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IF 외전 – 또 다른 엔딩. 수하가 게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은꼬공금갠소) (24/24)

IF 외전 – 또 다른 엔딩. 수하가 게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은꼬공금갠소)

   

   

   

   

   

  악몽을 꾼 것같이 온몸이 무겁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수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소파에서 누워 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해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고 노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악몽… 인가…?”

   

  뒤숭숭한 꿈을 꾼 것처럼 뒤가 찜찜하고 기분이 나빴다. 왠지, 캡슐을 해킹하고 게임에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수하가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문지르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5시 20분….”

   

  예약 시간이 8시였으니, 지금 취소한다고 연락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수하는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시끄럽게 울렸다.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던 수하는 결국 마음을 먹은 것처럼 재다이얼로 FxxK 캡슐 해킹 서비스 센터에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캡슐 해킹 전문 FxxK입니다.”]

  “아… 저 아까 8시에 캡슐 해킹을 한다고 연락드렸었는데요.”

  [“네.”]

  “죄송한데 캡슐 해킹하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서, 금일 8시에 예약했던 것 좀 취소하려고요.”

  [“예약자분의 성함과 핸드폰 번호 확인 부탁드립니다.”]

  “홍수하. 010-1234-4321이에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금일 8시 예약은 취소해 드렸습니다. 더 필요하신 문의 사항 있으십니까?”]

  “아니요.”

  [“네. 캡슐 해킹 전문 FxxK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기고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온 핸드폰을 잠시 쳐다보던 수하는 테이블에 핸드폰을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을 풀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들어 올려 하얀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

  캡슐 해킹. 데스티니 게임. 튜토리얼 버그. 레위스. 수많은 정보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 손을 들어 올려 눈덩이를 누르고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내뱉었다. 어차피 오늘 캡슐 해킹을 안 했을 거라면 차라리 오늘 도훈과 데이트를 즐기는 게 괜찮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연락해 볼까.”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았다. 심야 영화를 볼 수도 있었고 주변을 돌아다니기에도 썩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수하는 잠시 고민을 하는 표정으로 발을 까닥까닥했다.

   

  ‘내가 즐겁게 데이트할 수 있게 해 줄게.’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던 도훈의 모습이 떠오르자. 수하는 한숨을 작게 내뱉으며 상체를 숙여 테이블에 던지듯이 내려놓은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잠시 고민을 하고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의미 없이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혹시 지금 자고 있으면 어쩌지. 잠시 고민을 했으나 수하는 마음을 먹은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도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보통은 통화 연결음 신나는 음악을 할 법도 한데. 심지어 전화벨까지도 바꾸지 않고 기본 벨소리를 사용하는 도훈의 성격이 참 묵묵하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막상 도훈의 목소리를 듣자 기분이 이상했다. 아까 던진 옷은 잘 입고 갔는지, 신발은 제대로 신고 갔는지 물어봐야 하나.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떠올랐다.

   

  [“수하야?”]

  “아… 아까 내일 12시에 만나자고 했잖아.”

  [“아… 응응. 혹시 내일도 무슨 일 생겼어?”]

  “아니. 너 안 바쁘면, 지금 만날 수 있나 해서.”

   

  수하는 핸드폰을 힘주어 붙잡고 도훈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바쁜 일이 있는 건지 잠시 도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곧, 우당탕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 지금 가능해. 너희 집으로 갈까?”]

  “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힐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 어느새 시곗바늘은 5시 3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지금 가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러면 나도 준비하고 나가야 하니까. 역 앞에 GCV에서 만나자.”

  [“GCV?”]

  “심야 영화 좀 보자고.”

  [“아아. 알겠어. 금방 나갈게.”]

  “응.”

   

  전화를 끊은 수하가 그대로 소파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화장실 문 앞에 서서 입고 있던 옷을 한 장도 남김없이 벗고 나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늘한 공기가 몸에 들러붙어, 소름이 돋아났다. 한쪽 팔을 들어 올려 소름이 돋아난 팔뚝을 문질렀다.

   

  “후….”

   

  한숨을 내뱉으며 종종걸음으로 욕조로 걸어가 뜨거운 샤워기를 틀었다. 처음에는 차가웠던 물이 점점 따듯해졌다. 따듯한 물과 서늘한 공기 때문인지. 하얀 수증기가 화장실 안을 가득 메웠다.

  수하는 천천히 움직여 욕조 안에 들어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에 몸을 씻어 냈다. 몸에 달라붙어 밑으로 투툭. 툭 따듯한 물이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다른 손으로 몸을 대충 문지르며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서, 수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아무 말 없이 거품이 가득해진 머리를 물로 씻어 내면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뽀득뽀득 소리 나게 몸을 닦은 뒤에 욕조에서 빠져나와 수도를 잠갔다. 머리카락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어깨에 떨어졌고, 이내 몸 선을 따라 흘러내려 화장실 타일에 물 자국을 만들어 냈다.

   

  수하가 손을 뻗어 근처에 수건걸이에 걸려 있는 수건을 꺼내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 냈다.

  말라 있던 수건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을 때 즈음에는 온몸에 묻어 있는 물기를 전부 닦아 냈다. 반쯤 젖은 수건을 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 한쪽에 놓인 빨래 통에 젖은 수건을 던져 놓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편하게 입고 가도 상관없겠지.”

   

  서랍을 열어 검은색 드로즈를 꺼내 입고 하얀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주워 입었다. 옷장 앞에 달린 전신거울에 옷 핏이 괜찮은지 한 번 확인하고는 뜨듯한 뒷덜미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데이트는 처음인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한 번도 누군가를 사귄 적이 없어서 데이트 자체가 처음이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면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을 텐데. 도훈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훈과 사귀지만 않았을 뿐 성관계는 이미 해 버렸기에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뭐.”

   

  갑자기 차려입기도 애매했고, 혼자 처음 데이트를 한다고 긴장하는 마음이 신기하면서도 불편했다. 도훈이 놀자는 말을 데이트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었고,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서 데이트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말한 걸지도 몰랐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몰라서, 수하는 한동안 전신거울 앞에 멀뚱히 서 있다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내려놓은 핸드폰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뚜벅뚜벅.

   

  느릿느릿했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나중에는 뛰듯이 두 다리를 움직여 GCV 앞으로 뜀박질을 하며 도훈이 벌써 도착했을지도 모르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수하?”

   

  저 멀리 도훈의 모습이 보였을 때 수하는 그제야 빠르게 움직이던 걸음을 천천히 움직여 도훈에게로 다가갔다. 놀란 표정의 도훈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며, 부족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웃었다.

   

  “빨… 흐… 일찍 도착… 했네….”

   

  수하의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가 하얀 셔츠 깃을 적셨다. 한 손을 들어 올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이마를 문지르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도훈을 보며 비식. 웃었다.

   

  “…집이랑 가까워서. 왜 뛰어왔어. 걸어와도 괜찮은데.”

  “너 기다릴까 봐….”

  “아… 그… 수하야. 내가 미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수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헤집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도훈은 입술을 몇 번은 달싹이더니 결국 한숨을 내뱉었다.

   

  “둘이서만 데이트… 하고 싶었는데.”

  “응?”

   

  도훈의 말을 듣던 수하가 고개를 기울여 도훈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아까 도훈의 모습만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한쪽 벽면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는 도윤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웃고 있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던 두 팔을 풀어 한 손을 흔드는 도윤의 모습에 수하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도윤을 지켜보았다가. 도훈에게 시선을 옮겼다.

  “…데이트라며.”

   

  처음 데이트를 하는 것을 기대한 것이 무색했다. 도훈과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윤까지 같이 포함되어 버린 것에 수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수하의 앞에 서 있는 도훈은 미안한 표정이면서도, 도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그 표정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다음번에… 진짜 데이트 같은 데이트….”

  “됐어.”

  “같이 오려고 한 게 아니라… 아까 전화 받는 걸 형이 들어서.”

  “됐다고.”

   

  수하는 ‘나만 혼자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도훈과 도윤을 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까 도윤과 썩 좋게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아 마주 보고 있는 이 상황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수하는 우두커니 서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훈을 지나쳐 도윤에게 다가갔다.

   

  “안녕.”

  “안녕 못하는데요.”

  “심술이 잔뜩 난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친구가 브라더보이인지 형 말만 들어서요.”

   

  수하는 그대로 도윤을 지나쳐 GCV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닌지 영화관 안에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그런 수하의 등 뒤로 느긋하게 따라 들어오는 도윤과 급하게 뛰어 들어온 도훈이 수하의 양옆에 섰다.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수하 네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나 볼까?”

   

  도훈이 수하의 눈치를 보며 말을 하자. 그 옆에 서 있던 도윤이 공포 영화를 가리켰다.

   

  “공포도 있는데.”

   

  곧 상영하는 영화 중에 도훈이 고른 액션 영화와 도훈이 고른 공포 영화 빼고는 19금 영화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수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손으로 [그 밤.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영화를 가리켰다.

   

  “저거 볼 건데.”

   

  야한 영화인지 벌거벗은 남자가 포스터 안에서 두 손으로 성기를 감싸 쥔 채 앉아 있었다. 그 포스터를 보던 도훈은 무언가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수하가 골랐다는 것을 생각해 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영화표를 끊으려 결제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도훈이 영화표를 결제하러 간 사이. 수하의 옆에 남아 있던 도윤은 상체를 살짝 숙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는 수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영화를 고를지는 몰랐는데.”

  “…그냥 야한 영화잖아요.”

   

  수하가 고개를 살짝 돌려 도윤을 바라보자 도윤은 어깨를 작게 으쓱이고는 모르면 되었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뭐. 야한 영화지.”

  “….”

   

  도윤의 말에 수하는 자신이 고른 영화 포스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밤.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고개를 기울여 보면서 자세히 보아도 19금 영화 느낌일 뿐 다른 것은 보지 않았다.

   

  다만, 포스터 안의 벌거벗은 남자가 잘생기고 몸이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도윤이 저렇게 하는 행동을 보아 하니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수하는 굳이 도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10분 뒤에 상영 시작한대. 수하야 팝콘이나 콜라 같은 거 살까? 아니면. 영화 다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팝콘 먹으면 나중에 밥맛 없으니까. 콜라만 먹자.”

  “응. 금방 사 올게.”

   

  수하의 손안에 영화표 3개를 쥐여 준 도훈이 다시 콜라를 사러 갔다. 도훈의 등 뒤를 잠시 쳐다보았던 수하는 손안에 들려 있는 영화표를 쥐고 있는 상태로 도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왜 따라 나온 건데요.”

  “음? 당연히 네가 있으니까.”

  “제가 있고 말고를 떠나서. 도훈이랑 데이트하려는데 형이 눈치 없이 따라온 이유를 묻는 건데요.”

  “말했잖아. 네가 있으니까 나왔다고.”

   

  수하는 자신이 묻는 말을 제대로 답해 주려 하지 않는 도윤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네가 있으니까’라는 말처럼, 정말 도윤이 자신이 있어서 나왔을지도 몰랐지만 수하는 도윤의 말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면. 형이 저랑 둘이 만날 때도 도훈이가 제가 있다는 이유로 나와도 상관이 없겠네요.”

   

  짜증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수하가 말하자 도윤은 웃는 얼굴로 수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도윤은 콜라를 시키고 있는 도훈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수하의 얼굴 옆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는 입술을 살짝 달싹거리며 수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멍청하게 너와 만나는 걸 도훈에게 알려 주겠어?”

  “….”

  “애초에 알 수가 없으니 방해를 할 수도 없겠지.”

   

  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수하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수하는 놀란 얼굴로 도윤을 잠시 쳐다보다가 벌렸던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사이에 도훈이 양손에 콜라를 들고 다가왔다. 도훈은 수하의 굳은 얼굴에 의아해했다가, 곧 도윤을 노려보았지만, 수하는 말없이 영화표를 확인하고 도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곧 영화 시작하겠다. 가자.”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지?”

  “별로. 그런 건 없었어.”

   

  도윤의 말이 걸렸지만. 지금은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났는데 서로의 기분이 상해서 싸우는 모습은 보기가 싫었다. 아까처럼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도윤과 도훈의 모습보다도, 도윤이 이전에 도훈에게 말했던 ‘개새끼가 되니까 진짜 개가 된 것만 같아?’하는 말이 떠올라 마음에 걸렸다.

   

  그 말을 취소는 했으나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 저 말까지 나온다면 도훈이 화가 나서 도윤과 싸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짜. 무슨 일 없는 거 맞지?”

   

  오랜 시간 친구였기 때문인지. 도훈은 수하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한번 물었지만. 수하는 도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걸음을 멈추었다. 직원에게 티켓을 전달해 주고, 직원이 하는 말을 멀거니 들으며 도훈을 돌아보았다.

   

  “아무 일도 없다니까.”

  “…알겠어. 네가 아무 일도 없다고 하니까 믿기는 하겠는데. 혹시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줘.”

  “응.”

   

  3관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수하가 걸음을 옮기기 전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은 어깨를 문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하는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는 도윤의 시선을 무시하고 3관 안으로 들어갔다. G 열 10.11.12 자리를 찾아 계단을 올라갔다. 힐끔 고개를 돌리자, 도훈이 아니라 도윤이 바로 등 뒤에 서 있는 것에 수하는 G 열 11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10번에 앉아도 괜찮은데.”

  “그러면 11번에 도윤이 형이 앉을 거잖아요.”

  “맞아.”

   

  도윤이 대답하며 웃는 말에 수하는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돌렸다. 수하의 다리를 넘어 도윤이 10번에 앉고 엉거주춤 서 있던 도훈이 12번 자리에 앉았다. 도훈이 수하의 자리 옆 고리에 콜라를 넣어 두고는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이 영화를 보자고 할지 몰랐는데.”

  “왜?”

  “응? 너 이 영화 뭔지 모르고 보자고 한 거야?”

   

  조금 전 도윤도 저 영화를 고를지 몰랐다고 말했는데. 도훈도 같은 말을 하자 수하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내뱉고 주변을 둘러보자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3관 안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눈앞에 커다란 스크린이 어두워지더니 영화관 천장과 밑에 달려 있던 불들이 전부 꺼져 관 안에 어둠이 찾아왔다. 눈을 몇 번 깜박이자 검은색 화면에는 이렇게 하지 말라는 에티켓 영상이 떠올랐다.

   

  “저거.”

   

  도훈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수하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수하. 너랑 닮은 것 같은 배우가 조교 당하는 영화라서. 네가 싫어할 줄 알았었는데.”

  “…뭐?”

  “아니… 그 뭐라고 하지. 원래는 안 닮았는데… 요즘 너 게임을 하면서 외모가… 좀… 바뀌었잖아.”

  “지랄하지 마. 나 얼굴 별로 안 건드렸거든. 지금 얼굴도 충분히 괜찮은데 내가 많이 바꿨겠어?”

   

  수하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살짝 돌려 도훈을 쳐다보았다. 서로의 코끝이 스치고 숨결이 뒤섞였을 때. 도훈은 멋쩍은 목덜미를 손으로 문지르며 작게 흔들었다.

   

  “네가 잘생기고 예쁘게 생긴 건 알지… 아는데… 그… 아니야. 보면 알 거야.”

   

  더듬더듬 말을 하며 결국, 도훈이 등받이에 다시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수하는 도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훈이가 하는 말. 진짜예요?”

   

  도윤은 그저 웃는 얼굴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려 스크린을 가리켰다.

   

  “봐 봐. 보면 알잖아.”

   

  도윤도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하는 두 사람에게 답을 받기는 힘들 거라 생각하며 의자에 편하게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영화관을 전세를 낸 것도 아닌데. 이 시간에 자신의 일행 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게 의아할 뿐이었다.

   

  “….”

   

  커다란 스크린에 뛰어가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으나. 거적때기 같은 낡은 옷을 움켜쥔 채로 무언가에 도망가듯이 빠르게 뜀박질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시끄러운 소리와, 남자가 도망가면서 밟은 마른 나뭇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관 안에 울려 퍼졌다.

   

  [“하악… 하악… 누… 누가… 누가 좀…!”]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힘든지 남자는 도망가는 동안 몇 번은 바닥에 넘어졌다. 곧 다시 일어나 도망가는 남자가 숲속을 지나 꼬불꼬불한 대로변에 뛰쳐나왔을 때. 밝은 가로등 밑으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미친?”

   

  [“씨발… 제발… 누가 날… 하악… 도와… 도와줘…!”]

   

  남자의 욕설과 수하의 욕설이 뒤섞였다. 가로등 밑에서 비추는 남자의 얼굴은 도훈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과 너무도 닮았다. 하나하나 보게 된다면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스치듯 보면 저 남자가 수하와 동일 인물로 착각할 만큼 비슷했다.

   

  “말했잖아. 네가 이 영화를 고른 게 신기하다고.”

   

  도윤의 목소리는 수하의 귓가에 들려오지 못했다. 영화관 사운드에서 다시 울면서 뛰고 있는 남자의 걸음 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크게 들려주었다. 굳은 수하의 양손은 의자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제발…!”]

   

  남자는 목숨이 날아가도 살아야겠다는 것처럼 도로변에서 달려오는 차 쪽에 몸을 서서 두 팔을 흔들었다. 끼이익. 바퀴가 도로에서 밀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었을 때, 남자는 급하게 뛰어 조수석을 두드렸다.

   

  [“도… 도와주…. 아… 아아…”]

   

  도와 달라고 말하려던 남자는 지이잉. 소리와 함께 창문이 내려갔을 때.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아!”]

   

  비명과 함께 남자가 급하게 왔던 길을 도망가려는 것처럼 뛰어가자 차는 다시 출발해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놀라 비틀거리는 남자가 바닥에 넘어졌을 때,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려 넘어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술래잡기는 이제 그만하지.”

  “도…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15번. 네게 말대꾸라고 한 적은 없는데.”

  “15번! 15번! 그만 말해! 내 이름은…!”]

  비명을 지르는 15번의 머리를 후려친 남자에, 15번은 비틀거리다 아스팔트 도로에 쓰러졌다. 남자는 익숙한 것처럼 15번을 안아 들어 차 뒷좌석에 눕히고는 문을 닫았다. 운전석에 다시 타고 남자가 뛰어왔던 산길을 따라 차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 밤.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하… 미친.”

   

  차 뒤로 떠올랐던 영화의 제목이 흐릿하게 부서져 사라졌다. 흙바닥 위로 타이어 자국이 생겨났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에 흙바닥 위로 생긴 타이어 자국은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

  스크린이 어둠에 휩싸이고 다시 환해졌을 때 장면은 전환되어 침대 위에 아까 도망갔던 15번이 목에 목줄을 달고 있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

   

  그 모습이 자신과 비슷해서 그런지. 수하의 표정은 풀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

   

  수하는 도윤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에 고개를 살짝 돌려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입가를 검지로 눌러 조용히 하라는 듯하더니 수하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붙잡으며 다른 손으로 수하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읏….”

  “왜 그래?”

  “아무것도….”

   

  도훈이 수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살짝 내렸을 때 수하의 손을 잡으며 허벅지를 쓸고 있는 도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형! 뭐 하는 거야!”

   

  도훈이 화가 난 목소리로 수하의 허벅지를 만지고 있던 도윤의 손을 붙잡았다. 몸을 기울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낀 수하는 얼굴을 구기며 등받이에 등을 편하게 기대고 한숨을 내뱉었다.

   

  “영화관이야. 에티켓 몰라?”

  “…하지만….”

   

  우물쭈물하며 혼난 강아지처럼 침울해하는 도훈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으나, 수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눈앞에 있는 영화의 주인공이 자신과 닮아 있어서 기분이 나쁜데 옆에 앉은 두 사람까지 말썽이라서 할 말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저 영화를 고를지 몰랐다가 아니라, 왜 저 영화를 고르지 않을 줄 알았는지 이유도 좀 말해 줄래?”

   

  수하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스크린에서 자신을 닮은 15번은 벽에 연결되어 있는 목줄을 끊으려는 듯 두 팔로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에 15번은 주변을 둘러보며 사슬을 끊을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아….”

   

  수하는 자신의 허벅지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의 손을 피해서 팔걸이 고리에 걸려 있는 콜라를 꺼내 빨대를 입에 물고 한 모금 쭉 들이켰다.

   

  [“누가… 누가 날 좀… 제발… 살려 줘…”]

  “마셨네.”

  “...응.”

   

  스피커를 뚫고 들려오는 공포에 휩싸인 가는 목소리와 함께 양옆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수하는 빨대를 입에 머금고 도훈을 바라보았다.

   

  “...뭔데.”

   

  수하가 의아해하며 도훈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도훈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수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수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어려운 길이 아니라. 쉬운 길을 가려고 하는 거지.”

   

  수하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 같은 도윤의 말에 수하는 도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벅지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두 손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수하의 손을 마주 잡고 있는 도윤은 다리를 꼬고 팔 손잡이에 팔뚝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턱을 괴며 수하를 바라보았다.

   

  “쉬운 길...? 그게 뭔데요.”

  “멍청한 동생이 욕을 먹고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는 소리지.”

  “...네?”

   

  수하는 느릿느릿 눈을 깜박였다. 이상하게 목에 갈증이 일어나는 것 같아 콜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고리에 다시 콜라를 내려놓으면서 도윤의 얼굴을 계속 지켜보았다. 분명 아까 도훈과 도윤이 싸울 것 같을 때 저 말을 들었던 수하는, 도윤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고 도훈을 바라보았다.

   

  “뭔데. 네가 말해 봐.”

   

  움찔 떨리고 있는 도훈의 어깨를 붙잡은 수하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나마 영화관 안에 자신의 일행밖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랬다면, 민폐를 끼치는 것이었으니까.

   

  “…미안해 수하야.”

  “뭐가 미안한데. 말을 해야 내가 알아먹을 거 아니야.”

  “…내가… 미안해.”

   

  도훈에게 무슨 일인지 왜 그러는 건지, 도윤의 말뜻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했지만 도훈은 끝까지 말할 것 같지가 않았다.

   

  “말을 해야지 내가. 내가 알아먹을 거 아니야.”

   

  속이 답답하고 목구멍은 텁텁하게 말라 갔다. 피곤하고 정신없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는 집중이 되지가 않았다.

   

  [“싫… 싫어!”]

   

  영화는 이제 시작을 하는지. 방 안에 복면을 쓰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놀라는 15번이 뒷걸음질 치며 도망을 가다가 결국 바닥에 엎어져 주저앉은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한숨을 내뱉으며 부드러웠던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자, 도윤과 도훈이 수하의 양 손목을 붙잡아 일어난 수하를 다시 의자에 앉히게 했다.

   

  “뭐 하는 거야?”

   

  수하가 기분 나쁜 어조로 말을 했지만, 양옆에 앉아 있는 도윤과 도훈, 그 누구에게도 왜 손목을 잡았는지에 대해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 도대체… 둘이 무슨 짓을 꾸미는 건데.”

   

  수하의 입에서 결국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자에 다시 앉아 고개를 들면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15번을 연기하는 배우가 복면을 쓴 남자에게 깔려 도망가려는 모습이 보였고, 양옆에서는 자신의 팔을 움켜쥔 도훈과 도윤에 의자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고개 들어.”

   

  수하가 고개를 숙여 영화가 나오는 스크린을 더는 보려고 하지 않자 도윤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고 수하의 턱을 붙잡아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안 봐. 그러니까 좀 놔!”

   

  수하는 섹스하는 게 좋았다.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를 잡아먹자는 것도 좋았다. 다만, 영화 내용이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조교를 당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질색이었다. 저런 내용이 있었다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도훈이 너와 비슷하게 생긴 배우가 연기한다고 제대로 말을 해 주었어야 했고, 도윤도 도훈과의 데이트를 방해하면 안 됐다.

  무엇을 생각해도 기분이 나빴다. 두 팔을 움직여 버둥거리려고 해도, 양옆에서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두 사람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었고,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린 도윤의 손아귀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씨발. 저딴… 저딴 내용이었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는 사운드는 끔찍했다. 분명 자신과 다른 얼굴인 것이 보이는데도, 그 느낌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였기에. 수하는 더 기분이 나빠 왔다.

   

  이유? 이유는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것 중에 하나였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배우가 잡아먹히는 상대 배우의 몸이 별로 안 좋았다는 것이다.

아랫배 털까지는 참을 수 있어도 제대로 몸 관리도 안 한 것 같이 근육 선도 예쁘지도 않은 남자에게 잡아먹히다니. 상상만으로도 불쾌했다.

   

  “놓으라고!”

   

  수하가 남자를 골라 먹는 것 중에 가장 크게 보는 것은 얼굴이었고, 그 다음은 성기와 몸이었다. 그런데 영화 속 배우가 자신의 만족도에서는 떨어졌고, 15번을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 때문에 자신이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발끝부터 개미가 타고 올라오는 것같이 찜찜하고 기분이 나빠진 수하는 붙잡힌 몸뚱이를 움직여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아니. 끝까지 봐.”

   

  [“싫… 싫어! 엄마! 엄마! 누가 나를 좀… 살려 줘요!”]

   

  스피커를 통해 날카로운 비명과 우울함과 질척한 슬픔, 그 안 깊숙한 곳에서 퍼져 나가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포기한 좌절감이 묻어 있는 목소리가 수하의 귓가에 들려왔다.

  기분 나쁘다. 차라리 두 사람이 고른 게 싫었어도 그중에 하나를 골라 보는 게 나았을 텐데. 이미 선택한 것은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해도 돌아갈 수 없기에 수하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목구멍이 텁텁하고 뜨거워졌고 눈앞은 어지러운 것 같았다.

   

  “널 닮은 배우가 구멍 안으로 좆을 삼키는 것 하나하나를 보라고. 수하야.”

  “…형.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수하가 온몸에 힘을 풀고 의자의 늘어져서 앉았다.

   

  “하아… 됐어. 됐으니까. 내 손목 놔.”

  “아직 괜찮은 건가?”

  “또… 하 씨발… 또 뭔데.”

   

  결국 수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버둥거리면서 힘이란 힘을 전부 썼기 때문인지. 더 이상 반항은 하지 않고 축 늘어져서 복면을 쓴 남자에게 당하며 울고 있는 15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싫다고, 하지 말라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내며 목구멍에 눌려 거친 비명을 질러 대는 모습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손목을 힘주어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의 손이 떨어졌다. 뻐근하게 아파지는 손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뱉자. 이상하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

  “생각보다. 저 영화 마음에 들지 않아?”

  “…미쳤어요?”

  “저거.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뭐… 라고?”

   

  도윤이 덤덤하게 내뱉을 말을 들은 수하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도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윤의 시선은 스크린에 가 있지 않았다. 아까부터 수하만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은 잠시도 떨어지지를 않았었다. 수하는 자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낱낱이 살펴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 정도까지 한 거 아니죠…? 설마.”

  “그냥. 예상한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게 신기해서 수하야.”

  “...네?”

   

  도윤은 웃는 얼굴로 수하의 옆에 앉아 아랫입술을 깨물고 허벅지 위로 주먹을 올려놓으며 화를 참고 있는 도훈을 한번 보았다가 수하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수하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가득했고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도윤을 흘겨보자, 도훈은 손을 뻗어 수하의 목선을 아프지 않게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살살, 불룩 튀어나온 목젖을 매만졌다.

   

  “우리가 고른 영화 보기 싫어서 저 영화 고른 거잖아.”

  “….”

  “근데 그걸 모를 정도로 내가. 아니, 도훈이나 나나 멍청할 줄 알았어?”

  “하… 모든 게 계획이었다고요? 도훈이랑 데이트에 형이 억지로 껴서 온 게 아니라, 도훈이랑 이야기를 다 했다고요?”

   

  여전히 수하의 물음에 답을 해 주지 않았으나. 수하는 말 없는 답을 이미 들었다. 도윤이 도훈을 힘으로 누르고 형이라는 이름으로 쫓아온 것이 아니라 무언가 두 사람끼리 합의를 하고 온 거라고. 그것밖에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수하는 자신의 목젖을 누르며 매만지는 도윤의 손에 소름이 돋아났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밑이 저려 와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소름이 돋아났다.

   

  ‘정말 내가 변태가 되어 버린 걸까.’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도윤이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에 흥분을 하는 걸까. 수하는 어지러운 머릿속에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도윤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형. 대답해 봐요.”

  “아무리 인기 없는 영화라고 해도. 우리밖에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의아하지 않아?”

  “….”

  “하물며.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도 아니고. 19금 영화인데.”

   

  느릿느릿하게 말을 하는 도윤의 목소리에 수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윤의 말대로 이상했다. GCV에 처음 들어왔을 때. 분명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3관 안에 들어왔을 때는 그 수많은 사람의 모습은 없고, 자신의 일행밖에 없었다는 점이 의아했다.

   

  정말 재미없는 영화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홍보를 잘못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다는 건 이상한 것이 맞았다.

  “배우의 얼굴이 수하. 네 얼굴과 비슷한 것도 신기하지 않아?”

  “….”

  “조금은 달라 보여도. 솔직히 비슷하잖아.”

  “….”

   

  수하는 도윤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안에 침을 모아 삼키는 그 순간까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수하야. 이제 알겠어?”

   

  만드느라 고생했다는 말.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배우. 우리들 빼고는 아무도 없는 영화관 관람석.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이상했을 게 분명했는데. 처음 영화표를 사러간 도훈이 티켓을 주었을 때도. 별다른 이상한 것을 못 느꼈다.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그 순간까지도 배우의 얼굴이 자신과 닮아서 불쾌했을 뿐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은 못 느꼈다.

  도훈이 계속 이 영화를 고를지 몰랐다고 하는 말에 의구심을 품었던 것도 잠시였고, 두 사람이 싸우듯이 소란스러울 때도 일행 빼고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하나하나 짜 맞춘 퍼즐이었고. 자신은 도윤의 손바닥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그 사실이 소름이 끼쳤다.

   

  “이거 영화, 전부터 만들고는 있었는데. 오늘 너랑 도훈이 데이트한다고 해서 급하게 영화관 관람석을 빌렸어.”

  “…왜… 왜요?”

  “생각보다 돈은 좀 썼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말했잖아. 어려운 길은 가지 않고 쉬운 길로 가기로 했다고. 멍청한 동생이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었지만 말이야.”

   

  도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수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도훈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배신감처럼 받아들여졌으나, 아직 도윤이 말을 하는 ‘쉬운 길’ 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하는 힘없는 팔을 들어 올려 목을 붙잡고 있는 도윤의 손을 뿌리쳤다. 탁,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손끝이 얼얼하게 아파졌다. 도윤의 손에도 붉은 자국이 생겨났지만, 수하는 고개를 돌려 옆에서 죄인처럼 앉아 있는 도훈을 쳐다보았다.

   

  “…다 알고 있었어?”

   

  영화관을 빌렸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도윤은 게임을 많이 했고 그걸로 돈을 쏠쏠하게 벌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기엔 쏠쏠한 돈이었어도, 어쩌면 말 못하게 큰돈을 벌었을지도 몰랐다.

  수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전히 목구멍은 텁텁해서 목이 말랐고 심장은 크게 뛰었다.

   

  “…어쩔 수 없었어.”

  “…뭐?”

  “어려운 길로 가려고 했어. 네가 날 안 좋아해도, 뒤에서 우두커니 기다리려고 했어. 근데… 근데 있잖아.”

   

  도훈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수하를 쳐다보았을 때, 수하는 도훈의 두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아흑!”]

   

  눈치 없게. 스피커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와 숨 막혔던 분위기는 조금 풀어졌으나. 수하는 도훈의 울 것 같은 표정에도 아무 말을 하지를 못했다.

   

  “내가 로그인하기 전에 네가 이미 내 캐릭터였던 NPC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바보처럼 기다릴 수가 없었어.”

  “….”

  “…그런데 형이… 형이 계속 쉬운 길로 가자고 말하니까… 하… 미안해 수하야.”

   

  변명처럼 말을 하던 도훈은 끝내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수하는 아무 말 없이 도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끝끝내 도훈은 쉬운 길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쉬운 길이... 도대체 뭔데...”

   

  그 길이 무엇이라고. 이 두 사람이 영화관 한 관을 빌리고,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영화 티켓까지 사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포스터까지 걸어 놓았던 걸까.

   

  “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목구멍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목이 마르다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머릿속을 굴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고 해도 목이 말라서, 그것 때문에 거슬려서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손을 뻗어 고리에 걸려 있는 콜라를 꺼내 빨대를 입에 물고 마시고 있으니 이상하게 도윤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보였다.

   

  “…설마… 아니지?”

   

  콜라를 먹고 있던 수하가 몸을 멈추고 도훈과 도윤을 번갈아 보며 바라보았다. 점점, 목구멍의 갈증은 심해져만 갔다. 손에 들고 있던 콜라를 놓친 수하는 바닥에 엎어지는 콜라와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파우치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저건 뭐야?”

   

  콜라 뚜껑이 분리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진 네모난 얼음들과 검은색 콜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하지만 뚜껑에 꽂혀 있는 빨대 아래, 하얀 파우치가 꽂혀 있었다. 주변은 콜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안에도 콜라처럼 검은색 액체가 조금 남아 있었다.

   

  “…저게 뭐냐고….”

  수하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검은색 바지춤은 콜라에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찝찝한데 등줄기가 오싹했다. 비틀거리면서 의자에서 일어나자, 아까와 다르게 도훈과 도윤. 그 누구도 수하의 손목을 붙잡아 앉히지 않았다.

   

  “…아….”

   

  도훈의 다리를 넘어갔을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수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듯 주저앉았다. 손끝과 발끝은 덜덜 떨려 왔고 목구멍은 뜨거웠다.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점점 심해졌지만, 도훈의 의자에 걸려 있는 콜라에도 무언가가 되어 있을까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윽…! 아흣!”]

   

  그럴수록 귓가에 배우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그 목소리는 자신과 달랐다. 만들기 힘들었다는 말은, 어쩌면 CG를 입혀서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보이게 만든 걸지도 몰랐다.

   

  “…씨발 진짜….”

   

  수하의 입에서 결국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약속 시각을 당기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덜덜 떨리는 몸과 점점 더워지는 몸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등 뒤로 끼익 의자 소리와 함께 뚜벅, 뚜벅,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도윤일 것이 분명했다.

  수하는 더러운 바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힘을 주며 긁었을 때, 도윤은 바닥에 넘어져 있는 수하의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어때?”

  “…뭘 먹인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수하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도훈과 도윤에게서 지금은 도망갈 수도 없었고. 붙잡힌다고 해도 섹스를 할 뿐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만, 아까 먹은 게 무엇인지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도윤을 노려보았다.

   

  “…너도 알잖아?”

  “뭘….”

  “수하 네가 테인이였던 도훈이에게 먹였던 약과 비슷한 거야.”

  “….”

  “발정제. 라고 말하면 알려나?”

  “…미쳤어. 형은 진짜… 미쳤다고…!”

   

  수하가 경악을 하며 도윤을 보며 소리를 쳤다. 도윤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온몸이 가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버덩이던 것 때문인지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수하는 고개를 돌려 도훈을 쳐다보았다. 그나마 여기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도훈 밖에 없었다. 수하가 간절하게 도훈을 쳐다보고 있자, 그 시선을 눈치챈 도윤이 수하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며 도훈에게 몸을 돌렸다.

   

  “이제. 너와 내가 원하던 대로 쉬운 길을 갈 수 있는데. 다시 돌아가서 어려운 길로 가려고?”

  “…형….”

  “알잖아. 지금 수하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면. 과연 수하에게 네가 우선순위일까?”

  “….”

   

  수하는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도훈과 도윤의 얼굴도 흐릿했다. 있는 힘, 없는 힘을 주고 도윤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꼭 술에 취한 것처럼 온 세상이 크고 작게 보였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신음은 웅웅웅 퍼져 나가 두통을 일으켰다.

   

  “정신 똑바로 차려 멍청한 새끼야. 네 볼품없는 좆은 수하한테 딜도를 대체할 대용품밖에 되지 않아.”

  “….”

  “그냥 도구처럼 사용되다가 버려질래? 똑바로 생각해. 너 그거 싫잖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입을 벌렸을 때 더운 숨만이 내뱉어졌다. 수하는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며 도훈을 내려다보았다.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도훈은, 아까 떨어진 얼음 조각을 발로 짓누르며 수하에게 다가왔다.

   

  “…미안해.”

  “잘 생각했어.”

   

  [“아…아 아흐! 제… 제발 날… 날 놓아줘…”]

   

  수하의 기억이 끊기기 전에. 잡음과 뒤섞인 애절한 음성과 도훈의 사과. 그리고 만족스러운 것 같은 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주어 잡고 있던 수하의 손이 툭 떨어져 가슴에 내려왔다. 도윤은 수하의 몸을 다시 제대로 안아 들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도윤의 등 뒤로 따라오는 도훈은 무언가 계속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한숨을 내뱉으며 도윤의 등 뒤를 따라 내려왔다.

  도윤의 품 안에서 기절한 듯 잠을 자는 수하는 입을 살짝 벌려 더운 숨을 토해 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저… 형….”

  “왜.”

  “수하가… 외려… 싫어하지 않을까…?”

  “자유롭게 날아다니려는 새를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잠깐 쉬어 가려고 들를 수도 있잖아.”

   

  도윤은 비상문 앞에 멈추어 서서 몸을 살짝 돌려 도훈을 바라보았다. 도훈은 자신이 한 행동이 아직도 불안한지, 아니면 수하에게 미움을 받을까 무서운 건지 고민을 하면서 걱정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럼. 넌 그걸로 만족해하던지.”

  “….”

  “멍청한 동생아. 대놓고 쉬운 길이 뻔히 있는데 왜 계속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건데.”

  “수하가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몸 정에서 맘 정으로 바뀌는 거 쉬워. 특히 수하 같은 경우는 섹스에 반쯤 미쳐 있잖아.”

  “….”

   

  한 걸음. 도윤이 도훈에게 다가갔다. 도훈의 눈앞에 더운 숨을 몰아쉬며 기절하듯 잠이든 수하가 닿았을 때, 도윤은 몸을 살짝 숙여 도훈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자유로운 새를 붙잡는 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물을 쓰든 화살을 쓰든 무언가를 써서 붙잡고 새 장안에 가둬 놓는 거야..”

   

  도윤은 도훈이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속삭이듯 도훈에게 말했다.

   

  “차라리. 너랑 나랑만 수하를 가지는 게 좋지 않겠어?”

  “….”

  “아니면 다른 놈들에게도 수하를 공유하고 싶어?”

  “…그건… 이제 싫어….”

   

  도훈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도훈은 차라리 도윤과 자신만이 수하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은 싫었다.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문질렀다.

   

  “싫으면. 새장에서 못 도망가게 꼭꼭 숨겨서 알려 주면 돼.”

  “…어떻게…?”

  “현실이 더 즐겁다고. 다른 놈들이 만족하게 할 수 없을 만큼 이런 쾌감을 알려 줄 수 있다고. 쉴 틈 없이 알려 주면 돼.”

  “쉴 틈 없이….”

  “우리를 벗어나면 수하가 만족할 수 없게. 도망가도 돌아올 수밖에 없게. 하나하나 바뀌게 만들면 돼 멍청한 새끼야.”

   

  도윤은 그대로 수하를 안아 든 상태로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멍청한 표정으로 스르륵 닫히는 영화관 안에 혼자 남은 도훈은 두 손을 힘주어 움켜쥐고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하으... 아아!”]

   

  도훈이 혼자 남은 영화관 안에는 15번의 간드러진 신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

   

  “으음….”

   

  미약한 투정과 함께 수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온몸이 가렵고 덥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몸을 들썩이고 둥글게 몸을 말았다. 귓가에 철그덕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천천히 눈을 들어 올린 수하는 멍하니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하얀 천장과 벽, 그리고 그렇다 할 가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누워 있는 커다란 침대와 주변에 사람이 앉을 만한 검은색 소파.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하얀 문이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이었다.

   

  “여긴… 뭐야….”

   

  텁텁하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수하는 손을 들어 올려 목선을 문지르려 했다. 무언가 손가락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이자 목 앞에서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이 침대 헤드에 굳게 자물쇠로 잠겨 있는 것이 보였다.

   

  “…하…?”

   

  꼭 영화에서 본 것처럼 가둬져 있는 것에 수하는 어이없는 숨을 토해 내며 침대에 반쯤 일어난 상태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분명 마지막에 바닥에 넘어지고 도윤의 멱살을 잡았던 그것을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도훈이 사과한 것 뒤로는 다른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생각을 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에, 수하는 손톱으로 목을 감싸고 있는 목줄을 긁어내며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수하가 일어나는 것에 사슬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걸어가려 하자 문 앞에서 한 걸음 남기고 사슬이 당겨져 더 움직여지지 않았다.

   

  “…윽….”

   

  그대로 발이 멈춘 수하가 목에 감긴 목줄을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을 뻗자 손끝에 겨우 닿는 문을 문질렀다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고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렇다 할 무언가가 보이지가 않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네.”

   

  무언가 뾰족한 거라고 있으면 목줄을 뜯거나 할 텐데 그런 물건도 보이지가 않았다. 수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힘을 빼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입고 있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바지도 사라져 있고, 끈으로 된 하얀 레이스 팬티와 커다란 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문밖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수하가 고개를 들어 올려 문을 쳐다보았다.

   

  철컥철컥.

   

  무언가 여러 개를 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끼이익 기름칠이 덜 된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검은색의 멀끔한 양복을 입고 있는 도윤이 상자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형….”

   

  수하가 낮은 목소리로 도윤을 향해 말하자. 도윤은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닫으며 근처에 있는 소파에 상자를 내려놓고 수하에게 다가갔다.

   

  “일어났네.”

  “형… 저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왜 이러냐니. 당연히.”

   

  도윤은 손을 뻗어 수하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검은색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네가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뭐라고요?”

  “가둬 버리기로 했어.”

  “…형. 진짜 미쳤어요?”

   

  수하가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도윤에게 말하자, 도윤은 수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눈을 반쯤 접고 웃었다. 수하의 당황 섞인 얼굴이 귀엽다는 듯 몇 번 볼을 쓰다듬었지만, 수하는 그런 도윤의 손을 뿌리치듯 내리치며 도윤의 손에서 얼굴을 떨어트렸다.

   

  “이거. 납치라고요.”

  “그래서?”

  “…뭐… 요?”

  “납치면 뭐 어때서? 상관없잖아.”

  “형. 진짜 미쳤어…? 빨리 풀어. 경찰에 신고는 안 할 테니까.”

   

  수하가 덤덤하게 말하는 말을 듣던 도윤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런 도윤의 얼굴에 수하는 불안한 얼굴로 도윤을 몇 번 바라보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무언가 불안한 마음에 주춤, 물러날 곳도 없는데도 엉덩이를 뒤로 물리며 도윤에게서 조금 더 떨어지려고 했다.

   

  “경찰? 신고는 어떻게 하려고?”

  “….”

  “핸드폰도 없고. 이 방에서 연락할 수단도 없는데. 신고는 할 수 있겠어? 그래. 만약에 신고했다고 치자. 위치는 뭐라고 말하게?”

  “…그건….”

  “위치를 몰라서 네가 납치 당했다고 하자. 근데. 과연 네 말을 믿어 줄까?”

   

  도윤은 상체를 살짝 숙여 수하의 얼굴과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굳어 있는 수하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제가 어느 집 누구인 형한테 납치를 당했다. 근데 위치도 모르고 핸드폰도 도둑맞았는데 어떻게 해서 일단 전화는 걸었다. 그러니까 도와 달라.”

  “….”

  “이렇게 말을 하는데 어디 다친 것 없이 멀쩡해. 그러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진실이라고 생각할까?”

   

  천천히 말을 하는 도윤의 말에 수하는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온몸이 가려운 것은 점점 심해졌고. 눈앞에 보이는 도윤은 바로 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도윤의 말은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이 방 안에서 목줄이 풀리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온 주변을 둘러봐도 침대와 소파밖에 없는 곳에서 무언가 숨길 수 있을 공간도 없었고,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

  창문조차 없는 방이라, 소리를 친다 해도 누군가가 듣고 도와주러 올 가능성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형… 저한테….”

  “바보 같은 질문인데? 말했잖아. 네가 말을 안 들어서 가뒀다고.”

  “제가…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잘못한 게 없잖아요!”

  “정말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

   

  도윤이 수하의 어깨를 붙잡아 침대로 눌렀다. 침대 매트리스가 작게 흔들렸고 수하의 몸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멍하니 도윤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하를 내려다보며 도윤은, 수하의 다리 위에 주저앉아 수하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살살 문질렀다.

   

  “네가 한 잘못들. 알고 있잖아.”

   

  수하는 말없이, 혹시 집 밖으로 나가는 퀘스트에서 카데스에 들어가 있던 도윤이 넣어 주었던 딜도를 꺼낸 것을 알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것 말고 다른 무언가를 잘못한 건지 고민을 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수하는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고 도윤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럼. 그것만 사실대로 말해 줘요.”

  “뭘?”

  “제가 기절하기 전에 본 영화에서 본 배우가 제 얼굴과 비슷한 거. 형이 만든 거예요?”

  “흠… 어떨 것 같은데?”

  “만들기 힘들었다고 말했으니까… 무언가는 만들었겠죠.”

   

  최대한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덤덤한 목소리로 수하가 말했으나. 수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윤은 수하의 두 눈이 작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맞아. 얼마 전에 한 영화 지분을 사서 그 영화의 주인공 얼굴에 네 얼굴을 CG로 입혔어.”

  “왜요…?”

  “그러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어차피. 그 영화는 너랑 도훈이 말고는 볼 수 없는데.”

  “왜… 왜… 영화까지 사서 제 얼굴을 입힌 건데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요? 제가 형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한테 그러는 건데요!”

   

  결국 천천히 말을 하던 수하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면서 나중에는 도윤에게 소리를 치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도윤은 그런 수하를 내려다보면 외려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는 말했다.

   

  “왜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데?”

  “…뭐라고…?”

  “뭐 가두는 것도 쉬운 방법은 있지. 널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해 주고 그 밥 안에 수면제를 넣었어도 멍청한 넌 밥을 먹고 잠들었을 거야. 난 그대로 널 이 방에 가둬도 괜찮았고.”

  “….”

  “근데.”

   

  도윤이 말을 하다가 멈추는 것에 수하는 입안이 천천히 말라가는 것 같아. 숨을 크게 삼켰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도윤은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담담한 표정을 최대한 지으려 하는 수하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것을 삼켰다. 토끼가 사자 앞에 서서는 자신이 초식이 아니라 맹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건 재미없잖아.”

  “…형… 미쳤어요? 또라이야?”

   

  수하의 말끝이 점점 흔들렸다. 감정을 숨기기 어려운지 얼굴은 벌겋게 물들었고 침대에 내려놓았던 두 손을 들어 올려 도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 수하의 손은 작게 떨려 왔다.

   

  “또라이? 음. 뭐 그럴지도 모르지.”

  “…진짜 미쳤어.”

  “그래서? 내가 미쳤으면. 넌 미친놈한테 납치당한 건데.”

  “….”

  “아아. 그리고 뭘 잘못했냐고 물었지?”

   

  도윤은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수하를 보며 웃었다. 수하는 그 미소가 진득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악하고도 무섭다고 느껴졌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게 되면. 이곳에서 내보내 줄게.”

  “…하… 하?”

  “하지만. 네가 한 잘못을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지. 이곳에서 잘못을 알아낼 때까지 있어야지.”

   

  도윤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수하의 손을 풀었다. 수하가 반항하며 멱살을 힘주어 움켜쥐었지만. 운동을 하고, 힘이 강한 도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도윤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이 침대에 떨어진 수하가 저리는 팔을 움켜쥐며 도윤을 노려보았지만, 도윤은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소파에 내려놓았던 상자로 걸어갔다.

   

  “혼자 심심할까 봐. 재미있는 장난감 좀 가지고 왔어.”

   

  도윤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수하의 시선이 상자에 닿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상자를 뒤집어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투두둑. 바닥으로 떨어지는 내용물을 본 수하의 시선이 흔들렸다.

   

  수만 가지의 성인 용품들이 바닥에 굴러떨어져 수하의 발아래까지 굴러왔다. 발끝에 치이는 둥근 딜도를 내려다보았다가 할 말을 잃고 도윤을 바라보았지만, 도윤은 수하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웃었다.

   

  “앞으로. 네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이것들이랑 한 몸으로 지내야 할 거야.”

  “미친 새끼. 내가 그걸 들을 것 같아?”

  “뭐. 안 들으면 어쩔 수는 없는데. 난 네가 내 말을 정말 잘 들을 것 같거든.”

  “…하. 웃기지 마.”

   

  수하가 어이없다는 듯 한탄 섞인 숨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발끝에 치인 딜도를 발로 차 버렸다. 다시 굴러가는 딜도가 도윤의 신코에 닿았을 때, 도윤은 상체를 굽혀 신발 아래에서 멈춘 딜도를 들고 수하에게 다가갔다.

   

  “….”

   

  도윤은 경계를 하면서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하를 한번 내려다보며 주머니를 뒤져 하얀 알약 하나를 꺼냈다. 수하의 시선이 도윤의 손에 닿았다.

   

  “말했잖아. 넌 내 말 듣게 될 거라고.”

  “뭐, 뭐 하는 잠깐!”

   

  도윤이 수하의 뒤 머리카락을 붙잡아 당겼다. 소리치던 수하가 도윤의 손안에 들려 있는 하얀 알약이 가까워지자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런 수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던 손으로 양 볼을 붙잡아 힘주어 눌렀다.

  우득. 소리와 함께 아파졌는지 수하가 결국 입을 벌렸을 때. 하얀 알약을 수하의 입에 넣은 도윤은 그대로 수하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 우우!”

   

  입이 막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붙잡고 있는 도윤의 손을 긁어내고 다니며 피하려고 했지만, 도윤은 힘을 주고 수하의 입을 막은 상태로 웃었다.

   

  “삼켜.”

   

  수하는 어떻게든 알약을 삼키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입안에 모이는 타액에 알약이 녹아내렸다. 달면서도 쓴 알약의 맛이 느껴지자 수하가 더 버둥거리려 했으나. 결국 도윤이 수하의 고개를 꺾어 천장을 보게 만들었다.

   

  움찔움찔 몸을 떨며, 입에 고인 타액을 삼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시간이 흘렀을 때. 수하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작게 흔들리며 도윤이 넣은 알약을 삼켜 냈다.

   

  “잘했어.”

   

  도윤은 그 말을 하며 수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웃으며 수하에게서 떨어졌다.

   

  “그거. 최음제야. 심장이 두근두근할 거고, 뒷구멍도 가려울 거야.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준 선물로 즐겁게 놀아 봐.”

  “…씨발….”

   

  수하가 욕설을 하며 도윤에게 뛰어들려 했지만, 도윤은 수월하게 수하를 피하고 천천히 아까 들어왔던 하얀 문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엎어진 수하가 바보처럼 도윤을 쳐다보았을 때. 도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수하를 보며 웃었다.

   

  “내일 봐.”

   

  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방안에 수하만 내버려 둔 채로 나갔다. 하얀 문 밖에 달린 자물쇠들을 다시 하나하나 채운 도윤이 몸을 돌렸을 때. 우두커니 서 있는 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왜.”

  “…수하가 뭐라고 해? 욕하지 않아? 원망하지 않아?”

  “쯧….”

  “그리고… 정말 수하한테 최음제를 먹인 거야…? 형 정말 미쳤어?”

   

  도훈의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윤은 한숨을 내쉬며 도훈의 팔을 붙잡은 걸음을 옮겼다.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거실 소파에 도훈을 집어던지다시피 놓은 도윤은, 근처 의자에 앉았다.

   

  “최음제 아니야.”

  “하지만 방금 최음제라고.”

  “플라세보 효과.”

  “뭐?”

  “최음제가 아니야. 일반 영양제일 뿐이지. 하지만 처음 먹는 사람은 심장이 뛰고 더위를 느낀다고 말하지.”

   

  도윤의 말에, 도훈은 최음제가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는지.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소파에 앉아 도윤을 바라보았다.

   

  “근데. 난 수하에게 최음제라고 말했어.”

  “…처음 먹는 사람이 심장이 뛰고 더위를 느끼면….”

  “당연히 그게 최음제인 줄 알고 최음제를 먹었다고 믿겠지.”

  “….”

  “그러면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나. 먹지 않은 약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최음제라고 믿게 되면?”

  “…최음 효과처럼 몸이 반응하겠지.”

   

  도윤의 말에 도훈이 허탈한 듯 대답하자 도윤은 도훈이 보는 앞에서 주머니 안을 뒤져 하얀 알약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믿기 힘들면. 약 들고 약국이나 가봐. 그러면 거기서도 영양제라고 할 테니까.”

  “…형이 수하한테 안 좋은 약을 먹이지 않을 거라고 믿어.”

  “웃기네. 그래 놓고 불똥 튄 망아지 새끼처럼 달려와서 걱정해?”

  “….”

   

  도윤은 눈앞에서 앉아 있는 도훈을 보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손안에 들고 있는 열쇠를 작게 흔들었다.

   

  “그냥 넌 내 말만 들어.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하가 우리의 손에 떨어질 테니까.”

  “…수하가 망가지거나 힘들어하는 게 싫어….”

   

  도훈의 시선이 수하가 갇혀 있는 방 안의 자물쇠 열쇠를 흔들고 있는 도윤의 손에 닿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 교육하는 거 방해하지나 말고.”

   

  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는 도훈을 두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혼자 소파에서 앉아 있는 도훈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씨발….”

   

  연거푸 욕설하던 도훈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가 있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문을 보던 도훈은 입에 고인 타액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려다가 멈추었다.

   

  “….”

   

  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는데. 어려운 길을 가기 싫다고 쉬운 길을 가겠다고, 결국 친구인 수하를 속여 납치했다.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화를 내며 소리쳐도 할 말이 없었다.

  도훈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힘없는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

   

  “…읏….”

   

  도윤이 나가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수하는 손을 들어 올려 와이셔츠를 움켜쥐고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진짜… 최음제를 먹인 거야…?”

   

  심장이 쿵쿵 뛰고 목의 갈증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실 물 같은 건 보이지가 않았다. 수하는 두 손으로 팔뚝을 끌어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풀기를 반복했다.

   

  “…하아… 하아….”

   

  숨은 점점 가빠오는 것 같았고. 속은 답답했다. 팔뚝을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 하얀 셔츠를 움켜쥐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최음제를 먹으면 어떻게 되지. 몸이 뜨거워지고 아래가 가려워지는 걸까.’

   

  어쩌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지러운 머리와 갈증.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과 더위에 결국 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어내며 셔츠를 벗어 내렸다.

   

  “흐… 하….”

   

  입안에 타액을 모아 연거푸 삼켜 내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을 긁고 싶어도 목줄에 막혀 제대로 긁을 수조차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결국, 도윤이 뒤집어엎은 상자 안에서 쏟아진 내용물들이 보였다.

   

  “….”

   

  떨리는 손으로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딜도를 사용할까 했지만. 도윤이 원하는 것을 이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싫은데. 이뤄 주고 싶지 않은데. 몸은 점점 더워지고 숨은 점점 가빠졌다.

   

  “흐… 진짜 미친 새끼… 최음제는 어디서 구해서…!”

   

  수하가 목소리를 억누르며 작게 이를 갈며 말했지만. 이 방 안에는 지금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얀 문을 보았을 때, 문밖은 조용했다. 수하는 반쯤 벗은 셔츠를 침대에 내려놓고 양쪽에 끈이 달린 레이스 팬티를 노려보며 으득, 이를 갈았다.

  숨을 한번 참고 떨리는 손으로 끈을 잡아당겨 리본으로 묶여 있는 끈을 풀어내자. 몸 선을 따라 스르륵, 팬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

   

  숨을 가쁘게 쉬며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까보다는 심장이 뛰는 게 덜해진 것 같았지만, 더위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숨을 몇 번은 몰아쉬며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속은 갑갑하고 눈앞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수하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하아… 흐….”

   

  덥다. 온몸이 뜨겁고 입을 벌릴 때마다 더운 숨이 내뱉어졌다. 수하는 떨리는 손으로 딜도를 움켜쥐려다가 주먹을 쥐고 허벅지 아래에 손을 내려놓았다.

   

  지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지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딜도들이 보여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나를 주워서 구멍 안을 쑤시면 조금 괜찮지 않을까. 이건 도윤이 원하는 대로 한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상체를 숙여 몸을 둥글게 말았다.

   

  “제발… 흐….”

   

  수하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두 손으로 성기를 움켜쥐었다. 단단한 성기를 아무것도 묻어지지 않은 손으로 쓸어내리자. 따갑고 아파졌다. 수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의 성기에 타액을 뱉었다.

   

  “하아… 흐… 아읏…!”

   

  몇 번은 성기를 쓸어내리기를 반복하자 조금은 하얗게 변한 성기는 손바닥과 손가락에 쓸려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흐… 아… 응!”

   

  수하의 고개가 꺾이고 더운 숨을 토해 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손을 더 빠르게 흔들던 수하가 몸을 바르르 떨며 하얀 정액을 바닥에 토해 냈다.

   

  “흐… 아!”

   

  움찔움찔 몸을 떨던 수하는 진득한 정액을 한 발 쏟아 내자 뒷구멍이 가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성인 용품을 보며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몸이 가렵고도 더웠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캡슐이라도 있으면 게임에 들어가서 한바탕 뒹굴 수라도 있을 텐데. 그마저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수하는 몸을 비틀며 거친 숨을 모아 쉬었다.

   

  “흐… 으응….”

  숨을 토해 낸 수하가 고개를 작게 흔들다 결국 침대 시트에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벌겋게 물든 성기는 가라앉으려고 하지 않았고. 숨을 참아도 목구멍이 덥고 뜨거웠다. 목이 마르다. 무언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성기부터 피어오르는 것 같은 열기를 빨리 없애고만 싶었다.

  결국,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난 수하는 아직 단단하게 발기되어 있는 성기를 침대 시트에 문지르며 비볐다.

   

  “흐… 아…!”

   

  움찔움찔, 몸을 떨면서 어쩔 줄 모르다 결국 손가락 하나를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둥근 엉덩이 살을 벌리고 그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벌렁거리는 구멍을 문질렀다. 뜨거운 손가락이 비벼지는 구멍은 간지러웠고 빨리 쑤셔 달라는 것처럼 뻐끔거렸다.

   

  속 안까지 더워지고 가려운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며 구멍을 문지르던 손을 얼굴에 가져와 혀를 내밀어 손가락 사이사이를 핥았다.

   

  “하아… 하아….”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다시금, 구멍에 가져간 수하는 벌렁거리는 구멍 주변을 꾹꾹 누르다, 천천히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흣!”

   

  고개가 꺾이고 몸이 부르르 떨리며 수하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전처럼 커다란 것이 아니라 단지 손가락 두 개만 넣었을 뿐인데. 왠지 전과 다르게 쾌감이 더 진득하게 몰려오는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를 벌려 구멍을 넓히고 속 안에 밀어 넣었다가 빠르게 빼기를 반복했다.

  움찔움찔, 속 안에서 술렁거리며 움직이는 내벽을 손끝에 힘을 주며 긁듯이 문질렀고, 허리는 앞뒤로 움직여 침대 시트에 성기를 문질렀다.

   

  “하… 으… 으읏!”

   

  수하의 입에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둥근 불알은 쪼그라들며 단단하게 바뀌었고 성기는 위아래로 꺼덕거렸다. 핑크빛의 귀두는 문질러질수록 점점 붉게 달아올랐고, 나중에는 뜨거워질 정도였다.

  수하는 그래도 멈추지 못하고 허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흐… 아… 아흑!”

   

  손이 점점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팔뚝이 점점 부르르 떨려 왔다. 아직 만족할 수가 없는데 저리는 손과 팔에 수하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상태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 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움직이고 좀 더 깊은 데로 들어가면 이 열기가 쉬이 사라질 것 같은데 손가락으로는 닿지 않았다. 수하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 결국,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성인 용품을 힐끔 바라보았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수하는 잠깐 쓰면 모르지 않을까. 하나 정도 쓰고 침대 아래로 숨겨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구멍 안에 넣었던 손가락을 빼고는 다리를 굽혀 주저앉아 바닥에 굴러다니는 딜도 중 길이가 괜찮은 딜도 하나를 움켜쥐었다.

   

  “하아… 하아….”

   

  딜도를 움켜쥐고 있는 손끝이 부르르 떨려 왔다. 잠깐 정신을 차린 수하는 손안에 들고 있는 딜도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한 번…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수하는 떨리는 손으로 딜도를 움켜쥔 상태로 한동안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결국 손에 들려 있는 딜도를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던 손가락으로 구멍을 쑤셔서 그런지. 아래쪽은 질척한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수하는 천천히 딜도를 힘주어 움켜쥐고 있는 상태로 엉덩이 골에 딜도의 귀두 부분을 문지르며 구멍에 가져갔다.

  차가운 딜도의 귀두 끝이 구멍에 닿았을 때. 빨리 들어오라는 것처럼 구멍은 벌렁거리며 딜도를 빨아들일 것처럼 움직였다.

   

  “하… 미치겠네….”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수하는 손끝에 힘을 주고 구멍 안으로 딜도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안이 벌어지고 들어가는 딜도는 예민해진 속을 긁으며 점점 깊은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아… 흐윽!”

   

  수하는 낮은 신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손가락을 아무리 쭉 뻗어 깊게 쑤셔 넣어도 닿지 않은 부분이 딜도 끝부분에 문질러졌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딜도에 수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몸을 살짝 돌렸다.

  식은땀에 축축해진 이마를 침대 시트에 문지르며 딜도 손잡이를 한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구멍 안을 쑤셔 댔다.

   

  “아흑…! 아아…!”

   

  다른 손으로는 쿠퍼액이 뚝뚝 흘러내리는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 쥐고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손가락을 오므려 귀두 부분에 부푼 살갗을 손끝으로 힘주어 문질렀다. 귀두와 기둥이 연결되어 불룩 튀어나온 살갗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문질러 대자, 미약한 쾌감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해 가는 것만 같았다.

   

  “흐… 아아!”

   

  수하의 입에서 점점, 커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트에 쓸려 벌겋게 물들어진 이마가 뜨거웠다. 입을 살짝 벌려 삼키지 못한 타액이 시트를 더럽혔다. 움찔움찔 어깨가 오므라지고 벌려진 두 다리는 작게 경련하듯 떨려 왔다.

  점점 빨라지는 수하의 손에 딜도가 구멍 안 깊은 곳에 밀려들어 갔다. 그 순간 수하의 성기가 위아래로 꺼덕이며 하얀 정액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하아… 하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딜도를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구멍 안에 들어갔던 딜도가 천천히 밖으로 밀려 나와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애액이 묻어 있는 딜도는 바닥에서 조금 굴러 수하의 발끝에 부딪혀 멈추었다.

   

  “아… 으….”

   

  쾌감에 벌겋게 변한 수하의 눈은 눈물로 축축하게 적셔 있었다. 느릿느릿 깜박이는 눈꺼풀에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수하의 입꼬리 끝은 파르르 떨려 왔다. 약 기운이 사라진 건지 두근거렸던 심장도, 더웠던 몸도 괜찮아졌지만, 격하게 움직였던 것 때문인지 땀에 진득하게 흘러내려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하… 씹….”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다리 사이에 멈춰 있는 질척한 애액이 묻은 딜도에 시선이 닿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행동했다는 것에 수하는 작게 욕설을 내뱉고는 애액으로 더러워진 딜도를 숨기듯이 침대맡에 있는 공간에 집어 던지듯 밀어 넣으며 떨리는 두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하얀 천장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죽겠다….”

   

  온몸은 나른했고. 찝찝한 몸은 씻고 싶었다. 하지만, 어딜 보아도 제대로 씻을 공간은 보이지가 않았다. 화장실마저도 옛날에 쓰였을 법한 요강 하나가 달랑 놓여 있는 것에 짜증스럽게 팔을 휘둘렀다. 두 팔과 두 다리에 힘을 풀고 늘어지듯 침대에 누워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는지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 조용했던 방안에 철컥철컥,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열리며 도윤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흠….”

   

  방안에 가득한 밤꽃 냄새와 바닥을 더럽힌 투명한 애액을 힐끔 쳐다보았던 도윤은 침대에서 자는 수하에게 다가갔다. 벌어져 있는 아랫입술은 얼마나 깨물었는지 붉은 피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수하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도윤이 수하의 옆에 앉아 땀에 젖어 있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빨리 그 당당한 성격이 죽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안 그래? 동생아.”

   

  등 뒤를 돌아보지 않은 상태로 말하는 도윤의 말에 도훈은 문 앞에서 움칠 몸을 떨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침대에서 자는 수하에게 다가갔다.

   

  “형. 솔직히… 난… 수하가 힘들어하는 건 보기 싫어.”

  “그래서. 네가 보기에 힘들어하는 것 같고?”

   

  도윤의 말에 도훈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방 안엔 밤꽃 냄새가 짙었고, 바닥에 흔적들만 보고서도 수하가 혼자 즐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보면 하얀 피부 위로 벌겋게 물든 성기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도훈은 한숨을 쉬며 도윤과 반대편 자리에 앉아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데스티니 게임을 시작할 때와 다르게 수하가 확실히 조금 달라진 부분이 보였다.

  원래는 조금 노란 피부가 하얗게 변했다거나, 조금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웠던 눈매가 순하게 변했다거나. 미묘한 차이지만, 크게 그 변화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아니.”

   

  그 모습이 야해 보이기도 했지만. 왜인지, 도훈은 자신이 알고 있던 수하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하가 좋았다. 밝게 웃으며 당당한 것도, 언제나 빛이 나는 것 모두가 좋았다. 약간은 멍청한 성격 탓에 이길 수 없으면서도 이기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귀여웠고. 도발 아닌 도발을 하다가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홀라당 잡아먹히는 것 또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형 말대로, 힘들어하지는 않고 즐기는 것 같아.”

  “근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수하가 날 싫어할까 봐.”

  “하. 네가 멍청한 거지. 어차피 노력해 봐야 마음 얻기 힘들 텐데.”

  “…알아… 아는데….”

   

  도훈은 침울한 얼굴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쥐 죽은 듯이 자는 듯한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하를 좋아하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수하는 몰랐겠지만. 도훈은 수하가 하는 모든 게임을 같이하려고 노력했고, 그 안에서 자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수하와 연인처럼 다녀본 적도 있었다.

   

  “…너무 좋아서 그런가 봐.”

  “쯧.”

   

  도훈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도윤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훈을 한번 보았다가 수하를 쳐다보았다.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너무 빛이 나게 웃잖아… 모르겠어! 그냥, 어느 순간부터 좋아졌는걸.”

  “너 그거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 나이가 어려서. 우정을 사랑이라고 착각-”

  “아니야.”

  도윤의 말을 끊은 도훈이 자리에 일어나 있는 도윤을 노려보며 말했다.

   

  “형. 내가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그럼 왜 좋은데.”

  “…말했잖아.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됐다고. 근데. 형은 수하가 왜 좋은 건데.”

  “나?”

   

  도윤은 도훈의 말에 침대에 누워 있는 수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침대에서 자는 것 같은 수하의 숨이 조금은 뒤바뀐 것을 눈치챈 도윤이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재미있어서.”

  “뭐?”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재미있다는 이유로… 수하를 납치하면서까지 형을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거야 지금?”

   

  도훈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약간은 화가 난 것처럼 도윤을 노려보며 도훈이 이를 갈며 말하자. 도윤은 작게 웃었다.

   

  “어. 그만큼 매력적이니까.”

  “…왜. 왜 형은. 형은 내가 수하를 뻔히 좋아하는 거 다 알면서!”

  “말했잖아. 네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을 떠나서 먼저 마음을 가져가면 그만이라고.”

  “…뭐?”

  “그리고. 수하 너도. 자는 척 그만하지?”

   

  도윤의 말에 도훈이 도윤을 노려보던 고개를 돌리며 논란 눈으로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하가 얼굴을 가리던 손을 치우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

  “일어나… 있었어?”

   

  도훈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수하에게 말하자. 수하는 느리게 고개를 돌려 손바닥으로 도훈의 머리를 후려쳤다. 빡, 소리와 함께 도훈의 고개가 숙여졌다. 아프기는 한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들어 올린 도훈이 당황해하며 수하를 쳐다보자. 수하는 벌겋게 변한 손바닥이 따가운지 다른 손으로 주무르며 말했다.

   

  “네가 날 좋아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렇게 납치를 하는 게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연관 짓지 말아 줄래?”

  “….”

  “개새. 아니. 형도 마찬가지고요.”

  욕설을 뱉으려던 수하가 얼굴을 구겼다가 한숨을 내뱉으며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든 들지 않았든. 제 마음이 우선순위 아니에요?”

  “왜?”

  “…네?”

  “솔직히 말해서. 누구든 상관없잖아. 너는 그냥 네 구멍에 쑤셔 줄 괜찮은 좆 하나만 있어도 괜찮잖아?”

  “무슨 소리예요. 그건….”

   

  수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도윤을 바라보자 도윤은 한걸음 두 걸음 수하에게 다가가 머리를 감싸 쥐고 멍하니 수하를 보고 있는 멍청한 도훈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침대에 앉아 있는 수하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 잘생기고. 몸도 괜찮은데 좆까지 크면 다 좋잖아 수하야.”

  “….”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게.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그런 거잖아. 안 그래?”

   

  도윤은 천천히 말을 하며 수하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이대로. 게임도 자유롭게 시켜 주고, 현실에서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으면 괜찮은 거 아니야?”

   

  도윤은 수하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힘이 들어간 손끝은 떨리고 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침묵은 긍정이라고 수하는 말없이 도윤의 말이 바르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다.

  도훈의 표정이 멍청하게 풀어지는 것을 보며, 도윤은 수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눈을 접어 웃었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뭐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게 해 줄게. 대신에.”

   

  도윤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수하의 어깨를 둥글게 문지르다 손을 움직여 수하의 가슴 위를 둥글게 문질렀다.

   

  “현실에서는 네가 원하는 흥미로운 섹스는 할 수 없을 텐데. 괜찮겠어?”

  “…흥미로운…?”

  “이미 한번 즐겨 봤잖아. 그 짜릿하고 두근거렸던 쾌감들. 아직 잊지 않았지?”

   

  도윤의 말이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수하의 표정은 굳어지고, 도훈은 그때의 일을 알 수 없었기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지켜보며 고개를 기울이고는 수하와 도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을 우리가 해 줄 수 있어.”

  “….”

  “네가 말하는 대로 네 의견을 들어 보는 거로 하지.”

  “….”

  “자. 어떻게 할래? 여기 있을래. 아니면.”

   

  도윤은 천천히 손을 뻗어 반쯤 열려 있는 하얀 문을 가리켰다.

   

  “나갈래?”

   

  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주머니를 뒤지더니 수하의 얼굴 앞에 은색 열쇠 하나를 보여 주었다. 수하는 도윤의 손에 들려 있는 열쇠가 지금 목에 채워져 있는 사슬을 풀 열쇠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윤의 손에 들려 있는 열쇠를 가만히 쳐다보던 수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나가면. 저 다시는 안 보려고요?”

   

  수하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가 도전적으로 도윤을 쳐다보자, 도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상태로 수하를 바라보았다.

   

  “보겠지. 하지만,”

   

  수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작은 머리로 얼마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눈치를 챈 도윤은 그저 덤덤한 목소리로 수하에게 말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섹스는 없겠지. 뭐, 호텔 방에서 쑤셔 주는 거야 해 줄 수 있어.”

  “…하.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데요?”

  “도훈은 네게 그 쾌감을 절대 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결국 넌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내게 찾아오는 건 정해진 것일 텐데.”

  “….”

   

  수하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의 말이 맞았다. 도훈은 도윤과 함께했던 그때의 경험을 이루어 주지 못할 것이다.

  처음 겪어 보았던 짜릿했던 쾌감과 서늘한 바람이 자신이 몸에 들러붙었던 느낌.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경험했던 쾌감은 잊히지 않았다.

   

  지금도, 수하는 눈을 감고 그때의 쾌감을 생각하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누가 거즈로 자위를 해 준 것도, 현실에서 알몸으로 걸어 다닌 것도, 거리에서 딜도로 구멍을 쑤셨던 것 하나하나. 수하에게는 난생처음 느껴 보던 쾌감이었다.

   

  “만약. 제가 여기 남으면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윤은 정말 또라이일 정도로 성격이 게임이나 현실이나 똑같았다. 게임에서도 처음 보는 도구들을 가져오고, 밧줄로 몸을 묶고 밥을 먹게 하는 것이나 현실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나 모두 다 똑같았다.

   

  그런데. 이 방에서 나간다면, 도윤이 섹스 스타일이 바뀌고 쑤시기만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으나. 저 표정과 덤덤한 말투는 어쩐지 저 말이 맞는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이미. 예상하잖아?”

   

  도윤은 고민을 하는 수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하의 손을 잡아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열쇠를 수하의 손바닥에 내려놓고, 수하의 손가락을 오므리게 만들어 수하가 열쇠를 움켜쥐게 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쾌감을 알려 줄게.”

  “….”

  “다만. 여기 남게 된다면 지켜야 할 것이 있어.”

   

  도윤이 덧붙이는 말에 수하는 말없이 도윤을 지켜보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도훈은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내뱉었다.

   

  “…둘이 말하고 있어. 수하. 너 배고플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먹을 거라도 챙겨올 테니까.”

   

  도훈이 수하와 도윤을 한번 번갈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하얀 문밖으로 나가며 반쯤 열려 있던 문을 쿵, 소리를 내며 닫았다.

  도윤의 시선이 닫힌 문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다시 돌려 아직도 답을 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는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나나. 동생 말고는 다른 남자는 만날 수 없다는 것.”

  “….”

  “그것만 지켜 준다면. 언제까지든, 네가 원하는 것을 해 줄게.”

   

  방안은 고요한 정적이 생겨났다. 수하는 굳게 다물고 있는 입술을 열지 않고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차가운 열쇠를 힘주어 붙잡았다.

   

  ***

   

  도훈이 수하가 먹을 만한 간단한 음식을 만들고 있을 때, TV에서는 캡슐 해킹에 관한 부작용에 대해서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 캡슐 해킹을 하고 게임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 부작용이 또 나왔다고 합니다.”

  “이번엔 무슨 부작용입니까? 감각도가 높아 게임에서 죽는다면 현실의 몸도 죽는 것 말고도 또 있는 겁니까?”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캡슐 해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지만, 만약 캡슐 해킹을 하게 된다면 당신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캡슐 해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겁니까?”

  “캡슐을 해킹을 하고 100%의 감각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면. 게임 속의 외형처럼 현실의 외형이 점점 바뀐다고 합니다.”]

   

  “…뭐?”

   

  빵 안에 야채를 가득 넣고 그 위에 빵을 올리던 도훈은 굳은 표정으로 TV를 돌아보았다.

   

  [“물론. 모든 게임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서버 오류로 인해,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데스티니 게임을 하면 그렇게 변한다고 합니다.”

  “데스티니 게임은 현재 캡슐 해킹을 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캡슐 해킹을 하기 시작한다고 말을 하던데. 외형까지 바뀐다고 말하는 겁니까?”

  “처음에는 피부색부터 시작해서 점점, 고친 얼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만약. 종족이 오크나 웨어울프일수도 있고, 외계인처럼 푸른색 피부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캡슐 해킹을 한다면 그런 몸으로 바뀐다는 겁니까?”

  “실제 사례입니다. 데스티니 게임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하는 게임이죠. 실제로 캡슐 해킹을 한 사람들이 부작용을 겪고 그에 관련된 사진입니다.”]

  남자 두 명이 자리 잡고 있던 TV에서 여러 장의 사진이 보였다. 일반인처럼 생긴 외국인은, 온몸에 털이 생긴 것처럼 바뀌었고, 또 다른 사례로,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남성이 검은색 피부로 바뀐 경우의 사진도 보였다.

  도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며 그래서 수하의 외형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고 만든 샌드위치와 함께 먹을 우유를 챙겨 도윤과 수하가 있을 방으로 걸어갔다.

   

  “후….”

   

  도훈이 하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개를 살짝 숙였던 수하가 고개를 들어 올려 도윤을 보고 있었다.

   

  “좋아.”

   

  다짐을 한 것처럼 덤덤하게 말을 하는 수하가 도윤을 지켜보며 비웃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여기 남을게. 그러니까. 형도 그리고 도훈이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할 거야.”

  “약속…?”

  “평생 잊지 못하고 우리만 생각하고 우리만 보게 될 거야. 수하야.”

   

  도훈이 멍청한 표정으로 수하를 바라보았다. 약속보다 남는다는 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도훈은 곧,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그릇에 담겨 있는 샌드위치와 우유를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수하야 그 말은….”

   

  도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을 때, 수하는 손을 뻗어 그릇에 있는 우유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 급하게 마셨다. 입술 주변에 묻은 하얀 우유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도훈과 도윤을 번갈아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날 만족시켜 봐. 그리고.”

   

  한 손을 들어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고 땀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수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다른 남자에게 눈 돌아가지 않게. 두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어 봐.”

   

  멍청하게 풀린 얼굴로 수하를 바라보던 도훈의 표정은 점점 환하게 바뀌며 나중에는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응. 당연하지.”

   

  행복하게 웃고 있는 도훈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린 수하가 도윤을 쳐다보자, 도윤은 수하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로 수하의 목덜미를 손을 뻗어 붙잡아 당겼다. 수하의 몸이 주춤거리며 도윤에게 끌어당겨졌을 때, 도윤은 고개를 숙여 수하의 피딱지가 올라간 아랫입술을 혀로 한번 핥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앞으로 기대해도 괜찮을 거야.”

  덤덤한 도윤의 목소리를 듣던 수하는 눈을 반쯤 접어 웃었다. 어차피, 이런 흥미롭고 새로운 쾌감도 즐거웠다. 현실에서 못할 거라 생각해서 게임에 눈을 돌렸는데. 현실에서 할 수 있다면 굳이 내뺄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게 만들 테니까.”

   

  당당하기 그지없는 말을 들으며 수하는 푸하하. 어깨를 떨며 웃었다. 모르는 사람과 할 바에 아는 사람이 더 나았다. 거기다 도윤이나 도훈은 둘 다 얼굴도 괜찮았고 몸도 괜찮았고. 성기까지 두껍고 길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았다. 아니, 더 좋았을지도 몰랐다.

  두 사람 다 어디 가서 얼굴이나 몸으로는 맞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기대할게.”

   

  타들어 가던 목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수하는 도훈의 목덜미에 두 팔을 감고 발끝을 살짝 들어 올려 도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문질렀다.

   

  결국, 모든 건 수하가 원하는 대로 완성이 되었다. 현실에서 할 수 없어 게임까지 하며 섹스라이프를 즐겼던 게. 이제는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또라이처럼 미친것 같은 도윤과 다정하게 음식을 챙겨 주며 손끝 발끝으로 사랑해 주는 것 같은 도훈.

   

  성격이 다르고 하는 행동도 달랐지만,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이 마음이 변치 않는 이상 언제나 행복할 것 같다 생각했다.

   

  “두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게 만드는 거.”

   

  덤덤하게 말을 하는 수하의 말이 방 안에 울렸을 때 모두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데스티니 게임은 모두가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나. 버그와 서버 오류로 인해-…”]

   

  방밖에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방 안으로 작게 들려왔다. 수하의 귓가에 TV 소리가 들렸을 때, 수하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입술에 닿는 뜨듯한 체온을 느끼며 피곤한 몸에 힘을 풀었다. 툭, 수하의 손에 들려 있던 열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 있는 상태로 잠이든 수하를 부축한 도윤이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침대에 조심스럽게 수하를 눕히며 도훈을 쳐다보았다.

   

  “이제. 네가 할 일은 알고 있겠지?”

   

  도윤의 말에 도훈은 그저 웃는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자는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납치할 때는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형. 고마워.”

  “….”

  “형 덕분에 수하랑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아직은 아니야. 앞으로 수하가 우리에게 집착할 수 있게 만들어.”

   

  도윤과 도훈이 수하가 깨지 않게 작게 말을 하며 하얀 침대 위에서 자는 수하를 내려다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결국,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새가.

  드디어 새장 안에 갇혔다.

   

  - < 데스티니 > 외전 完 -

     (은꼬공금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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