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어떤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넋을 잃게 만든다. 정진우가 그랬다. 2학년 학생회끼리 밤새 퍼마신 뒤 거지꼴로 참석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정진우는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천사 같았다. 여자애들의 성화에 떠밀려 문을 열어젖힌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잠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 한가운데 얌전히 앉아 있는 하얀 얼굴이 생신가 싶어서. 급하게 멈춰선 내 등에 얼굴을 박은 슬기가 욕을 중얼거리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생김새에 나는 내가 술이 덜 깼는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진우는 별다른 행동 없이, 그저 강의실 한가운데 까만 후드를 입고 앉아 두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무표정한 시선이 약간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게 신경 쓰였다. 기분이 안 좋은가. 속으로 방금 처음 본 애의 기분 상태를 걱정하던 나는 지레 쫄아서 게걸음으로 벽에 붙어 이동했다. 꿍얼거리며 뒤따라 들어오던 여자애들도, 정진우의 전후좌우를 텅 비워놓은 상태로 자리를 채운 신입생들도, 다 함께 묘한 침묵에 휩싸였다. 모르긴 해도, 다들 속으로 무명 배우인가, 뜨지 못한 아이돌인가, 어디 대형 기획사 연습생인가, 저런 애가 왜 우리 과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정진우의 왼쪽 측면에 위치한 벽에 붙어 표정이 없음에도 환한 얼굴을 정신없이 관찰했다. 쟤는 이름이 뭐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차마 비어 있는 공간으로 다가갈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여자애들 덕분에 저절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이, 정진우구나. 이름은 평범하네. 아니, 쟤한테 붙여 놓으니까 완전 멋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재빨리 생각을 정정했다. 이름 진짜 멋있네.
강의실 한가운데 우뚝 선 섬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던 정진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앞에서부터 한 명씩 차례차례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예쁜 빛깔의 안료만 섞어 칠한 것 같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입가에 박힌 점이 함께 움직였다. 대놓고 보든, 모른 척하면서든 정진우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정진우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한 명씩 어깨를 세차게 들썩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기 바빴다. 그렇게 정진우와 시선을 맞추며 어색한 미소로 파도타기를 할 때쯤 영지가 들어와 묘하게 조용한 장내를 환기시켰다.
“다들 자리에 좀 앉았으면 좋겠는데, 왜 다 그러고 있는 거야?”
잠시 정진우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영지의 대담함에 속으로 감탄하며 비어 있는 공간으로 침투해 정진우의 대각선 뒷자리에 조심히 앉았다. 영지가 애매한 얼굴을 하고 나를 가리켰다.
“서요한, 너보고 앉으라고 한 거 아닌데. 학생회는 빨리 인사하고 4108 가서 일해.”
순간 내가 신입생인 줄 알았다. 내가 2학년이고, 학생회인 것도 잠시 잊을 정도로 홀려 있었던 것에 다시 한 번 충격 받은 상태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옆에 선 지혜의 소개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정진우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말을 잊고 눈을 맞추다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을 느끼고 인사했다. 아, 안녕. 서, 서요한이야. 2학년이고, 앞으,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귓불이 화끈거렸다. 한 문장 말하는데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몇 번을 더듬었는지 모를 정도로 더듬으며 자기소개를 마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앞서 나가는 여자애들의 뒤를 따라 강의실을 나섰다. 학생회가 대차게 일하고 있는 4108로 향하며 영지의 한숨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들렸던 작은 웃음소리들을 떠올렸다. 아, 쪽팔려. 정진우도 웃고 있었을까. 분명히 걔만 보면서 얘기한 것 같은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다과를 준비하는 내내 매끈한 피부에 도드라진 입가의 점이 머릿속에 콕, 박혀서 생각을 졸졸 따라다녔다. 다물고 있어도 웃는 모양을 한 색소 옅은 입술까지.
“야, 너네 걔 봤냐? 우리 과에 이번에 존나 잘생긴 신입생 들어왔던데.”
김수현이 라면을 먹다가 말했다. 나는 잠시 황당해져 입에 넣고 있던 돈가스를 떨어뜨렸다. 아이 씨, 더럽게 뭐야 서요한. 턱에 구멍 났냐. 김수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제 앞에 놓인 돈가스를 전투적으로 조지고 있던 조영재는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먹을 땐 그 누가 말을 걸어도 관심 없는 놈이 쥐고 있던 돈가스 칼을 조용히 내려놨다.
“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정진우를 몰라? 너 어디서 뭐 했냐? 어디 오지탐험 하고 왔냐?”
“뭘, 모를 수도 있지! 그런 걸 가지고. 야, 서요한 말해봐. 너도 알았냐?”
“서요한은 당연히 알지, 병신아. 학생회잖아 신입생 오티 때 봤을 거 아니야.”
김수현이 코앞으로 들이밀었던 얼굴을 옆으로 치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알지. 근데 넌 어떻게 여태까지 모를 수 있냐? 진짜 지금까지 뭐 했어? 우리 같이 수업 들은 거 맞아?”
김수현은 퍽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젓가락을 쥔 손으로 거칠게 삿대질을 하는데, 찔릴까 조금 무서웠다.
“사람 하나 모른다고 괄시하는 이딴 새끼들을 친구라고 둔 내가 불쌍하다, 시발!”
타이밍만 엿보고 있다가 자꾸만 다가오는 젓가락을 쥐어 빼앗았다. 더럽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손에 내 포크를 넘겨주었다. 이거로 먹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진심이야. 너 진짜 한 달 동안 학교에서 뭐 하고 있었어? 내 생각엔 네가 마지막일 거다. 확실해.”
“뭐가, 미친놈아.”
“뭐긴 뭐야. 우리 학교에서 정진우 아는 거. 걔 학과 게시판이며 뭐며, 벌써 장난 아니게 유명하던데.”
“쟤 우리 말고 친구 없잖아, 요한아. 아픈 상처는 건드리지 말자.”
조영재가 조용히 건넨 말에 조금 상심한 듯한 김수현이 식어가는 라면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아침에도 너희가 이야기하는 걔 대각선 뒤에 앉아 머리카락을 모조리 셀 기세로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는 사실을 조용히 밀어 넣은 돈가스와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야 근데 걔 진짜 잘생기긴 존나 잘생겼더라. 서요한도 좀 생기긴 했는데 걔에 비하면 발톱의 때보다 못한 것 같다. 걔 여자 친구는 있냐?”
“네가 뭔 상관이야.”
“아니 그냥 그 정도로 잘생겼으면 어떤 여자 만날지 궁금하잖아. 헐. 쟤지? 정진우? 이름도 잘생긴 것 같네. 쟤한테 붙여놓으니까.”
이제 막 학생식당으로 들어오는 정진우를 힐끔거리며 김수현이 중얼거렸다. 밥 먹을 생각은 아예 버려버린 것 같은 조영재와 김수현이 머리를 맞대고 가자미눈으로 학식을 주문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 봐도 문란할 정진우의 사생활, 여신일 게 분명할 여자친구, 당연히 부자일 그의 재정 상태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쟤 여자 친구 그냥 평범하게 예뻐. 부자도 아니고. 클럽 같은 데는 가본 적도 없대.”
가자미눈에서 토끼 눈으로 변한 조영재와 김수현을 한 번, 김밥&떡볶이 줄에 서 있는 정진우를 한 번 바라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궁금하면 쟤한테 물어봐. 웬만한 건 다 대답해줄걸. 일자리 소개시켜 주면 아마 오늘 아침에 뭐 먹었는지, 집에 팬티가 몇 장 있는지까지 알려줄 거다. 걔 지금 알바 구하거든. 나 간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한 뒤 환하게 웃는 정진우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뒤에서 아니 그럼 모델알바 같은 거 하면 되지 않나? 하는 김수현의 얼빠진 소리는 모른 척했다. 같은 수업 넣지 말걸. 모든 신입생의 1학기 수강신청을 2학년 학생회가 대신 해주는 학과 전통에 따라 정진우의 학년별 전공필수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나와 겹치게 넣었던 과거의 나를 마구 치고 싶었다. 욕망에 충실한 손이, 이 손이 문제였다. 손등을 괜히 찰싹 내리치며 햇살이 반짝거리는 캠퍼스를 우울하게 걷다가 바지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냈다. 어린 게이의 마음에 제멋대로 불을 지피고 한 달도 안 되어 무용과 여자 친구를 만든 이성애자가 보낸 메시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배 이따 카페에서 만나서 강의 같이 들어가요.]
[오늘 커피는 제가 살게요.]
다정도 심하면 병이라더니. 이러다 내가 앓다 죽겠네.
정진우와 나는 신입생 오티 때 처음 말을 섞었다. 신입생 친목을 위해 보통은 작업실로 쓰이는 스튜디오에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구석에서 눈 뜬 상태로 잠들어 있던 내 옆에 털썩 앉은 정진우는 문득 내게 손에 쥐고 있던 커피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많이 힘드신가 봐요, 학생회.”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진 상태로 과자를 받아 들고 정진우를 잠시 쳐다봤다.
“아니, 그렇게 힘든 건 아닌데……. 그냥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래요. 고맙습니다.”
“아, 저는 정진우라고 합니다. 현역이에요. 말 놓으셔도 돼요.”
“응. 난 서요한이야. 너보다 한 학번 위고.”
“이름, 아까 오티할 때 들었어요. 친하게 지내요 선배님.”
생긴 것과 다르게 붙임성이 좋았다. 그대로 구석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고 싶었고, 사정상 그게 안 돼서 대학에 들어 왔으며 2, 3학년 즈음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는, 그래서 결국엔 석사를 외국에서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알게 되었다.
“어디 가고 싶어? 미국? ……벌써 정해 놓진 않았겠구나.”
“독일이요. 사촌 누나가 거기서 유학 중이라,”
“진우야!”
말을 이으려다 고개를 돌린 정진우는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손을 흔들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손목부터 시작해 손등을 부드럽게 훑은 손바닥이 이내 손가락 사이를 꽉 쥐었다.
“많이 피곤하지 않으면 같이 가요, 선배님. 아까부터 쟤네가 선배님한테 아주… 관심이 많던데.”
잡힌 손에 놀라 대꾸도 못하고 끌려가 여자애들의 말상대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약간 거친 정진우의 손바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자애가 원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 손을 잡나. 모를 일이었다.
정진우의 미모만 남은 신입생 OT가 끝나고 개강 후 한 달 동안 정진우와 나는 나의 계략으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을 함께 들었다. 우리 과 애들이 거의 안 넣는 수업 위주로 넣어서 그런지 우리는 자연스레 어느 정도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정진우는 만인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미친 이목구비에 비해 순탄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입시가 끝나자마자 아주 간단히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정진우는 한 달도 안 되어 잘렸다. 일주일 만에 근방에 소문이 난 잘생긴 알바생을 보러 와글와글 모인 손님들에 의해 카페가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는 이유였다. 고딩 때 한 소품실 아르바이트에서는 같은 작업실 사람들이 한바탕 치정극을 찍었고, 쇼핑몰 모델 일을 했을 땐 정진우에게 반한 사장이 2층 작업실에서 뛰어내리는 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그 외 기타 등등 다채로운 사건들로 정진우는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한 달 이상 지속한 적이 없었다. 가끔 잘생겼다는 소리 들으면 좀 우울해지기도 해요. 잘생긴 얼굴 때문에 야심차게 세우던 부모님 지원 없는 유학 계획도 보류하게 되었다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인생사를 들으며, 정진우보다 100배 정도 더 굴곡 넘치는 인생을 살아온 나는 한 10초쯤 정진우를 동정하기도 했다.
정진우와 만나기로 했던 예대 카페에 앉아 커피 잔을 응시하고 있다가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이 쑥 빠지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서 정진우가 내 이어폰 한쪽을 들고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사람 온지도 모르고.”
네 생각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폰을 받아 들었다. 심장이 쿵쿵, 시끄럽게 울렸다.
“노래 듣고 있어서 몰랐나봐. 밥 먹고 바로 온 거야?”
“네. 선배 자나 싶어서 그냥 여기 좀 서 있었는데. 자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몰라요? 둔하다니까.”
“그냥 멍 때리고 있었던 건데. 목마르지? 이거 네 거야.”
밥 먹은 뒤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건 내가 제일 처음으로 알아낸 정진우의 취향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본 정진우가 눈썹을 내리며 살짝 웃었다.
“오늘 제가 산다니까요.”
“그냥 내 거 주문하는 김에 같이 했어. 다음에 사.”
“한 달 내내 똑같은 소리 들은 거 알아요?”
대꾸하지 않고 표면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 내 잔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물기에 약간 멍했던 정신이 들었을 때, 정진우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안 그래도 손 찬데 더 차져요. 얼른 마시고 올라가요 우리.”
세상 까다로울 것 같은 게 참 스스럼없다. 물기를 터는 척하며 손등에 닿았던 정진우의 감촉을 털어내려 양손을 슬슬 흔들었다. 정진우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를 진득하게 바라본다.
“너 그렇게 뚫어져라, 아니다. 올라가자.”
정진우의 시선은 좀 묘한 데가 있어서 종종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내가 당황스럽기도 했고, 약간 우울하기도 했다. 정진우는 약간 눈을 내려 뜨고 잠시 더 나를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강의든 듣기 좋은 강의는 없지만, 서양 미술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의 중 하나였다. 작년 같은 교수님의 양식사 수업을 들은 뒤 너무 좋아서 넣은 과목인데 정진우는 영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보통 3, 4학년이 많이 듣는 수업이라 그런가, 지루한 것 같기도 하다. 티 나지 않게 흘깃 바라보니 무료하게 교재에 낙서 중이다. 그렇게 재미없나. 옅게 한숨을 쉬며 정면을 바라보다 귀에 닿는 따뜻한 숨에 화들짝 놀라 귀를 잡았다.
“왜 그렇게 놀라요. 나도 놀랐네.”
작게 속삭인 정진우가 내가 좀 웃겼는지 피식 웃었다. 분명히 빨개졌을 귀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괜히 옷자락을 펄럭였더니 곧이어 다시 중얼거린다.
“저 알바 구했는데……. 혹시 선배도 생각 있으면 같이 할래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아는 사람 통해서 소개받은 작가 작업실 일이에요. 스케줄 조정이 유연해서 선배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요?”
“그래도 평일 저녁 때 시간 내긴 좀 힘든데……. 이미 알바가 두 개라. 고맙지만 난 못 하겠다.”
“그래요? 선배만 괜찮으면 주말만 나와도 될 것 같으니까 생각해 봐요. 이번 주까지만 말해주면 돼요.”
잠시 말을 멈추고 핸드폰을 보던 정진우가 이어서 말을 걸었다.
“오늘은 알바 없는 날이죠? 수경이가 일이 생겼다고 내일 보자는데, 이따 저녁 같이 할래요?”
데이트 얘기를 하며 아직까지 뜨거운 귀 언저리를 바라보는 정진우의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하게 하곤 머리를 살짝 저었다.
“오늘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밥 먹기로 했어.”
아아. 하고 다시금 교재에 낙서를 끄적이는 정진우의 기척이 느껴졌다. 앞에서 뭐라 이야기하는 교수님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 * *
자취방 근처 카페에서 조영재와 과제를 하다 여섯시 딱 맞춰 고기 집으로 향했다. 조영재는 조소과임에도 불구하고 레포트 10장이라는 지옥 같은 과제를 던져준 교수를 끊임없이 욕했다. 나는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 조영재를 옆에 달고 걸으며 조영재의 다채로운 욕 구사력에 혀를 내둘렀다. 욕에도 레벨이 있다면 조영재는 애초에 만렙을 찍고 네임드가 됐을 실력이었다.
고기집에는 이미 다섯 명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힘 잘 써야 하는 우리 과 2학년은 정원 열일곱 명 중 남자가 네 명밖에 없는 미친 성비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1학년 마치자마자 군대를 가버린 승원 형을 제외하면 나랑 조영재, 김수현이 전부였다. 그 적은 남자 중 하나인 김수현이 여자애들 사이에서 귀한 노예 취급을 받으며 고기를 마시고 있었다. 걸신들린 듯 두 점씩 삼겹살을 흡입하는 김수현을 애잔하게 쳐다보던 영지가 손을 흔들었다.
“왔어? 이제 지혜랑 슬기만 오면 다 온 거다.”
“다른 애들은? 안 온대?”
“어. 그래서 말인데, 이따가 일학년 애들 몇 명 정도 일로 올 거야.”
“일학년?”
“어. 다른 애들 안 온다고 그래서 정진우 부름. 정진우만 편애한다고 그럴까봐 자취하는 애들도 다 부르고.”
낄낄대며 웃는 영지는 다음 날 소식을 듣고 배 아파할 다른 애들을 생각하니 썩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야 정진우가 온대? 걔 맨날 술자리 빼지 않았냐?”
“몰라. 무슨 바람이 불었나. 완전 온다던데?”
앞에 놓인 고기를 씹으며 속으로 정진우도 같이 씹었다. 데이트 깨졌다고 오냐. 없어 보인다. 괜히 짜증이 나 맥주만 벌컥벌컥 마셨다. 정진우 오기 전에 빨리 먹고 마셔야지. 어차피 정진우가 근처에 있으면 울렁거려서 뭐 잘 먹지도 못하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속도 모르는 다른 애들은 오, 서요한 오늘 알바 없다고 달리냐!! 하며 껄껄대기 바빴다.
슬기와 지혜가 마저 합석하고, 이 근처에서 자취한다는 1학년 애들 몇 명이 오고 난 뒤였다. 나는 약간 술에 잠긴 머리로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거는 1학년 애들의 이름을 외우기 바빴고, 술과 삼겹살에 한이 맺힌 듯 먹던 김수현은 인사불성이 되어 룸메 형에게 끌려 나간 지 오래였다. 인원이 많아져 테이블을 두 개로 나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휘둘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있는 테이블에는 1학년 애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선배님 좀 취하셨죠? 괜찮아요?”
예지라고 그랬나, 아까부터 옆에 앉아 살갑게 나를 챙겼던 애가 물어봤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예뻤다. 화장을 한 건지 술을 많이 마신 건지 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이 정도는. 너는? 얼굴도 좀 빨간데 괜찮아?”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저 학교 들어오고 나서 선배님이랑 한번 이렇게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나랑?”
“네. 선배님 저희 사이에서 인기 엄청 많아요. 몰랐어요? 모를 리가 없는데!”
예지는 그냥 듣기 민망한 소리를 늘어놓더니 혼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긴. 선배님 한 달 내내 진우하고만 같이 다녔지. 선배님 아마 진우랑 같이 안 다녔으면 인기 더 많았을 거예요.”
“진우가 워낙 잘생겼지……. 맞아.”
“그게 아니라, 선배님이 너무 진우하고만 붙어 다녀서 좀 벽이 생겼다고 하나. 어쨌든! 저희하고도 점심 같이 먹고 그래요! 선배님은 술자리에도 잘 안 온다고 하고,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완전 발만 동동 하고 있었어요.”
“요한 선배는 나하고만 놀 건데?”
등 뒤에서 찬기가 느껴지더니 정진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정진우가 자연스레 다른 쪽 옆자리에 앉았다. 몽롱해진 시야 사이로 정진우의 빛나는 얼굴이 들어왔다.
“선배 좀 취했네. 괜찮아요?”
“어, 괜찮아. 밥 먹었어?”
“네. 수경이가 잠깐 시간 된다고 해서 같이 저녁 먹고 왔어요.”
그래서 늦었구나. 앞에 놓인 파 무침을 의미 없이 뒤적거렸다. 정진우가 있든 말든 재밌게 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진우가 언제 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조금씩 부풀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속도로 오그라들었다. 일부러 옆에서 그거 보라며, 선배님 좀 놔주고 여자 친구하고만 놀라며 툴툴대는 예지를 돌아봤다.
“앞으로 자주 보자. 내가 밥 한번 살게.”
“정말요? 선배님 그럼 저 번호 좀. 연락드려도 씹으면 안 돼요?”
밝게 웃는 예지에게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 자리에서 건 전화를 확인하고 저장한 뒤 아무 말 없는 정진우를 혼자 찔려서 흘깃 쳐다봤다.
“요한 선배 돈 없어. 선배 만나고 싶으면 네가 밥 사.”
느릿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경이와 무슨 일이 있었나, 이상하게 삐딱했다. 동기라 친해서 그런가. 예지는 정진우를 잠깐 째려보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살게요! 선배님은 내가 산다. 다음 주에 같이 밥 먹어요.”
“아냐, 내가 살게. 너네 밥 한 끼 살 돈은 있어. 너 시간 될 때 연락해.”
말을 마치고 담배가 당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담배 좀. 하고 일어서니 멀리서 내가 일어나는 걸 본 조영재가 함께 일어난다. 일 년 동안 부대끼며 지냈더니 담배 피우고 싶은 타이밍도 어지간히 잘 맞았다. 테이블 사이로 나가려는 내 소매를 정진우가 살짝 당겼다. 앉아서 올려다보는 얼굴이 좀 섹시했다.
“선배 담배 폈어요?”
“아… 어. 술 먹을 때만 펴. 담뱃값 때문에 끊으려고 하는데 술 먹으면 잘 안 되네.”
뻘쭘하게 얘기하자 잠깐 시선을 깔던 정진우가 같이 일어난다. 자기도 피우고 싶단다. 나도 정진우가 담배를 피우는 건 몰랐다. 원래 피웠냐고 묻자 많이는 아니고요, 한다. 옆에서 야작하면 쟤 완전 골초예요! 하고 소리쳤다. 정진우가 그 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찬 공기가 훅 끼쳤다. 곧 4월인데 해만 지면 날씨가 겨울 같다. 술기운에 나른했던 정신도 깰 겸 숨을 들이마시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정진우를 보다 나도 불을 찾았다.
“아, 라이터 없네. 나 불 좀 빌려줘.”
“이리 와요.”
담배를 문 채로 중얼거린 정진우가 나를 확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얼굴에 불을 붙일 생각도 못 하고 숨을 멈췄다. 부챗살 같은 정진우의 속눈썹이 살짝 흔들린다. 정진우가 잡고 있던 내 팔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한 번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어색해진 마음에 이리저리 방황하던 시선을 정진우에게 뒀다. 정진우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왜 조영재 안 나오지.”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먼 조영재를 언급했다. 나오다가 영지에게 잡힌 걸 봤으니 10분은 더 있어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진우는 대꾸 없이 픽 웃었다. 혼자 설레는 걸 들킨 것 같아서 심장이 더 뛰었다.
“동기들이랑 오랜만에 만나니까 재밌다. 네 동기들도 다 좋은 애들인 것 같고. 내가 남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더 친해질 텐데 좀 아쉽고……. 그러네.”
여전히 말없이 담배 연기만 뿜고 있는 옆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잘생긴 놈은 담배 피는 것도 말도 안 되게 그림이었다. 이상하게 말이 없어진 정진우 때문에 점점 초조해져 아무렇게나 주절거렸다. 조영재 왜 이렇게 안 나오지.
“나 처음에 그래서 너 좀, 나한테 관심 있는 줄 알았어.”
“제가 선배한테요?”
이런 저런 말을 주워 담다가 정진우의 반문에 정신 차리고 내가 한 말을 돌이켜 봤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한숨을 푹 쉬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네가 하는 짓이 워낙 다정해야지. 우리 또래에 너 같은 애 없을걸. 넌 가끔… 보면 나를 좀 여자 대하듯이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술이 덜 깼나.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막말을 내뱉고 있는 내 주둥이를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었으나 내 입은 불수의근이라도 된 것처럼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
“그래서 좀. 그랬는데 여자 친구 있는 거 보고 아니구나, 했고. 그냥, 뭐 그렇다고.”
뻘쭘하게 말을 맺고 차마 정진우를 쳐다볼 수 없어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함흥차사인 조영재를 욕했다. 정진우는 그런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다 피워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선배가 좀, 저한테 특별하긴 해요.”
“내가?”
“네. 정상적으로 제가 사귄 첫 남자기도 하고, 처음부터 선배한테 관심 있었던 거 맞아요.”
저도 잘생긴 사람 좋아하나 봐요.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잘생기긴……. 말끝을 흐리며 홧홧하게 달아오른 뒷목을 슬슬 쓰다듬었다. 얼마 피우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필터까지 다 타버린 담배를 껐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잠시 말을 멈춘 사이에 문이 열리며 조영재가 나왔다.
“아오 씨. 영지 취하니까 말 존나 많아. 나 담배 말려 죽는 줄 알았잖아.”
“우리 다 피웠어. 들어간다?”
조영재가 나를 야속한 눈으로 쳐다봤다. 차마 그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정진우만 살짝 안으로 미는데 꿈쩍하지 않고 조영재를 향해 불 드릴까요? 한다. 정진우를 의식도 안 하고 있던 조영재가 잠시 놀라서 어, 어. 하고 정진우의 라이터를 받아 들었다.
“야 서요한. 너 언제 빠질 거냐. 나 내일 오전수업이라 한 시간 안에 갈 거야. 애들 2차 간다던데.”
“난 내일 오후 수업이긴 한데. 2차는 좀 힘들다.”
“어… 정진우 너는?”
“저도 이 자리 파하면 가려고요. 다들 자취하세요?”
어, 나는 바로 이 앞에 살고, 서요한은 사거리 쪽 살아. 하는 조영재를 잠시 쳐다봤다 나를 본다. 정진우의 시선에 아 아직 사는 데도 서로 말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나 사거리 쪽 로즈빌 살아. 너는?”
“아, 저도 그 근처예요. 이따 같이 가면 되겠다.”
하하. 실없이 웃고 허공을 바라봤다. 조영재도 정진우가 옆에 있으니 할 말이 별로 없는 듯 입을 다물고 담배만 뻑뻑 피웠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했던 시간이 지난 뒤 사이좋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자리를 옮기려는 듯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 2차 갈 건데 너네도 같이 갈래?”
질문하는 슬기의 눈이 정진우에게 고정되어 있다. 떨거지는 꺼지라는 확실한 의사표현에 조영재와 나는 대꾸도 안 하고 자리에 놓인 가방을 챙겼다. 죄송하다며 거절하는 정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느릿느릿 가방을 메고 있으니 정진우가 다가와 옆에 선다.
“선배, 가요.”
고깃집 횡단보도 앞에서 조영재와 헤어진 뒤 한산한 밤거리를 걸었다. 정진우는 아까부터 별말이 없었다. 군데군데 이가 나간 듯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에 거리가 어둑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응. 너 아까부터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정진우가 옅게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좀.”
평소에는 운을 떼면 미주알고주알 물어보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다 하곤 했던 정진우가 저러는 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고 거듭 묻지 못했다. 꼬치꼬치 캐물어도 되는 사이인가 고민도 되었고, 어려울 것 없는 정진우를 어려워하게 만드는 내 감정이 싫었기 때문이다.
“선배 중간고사 준비하고 있어요? 저도 슬슬 공부할까 하는데.”
“응. 나 학점 잘 받아야 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정진우의 몇 가지 버릇과 취향, 장래희망을 알게 되었다면 정진우는 내 사정을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부모가 없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 다니기가 어려워진다, 알바를 많이 한다, 등의 말 꺼내면 우울한 이야기들이었다. 내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후로 정진우는 유학 계획 같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잘난 얼굴과 여유로운 태도 때문에 매번 정진우가 스무 살인 걸 잊고 있다가, 내 사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티 나게 말을 멈추거나 돌리는 모습을 보고 얘도 어린 걸 깨닫곤 했다.
생각해 보면 정진우를 만나고 나는 내 취향도 깨달은 셈이었다. 연애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살다 보니 진작 알아챈 내 성 정체성에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였고, 그뿐이었다. 누군가와 연애한다는 생각은 더욱이. 정진우를 처음 만나고 내가 생각보다 얼굴을 많이 밝혔구나, 목소리가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시선이 진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나와 어깨가 나란히 닿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내 취향은 그냥 정진우였다. 하루 종일 팍팍한 삶에 지치다가도 정진우의 얼굴을 보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약간 낮고, 느리고, 말끝을 늘이는 말투를 듣고 있다 보면 딱딱하게 굳어 항상 아프던 어깨가 나른해졌다. 수경이 이야기를 달고 살 때도 조금 우울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정진우와 무언가를 해 볼 생각도 없으니까.
사거리 횡단보도에 서서 정진우를 바라봤다. 키가 비슷해서 고개만 돌리면 바로 정진우의 콧대가 보였다.
“넌 여기 어디 살아? 나 건너서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돼.”
“선배 집 앞까지 같이 가요. 저 좀 걷고 싶어서.”
말을 마친 정진우가 담배 피워도 돼요? 하고 물어와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 불을 기다리며 정진우가 불을 붙였다. 연한 입술 사이로 하얀 담배연기가 퐁퐁 솟았다. 담배연기는 가끔은 입가의 점을 뿌옇게 가리기도 하고 더욱 진하게 만들기도 했다.
“담배 많이 피웠구나. 근데 왜 말 안 했어. 불편했겠다.”
“그냥. 많이 안 피워요. 선배 안 피우는 것 같아서 굳이 말할 필요 있나 싶었고.”
정진우는 내가 배려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을 종종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처음 받는 이런 배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정상적으로 사귄 남자가 내가 처음이라고 그랬나. 그럼 비정상은 어떤 거지. ……. 어쨌든 주변에 여자밖에 없었으면 여자에게 대하는 버릇이 굳어진 듯했다. 나는 약간 정진우의 안녕을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 되었다.
“내가 그랬잖아. 너무 쓸데없이 다정해.”
좀 열성적인 부모가 되었다.
“너 앞으로 친구 많이 만들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좀 막 대할 줄도 알고, 맘대로 할 줄도 알고 그래야지.”
말하고 보니 좀 웃겼다. 얘랑 나 한 살 차인데. 어쨌든 인생에 도움 되라고 한 말이니까. 정말로 나는 정진우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진우는 설치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졸업하고 하고 싶은 대로 작가 활동을 하려면 인맥도 많아야 하고, 뭐 그런 이유였다. 내 눈을 바라보다 정진우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뿌듯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정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주 손을 흔드는 정진우를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잡고 잠시 뒤돌아보니 내 뒷모습을 보고 있던 정진우가 슬쩍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든다.
“들어가. 춥다.”
“네. 선배 들어가는 거 보구요. 얼른 들어가요. 몇 층 살아요?”
“3층. 나 갈게, 다음에 보자.”
계단을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바깥을 내다봤다. 정진우의 정수리가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했다. 집에 들어가 불도 안 켜고 창밖을 내다보니 정진우가 우리 집 쪽을 가만히 서서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다시 내려다보니 골목을 빠져나가는 정진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시 꿈같은 정진우의 뒷모습에 눈을 비벼야 했다.
정진우와 함께 밤거리를 걸었던 게 정말 꿈인가, 싶을 만큼 중간고사까지 학교, 알바, 집만 기계적으로 찍었다. 새벽 2시에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오면 책부터 펴기 바빴다. 한두 시간 공부를 하다 쓰러지듯 잠들고, 야작하는 날에는 집에도 못 들어간 채로 스튜디오 옆 화장실에서 세수만 겨우 하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작업실 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정진우 또한 말은 안 해도 바빴을 텐데 항상 깔끔한 모습 그대로여서 얼굴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한 달 정도 각자 바빠 별다른 근황을 알지 못했는데 그사이 정진우는 수경이와 헤어졌다고 했다. 밥을 먹다가 놀라서 포크를 쥔 상태로 정진우를 쳐다보니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웃을 뿐이었다.
“그냥, 일 시작한 이후로 제가 너무 바빠서 힘들었대요. 수경이는 좀 더 시간을 많이 공유하고 싶었는데 제가 그게 안 돼서.”
말을 하는 정진우는 평소 언제나 수경이를 일 순위로 두고 행동했던 것치고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대꾸 없이 들었던 포크를 입에 넣으니 저도 먹을래요. 하고 내 돈가스 한 조각을 가져간다.
“선배는 항상 돈가스만 먹어서 선배 건 뭔가 다른가 했어요. 안 질려요?”
“안 질려. 고기잖아.”
그러는 정진우는 매운 걸 어지간히 좋아하는지 항상 빨간 음식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떡볶이, 라면, 제육볶음, 등등. 저렇게 자극적인 걸 매일 먹는데 뾰루지 하나 안 나는 게 신기했다.
밥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정진우는 그동안의 자기 이야기를 했다. 작가님이 되게 좋으신 분이에요. 작업실에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청소만 하지만. 급한 시험이나 과제 다 해결하고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누나 보러 한번 가볼까 싶기도 하고, 유학 가보고 싶어서요.
“책도 샀어요. 근데 되게 어렵더라고. 영어랑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어.”
책을 받아 살펴보니 꽤 어려워 보이는 교재였다. 이제 막 시작한 거면 더 쉬운 걸로 해도 될 텐데, 왜 이런 교재를 택했나 싶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로 샀어? 공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누나가 그 책이 좋다고 해서. ……선배 독일어 할 줄 알아요?”
멈칫 하며 정진우를 쳐다봤다가 숨길 일도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많이 까먹었어. 안 써서.”
“예전엔 많이 썼었나 봐요?”
“어. 나 어렸을 때 독일에 살았어가지고.”
“언제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한… 6년?”
말을 잇다가 갑자기 내 머리를 끌어안은 정진우 때문에 사레들려서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정진우는 제가 끌어안아 놓고 내 기침 소리에 제가 놀라 나에게 먹다 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면서 법석을 떨었다.
“아니… 왜 갑자기 사람을 끌어안고 그래. 놀랐잖아.”
“놀랐어요? 미안해요. 너무 반가워서.”
기분이 썩 좋은지 광대를 한껏 올린 채다. 얼굴이 반질반질 빛나는 게 아주 귀여워서 잦아진 기침을 콜록거리며 나도 잠시 따라 웃었다.
“선배. 나 과외 좀 해줘요.”
“뭐?”
정진우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중얼중얼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면 거의 네이티브 아니에요? 학원 다니기는 좀 그렇고, 가기 전에 미리 공부를 좀 해놓는 게 좋을 것 같긴 하고, 책 사보니까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했는데. 지금 선배가 거의 천사처럼 보여요.”
“야, 나 과외도 해야 하고, 기말고사 때 되면 시간도 없어.”
“이것도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 서로 집도 가깝고, 너무 좋은 조건인데.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하는 거예요? 기말고사 때는 수업 좀 줄이고, 방학 때는 좀 늘리고 하면 되지 않을까 했어요.”
방학 때도 정진우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약간 솔깃했지만 바로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이번 학점이 어떻게 나올지도 몰랐고, 꽤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고 있는 알바를 그만둔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나 학점 어떻게 나오는지도 봐야 하고, 후밴데 돈 받고 과외하기도 그래. 그래서 좀…….”
“그럼 생각해 봐요. 강요하는 건 아니고, 그냥 저도 선배한테 받으면 편해서 좋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일단 혼자 공부 하고 있을게요. 급하지 않으니까 기말고사 끝나고까지 생각해 보고 대답해 줘요.”
너무 좋은 조건에 어안이 벙벙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제를 전환했다. 대꾸하며 커피 잔을 쥔 모양 좋은 손등 위로 약간 내려온 까만 카디건을 응시했다. 부드럽게 돋아난 털실이 마음을 간질였다.
* * *
중간고사가 끝나는 기념으로 동기끼리 모이자는 영지의 공지가 날아왔다. 회비는 얼마고, 부담스러우면 안 와도 돼. 너 온다고 하면 최대한 너 비는 시간에 맞출게. 하는 영지의 두 손을 붙들고 진지하게 낸 돈의 배를 먹겠다는 다짐을 들려주었다. 영지가 한심하게 나를 쳐다봤다. 우리 과 남자애들은 항상 이런 취급을 받기 때문에 모르는 척 이번엔 떡이 되지 않겠다는, 역시 한심한 다짐 중인 김수현과 함께 손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이번엔 포차 말고 딴 데 가자. 더 맛있는 데! 신난 김수현이 포효했다. 약간 무서웠다.
자고로 조소과의 한 학기란 과제-술-시험-술로 이루어져 있는 법이다. 내 동기들은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주량이 대단했는데, 교수님들이 우리를 뽑을 때 술 잘 먹을 것 같은 작품 위주로 뽑았나 싶을 정도였다. 하고 싶은 것도 제각기고, 각자 성격도 얼굴도 너무 다른 애들이 술에 있어서만은 대동단결이었다. 기어코 김수현이 알아낸 싸고 맛있는 고기 뷔페에서 소주를 물처럼 마시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일었다. 술부심이 넘치는 애들은 동기모임을 할 때만큼은 소주만을 고집했다. 먹다 죽어도 같이 죽자는 거였다.
“이건 뭐. 지금 너네 술이랑 싸우냐?”
가방을 구석에 던져 놓고 맞은편에 앉은 조영재가 이미 비어 있는 불판과 테이블 밑에 짝으로 쌓여 있는 술병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애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러는 조영재도 야, 잔 좀 줘봐 하더니 일단 한 잔 마신다.
“나 지금 좀 걱정된다. 다 집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러지?”
“알아서 하겠지. 이런 게 처음도 아니고 뭔 걱정이야.”
여상하게 말하며 술잔을 쭉쭉 들이키는 조영재는 네 몸이나 알아서 잘 챙기라는 핀잔도 잊지 않았다.
열두 시가 넘자 애들이 하나둘 비척비척 일어났다. 중간 계산이다 뭐다 아직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영지가 모자란 돈을 조금 더 걷어 계산을 마치고 다 함께 나와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었다. 삼삼오오 모여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는 것이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인지 술인지 헷갈리는 얼굴들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어디서 집에 가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몇 명은 모텔에 간다고 하고 몇 명은 자취방에 간다고 했다. 여자애들 중 자취하는 애들은 두 명인데 여덟 명이 한 방향으로 사라졌다. 기분이 좋은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혹시 그냥 걷는 건가? 비틀비틀 춤추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뚱히 보며 조영재와 김수현이 쟤네 일렬로 포개져서 잘라고 그러나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날렸다.
“나도 간다.”
“어……. 영재야 오늘 나 좀 재워죵.”
“아오 징그러운 새끼. 면상 안 치우면 이 날씨에 입 돌아가는 게 뭔지 오늘 알게 될 거야.”
떡이 되어 튼실한 팔뚝에 매달려 애교를 피우는 김수현을 팩 쳐낸 조영재가 어서 가라며 손을 슬슬 흔들었다. 여기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가 걸렸다. 걸으면 어질어질했던 속도 좀 가라앉겠거니 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별이 하나, 둘, 셋. 오, 많네. 저건 인공위성인가. 머리가 술로 가득해 찰랑찰랑 흔들렸다. 어지러운 시야 위로 오늘따라 별이 많은 하늘이 펼쳐졌다. 우주를 떠도는 느낌이었다. 몸도 가볍고, 속도 울렁울렁한 게. 어렸을 땐 그렇게 우주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공부를 완전 잘했으면 물리학을 전공했을 텐데. 머리가 비상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림 잘 그리니까 괜찮아. 혼자만 생각하며 내 자신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요한 선배?”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하늘만 보면서 걷다가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바로 했다. 정진우가 어떤 건물 앞에서 담배를 든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들어오는 길인지 차림이 말쑥했다. 까만 맨투맨 위로 하얀 얼굴이 둥둥 떠 있다. 하얗고 예쁜 정진우의 얼굴.
“어……. 진우네. 너 여기 살아?”
어물어물 다가가 말을 거니 정진우가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번에 말 안 했구나.”
“아, 좋은 데 사네.”
좋긴요. 대충 대답한 정진우가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담뱃갑 안에 집어넣고 자꾸만 내 기색을 살폈다.
“술 냄새 나는데. 술 마셨어요?”
“어어, 조금.”
많이 마셨나보네. 핀잔을 들은 것 같은데 목소리가 다정해서 헷갈렸다. 혀를 끌끌 차더니 어느새 슬슬 기울어져 있던 내 몸을 바로 잡는다.
“제대로 설 수 있어요? 어디서 마신 거예요.”
“어, 어. 그 거기, 고기뷔페 갔어.”
“아, 거기.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또 고기 먹고? 선배들은 보면 고기에 원수진 것 같아요.”
“원수, 아닌데. 그거 아니야, 원수 아니야.”
“농담이에요.”
아 그래. 뻘쭘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만히 서 있으려니까 몸이 자꾸 기울어 벽에 슬쩍 기댔다.
“또 까만 옷 입었네. 항상 까만 옷만 입네. 까마귄가. 아닌데 얼굴은 하얀데. 머리는 까맣고.”
뜬금없이 옷차림에 트집을 잡는 나를 정진우가 약간 어이없이 쳐다봤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그게 괜히 재밌어 조금 웃었다.
“선배 술 취한 거 처음 보는데… 좀,”
“나 안 취했어. 멀쩡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몸짓이라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성심성의껏 대신 끄덕여줬다. 정진우는 좀 난감해 보이기도 했고, 이 상황이 웃긴 것 같기도 했다.
“나 이제 갈게.”
“잠깐만요. 선배 집이 가깝긴 한데, 거기까지 갈 수 있겠어요?”
“당연하지.”
“같이 가요 그럼.”
“아니야. 늦었잖아. 너 들어가. 나 혼자 갈 수 있어.”
안녕. 인사하며 재빨리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걸었다.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옅은 한숨소리와 함께 정진우가 내 팔을 확 하고 끌어당겼다.
“집 열쇠 줘요. 바래다줄게요.”
“어, 어. 아닌데.”
“열쇠 줘요.”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가방을 앞으로 돌려 안을 훑었다. 어디에도 열쇠는 없었다. 어디 갔지, 멍한 머리로 생각하다 열쇠는 아직 아침에 나보다 늦게 나온 김수현 손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수현은 놀다 기숙사 통금 시간이 지나면 나나 조영재의 집에 종종 신세를 졌는데, 어제도 그랬던 것이다.
“어, 열쇠 없어. 김수현이…….”
잠시 말없이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정진우가 잡고 있던 내 팔을 지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걸음을 돌렸다. 정진우의 손길이 지났던 어깨 부근이 화끈거렸다.
“우리 집 가요.”
너희 집? 어어, 멍하니 얼이 빠진 사이에 정진우는 나를 끌고 저희 집 앞에 섰다.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가 보니 깔끔한 분리형 원룸 내부가 보였다. 정신없는 상태로 신발장 근처에 주저앉아 있었다. 먼저 들어가 이것저것 정리하던 정진우가 내 양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운다.
“신발 벗고 들어와서 저기 앉아 있어요.”
얌전히 신발을 벗어놓고 침대 맞은편에 놓인 일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푹 감싸이는 느낌이 되게 좋았다. 부들부들한 소파 가죽을 넋 놓고 문지르다 점점 어색해져 커피 테이블 밑으로 깔린 러그를 발바닥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정진우는 부엌에서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얼음이 찰랑찰랑한 유리컵을 들고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냥 우롱차예요. 차가우니까 좀 마시고 정신 들면 씻어요.”
“응. 너는?”
“전 그냥 좀 씻고 싶어서. 먼저 씻을게요.”
욕실로 들어가는 정진우의 뒤태를 바라보며 우롱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입 안에 고인 차에서 술맛이 느껴졌다. 두 병을 넘긴 다음부턴 몇 병째를 마시고 있는지 세기를 포기했는데, 그제야 내가 많이 마셨구나, 했다. 빗소리 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얼추 차를 마시자 차가운 컵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솔솔 왔다. 소파에 묻혀 컵을 쥔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더니 어느새 샤워를 마친 정진우가 내 어깨를 슬슬 흔들었다.
“저 다 씻었어요. 얼른 씻고 나와요.”
“어어.”
“일으켜줘요?”
“어어…….”
“완전 아기네.”
비몽사몽간이어서 제대로 대꾸를 못했다. 다 큰 남자가 애 취급을 받다니. 184짜리 애가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멀쩡했으면 바로 근엄하게 나 애기 아닌데. 했을 텐데 근엄한 표정 구사가 안 되어서 제대로 받아치지 못해 애석했다.
“나 애기,”
“아니라고. 알았어요. 들어가서 씻어요. 칫솔은 새 거 뒀으니까 파란색 쓰면 되고, 저 속옷도 새 거 있어요. 갖다 줄게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음이 다 녹은 차를 정진우에게 줬더니 진짜 애네. 하고 실실 웃으며 눈가를 문지른다. 그 시점에서 나는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분명히 이불을 찰 걸 예감했다. 예감만 했다. 받을 생각을 않고 실실대기만 하는 정진우에게 컵을 억지로 안기고 비척비척 욕실로 들어갔다.
몸을 씻은 후 물기를 닦고 있었더니 노크 소리와 함께 문 앞에 속옷과 잠옷을 둔다는 정진우의 말소리가 들렸다. 순간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약간 발기해 있었다. 시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오늘 정진우를 만나고 쪽팔릴 일만 미친 듯이 생성하고 있었다. 알몸으로 쭈그려 앉아 다리가 저릴 때까지 기도했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원래 사람 좋아하면 이렇게 찌질이가 되는 건가요. 이제 저는 같은 남자애 목소리만 듣고도 서는 변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좀 구원해주세요……. 그동안 정진우가 욕실에서 주저앉다 못해 타일 시공을 할 기세인 나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문을 몇 번 더 두드렸다. 선배 거기서 기절한 거 아니죠? 요한 선배?
“어, 나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문을 열고 손만 뻗어 옷을 가져와 주섬주섬 입은 뒤 나와서 쥐구멍을 찾았다. 아래는 간신히 진정시켰지만 술도 잠도 이미 완전히 깨버린 후였다. 모든 게 허무해졌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내 열쇠를 쥔 채로 쿨쿨 자고 있을 김수현에게 전화해서 욕하고 싶었다. 욕실 앞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침대 끝에 걸터앉은 정진우가 손짓을 했다.
“따로 이불도 없고, 오늘은 좀 불편하겠지만 같이 자요.”
침대 넓어요. 하는 정진우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애매하게 침대 모서리만 노려봤다.
“아냐. 너 불편하지. 나 소파에서 잘게.”
“……. 소파에서요?”
말을 하자마자 나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부엌?”
“빨리 와요.”
저 좀 피곤해서, 하는 정진우의 목소리가 진짜로 약간 잠겨 있어서 나도 모르게 빠르게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불까지 얌전히 덮고 옆에 서서 내가 자리를 잡기를 기다리던 정진우를 쳐다봤다.
나를 잠시 내려다본 정진우가 불을 끄고 내 옆에 누웠다. 간신히 진정시킨 심장이 다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쿵쿵대기 시작했다. 옆에 누운 정진우에게선 나랑 같을 게 분명한 바디 워시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가 말 못 하게 좋아 나한테도 똑같이 나나 싶어 은근히 팔을 들어 킁킁댔다. 잘 모르겠다. 잠이 든 듯 고른 숨을 뱉던 정진우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자요.”
“어. 너도 얼른 자.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하지 마요 자꾸. 제가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온 건데 왜 선배가 미안해해요.”
“어. 그럼 너무 고마워.”
정진우가 하하 웃는다. 정진우 쪽을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정진우를 만난 두 달 동안 매일이 이런 식이었다. 정진우를 대면하는 내 마음은 파도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 바빴다. 잔잔하기만 하던 마음에 넘실거리는 파도를 넘으며 대부분은 좋았고, 가끔은 두려웠다.
피곤하다던 정진우는 막상 잠이 안 오는지 부드러운 말투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잠시 작가님이 불러서 작업실에 갔다가… 어시 하는 누나랑 얘기를 하다가,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는데, 만나자고 하더라고. …….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다 더 이상 말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이후를 물어봤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나보게?”
“네…….”
“너도 그 누나, 나한테도 누나지? 그 누나한테 호감이 있었던 거야?”
“생각 안 해봤는데,”
만나자고 하는 얼굴이 예뻐 보였어요. 빨갛게 달아올라서.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봤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사람 소리와 차 소리,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쌕쌕 숨을 내뱉는 정진우의 숨소리도.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무리 감았다 떠도 새카만 건 똑같았다. 어느새 맞닿은 정진우의 어깨가 느껴졌다. 그 부근만 뜨끈하다 열이 전염된 듯 서서히 가슴, 허리, 목덜미, 귓가, 눈가까지 뜨끈해졌다. 눈을 문지르고 싶었지만 정진우가 깰 것 같아 참았다. 그대로 아침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정진우는 알람 소리가 울리자 베개에 머리를 몇 번 비비적대더니 바로 눈을 떴다. 생각보다 예민한 잠귀에 눈만 뜨고 굳어 있던 나는 그제야 어깨를 몇 번 돌렸다. 오전 수업이 같은 교양이어서 함께 준비를 했다. 씻고 나온 정진우의 젖은 머리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던 정진우가 나를 보고 웃었다.
“선배, 씻고 나와요. 간단히 토스트 먹을까요?”
“……. 응. 아침도 주게? 고맙다.”
웃기지도 않은 말에 정진우가 맑게 웃었다. 닫힌 욕실 문 사이로 정진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물을 최대한 차게 틀고, 마구잡이로 얼굴을 문질렀다.
정진우가 구워놓은 토스트를 대충 물고 함께 집을 나섰다.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정진우는 가만히 있으려는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숙면을 취한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불면했고. 말없이 걷는 와중에 정진우에게 빌린 티의 팔이 약간 길어서 자꾸 손등을 덮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니 정진우가 눈치채고 웃는다.
“선배 애다, 애.”
이때다 싶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애 아니야. 했다. 하지만 말하는 도중에 걷어놓았던 반대쪽 소매가 흘러내려 모든 것이 덧없어졌다. 정진우가 내 손목을 잡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미술 하는 사람이 손끝이 둔하네. 어제의 나를 실시간으로 접했던 정진우는 내가 굉장히 하찮아진 것 같았다. 속으로 잠시 민망함에 몸부림치다 막 인문대 앞을 지나가는 좀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김수현!”
뒤돌아본 안색이 진짜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좀 꺼려졌지만 나는 수업 전까지 정진우와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김수현 붙잡고 해장커피나 해야지 하고 약간 뒤쳐진 정진우를 돌아봤다.
“나 수현이랑 얘기 좀 하다 들어갈게. 너 먼저 들어가 있어.”
대꾸 없이 쳐다만 보기에 왜? 했더니 아니요. 한다. 기다릴게요. 하는 음성을 등 뒤에 흘리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김수현에게 달려갔다.
“너 왜 이렇게 일찍 나왔냐. 백퍼 자체휴강일 줄 알았는데.”
“자체휴강이지. 근데 희진이가 아침부터 들이닥쳐서.”
잠결에 조영재를 죽부인처럼 안고 있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을 떤다. 조영재의 여자 친구는 가끔 조영재의 집에 말도 없이 들이닥치곤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나 보다.
“커피나 한잔하자. 내가 살게.”
“아 그럼 커피 마시고 바로 들어가서 자야겠다.”
나 죽겠어어어어어. 찡찡대는 김수현을 한 팔에 달고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슬쩍 한숨을 쉬고 김수현의 뒤통수를 꾹 눌렀다.
“야 열쇠 내놔. 내가 어제 열쇠 없어서, 후. 말을 말자.”
김수현이 아 맞다. 미안, 미안. 너 그럼 어디서 잤어? 전화하지. 하면서 주는 열쇠를 받아들었다. 눈앞에서 자꾸만 어젯밤 정진우가 한 말들이 둥둥 떠다녔다.
만나자고 하는 얼굴이 예뻐 보였어요. 빨갛게 달아올라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마스크를 쓴 채 용접봉으로 철판에 구멍을 뽕뽕 뚫어대면서도 귓가에는 정진우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예뻐 보였어요. 예뻐. 빨개진 얼굴이. 이 상태라면 정진우가 한 말을 해체 재구성해 랩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랩 배틀 해서 우승도 가능했다. 이상하게 멍을 때리니 정진우를 비롯해 오늘 하루 종일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이 내 상태를 한마음으로 걱정했다.
“괜찮아요?”
이렇게.
정신의 반쯤은 가출시킨 채로 바코드를 찍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여자가 보였다.
“예?”
“아니,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괜찮으세요?”
“아, 예.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화사하게 미소 짓는 게 예쁜 여자였다. 과자며 맥주며 가득 담긴 봉지를 들고 돌아서다 머뭇대며 계산대 위로 에너지드링크를 하나 내민다.
“이거. 드세요.”
“아니, 진짜로 괜찮은데. 가져가서 드세요.”
“처음부터 그쪽 주려고 샀어요. 아르바이트 하시는 거 맞죠? 이거 드시고 남은 시간 힘내세요.”
조근조근 말하는 볼이 발긋했다. 완전 예쁘네. 순간 정진우가 말한 빨개진 얼굴이 이런 얼굴이겠구나. 했다. 정진우와 만나기로 했다는 그 누나를 본 적도 없는데 진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며 받아드니 인사를 꾸벅 하고 사라진다. 창 너머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뒷모습을 응시하며 음료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목구멍이 아팠다.
두 시까지 어영부영 카운터를 보는 동안 몇몇 손님이 더 왔다. 그중 한 번은 술 취한 아저씨여서 벌게진 얼굴로 넋두리를 하는 걸 가만히 들어주었다. 아저씨의 잘 이해 못 할 이야기를 들으며 이젠 기억도 희미한 아빠 생각을 했다. 열다섯 살 때 버림받은 이후 의식적으로 아빠의 기억을 지우려 노력하다 보니 정말로 생각나는 게 별거 없었다. 어떻게 생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눈, 코, 입. 보면 아빠네, 하고 알겠는데 그리라면 못 그리겠는. 그 정도였다. 뭉뚱그려 생각나는 얼굴을 떠올리다 혼자 웃었다. 이럴 땐 내 거지같은 기억력이 좀 장점으로 적용하나 싶었다. 대신 엄마 얼굴은 완전 선명하니 됐다 싶었고. 아빠를 만나기 전부터 고아였던 엄마는 혈혈단신으로 나랑 같이 한국에 돌아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생만 옴팡지게 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는 그냥 막연히 엄마가 벌어오는 돈을 쓰고, 나란히 앉아 단출한 밥을 먹으면서 지금은 매일 울지만 나는 곧 있으면 크니까. 그때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오게 호강시켜 줘야지 했었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아프고, 두 달 만에 허무하게 눈 감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아, 사람은 이렇게 빨리 죽기도 하는구나. 죽음은 대비할 수 없구나. 아무리 미래를 다짐해 봤자 죽으면 소용없구나.
그림에 대한 흥미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생겼다. 엄마가 내 앞으로 남긴 돈을 가지고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그냥 이상하게 엄마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 다행히 엄마는 남편 복은 없었어도 동료 복은 있었던지 엄마에게 미싱 일을 가르쳐 준 아줌마들이 손을 모아 장례도 치러주고, 막 하고 싶은 게 생긴 고딩 나부랭이였던 나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줬다. 아줌마들이랑은 가끔 만난다. 단체여행을 가실 때면 내 선물도 사다 주시고, 나도 아줌마들 생일에는 작게나마 선물을 사서 찾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되게 재밌었다.
카운터를 정리하고 새벽알바와 교대했다. 편의점 뒤쪽으로 작게 만들어진 창고에 내가 입고 있던 유니폼을 잘 개어두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이런저런 재료가 들어 묵직한 가방의 무게가 나를 내리눌렀다. 저번에 지나가는 말로 시간 날 때 로프 사러 가야겠다, 했더니 오늘 김수현이 한 다발 가져와 안긴 12미리 로프가 가방 무게의 주범이었다. 웬 로프야? 했더니 퉁명스럽게 오다 주웠다고 그랬다. 솔직하지 못하긴. 고맙다고 웃으니 나중에 성공하면 쏘라고 그러는 것이 조금 귀여웠다. 내 동기들은 그 누구보다 내 재료값을 대신 아끼려고 항상 난리였다. 좋은 애들이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저쪽에서 껄껄 웃는 무리는 여기까지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의 뒷모습도 보였다. 괜히 센치해져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크게 틀었다.
집에 도착해 대충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결국 정진우와 다음 주부터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과제가 몰려 있을 때,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화, 목, 토 두 시간씩. 화요일과 목요일은 아직 유지하고 있는 내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강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다. 토요일은 좀 자유롭게 시간을 정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불규칙한 정진우의 아르바이트 스케줄에 의해 또 변동될 거였다. 이렇게까지 해서 독일어를 해야 하나. 어쨌든 하기로 했으니까 정진우가 하는 이야기에 최대한 맞췄다. 대충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정진우는 이번 주에 같이 책을 사러 가자고 했지만 서점에 적당한 책이 있을지도 몰랐고, 시간 맞추기도 어려울 것 같아 거절했다. 책은 내가 주문할게. 정진우는 그냥 알았다고만 했다.
처음이니까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적당한 책을 고르고 대충 씻은 뒤 요를 깔았다. 이불 속이 포근했다. 이틀 동안 한숨도 못자고 깨어 있었더니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눈이 무거워졌다. 보통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 잠이 드는 게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잠만 잘 왔다. 몸 좀 혹사시켰다고 이렇게 졸음이 몰려오다니. 정진우, 뭐. 아무것도 아니었네.
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정진우는 꿈에 나타나 잠들어 있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섹시한 정진우, 잘생긴 정진우, 예쁜 정진우. 정진우의 매력은 무한대였다. 그중 나는 다정한 정진우가 제일 좋았지만 다정한 정진우는 꿈에서 깰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꿈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법도 한데, 내 무의식이 참 냉정했다. 정진우 어택에 좋다가 괴롭다가 오락가락하더니 꿈에서 깨는 것도 부지불식간이었다. 눈을 번쩍 뜨고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여섯 시 반이었다. 알람이 울리려면 한 시간 반이나 남아서 굉장히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깨버린 바람에 더 잘 수도 없었다. 일찍 나가서 스튜디오나 잠깐 들러 조형과제 샘플 좀 만들어 봐야겠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튜디오1에는 간밤 내내 나를 괴롭혔던 정진우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양팔을 합친 두께의 나무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살펴봤더니 실톱으로 잘게 길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뭐야? 과제야?”
조용히 물으니 정진우의 어깨가 펄쩍 뛰었다. 실톱을 든 채로 행동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정진우의 얼굴이 귀여웠다. 나인 걸 확인하고 크게 한숨을 쉰다.
“요한 선배였네. 언제 왔어요?”
“방금.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와 있었어?”
“얼마 안 됐어요. 집에 있다가 그냥 잠이 안 와서.”
좀 앉아서 정진우 작업하는 걸 구경하다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붙은 톱밥을 털었다. 정진우가 제 어깨를 슬쩍 보더니 아침 먹었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 생각 없어.”
“저는 좀 출출한데. 같이 나갈래요? 지금 몇 시지.”
“일곱 시 반. 기숙사 학식은 열었을 거야.”
“그럼 그리로 가요.”
일찍 일어나 작업하러 온 보람도 없이 정진우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정진우는 교양 때문에 밥 먹고 바로 정경대로 올라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오전수업이 전공이었다. 김수현 데리고 내려와야지.
* * *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한 이후로 과외하기로 한 날까지 겹치는 수업 이외엔 정진우를 볼 길이 없었다. 요즘 작업실이 좀 바빠요. 작가님 개인전이 얼마 안 남아서. 수업 중 만난 정진우의 옆모습은 조금 피로해보였다. 넌지시 과외를 미룰까 하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오랜만에 정진우와 제대로 얘기를 할 생각에 과외 날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다 시간 맞춰 겨우 나왔다. 빠르게 걸어 도착한 빌라 앞에서 천천히 발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부린 온갖 추태가 절로 하나둘 떠올랐다. 멀뚱히 굳어 있다가 정진우가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올라가니 정진우네 집 문이 열려 있었다.
“왜 문을 열어놓고 있어.”
“담배 피우다가 선배 서 있는 거 봤어요.”
근데 왜 그러고 있었어요? 하고 웃으며 물어보는데 둘러댄다는 걸 화단에 꽃이 예뻐서. 라고 그랬다. 순식간에 나는 세상 다시없을 감성적인 스물 하나가 되었다.
정진우가 꽃 좋아해요? 라고 물어 왔다. 잠깐 머뭇대다 어물쩍 어엉. 하고 넘겨 버렸다.
“오늘은 알파벳이랑 간단한 인사말 정도 하자. 내가 너한테 문법을 잘 가르칠 자신은 없고… 교재 따라가면서 회화 위주로 하는 걸로 가닥 잡자. 괜찮아?”
정진우네 책상은 깔끔한 집이랑은 다르게 도저히 책을 펼 수 없게 복잡해서 부엌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펴고 마주앉아 주문한 책을 내밀며 앞으로의 수업 계획을 대충 설명했다. 정진우가 얌전히 네, 잘 부탁해요. 대답했다.
불규칙하게나마 과외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정진우의 취미는 음주였다. 정진우는 의외로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발코니에는 항상 맥주가 짝으로 쌓여 있고 부엌 구석에서 비어 있는 와인을 한두 병 발견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누구랑 마시나, 여자 친구랑 마시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저 집에 사람 들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누가 있으면 신경 쓰여서. 여자 친구도? 네. 여상하게 흘러가는 정진우의 말을 듣다가 그럼 나는 뭐지. 하고 속으로 살짝 기대하다가, 바로 생각을 털어내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었다. 정진우는 또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고. 여하튼 정진우의 바람직한 취미를 알게 된 후로 우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공부를 끝낸 뒤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었다.
“이제 슬슬 과제 몰릴 때죠?”
“응. 조형이랑 조각1이랑 소조는 기말고사 과제로 대체한대서 그것도 좀 공들여 해야 할 것 같고, 일단 난 맥스가 문제야. 하. 이 세상 컴퓨터 다 부셔버리고 싶다. 아니면 수업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맥스만 사라져줬으면…….”
빈 맥주 캔을 우그러뜨리며 분개했다. 오늘도 수업이 끝난 뒤 맥주를 따던 차였다. 정진우는 언어에 감각이 있는 듯 수업을 수월히 따라와 이제 독일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나눌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모든 게 좋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직업이 뭔가요? 지금은 조소과에 다닙니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취미는 전시 관람, 영화 관람입니다. 쉬는 날에는 영화를 봅니다. 책도 읽습니다. 등의 이야기였다. 정진우의 목소리로 듣는 독일어는 새로운 감흥을 일으켰다. 독일어 겁나 좋은데? 같은.
이런저런 과제에 대한 불평을 들으며 맥주를 들이키던 정진우가 웃는 눈을 했다. 유난히 도드라진 목젖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흠칫 정신 차리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저는 빨리 맥스 수업 듣고 싶어요.”
잘하거든. 정진우의 음성이 부엌을 부드럽게 울렸다. 정진우는 외모도 키도, 몸매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지만 그중 으뜸은 목소리였다. 정진우와 말을 트자마자 외모를 제치고 나의 으뜸이가 된 저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저렇게 만들어지는 걸까. 아무래도 목젖인가. 다시금 시선이 내려갔다.
“신기해요?”
“뭐가?”
“……이거.”
과장되게 침을 한 번 꿀꺽 삼킨다. 다시금 흔들리는 목젖을 멍하니 보다 정진우의 얼굴을 올려 보았다. 눈을 살짝 휘며 웃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확 하고 뜨거워졌다.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두 뺨에 차가운 손을 포갰다.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좀 창피했다. 아니, 많이.
“어떻게 알았냐. 내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그것도 그런데, 그냥 알았어요.”
“……뭐 다른 생각이 있어서 본 건 아니고, 그냥, 맞아. 신기해서. 그냥.”
싱크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정진우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그냥. 나도 다른 생각 안 했어요. 선배는 목이 매끈해서, 그래서 내 게 신기했나보다 했지.”
“원래… 알고 있었어? 내가 너, 거기, 쳐다보는 거?”
“아. 음. 네.”
귀신같은 놈. 좋다고 마셨던 맥주를 올릴 뻔했다. 속이 울렁울렁했다. 지체 없이 맥주를 한 캔 더 깠다. 정진우가 웃으며 짠 해요, 한다.
“이것만 마시고 가야겠다.”
“그래요. 피곤하죠?”
“많이는 아니고. 너는?”
“나야 뭐. 평소랑 비슷해요. 선배는 그니까, 알바 하나 그만 두라니까. 그거. 편의점.”
“생각 좀 해보고. 아직 할 만해.”
정진우가 흥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반응에 조금 억울해졌다.
“진짜야. 몸에 무리될 것 같으면 내가 알아서 그만 두지.”
“그래요.”
어쩐지 내가 일이 많아 서운한 애인을 달래는 느낌이 들었다. 정진우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옛날 노래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어이가 없다. 자의식 과잉도 정도가 있어야지, 정신 차리자. 과외 하는 날마다, 정진우를 만나는 날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나 자신에게 다짐하고 눈을 감는다. 오바야. 정진우는 그냥 내가 편해서 그런 거야. 내가 걔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 더 커 보이는 거야. 착각하지 말자.
“나 일어날게.”
“네. 그냥 두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식탁 위를 굴러다니는 맥주 캔을 두어 개 쥐고 엉거주춤 일어서니 정진우가 손사래를 쳤다. 그 자리에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신고 있으니 정진우가 슬쩍 다가와 내 옆에 선다.
“왜?”
“저도 같이 나가게요.”
“왜?”
“장도 좀 보고, 바람도 좀 쐬고.”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계단을 슬슬 내려가며 다음 주 과외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 주는 원래 일정대로 가능해?”
“선배는요? 과제 많다며.”
“나는, 음. 확실하진 않은데 될 거 같아.”
정진우와 하는 과외는 나를 항상 시간에 쫓기도록 만들었지만, 그와 반대로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과외가 있는 날 아침엔 힘들지도 않게 눈이 반짝 떠졌고, 누우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으니까. 웬만하면 정해져 있는 시간을 빼고 싶지 않았다. 시험기간이면 모를까, 과제 정도는 내가 조금만 바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럼 저도 될 것 같아요. 다음 주엔 예정대로 해요.”
“그래? 너 작업실은?”
“음. 나도 확실하진 않은데, 라고 해야겠다.”
개구지게 웃는 모습이 예뻤다. 또 넋을 놨다. 항상 나도 모르게 정진우가 하는 모든 것에 시선을 빼앗겼다. 정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땅바닥을 바라봤다. 현관 구석에 노랗게 꽃이 펴 있었다.
“꽃이네. 되게 작다. 어떻게 이런 데서 폈을까.”
정진우가 나를 따라 돌바닥 구석을 살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얼굴을 모르는 척 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옆얼굴에 잠시 정진우의 시선이 닿은 듯했으나, 착각이겠지. 생각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자그맣게 피어 있는 꽃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예뻤다.
장을 본다던 정진우는 좀 걷고 싶다며 우리 집 앞까지 나와 함께했다. 정진우와 나란히 걸으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침묵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정진우와 나 사이에 놓인 침묵이 불편할 때마다, 불편하지 않을 때마다, 신기했다.
“들어가요.”
“어, 그래. 다음 주에 보자. 내일 잘 쉬고.”
“네. 선배는 오늘 잘 쉬고.”
웃으면서 말하는 정진우의 어깨를 툭 치고 손을 흔들었다. 정진우도 마저 손을 흔든다. 먼저 가. 말하니까 알았어요. 하면서 웃고만 있다. 진짜 가. 하니까 그제야 걸음을 옮긴다. 쫙 펴진 정진우의 등을 보다가 약간 굽은 내 등을 의식적으로 바로 했다. 그렇게 정진우가 점이 될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가라고 할 때는 그렇게 미적거리더니 막상 걸음을 돌리니까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게 또 조금 서운했다.
기말고사 시즌이 다가오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튜디오는 1이고 2고 3이고 야작하는 사람들과 각종 기묘한 모양을 한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마주치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시커먼 안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번 주까지 유지하던 과외는 방학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쉬기로 결정했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도면 아르바이트를 지속하고 있었고 정진우도 작업실에 계속 나가고 있었다. 가끔 정진우는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인생에 이렇게 한곳에서 일을 길게 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에 감격을 거듭했다. 역시 대학생은 다르다고도 했다. 귀여운 놈. 그 누나와는 그럭저럭 잘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 현주라고 했다. 수경이 때와는 다르게 누나 얘기가 나올라 치면 말을 돌리곤 했지만, 그냥 잘 만나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오랜만에 수업이 끝나고 김수현, 조영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들 안색이 거멓게 죽은 채로 돈가스와 제육볶음을 질겅질겅 씹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별로 맛이 나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알바하러 가야 했고, 조영재와 김수현은 다시 스튜디오행이었다. 전공수업 세 개가 한꺼번에 과제로 밀려오니 죽을 맛이었다.
“교수님들은 아무래도 우리가 자기 수업만 듣는 줄 아는 듯.”
“엉.”
“뭐?”
“네 말 맞다고. 나중에 강의평가 개떡같이 해서 낼 거야. 교수님들 존나 이기적임.”
“그거 이름 알 수 있지 않냐?”
김수현이 돈가스를 씹다가 화들짝 놀랐다. 실눈이 순식간에 커지자 퍽 신기했다.
“알 수 있어?! 거짓말이라고 말해 어서. 그냥 해 본 말이라고. 빨리.”
“나도 몰라. 그냥 알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한 거잖아 멍청아. 너 작년에 강의평가 개떡같이 했나 보다?”
“아. 어어어. 기초조형이 작년에 워낙 거지같았잖아……. 모를 거야. 익명이겠지.”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식판에 고개를 처박는다. 조영재는 언제나 그렇듯 제육볶음과 싸우고 있는 김수현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거 언제 커서 사람 구실하나, 하는 부모의 시선이었다. 다시 말없이 밥에 집중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돈가스를 씹으면서 오늘 내가 일 끝나고 학교로 다시 올 수 있을까. 진지하게 가늠해 봤다. 저번 학기에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 하다가 3일 밤을 꼴딱 새고 과제를 제출한 뒤 진짜로 잠시 기절했었다. 이번에도 기절하면 큰일 난다. 앞으로 남은 과제며 시험이 산더미라 나는 강제로 튼튼해야 했다. 아마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 내일은 오전 수업도 없으니까 밤새서 베이스 칠까지 마쳐놓고 집 가야지. 나머지는 수업 시간에 하고. 그러면 두세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이다.
“너네 오늘 몇 시까지 작업할 거야?”
“나는 기숙사 통금까지만 대강 잡아놓고 기숙사 들고 가서 하게. 작아서 그래도 될 것 같음.”
“조영재 너는?”
“나는 모르겠다? 하는 거 봐서. 너 알바 끝나고 올라오게?”
“어. 오늘 베이스 칠까지 하고 내일 다 완성해 버리게. 이번엔 흙 작업이라 그렇게 할 수 있을 듯.”
조영재와 김수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영재가 웬만하면 너 올 때까진 있을 거야. 아마. 하고 자신 없이 말했다. 다 때려치고 싶은 표정이었다.
애들을 스튜디오로 보내고 나는 정문을 나섰다. 과제와 일을 병행하려면 나는 시간을 쪼갤 수 있을 만큼 쪼개서 사용해야 했다. 알바를 하러 내려가는 동안 작업 순서를 짰다. 1년 학교생활 했다고 그래도 계획 짜는 게 수월했다. 작년 이맘때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나름 열심히 배웠더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 머릿속으로 마무리까지 계획을 짜면서 혼자 좀 뿌듯했다.
편의점에는 오늘따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가끔 담배 사러 오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무료해서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됐다. 다른 걸 좀 하고 싶은데 작년 말부터 가게에 CCTV를 진짜로 달아놔 딴 짓을 할 수도 없다. 점장님이 가끔 랜덤으로 돌려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젖힌 뒤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거 좀 했다고 목과 등이 뻐근했다. 이제 막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요한 선배.”
순간 문이 열리고 훈훈한 기가 훅 끼쳤다. 정진우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웬일이야? 이제 집에 가?”
“네. 근데 학교로 가게요.”
“학교? 이 시간에?”
“네. 오늘 잠도 안 올 것 같고 과제나 완성하게.”
정진우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눈가가 좀 붉었고, 항상 살짝 벌리고 있던 입술도 꾹 다물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걸어보려다 바로 손님이 들어와 그만뒀다. 내내 그렇게 없더니 정진우가 들어오자마자 두 명이 동시에 들어왔다. 크고 날씬한 몸이 카운터 앞으로 바로 다가온 손님에게 밀려나 구석으로 살짝 비키더니, 냉장고를 쳐다보며 그 근처를 서성인다.
손님이 주문한 담배를 건네고 계산하는 내 모습을 슬슬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괜히 손을 한 번 헛디디고 계산을 마쳤다. 짤랑 하고 문이 열렸다 닫혔다. 맥주 하나를 마저 계산하고 다시금 들리는 문소리를 듣다 정진우 쪽을 힐끔거렸다.
맥주 코너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더니 곧장 카운터로 온다. 형광등에 비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바닥을 응시하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가, 손에 가득 쥔 걸 보고 기함했다. 빨간 소주 여섯 병이었다. 진열해 놓은 걸 다 털어온 거다. 손이 커서 두 손에 여섯 병이 어렵지 않게 잡혔다. 쟤 대체 왜 저러지. 너무 궁금해져서 모른 척에 실패하고 입을 뗐다.
“너 뭔 일 있어?”
“네.”
아니라고 잡아뗄 줄 알았는데 바로 인정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어, 그래……. 뻘쭘하게 바코드를 찍었다. 클래식 여섯 병.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이었다. 혼자 한 번에 마시려고 저렇게 산거면 완전 많은 거고. 정진우는 등 뒤의 큼직한 가방을 앞으로 돌려 계산을 완료한 술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너 그거 들고 학교 가게?”
“네.”
“작업하면서 마시게?”
너 그거 걸리면 큰일 난다. 하려다가 우울한 정진우의 낯을 보고 말을 삼켰다. 다른 애들이 말리겠지. 속 편히 생각했다.
…….
잠시 망설이다가 정진우에게 말했다.
“나도 이따 알바 끝나고 학교 올라갈 거야.”
“안 피곤하겠어요?”
아, 내일 아침 수업 없나……. 하고 혼자서 납득한다.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이따 정 술 먹고 싶으면 말해. 예대 앞마당 나가서 한 병 정도는 같이 마셔줄게.”
“고마워요.”
안 그래도 피곤이 쌓여 있는데 술까지 마시면 계획해 놓은 작업은 말짱 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우울한 기색을 하고 있는 정진우가 안쓰러웠다. 그냥 얘는 좀 웃었으면 좋겠다. 내가 술을 같이 마셔준다고 바로 웃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진우를 배웅하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숙취해소제와 술 깨는 음료를 몇 개 챙겨 바코드를 찍었다. 그래도 친한 선후밴데 우울할 때 같이 술 마셔주고 그럴 수도 있지.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알바가 끝나자마자 봉지를 달랑거리며 학교로 천천히 걸었다. 가방을 학교에 다 두고 나와서 가뿐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피곤도 좀 가시는 것 같았다. 편의점 봉지만 달랑달랑 들고 스튜디오1의 문을 여니 영지가 졸린 눈을 한 채로 나무를 갈고 있었다.
“나 왔어. 다른 애들은?”
“몰라. 여기 있던 애들은 다 갔어.”
“조영재도? …정진우는?”
“조영재가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감. 진우? 그러게. 진우는 어디 갔지. 걔는 안 갔는데.”
말을 하는 영지는 비몽사몽간이었다. 혹시 몰라 같이 사 가지고 온 에너지드링크 하나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웃는다.
“너 혼자 있었어, 그럼?”
“어. 나도 이제 갈라고…….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손에 쥔 음료수를 원샷하고 기지개를 쭉 편다. 자리 정리를 시작하는 영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작업실 구석에 던져놓은 가방을 가져와 영지 의자에 내려놓았다.
“요한아, 나 아직 안 갔어.”
“……갈 거 아냐?”
넌 가끔 사람을 정말 할 말 없이 만든다. 중얼거린 영지는 아이고 그래도 우리 요한이 예쁘다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는 영지가 더 귀여워서 마주보고 같이 웃었다.
“선배 왔네요.”
뒤를 돌아보자 물기가 안 가신 낯을 하고 있는 정진우가 보였다. 세수라도 하고 온 모양이었다. 머리 끝자락이 약간 젖어 있는 걸 보니 샤워하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정진우를 이리저리 살피는 새 재빠르게 가방을 챙긴 영지가 등을 툭툭 쳤다.
“나 갈게 요한아. 무리하지 말고, 또 쓰러질라. 진우야 너도 고생해.”
“좀 바래다줄까?”
암만 씩씩해도 여자애라 걱정이 됐다. 영지가 됐다고 오구구 우리 요한이. 내가 너 때문에 산다, 하면서 내 머리를 한 번 더 헝클었다. 진짜 괜찮아? 했더니 택시 불렀다고 했다. 영지가 열어젖힌 채로 나가버려 활짝 열려 있는 문을 은근슬쩍 닫으며 정진우가 물었다.
“선배 언제 쓰러진 적 있어요?”
“아… 어. 작년에 과제 하다가. 좀 무리했나봐.”
“그때도 알바랑 과제랑 병행하다가 그랬죠.”
“뭐, 그렇지.”
잠시 안타까운 낯을 하던 정진우는 영지가 앉았다 간 자리에 놓여 있는 내 가방도 아랑곳 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작업 테이블에 엎드려 내 쪽으로 고개를 두고 나직하게 말을 잇는다.
“선배 작업할 거 많아요? 작년처럼 쓰러질 만큼?”
“그건 아닌데……. 이거라도 빨리 좀 끝내놓고 싶어서.”
“그럼, 제가 내일이나 모레 시간 맞춰서 도와줄 테니까 오늘은 나랑 술 먹어요.”
아니라고 거절했어야 했다. 나는 내 할 일을 미뤄놓고 술자리나 기타 노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진우에게 너무 약했다. 오늘 새롭게 알았는데, 우울해 보이는 정진우에게는 두 배로 약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더니 정진우가 나를 보며 푸스스 웃었다. 여기서 먹어도 돼요? 아무도 안 올 거 같은데. 해서 그것도 알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주위를 두리번대다 대강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안 보일 만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벽에 기대서 안주도, 대화도 없이 병나발을 불었다. 한참을 한 모금 남은 소주병만 찰랑찰랑 흔들던 정진우가 기나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수경이도 그렇고, 현주 누나도 그렇고.”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 여자 친구 때문에 이렇게 우울했나 보다. 나도 우울해져서 두 번째 병을 깠다. 친절하게 정진우의 것도 새로 따서 넘겨주었다. 정진우는 그 와중에도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냥.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같은 문제로 쫑이 나니까 제 문젠가 싶어요.”
자꾸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 답답했지만 내가 시원하게 문제를 알아봤자 더 우울해질 것이 뻔해서 가만히 있었다.
“처음 진지하게 만나보자고 했을 때부터 누나가 저한테 그랬어요. 자기는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않고, 이성은 친구든 뭐든 만나지도 않는다고. 저한테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너 누구 만난 적 없잖아.”
요 근래 정진우의 생활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주 3일을 과외 하느라 연락하고, 보는 데다가 수업도 거의 매일같이 겹쳐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저도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근데 누나가 생각하기엔 아니었나 봐요. 여자애들에게 과제 물어보는 거나, 애들이랑 같이 야작하는 거. 야식 시켜먹고 이야기하는 거. 다 포함되어 있는 거였나 봐요. 이 문제 가지고 처음부터 갈등이 있었어요. 저는 싸우고 싶지 않은데 어쩌다 보니 누나는 저한테 화내고 있고.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누구도 말을 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뭘 어떻게 잘못 행동한 건지 아직도 몰라요.”
정진우는 나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로 땅바닥을 바라본 채였다. 정진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정진우의 연애사를 모조리 알게 되었다.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제일 길게 만난 사람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던 한 살 어린 여자애. 다섯 달을 만났다고 했다. 똑같은 이유로 헤어졌고. 그 외에는 기간도, 과정도 모두 비슷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세 달.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자 친구들은 항상 만인에게 친절한 정진우를 탓했고, 여자 친구에게 올인하지 않는 그의 생활 패턴을 탓했다. 나는 그녀들이 조금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정진우를 애인으로 두면 불안해질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정진우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누구한테 연락이 왔는지, 여자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고, 물어보면 대답은 해 주지만 사생활에 관해 제가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깊게 관련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 눈치인 정진우에게 번번이 물어볼 순 없으니 언제 누구와 헤어지고, 누구를 다시 만나 사귀게 될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냥 선후배 사이일 뿐인 나도 이런데, 여자 친구는 얼마나 애가 탈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정진우는 자기의 짧게만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연애들을 언급하면서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어떤 것도 말해줄 수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누나랑은, 어떻게 된 거야? 얘기는 잘 끝낸 거야?”
“아니요. 오늘 만나자마자 저한테 쏟아붓고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저랑 더 만나면 속이 남아나질 않겠대요. 저한테, 자기 왜 만났냐면서. 만나는 동안 조금이나마 좋아하긴 했냐면서 물어보는데, 저도 진짜 나쁜 게 바로 대답이 안 나왔어요. 분명 예뻐서, 그게 좋아서 만난 건데, 대답이 안 나와서 나는 당황하고, 누나는 울고.”
최악이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분명 정진우는 헤어지자고 말할 때엔 그녀들에게 최악인 남자친구였을 거니까. 그냥 정진우의 손에 달랑달랑 걸려 있는 소주병에 내 병을 갖다 댔다. 쨍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최악인가보네. 선배는 가만 보면 배려가 넘치는 건지, 단호한 건지 모르겠어.”
“그건 아니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요.”
“진짜야.”
“알아요. 선배는 항상 솔직하니까.”
나직하게 아닌데, 중얼거렸다. 정진우는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술병만 비울 뿐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각자 세 병을 다 비웠다. 피곤한 몸에 술이 도니 몸이 어질어질했다.
“다 마셨네. 괜찮아요?”
“응. 아직 괜찮아.”
“그럼 좀만 더 마시자.”
“이제 없잖아.”
“우리 집 가서.”
정진우네 집에 가긴 싫었다. 술 취한 채로 들어가서 추태나 부릴 것 같고 그랬다. 술이 들어가니 나도 여기서 끊기는 아쉬웠고 그냥 여기서 먹던 거나 마저 먹고 싶었다. 망설이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멀뚱히 나를 올려보는 정진우의 말간 얼굴을 응시했다.
“너 우리 이러는 거 비밀이다 진짜. 걸리면 나도 죽고 너도 죽어.”
정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기다려, 하고 스튜디오를 나와 학생회실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학생회끼리 야작하다 먹으려고 영지랑 다른 선배들이랑 같이 구석에 박아뒀던 박스를 열었다. 소주와 보드카, 맥주가 박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드카는 마시면 내가 죽을 것 같아 소주만 챙겼다. 눈치채기 전에 채워놔야지. 내일 사가지고 올라와야겠다. 멍하니 생각하며 스튜디오2를 지났다. 작게 열린 틈으로 빛과 두런두런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선배 몇 명이 안 가고 작업 중인 것 같았다. 괜히 찔려 발소리가 안 나게 조심하며 조심조심 걸어 스튜디오1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나 심장 떨려.”
핸드폰을 보고 있던 정진우가 문소리에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소주를 한 아름 안고 있는 내가 웃겼던 것 같다. 괜히 쪽팔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소주병을 내려놓은 뒤 주저앉았다.
“너 오늘 원 없이 먹고 싶은 것 같아서.”
웃지 마, 하니까 더 웃는다. 눈꼬리에 눈물이 고여 있다. 말없이 소주병을 따고 정진우의 입가에 갖다 댔다. 더 이상 웃으면 이 자리는 이제 없는 거야. 내 손짓에 정진우가 알았다고 병을 받아들었다.
웃음기가 금세 가시고, 우리는 말없이 쭉쭉 술만 비웠다. 아, 취한다. 싶더니 까무룩 유지하고 있던 의식이 옅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진우와 서로 머리를 기대고 무언가 대화를 한 것 같았다. 언제 감았는지도 모르게 감겨 있던 눈을 떠보니 나는 정진우의 허벅지를 깔고 앉아 정진우의 입술을 열심히 빨고 있는 채였다. 멍하게 들어온 의식에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느릿하게 뒤로 빼고 물러났다. 벽에 기대 양팔을 늘어뜨리고 있던 정진우가 살짝 감고 있는 눈을 떴다. 속눈썹에 물기가 맺혀 아롱거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정진우는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었던 팔을 들어 내 허리, 가슴, 어깨를 스치고 턱과 목의 경계를 슬며시 감싸 안았다. 주변은 다 흐릿한데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는 정진우만 또렷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들렸다. 침으로 축축한 내 입가를 훑다가 뺨을 스쳐 시선이 마주친 건 순간이었다. 급격히 나를 끌어당기는 정진우에게 끌려 그대로 입을 맞댔다. 정진우의 도톰한 입술이 열리고 내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너무 가까워 흐릿하게 보이는 정진우의 얼굴을 애써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감각은 더 살아났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입술을 내준 채 놀라 굳어 있었더니 정진우가 내 입술을 이로 약하게 깨물었다.
“……아, 으―.”
“입 좀 벌려 봐요.”
정진우의 낮은 목소리에 허리가 찌르르 울렸다. 바르작대는 내 허리를 정진우가 움직이지 못하게 손으로 꽉 붙잡았다. 정진우의 혀가 내 입 안을 훑는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진우의 어깨 근처를 쥐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오줌이 마려웠다. 진짜 마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미칠 것 같았다.
정진우의 손이 내 허리를 스쳐 옷 속으로 들어와 척추를 훑었다. 척추 뼈를 손으로 더듬으며 내려오는 차가운 손과, 뜨거워 터질 것 같은 입술의 감각이 머리를 번갈아 가며 흔들었다. 안절부절못하고 들썩거리는 내 엉덩이에 뭔가 단단한 게 닿았다. 순간 뻣뻣하게 몸이 굳었다. 정진우의 어깨를 밀고, 그대로 밀려나가는 정진우의 젖은 입술을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눈으로 보이는 내 아래와, 엉덩이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사이좋게 거시기를 세웠구나.
정진우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자꾸만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나를 흐트러진 낯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풀린 게 영 맛이 간 것 같은데 시선은 델 것 같이 뜨거워서 얘가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일어나려 했더니 등에 닿아 있던 손아귀가 허리께를 꽉 쥔다.
“아, 아파 진우야……. 나 좀 일어날게.”
“왜요?”
왜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어서 떨어져도 모자랄 판에 이유를 묻는 정진우의 행태에 기가 찼다. 너는 이 상황이 민망하지 않니? 묻고 싶었지만 물으면 더 민망해질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일어나려고 하니 이번엔 양손으로 엉거주춤 들었던 허리를 잡아 주저앉힌다. 자꾸 밑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정신 좀 차려……. 집에,”
가자고 하는 말이 정진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정진우가 나에게 다시 입을 맞춰오며 내 손을 잡아 자신의 머리로 이끌었다. 벽에 비벼져 까치집이 된 머리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좀 쓰다듬었더니 정진우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또 티셔츠 속으로 들어와 내 맨살을 쓰다듬는 정진우의 손길과, 입술을 뗄 때마다 느껴지는 정진우의 숨. 그 모든 게 나를 어지럽혔다. 진작 술이 깨버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다른 것 다 제쳐놓고 일단 정진우와 살을 맞대고 있는 게 좋았지만 반대로 이 행위의 끝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스킨십에 영 집중을 못하는 게 느껴졌나 보다. 정진우가 붙어 있던 입술을 떼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약간 높아진 시선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진우의 눈가가 불긋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우야, 집에 가자.”
침착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쫙 갈라졌다. 정진우는 대꾸가 없었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턱 막힌 것 같이 답답했다. 나는 어떤 말이든 꺼내려 노력하고 있는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정진우가 처음으로 조금 원망스러웠다. 술을 왜 마시자고 해서. 왜. 나는 왜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고 싶었다. 황홀했던 시간이 지나자 앞으로의 일이 너무 무서웠다. 완전히 술이 깬 뒤의 정진우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 그게 너무 겁이 났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제 와서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정진우가 저를 향한 내 감정을 눈치챌까 초조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접점이 모두 사라지는 걸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몸을 일으킬라 치면 허리를 꽉 잡아오던 손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고이 놓여 있었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 먼저 몸을 일으켰다. 바지가 좀 답답했지만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쓰레기통 뒤에서 봉지를 찾아와 빈 병을 주워 담았다. 정진우는 가만히 기대 앉아 내가 하는 양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가자. 일어날 수 있겠어?”
“……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긴 뒤 비틀거리는 정진우를 부축해 예대 건물을 벗어났다. 저 멀리서 콜택시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정진우를 택시에 태우고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하며 문을 닫으려는 내 손을 정진우가 꽉 잡았다.
“같이 가요.”
“아니야. 나는 좀 걷고 싶다.”
잡은 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억지로 떼어내고 문을 닫았다. 올 때처럼 쏜살같이 사라지는 택시 꽁무니를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태 머리가 멍했다. 어떻게 걸어 온지도 모르게 사거리 횡단보도까지 걸어와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차가 쌩쌩 지나다니네. 오늘은 좀 쌀쌀하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집에 들어와 열쇠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반듯하게 개어져 있는 이불 위로 얼굴을 묻었다.
“…….”
거칠게 터지는 숨을 억지로 참았다. 쪽팔리게 눈물이 났다.
이불 위에 얼굴을 부비며 숨을 골랐다. 얼마나 그랬을까,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무거운 눈을 떠보니 사위가 캄캄했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핸드폰을 찾았다. 쭈그린 자세로 잤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핸드폰을 겨우 찾아 이리저리 눌러봤더니 먹통이다. 충전기를 꽂아 놓고 불도 켰다. 시계를 보니 오후 여섯 시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놀라 방 안을 왔다갔다만 반복하다가 핸드폰이 켜지는 소리에 부리나케 콘센트 앞으로 달려갔다. 잠금을 열어보니 메시지며 콜백이 우수수 쏟아졌다. 요한아 너 또 쓰러진 거 아니지? 수업 시작했는데 왜 안 와. 하는 동기들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속에서 정진우의 이름이 반짝였다.
[시간 되면 좀 이따 저녁때 봐요.]
보낸 시간을 보니 정진우도 기절해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정진우의 문자는 강력했다. 순식간에 나는 내가 수업을 쨌다는 것도 까먹고, 오늘 마감 전에 빨리 도면을 쳐서 넘겨야 한다는 것도 까먹었다. 또다시 핸드폰을 꽉 쥐고 방 안을 서성이다 마음먹고 다시 전원을 켰다.
[내일 수업에서 봐.]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답답한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 샤워도 하고, 밥도 먹었다. 밥알이 모래알 같았다.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기만 하다 결국 음식을 다 버려 버리는 아까운 짓을 했다. 마음잡고 급하게 얼린 숟가락을 부은 눈가에 댄 채로 도면을 치려 컴퓨터를 켰더니 옆에 모셔놓은 핸드폰이 반짝거렸다.
[그래요. 잘 자요.]
잘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한숨도 못 자고 수업에 왔다. 나도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진우는 나보다 더 일찍 도착해 미리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단둘밖에 없는 강의실에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 앞에 그대로 굳어 있던 내게 정진우가 선선히 손짓했다.
“여기 와 앉아요.”
로봇처럼 걸어서 정진우의 옆에 앉았다. 정진우가 내 옆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얼굴이 뚫릴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렬한 시선이었다. 나는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괜히 가방을 뒤지다 옆으로 내려놓고, 다시 무릎 위로 올리고. 애꿎은 가방만 계속 괴롭혔다.
“나 안 봐도 되니까, 어색해하지 마요.”
조금 까칠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정진우에게 향했다. 약간 충혈된 흰자가 반질반질 빛났다. 내가 자기를 바라보자 슬쩍 웃는다.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려 웅얼거리는 정진우의 등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따 얘기해요. 선배 얼굴 봤더니 피곤이 밀려온다…….”
내가 언제부터 정진우를 이렇게까지 좋아했지. 나 자신에게 물어봤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도 몰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정진우를 좋아하게 됐고, 모르는 사이 감정을 키워 나갔다. 정진우의 엎드린 등 옆에서 정진우의 깊은 숨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정진우는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정진우로 인해 내가 겪는 중인 미친 듯 널뛰는 감정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는 감정 변화가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진우를 만나면서는 나뭇잎이 굴러가도 꺄르르 웃는 사춘기가 찾아온 양 감정이 널을 뛰었다.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좋고 우울한 건 정진우를 좋아하니까,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키스했다고 울었던 건 정말 이상했다. 나는 평소에 슬픈 영화를 봐도, 슬픈 노래를 들어도 안타깝네, 슬프네. 항상 그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를 치르느라 바빠 막상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어제처럼 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우는 바람에 일어나서 씻고 거울을 봤을 때 흠칫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정진우를 엄마보다 더 사랑하느냐,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어제 나는 왜 그렇게 세상 다 산 듯 울었던 거지. 그냥 정진우랑 키스했을 뿐인데. 그건 외국 살면 인사같이 그냥 다 하는 거잖아. 여기까지 생각하다 이상한 합리화를 시도했던 내가 병신 같아져서 그만뒀다. 어제 그렇게 울었던 건, 그냥 쌓여 있던 21년 치 눈물을 뽑는 김에 다 뽑은 거라고. 그렇게만 결론지었다.
애매한 결론을 내니 이상한 허무감이 찾아왔다. 펜을 굴리다가 기말고사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교수님의 말씀을 공책에 받아 적었다. 어제 펑크 낸 게 조각이라 다행이었다. 조각 교수님은 출석에 관대하신 편이었다. 과제 잘하면 되지. 오늘 수업을 마지막으로 완성된 시험 스케줄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번엔 시험 운이 좋아서 겹치는 날도 없었고, 남은 과제만 잘해서 내면 성적은 괜찮을 것 같았다.
교수님이 말씀을 마치자 강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부스스 눈을 뜬 정진우에게 시험일정을 알려주었다.
“시험 범위는 여기부터 여기고, 괄호 넣기로 본대. 이 부분만 외우면 될 것 같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영 못미더워서 정진우가 베개로 사용한 책에 범위를 표시해 주었다. 정진우가 그건 됐다는 듯 내 손을 잡아 내리더니 가방을 싼다.
“선배 오늘 세 시까지 공강이죠. 나랑 커피 마시러 가요.”
“어. 점심은?”
“점심도 먹고.”
좀 멀리 가서. 빠르게 중얼거린 정진우가 핸드폰을 툭툭 건드렸다. 예, 안녕하세요. 여기 인문대 건물 앞인데요. 이야기하는 폼이 콜택시를 부르는 것 같았다. 슬슬 눈치를 보며 가방을 챙기니 전화를 끊고 내 팔을 잡아 일으킨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할래요, 먹고 나서 할래요.”
“……먹기 전에 하자.”
결국 카페부터 가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속이 쓰릴 것 같았지만 어차피 대화 주제도 속 쓰리는 주제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정진우가 택시를 타고 학교에서 좀 먼 동네의 이름을 댔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의 바다 속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카페에 도착해 정진우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내 맘대로 커피를 시켜 받아와 앞에 두고 앉았다. 먼저 들어오기 전에 정진우가 스치듯이 여기 커피가 그렇게 맛있대요. 했다. 남자 둘이 와 심각한 얘기를 나누며 앉아 있기엔 좀 간질거리는 인테리어라고 생각했으나 정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커피 진짜 좋아하니까. 눈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달각거린다. 정진우는 설탕이 들어간 음료는 종류를 불문하고 입에도 대지 않았다. 커피는 무조건 블랙커피였다. 커피가 안 받을 땐 차를 마셨다. 그동안 우리는 만나면 거의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정진우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형제가 있는지 따위는 몰라도 얘의 식성 하나는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그렇게 얼굴을 봤으면서, 그렇게 얘기를 많이 했으면서 나는 정진우의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게 하나 없었다. 이제 알 기회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차가운 잔을 잡고 있던 손이 곱아들었다. 어제만. 다른 거 말고 어제 새벽만 지워버리고 싶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는 와중에 의자 빼는 소리가 들렸다. 지레 놀라 펄쩍 뛰려는 몸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내 어깨가 떨리는 걸 정진우도 본 것 같았다. 잠시 빨대를 만지작거리다 곧바로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팔을 잡았다.
“다른 거 다 빼고, 저는 선배랑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요.”
정진우의 눈이 우수에 차 있었다.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옅게 쌍꺼풀진 눈이 한 번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건 곧장 그러마, 하고 싶을 정도로 죽이는 호소력이었다. 잠시 눈을 맞추다 고개를 다시 아래로 숙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다행이에요. 저는 혹시, 선배가 저를… 어색해하고 멀리할 것 같아서…….”
한숨도 못 잤어요. 마른세수를 하는 정진우의 귀 끝이 붉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좀 창피한 것처럼 보였다.
“너, 기억은 나? 전부?”
“……네.”
“어디서부터?”
“처음부터 다요. …선배는요?”
“어, 나는…….”
말을 고르는 동안 기억 안 나는구나. 중얼거린 정진우는 다행이에요. 하고 덧붙여 말했다. 대체 우리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물어봐봤자 분위기는 더 어색해질 거였고, 정진우는 대답을 피할 것 같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얼음이 녹아가는 커피를 바라보던 정진우가 입가를 매만졌다.
“선배가, 스킨십 같은 거에 민감한 것 같아서.”
“내가?”
“네. 그런 것 같았어요. 어쨌든 그래서, 나랑 그, 키스했다고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하느라…….”
“그런 생각 안 했어.”
“네. ……알아요. 그것도 다행이에요.”
나만 생각하느라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정진우가 나보다 더 긴장하고, 초조해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대체 쟤가 왜 저러지. 내가 기억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다 정진우를 조금 떠보기로 결정했다.
“근데, 그……. 왜 한 거야?”
정진우가 커피를 마시다 행동을 멈췄다. 어디까지 기억해요? 하고 물어와 그냥, 대충. 잘 기억은 안 나. 하고 얼버무렸다. 정진우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잘근잘근 씹어서 빨개진 입술을 열었다. 잠시 어제 느꼈던 저 입술의 감촉이 생각났다.
“그냥, 그런 얘기 중이었고,”
그런 얘기가 어떤 얘기지. 궁금했다. 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했다.
“응.”
“평소에도 생각했어요. 선배는 인상이 좀, 쉽게 다가가기는 힘든 인상이잖아요. 근데, 입술만 묘하게 섹시해서…….”
“아…….”
민망함에 얼굴을 슬쩍 쓰다듬었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를 슬쩍 살핀 눈이 이내 커피 잔을 응시했다.
“나도 다른 사람 상대로는 이런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죠. 미안해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애원하듯 말하는 정진우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이상하게, 하고 말하는 정진우의 음성이 계속해서 귓가를 때렸다. 키스 한 번 했다고 착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근데 자꾸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진우는 나랑 키스한 일이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섹시하다고 생각한 것도. 목이 타서 커피를 쭉 들이켰다.
“나는, 그냥 계속 없던 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빨대 끝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천천히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말을 꺼냈다.
“나도, 너랑 멀어지는 거 싫어서. 고민했어.”
오므리고 있던 다리를 피자 정진우의 신발 끝이 살짝 맞닿는 게 느껴졌다. 그래. 이 정도 거리가 적당했다. 발끝이 닿아도 화들짝 놀라며 피하지 않는 거리. 그냥 발이 닿았구나, 할 수 있는 거리.
“없던 일로 할 순 없겠지만, 티 내지 않을 순 있겠지. 지내다 보면 완벽히 어색하지 않게 되는 날도 올 거고.”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웃으면서 농담할 수 있는 날도 올 거야. 그때까지 너랑 이렇게 지내고 싶다.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었다. 우리는 고작 한 학기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안 사이였다. 앞으로, 쭉. 한 학기가 아니라 1년, 2년, 3년……. 오랜 시간 동안 이대로 지내다 보면, 너랑 더 오래오래 지내고 싶어. 아무 감정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잘 견뎠다. 지금은 멋대로 이리저리 튀는 감정에 당황하기 바쁘지만 기본적으로 둔감하고, 잊어버리는 것도 잘했다. 지금은 정진우가 너무 좋아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정진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족했다.
“그렇게 저 혼자 택시타고 집에 와서 한 끼도 못 먹었어요. 이제야 배고프네.”
정진우가 배를 문지르며 슬쩍 웃었다. 마주 웃어주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하는 말에는 고개도 끄덕였다. 정진우는 미리 알아둔 곳이 있다며 나를 끌고 골목골목을 지났다. 이런 저런 말도 걸었다. 선배랑 오고 싶었어요. 아까 그 카페도, 지금 가는 데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한참 걸어 도착한 작고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서 정진우는 육회비빔밥을 시키고, 나는 냉면을 시켰다.
면발이 질겨서 씹어 넘기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목이 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