇게 도드라지게 변했을 리가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적나라한 흔적은 오직 한 가지 명제만을 명백히 가리키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이 맺힌 거울 표면을 천천히 더듬었다.
“…….”
은찬은 종종 본인에 대한 콤플렉스를 떠올릴 때면 가릴 수 있는 털조차 없는 여성기 다음으로 유두를 상기하곤 했다. 유독 색이 옅은 데다가 어울리지 않게 돌기는 커다래서 일반적인 남성의 가슴이라기엔 어딘가 석연찮았다. 그런 와중에 자극을 받지 않을 때면 쑥 파묻혀 있기까지 해 좀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랬던 유두가…… 오늘은 은찬이 싫어하는 면면만 더욱 강조된 채 지난밤의 증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은찬은 거울에서 한 걸음 물러난 뒤, 고개를 숙여 실물로 가슴을 확인했다. 흐린 거울을 통해 바라보던 때보다 한결 더 진하고 굵직한 알갱이가 확장되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부어오른 걸까. 무슨 짓을 하면…….
“아……!”
부분적으로 떠오르는 감각 속에 단단한 손가락이 거칠게 유두를 짓누르고, 짜내는 촉감이 스며들었다. 살점을 뜯어낼 듯 과격한 손길을 되새기자 뒤이어 이와는 상반되는, 촉촉하고 뜨끈한 입 안 점막이 젖꼭지를 부드럽게 빨아들이던 감촉이 발끝을 타고 야릇하게 올라왔다.
한참 유두를 지분대던 보드라운 점막이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자, 뽑아낼 것처럼 거칠게 돌기를 잡아 비트는 악력이 이어졌다. 흐으…… 으응……. 그게 싫지 않았다. 몸이 함부로 다뤄지고 쥐어 짜이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쾌감이 몰아쳤다. 젖꼭지가 그 황홀한 여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으, 흣…….”
이러다간 저도 모르게 짓무른 유두를 손가락으로 찍어 누를 것만 같았다.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찌릿한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어 허벅지가 벌벌 떨렸다. 당황한 은찬이 낯선 감각을 털어 내듯 탁탁 발바닥으로 바닥을 치자, 밤새 장골에 얻어맞았던 토실하고 부드러운 엉덩이 살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잘게 요동쳤다.
은찬은 차마 유두를 어찌할 바 모른 채 어깨를 둥글게 말았다. 그러곤 시선을 더 깊숙이, 아래를 향해 내렸다. 연이어 떠오른 또 다른 기억 때문이었다.
〈똑똑히 기억해. 누가 박아 달라고 졸랐는지.〉
말이 되나? 이 조그마한 보지 구멍 안에 무지막지할 정도로 큰 성기를 쑤셔 넣었다는 게. 그것도 제 머릿속에 있는 좆이라면 귀두도 욱여넣기 전에 보지 입구가 찢어졌을 게 분명했다.
은찬은 천천히 중지를 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숨을 내쉬었다. 유두를 달군 감각 덕분에 이미 보지 안은 지나치게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또한 질펀한 질감이 될 정도로 박아 댄 탓에 말캉하게 풀려 있기까지 해, 손가락 하나 정도는 쉽게 빨아들였다.
질구는 손등 뼈가 걸릴 때까지 으슥하게 받아먹고도 한참 동안 쪽쪽 손가락을 빨며 움찔거렸다. 그간 제가 넣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게 거대한 것이 안을 들락거렸던 결과였다. 딱히 헤집지 않아도 제멋대로 들러붙은 점막이 손가락을 조이고 풀며 열기를 더해 가자 이어진 자지로도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음낭마저 채근하듯 딱딱하게 굳었다.
“아…… 으, 흐읏.”
허리가 경련하듯 마구 뒤틀렸다. 그러자 가만히 고정된 손가락이 보지 속을 마구잡이로 비비는 모양새가 되었다. 미끄덩거리는 속살을 거칠게 비비자 부어올라 통통해진 살점이 짓눌리며 눅눅한 즙이 픽픽 분사됐다. 쌀알 같은 음핵이 충혈된 채 발발 떨렸다.
순식간에 쾌감이 차올랐다. 놀란 은찬이 손가락을 빼내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면서 사타구니 사이가 애액으로 젖어 흥건해졌다. 동시에 보지에서 짜낸 즙이 후드득, 방울져 사방으로 튀었다.
점성이 약한 보짓물이 소리 없이 스르르 다리를 타고 내려와 바닥을 적셨다. 복숭아처럼 봉긋한 엉덩이 골과 회음까지 모조리 물기가 어린 채로 번들거렸다.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저릿한 감각이 쉴 새 없이 내리쳤다. 은찬은 휘청거리는 몸을 버티려 세면대 위로 손을 뻗었다. 도기를 움켜쥐며 몸을 기대어도 흠칫흠칫 등골에 내리치는 전율은 멈추지 않았다.
“흐응, 응, 으응……!”
단전 아래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평소에는 인식하지도 않았던 항문까지 발씬거리며 개폐를 반복했다. 성감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부위에서 찌릿한 열감을 뿜어내 눈두덩까지 뜨끈해졌다. 은찬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뜨거워지는 눈꺼풀을 질끈 감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평생 쓸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구멍을 썼다. 그것도 이예담과.
한참 동안 신음을 억누르며 숨을 할딱대던 은찬은 호흡을 진정시킨 다음 곧바로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곤 씨근덕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너 지금 어디야?”
날이 서 뾰족한 목소리였지만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확연히 대비되는 온도로 온화하게 답해 왔다.
- 음? 그게 왜 궁금해요.
“지금 좀 볼 수…… 아니. 지금 만나.”
- 좋아요. 집으로 갈까요.
“미친 소리 하지 마. 널 왜 집에서 봐. 카페 주소 보낼 테니까 거기로 와.”
* * *
“선생님이 먼저 연락 준 건 처음이네요.”
“…….”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그새 보고 싶어진 거예요?”
“개소리하지 말고……. 내가 뭐 물어볼지 이미 알고 있잖아.”
“흐응, 모르겠는데.”
예담이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기댄 몸을 느슨히 기울였다.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면서 하얗게 질린 은찬을 느른하게 살폈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을 얄미운 기색이다. 이렇게 굴면 아쉬운 제가 먼저 운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놈이었다.
“아니…… 아니지?”
“뭐가요.”
“아니잖아!”
여유를 잃은 은찬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리에서 벌떡 튀어 오르면서 앙다문 입술이 옅게 떨렸다. 작은 얼굴이 경련하면서 숱 많은 속눈썹 또한 파르르 떨려 왔는데, 그 모습을 보자 예담은 전날 헥헥대며 그가 제게 몸을 붙여 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맞닿았던 왼쪽 가슴이 간지러워 티 나지 않게 살짝 한쪽 눈을 찡그렸다.
“떡 쳤는지가 궁금해요?”
“…….”
선이 고운 입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수치심에 은찬이 대답하지 않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연락했구나. 뭐가 떠오르긴 했나 보네.”
예담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곤 웃음기가 어린 태연한 얼굴로 담담하게 물어 왔다.
“어디까지 생각났어요?”
“이…… 대답이나 해!”
뭐가 재미있는지 말을 꺼내다 멈추고선 짧게 웃었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자상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단어를 제외한다면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다정함이 깃든 음성이었다.
“쳤지, 그럼.”
“…….”
“어떻게 안 쳐.”
부끄러워하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은찬은 경직된 몸을 파들파들 떨며 되물었다.
“원래 넌 막…… 남자랑도…… 그래? 어, 어떻……게?”
“아. 남자랑 그러는 게 취향…… 푸흐.”
무언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이예담이 입가를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 가당치 않은 가정이 우스웠는지 어느새 배를 떨며 웃고 있었다.
“하하. 그런 취향 아니에요. 당연히.”
“그럼 왜 그랬는데?”
“음. 취향이 아니긴 한데, 그런데 선생님은…… 아, 이거 여기서 말해도 괜찮아요?”
예담이 상체를 들어 바짝 다가왔다.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자 은찬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낮은 웃음소리를 낸 예담이 또박또박, 한 음절씩 끊어 가며 속삭였다.
“선생님은…… 보지가 있잖아요.”
“이……!”
상스럽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이예담은 그 말만 남기고 다시 제 자리로 착석했다. 진정하라는 듯 넓은 손바닥을 은찬을 향해 내보인 채였다.
“이제는 ‘그거’ 없다고 거짓말은 안 하기로 했어요?”
“…….”
“대뜸 주먹부터 날리진 않는 걸 보니 누가 매달렸는지 기억은 났나 봐.”
예담은 상황을 가늠해 보며 아랫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유은찬은 초반에 제가 먼저 깔기 시작했던 건 아예 알지도, 추측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이러면 생각보다 이야기가 쉬워진다. 차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터였다.
“……그게,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너는 나만큼 취한 게 아니었으면 네가 거기서 안…… 했으면 되는 거였잖아. 워, 원래 남자한테 관심도 없다면서 왜…….”
“좆 달린 놈이면 다 같을걸. 똥구멍에 대고 씹질한 것도 아닌데 내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네가 전에 먼저 그런 적이 있기도 하고…….”
“뭐, 예전 일 말하는 거라면……. 핀트가 나가서 오버하긴 했지만 거기엔 선생님이 일조한 부분도 있어요.”
“뭐?”
“발칙하잖아요. ‘그거’ 달린 선생님이 여자랑 해 본 척하는 거. 그걸 몇 개월이나 참아 준 저한테 칭찬은 못 해 줄망정.”
과외를 이어 가기 위해 곁다리로 얹었던 허풍과 거짓말들을 지적당하자 은찬은 대적할 의지를 잃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경중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여기서 초점을 거기에 맞추면 정작 알아야 할 문제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나도 더 따지고 들 생각 없어. 그, 거…… 그거 말이야. 어떻게 안 거야? 그것만 말해 줘.”
“흐음…….”
주도권은 완전히 예담에게로 넘어갔다. 꼭 주인 잃은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은찬을 바라보며 예담이 사르르, 녹아내릴 듯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게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 * *
날씨가 눈에 띄게 선선해졌다. 면바지에 얇은 티셔츠 하나 걸치고 나오니 조금 쌀쌀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은찬은 도로 옥탑방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며 신발 뒤축을 짚고 돌다가 그만한 기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다시 향하던 곳으로 맥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주말 내내 온몸을 내리누르는 근육통에 더해 자괴감에 시달렸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 순간, 그 상황을 꿈으로 받아들였을까.
거기다 더해 보지를 들먹거리면서도 한결 당당해진 이예담의 태도까지 생각하니…….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지만 후회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 됐다, 됐어.”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나서 흠씬 두들겨 패 주는 것도 텄으니 여기서 더 생각해 봤자 무의미했다. 어차피 과외는 끝난 일에다 주선해 준 민선우와도 엮일 일 없을 테니 이제 이예담과의 접점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쾌하지 않은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고 잊을 셈이었다.
지이잉.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 진동음에 은찬이 가던 길을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신청: 0건.
이건 어때요? 프리미엄 회원권 결제 시 상단에 프로필을 올려 드립니다.]
“망했다. 진짜…….”
주말 내내 땅굴을 파느라 외면했던 생계였다. 과외 문의가 한 건도 없었다는 알람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당발 수민이라면 어디선가 과외 자리 하나쯤은 알아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저번처럼.
만약 그것도 안 되면 과외는 접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바로 찾을 생각이었다.
[오전 11:57 학교 근처야?]
[전수민
응응! 도서관 1층 카페테리아 오전 11:59]
[오후 12:01 나 지금 가도 될까? 강의 전에 조금 시간이 비어서.]
[전수민
뭐 그런 걸 물어? 와도 돼ㅎㅎ 찬은 언제나 웰컴 오후 12:05]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린 건물이었다. 딱히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지 않아도 카페테리아에 가는 길쯤은 바닥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과외 사이트를 확인하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던 은찬은 수민 곁에 다가서고 나서야 뒤늦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둘이 같이 있어?”
손을 흔드는 수민의 맞은편에 이예담이 앉아 있었다. 긴 다리를 꼰 채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퍽 여유로워 보였다. 거기다 저와는 달리 놀라지도 않았는지 슬며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예담이가 진학 상담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은찬이 네가 바빠 보여서 너한텐 못 물어보겠다던데. 우리 은찬이 의외로 호랑이 선생님인가 봐.”
수민이 킥킥 웃으면서 제 옆의 빈 의자를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예담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스무디로 사 올게요.” 하고는 계산대 쪽으로 사라졌다. 제 식성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저런 식으로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은찬은 눈두덩을 꾹꾹, 손목으로 누르며 비워진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벌써부터 빵빵하게 틀어진 카페 히터 때문에 더욱 속이 갑갑했다. 한풀 꺾인 더위가 무색하게 그의 목 뒤로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진학 상담? 고3도 아니고 이제 와서? 원서 시즌에 하는 고민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걸 너랑 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잖아.”
“나도 신세 진 거 있어서 괜찮아. 성적도 잘 나와서 그렇게 급하지도 않다며. 나오는 김에 우리 학교 둘러보고 싶다고도 하더라.”
“뭐? 우리 학교는 왜?”
“……그건 선우 형이나, 선생님이나 둘 다 저한테 따로 시간을 내 주질 않으니까요.”
언제 왔는지 예담이 수민 대신 대답하며 입꼬리를 화사하게 끌어 올렸다. 역시나 낯짝 하나는 끝내주게 반반했다. 속이 의뭉스러워 써먹을 수 없겠지만.
“스무디 주문했어요. 망고는 지금 없다고 해서 딸기로. 괜찮죠?”
더 캐물었다간 분위기만 싸해질 것 같았다. 은찬은 예담이 자신의 앞에 놓아주는 죄 없는 스무디 잔만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우리 은찬이가 워낙 좀 바쁜 남자긴 해. 예담이 네가 이해해.”
수민이 은찬의 편을 들어주며 웃었다. 그녀의 말을 곱씹듯 예담이 작은 목소리로 우리 은찬이, 하고 따라 말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 없더니 친근하게 물어 왔다.
“두 분은 많이 친하세요?”
“아, 신입생 환영회에서 같은 조였거든. 은찬이가 술이 센 편이 아닌데 그날 하는 게임마다 벌칙에 걸려서 숙소 밖으로 도망쳐 나왔어. 거기서 딱 나랑 마주치고! 같이 겔겔거리면서 전우애를 다졌지.”
“아, 그렇구나. 친할 수밖에 없겠네요.”
꼬치꼬치 캐묻는 저의가 궁금했다. 묻는다고 알려 줄 리 없겠지만. 은찬은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은 채 세모꼴을 한 눈으로 이예담을 째려보았다.
“아무튼 예담아. 은찬이 너무 좋은 건 알겠지만 밥 수백 번 더 먹은 나한테 양보해. 일 순위는 나야. 친누나 같은 마음으로 품어 주고 있다고.”
“하하. 나이순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반칙이죠.”
〈아…… 이러면 반칙이지.〉
순간, 낮고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은찬은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아찔한 감각에 어깨를 움츠린 채 옆의 수민을 살폈다. 여전히 평온한 표정인 걸 보니 아마 제 귀에만 다시금 되새겨진 음성일 터였다.
이예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등허리를 껴안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갑자기 흔들리는 몸이 어지러워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로 간신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이예담이 성마르게 몸을 빈틈없이 맞붙여 왔다. 그러곤…….
“아……!”
은찬은 급작스레 고개를 푹 수그리며 작게 탄식을 내질렀다.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에 더는 얼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수민이 놀라 은찬을 살폈다.
“은찬아, 왜 그래?”
“아니, 아니야…….”
눈앞에 펼쳐진 살색의 향연과 더불어 음란한 감촉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신경을 덮어 내렸다. 주말 내내 은찬을 불편케 하던 여운이었다.
꽉 맞물린 아래가 떨어질 때마다 젖은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맑은 액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살갗과 엉기는 소리이자, 혼몽한 와중에도 내내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던 난잡한 소리의 정체였다.
“후, 흣…….”
발가락 끝에서부터 저릿저릿, 야릇한 감각이 전류처럼 스치며 올랐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오른 감각은 전신에서 가장 예민한 보지 안 깊숙한 곳에 홧홧한 불씨를 지폈다. 뜨끈뜨끈해진 음부 살에서 질금 물이 새기 시작했다.
은찬은 하복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손가락 끝에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힘껏 스무디 잔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응결된 물방울이 맺힌 컵 표면을 연신 저릿해진 손바닥으로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온도의 스무디 잔 덕택에 삽시간에 손바닥까지 퍼진 열기는 가라앉는 듯했다. 하나 간질거리는 소양감은 쉬이 진정시킬 수 없었다. 흐으……. 은찬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살짝살짝 들썩거렸다.
은찬은 보드라운 엉덩이 살이 딱딱하게 굳을 때까지 힘을 준 채 아래를 조였다. 홧홧하게 조인 둔근이 움찔거리자 살점으로 뒤덮인 예민한 기관들이 함께 자극받았다. 탄력적인 근육으로 감싸인 질구와 항문이었다.
은찬이 아래에 힘을 줄 때마다 두 구멍은 쥐어 짜지듯 조여들며 빠듯해졌다. 자지 맛을 봐 버린 보지는 꿀처럼 끈적끈적한 애액을 쏟아 내면서 기다란 틈 사이를 적셔 가고, 건조한 아랫구멍은 어떻게든 쏟아지는 투명한 물을 받아먹고 싶어 얼얼할 정도로 뻐끔거렸다. 자궁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짐작될 정도로 안이 징징 울렸다.
“아…….”
오싹한 전율과 함께 밀려드는 초조함에 도저히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체면이고 뭐고 벗어던진 채 이예담에게 다시 박아 달라 애원할지 몰랐다. 말하자면, 정말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었다.
은찬은 연거푸 스무디 잔을 아작 낼 기세로 들이켰다. 입술을 뗄 새 없이 벌컥벌컥 잔을 비우는 모습에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예담이 눈꼬리를 지그시 휘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한 잔 더 사 올까요.”
또, 또. 상냥한 척 굴었다.
매번 하는 짓이 지겨울 만도 하건만, 수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응하는 것에 신이 나 저러나 보다. 남동생이 있어 연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그녀였는데……. 이예담 앞에선 취향도 예외가 되는 듯했다.
“필요 없어.”
“그래요, 그럼. 선생님은 취했을 때랑 아닐 때 괴리가 크네요. 뭐, 나쁘단 건 아녜요.”
이예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핏대가 선명한 손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토독, 토독.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규칙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던 은찬은 그 단단한 손가락이 주는 악력을 떠올리곤 다시 한번 고개를 깊숙이 수그렸다.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할 자신이 없어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 은찬아? 괜찮아?”
수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토닥였다. 많이 피곤하면 들어가 쉬는 게 낫겠다며 연신 은찬의 안색을 살폈다.
“어, 어……. 걱정시켜서 미안. 괜찮아.”
은찬은 여전히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웅얼거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 끝이 땀으로 젖어 들고, 땀방울이 맺힌 하얀 목덜미가 점차 불그스름해져 가고 있었다.
“괜찮지 않은 거 같은데요.”
이예담이 커다란 손을 뻗어 와 부드럽게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기억 속 그대로 느릿하고 뜨거운 손길이었다. 인식하자마자 어깨가 말리면서 몸이 움칠 떨렸다.
“으…….”
“선생님, 왜 이렇게 떨어요.”
예담이 다정하게 물어 오자 은찬은 무릎 위로 모은 손을 움찔거렸다. 긴장으로 인해 온몸이 쭈뼛 굳었지만 혈관을 타고 도는 피는 오히려 뜨겁게 타올라, 잠시 스쳤던 살갗 위로 열기가 몰려들었다. 자꾸만 홧홧해지는 숨결에 눈앞이 어찔해졌다.
아……. 팬티가 찰싹 살갗에 붙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온 애액이 치덕치덕 묻어나 흡수되어서는, 천이 점차 무거워졌다. 곧 가랑이 사이를 척척하게 적시며 흘러내릴 기세였다. 바지런히 벌름거리던 아랫구멍으로도 삽시간에 열이 올랐다.
“나, 나…… 먼저 갈게. 수업이 있어서.”
드르륵, 철제 의자를 밀어내며 은찬이 급히 일어났다. 놀란 수민과는 달리 이예담은 애매한 미소를 띠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느라 바빴으니까.
* * *
“하아…….”
은찬은 휴대폰 화면에 띄워진 시각을 확인한 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고민하느라 끙끙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이었다. 대충 세수만 한 채 볼 캡을 깊숙이 눌러쓰고선 옥탑방 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를 폐부 가득 채우자 그나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도서관 카페테리아에서 이예담과 헤어지고 난 이후, 혼자 있는 공간에서 정적이 흐를 때면 매번 그날 밤 일이 떠올라 고역이었다. 수치심을 느끼는 데서 그친다면 문제 삼을 것이 없었으나, 문제는 거기에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한번 쾌락을 알게 된 몸은 조그만 자극에도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올랐다. 선명한 오감이 떠오를 때면 자꾸만 보지 안이 아릿할 정도로 자궁이 발씬거렸다. 식히려 들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었다.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성욕은 예전처럼 자지를 쥐고 흔드는 데서는 끝을 볼 수 없었다. 끈끈한 점액으로 가득 찬 붉은 질 벽을 커다란 것으로 채우고파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청소년기 시절, 급격한 신체 변화에 적응하느라 처리하지 못한 성욕이 지금에서야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아……. 정신줄, 잡자.”
중얼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이었다. 정문에 다다르자 이를 알리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하나같이 들뜬 목소리, 신난 기색이 만연한 얼굴을 하고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비추는 대학생 그 자체의 모습을 한 무리들이었다.
은찬은 아는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걱정하며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수민이 보였으나 일부러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잰걸음으로 반대편을 향했다.
텅, 텅. 건물 외벽에 난 철제 계단을 빠른 속도로 올라가며 인파에서 멀어졌다. 늘 반가운 수민이었지만, 익히 예상되는 대화 주제에 그녀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큼은 이예담에 관한 그 어떠한 이야기에도 맞장구를 쳐 줄 자신이 없는 까닭이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후드 티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ㅗ
생각해 봤어요? 오후 13:12]
이예담이다. 홧김에 이름 대신 ‘ㅗ’로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엿이나 먹으라는 의미였다.
도망치듯 헤어진 날 이후로 이예담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과외를 제안해 왔다.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은찬이 가르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였다. 매번 매몰차게 거절하는 은찬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러브콜이었다.
차단해 버리면 마음이 편할 테지만 수민과 엮인 상태에다 제 비밀을 쥐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어떤 헛짓거리를 할지 몰라 끈을 붙들고 있는 참이다.
〈이예담. 네가 나라면 너랑 다시 과외 하겠어?〉
〈네. 해요.〉
〈미쳤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선우 형이 이번 과외 잘 끝나면 내년에도 소개해 준다고 했다던데. 아닌가.〉
〈…….〉
이예담 과외 건과 비슷한 수준의 과외 하나만 더 소개받으면 내년 두 학기는 거뜬할 텐데. 그러면 이후 취업 준비까지도 큰 걱정은 없을 테고……. 현실을 짚는 예담의 말에 은찬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그래도 더는 이예담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예담을 마주하면 긴장하는 몸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자꾸만 모르는 낯선 자신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평생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었는데.
은찬은 문자에 답장하지 않은 채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가끔 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얼굴이 보여 가볍게 손을 흔든 다음, 제일 구석 자리로 가 앉았다. 팀플 따위는 없는 수업이라 부러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아…….”
영 꽝이었다. 마음속으로 정해 둔 데드라인까지 결국 새로운 과외는 성사되지 않았다. 은찬은 오늘 수업이 끝나고 가기로 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떠올리며 무거워진 어깨를 주물렀다.
구인 광고가 나온 곳들 중 수업과 겹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지나치게 늦게 끝나는 술집까지 빼니 재학 중인 남학생을 원하는 곳은 극히 일부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내정된 곳이 학교와 자취방 사이 길목에 있는 식당이다.
* * *
“은찬아, 3번 테이블에 삼겹살 1인분 추가해 줘.”
“네, 네. 지금 가요.”
생각보다 아르바이트는 더 힘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떠들기만 하다 오는 과외 외에 처음 해 보는 육체노동이라 더욱 그랬다. 손님들이 들이치는 피크 시간대에는 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고 조금이라도 신경을 다른 데 두었다간 불판에 손을 데기 일쑤였다.
“은찬아, 7번 테이블!”
“네, 갈게요.”
3번 테이블에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다른 테이블에서 호출이 불린다. 은찬은 이제 어느 식당에 가도 종업원을 채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기계적으로 몸을 옮겼다.
“손님, 어떤 거 필요하세요?”
“계란찜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맥주잔이랑 수저도요. 사람 한 명 더 올 거거든요.”
“네. 한 분 자리 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자리 잡은 지 시간이 꽤 흘러 곧 나갈 거라 생각했던 테이블이었다. 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는 은찬의 등 뒤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근데 민선우 생각보다 되게 수더분하지?”
“맞아. 경영대 티가 안 나. 경영대는 대부분 특기자 전형으로 채워서 같은 금수저 천지일 텐데도.”
“오늘도 삼겹살집인데 온다고 하니까…… 왠지 황송하다?”
“더 황송해해. 어차피 민선우가 쏠 거니까.”
“아하. 무릎 꿇고 기다리고 있으면 되냐?”
민선우. 경영대에 금수저.
키들대는 말소리 중 제가 아는 인물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에 은찬이 미간을 구겼다. 좁은 인간관계에 그나마 안도하고 있었는데 역시 학교 근처에 위치한 식당은 그런 은찬조차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
하필이면 더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민선우라니. 초조해진 마음으로 잠시간 아랫입술을 핥던 은찬은 곧 바쁜 분위기에 휩쓸려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은찬이 7번 테이블로 계란찜을 담은 뚝배기를 가져다 놓았을 때였다. 때맞춰 등장한 민선우가 다가오자 기다리던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반겼다.
“민선우! 왜 이제 와.”
쿵,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장난스럽게 민선우를 탓했다. 그러다 그 손짓에 반찬을 담은 접시가 밀려나 테이블 밖으로 쏟아지려 했다. 반사적으로 접시를 잡으려 하던 은찬의 손가락 끝이 막 달구어져 나온 뚝배기에 닿았다.
“아!”
“헉. 괜찮으세요?”
“뭐야?”
손가락 끝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는 은찬을 보고 테이블에 앉아 있던 무리가 당황해 모여들었다. 가시거리 밖에 있던 민선우 역시 궁금한 눈빛으로 저를 등지고 선 은찬에게 빠르게 다가섰다.
“죄송해요. 제가 친구가 반가워서 오버하다가…….”
“괜찮아요. 조금 덴 것 같아요. 차가운 물에 담그고 있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연신 사과하는 손님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 은찬이 돌아서려 하던 찰나였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민선우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더니 그를 붙잡았다.
“은찬아, 너 여기서 일해?”
“아, 네…….”
“너 과외는……. 아니, 우선 손부터 어떻게 하자. 일단 흐르는 물에 손대고 있어. 근처 약국에서 화상 연고 좀 사 올까?”
“아. 그 정도는 아닌데요. 괜찮아요, 선배님.”
은찬은 민선우를 극구 말리곤 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조그만 소주잔에 물을 담아 손가락을 담그니 한결 나았다. 약간 따가운 느낌은 남겠지만 일을 시작하던 첫날, 불판에 손을 뎄을 때에 비하면 가벼운 화상에 불과했다.
틈틈이 소주잔에 손가락을 담그며 남은 서빙을 끝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민선우 테이블은 어느새 계산을 마치고 떠난 뒤였다. 근처 약국을 언급하더니 역시 그냥 던지는 의례적인 말이었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으니 서운해할 거리도 없었다. 은찬은 정해진 시간까지 제 몫의 할 일을 해내곤 가게를 나섰다. 밤공기가 적당히 서늘해 달아오른 엄지를 식혀 주는 듯했다. 그리 생각하자 별다른 통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얼른 집에 가서 얼음찜질로 마무리한 뒤 털어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고깃집에서 밴 기름진 냄새 위로 청량한 향이 뒤덮였다. 밤공기에 섞인 상대의 체향이 선선한 바람에 실려 오며 특유의 체취를 전했다. 설마. 은찬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며 제 예감을 확인했다.
“…….”
이건 뭐 홍길동도 아니고 어떻게 가는 길마다 불쑥불쑥 나타나서 발에 채는 건지. 은찬이 말없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을 쏘아봤다. 이예담이었다.
“손 다쳤다면서요.”
“……뭐?”
“봐요.”
예담은 머뭇거리는 은찬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러자 희미한 가로등 조명 아래 두 사람이 가까이 맞붙게 되었다. 애초에 그리 크게 덴 것도 아닌 손가락에 노란빛 조명이 더해지자 육안으로 더욱 구분이 힘들어졌다.
예담이 깊은 눈매를 가느다랗게 뜨며 제 손바닥 위에 올라간, 한 마디만큼 차이 나게 작은 손을 천천히 훑었다.
“야, 뭐 해.”
은찬이 이맛살을 구기며 손목에 힘을 주었다. 비틀어 빼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예담은 제 손에 쥐고 있는 손이 빠져나가기 전에 빠르게 엄지를 낚아채 입 안으로 빨아 당겼다.
“너, 뭐……야!”
뜨끈한 점막이 손가락을 감싸 왔다. 바깥 공기와 월등히 차이 나는 따뜻한 입 안은 닿는 곳마다 부드럽다 못해 여렸다. 투명한 타액이 질척하게 녹아들며 엄지를 적시고, 곧이어 말캉한 혀가 손가락 끝을 살살 문지르며 은근하게 감겨 왔다.
손가락을 빨면서도 느른하게 내리깔린 시선은 여유 있게 은찬을 살폈다. 당혹 어린 눈동자, 상기된 뺨, 살짝 벌어진 채 달싹이는 입술을 따라 진득하게 오르내렸다.
“이……잇!”
놀란 은찬이 손목을 빼내려 하자 예담은 잡은 손아귀에 더욱 악력을 주었다. 작정하고 힘을 준 단단한 손가락과는 달리 부드럽고 느릿한 속도로 혀를 둥글렸다. 일말의 마찰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농염하고 은근한 접촉이었다. 그러곤 은찬과 마주한 눈매를 샐쭉 접었다.
촉촉하게 닿아 오는 점막이 주는 감촉에 은찬의 입술 사이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이미 진정된 줄 알았는데 감싸인 엄지 전체가 찌릿찌릿, 정전기가 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엄지가 아닌 아랫배도 톡톡 튀었다. 온몸이 진탕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에 버티고 선 하반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하으읏…….”
아무도 지나지 않아 고요한 골목 안, 이예담이 혀 굴리는 소리가 적막 속에 울려 퍼졌다. 간간이 뜨거운 숨결을 내뿜는 은찬의 호흡만이 섞여들 뿐이었다.
쭙, 쩌걱. 질척하고 음습한 그 소리는 노골적인 시선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흐으…….”
마침내 쵹, 한참을 물고 빨아 대던 젖은 입술이 오므라드는 소리가 나면서 보이지 않던 손가락이 흠뻑 젖은 모습을 드러냈다. 은찬은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느릿하게 눈꺼풀을 끔뻑였다. 몇 초간 얼어붙은 것처럼 미동이 없더니 한참 뒤에야 반응해 왔다.
“너 대체…… 무슨 짓이야?”
엄지를 꺼내며 젖은 입술을 닦아 내던 예담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아플까 봐.”
하여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은찬은 이예담의 타액으로 점철된 엄지를 조용히 바라보다 어쩌지 못한 채 작게 욕설을 뇌까렸다. 이걸 옷에 닦기도, 그냥 내버려 두기도 찝찝했다.
“여기는 왜 왔어. 너 혹시…… 선우 선배가 여기 알려 준 거야?”
“선생님.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네요. 뭘 또 그런 이야길 듣고 여기까지 쪼르르 쫓아오겠어요.”
“…….”
하긴. 과외를 안 하고 있으니 어디서건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진작 추측은 했을 테다. 거기다 제가 뭐라고 이예담이 굳이 여기까지…….
“그런데 얘기 전해 듣긴 했어요. 알바 하다가 다친 거. 그러게 그냥 과외 하면 좀 좋아요.”
“너나 좋겠지.”
“흐음, 나만 좋은 건 아닐 텐데. 선생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페이에, 몸도 편하고, 내년도 보장되고. 좋은 것투성이잖아요.”
“그 좋은 것투성이인 과외를 내가 왜 거절하는지 잘 생각해 봐. 나 피곤해. 비켜.”
은찬은 손으로 예담을 밀치고선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타액이 질척하게 엉긴 손가락도, 뜨거워진 아래도 급했다.
* * *
아침 일찍부터 잡힌 강의를 듣고 나서 학생 식당에서 제일 싼 백반으로 점심 식사를 주문했다. 메뉴보다는 가격을 우선순위로 두고 고른 참이었다. 금세 배식구로 나온 식판을 가지고 앉아 기계적으로 음식을 씹어 넘겼다.
“에휴, 맛없다.”
긴축 재정이었다. 매달 선불로 들어오는 과외비에 맞추어 생활해 온 터라 최대한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서럽게도 돈이 없으면 제일 먼저 체감되는 게 식생활의 질에 일어나는 변화였다.
은찬은 식사를 끝내자마자 경영대 건물로 향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 부쩍 체력이 약해졌다. 고작 1시간밖에 되지 않는 공강 시간이라도 아껴 과방에서 잠을 자 둘 생각이었다.
“3층이었던가…….”
1학년 초, 심한 숙취에 잠을 자러 온 이후로 처음 방문하는 과방이었다. 운이 맞아떨어져서 입학 후 쭉 과외로만 버틸 수 있었던 덕에 그간 이곳을 찾을 일이 없었다. 은찬은 목을 쭉 뺀 채로 3층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럼 아버님께 안부 전해 드리게.”
“네, 교수님. 들어가 보겠습니다.”
방금 지나온 복도 끝에서 울리는 음성이었다. 같은 층에 어떤 교수가 있지……. 은찬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가던 길을 마저 향했다. 그러다 성마른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걸음을 멈추었다.
“은찬이?”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민선우였다. 요즘 자주 마주치네. 하긴 경영대 건물인데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민선우와 마주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날 손가락은 괜찮았어?”
“네. 정말 별거 아니었어요.”
“그래. 내가 챙겨 준다는 게 일이 있어서 바로 가 버렸네.”
“괜찮아요. 알바 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에요. 그날 있었던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요.”
은찬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예의상 하는 말에 진심인 타입인가.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슬슬 피곤해졌다.
“근데 은찬아, 예담이 과외 그만둔 거야? 거기서 알바 하고 있길래.”
“아……. 어쩌다 보니……. 기껏 소개해 주셨는데 죄송해요.”
“왜? 페이가 잘 안 맞았어?”
“아뇨. 아뇨. 과외비는 과분하게 많았어요. 그게 아니라……. 제가 과외 하는 스타일이랑 예담이 공부하는 스타일이 잘 안 맞아 가지고…….”
“그래? 예담이는 네가 가르치는 거 정말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 그 집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
이쯤 말하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민선우는 보기와는 다르게 눈치가 없는 스타일 같았다. 완곡히 돌려 말해도 떨어져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쉬러 온 건데 방해받는 기분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집요한 면까지 있었다.
“하아…….”
피곤했다. 은찬은 겨우겨우 민선우를 떼어 낸 뒤 과방 문을 열었다.
다행히 저 외엔 아무도 머물지 않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나마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천근 같은 몸을 간이침대에 누이자마자 팔꿈치를 교차해 눈을 가렸다. 창을 통해 들이치던 햇살이 차단되자 곧 수마가 밀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음…….”
아직 휴대폰에 설정해 둔 알람은 울리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울려 대는 진동 소리에 은찬이 짜증스레 눈꺼풀을 끌어 올렸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하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05X-XXX-XXXX]
낯설고도 익숙한 지역 번호를 확인한 은찬은 곧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아빠?”
* * *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인 부촌에서도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예담의 집은 오늘따라 더욱더 닿을 길 없이 높아 보였다. 은찬은 익숙한 오르막을 거쳐 거대한 담벼락 앞에 선 채 초인종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손끝은 기어이 초인종에 닿지 않았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잠자코 담벼락 끝만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철컹, 대문이 열리면서 시커먼 그림자가 은찬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흐으. 켁, 켁.”
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등장한 흐릿한 인영에 은찬이 눈살을 찌푸리고 잔기침을 해 댔다. 몇 번 공중으로 손을 휘젓자, 매캐한 담배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인영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예담이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나른한 시선이 짓씹느라 부르튼 입술을 향해 쏟아지다 천천히 방향을 달리했다. 느긋하게 내려온 시선은 목덜미를 지나 어깨와 팔뚝을 매만지듯 느릿느릿 훑어 내린 뒤, 초라한 발끝까지 닿아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떨어진 시선은 그렇게 오랫동안 은찬을 어루만졌다. 눈길만으로도 손길이 닿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은찬은 애써 외면하며 운동화 앞코만 바라보았다.
“…….”
“…….”
전신을 더듬는 듯한 관능적인 시선에 긴장한 온몸의 근육이 잔뜩 수축했다. 직접적인 접촉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세포가 찔려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은찬은 어깨를 움츠린 채 한참을 숨죽이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언제 열기 어린 시선을 보냈냐는 듯, 마주한 예담의 눈동자는 잠잠하게 침잠해 있었다. 어떠한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으로 무심히 은찬을 내려다본 예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태 한 번도 겪은 적 없었던 싸늘한 태도였다. 고양이 앞의 쥐도 저보다는 자존심을 챙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얼추 예상했을 텐데……. 은찬은 말을 꺼내지 못한 채 한참 입술만 달싹였다.
“…….”
어느덧 그의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연초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스윽, 슥 무감한 표정으로 꽁초를 짓이긴 예담이 고개를 대각선으로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들어갈까요.”
“가, 가지 마.”
다급한 목소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절박했던 나머지 은찬은 저도 모르게 이예담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의 진동이 예담에게까지 선연히 전달되었다.
“……아. 들어가서 얘기하잔 말이었는데.”
예담이 제 옷을 힘주어 붙잡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뒤늦은 굴욕감에 화들짝 손을 떼어 내는 모습에 예담이 입가를 가리고 낮게 웃었다. 커다란 손등에 가려진 시원한 입매가 얼핏 시야 끝에 걸려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