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현기증
오후 6시 40분. 독립영화관 ‘W’
상영 시간까지는 아직 삼십 분의 여유가 있었다. 저녁을 먹기엔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두 사람은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바깥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서 맥주만 시켜놓고 드문드문 대화했다.
잠시 후 직원이 밀 맥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상기되어 있던 채민은 맥주를 받아 들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직원은 윙크로 화답하며 나머지 맥주도 내려놓고 뒤로 돌았다. 그러자 ‘음?’ 하고 짧은 감탄사를 놓은 세정이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채민을 돌아봤다. 채민은 아차 싶어서 사과했다.
“간만에 형이랑 나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나 봐요.”
“그렇게 헤프게 웃으면 내 기분은 상하겠죠, 우채민 씨….”
어르는 투로 말한 세정은 이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래도, 우리 밖에서 보니까 좋네요.”
“네.”
“이렇게 외출복으로.”
세정의 눈짓에 채민은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모습을 훑었다. 그는 검은색 니트 차림이었다. 핏이 예쁜 아이보리색 슬랙스를 입었고 위에는 짙은 브라운 코트를 걸쳤다. 피부 보호용으로 선크림도 옅게 발랐으며 반지도 다섯 개나 꼈다. 또, 그는 머리도 완전히 넘겨서 고정시켰는데, 겨우 영화 한 편 보러 온 것치고 유난히 힘을 준 차림새였다.
나오기 전에 뿌린 향수 냄새가 여태 곁을 맴돌고 있었다. 정작 앞에 앉아있는 애인은 머리를 내린, 아주 편안한 복장이었는데 말이다.
운동을 한 뒤 간단하게 씻고 바로 나온 세정은 가벼운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차고 있는 액세서리라곤 커플링 하나였고, 그마저도 손가락으로 뺨을 감싸고 손목 부근으로 입술을 누르며 턱을 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옷차림에 힘을 푼 오늘, 그는 오히려 더욱 멋있어 보였다. 본연의 매력이 두드러져서 훨씬 청순해 보인다고 할까. 왜 이 사람은 뭘 걸쳐도 이리 태가 나는 것인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를 계속 보고 있자니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듯하여, 채민은 고개를 숙였다. 주머니에서 미리 뽑아둔 종이로 된 영화표를 꺼내서 글자를 읽는 시늉을 했다.
“오늘 영화 기대되죠?”
“네, 우채민 씨.”
들뜬 물음에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고개를 든 채민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예리한 눈매와 마주했다. 그는 어느새 턱에 대고 있는 손을 내리고 있었다.
“우채민 씨도 영화가 기대돼요?”
“그럼요.”
그 가벼움이 신경에 거슬린 것처럼 세정은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침묵이 있다가 그가 다시 물었다.
“정말 기대가 돼요? 끝까지 볼 자신이 있어요?”
“…그럴 거예요.”
그는 어떤 부정의 말을 내놓기를 원한 듯했다. 그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리던 채민은 불현듯 정신이 든 것처럼 재빨리 말했다.
“끝까지 봐야죠. 본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난 볼 건데. 우채민 씨 괜찮은지 묻는 거예요.”
채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괜찮지 않을 일이 뭐가 있느냐고 응수했다. 고집처럼 보였는지 세정은 냉소하며 시선을 돌렸다.
오늘 두 사람은 다비드 한의 영화, <설경>을 보러 왔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몇 주 전에 봤었어야 했지만, 세정을 설득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 번 놓친 뒤, 안 그래도 적은 상영 일정에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날을 잡게 된 거였다.
영화를 보러 가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세정은 제 목을 조른 남자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기어코 보러 가겠다는 채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고집으로 우기는 거냐고, 남배우의 얼굴을 의연하게 견딜 자신이 있느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채민은 제대로 답도 못하고 있다가 제가 만든 음악을 상영관에서 듣고 싶을 뿐이라는 말로, 세정의 동행을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뒤끝이 남은 허가였던 터라 지금 세정이 묘한 얼굴로 이렇게 묻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번의 관람에는 세정에게 변명한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채민은 다비드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목이 졸린 후로 며칠이 더 지나고, 온몸에 깁스를 한 다비드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사과를 건네 온 일이 있었다. 채민의 눈치를 심하게 살피며, 같이 하던 작업은 계속 이어가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그 모습이 처량해 보이는 한편, 부담스러웠다. 애당초 자신이 이 남자를 쳐내고 술자리에 따라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들기도 했다.
분명 다비드보다는 세정이 더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다비드를 완전히 외면하기란 어려웠다. 자신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핑계를 대어서라도 영화를 보러 온 것이겠지…….
채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화 티켓을 보고 있는데, 맥주를 마시던 세정이 뜬금없이 물었다.
“우채민 씨, 가지 좋아해요?”
세정을 따라 막 맥주에 입술을 가져다 대던 채민은 입에 머금는 것 없이 도로 컵을 내려놓았다. 그는 맥주 대신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가지…. 가지 좋죠. 왜요?”
“집에서 항상 생가지만 만지작거리고 있던데.”
채민의 입이 벌어졌다. 몇 달 전부터 채민은 이따금 가지를 이용해서 펠라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께가 입에 다 들어갈 리가 없었으니, 연습은 단지 시늉에 불과했다. 끝부분만 조금 빨아보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채민은 제 기가 막힌 펠라티오에 세정이 흥분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특별히 섭취하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요.”
“…먹진 않아요.”
“그럼 그걸로 뭘 하는데요?”
채민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항상 자신을 CCTV로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가지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않기에 그가 알면서도 묵인하는 줄 알았다. 내지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설마 이 타이밍에 ‘가지만 만지작거리고.’라며 전혀 모르는 눈치로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지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대체 어떤 말로 답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 연습도 하고.”
“무슨 연습을 하죠?”
채민이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자, 세정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눈만 가늘였다. 채민은 급하게 말을 뱉었다.
“펠라 연습하고 있었어요.”
시선을 맥주에 고정시킨 채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형이 펠라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사실 크기 맞춰서 도구를 사고 싶었는데….”
“…도구?”
“네. 성기 모양 장난감이요. 맞춤 제작해주는 곳이 있어서, 주문 한 번 넣어볼까 했어요. 그런데 집에 그런 게 굴러다니면 뭔가 민망할 것 같고, 그래서 대용할 걸 찾다가…… 갑자기 가지가.”
채민은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정이 웃음기 한 점 없는 얼굴로 채민을 가만히 직시하고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상한 건지 그는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단단히 맥주잔을 쥐고, 입꼬리를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심장부터 뛰었다. 그를 부르기 위해 입술을 뻐끔거렸을 때, 그가 배속을 조정한 것처럼 느리게 잔을 내려놓았다. 달칵, 잔의 모서리가 테이블에 닿는 소음이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계속 말해요.”
나온 말은 의외로 무게 없이 나른했다.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채민은 변명조로 말했다.
“집에 있는 가지를 입에 넣고서 좀 빨아본 것뿐이에요. 그게 형…것이라고 생각하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어요.”
“아.”
그는 놀랍다는 듯이 눈썹을 올리고, 적당히 감탄했다. 조롱이 다분히 섞여있는 얼굴이었다. 그 조롱기가 지워지고 무표정에 가까운 정색으로 얼굴이 바뀌는 순간,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채민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몸을 긴장시킨 채 그대로 굳어있던 채민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려가 세정의 팔을 잡아 세웠더니, 그가 격양을 억누른 어조로 말했다.
“아주 뻔뻔하게…….”
“혀, 형. 왜, 갑자기 왜 그러세요.”
“우채민 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봐요. 남 돌게 만들고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이면, 대체 어쩌잔 거지?”
아마도 아까 계속 말하라고 했던 말은 경고의 의미였나 보다.
목소리에 힘을 준 채 천천히 말을 잇는 세정은 정말 기분이 나쁜 얼굴이었다. 간신히 분노를 참고 있는 듯 말끝이 조금 떨렸고, 표정에선 배신당한 사람처럼 실망이 깃들어 있었다. 이 근래 이처럼 열 받은 세정을 본 일이 없었기에 채민은 제가 잘못을 해도 단단히 잘못했구나 싶어 손끝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에게 세정이 고갯짓했다.
“가서 앉아있어요. 전화만 하고 올게요. 집에 있는 가지, 내 눈에 띄지 않게 태우라고.”
“…가지는 왜.”
의문스럽게 되물은 채민은 불쑥 이상한 가정 하나를 떠올려냈다. 설마 자신이 천박한 짓을 했다고 화가 난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것 같아서 쉽게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고민이 깊어진 채민은 이마를 짚으며 머리를 푹 수그렸다. 가정이 진짜라면… 펠라를 다음부터는 안 해야 하나.
아…. 싫은데.
왠지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채민은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내려 얼굴을 감쌌다. 낮게 신음하며 고개를 더욱 숙이는데, 세정이 바짝 다가오는 기척이 났다. 세정은 “우채민 씨.” 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몇 번 불러보더니 채민의 손을 치워내고 두 뺨을 쥐었다. 채민의 얼굴을 살핀 세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는 척을 해?”
“아, 아니에요.”
“가지 좀 건드린다고, 지금 날 속였어요?”
“속인 게 아니고…. 진짜 우는 척한 거 아닌데요….”
호흡하느라 어깨를 움직인 동작이 울음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세정은 적잖이 당황한 모양인지 전화를 하러 가려던 것도 잊고 채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인 채 채민을 뚫어지게 직시하면서, 다른 손을 뻗어 채민의 눈두덩 아래를 엄지 끝으로 눌렀다. 가볍게 쓸고, 흐르는 것이 있나 살폈다. 당연하게도 눈물은 한 방울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정말 속인 게 아닌데. 속일 생각이었다면 가짜로라도 눈물을 쥐어짜 내지 않았겠는가. 채민은 고개를 저으며 변명해보려고 애썼지만, 이미 세정의 오해는 깊어진 뒤였다.
“알 수가 없네요. 그 가지가 그렇게 중요해요?”
“…….”
“전에 말했죠. 걸리면 조각조각 갈아버릴 거라고.”
세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 책망하는 어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채소로 펠라 연습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죄인이 되었다. 무엇을 배신했는지는 몰라도 배신자가 되었다. 이 상황이 미치겠는 건, 그의 감정을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걸리면 조각조각 갈아버릴 거라고 하지 않았었냐는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채민에게 가지로 펠라 연습을 하기만 해보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없었으므로.
혼란에 잠긴 채민은 이제는 정말 울기라도 할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세정이 말을 멈추고, 그가 홀로 추스를 수 있도록 기다렸다. 잠시 후 채민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세정은 말을 더 이어갈 마음이 없는지 침묵했다.
둘 사이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얼마간 채민을 관찰하던 세정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눌렀다.
“밖에서 미안해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가 한발 물러났다. 덕분에 이 상황에 관해 충분히 고민해볼 시간을 번 채민은 작게 안도하며 “네.” 하고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나왔지만, 워낙 작게 말해서 눈치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채민이 의연해 보려고 노력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사이, 세정이 느리게 주변을 돌아봤다.
“극장에 미리 가 있을까요, 아니면 다시 맥주 마시러 갈까요?”
“…….”
“내가 우채민 씨 좋은 기분을 망쳤네요.”
“아, 아니에요. …극장 매점에서 맥주 마실까요?”
세정은 그게 좋겠다며 극장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영화관까지의 그 짧은 거리, 두 사람 사이로 변변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채민은 세정의 얼굴을 연신 곁눈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다양한 이유로 금세 기분이 다운되는 세정을 알기에 이제껏 그가 화를 낼 만한 요소를 사전에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번 일은 도통 모르겠다. 그의 속내가 전혀 파악이 안 됐다.
저 속을 뜯어볼 수만 있다면…….
머리를 휘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 채민이 다시 세정을 쳐다봤다. 착잡해 보이는 그 얼굴을 바라본다. 채민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세정의 다그침으로 기분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와 닿아있어야 했다. 분노하다가도 채민을 위해 한 발 굽혀주는 그처럼, 채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정에게 신뢰를 전달해야 했다. 나는 형이 내게 어떤 모진 소리를 해도 형이 밉지가 않다고. 채민이 그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제 손을 내려다본 세정은 말없이 마주 잡았다. 여전히 둘 사이엔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으나, 상영관까지 손을 놓지도 않았다.
***
세정이 예상한 대로, 채민은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스크린 속 주연 배우가 영화를 찢고 나와서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자꾸 든 탓이었다. 그 남자가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까지는 참고 볼 법했는데, 드물게도 더빙되지 않은 영화라 배우의 목소리가 상영관 내에 직접적으로 울려 퍼지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채민은 십오 분도 버티지 못하고 시선을 깔았고, 세정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죠?” 하며 채민이 민망하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주곤 그를 데리고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씻으러 흩어졌다. 간단히 샤워만 하고 먼저 나온 채민은 식탁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굳이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우긴 멍청이의 말로가 바로 이런 것인가, 자꾸 한숨이 나왔다. 다비드에게는 그냥 적당히 잘 봤다고만 이야기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음악을 편집하면서 영화는 수십 번 봤으니, 그럴듯하게 감상평을 꾸며내 볼까.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움직여서 휴대폰을 쥐었다. 몇 주 전에 끊긴 메시지를 이어갔다.
<오늘 보고 왔습니다. 연출도 괜찮고, 미장센도 좋았어요>
그는 여기까지 썼다가 부족한 것 같아서 한마디 덧붙였다.
<감동적이었어요>
쓰고 보니 감상에 성의가 없어 보인다. 화면을 노려보며 고민에 잠겨 있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보고자 영화 후기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머쓱하게도 그곳에는 별 하나 혹은 두 개짜리의 혹평만 가득했다. 대부분의 리뷰는 <이게 실패한 연출이 아니라면 그는 끔찍한 혐오자다>나 <자막을 읽느라 집중할 수 없었어. 음악은 아름답더라> 사이에 있었고, 좋은 리뷰라고 해봤자 <재밌어요> 따위의 짧은 글밖에 없었다.
어떤 후기를 참고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고민에 잠겨있는데, 바로 앞으로 긴 손가락이 뻗어졌다. 주의를 끌 듯 식탁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채민은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세정을 올려다봤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오자 좋은 냄새가 풍겼다. 유난히 창백한 피부와 물기 하나 없음에도 촉촉해 보이는 머리카락. 채민은 한 호흡을 견뎠다가 다시 들이마셨다.
“우리 못한 이야기 있었죠?”
“예?”
“할 얘기 있잖아요.”
주춤하던 채민은 아까 했던 가지 이야기를 떠올려내고 아, 하고 탄식했다. 이렇게 곧바로 대화를 청할 줄은 몰랐는데. 아직 그가 왜 화났는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머쓱한 마음도 들어서 머뭇거렸더니 세정이 말했다.
“우채민 씨가 서운한 게 있으면 모두 말하라고 했어요. 기억 안 나요?”
채민은 침실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떠올렸다. 세정이 지켜줘야 할 목록이 적힌 종이의 일 번에는 <서운한 부분은 그때그때 말함 (걸쩍지근한 거라도)>라고 적혀 있었다. 그 목록을 만든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세정이 지키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이용당할 줄은 몰랐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으려고 품을 뒤졌지만, 옷을 막 갈아입은 직후라 당연하게도 찾을 수 없었다. 채민은 세정을 따라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의 조명이 밝았다. 세정이 조도를 낮추는 동안 먼저 소파로 간 채민은 옆자리를 비워놓고 허리를 펴고 앉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자, 어쩐지 훈육 받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잠시 후 세정이 그 옆에 앉았다.
“가지는 다 버렸어요.”
“……네.”
아까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이 웬 종이봉투를 한 아름 끌어안고 나가는 모습을 봤었다. 아마 그 안에 가지가 들어있었나 보다. 그분도 집에 있는 멀쩡한 가지를 싹 다 가져다 버리라는 지시를 받고 황당했겠지. 채민도 이런 걸로 혼이 나는 자신이 황당했다. 채민이 손톱으로 소파의 가죽을 긁으며 꼼지락거리고 있자, 세정이 눈두덩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우채민 씨 미안한데, 난 너무 불쾌했어요.”
채민은 입을 벌렸다가 아무 말도 않고 다물었다. 아까 스치듯 했던 가정이 사실이 되고 있었다. 역시 자신이 밝히는 게 천박해 보였던 건가…. 채민은 힘없이 대꾸했다.
“그렇게 싫어하실 줄은 몰랐어요. 다음부턴 가지… 쳐다도 안 볼게요.”
“그래야죠.”
“연습도 안 할게요. 펠라도 안 하고… 먼저 하자고도 안 할게요.”
그 말에 세정은 찌푸리고 있던 눈살을 의아하게 치켜떴다. 채민은 바닥을 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저는 형이, 저랑 섹스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더 좋아지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뿐인데.”
세정은 사고가 정지한 듯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채민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제가 다소 과했나 봐요.”
“뭐라고요?”
“예?”
“내가 왜… 안 좋아해. 나는.”
세정이 날카로운 눈매를 누그러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왠지 조금 삐져있는 듯한 채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채민 씨가 내 몸이 아닌 다른 물건으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걸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우채민 씨가 그걸로 자위하며 날 생각했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마음만 먹는다면 날 대용할 수 있는 물건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싫단 거지.”
“…….”
“섹스가 하고 싶으면 자자고 하면 되잖아요. 좆이 빨고 싶으면 대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연습도 나한테 하면 되는데. 우채민 씨가 하고 싶다고만 하면 난 매일 해줄 수 있고, 하루 내내 해줄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아….”
“어떻게 가지 따위에 질투하게 만들지?”
채민의 귀 끝이 붉어졌다. 채민이야말로 묻고 싶었다. 어째서 가지 따위에 질투를 하는 거지? 채민이 혼자 더러운 짓을 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다른 의미로 더욱 당혹스러워졌다.
“채민 씨, 그건 바람이에요. 다신 하지 마요.”
심지어 바람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형을 위해서 채소를 가져다가 연습 몇 번 했을 뿐인데, 졸지에 바람을 피운 파렴치한이 되어버렸다. 채민은 우물거리며 변명을 했다.
“개인적으로 성욕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어요.”
“알아요. 아까 말했잖아, 연습했다고. 하지만 연습도 하지 마요. 내 것 말곤 아무것도 빨지 마요.”
“…네, 형.”
“아. 그리고….”
“네?”
“우채민 씨, 내 좆은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어요.”
세정이 진지하게 말한 탓에 채민은 웃지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어떤 식으로 대꾸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세정이 그의 등을 슬쩍 밀었다. 미는 힘에 따라서 소파 밖으로 밀려난 채민은 바닥에 엉거주춤 선 채 세정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세정이 한 손으로 바지를 풀고 있었다. 끝만 살짝 풀어서 지퍼를 연 후 성기를 꺼냈다. 아직 발기가 덜 된 성기가 휘어지면서 튕겨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채민은 당황할 겨를도 없이 숨부터 참았다.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 길쭉한 성기로 향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삼켜지고, 아래가 뻐근해졌다. 세정은 귀두 부근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비비며 채민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매일 박히기에 급급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충분히 봐요.”
채민은 얼결에 세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뭇거리며 소파에 두 손을 올리고, 말 그대로 멀뚱히 그의 것을 감상했다. 어느새 완전히 발기한 성기는 핏줄이 살짝 도드라져서 붉은 기가 돌았다. 그래도 몹시 진하거나 검붉은 편은 아니라서 보기에 부담되지 않았고, 길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긴 데도 휘지도 않아서 건강해 보였다. 특히 귀두 부근이 모양도 둥글고 색이 예뻤는데, 채민은 무심결에 그것을 쥐려다가 흠칫 놀라 손을 물렸다.
세정은 어이없는 눈치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해서 성기를 멀뚱멀뚱 보고 있던 채민이 다소 멍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 형. 잘생겼어요. 가지랑 비교도 안 되게…. 어, 일단 모양이 너무 예뻐서 좋고요. 제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세정은 말을 씹을까 하다가 대꾸했다.
“고마워요.”
“예. 음…. 이제 다 된 거 같죠?”
“뭐가 돼요. 채민 씨 그 멍청한 가지한테 했던 대로 해야죠.”
채민은 눈을 크게 뜨고 세정을 올려다봤다. 입에 넣고 빨라는 건가.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세정의 표정만 훑어보고 있자, 세정이 채민의 뒤통수를 잡아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입술의 여린 표면에 귀두가 꾹 닿는다. 그가 뒤통수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은 탓에 채민은 몸을 뒤로 물리지도 못하고 경직되어버렸다.
이 다정한 강요는 뭘까. 자신을 기만하고 혼자 연습했으니까, 얼마나 잘하게 되었는지 한번 보자는 뜻인가. 눈꺼풀을 들어서 재차 세정의 눈치를 보던 채민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느릿느릿 귀두를 물었다. 혀로 둥근 표면을 쓸면서 약간 오물거리다가, 입에 힘을 주어서 좁은 안을 더욱 벌려갔다. 힘닿는 대로 살덩이를 삼키고 따뜻한 입천장으로 데웠다. 그대로 사탕을 빨듯이 빨아보았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채민은 좀 더 용기를 내보았다. 입을 밀도 있게 오므린 뒤에 고개를 뒤로 뺐다가 다시 앞으로 당기면서 쭉쭉 빨았다. 뺨이 홀쭉해지면서 흡착력이 생겼다.
그 순간 세정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채민은 흠칫 놀랐다. 저건 흥분에 겨워 나온 반응이 아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 거침없이 빨던 것을 멈추고 소심하게 입을 움직여봤으나, 세정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문득 세정이 소파에 굴러다니는 담배로 손을 뻗었다. 채민의 것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입에 물었다. 그는 채민이 제 좆을 빨게 두고, 천천히 호흡하며 불을 붙였다. 한쪽 팔꿈치로 소파 등받이를 누르고 연기를 깊이 삼켰다가 흩어 보낸다. 담배에 집중한 그의 표정은 어느새 다시 무감해져 있었다.
하지만 채민은 세정이 여전히 얼굴을 구기고 있다는 듯이 입을 어정쩡하게 벌린 채 계속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세정은 채민이 펠라를 해줄 때마다 꼭 미묘한 얼굴을 하곤 했다. 채민이 펠라 연습을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세정의 태도 때문이었다. 머뭇거리는 채민을 쳐다보던 세정이 연기를 뱉으며 그의 뒤통수를 잡았다.
“왜 멈췄어요.”
다시 채민의 입술이 귀두에 닿았다. 그러나 채민은 입을 벌리지 않고 세정만 흘끔거렸다.
“…그만할까요?”
채민은 읊조리는 듯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세정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세정은 혀로 입술을 느리게 핥으며 약간 웃는 듯 마는 듯 입꼬리를 당겼다. 그가 채민의 뒤통수를 붙잡고 있던 손을 옮겨서 채민의 뺨 언저리를 쥐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만 스르르 미끄러트려서 채민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엄지 끝이 채민의 앞니와 송곳니를 차례로 훑었다. 날카롭던 이가 피부에 눌리며 잠시 위용을 낮추는 듯했다.
“오해할까 봐 말해요. 채민 씨가 빨아주는 걸 싫어하진 않아요. 채민 씨가 이렇게 이로 다 긁어놓으니까….”
“……아.”
“자꾸 인상이 써지는 거지…….”
“죄성애여.”
“고치라는 건 아니에요. 긁어도 돼…. 참아볼게요.”
그걸 참을 수가 있나…. 쓸리고 까지면 아플 텐데.
채민은 멍멍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동안 제 펠라가 싫어서 인상을 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어쩐지 한결같이 세게 빨아줄 때에만 인상을 쓰더라니. 나름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적으로 계속 이를 세웠었나 보다. 채민은 이번에는 정말 조심하겠다며 다시 귀두를 물었다.
자꾸 침이 나오는 통에 목울대를 꿀떡거려가면서 귀두를 끝까지 삼켰다. 기둥 위쪽까지도 조금 더 입에 담은 뒤, 입을 최대한 둥글게 말고서 꽉 조였다. 채민은 목구멍이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로 성기를 끝까지 넣었다가 당기기를 반복했다. 침이 계속 나와서 간혹 추르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머지 기둥을 두 손으로 잡고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사탕처럼 닳아 없어지지도 않건만 열심히 좆의 머리 부근을 빨았다. 거실엔 춥춥, 빠는 소리와 간혹 귀두가 목구멍을 건드렸을 때 채민이 내는 신음 소리만 고요하게 울렸다. 두 번째 담배에 붙을 붙이던 세정이 채민의 힘겨운 표정을 내려다보고는 그의 얼굴을 살며시 밀어냈다. 세정은 담배를 손바닥 안쪽으로 말아 쥔 상태 그대로 검지를 내려서 제 좆의 귀두 부근을 가리켰다.
“지금 채민 씨가 핥은 곳이 여기부터….”
세정은 손가락을 조금 올려서 기둥의 앞부분을 가리켰다.
“여기까지예요. 멍청한 가지도 이렇게 허술하게 빨았어요?”
“목에 닿아서.”
“목까지? 아닐 텐데 이상하네….”
목… 아닌가. 식도인가. 목젖이었나. 하여튼 어디 계속 닿아서 불편했다. 채민은 그가 가지 같은 걸로 연습도 해놓고 왜 이리 못 빠느냐고 책망할까 봐 슬쩍 변명해보았다.
“가지는… 끝부분만 조금 입에 넣고 빨아본 게 다예요. 제대로 연습했다기보단, 그냥 시뮬레이션하는 용도로 사용했어요.”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
채민은 머뭇거리다가 성기를 재차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세정의 허벅지를 움켜쥔 채 이렇게 상상했다고 알려주듯 그것을 입 안쪽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침을 윤활제 삼아서 계속 피스톤질 하다 보니 귀두가 입안 점막을 자극해서 은근한 쾌감이 돌았다. 고개를 좀 더 앞으로 밀어 목젖까지 넣어보려고 애썼다. 목 부근에 뭔가가 닿는다는 거부감 때문에 눈살은 찌푸려지고, 얼굴은 붉어졌다.
“으음……앗!”
기침이 나올 것 같아서 턱에 힘을 주다가, 그만 이를 세웠다. 채민은 제가 더 깜짝 놀라서 세정을 올려다봤다.
“괜찮아요.”
세정은 재떨이를 끌어와 재를 떨어트리고는 채민의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다시 입안으로 기둥이 밀려 들어왔다. 귀두 끝이 좁은 목구멍에 다다르자 채민은 기침을 컥컥 뱉었고, 입에 가득 찬 살덩이를 혀로 밀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빼선 기둥 위쪽만 사탕처럼 빨아댔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는 시선이 날아왔지만, 모르는 척하며 물고 있던 것을 아예 빼내고 고개를 틀어 기둥을 핥았다.
혀를 넓적하게 해서 기둥의 앞부분부터 음낭 근처까지 훑어 내려갔다. 기둥을 타고 흐르는 쿠퍼액을 침과 함께 샅샅이 핥아대고 있는데, 문득 귀에 손가락이 닿았다. 긴 손가락은 귓불을 만지작거리다가 서서히 미끄러져 뒷목을 잡아왔다. 그대로 힘이 실린다. 얼결에 고개가 앞으로 당겨진 채민은 입안을 거침없이 가르고 들어오는 살덩이에 놀라 호흡을 멈췄다.
“…우움! 욱!”
“우채민 씨, 넣어줘요.”
“흐…… 욱! 욱!”
“그렇게 핥으면 느낌이 없어요. 그냥… 간지럽지.”
귀두는 목구멍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어쩔 줄 모르고 세정의 허벅지를 붙잡은 채민은 꽉 막힌 탄식을 흘렸다.
“우욱, 아느……데가.”
말하면서 또 이로 긁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삼켜내고 목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턱이 빠질 것처럼 아렸지만, 그보다는 제 입속 구멍을 찔러대는 살덩이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질척한 살덩이가 점막을 예민하게 긁으며 왕복했다. 분명 빠는 건 자신인데, 살덩이가 제 안을 탐닉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침이 입술을 타고 흐른다.
“흐으… 흐으으….”
눈물을 글썽이며 시선을 들어 올리자, 평소보다 늘어져 보이는 얼굴이 보였다. 문득 자신이 저 남자의 것을 빨며 흥분시켜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 속이 뜨겁게 끓었다. 그때부터 채민은 스스로 고개를 움직이면서 목구멍으로 귀두를 조였다. 거의 호흡하지 않았기 때문에 맛과 향은 느낄 수 없었지만 대신 쾌감이 머리에서 돌았다.
저도 모르게 바지를 끌어 내린 채민은 속옷 아래에서 불룩해진 살덩이를 꺼내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눈을 가늘게 좁힌 채 소파에 기대어 있던 세정이 그것을 보곤 하하… 흐르듯이 웃는다. 상황과 맞지 않는 천진한 웃음이라 채민은 그 얼굴을 빤히 보면서 성기를 흔들었다.
“내 걸로 자위해요?”
정확히는 얼굴 보고 하는 거였지만, 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서 꿈틀거리는 성기를 힘을 주어 조이면서, 자위하지 않는 다른 손으로 그의 음낭을 쥐었다. 목구멍으로 세게 조이며 음낭을 주물럭거리자 세정이 한쪽 눈살을 찌푸리다가 나른하게 웃었다.
“나 없을 때 혼자 하는 건 아니죠?”
“우응…… 흡, 응….”
“경고처럼 느껴진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하지 말아요. 화낼 거니까.”
도구도 쓰지 말고, 손도 쓰지 말고, 그냥 야한 생각은 일절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사실 성인 남자가 그러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채민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애인이 있으니 자위는 하지도 않고, 야한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니까.
채민이 자위를 하면서 흥분이 더욱 올라서 이를 세우자,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던 세정이 그의 부푼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막아 세웠다.
“시뮬레이션 열심히 돌렸나 봐요.”
“흐……. 네.”
“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입안을 꽉 차게 메우고 있던 거대한 성기가 스르르 빠져나갔다.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채민은 옅게 기침하며 물러났다. 그런데 뒤통수가 잡혀 다시 고개가 당겨지더니, 곧 말간 뺨으로 귀두가 와 닿았다. 채민은 또 넣을 셈인가 하고 입을 벌렸지만, 세정은 프리컴으로 젖은 성기를 그의 뺨에 비벼댈 뿐이었다. 채민의 한쪽 뺨에 귀두를 마찰시키던 그가 성기의 아랫부분을 잡고서 톡톡 두드렸다. 채민의 얼굴 곳곳에 액이 맺히듯 떨어졌다.
채민이 입술에 묻은 액을 핥아먹자, 세정은 성기로 다시 그의 뺨을 장난치듯 때리더니 말했다.
“벗고 올라와요.”
세정은 담배를 대충 아무 데나 눌러 껐다.
***
채민은 바지와 속옷을 차례로 벗고, 세정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개구리 자세로 어설프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세정이 허리를 받쳐주면서 상의를 마저 벗겨주었다. 드러난 맨가슴을 그가 섬세한 손가락으로 더듬어 올라갔다. 허리를 지나쳐 가슴을 쓰다듬고, 유두를 엄지로 한 번 긁어주었다. 채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보다 눈높이가 낮은 세정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까처럼 흥분한 기색은 아니었다. 속눈썹을 가만히 내리깔고, 손가락이 닿자마자 단단해지는 유두를 느리게 굴리기만 했다. 다만 그 평온한 얼굴과 달리 아래는 꼿꼿이 서 있었는데, 그것이 채민의 성기를 밀어내고 배를 쿡쿡 쑤시는 통에 자꾸 허리가 찌르르 울렸다. 채민은 충동적으로 발기된 제 것을 그의 것에 가져다 대고 비볐다.
그러자 세정이 허리를 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두 성기를 한데 붙잡고 문질러주었다. 커다란 손안에서 두 성기가 서로 비벼지며 마찰한다. 그새 몸이 달아오른 채민이 미간을 찌푸리는데, 문득 세정이 손바닥을 펼치더니 손에 잡힌 자신의 좆을 살폈다. 그는 채민이 집요하게 빨았던 자신의 귀두를 몇 번 쓸어보더니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나 긁어놓은 거예요? 이제 아플라 그래….”
“…예?”
채민은 머쓱하게 그의 성기를 쳐다보았다. 조심하며 빨았기 때문에 많이 긁지는 않았을 테지만, 워낙 섬세한 부위다 보니까 송곳니가 조금만 스쳐도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혹시 지금도 아픈 건가…. 너무 미안해져서 손을 뻗어서 세정의 귀두를 쓰다듬었다. 이 와중에 손바닥에 감겨오는 귀두의 감촉이 좋아서, 쿠퍼액으로 살짝 젖어 있는 앞부분을 조금 더 주물럭거렸다. 채민은 성기를 뚫어지게 보며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정말로. 다음부턴 정말 조심해서….”
“나를 봐야죠.”
깜짝 놀란 채민은 시선을 들어 올려서 세정의 얼굴을 보았다.
“죄송해요, 정말로. 다음부턴 정말 조심해서….”
“조심해서?”
“…빨 거예요.”
혹시 다시는 빨지 말라는 대답이 들려올까 봐 채민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정을 흘끔 보았더니, 그는 의외로 웃으면서 채민을 끌어당겼다.
“네. 그래줘요. 또.”
그가 입술 옆에 쪽, 뽀뽀를 해주었다. 이어 못 참겠다는 듯이 연속적으로 뽀뽀해준 그는 두 성기를 붙잡고 다시 손바닥으로 압박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쓸기도, 손가락 사이에 넣고 조이기도 하면서 능숙하게 자극을 시켰다. 금세 채민의 성기 끝이 쿠퍼액으로 젖어 들었다.
“으음…….”
채민은 몸을 떨었다. 세정의 어깨를 붙잡으려다가 천의 부드러운 질감에 손바닥이 미끄러진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서 양 어깨를 단단히 쥔 채민은 그대로 몸을 구부려 그의 어깨에 뺨을 기댔다. 단단한 어깨에 입술을 짓누르며 적극적으로 안겨와도 세정은 채민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를 마음 놓고 껴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이때만큼은 눈치를 보며 스킨십을 할 필요가 없었다.
“기분 좋아요?”
“네. 하…… 더 만져주세요.”
그에 응하듯이 채민의 성기가 더욱 압박되었다. 닿을 듯 닿지 않을 쾌감이 아래로 고여 들었다. 조금만 더 세게 만져주면 절정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손가락은 일정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그저 느릿하게 뿌리를 만져주거나 귀두를 간질이고만 있었다. 채민은 애가 타서 결국 제 쪽에서 몸을 비벼왔다.
“아, 형……으읏….”
그런데 허리를 들썩거릴 때마다 엉덩이 아래로 까슬까슬한 질감이 느껴진다. 채민은 완전히 알몸인 반면에 세정은 옷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그의 바지가 계속 엉덩이 살을 스치는 것이었다. 바지 때문에 그에게 더 다가갈 수 없는 것 같아서 채민은 그의 바지를 벗기려고 들었다.
그런 채민의 손이 부드럽게 잡혀서 세정의 목에 둘렸다. 세정은 한 손으로는 계속 성기를 마찰시키며 채민의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입술이 턱선을 타고 조금씩 훑어 올라가 귀 부근에 닿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언어가 속삭여졌다.
“우채민 씨….”
귀 근처로 아찔할 만큼 몽글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네…….”
“내가 벗을게요.”
“알았…어요.”
세정은 그렇게 말해놓고 바지 대신 윗옷만 벗어 던졌다. 그가 다시 고개를 내려서 채민의 가슴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혀로 유두 끝을 굴리며 뾰족하게 찔러온다. 이어 입술을 덮어 세게 빨아주자 채민은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찌릿한 흥분에 숨을 들이쉬었다. 귀두를 조이는 손길도 계속 이어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채민은 뒤늦게 세정의 어깨와 가슴을 더듬거렸다. 팔에 새로 그어진 상처는 없는지 한 번 훑고, 균형 잡힌 몸매도 전체적으로 쓰다듬었다.
채민은 그의 몸이 너무 좋았다. 옷을 입고 있으면 세상 매끄러워 보이는 몸인데 실은 이렇게 근육으로 꽉 짜여 있다는 것도, 역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거친 근육들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그러면서도 흉통이 과하게 두껍지 않아 전체적으로 우아해 보인다는 것도.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될 만큼 완벽하게 취향이었다. 채민이 세정의 좁은 골반까지 더듬거리며 내려가다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형은… 어디 만져주는 게, 좋아요?”
채민은 고민하다가 질문을 바꿨다.
“제가 뭐 해줄 때, 하아…… 기분이 가장 좋아요?”
세정이 눈꺼풀만 치켜올려 채민을 보면서 허리께를 물었다. 거칠게 흔적을 남기며 위로 올라오더니, 목을 깊이 빨아들였다. 다소 따가운 느낌이 들면서 귀두가 같이 압박되었다. 순간 머리끝까지 쾌감이 올라왔다. 채민은 급하게, 두 성기를 쥐고 흔드는 세정의 손 위에 제 손도 올리고 같이 흔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정 직전, 세정은 성기에서 손을 뗐다.
우뚝 서 있던 성기가 프리컴을 질질 흘리며 튕겨진다. 채민은 어쩔 줄 모르고 성기를 다시 움켜쥐려고 했지만, 세정은 그의 허리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서 틈도 없이 끌어안았다. 어정쩡하게 안긴 채민은 차마 조르지도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세정이 채민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등줄기를 애무하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디를 만져도 좋아요. 상처 자국도 만져도 돼요.”
때에 맞지 않게 아주 달콤한 목소리였지만, 채민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채민은 신음하며 허리를 비틀었고, 세정은 달래듯이 그의 등줄기를 계속 어루만졌다.
“난 이제 우채민 씨랑 닿고만 있어도 좋아요.”
“아……흑. 싫, 아!”
“손잡는 것도 좋고…….”
채민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건전하게 손만 잡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세정은 그대로 고개만 살짝 비틀어서 자신보다 눈높이가 높은 채민을 쳐다보았다. 나른하게 풀려있던 채민의 동공이 흔들렸다. 세정이 사르르 눈을 접으며 웃었다.
“바라보는 것도 좋아요.”
채민도 그런 종류의 애정 표현을 좋아했다. 그와 손만 잡고 있는 것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인데 삼십 분이 훌쩍 지난 적도 있었다.
그는 채민이 여전히 그에게 설렌다는 것을 알까. 여태 그 외모에 빠져있다는 것을, 그의 분위기에 취해 있다는 것을, 이제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순간까지 그러한 로맨틱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설마 섹스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자는 뜻은 아니겠지. 그가 원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그와 섹스하는 게 오랜만이다 보니까 갈등이 됐다.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채민에게 세정은 다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깨에서 뺨을 떼어내곤 서로 어긋나게 닿아있는 성기를 붙잡고 다시 비볐다. 묵직하게 팽창한 두 성기가 서로 마찰하며 멀건 액을 뱉어냈다. 지속되는 애무에 채민은 허벅지를 떨면서 신음했다.
문득 세정이 잡고 있던 제 좆을 밀어내고 채민의 것만 잡고서 흔들었다. 기둥이 단단히 조이면서 얼굴로 피가 몰렸다. 허리의 근육은 긴장으로 응축되어 움푹한 보조개를 만들어냈다. 세정이 힘을 주어 흔들자 곧 입을 벌리고 있던 채민이 소리 없는 탄식과 함께 몸을 덜덜 떨었다. 정액이 세정의 손을 타고 뚝뚝 흘렀다.
채민은 세정의 어깨에 몸을 축 늘어트리고 빠르게 호흡했다. 갑자기 안 하던 운동을 하고 난 후처럼 기력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채민은 세정의 목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고 팔을 떨어트렸다.
“아…. 하아…아.”
“우채민 씨, 벌써 맛이 갔네…….”
“아니…. 하아….”
손목을 타고 흐르는 정액을 대충 털어낸 세정이 채민의 성기를 계속 만졌다. 민감해진 피부에 손이 닿자 다시 허리가 튀었다.
“나한테 기대지 마요.”
세정은 채민의 한쪽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채민은 힘겨운 동작으로 소파에 두 무릎을 댄 채,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엉덩이를 약간 올렸다. 곧 액으로 젖은 손가락 하나가 골 사이를 느리게 배회하다가 입구를 비집었다. 그러나 뻑뻑하고 좁은 구멍이다 보니 손가락은 젖어 있음에도 겨우 두 마디가 들어오고 멈추었다. 안쪽을 긁듯이 움직이자 입구가 조밀하게 꽉 다물렸다. 다른 때보다 더 뻑뻑한 느낌이었다. 세정이 달래듯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안 한 지 며칠이 됐죠?”
“한 달……. 아니, 두 달이요.”
물어놓고 계산하고 있던 세정은 들려오는 대답에 미간을 좁혔다.
“내 기억으론 이 주였는데.”
“체감이…… 그랬는데.”
잠시 말이 없던 세정은 뒤늦게 웃음이 터져서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애인이 귀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얼마간 쳐다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젤이 필요하겠네요.”
“……네.”
“내가 가져올 테니까 팔 풀어줘요.”
채민은 주춤거리다가 세정에게서 물러났다. 그대로 채민을 안아 든 세정은 그를 소파에 정 방향으로 눕혀 놓고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불룩하게 서 있는 성기를 속옷 안으로 집어넣고 몸을 일으켰다. 고성능 스포츠카 같은 우아한 몸체가 채민의 앞을 어슬렁거리며 느릿하게 지나쳤다. 탄력 있게 뻗은 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채민은 그의 걸음을 시선으로 따라갔다.
그는 곧장 TV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긴 수납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젤을 꺼내서 돌아오는가 싶더니, 소파에 그것을 던져두고는 갑자기 다른 곳으로 걸음을 틀었다. 혹시 섹스하기 귀찮아서 자러 간 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다리를 오므리는데, 한참 뒤 그가 작은 생수병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 마실 거죠?”
섹스가 끝나면 꼭 물을 찾는 채민을 위해서 미리 수분을 섭취시켜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막 몸을 일으키는 채민의 뒤통수를 받쳐주며 입에 물을 흘려주었다. 그런데 병의 주둥이가 제대로 입술에 닿지 않을 때가 있어서 물이 자꾸 쇄골로, 가슴으로 미끄러졌다.
“형.”
채민이 병의 입구를 혀로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형, 차가워요.”
“아.”
세정은 손등으로 채민의 가슴을 닦아주고 재차 병의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그러나 채민이 그만 마시겠다며 고개를 젓자 그대로 병을 가져와 나머지 물을 마셨다. 섹스 도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느긋한 동작으로.
채민은 재촉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슬쩍 내리깔고 있는 눈매와 날렵한 턱선, 물을 삼킬 때마다 느리게 움직이는 목울대, 그리고 물기로 촉촉해진 입술. 어이없게도 식어가던 아랫배에 열기가 몰렸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채민은 안 본 척하며 얼른 시선을 깔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세정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계속 채민을 쳐다보며 물을 마셨다. 물이 완전히 바닥을 보이기도 전, 세정은 병을 바닥에 대충 던져놓고 곧장 채민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올렸다. 그대로 채민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게 하며 허벅지를 붙잡아 양쪽으로 벌린다. 눈꺼풀을 내려 그 몸을 핥듯이 훑었다.
아까 덜 닦아주었는지, 물이 배꼽을 지나서 다리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골반에 고여 뚝뚝 떨어지는 물을 손등으로 훑고, 허벅지를 은근하게 쓰다듬었다. 그 짧은 애무에도 입구가 뻐끔거리며 움직였다.
젖은 입술을 혀로 느릿느릿 핥은 세정은 그 입구에다가 젤을 듬뿍 짜냈다. 차갑고 미끈한 액체가 미끄러지며 입구에 고인다. 구멍이 다시 움찔거렸다. 세정은 젤을 엉덩이 주변에 얇게 펴 바르면서 서서히 온도를 높이다가 손가락 하나를 구멍에 푹 찔러 넣었다.
“흣.”
한 번에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에 채민은 배를 긴장시켰다. 입구가 같이 다물리자, 세정은 “긴장했어요?” 하고 부드럽게 물으면서 엉덩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에 채민은 조심스럽게 힘을 풀었고, 젤을 흠뻑 묻힌 세정의 손가락이 다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검지와 중지가 같이 들어와 내벽을 짓눌렀다.
“으흐……흐.”
손가락이 다소 거친 움직임으로 안을 헤집었다. 몸속을 휘젓는 이물감이 이상해서, 채민은 고개를 뒤쪽으로 빼서 소파를 짓눌렀다.
“아으, 윽.”
“아프면 말해요.”
“아, 아니에요.”
고개를 내젓는 그 순간,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이 어딘가를 찔렀다. 전립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듯 미약한 쾌감이 튀었다. 채민은 그 실체 없는 감각을 찾아서 허리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세정이 볼기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어서 함부로 몸을 흔들 수가 없었다.
작게 끙끙거리는 채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뻑뻑한 내부를 넓혀가던 세정은 문득 내벽을 왕복하는 손가락의 방향을 바꿔서 뿌리까지 박아 넣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채민이 엉덩이를 바짝 조였다.
“아… 흐윽… 아, 아.”
세정은 강도를 더욱 세게 해서 내부를 파고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안쪽이 경련이 난 것처럼 떨렸다. 채민의 발가락이 곱아들고,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이어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은 세정은 안쪽에서 손을 움직여 더 넓혀갔다.
“아…! 아, 형. 아파, 아파요.”
“안 찢어졌어요. 만져줄까요?”
손가락을 빼낸 그가 젤을 더 짜내고 얼마간 입구 주위를 마사지하듯 더듬었다. 그리고 채민이 적응될 즈음 다시 집어넣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분홍빛 구멍이 뻐끔거리며 손가락을 거세게 조인다. 입구에 고여 있는 젤이 치덕치덕 골 아래로 떨어지자 묘하게 색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다른 손으로 채민의 성기를 주물러주던 세정은 손가락 하나를 속옷에 걸치고 그대로 끌어 내렸다.
채민의 두 다리를 위쪽으로 들어 올리며 입구에 귀두를 맞추었다. 귀두가 닿자마자 구멍이 기대감으로 잠시 벌어졌다가 다물렸다. 세정은 귀두로 입구를 가볍게 눌러보다가 이내 푸욱 집어넣었다. 딱 귀두의 끝부분만 들어갔을 뿐인데 채민은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아…. 아! 아아!”
채민은 몸이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피우는 경우가 있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겁이 매우 많아서, 조금만 아파도 못 견뎌 했다. 세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보듬으며, 제 딴에는 아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곤 잠시 기다렸다가 귀두를 끝까지 집어넣었다. 허리를 튕긴 채민은 더 들어오려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구멍을 좁혔다. 한곳에 피가 몰리자, 세정이 스리슬쩍 미간을 구기며 길게 호흡했다. 세정은 채민의 뺨을 엄지로 쓸어주었다.
“우채민 씨.”
표정과 다르게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많이 들어갔는데. 응?”
그냥 처박고 싶다는 생각은, 세정이 요즘에서야 종종 하는 것이었다. 채민은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세정은 그를 보면서 아래에 깔고서 박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채민과는 그냥 대화만 해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채민이 먼저 하자고 해서 했든, 세정이 드물게 묘한 충동에 휩싸여 시작했든 막상 섹스가 시작되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잠자리에서 인내심이 잘 발휘가 되지 않았다.
“아프게 넣지 않을 거예요. 풀어 봐요.”
“흐, 으, 네.”
쾌감이 일 정도로 달콤한 음성이었던 터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채민은 움찔거리며 서서히 힘을 풀었다. 세정이 곧장 기둥의 윗부분을 조심스럽게 찔러 넣었다. 채민이 다시 진저리를 치며 구멍에 힘을 주었다.
“이런… 우채민 씨.”
웃음기를 머금은 세정은 귀두를 완전히 빼냈고, 채민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파요, 진짜로…. 거짓말이 아니고.”
“오늘따라 너무 겁이 많네.”
그가 짜증을 낼까 봐 겁이 났지만, 세정은 그저 달래듯이 채민의 뺨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채민의 얼굴 곳곳으로 입술이 다정하게 내려앉았다. 쪽쪽, 예쁘다는 것처럼 키스해줘서 채민은 긴장을 풀었다.
세정은 다시 채민의 두 다리를 잡아서 무릎을 접고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치켜 올라간 엉덩이 위에 젤을 짜내고 제 기둥에도 펴 발랐다. 이어 한 번 더 젤을 짜낸 그는 채민의 성기에도 발라주었다. 그대로 채민의 것을 쥐고서 힘주어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벽에 몰려있던 뭉근한 감각이 순식간에 성기로 퍼져 나갔다.
“아, 으…. 흐, 으으…….”
“기분 좋아요?”
“네… 읏. 아…….”
성기가 위아래로 계속 흔들린다. 뒷구멍으로 귀두가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기둥을 쓰다듬는 손길이 워낙 강렬한 터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엄지와 검지로 귀두를 문질러주자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채민은 소파에 머리를 짓뭉갰다.
그때, 구멍 안으로 거대한 기둥이 단번에 밀고 들어왔다.
“……!”
잠시 숨이 끊겼다. 채민은 입을 벌리고 온몸을 경직시켰다. 뒷구멍을 파고든 기둥이 서서히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밑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머리끝까지 고통이 들어차고, 배 속이 묵직해지고, 거부감이 밀려 들어왔다.
“아! 하아! 아아, 으윽! 아흑!”
당장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채민의 두 다리를 세정은 제 쪽으로 단단히 붙였다. 세정이 아주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가 도로 밀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고통에 찬 신음이 커졌다. 채민이 마구 도리질을 치는데, 세정이 그의 뺨을 쥐고서 엄지손가락을 입안으로 미끄러트렸다. 엄지로 채민의 붉은 혀 윗부분을 긁어주었다. 침이 뚝뚝 떨어져 목 안쪽으로 고였다.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음성이 채민을 달랬다.
“채민이 아팠어…….”
“흐, 혀, 형…… 흑, 흐윽.”
“많이 아팠어.”
채민은 흐느끼면서 몸을 한 번 들썩였다. 간만에 하는 삽입이라 그런지 적응이 느리게 되고 있었다. 내부로 침입한 굵고 기다란 성기는 안을 버거울 정도로 꽉 채운 채 느리게 왕복 운동을 했다. 그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도 감각이 예민하게 올라왔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또 간지러운, 견디기 어려운 감각들이 마구 솟구치는 와중에 유두가 꼬집히고 가슴이 주물러졌다. 숨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헉헉거리는 채민의 안으로 성기가 천천히 들어와서 끝까지 박아 넣어진다. 음낭이 부딪힐 정도로 바짝 박은 상태에서 세정은 좆을 느리게 돌렸다. 얼핏 채민의 마른 배에 뭔가가 불룩하게 솟았다.
“흑… 으윽, 으응…으, 하지, 마요.”
“넓혀가고 있어요, 채민 씨. 좁아서… 안 움직여지니까.”
세정은 채민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양 골반도 만져주고 팔뚝도 쓸어주고 가슴도 빨아줬다. 가슴 곳곳을 혀로 애무하며 정성스럽게 문질러주자, 신음에서 고통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수그러드는 고통을 딛고서 새로운 감각이 고여 들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배 안쪽에 꽉 들어차 있던 성기가 조금씩 움직였다.
성기의 움직임에 맞춰서 몸이 흔들렸다. 다소 진정한 채민은 무릎을 구부려서 세정의 허리에 감았다. 시선을 삽입 부위에 고정시키고 있던 세정이 아주 느린 시선으로 채민을 쳐다보았다.
세정은 그를 계속 직시하면서 성기를 약간 물렸다가 앞으로 쳤다. 거기까지 빠른 감이 있었던 터라 채민은 숨을 몰아쉬며 그의 것을 내벽으로 단단히 조였다. 세정은 다시 성기를 쳐올렸다.
“아!”
그는 한 번 더 뿌리까지 쳐올렸고,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왕복을 지속했다.
“아! 아, 아, 아!”
채민이 신음을 토하며 허벅지를 바르르 떨었다. 안을 꽉 메우고 있던 거대한 성기가 구멍 안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면서 밀려오고 있었다. 고통보다도, 미칠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허리를 다리로 더욱 조였더니, 일정한 텀으로 피스톤질하던 그가 순간 힘 조절을 못 하고 구멍에 거칠게 처박았다. 채민은 몸을 들썩이며 진저리쳤다.
“아……. 가만히 있어 줘요.”
“흐으, 네…… 아아…아…!”
“계속 움직여도 되죠?”
“네, 좋… 윽……! 아흣!”
세정은 손을 내려서 채민의 골반을 잡고는 그대로 깊이 쑤셔 넣었다. 쿵 하고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 번 크게 났고, 머지않아서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채민은 허리를 위로 들썩거리며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계속 부딪쳤다. 내벽이 온통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몸 전체가 성감대가 된 것처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에 전기가 튀었다. 결합된 부분이 맞닿으면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세정은 흐트러진 숨을 내뱉으며 채민의 한쪽 다리를 소파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다리만 붙잡은 채 다시 움직였다. 다리 하나가 소파 바닥으로 비스듬히 내려가 있어서 몸이 점점 기울어졌다. 한 번 찧어질수록 채민은 등받이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내려갔다. 채민은 소파 바닥을 팔꿈치로 찍어 균형을 잡은 채 계속 엉덩이를 움직였다.
목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한 채민의 좆에서 쿠퍼액이 뚝뚝 떨어졌다. 채민은 미치겠다는 듯이 가죽에다가 제 머리를 사정없이 뭉갰다.
“형, 기분이, 너무… 으응, 응! 응! 아!”
“기분이….”
채민이 못다 한 말을 되풀이해본 세정은 나머지 말을 제 생각대로 읊조렸다.
“기분이 이상하네. 개새끼가, 된 것도 같고….”
세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삽입된 접합부를 내려다봤다. 핏줄이 선 기둥이 뻐끔거리는 구멍 안을 정신없이 쑤시고 있었다. 내부를 게걸스럽게 핥아먹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천박한 모양새였지만, 굳이 빼낼 생각은 안 들었다.
일단 쾌락에 못 이겨 허리를 흔들어대는 애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세정은 아까보다 다소 느린 속도로 천천히 안을 헤집다가, 어느 순간 다시금 한 방향으로만 박아댔다. 구멍 안을 헤집던 성기가 한곳만 집중적으로 찔러대자, 채민은 제 배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성감대를 찔러대는 좆 때문에 머릿속이 휘발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세정이 성기로 채민의 몸속을 퍽! 퍽! 때림과 동시에 채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잠시 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오한과 비슷한 떨림이 느껴지면서 쾌락이 급속도로 퍼졌다. 발가락 하나까지도 예민해져서 도무지 이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기에서는 액이 줄줄 흘렀다. 세정은 채민의 사정이 다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피스톤질했다. 때리는 반동에 맞춰 몸을 흔들던 채민이 탁한 신음을 내뱉었다.
“하아, 하…… 하, 아아.”
몸에서 힘이 빠지며 팔꿈치가 소파 바닥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한 채민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깐 쉬려던 것도 잠시, 세정이 채민의 등 아래로 느릿느릿 팔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채민의 허리를 세워 품에 안고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 세정이 소파 등받이에 등을 대고 앉으며 채민을 제 무릎에 앉혔다. 자세가 바뀌며, 아직 빼내지 않았던 성기가 그대로 채민의 배 속을 깊숙하게 침범했다. 버거울 정도로 깊어진 삽입에 채민은 순간 숨을 참았다.
“이제 우채민 씨가 움직여 봐요.”
“흐으, 으…… 네?”
“내 얼굴 보고…. 핥아줄 테니까.”
세정은 채민의 쇄골에 입술을 묻고 붉은 혀로 살갗을 빨았다. 다른 손가락으로는 채민의 배 부근에 흩뿌려진 희멀건 정액을 원 모양으로 돌리며 서서히 유두 쪽으로 올라갔다. 끈적한 액이 묻은 손가락이 유두 위에서 느리게 돌았다. 척추로 전율이 흘렀다. 채민은 세정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허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성기가 속살을 끌고 구멍 밖으로 빠져나가는 감각이 여실히 느껴진다.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내리자, 안쪽이 성기를 조이며 깊어졌다. 엉덩이를 끝까지 내린 채민이 몸서리를 쳤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대로 계속 왕복할 순 없을 듯했다. 채민은 긴 숨을 토하며 세정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한동안 그를 보고 가만히 있자니 성기가 조금씩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아, 나…… 왜 또, 으응.”
채민의 유두를 입에 넣고 굴리던 세정이 눈만 치켜떠 그를 쳐다보았다. 세정은 혀로 유두 주위를 쓸며 읊조리듯 대꾸했다.
“뭐.”
“저 왜 또, 흥분…했냐고…….”
“계속 좆이 박혀 있잖아요. 내가 자극하고 있다고.”
가만히 있던 세정이 불쑥 허리를 위로 쳐올렸다. 채민의 몸이 한 번 튕겨져 올랐다가 경황없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오직 제 쪽에서만 움직이는 걸로 알고 방심하고 있었던 채민은 순식간에 한계까지 박혀오는 좆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형, 형, 형, 하며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마구 때렸다.
“왜 때려요.”
세정이 태연하게 채민의 가슴에 제 머리를 댔다. 그대로 뺨을 문지르면서 채민을 푹 안고는, 허리를 조금씩 돌렸다. 안쪽에서 성기가 점막을 문지르며 돌려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느리게 피스톤질을 하자 채민은 성기를 세우고 흐트러진 숨을 토했다.
“형, 아흑…… 제가…. 제가 움직일래요….”
채민은 세정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를 내려다보면서 허리를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앉았다. 여전히 압박감이 상당했다. 최대한 고통을 없애보려고 엉덩이에 딴딴하게 힘을 준 채로 호흡하고 있는데, 세정이 채민의 엉덩이를 지나쳐 등허리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그 아래쪽에 작게 들어간 보조개를 손끝으로 쓸었다.
그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채민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구멍의 주름이 젖어서 이제는 성기를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엉덩이를 내릴 때마다 살이 철벅거리며 서로 마찰하는 소리를 낸다. 채민은 엉덩이에 있는 살집으로 뿌리를 감싸고 안쪽으로 쫀득하게 당겼다. 조이지 말라는, 눌린 호흡이 돌아온다. 그가 내는 신음이 좋아서 계속 엉덩이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아, 아아…… 혀, 엉… 저랑 하는 거, 좋아요?”
“네.”
어르듯이 말을 끌어 대답한 세정은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랑 하는 거?”
“흣! 아흑! 앗, 아, 앗!”
“왜 그게 확인받고 싶어요?”
“그, 그, 앗, 앗! 그냥… 아윽.”
그냥, 세정이 이 행위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막상 섹스할 때는 여유를 잃은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는 대개 손만 잡고 자는 걸 좋아하지 않나. 채민이 대답이 없자, 세정은 그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허리를 쳐올렸다. 반쯤 발기한 채민의 성기가 위아래로 같이 흔들렸다. 채민은 고개를 뒤로 꺾고 온몸을 들썩거렸다.
“아! 아아! 아! 앗… 앗!”
틈도 없이 들어찬 성기가 쿠퍼액을 끈적거리게 뿜어내며 점막을 찔렀다.
“왜, 내가 싫어하기라도… 할까 봐….”
“아, 아! 아! 흐으, 응! 응!”
“난 우채민 씨랑… 이렇게 붙어있는 게 좋다니까.”
세정은 채민의 몸을 꽉 안고 둔탁한 소리가 날 만큼 세게 찧었다. 채민은 머리가 핑 도는 듯해서 그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온몸에 오른 열 때문에 정신이 아득했다. 찔꺽거리는 야한 소리가 귓가에 고여 든다. 몸을 완전히 잠식해버린 듯한 기묘한 감각.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동시에 쾌감이 이리저리 튀었다.
문득 엉덩이가 잡혀서 위로 들리더니 푹 내리꽂혔다. 목구멍을 조인 채민의 호흡이 잠시 멈추었다. 곧 무자비하게 잡힌 엉덩이가 퍽퍽 찧어졌다. 좆이 양보 없이 때려대는 통에 내장이 아파 왔다. 정도 이상으로 성기가 내벽을 파고들어 오자 채민은 허리에 힘을 주고 버티려고 들었다. 하지만 세정이 엉덩이를 잡고 있어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아……! 아…!”
이제는 신음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것들이 몸 곳곳을 강렬하게 잠식해가고 있었다. 성기는 몸이 한계에 부딪힐 무렵 멈추어선 뭉근하게 양쪽으로 움직였다. 성기를 따라 형성된 길이 안쪽에서 무자비하게 넓어졌다. 한껏 팽창한 내벽이 굵은 좆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채민은 팔과 허벅지를 덜덜 떨었다. 입구가 찢어질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겁이 다 났다. 흐느끼며 꽂혀있는 성기를 빼내 보려고 애썼지만, 다시 엉덩이가 잡혀서 눌러졌다. 좆은 끈적거리는 액으로 은근하게 입구를 적시면서 계속해서 내벽을 짓이겼다. 자신이 올라앉아 있지만, 세정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채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헉…… 아, 못 하겠, 어요, 읏… 형.”
세정은 채민의 뒤통수를 다정하게 토닥거리며 흥분에 겨운 낮은 목소리를 냈다.
“왜요. 내가 봐주고 있잖아. 응?”
“흐, 흐응… 엄청, 아파요…… 거기.”
세정은 접합부를 은근하게 쓰다듬었다.
“천천히 할게요.”
“배가…… 흐, 배가 아파요. 아니, 아니… 그냥 안쪽이, 너무 아파요.”
쾌락에 머리도 아프고, 내장도 아프고, 벌리고 있는 사타구니도 찢어질 것처럼 아렸다. 벌어진 입구의 여린 살도 너무 쓰라렸다. 채민의 말에 세정은 손바닥을 펼쳐서 채민의 성기를 한 번에 쥐었다. 빳빳하게 서서 프리컴을 질질 흘리고 있는 성기의 기둥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문질렀다.
“우채민 씨는 고통이랑 쾌락이 한 결에 있나?”
“으응…… 아, 아닌데…….”
“봐요, 내 손이 벌써 젖었어요.”
그가 액이 묻은 손바닥을 펼쳐서 채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성기를 쥐고 짜내듯이 문지르다가 허리를 쳐올렸다. 채민이 비명 같은 신음을 지르며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세정은 계속 허리를 뒤트는 채민을 붙잡고 조금만… 조금만…… 하고 달래며 푹푹 쑤셨다.
“하윽! 앗! 아악! 아아! 아……!”
쿠웅, 쿠웅……. 뼈가 아파 올 정도로 좆질이 거칠었음에도 착실히 사정감이 올라오는 게 놀라웠다. 순간 채민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그는 그대로 세정의 위로 엉덩이를 내리꽂았다.
구멍 안으로 멀건 액이 흩뿌려진다. 몸을 일으킨 세정은 채민의 허리를 들어서 소파 등받이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두 다리를 잡아 어깨에 올린 후 허릿짓을 하며 구멍 안으로 정액을 남김없이 뿌렸다. 성기가 들락거릴 때마다 정액이 안에서 넘쳐 구멍 밖으로 밀려났다. 채민은 등받이에 몸을 늘어트린 채로 같이 사정하며 그가 박는 대로 인형처럼 흔들렸다.
“허억, 허억……허억…… 아, 아아….”
자신이 허공에 뿌린 사정액이 골반을 타고 흐르고 있다. 순식간에 엉덩이와 다리가 액으로 지저분해졌다. 채민은 몸을 축 늘어트리고 기운 없이 호흡을 뱉었다.
세정은 그의 구멍에 여전히 좆을 박아대다가 동작을 늦추고 액이 흐르는 접합부를 빤히 바라보았다. 계속 피스톤질을 했더니 접합부에서는 거품이 일고 있었다. 구멍이 수축했다가 열리면서 안에서 머금고 있던 액이 뻐끔거리며 토해졌다.
그가 계속 아래만 보고 있자, 채민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제 그만 하자고 허리를 빼내려는데, 문득 배 속이 버겁게 묵직해진다. 여전히 빠져나가지 않은 성기가 안에서 또 커져서 슬슬 왕복하고 있었다. 세정은 당황하는 채민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우채민 씨……. 우리 침대에서 할까요?”
접합된 상태로 몸이 들린 채민은 본능적으로 그의 어깨를 안았다.
“예? 아! 아…! 아…!”
세정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성기가 채민의 내벽을 쿡쿡 찔렀다.
“형, 놔, 놔주세요. 아! 흑! 이제…… 이제, 아!”
“…몸 흔들지 말고. 갖다 박고 싶잖아요.”
그러나 채민은 허공에 떠 있는 게 무섭기도 하고, 이제 정말 더 할 힘도 없어서 계속 몸을 바르작거리며 반항했다. 빠져나오려고 다리에 힘을 주다 보니까 자연히 구멍이 뻐끔거리며 성기를 조였다. 채민은 그 상태로 몸을 비틀었다.
“형, 제발…… 진짜, 힘들어서…….”
채민의 몸집이 그리 작지 않다 보니 그가 발버둥을 치자, 다리 한쪽이 거의 바닥에 닿을 듯이 내려왔다. 발가락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채민을 고쳐 안은 세정은 달래듯 그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이러면 침실까지 못 가요.”
“정말…… 흣……흐윽, 흑.”
채민은 그저 고개만 세차게 내저으며 내려달라고 몸을 비틀었다. 그 과정에서 접합되어 있는 입구가 또다시 뻐끔거리며 성기를 잘라먹을 듯이 조였다. 문득 세정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채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침실로 가려던 걸음을 틀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해 있는 피아노 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는 건반 위에 채민을 앉히곤 허벅지를 잡아당겼다. 하얀 사타구니가 벌어지자 그 사이로 몸을 비집었다. 다소 거칠게 밀고 들어온 성기에 채민이 숨을 들이마셨다. 채민은 어디에 앉혀진지도 모르고 허리를 움직였다.
채민은 몸을 뒤로 빼고 눈을 꽉 감았다. 신음을 있는 대로 토해내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엉덩이 아래로 무언가가 눌리며 이상한 화음이 만들어진다.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귀두가 빠르게 속 깊은 곳까지 침범해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채민이 이를 물며 고개를 위로 치켜올렸다.
몸이 뒤로 밀려날수록 기묘한 선율이 팡팡 튀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피아노 소리를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지금 그는 건반에 큰 천을 씌워놓은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혀, 으응, 응, 응……! 여기는, 흣! 흐, 흐, 여기는 안 돼요…….”
“하아…… 왜, 안 돼요?”
“이거, 피아노, 잖아요.”
“…그런데?”
세정은 대답을 더 듣지도 않고 입을 맞추었다. 혀가 안으로 들어와 점막 곳곳을 건드린다. 그는 다른 손으로는 채민의 어깨와 등뼈 따위를 천천히 매만졌다. 살갗을 만지는 손길이 은근하고 부드러웠다. 채민은 세정이 잠깐 물러난 타이밍에 얼른 나머지 말을 읊조렸다.
“여기, 으응, 체액이라도, 스며들면…… 하아, 아, 버려야….”
말을 하고 있는 채민의 안으로 굵은 성기가 뿌리까지 들어왔다가 느긋하게 빠져나왔다. 그에 골반을 움찔 떤 채민은 손을 뒤로 뻗어서 어딘가를 눌렀다. 엉덩이와 손 따위가 계속해서 건반을 누르며 묘한 음을 만들어냈다. 어떨 때는 천둥소리처럼 듣기 싫은 소리가 났고, 어떨 때는 짧고 굵게 끊어 치는 소리도 났다. 그 소음 속으로 채민이 내는 소리가 죄다 먹혀들었다.
“침대로…… 아흣, 차라리, 그냥, 침대로…….”
“우채민 씨…… 이 피아노가 햇빛을 얼마나 받는 줄 알아요?”
구멍에서 사정액이 계속 흐르고 있어, 성기를 꽂아 넣을 때마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부가 말랑해진 데다가 액이 윤활제 역할을 해줘서 삽입할 때마다 저항감 없이 푹푹 들어갔다. 세정은 삽입한 성기를 위로 움직였다. 뱃가죽 한 부분이 살짝 불룩해진다. 그가 그대로 쳐올렸다.
“낡고 변색되면 버릴 피아노, 뭐가 귀중해서?”
채민이 고개를 흔들며 긴 숨을 토해냈다.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피아노에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 고작 변색됐다고 버리겠냐고. 채민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세정이 계속 그의 것으로 뱃가죽을 들쑤시는 바람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귀두가 무서웠다. 채민이 정말 안 좋아하는 행동이었다.
그것만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빠짐없이 아팠고, 멍든 부위를 눌렀을 때 느껴지는 생경한 고통이 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근육도 찢길 듯 당겨왔으며, 무엇보다도 성기를 감싸고 있는 애널 입구에 감각이 없었다. 세정이 물어뜯어 놓은 유두에도 미약한 통증이 남아있었다.
평소 누가 내게 해를 가할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사람 맞나…. 섹스도 먼저 하자고 잘 안 하면서 어떻게 할 때마다 이러지…….
채민은 두 손으로 뱃가죽을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꺾었다. 허리를 들썩일 때마다 건반이 째지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 순간만큼은, 피아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는 세정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듣기가 싫어 엉덩이를 비틀었더니, 꽂혀있던 성기가 안쪽에서 같이 움직이며 내벽을 길게 긁었다.
“으으…….”
성기가 워낙 크다 보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이물감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성기가 일정한 속도로 끝까지 박혔다. 비부가 마찰하며 음란한 소리를 낸다.
“으…… 하아…… 아아……!”
괴로움에 비틀린 신음이 간간이 터져 나왔다. 채민이 너무 괴로워한다고 느꼈는지, 세정은 잠시 멈춰서 그에게 입맞춤했다.
“우리 조금만 더 해요. 조금만…. 만져줄까요?”
그는 채민의 뒷목부터 등뼈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어깨에 볼록하게 나와 있는 조그만 뼈도 쓰다듬고, 쇄골도 훑었다. 손은 더 내려가서 부어오른 유두와 마른 배, 좁은 골반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채민의 뺨을 감싸고 입술을 머금었다. 놀랍도록 다정한 스킨십이었다.
하지만 감질날 정도로 짧아서, 채민은 고민하다가 우물쭈물 말했다.
“…형, 더…….”
발음을 씹으며 자신 없이 말했지만, 세정은 바로 알아들었다. 세정이 눈웃음을 치며 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이제 또 어디에 키스해 줄까요?”
채민의 귀가 민망함에 달아올랐다. 그의 두 뺨을 완전히 감싼 세정이 얼굴 곳곳에 산뜻한 키스를 남겼다. 콧잔등이나 눈꺼풀에도, 젖은 이마에도, 입술에도 몇 번이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스킨십은 지겨울 정도로 길게 이어졌지만 채민은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 주었으면 싶었다. 가볍게 눌러지는 이 부드러운 입술이 좋았다. 세정은 키스하는 것보다 뽀뽀하는 걸 더 좋아하는 채민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평소에도 다른 건 몰라도 이 입맞춤만큼은 자주 해주는 편이었다.
채민의 목에 연속적으로 입맞춤을 한 세정이 손을 들어서 채민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세정은 그의 귀두를 손가락으로 간질이며 다시금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성기가 꿈틀거리며 내벽을 비집었다.
“흐응, 응…! 응…! 응!”
그가 방향을 뒤틀어서 전립선 쪽을 집요하게 짓누른다. 채민은 이제는 허리를 흔들 힘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그저 그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세정이 워낙 단단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어서 상체에 힘을 싣지 않았는데도 피아노 밖으로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천장으로 고개를 들고 몸을 들썩거렸다. 이 와중에 채민의 기둥을 문지르는 손길이 거세졌다. 쾌락이 두 배로 흐르며 머리를 온통 잠식했다.
그런데 막 토정하려던 찰나, 세정이 삽입을 멈추곤 채민의 성기를 꽉 조였다. 그는 그 상태로 가만히 서서 채민을 내려다봤다.
“아… 형, 형, 왜… 아아, 하아.”
머리까지 올라왔던 쾌락이 허탈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채민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뒤늦게 엉덩이를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세정은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깔아보는 눈빛의 의미를 읽을 수 없었다. 불현듯 세정이 아예 몸을 물렸다. 오랫동안 안을 채우고 있던 성기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며 기이한 감각이 그 공간에 대신 들어찼다. 세정은 전신을 부르르 떠는 채민을 피아노 아래로 내려주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고 선 채민이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세정이 우뚝 서 있는 제 좆을 손으로 쓸었다.
“엎드려 봐요.”
“……네?”
“건반을 손으로 짚고, 엎드려요.”
세정이 채민의 몸을 돌려서 건반을 짚게 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 귀두를 맞추고 그의 허리를 깊숙이 낮추었다. 상황을 파악한 채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면서 우는 소리를 냈다.
“형, 제발…… 그만, 안 돼요. 저, 힘들어요.”
“내가 잡아주고 있어요. 자….”
부드럽게 말한 세정이 채민을 뒤에서 꽉 끌어안고 귀두를 밀어 넣었다. 내부가 흡착하듯이 좆에 달라붙었다. 몸이 어찌나 예민해져 있던지 성기의 울긋불긋한 핏줄이 죄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귀두가 깊이 들어오며 점막을 건드릴 때마다 안쪽이 벌벌 떨렸다.
그가 곧장 전립선을 건드려오자, 몸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음에도 자꾸 흥분되는 자신도 싫어서 채민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뺨 위로 흐른 눈물이 건반을 덮고 있는 천 위로 떨어졌다.
대체 언제쯤 지치는 건지 추삽질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몸을 탐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채민의 몸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그의 모습이 예상이 가서 문득 기가 찼다. 아니, 차라리 다행인가. 이걸 매일같이 했다면 기가 다 빨려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액을 맞다가 이른 나이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
세정은 채민이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끌어안은 상태로 등줄기에 입을 맞췄다. 날개 뼈를 혀로 깨물고 핥으면서 예쁘다, 예쁘다, 달래듯이 속삭여줬다. 흉포하게 추삽질하는 아래와 상반되는 다정한 언어였다. 그것이 위로로 다가올 만큼의 체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채민은 그저 눈물만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살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채민이 몸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늘어지자, 세정은 그를 피아노 의자 위에 길게 엎드리게 했다. 그는 의자에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엉덩이만 비죽 올리고 있는 채민의 안으로 성기를 꽂아놓고 느리게 박았다. 뭉근하고 찐득찐득한 내벽을 문지르고, 쓰다듬었다.
“욱…. 욱……. 우욱.”
“하…….”
의자 밖으로 뻗어진 채민의 팔다리가 세정의 허릿짓에 맞춰서 힘없이 흔들린다. 채민은 눈을 감고 엉덩이를 벌벌 떨었다. 감전된 듯 떨리는 볼기를 그가 주무르면서 추삽질에 속도를 붙였다. 마침내 채민의 등으로 눌린 신음이 내려앉으며 안쪽이 무언가로 채워졌다.
이제 멈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성기가 푹 젖은 소리를 내며 계속 왕복을 했다. 지치는 기색이 없어서 무서웠고, 좆이 내부의 은근한 곳을 건드리고 갈 때마다 머리가 하얘지는 듯해서 돌 것 같았다. 의자에 성기를 짓뭉개고 있던 터라 그곳으로도 쾌감이 느껴져서 괴로웠다. 머리로 현기증이 돈다. 이대로 가다간 또 싸게 될 것 같아서 울음이 나왔다.
“으윽… 흐으, 흐……. 흐윽, 허, 억.”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쪽을 탐하던 성기가 순간 멈추었다.
“울어요?”
세정은 손을 뻗어서 의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채민의 젖은 얼굴을 쓱 훑었다. 손바닥으로 물기가 묻어나왔다. 세정이 곤란한 듯 탄식했다.
“우채민 씨 많이 힘들구나. 우리 그럼 침대로 갈까요?”
“아, 흐윽…… 아뇨. 흑… 몸에, 힘이… 안 돌아요.”
“울지 마요. 그러면 더 지치지.”
허리를 숙여서 채민의 얼굴을 확인한 세정은 고민 없이 성기를 빼냈다. 그리고 의자에 엎드려 있는 채민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우고 억지로 일으켰다.
그를 양팔로 지탱시키고서 몸을 훑어보았다. 팔다리에 야단스럽게 정액을 묻히고, 온몸에 울긋불긋한 마크를 단 울보가 눈이 빨개진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정은 조금 웃는 낯으로 그의 뺨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물 가져다줄게요.”
“……아뇨.”
“그럼?”
“자고 싶어요…….”
“알았어요. 씻겨줄게요.”
세정은 채민의 허리를 감싸고 그대로 엉덩이를 받쳐 들었다. 그를 소중하게 안은 상태로 가만가만 다독이면서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세정의 목을 간신히 감싸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민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욕실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 그는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캄캄했다. 채민은 뻑뻑한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한참 동안을 눈을 깜빡, 깜빡,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다가 시야가 좀 트이자 빛을 찾아서 시선을 돌렸다.
열린 창문으로 달빛이 은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는 키가 훌쩍 큰 남자가 서서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다. 불현듯 시선을 돌린 세정은 잠에서 깬 채민을 알아차리고 입꼬리를 당겨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가 창문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서 연기를 길게 뿜었다.
채민은 어둠에 음영이 진 그 조각 같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팔에 힘을 주었다.
“아.”
그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더니, 순간 얻어맞은 듯한 고통이 전신을 치고 나갔다. 끙끙거리는 채민을 본 세정이 담배를 끄고 그에게 다가갔다.
“일어났어요?”
“네……. 아직 새벽이에요?”
“아침인데.”
아침? 그런데 왜 캄캄하지. 채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찾는데, 세정이 창문을 가리켰다.
“빗소리 들려요?”
세정의 말에 목을 길게 빼고 창문을 보았다. 창밖으로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고 나서야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쏟아졌던 빛은 달빛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채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몸을 다시 편안하게 눕혔다.
그러다가 어제의 일이 떠올라서 제 모습을 살폈다. 그는 단색 긴팔 티셔츠와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 안쪽을 더듬으니 물론 속옷도 입고 있었다. 몸도 뽀송뽀송한 게, 그가 잠든 사이에 세정이 씻겨준 모양이었다.
문득 씻겨주겠다며 자신을 안고 이동하던 세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욕실에서 잠들었던 건가. 욕실까지 갔던 기억이 없는데. 채민은 모르겠다 싶어서 머리를 휘저었다.
“형, 고마워요.”
“뭐가요?”
“씻겨준 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세정은 가볍게 웃으며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채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자 금세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눈꺼풀이 다시 무거워졌다.
“체력을 더 길러야겠어요, 채민 씨….”
쓰다듬는 손길이 미칠 만큼 좋아서 눈이 계속 감겼다.
“네…….”
눈을 감고서 중얼거린 채민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세정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몇 시예요?”
“자려고요?”
“……어, 그냥… 음.”
“여덟 시예요.”
어제가 토요일이었으니까,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세정은 출근하지 않을 테니까 계속 집에 있을 테고, 그럼 낮까지 자고 일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이것저것 고민해보던 채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조금만 더 자도 될까요?”
세정은 말없이 계속해서 채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목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잘 자라는 듯이 눈꺼풀 위로 입술을 가만히 내렸다가 물러났다. 동시에 달콤한 향기가 퍼지면서 머릿속으로 현기증이 미약하게 돌았다. 채민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면 나랑 놀아줘요.”
“네…….”
채민은 조용하게 읊조렸다. 빗소리가 점점 커져 가고, 평온함이 찾아왔다.
아주 잠깐 졸았다가 깬 채민이 무의식중에 눈을 떠서 여전히 침대 끝에 앉아있는 세정을 쳐다보았다. 등을 보이고 돌아앉은 애인은 여전히 창밖을 보는 중이었다. 등줄기를 따라서 시선을 조금씩 내렸다. 그의 팔이 보이고,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는 손이 보였다.
그가 채민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선율을 타듯이 채민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면서. 채민은 제 손에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정한 보호 (외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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