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6/12)

Chapter 2.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서 일을 했다. 잠은 못 잤지만 평소보다 몸이 가뿐했다. 정진우가 오고 나서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페이스를 찾으니, 우리 팀 사람들 모두 한마디씩을 건넸다. 요한 씨, 기분 좋은가봐. 정도의 인사말이었다. 웃으면서 대꾸하다보니 정말로 기분이 좋아진 것도 같았다.

점심을 먹고 흡연자들끼리 모여 화단을 찾았다. 둘러서서 담배를 피웠다. 어제는 꽤 춥더니 오늘은 날씨가 훈훈했다. 외투를 벗어 팔 한쪽에 걸쳤다. 눈이 퀭한 하선재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하선재가 나를 힐끔거렸다.

“창피하지?”

하선재의 귀 끝이 붉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진창 먹고는 다음날이 되면 귀만 빨개져서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모르는 척해도 창피한 것이다. 팔꿈치로 하선재를 툭툭 쳤다. 내가 귀찮은 건지 몸을 돌려 이리저리 피한다. 우리가 하는 양을 보기만 하던 신예림이 웃었다.

“요한 씨는, 진짜 선재 씨 놀리는 재미로 사나봐.”

“내가?”

억울함을 담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내 옆에서 여자 친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승원 형도 가세했다.

“예림 씨 몰랐어? 요한이가 선재 죽고 못 살아.”

입을 딱 다물었다. 귀만 빨개진 하선재마저 싱글싱글 웃으며 나에게 달라붙어 왔다. 형 내가 그렇게 좋아? 애교스럽게 물어보는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금세 정색하고 떨어진다. 입이 쭉 나와서 중얼거리는 게 귀여웠다. 놀리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건 항상 들어오곤 했던 말이었다. 두 개비째의 담배에 불을 붙인 하선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소리 냈다.

“어제 저랑 요한 형이랑 술을 마셨는데요.”

“요한이랑? 너 어제 그래서 나한테 연락했어?”

“요한 형이 연락했었어요? 어쨌든, 어제 저희 누구랑 같이 마셨게요.”

“누구랑 마셨는데?”

담배를 비벼 껐다. 먼저 들어갈게요. 하고 혼자 안으로 들어왔다. 좀 이상하게 보겠지만 상관없었다. 일요일이면 싫어도 봐야 하는데, 안 보는 날까지 정진우의 얘기를 듣고 싶진 않았다.

로비를 지나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전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벤치에 앉아 나란히 걸린 회화 두 점을 감상했다. 갑자기 캔버스를 잡아 뜯어 그대로 부숴버리고 싶은, 폭력적인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자조적인 웃음이 따라왔다. 집에 있는 것도 못 버리는 주제에 뭘 부숴. 벤치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시선 끝에 나무가 매달린 와이어가 걸렸다. 와이어 옆으로 정진우의 고개 숙인 모습이 떠올랐다. 손을 들어 잔상을 쫓았다. 얘기 듣기 싫다고 들어와서 온다는 데가 여기다. 정진우의 수많은 생각들 사이에 누워 있는 꼴이 참 어지간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퇴근하기 전 간단히 기획팀 회의를 진행했다. 중요한 안건들을 공유했다. 월요일에 진행할 전시 오픈 파티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다. 이번 주는 모두 주말 출근이 확정이었다.

펼쳐놓았던 노트를 접으며 큐레이터님이 말했다.

“일요일 리허설은 나도 가요.”

고개를 끄덕인 뒤 체크해놓았다. 그대로 각자 자리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정진우와 관련된 스케줄을 정리했다. 일요일 열한 시. 리허설을 무리 없이 진행하려면 정진우가 오기 전에 발에 걸리는 게 있는지 내가 먼저 한 번 살펴야 했다. 노트에 리허설 관련 주의사항을 적어 넣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잘 살아 있는지 그것만 알아도 좋겠다 싶을 때는 죽어도 못 찾겠더니. 타이밍이 아주 지독했다.

일을 마무리한 뒤 조금만 기다리라는 승원 형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들어왔다. 그냥 자긴 아쉬워 맥주를 한 잔 했다. 한 캔을 다 비워갈 때쯤 피곤에 쩐 얼굴을 한 형이 말했다.

“어제 융이랑 선재랑 셋이 술 마셨다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말라비틀어진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들어가고 선재가 아주 자랑을, 자랑을.”

“그래…….”

“근데 선재는 융이 우리 후배인 줄 모르는 것 같던데?”

대꾸 없이 오징어만 씹었다. 너무 질겨서 한 번에 끊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성질이 났다. 씹던 오징어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융이랑 서로 아는 척 안 해. 그러기로 했어.”

“아. 그러냐?”

그럼 나도 융한테 아는 척하지 마? 물어오는데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형은 퍽 아쉬운 눈치였다. 좀 미안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형한테 너무 매정하게 군 것 같았다. 식탁 위에 널브러진 오징어 다리들을 모으며 말했다.

“형은, 괜찮겠지. 마음대로 해. 말 걸면 잘 받아줄 거야.”

“그래? 너 진짜 융이랑 그냥 안 친했던 거야? 뭐 싸우거나 한 건 아니지?”

“응, 그냥.”

앞에 놓인 짧은 다리를 한 번 더 씹어 봤다. 역시 질겨서 끊어지지 않았다. 고무 같았다.

“융이랑 그렇게 서먹해?”

“응. 이 오징어 언제 샀지?”

“몰라. 기억 안 나.”

모아놓은 오징어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중얼거렸다. 오래된 건 다 버려야지. 안 그럼 질기고, 상하고, 맛없어. 맞아, 우리 언제 냉장고 정리 좀 하자. 승원 형이 맞장구 쳤다.

정진우가 입국한 뒤부터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강행한 사람들의 안색이 푸르죽죽했다. 그래도 내일 오픈 파티만 무사히 마치면 좀 널널해지니까. 신예림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담배 한 대 피울까? 제안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모니터 앞에 앉아 중얼거리는 신예림을 조금 안쓰럽게 보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정진우가 도착하기 전에 바닥 청소를 해 놓을 요량으로 청소도구를 챙겼다.

매끈한 전시장을 지나, 돌계단, 흙길을 샅샅이 살피며 쓸었다. 화단 앞에서 빗자루를 내려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좀 남으면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했는데 도착할 때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계단 구석에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로비로 들어서니 큐레이터님이 내려와 있었다.

“청소했어?”

“네. 혹시 발에 걸리는 거 있을까봐.”

그대로 큐레이터님과 나란히 서서 정진우를 기다렸다. 열한 시 조금 넘어 키가 큰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 유리문을 밀며 들어왔다. 큐레이터님이 약간 앞서 걸었다. 이미 얼굴을 마주한 니시카와와 정진우에게 한 번씩 인사한 뒤 여자의 앞에서 악수를 청한다.

“반가워요 카트린.”

“반가워요, 진선. 미술관 외관이 참 아름다워요.”

악수를 마친 두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한 걸음 다가가 카트린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코디네이터 서요한이에요.”

“아, 요한. 반가워요.”

메일로만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가 말하는 투가 생소했다. 서면상의 말투는 굉장히 딱딱하고 이지적이어서 말하는 것도 비슷하리라 예상했는데, 아주 다정하고, 나른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정진우와 굉장히 비슷한 말투였다. 카트린과 악수하며 정진우를 힐끗 바라봤다. 니시카와 옆에 서서 우리를 멀거니 보고 있었다. 어깨가 축 처진 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정진우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와중에 마주잡은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카트린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융이 고국에서 여는 첫 전시여서, 어떨지 아주 궁금해요.”

“아, 그래요.”

자연스럽게 잡은 손을 떼어내며 카트린이 흘러가듯 말했다. 당신도. 잘못 들었나 생각하다 반문할 기회를 놓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앞서 걷는 무리를 뒤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정진우와 시선이 맞았다. 피하지 않았다. 잠깐 정진우의 걸음이 느려지나 싶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깨가 맞닿았다. 역시 피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정진우가 옆으로 조금 떨어졌다. 숨 막히는 공기가 우리 사이를 휘감았다. 지레 겁먹고 피하지 않을 것이다. 틈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입 안을 질끈 물었다.

생명의 나무 앞에 멈춰선 정진우가 짐을 풀어 정리했다. 그 옆에서 니시카와가 카메라 장비를 챙기는 걸 도왔다. 큐레이터님과 카트린은 주변 설치물을 보며 이야기 중이었다. 외투를 차곡차곡 접어 내려놓던 정진우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휙 벗었다. 무심결에 돌아본 시야에 상체를 가득 덮고 있는 문신이 한가득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문신을 유심히 살폈다. 이미 알고 있는 옆구리에서 갈비뼈의 커다란 문양을 지나 가슴께에 눈을 멈췄다. 길게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숫자를 읽으려는데 갑자기 정진우가 몸을 돌렸다. 바지와 신발, 양말을 마저 벗어놓고 몸을 푸는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잘 짜인 등 근육 위로 뭔지 모를 그림이 꿈틀댔다. 한참 몸을 풀던 정진우가 말했다.

“시작할까요.”

퍼포먼스는 관객이 정진우의 등을 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등에 새겨진 문신이 자꾸 눈을 괴롭혔다. 의미 모를 숫자들이 다양한 그림 위를 지나다녔다. 슬쩍 머리를 털었다. 오랜만에 실제로 본 정진우의 몸이 자꾸 신경에 거슬렸다.

결국 흙바닥에 입 맞추던 정진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킬 때까지, 바보같이 서 있기만 했다. 카트린이 정진우에게 성큼 다가가 들고 있던 카디건을 맨 어깨에 걸쳐주었다. 당케. 정진우가 약간 흘러내린 카디건을 추켜올리며 무언가를 빠르게 말했다. 카트린이 대꾸하며 정진우의 카디건 앞섶을 여며주었다. 눈빛이 다정했다. 문득 외딴 섬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어땠어?”

큐레이터님이 나지막하게 물어오는 말에도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정진우가 뭘 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성은 알고 있었지만, 퍼포먼스라는 게 때마다 느낌이 다르기 마련이었다. 잠깐 내 대답을 기다리던 큐레이터님이 중얼거렸다. 잘 팔리겠는데.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이 밀려왔다.

시작점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 정진우를 기다렸다. 카트린과 큐레이터님은 계속해서 내일 모레 공식적으로 외부 오픈할 전시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옷을 다 갖춰 입은 정진우가 내 옆에 섰다.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외투 안에 숨은 상반신을 흘깃거렸다. 문신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색 바랜 그림을 휘감은 숫자들을 생각하다가, 이어서 맨몸 위를 감싼 카디건을 여며주던 여자의 손이 떠올랐다.

정진우의 느린 숨소리가 들렸다. 정진우의 옆에 서 있는 게 급속도로 부담스러워졌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랐다. 내 바람이 무색하게 이야기를 마친 큐레이터님이 점심을 제안했다.

“이 근처에 맛있는 한식집이 있어요. 꽤 걸어야 하지만, 날도 좋고. 어때요?”

카트린과 니시카와가 반색했다. 정진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 혼자 빠진다곤 할 수 없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깐 사무실에 들러 외투를 챙겨서 식당까지 걸었다. 평소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곤 했던 곳이 아니었다. 빵빵거리던 차 소리가 어느새 끊기고, 한옥이 즐비한 골목이 나타났다. 낯이 익었다. 미간을 찌푸렸다. 간간히 이어지는 이야기에 대꾸하던 정진우가 말했다.

“혹시 이 코너 돌면 바로 있는 한정식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진우 씨 여기 알아요?”

“한국에 있을 때 이 근처 작업실에서 일했어요. 황신연 작가라고,”

“아! 그 작가 작업실이 이쪽에 있었어?”

“네. 이 동네 별로 안 변했네요. 지금도 여기서 작업 하실지는 모르겠어요. 작가님 본 지 좀, 돼서.”

“그래요? 진우 씨랑 황신연 작가랑 인연이 있었구나. 안 본 지 얼마나 됐어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한, 4년 됐나 봐요. 이어지는 정진우의 말을 듣다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며칠 전 정진우와 나눴던 얘기가 머릿속에 울렸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 말이, 정말이었다. 나에게 소식을 못 전한 게 아니라, 안 전한 게 맞았다. 바닥을 노려보았다. 속이 뒤틀렸다.

도착한 한정식집의 외관을 훑었다. 흐릿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정진우가 자취방 앞에서 키스해온 날, 우리는 이 길을 걸었다. 정진우가 사라지고 난 뒤로 입대하기 전까지 혼자 몇 번을 더 찾아 왔었다. 우리 미술관과 여기가 이렇게 가까웠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나 혼자 조용한 게 이상했는지 큐레이터님이 지나가듯 물었다. 요한, 어디 안 좋아?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주문한 점심 정식이 나오고,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밀어 넣은 반찬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그 위로 쌓이는 것을 반복했다. 가끔 맞은편에 앉은 정진우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맞추면 욕이 나올 것 같아 숟가락만 움직였다.

식사를 마친 뒤 곧장 나온 후식을 앞에 두고 오픈 파티에 관해 한참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일 파티에는 미술관 VIP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작가들, 정재계 인사들도 꽤 참석할 예정이었다. 젊은 작가의 전시가 이 정도의 화제성을 띠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 미술계가 얼마나 정진우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요 며칠간 관장님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카트린도 파티에 기대가 큰 것 같았다. 내일 진행 스케줄에 관해 어느 정도 의견교환을 마무리하고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좋지 않았다.

고즈넉한 길을 벗어나 도착한 차도에서 큐레이터님과 나란히 섰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마치고 등을 돌렸다. 조금 걷던 큐레이터님이 내 팔을 살짝 잡았다.

“얼굴이 창백하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 그냥 속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괜찮아요. 살짝 웃었다. 아무래도 욱여넣은 음식이 얹힌 것 같았다. 들어가서 바로 소화제부터 먹어야지. 파티가 내일인데, 오늘은 아프다고 빠질 수도 없었다. 큐레이터님이 안쓰러운 표정을 했다. 괜찮아요. 재차 얘기하고 길을 재촉하려는데 뒤에서 급한 숨소리가 들렸다.

“저, 잠깐 코디님이랑 따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진우 씨? 요한 씨랑?”

“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천천히 이야기하고 와요.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큐레이터님의 뒷모습을 보다가 정진우의 손에 잡힌 팔을 거칠게 빼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세요.”

정진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단한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잡아놓고 물어보면 말을 삼키는 건, 거의 습관같이 보였다. 정진우와 둘이 될 때마다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니 이젠 지겨웠다. 미식거리는 속을 잠재우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몸을 돌렸다.

“황신연 작가가 4년 전쯤 잠깐 베를린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저에게 카트린을 소개시켜 줬어요. 그래서 지금 에이전시와 계약하게 된 거예요.”

“…….”

“그때도 정말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황신연 작가랑 언제 연락을 했든, 우연히 만났든 뭘 했든 이제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

“요한 선배.”

“아닌가요.”

잠시 말을 잃었던 정진우가 어깨를 세게 잡아왔다. 몸이 억지로 정진우에게 돌려졌다. 속이 크게 요동쳤다.

“저는, 한국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할 생각 없었어요. 독일에 있는 동안 만약 조금이라도 한국에 관계되면,”

정진우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신물이 올라왔다.

“자꾸 돌아오고 싶어지기만 할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제가 선배 그냥 두고 간 거 맞아요. 그래서 연락도 안 하고, 찾지도 않았어요. 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어요. 이번에 선배 안 만났으면 지금까지 살았던 대로 쭉, 그냥 살았겠지.”

“잠깐, 손 좀,”

“저는 어땠냐고 했죠. 왜 그랬냐고 했죠. 처음엔, 그냥 도망가고 싶어서. 그래서 도망쳤어요. 스물하나에 독일로 가서 어영부영 시간이 지났고, 선배 생각이 나도 연락할 수가 없었어요. 선배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 내가 뭐라고 해야 하지. 무서웠어요.”

“잠깐 놔 봐요,”

“제정신을 차린 뒤론 내일 하자. 말없이 두고 멀리 와버려서 미안하다고, 그것만 얘기하자. 내가 밉다고 하면, 받아들이자. 하루, 이틀 미루고, 그게 일 년이 되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어요. 한국 와서도 선배 찾을 생각 없었어요. 근데, 선배가 내 눈앞에 나타났잖아. 내 눈앞에,”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정진우를 떠밀었다. 근처 전봇대를 잡고 속에 있는 걸 모두 쏟아냈다. 음식을 게워내는 와중에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구역질을 반복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숙였던 허리를 들어올렸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조금이 아니었다. 단단히 체한 것 같았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정진우가 내 옷깃을 잡아왔다. 바로 뿌리쳤다. 젖은 입가를 대충 문질러 닦았다. 빨리 미술관으로 돌아가 양치하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있었으면 그때 바로 얘기했어야지.”

“…….”

“네가 너무 힘들다고, 어디든 도망가고 싶다고 나한테 말하면, 내가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릴 줄 알았니.”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속이 아직 답답했다.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팔로 허벅지를 짚었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근데, 너 한순간에 혼자 남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해 봤어? 내가 그런 일을 딱 두 번 겪었는데,”

“…….”

“엄마는 예고라도 하고 떠났지. 넌 예고도 없었어.”

하하. 웃었다. 정진우는 나보다 더 체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진우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몇 시간 전의 카트린이 그랬던 것처럼, 벌어진 앞섶을 여며주었다.

“내가 네 앞에 이렇게 나타나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정진우의 야상에 달린 후드를 정리했다. 하얗고 마른 볼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확인했다.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떠나 놓고 이제 와서 너는,”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한숨을 깊게 쉬었다. 뭐라도 정진우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정진우에게 단호하지 못했다.

“내일 보자. 못 볼 꼴 보여서 미안하다.”

미술관으로 돌아와 변기를 잡고 한참을 더 토했다. 할 일도 많은데.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봤다. 차가운 물을 맞은 얼굴이 핼쑥했다. 피곤했다. 쉬고 싶었다. 내일 오픈 파티만 어떻게든 끝내면 그래도 시간이 나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주물렀다. 하루만 좀 버티자. 그러고 나서 생각하자.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큐레이터님에게서 언제 오냐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금 가요. 메시지를 보내고 사무실로 걸었다. 빈속이 계속해서 울렁거렸다.

* * *

몇 주간 상주 직원들을 제외하곤 한산했던 미술관이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외부에 딸린 정원부터, 전시장, 로비 할 것 없이 나직한 대화소리로 공간이 가득 찼다. 벽에 기대서 한 손에 초대장을 들고 하나둘 들어오는 사람들을 의미 없이 훑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옷차림이 고급스러웠다. 함께 있던 하선재는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술에 관심 많은 부모를 둬 어릴 때부터 작가며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과 친목을 다져 와서 그런지, 아는 사람도 많았다.

하는 일 없이 벽에 기대 있자니 무료했다.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속이 좀 힘들기도 했다. 어제 다 토해내고부터 흰죽 한 사발 먹은 게 다였다. 그렇게 먹고 미친 듯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일을 마무리한 뒤 쉬기도 애매해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다 슬금슬금 나온 게 한 시간 전이었다. 해가 완전히 진 바깥에선 하얀 백열등이 열심히 빛을 내뿜고 있었다. 커다란 창 너머 바깥 풍경을 응시하다 몸을 돌렸다. 잠깐 사무실에 들어가 몸 좀 뉘여 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천천히 비상구 계단 쪽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하선재가 나를 불렀다.

“형!”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선재는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과 함께였다. 모르는 척하고 가던 길 갈까. 잠깐 망설이는 사이에 키가 커다란 남자와 눈이 맞았다. 엷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까닥인다. 어쩔 수 없이 마주 인사했다.

“반가워요, 요한 씨. 잘 지냈어요?”

하선재를 한 팔에 매달고 빠르게 다가온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큰 손이 가볍게 흔들렸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악수했다. 뜨겁고 메마른 손바닥이 내 손을 꽉 죄여왔다. 잡힌 손에 힘을 줘 억지로 떼어냈다. 버석한 손바닥의 감촉을 털어내려 떼어낸 손을 쥐었다 펴는 걸 반복했다.

“오랜만이에요 강 작가님.”

“또 그러네. 이름 불러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이름 부르죠.”

저는 요한 씨랑 좀 친해지고 싶은데. 유려한 말에 웃고 말았다.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자는 좀, 부담스러웠다. 옆에 있던 하선재가 맞아, 맞아. 둘이 동갑인데 아직도 어색하네? 하고 맞장구 쳤다. 하선재의 하얀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선재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작가들을 좋아하지만, 그중 제 또래의 작가를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남자도, 정진우도. 작품이 좋은데 거기에 외모까지 훌륭하니, 하선재의 눈이 빛나는 것도 당연했다. 남자가 하선재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지며, 볼우물이 깊게 파였다. 찌푸려지려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슬슬 문질렀다.

“일 년 만인가요?”

“예. 그 정도 된 것 같아요. 뉴욕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전시 끝나고 바로 갔다가, 올해 여름에 다시 왔어요. 돌아오자마자 연락 드렸는데, 못 보셨나 봐요.”

못 봤다. 기억이 안 나는 걸 수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따로 저장해놓은 번호가 극히 적어서, 모르는 번호로 왔거나 봤는데도 출처를 모르겠는 메시지는 모아 놨다 한 번에 지워버리기를 반복해 왔으니 생각이 안 날 수밖에 없었다. 좀 미안해져서 눈을 내리깔았다. 남자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 요한 씨한테 내 번호 없겠네. 작년 전시했을 때부터 그대로인데.”

“그게,”

“뭐, 좋아요. 다시 알려주면 되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핸드폰 좀 줘 보라고 재촉하는 손에 미적미적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번호를 저장한 뒤 이름까지 입력한다. 저예요. 앞으로는 연락하면 받아 줘요. 액정에 뜬 이름을 훑고 주머니에 넣었다. 강 현. 작년부터 시작한 우리 미술관의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젊은 작가전’ 타이틀을 걸고 전시를 한 첫 번째 작가였다. 두 번째는, 내일부터 열리는 정진우의 전시였고.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작가의 의전을 모두 맡아 하게 된 셈이다. 강현이고 정진우고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셋이 둥글게 선 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강현은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이제 가 본다고 할까, 입을 열려는데 하선재가 선수를 쳤다. 형, 나 잠깐 아는 사람 좀 보고 올게. 둘이 얘기 좀 하고 있어요. 바람같이 사라지는 하선재의 등을 망연히 바라봤다. 내 표정에서 티가 좀 났는지 강현이 크게 웃었다.

“요한 씨는, 어떨 땐 저보다 어른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애 같아. 잠깐 호흡을 멈췄다 나직하게 건네는 말에 귓가가 뜨끈해졌다. 좀, 싫은 티가 많이 났나. 얼굴을 한 번 쓸었다. 사실 강현은 좋은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든 가볍게 웃어넘기고, 급하지 않았다. 눈치도 빨랐다. 내가 배우고 싶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둘이 있기엔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기도 했다.

“작년 이맘 때였나요, 요한 씨랑 마지막으로 술 한잔했던 게.”

이런 면이.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강현이 내 옆에 조금 붙어 섰다. 작년 이맘때가 맞았다. 정진우의 전시 일정이 정해지고, 막 정진우 측과 컨택을 시작했을 때였다. 심란한 마음에 누구라도 붙들고 술을 진창 마시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당시 의전을 맡고 있었던 강현과 마시게 되었다. 그날 나는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강현은 정진우와 조영재 이후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세 번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예민한 건지, 술 마신 뒤로 묘하게 변한 강현의 태도에 거리를 두고 전시가 끝난 뒤 바로 번호를 삭제해 버려 볼 일이 없었다. 하선재를 통해 뉴욕으로 돌아간 것까지만 들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마주치니 마음이 불안했다. 꼭 약점을 잡힌 것같이 주눅 드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내 옆으로 슬금슬금 붙어오던 강현이 은근슬쩍 팔꿈치를 잡아왔다. 동시에 중앙 문 쪽이 약간 술렁였다. 잡힌 팔을 빼낸 뒤 고개를 입구 쪽으로 돌렸다. 까만 니트 위로 두꺼운 가죽 재킷을 걸친 정진우가 카트린, 니시카와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작가인데도,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 왔다. 희미한 미소를 걸치고 들어오던 정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카트린에게 뭐라고 속삭이던 하얀 얼굴이 점점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강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융 작가님? 안녕하세요.”

나에게로 곧장 다가오던 정진우가 멈칫거리며 강현을 살폈다. 키도, 체격도 비슷한데 피부색이 너무 극과 극이라 그런지 마주 보고 선 둘의 인상이 극명하게 달랐다. 각자의 작품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어딘가 처연하고 곧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희미한 인상을 주는 정진우의 작품과는 다르게 강현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작업을 즐겨 했다. 강현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정진우가 손을 마주잡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란에서 작품 하게 된 융입니다.”

“강 현입니다. 평면미술 위주로 활동 중이에요.”

“아, 뉴욕에서 활동하시는.”

“네. 뉴욕에서 얼마 전에 전시하셨죠. 보고 싶었는데, 그때 제가 한국에 있어서. 아쉬웠어요.”

정진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시선을 나에게로 고정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분위기가 두 배로 불편해졌다. 사무실 좀 들어가 보면 안 되나. 고민하며 등 뒤로 와 닿는 벽을 슬쩍 만져 보았다. 우툴두툴한 콘크리트 질감이 손에 닿았다. 정진우의 시선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거친 벽을 계속해서 만지작댔다.

“서 코디님과는 어떻게,”

“저도 작년에 란에서 전시했었어요. 요한 씨가 많이 도와줬는데 그때 인연으로.”

“요한 씨요…….”

한 쌍이던 시선이 두 쌍으로 늘어났다. 나보다 키가 큰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나에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주 부담스러웠다. 한참 시선을 받아내다 헛기침을 했다. 덩치도 큰 남자들이 왜 이렇게 붙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뒤로 돌렸던 팔을 들어 둘을 좀 밀어내고 말했다.

“저는 사무실에 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두 분이서 이야기 잘,”

말하는 도중에 정진우가 팔 한쪽을 잡아 왔다. 손목을 꽉 쥔 채로 정진우가 강현에게 말했다.

“제가 코디님께 볼일이 있어서요.”

“요한 씨랑 무슨 볼일이,”

“……작가님이랑은 관련 없는 일인데.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강현이 나와 정진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짙게 파여 있던 볼우물이 잠시 흐려지나 싶더니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독일에서 입국한 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아는데, 그새 많이 친해졌나 봐요.”

“네, 뭐.”

“요한 씨가 참 곁을 안 내주는 사람인데, 신기하네요.”

내가 곁을 안 내준다는 소리는 태어나서 지금 처음 들어봤다. 뭐라 반박하려다가 할 말도 없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강현에게 거리를 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진우의 얼굴을 흘깃 살폈다. 미간이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가보죠. 여기 계속 계실 생각이시면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곧장 잡은 팔을 끄는 정진우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뒤를 돌아보니 강현이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살짝 손을 흔든다.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중에 보게 되면 따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미술관 뒤편 화단까지 나를 끌고 온 정진우가 잠깐 시계를 확인했다. 행사의 본격적인 시작은 8시부터였다. 관장님의 인사와 함께 정진우의 간단한 작품 소개가 있을 예정이었다. 시간을 재차 확인하던 정진우가 한숨을 깊게 쉬었다. 잡힌 팔을 빼내어 문질렀다. 손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처음 본 작가한테 그게 무례하게 무슨 짓이야.”

“강현이랑은 자주 보나 봐요.”

“뭐?”

“많이 친해 보이던데. 아니에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렸다. 여기까지 다짜고짜 사람을 끌고 와서 할 말이 저거라니. 애같이 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치지도 않고 화가 솟았다. 정진우를 마주할 때면 항상 이랬다. 어이가 없다가, 화가 났다가, 안쓰러웠다가,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흐름에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정진우와 다섯 손가락에도 못 미칠 만큼 만나 오면서 닳고 닳아온 신경 줄을 겨우겨우 잡았다.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짚었다.

“그만 좀 하자 진우야.”

“…….”

“나 좀 도와달라고, 그랬잖아. 다시 한 번 말할게. 부탁이다. 제발 나 좀 알아서 잘살게 도와줘. 네가 시도 때도 없이 이러는 거, 정말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정말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숨이 막혀.”

“…….”

“한국 와서 나 안 찾을 생각이었다며. 그냥, 그 마음으로 살아.”

정진우의 마른 팔을 잡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안쓰러웠다.

“이게 무슨 뒷북이냐. 너도 뭔가 많이 힘들긴 했나본데, 네가 설사 나한테 어떤 감정을 아직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거 다, 우리가 끝을 이상하게 내서 생긴 미련이고 집착이야.”

“나는,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말을 멈춘 정진우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긴 손가락이 얼굴을 덮었다. 제 얼굴을 짙게 쓸어낸 정진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다짜고짜 다그친 거 미안해요. 이런 말 하고 싶어서 불렀던 거 아니에요.”

찬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거친 정진우의 손바닥이 이마 위를 오갔다.

“몸은 괜찮냐고, 그렇게 토하고 나서 뭐라도 먹긴 했냐고.”

“…….”

“그냥 이거 물어보려고 했어요…….”

이마를 스친 손이 뺨을 감쌌다. 내 얼굴에 열이 많은 건지 정진우의 손이 유독 차가운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엄지손가락이 눈 밑을 슬슬 쓸었다.

“사무실 들어가서 쉬려고 그랬죠. 쉬어요. 될 수 있으면 집에 일찍 들어가고.”

손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바람이 채웠다.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렸다. 양팔을 늘어뜨린 채 정진우가 살짝 웃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움칠 움직였다. 정진우를 잡을 뻔했다.

“나랑 같이 식사하는 게, 나랑 있는 게, 선배한테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일 줄 몰랐어요.”

“…….”

“몸 챙겨가면서 일해요. 저 가볼게요.”

뒤뜰에 혼자 남아 사라지는 정진우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등을 곧게 펴고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스무 살의 정진우와 겹쳤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고개를 들었다. 깜깜한 하늘에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뻑뻑해진 눈을 문질렀다.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아래층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애처롭게 웃는 정진우의 얼굴이 걸렸다. 이어서 그림들을 휘감고 있던 숫자들과, 가슴팍에 홀로 떨어진 숫자들을 떠올렸다. 01081…… 뭐였더라. 세 줄로 꽤 길게 새겨진 문신은 한 번 보고는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자꾸 눈에 걸렸다. 멍하니 있다가 정진우 생각만 하고 있는 나를 깨닫고 볼을 세게 두드렸다. 책상 위에 엎드렸다. 반짝 뜬 눈앞이 새카맸다.

정진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몸은 괜찮은지, 뭐라도 먹긴 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마음이 뭔지 이제는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진우가 나를 걱정하는 게, 좋으면서도 화가 났다. 뒤돌아서는 모습이 싫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했다. 어제 정진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정리해야지. 하고 싶었던 말이라도 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 어제부터는.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어려웠다.

결국 사무실에 있는 내내 정진우 생각만 했다. 컨디션도 별로고, 계속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아 전시장으로 내려왔다. 큐레이터님께 말씀드리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넓은 전시장을 지나다니며 큐레이터님을 찾았다.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고개를 빼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다 키가 작은 여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지나가려는데 주름진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잠시 길을 멈추고 손의 주인을 살폈다.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일단 인사하려는데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들고 있는 잔 안의 샴페인이 출렁거렸다. 여자는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어디 안 좋은 건가. 한 발짝 따라가며 말을 걸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도와드릴까요?”

여자의 어깨가 파득 들렸다. 됐어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이고 빠르게 걷는다. 어디서 봤지. 차림이나 걸친 액세서리가 모두 고급이었다. 미술관 고객인가. 생각을 지우고 큐레이터님을 찾아다녔다. 한구석에서 관장님과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 인사했다. 큐레이터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대화하던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내 소개를 마친 뒤 잠깐 몸을 돌려 큐레이터님께 속삭였다.

“저 영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

“그래, 그래.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고생했어.”

“감사해요. 내일 뵐게요.”

“응. 잘 들어가고, 정 안 되겠으면 내일 출근 안 해도 돼. 융 첫 퍼포먼스 모레지? 내일은 쉬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관장님께도 인사드리고 승원 형을 찾아 나섰다. 먼저 간다고 얘기라도 해 놔야지, 안 그러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에 쳐들어와서 서운하다며 노래를 부를 게 뻔했다. 말도 안 하고 혼자 가냐고. 두리번거리다 다른 작가들 사이에 선 정진우와 눈이 맞았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복잡했다. 형을 찾는 척하면서 다시 정진우 쪽에 시선을 뒀다. 정진우는 내 쪽에서 아예 몸을 돌린 채 얘기 중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정진우의 태도에 숨이 막힌다고 했던 게 불과 두 시간 전이었다. 빠르게 전시장을 벗어났다. 로비 한쪽에서 형이 하선재, 강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고 저기고 지뢰밭이었다.

“형.”

“어, 야 너 어디 갔었어? 엄청 찾았잖아.”

“맞아. 형 어디 갔었어? 좀 이따 우리끼리 빠져서 2차 가려고 하는데, 형도 가자!”

밥도 못 먹은 사람을 데리고 2차를 가겠다는 이들의 사고회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둘을 훑으니 아차 하는 표정을 한다. 아, 너 아프지……. 하선재는 몰라도 형에겐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승원 형이 기운 빠진 얼굴로 나를 토닥였다. 먼저 들어가, 형은 오늘 늦을 거야.

“어, 나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먼저 가볼게. 먼저 들어가 볼게요, 작가님.”

“요한 씨 어디 아팠던 거예요? 그래서 안색이 계속 그랬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지. 강현이 슬쩍 웃었다. 긴 팔을 뻗어 내 뒷목을 감싸온다.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되게 예민하네. 푹 쉬어요.”

“……예, 들어가세요. 나중에,”

“조만간 봐요. 연락할게요.”

알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와 대거리하기도 지쳤다. 집에 가서 씻고 잠이나 자야지. 이젠 다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었다. 사무실에 들러 외투와 가방을 챙겨 내려왔다. 로비로 통하는 비상구 문을 열었다. 바로 미술관을 빠져나가려는데 아까 마주쳤던 여자와 눈이 맞았다. 아무래도 낯이 익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건물을 빠져나와 정원을 가로질렀다.

“학생.”

등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줄도 몰랐다. 내가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빨리 가야지. 생각하며 걷다가 내 팔을 잡는 손에 뒤를 돌았다. 방금 본 나이가 지긋한 여자였다. 내 팔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인적이 없는 구석으로 나를 이끈다. 여자가 잡은 팔을 뿌리칠 수 없어 그대로 끌려갔다.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여자가 창백한 낯을 하고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사람이 오는 걸 경계하는 것 같아 아직 내 팔 위에 얹힌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뿌리쳤다.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손등을 문질렀다.

“사람 안 올 만한 곳으로 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를 데리고 미술관 뒤뜰로 향했다. 직원 말고는 출입하는 사람이 전무한 곳이었으니 여자가 원하는 장소로 적합한 것 같았다. 주변을 계속해서 둘러보던 여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가에 인자한 주름이 져 있었다.

“여기는 뭐 때문에 온 거예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었나 싶었다. 직원이니까 오지……. 너무 당연한 걸 질문해 와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여자가 한숨을 크게 쉬더니 재차 말했다.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여기 있어서, 내가 잘못 봤나 했어. 학생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요?”

“저……. 저는 여기서 일,”

“내가 학생 때문에, 무슨 짓까지 했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언성이 높아진 여자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중간 굽의 구두에서 갖춰 입은 투피스 정장, 우아한 목걸이를 지나 얼굴에 시선을 멈췄다.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주름이 조금 더 지고,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 이 여자는,

“언제부터 우리 진우 다시 만나고 있었던 거야!”

정진우의 어머니였다.

높아졌던 언성을 느낀 듯 숨을 고르는 정진우의 어머니를 멍하니 응시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내가 들은 말이 맞나. 머리가 덜컥거리며 치열하게 돌아갔다. 8년 전 한 번 만났던 나를 단박에 알아본 것도, 정진우와 언제부터 다시 만나냐는 질문을 던져온 것도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다. 매니큐어를 곱게 바른 손이 단정히 손질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언제부터, 진우랑 연락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온다고 할 때부터 애가 이상하다 싶었어. 여기서 내가 학생을 다 보네.”

“그게 무슨, 아니, 어떻게…….”

뒤죽박죽 엉켜버린 생각이 말문을 막았다.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지 짐작이 안 갔다. 정진우의 어머니는 흥분한 게 언제였냐는 듯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말을 정리했다.

“어떻게 저를 지금까지 기억하시는지도 모르겠고, 저랑 진우랑 다시 만나냐는 건, 저희 관계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 게…….”

대답 없는 여자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지금은 진우랑 따로 연락하는 사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변명이 아니라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미술관과 내 이름, 연락처가 박혀 있는 명함이었다. 명함을 받아든 여자의 손이 살짝 떨렸다.

“저는 지금 여기서 일을 하고 있고요,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여기서, 일을 한다고? …서요한 씨가?”

“……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인상을 쓴 채로 나와 명함을 번갈아 보던 여자가 입술을 질끈 물며 손안에서 명함을 구겼다.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귀에 붙은 귀걸이가 빛을 반사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럼, 가 봐도,”

“란에 언제 들어왔어요?”

돌리려던 몸을 바로 세우고 여자를 내려다봤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너무 피곤한데.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 년 됐습니다.”

“……그래? 오래는 안 있었네요.”

“예, 저 그럼 가 보겠,”

“내가 미술관 하나 소개시켜 줄게요. 경기 권에 란 정도 되는 규모고, 대우도 나쁘지 않을 거야. 시 소속이라 여기보다 좋을 수도 있어.”

“예?”

“서요한 씨와 진우가 예전에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거, 알고 있어요. 어렸을 때 장난이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둘이 다시 마주치는 게 달갑진 않아. 내가 거기 관장이랑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예요. 서요한 씨 얘기 잘 해줄게.”

“……예?”

“이제 알 만한 나이잖아. 이해하죠?”

짐작하기 어려운 소리만 늘어놓던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내 번호를 입력했다. 구겨진 명함이 제 기능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응시했다.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핸드폰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여자가 연락 줄게요. 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어깨를 잡았다. 단박에 뿌리쳐진 손이 화끈거렸다.

“잠깐만요, 잠시만,”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이려는 여자를 다시 잡았다. 다시금 손이 뿌리쳐졌다. 여자가 크게 한숨 쉬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잡혔던 어깨를 털어내는 손을 응시하며 물었다.

“…지금 저에게, 일자리를 옮기라고 말씀하신 거 맞나요?”

“잘 알아들었네요.”

“제가 왜, 아니, 갑자기 왜 이런 말을,”

“답답하게 굴지 말고 하라는 대로,”

“어머니.”

나를 향해 있던 여자의 얼굴에 핏기가 빠져나가는 게 한눈에 보였다. 여자 너머로 정진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다가왔다. 나와 여자의 사이에 멈춰 내 어깨를 살짝 밀친 정진우가 앞을 가로막았다. 여자의 얼굴이 정진우의 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네 전신데, 내가 못 올 데 왔니.”

“형이랑 아버지는요. 같이 오셨어요?”

“그래. 안에 있다.”

걸치고 있던 재킷은 어디다가 뒀는지 니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깨를 크게 들썩인 정진우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전시 보러 오셨으면, 전시 보셔야죠. 들어가세요.”

“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머니는,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잠깐 서요한 씨한테 볼일이,”

“무슨 볼일이 있어요, 어머니가. 이 사람한테.”

“……넌 몰라도 되는 일이야.”

잠시 움찔 몸을 떨더니 제 어머니의 팔을 휙 낚아챈다. 가세요. 말을 뱉는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 잠시간 끌려가던 여자가 정진우를 휙 뿌리쳤다. 정진우의 뺨으로 손이 올라간 건 순간이었다. 살이 맞붙는 소리가 뒤뜰을 커다랗게 울렸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알이 굵은 반지에 얼굴이 긁혔는지 흰 볼 한가운데 생채기가 났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서 있었더니 정진우가 내 쪽을 슬쩍 쳐다봤다.

“선배, 가요. 미안해요.”

“어딜 가! 이렇게 된 거, 저 사람이랑 얘기 좀 해보자. 너 한국 와서 집에 한 번 와 보지도 않고! 남처럼, 엄마한테! 이렇게 앞뒤 없이 구는 거 저 사람 때문이 아니면 뭐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미안해요, 선배. 빨리 가요.”

다시금 들어 올린 제 어머니의 손을 잡아챈 정진우가 나에게 말했다.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양팔을 잡힌 채로 몸부림을 쳤다. 거센 몸부림에 정진우가 여자의 손을 놓쳤다. 거칠어진 숨을 하고 정진우를 노려보던 여자가 문득 제 뺨을 세게 때렸다. 옮기던 발을 멈췄다. 순간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놀라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가 흐트러진 머리를 한 채로 나와 정진우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여자가 다시금 손을 드는 게 멍한 시선에 담겼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였다.

짝, 짝, 짝, 짝…….

여자의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계속해서 자신의 볼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여자를 망연하게 쳐다보던 정진우가 여자의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정진우의 품에 갇힌 여자가 미친 듯이 바르작거렸다.

“놔! 내가 너를! 잘못 키웠어! 너를 독일로 보내는 게 아니었어! 아무리 엉망으로 굴어도 내 옆에 뒀어야 했는데!”

“이러지 마세요, 제발…….”

“놔!”

“체면 생각하시는 분이잖아요. 여기 바깥이에요. 집 아니라니까요! 진정하세요, 좀!”

여자가 정진우의 몸 여기저기를 내리쳤다. 정진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상황이 현실이 맞나. 어디서 틀어놓은 영화를 보는 듯 현실감이 하나도 없었다. 꿈인가. 잠깐 눈을 감았다가 슬쩍 떠봤다. 꿈일 리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던 여자에게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라 웅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던 정진우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정진우의 시선이 멈춰 있던 나를 향했다.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입가의 점이 함께 움직였다.

“미안해요, 정말, 나는…….”

“…….”

“어머니가 선배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든 무시해요.”

크게 소리치는 제 어머니를 더욱 힘껏 끌어안은 정진우가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미술관 정문가에 다다를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내가 방금 본 게, 뭐였지. 반짝이는 등과, 각종 먹을거리를 들고 웃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본 게.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내내 정진우의 표정 없는 얼굴과, 긁혀 부어오른 상처. 흐트러진 제 어머니를 억세게 끌어안은 손이 번갈아가며 눈앞에 떠올랐다.

미술관을 완전히 벗어나 차도로 걸었다. 나무가 우거진 길이 끝나고, 소음으로 가득한 도로에 서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정진우의 시선이 계속해서 얼굴에 따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귀를 한 번 만졌다가,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얼굴을 누르고 있는 손바닥에 축축한 숨이 닿았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넘기고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쭈그려 앉아 있던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엉덩이를 바닥에 갖다 댔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요한 씨?”

가로등 아래 주황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보도블록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강현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 나를 관찰하던 강현이 느린 걸음으로 내 앞에 도달했다. 가깝게 붙어선 강현으로 인해 시야가 모두 차단됐다. 커다란 남자가 만든 그림자가 내 위를 넓게 드리웠다. 남자다운 이목구비를 따라 그림 같은 음영이 졌다.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크림이 조금씩 녹아 아래로 흘렀다. 강현이 몸을 낮춰 나와 눈높이를 같이 하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해요?”

“……그냥, 작가님은 따로 2차 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럴까 했는데, 같이 가지 않을까 했던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아…… 예.”

“재미도 없고, 집에나 갈까 했어요. 이렇게 마주치네.”

강현이 개구지게 웃었다. 손 등 위를 흐르는 아이스크림을 보다가 가방을 뒤져 휴지를 꺼냈다. 강현에게 휴지를 건네다가 알았다. 팔이며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좀 한기가 도는 것도 같았다.

“이거, 닦으세요.”

“고마워요. 근데 요한 씨… 많이 아픈가?”

휴지와 내 손을 함께 잡은 강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잡힌 손을 빼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좀 피곤한 정도예요.”

“체했다고 들었어요.”

“예, 뭐.”

강현이 휴지로 채 닦이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나를 훑었다. 시선이 진득했다.

“진짜 여기 앉아서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냥… 집에 가시는 길이면, 가셔도 되는데요.”

몸이며 정신이 파김치가 되어 흐물흐물 늘어져만 갔다. 강현은 이럴 때 보기 거북한 사람이었다. 내 성적 취향을 알고 있는 것 때문인 게 컸지만, 1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그가 나에게 취하고 있는 이상한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이상했다. 우리는 전혀 친밀한 사이가 아닌데, 강현은 나를 너무 스스럼없이 대했다. 어찌 됐든 별로 얼굴을 마주보며 오래 얘기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뱉으며 눈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강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든 곤란하면 그렇게 날 세우는 거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닌데.”

“…….”

“더 이상 안 물어 볼게요. 너무 경계하지 말아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아무데나 던져버린 강현이 대뜸 나에게 손을 뻗어왔다. 향수냄새가 훅 풍겼다. 주저앉아 있던 엉덩이가 가뿐하게 들렸다.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나를 일으키며 강현이 중얼거렸다.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불쾌해 하지도 말고. 요한 씨 이대로 두면 여기서 날 샐 것 같아서 그래요.”

“…예, 저기 좀 놔 주시면.”

“집에 어떻게 가요?”

나에게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난 강현이 어색해할 틈도 주지 않고 곧장 물어왔다. 평소에는 걸어 다녔지만 오늘은 걸어갈 힘이 없었다.

“택시 잡으려고요.”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차도 근처로 걸어갔다. 뭐 하는 거지. 주춤거리며 강현을 따라 차도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힌 택시 뒷문을 열며 강현이 나에게 눈짓했다. 감사합니다. 작게 인사하며 택시에 올랐다. 시트에 몸을 묻었다. 강현이 문을 잡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강현의 얼굴을 살피다가 다시 한 번 크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잠시 인사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던 강현이 내 옆에 들어와 앉으며 문을 닫았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택시 안이 조용해졌다. 어디 가냐는 기사님의 말에 대꾸할 정신도 없이 강현에게 물었다.

“왜 같이,”

“요한 씨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집 앞까지만 같이 가요.”

뭐 해요, 어디까지 가는지 말씀드려요. 강현의 성화에 집주소를 말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 도로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씻은 뒤 잠이나 자고 싶었다. 복잡한 머리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정진우가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결같이 반짝이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정진우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와 귀, 젖은 목소리를 생각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기사님이 뭔지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고른 숨을 내쉬던 강현이 내 어깨를 짚었다.

“머리 많이 아파요? 병원 안 가 봐도 되겠어요?”

“괜찮아요. 있을 만합니다.”

잠시 침묵하던 강현이 어깨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왜 이러지. 강현 쪽을 쳐다봤다. 어두운 택시 안에서 강현의 눈만 까맣게 빛났다.

“이건, 작년에도 하고 싶었던 말인데.”

“…….”

“아프고 힘들 때 무조건 참고 보는 것도 좋은 건 아니에요.”

그날부터 말해주고 싶었어요. 요한 씨가 아무래도 나를 피하는 것 같아서 말은 못 했지만. 강현이 웃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택시 안을 조용히 울렸다.

“요한 씨가 볼 때마다 이러니까, 신경이 쓰이잖아요.”

“…지금은 정말 참을 만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깔깔한 목을 억지로 긁으며 인사했다. 망설이다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왜 저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지, 잘…….”

“…그러게요. 이상하지.”

“…….”

“이상하게 요한 씨는 신경이 쓰이네.”

“……혹시 그날 제가 드렸던 말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무슨 소리예요?”

강현의 반문에 할 말을 잃고 눈을 굴렸다. 뭔가를 생각하더니 운전석을 확인한다. 운전석 쪽을 향했던 얼굴이 내 쪽으로 훅 가까워졌다. 숨이 귓가에 닿았다.

“요한 씨가 남자 좋아하는 거?”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다가올 때만큼 빠르게 떨어진 강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건 별로 나한테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

“혹시, 그것 때문에 나 피한 거예요?”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뭐.”

손을 들어 미간을 살살 문지른다. 손가락이 고왔다.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강현은 본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 손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긴 사이 강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나 남이 숨기고 싶은 일 함부로 들춰내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예.”

“요한 씨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거면, 좀 서운한데.”

할 말이 없었다. 눈을 슬쩍 돌렸다. 평소에는 택시를 타면 눈 깜짝할 새 집 앞에 도착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길이 멀었다. 내가 말을 멈춘 이후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해 강현이 택시비를 지불하려는 걸 말렸다.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돈을 지불하고 집 앞에 섰다.

“여기예요?”

“네. 감사합니다. ……죄송했고요.”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께로 다가오는 손을 고개를 뒤로 빼며 피했다. 내가 오해한 건 미안했지만, 역시 강현은 좀 이상했다. 서슴없는 스킨십이나, 불쑥 던지는 말들이. 보통 서른에 가까워진 남자들이 이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유학을 오래 해서 그런가, 아니면. 솟아나는 상념을 뒤로 하고 꾸벅 인사했다. 강현이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미안하면 내일 점심 같이 먹어요. 출근하죠?”

“네. …점심이요?”

“내일 점심시간 맞춰 란으로 갈게요. 근처에 죽 집이 하나 있는데, 전복죽이 괜찮았어요. 가본 적 있나?”

“……아니요.”

“같이 가 봐요.”

딱히 거절할 구실도 없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멀어지는 강현의 등에 대고 다시 말했다. 강현이 사라지는 걸 조금 보다가 집에 들어왔다. 식탁 의자에 늘어져 있다가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두고 샤워했다. 따뜻한 물을 맞으니 계속해서 멍했던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젖은 머리를 털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다섯 통과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모두 정진우였다. 따로 저장해놓지 않아 이젠 외울 지경이 된 번호를 들여다봤다.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나. 덜컥 겁이 났다.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한 채로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갈 곳을 잃고 마음속 여기저기를 맴돌았다. 부재중 전화를 알리는 알림만 보고 또 봤다. 문득 비어 있던 속에 무언가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치솟는 구토감에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헐레벌떡 출근했다. 급하게 온 보람도 없이 오픈 준비로 복작거리는 로비를 지나 도착한 사무실은 한산했다. 운영 팀을 제외하고 거의가 지각이었다. 형은 어딜 가 있는 건지 전화도 안 받고, 어제는 집에도 안 들어왔다. 출근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한숨을 푹 쉬고 큐레이터님께 연락을 하려 핸드폰을 들다 멈칫했다. 전화만 걸려고 하면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눈에 밟혔다. 확인할까. 액정 위를 배회하던 손이 전화기 모양을 꾹 눌렀다. 울리는 신호를 들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내일 보니까. 보기 싫어도 내일 보니까. 거북해지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내일 보니까.

개관 시간에 맞춰 하나둘 입장하는 관람객과 함께 출근한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랬다. 신예림이 파티션을 잡은 채로 중얼거렸다. 요한 씨, 속은 괜찮아? 물어오는 신예림의 속이 더 말썽인 것 같아 등을 토닥였다. 신예림이 내 팔을 치워내며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토하는 꼴을 보고 싶은 거야……? 다른 사람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어쩐지 내가 여기서 가장 멀쩡한 상태인 것 같았다. 얼마나 마신 거야. 출근하자마자 나를 끌고 화단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승원 형이 오늘 아침을 회상했다. 3차까지 달리고 다 같이 사우나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 관장님, 일주일은 얼굴 못 볼 거다. 읊조리는 형의 눈 밑이 새까맸다.

오전엔 다들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미친 듯 바쁜 기간이 어제부로 끝나고, 이제 우리 팀은 한 달 정도 늘어지는 분위기가 지속될 거였다. 그냥 오늘 쉰다고 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했다. 점심에 다 같이 해장하러 가자는 걸 거절하고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약속 있어서 좀 늦을 수도 있어요. 말을 남기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비를 거쳐 건물을 벗어났다. 전시 첫날이라 그런가, 평일 오전임에도 관람객이 꽤 많았다. 바깥에 나오자 추위가 느껴졌다. 햇빛이 쨍쨍한데도 싸늘했다. 겨울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찬바람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대충 감고 정원을 벗어났다. 오랜만에 활짝 열려있는 철문을 지나 밖으로 나서자 예상치 못했던 얼굴이 보였다.

“선배.”

정진우가 담벼락에 기대 있던 몸을 세웠다. 성큼 가까워진 정진우에게서 담배냄새가 났다.

“여긴 네가 오늘 왜, ……무슨 담배냄새가 이렇게 나.”

가까워졌던 몸을 조금 물린다. 정진우의 뒤쪽 바닥을 훑었다. 꽤 많은 수의 담배꽁초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민망한 듯 턱을 느리게 쓴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탓에 겨우 드러난 입술 한쪽이 터져 있고, 볼에는 생채기가 난 채였다.

“어제, 전화했어요. 메시지도 보냈는데.”

“알아. …확인 안 했어.”

“……그런 것 같았어요.”

정진우가 내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눈가에 그늘이 져 있었다. 하얀 볼에 두드러진 상처가 신경 쓰였다. 흉 질 것 같은데. 약은 안 발랐나. 머뭇거리던 정진우가 물렸던 몸을 다시 가까이 하더니 슬쩍 웃었다. 터진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아파보였다.

“어제 일, 사과하고 싶기도 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겠지 싶어서, 죽이라도 사서 놓고 갈까. 하는 중이었는데 선배가 나왔네.”

“어차피 내일,”

“내일 보는 건 알고 있어요. 근데, 그냥.”

“…….”

“확인하고 싶었나.”

“……뭐를.”

자꾸 눈길이 가는 상처에서 시선을 억지로 떼어냈다. 정진우의 뒤편 어딘가를 응시했다. 앳되어 보이는 여자 둘이 골목을 오르는 중이었다. 그 옆으로 정진우의 귀가 걸렸다. 귓가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지. 발갛게 달아오른 귓바퀴에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어제 선배를 그렇게 보낸 게, 꿈인가.”

“…….”

“그러게요. 내가 뭘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지.”

허탈하게 웃는 정진우를 망연히 보고만 있었다. 머리 한구석을 차지해 떠나지 않는, 정진우의 품에 갇혀 몸부림치던 정진우의 어머니가 선명해졌다. 정진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요.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양 볼을 거칠게 문질렀다.

“속 안 좋아도 점심 잘 챙겨 먹어요.”

“…….”

“내일 봐요.”

한 걸음 물러선 정진우가 내 얼굴을 훑었다. 오늘 하루 종일 만난 사람 중에 정진우가 상태 안 좋기로는 최고였다. 그런 주제에 무슨 내 걱정은. 불쑥 치밀어 오르는 열기에 입을 열었다가 곧바로 다물었다.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부터 던져 봤자 좋을 건 없었다. 미적거리던 정진우가 몸을 돌렸다. 그대로 가는 듯 걸음을 옮기더니 자리에 멈춰 선다. 골목 어귀에서 강현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강현 쪽을 보고 있던 정진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강현이랑 약속 있어서 나온 거였어요?”

강현이 점점 가까워졌다. 정진우와 나를 번갈아보며 올라온 강현이 정진우에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정진우가 강현의 손을 맞잡았다.

“어제 뵙고 또 뵙네요.”

“네. ……작가님은 여긴 어쩐 일로,”

“요한 씨가 요 며칠 잘 못 먹는 것 같아서, 좋은 데 데려가서 맛있는 거 먹이려고 왔어요.”

시원하게 웃는 강현을 말없이 마주보던 정진우가 불현듯 함께 웃었다.

“좋은 데, 맛있는 거……. 저도 점심 아직인데, 껴도 될까요.”

정진우를 막으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것도 무색하게 강현이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좋죠. 요한 씨는요?”

하나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렸다. 차림이 제각각인 남자 셋이 평일에 미술관 앞에서 옹기종기 서 있는 게 눈길을 끄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서, 강현의 얼굴, 정진우의 터진 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진짜로 오늘 쉰다고 할걸.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쨌든 뭘 먹긴 먹어야 했다. 속이 텅 비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다 포기한 채로 나를 보고 있는 둘을 지나며 말했다.

“예. 어디든 일단 가죠.”

미술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죽집은 강현 말대로 맛이 괜찮은지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강현이 우리에게 다가온 종업원에게 뭐라고 빠르게 말했다. 강현과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앞서 걷는 종업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섰다. 길쭉한 복도를 지나니 사람이 가득한 홀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한 공간이 나타났다. 가장 안쪽의 미닫이문을 부드럽게 연 종업원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들어와요. 강현의 뒤를 따라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섰다. 함께 들어오려던 정진우가 잠깐 멈칫했다. 강현의 맞은편에 앉으며 문 바깥을 힐끔거렸다. 정진우가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던 강현이 정진우에게 물었다.

“작가님, 뭐 하세요?”

“예, 아니요. 들어갈게요.”

정진우가 미닫이문을 닫으며 들어왔다. 야상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고 마주앉은 나와 강현을 잠시 바라보더니 내 옆에 앉는다. 옆에 앉은 정진우에게서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열이 있나. 생각하다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입 안으로 삼켰다. 내 신경은 항상 정진우에게만 예민했다.

“요한 씨랑 내 거는 예약하면서 미리 주문해 놨어요.”

강현이 정진우에게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강현 말대로 테이블에는 수저와 젓가락, 따뜻한 차가 담겨 있는 잔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정진우가 본인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텅 빈 속이 쓰려 와서 테이블 밑으로 배를 문질렀다. 빳빳한 셔츠가 손가락에 걸렸다. 오늘 집에 가서 까먹지 말고 빨래해야지. 오늘 입은 셔츠가 아마 빨아놓은 마지막 셔츠일 거였다. 배를 문지르며 쌓여있는 빨랫감을 생각하다가 찌르는 듯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었다. 강현이 나와 정진우를 웃는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융 작가님, 융… 계속 이렇게 부르면 될까요?”

“……. 네. 융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 평소에도 활동 명 그대로 쓰시나 봐요?”

잠시 강현을 마주보던 정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하는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내일 퍼포먼스 하신다고 들었어요. 아주 기대하고 있어요.”

“네. …내일 오시려고요?”

“네, 가야죠. 요한 씨도 또 볼 겸.”

코디님 내일 많이 바쁘실 텐데. 정진우가 정색하며 중얼거렸다. 정진우의 이상한 반응으로 인해 더욱 깊은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둘 모두를 알고 있는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꺼내야 맞았지만 지치는 기분에 분위기를 모르는 척 배만 문질렀다. 죽 빨리 안 나오나. 문득 정진우가 내 쪽으로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바닥을 짚은 정진우의 새끼손가락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내 발바닥에 닿았다. 발을 조금 옆으로 물렸다. 갑자기 목이 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쭉 들이키려다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찻잔을 놓치는 바람에 가슴팍과 바지가 찻물로 흥건히 물들었다. 찻잔이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셔츠를 한 손으로 잡아들고 콜록거렸다. 어깨와 머리 부근에서 타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선배,”

“요한 씨, 괜찮아요?”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숙인 머리를 받치고 있던 강현이 휴지를 내밀었다. 받아들고 숨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어깨를 꽉 잡고 있던 정진우의 손이 내 등을 지나 허리 부근을 감쌌다.

“일어나요. 여기 화장실이,”

“괜찮…… 이거 놔, 요.”

정진우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일어섰다. 얼굴이며 다 데인 혀, 차가 쏟아졌던 가슴팍, 허벅지가 화끈거렸다. 창피해서 살 수가 없었다. 잔기침을 반복하며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있는 둘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저도 같이 가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또다시 허리께로 닿아오는 정진우의 손을 치우며 자리를 나섰다. 문을 닫고 마루에 걸터앉아 심호흡을 했다. 신발을 신으려다 자리에 멈춰 바닥을 내려다봤다. 정진우의 운동화 옆에 내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얼굴을 쓸었다. 구두를 구겨 신고 화장실에 가서 몰골을 확인했다. 셔츠 앞섶이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기막힌 꼴에 헛웃음을 쳤다. 애도 아니고, 정진우가 좀 닿은 게 어떻다고. 깔끔한 세면대를 멍하니 보다가 뒤축이 무너진 구두를 바로 신었다. 옷 정리도 못 하고, 신발 정리도 못 하는 나에게 조잘조잘 잔소리를 하던 정진우의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렇게나 둔 신발이며 옷가지를 정리하던 정진우의 등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 위로 마루에 쭈그려 앉아 신발 정리를 하는 스물여덟의 정진우가 겹쳤다. 그 위로, 몸부림치는 제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정진우의 일렁이는 눈동자가 덮였다.

“…….”

부정적인 감정들을 뚫고 조금씩 기어 나오는 이상한 기대감을 누르려 양 볼을 찰싹 내리쳤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정진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장황하고 두서없는 메시지의 나열이 머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정말 미안해요 저희 어머니가, 어쨌든 미아ㄴ해요 전화 안 받네요. 많이 놀랐죠 이거 보면 연락 좀 해줘요. 내일 잠깐 볼 수 있을가요 어머니가 파티에 오실 줄 몰랐어요. 전시 기간에 마주치더라도 선배를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모ㅅ 생각했어ㅇ.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한 화면에 다 담기지도 않을 정도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던 메시지를 쭉 내리다가 마지막에서 시선을 멈췄다.

[나 피하지 말아요.]

모자 밑으로 나의 얼굴을 살피던 우울한 눈, 나를 확인하고 싶었다던 정진우의 말. 내가 저처럼 도망가기라도 했을까봐 걱정했던 거였나. 웃음이 났다. 정진우를 만난 뒤로 다 집어 치우고 정진우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럴 수 없었지만. 모든 걸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기엔 나는, 정진우처럼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다 내팽개치고 떠나는 것도 삶에 여유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정진우는 몰랐다.

손쓸 수도 없이 얼룩져버린 셔츠는 내버려 두고 자리에 돌아왔다. 문을 열자 두 쌍의 눈이 나를 향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표정들이 이상했다. 정진우의 옆에 앉아 나만 보고 있는 둘에게 말했다.

“먼저 식사하시지, 기다리신 거예요?”

“요한 씨 먹이러 온 건데 같이 먹어야지. 괜찮아요?”

“그럼요. ……사레들린 것뿐이에요.”

잘 먹겠습니다. 중얼거리고 죽을 한 술 떴다. 음식이 들어가니 빈속이 잠시 요동쳤다. 깔깔한 목으로 묽은 것을 연거푸 넘겼다. 잠시 나를 살피던 둘도 식사를 하려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솟아 있던 어깨와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깔끔한 전복죽의 맛이 그제야 느껴졌다.

갑자기 끼어든 정진우 때문에 한 명분의 식사 값을 더 지불하게 된 강현이 계산하러 온 종업원에게 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요한 씨 속도 안 좋아서 커피 한잔하자고 할 수도 없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점심 전이라더니 죽을 반 이상 남긴 정진우 때문에 더 미안했다.

“다음에, …작가님 괜찮으실 때 연락 한번 주세요.”

“다음에?”

“제가 술 한번 살게요.”

밥 얻어먹은 것도 있고. 정진우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강현이 환하게 웃었다. 다갈색 피부에 보조개가 활짝 피었다. 아이같이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주 웃었다. 강현의 보조개가 더욱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우리 딱딱한 요한 씨 웃는 얼굴도 보고, 술 약속도 잡고. 오늘 만나길 잘했나 봐요.”

“…그렇게까지는,”

“일어날까요.”

정진우가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외투를 챙겨 입는 걸 멍하니 보다가 뻘쭘하게 일어섰다. 미술관으로 천천히 걸으며 드문드문 강현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강현이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정진우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집에 안 가나. 배 안 고픈가. 진짜 어디가 아픈가. 생각하며 정진우를 힐끔거렸다. 나와 대화하던 강현이 문득 말을 멈췄다.

“요한 씨.”

“……네?”

“지금 나랑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어딜 그렇게 봐요. 강현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귓가가 화끈 달아올랐다. 계속해서 정진우를 신경 쓰고 있던 나를 전부 들킨 것 같아 심장이 내려앉은 채로 세차게 뛰었다. 정진우는 우리 대화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땅만 보면서 걷고 있었다. 강현에게 작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도착한 미술관 앞에 서서 강현과 정진우를 배웅했다. 대충대충 하고 빨리 집에 가서 쉬어요. 작가다운 소리를 하며 마주 인사하는 강현과는 다르게 정진우는 이 앞을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작가님은, 안 가세요?”

“네. 저는 전시 좀 보고 가려고요.”

정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웃지. 물어볼 새도 없이 강현이 다음에 봐요, 인사하며 빠르게 우리 둘을 번갈아 훑었다. 뒤돌아 골목을 벗어나던 강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에게 손짓했다.

“요한 씨, 잠깐.”

미동 없이 서 있는 정진우를 확인하고 빠르게 걸어 강현에게 갔다. 앞에 서자 강현이 내 팔을 살짝 끌어당겼다. 귓가에 따뜻한 숨이 닿았다.

“다음에는 우리 둘만 봐요.”

간지러운 귀를 문지르며 그러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의 태도는 당황스러운 면이 있었다. 일 년 전에야 전시 기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봤으니 그렇다 쳐도 이번엔. 일 년 만에 본 게 바로 어제였다. 어제는 이게 뭔지 헷갈렸지만 오늘 강현을 다시 마주하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강현은 나에게 어떤 종류이든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이렇게 호감이 쌓인 건지는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골목을 벗어나는 강현의 등을 잠시 보다가 미술관으로 올라왔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길을 오르는 짧은 시간 동안 내내 자리에 서서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정진우에게 계속해서 마음속에 떠돌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있어?”

“…열이요?”

“……너 내일 퍼포먼스 해야 하잖아.”

변명 같은 말을 주워 담다가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기분에 말을 멈췄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정진우가 말했다. 지장 없게 할게요. 걱정 마세요.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약간 뒤처져 걷던 정진우가 계단을 오를 즈음 가까이 다가왔다. 거리 조절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진우 때문에 손등이 서로 스쳤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정진우를 보지도 않고 혼잣말 같은 인사를 남겼다. 대답 없는 정진우를 뒤로 하고 사무실로 빠르게 걸었다. 정진우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참았던 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만 죽어라 들여다봤다.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과는 다르게 머리는 복잡했다.

빈속이 어느 정도 채워져서 그런지 각종 상념이 어마어마하게 자라났다. 정신을 놓기만 하면 계속해서 떠오르는 정진우 어머니의 말들, 행동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잠식했다. 본인의 뺨을 때리는 어머니를 절망적인 눈으로 쳐다보던 정진우도. 힘들었을까. 만약 스무 살의 정진우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어서 도망쳤다는 정진우의 외침이 머리를 울렸다. 한참 모니터만 들여다보면서 정진우의 생각을 했다. 문득 어떻게든 정진우를 합리화하려는 나를 깨닫고는 기가 막혔다. 이제 와서, 이렇게 합리화해서, 어쩌겠다고.

결국 정진우 생각만 하다가 퇴근했다. 같이 퇴근한 승원 형이 소고기 죽을 해줬다. 내일부턴 그냥 밥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손이 어마어마하게 큰 형 덕에 삼시 세끼 죽만 먹어야 될 판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나란히 자리한 두 개의 죽 냄비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던 형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 도시락 싸줄까? 웃으면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둘이서 밀린 집안일을 한 뒤 일찍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확인했다. 숙자 아줌마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본 지 오래 됐으니 엄마 기일에 웬만하면 시간 맞추라는 메시지였다. 말미에 적힌 괜찮을 때 전화 한 통 해달라는 내용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전화를 드릴 시간은 아닌 것 같았다. 까먹지 말고 내일 해야지.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정진우가 보냈던 메시지를 읽었다. 밉더라도 나 피하지 말아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이제 와서 어쩌겠다고.

하루도 안 되어 다시 마주한 정진우는 얼굴을 적당히 가려주던 모자가 없어서 그런가 어제보다 핼쑥해 보였다. 볼의 흉터는 뭔가로 가린 채였다. 큐레이터님과 함께 통제구역으로 내려와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정진우를 살폈다. 기분 탓인지 힘들어 보였다. 정진우와 함께 있던 카트린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 융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요.”

“오늘이 첫날인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 아쉬워요.”

이번을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을 맺은 카트린이 눈썹을 내리며 웃었다. 토요일 오전 비행기로 베를린에 돌아가야 하는 바람에 더 이상 퍼포먼스를 확인할 수 없는 점이 퍽 아쉬운 듯했다. 정진우의 퍼포먼스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로 결정되었다. 주말에 한 번은 해야 관람객 유치가 수월하다는 의견에 의해 정해진 날짜였다.

큐레이터님이 카트린을 위로하는 걸 흘려들으며 정진우가 몸을 푸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은지 동작이 굼뜬 것도 같았다.

한참 몸을 풀던 정진우가 하나씩 옷을 벗어 준비해 놓은 박스에 넣었다. 정진우가 탈의할 때마다 절로 문신에 시선이 갔다. 계속해서 궁금했던 온몸의 숫자들을 훑어 올라가다 가슴팍에 홀로 떨어져 자리한 숫자를 찬찬히 읽었다. 010817110817200817…… 맨 윗줄을 되뇌다가 정진우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시간을 확인하고 옷과 신발이 든 박스를 뒤뜰로 연결된 직원용 출입구 구석에 가져다 놓았다. 호흡을 가다듬는 정진우를 혼자 두고 바리케이드 근처에 서서 대기 중인 어셔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슬쩍 내려다본 일 층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오픈할게요. 손에 쥐고 있던 무전기를 들고 일 층에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썩어가는 나무뿌리 앞에 선 정진우를 사람들이 둘러쌌다.

정진우가 천천히 움직였다. 뒤따르는 사람들을 훑다가 앞서 앞마당으로 이동해 대기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정진우가 보였다. 한 걸음씩 바닥을 디딜 때마다 허벅지며 종아리의 근육이 불끈 섰다. 안 그래도 느리게 다가오는 정진우가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더욱 느려졌다. 이마 위에서 살랑거리는 앞머리에서 어둡게 가라앉은 눈, 파리하게 질린 입술, 균형 잡힌 상체를 지나 몸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는 얇은 천에서 허벅지, 종아리, 막 흙바닥에 디디는 맨발을 차례로 훑었다.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리고 입 안에서 단맛이 돌았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에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무릎 꿇은 채로 바닥에 내려앉는 등 위로 도드라진 날개 뼈에 눈이 시렸다. 그대로 계단 위에 자리한 관람객에게 인사한 정진우가 내 쪽으로 다가올 때까지, 무언가에 묶인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배, 요한 선배.”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내 어깨를 흔드는 정진우의 목소리가 섞여왔다. 멍해졌던 정신이 순식간에 들어왔다. 환한 빛 사이로 정진우가 눈을 약간 찡그린 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어, 어. 수고했어. 일단 뒤뜰로,”

“네. 그런데, 잠깐…….”

말을 끌던 정진우가 나를 이끌고 뒤뜰로 향했다. 정진우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절뚝이는 다리를 바라보다 돌바닥에 찍힌 핏자국을 보고 놀라 앞서 걷는 정진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이거 뭐야, 웬 피가!”

“일단 가요.”

“잠깐 멈춰봐, 이렇게 걸어서 어쩌려고!”

이리저리 허둥대다 정진우의 팔을 내 어깨 위로 걸고 부축했다. 정진우의 숨소리가 머리카락에 닿았다. 내가 떠는 건지 정진우가 떠는 건지 정진우를 부축하는 몸이 덜덜 떨렸다. 정진우가 지나는 돌 위로 피가 흥건했다. 왜 못 봤지. 언제부터 다친 거지.

도착한 뒤뜰 문턱에 정진우를 앉히고 옷을 건넨 뒤 발부터 살폈다. 발바닥 한가운데 커다란 유리 조각이 깊게 박혀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큐레이터님께 연락한 뒤 택시를 불렀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섬주섬 옷을 입는 정진우의 앞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정진우가 내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괜찮아요.”

“괜찮긴! 대체 언제, 퍼포먼스 하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어디서…….”

“흙 사이에 섞여 있었나 봐요. 진정해요 별거 아니에요.”

“너는! ……일단 택시 불렀으니까 빨리 병원에,”

“무슨 일이야!”

헐레벌떡 달려온 큐레이터님과 카트린, 니시카와가 우리를 둘러싸고 정진우의 맨발을 살폈다. 큐레이터님이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정진우가 민망했는지 별거 아닌데, 죄송해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정진우를 부축해 일어났다. 카트린이 우리를 뒤따랐다. 택시 문을 열고 정진우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앞자리에 타려는 카트린에게 정진우가 독일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말했다. 너무 당황한 데다 정진우의 말이 빨라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진우의 말에 대답하며 올라타려던 몸을 무르고 택시 문을 닫은 카트린에게 정진우가 인사했다. 이따 봐요. 멀어지는 카트린을 돌아보다 정진우의 옆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 아파?”

“괜찮아요, 정말.”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시트 위로 몸을 묻었다. 잠시 말이 없던 정진우가 슬쩍 웃었다.

“선배가 걱정해주니까, 좋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입을 벌리고 정진우를 쳐다보니 정진우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가서 치료부터 하고, 이번 주 스케줄은, 아무래도 조정해야겠다.”

“네. 죄송해요.”

“제대로 확인 못 한 내 잘못이야. 흙 사이도 최대한 확인했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정말, 미안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기분도 함께 가라앉았다. 내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너무 창피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속상한 마음과 우울한 기분이 멋대로 뒤엉켰다. 한쪽만 맨발을 하고 있는 정진우가 시트 위에 놓여 있는 내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그대로 손가락을 빼려다 하얗게 질려 있는 발에 시선이 멈췄다.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내가 이기적이고 못된 거 알겠는데.”

“……무슨 소리야.”

“선배랑 돌아가고 싶어요. 예전처럼.”

정진우가 뜬금없이 꺼낸 말에 기사님을 흘깃 쳐다봤다. 정진우의 손가락이 걸려 있던 손가락을 빼냈다. 허전해진 새끼손가락을 정진우의 손바닥이 감쌌다. 정진우의 큰 손이 천천히 말려들어 내 손가락을 완전히 쥐었다. 마음이 사정없이 울렁거렸다.

“강현이랑 만나지 말라는 말 할 자격 없다는 것도 알아요.”

“…….”

“근데도, 말하고 싶어요. 선배랑 이런 말 할 수 있는 사이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조용히 가자.”

손가락을 빼내려는 나와 정진우의 힘겨루기에 시트 가죽이 이리저리 밀렸다. 승리한 정진우가 내 손을 끌어당겨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놨다. 손가락만 잡고 있던 것이 하나둘 손 전체에 얽혔다. 깍지 낀 손을 바라보며 정진우가 말을 이었다.

“돌아가는 게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제발 좀 조용히,”

“선배가 나한테 약해진 틈타서 이런 말 하는 거, 엄청 비겁하다.”

그죠. 대답을 구하는 정진우의 손에서 내 손을 느리게 풀어냈다. 조금 더 달리다 멈춘 택시에서 내려 응급실 수속을 마친 뒤 치료받는 정진우를 기다렸다.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큐레이터님이었다.

-병원 도착했어?

“네. 지금 치료받고 있어요.”

-퍼포먼스 첫날부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디서 다친 거래?

“흙에 발견 못 한 유리 조각이 섞여 있었나 봐요.”

-확인 안 했어?

“……죄송합니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화가 난 큐레이터님에게 죄송하다고만 거듭 말했다. 들고 있는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반복하던 큐레이터님이 치료 끝나면 사무실로 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뚝 끊었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머리를 감쌌다. 아무렇게나 둔 핸드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강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요한 씨 얼굴 보고 가고 싶었는데, 안 보이네. 어디예요?]

관람객은 다친 거 못 봤나. 강현의 메시지에 이어 드문드문 진동하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발에 붕대를 감은 채로 다가온 정진우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이 주 정도는 조심해야 한다는데.”

“……. 정말 미안하다.”

고개 숙인 얼굴을 정진우의 손바닥이 감쌌다. 양 뺨이 잡힌 채로 정진우와 얼굴을 마주했다. 정진우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말했잖아요. 별거 아니에요. 토요일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고, 다음 주부터는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요.”

다친 건 본인이면서 나를 달래려는 듯 더욱 활짝 웃는 정진우의 터진 입가를 바라보다 입술 안쪽을 꾹 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술관에 돌아와서 큐레이터님께 본격적으로 깨졌다. 입사한 후 이렇게 큰 실수를 한 건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화가 단단히 난 큐레이터님이 한참을 내게 쏟아붓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목소리 하나만 쩌렁쩌렁 울렸던 회의실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머리를 짚은 큐레이터님이 홍보팀, 운영팀과 합의한 사항을 공지했다. 들고 있던 스케줄러에 변경된 사항을 적어 넣었다. 말을 끝낸 큐레이터님이 회의실을 나서며 열었던 문이 곧장 쾅 소리가 나며 닫혔다. 혼자 남은 회의실에서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다. 왜 발견을 못 했지. 그렇게 큰 조각을.

오픈 파티 후에 각종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이 돌아다니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신경 쓰기는 했다. 개관을 한 뒤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에는 도처에 각종 위험요소가 존재했다. 화단은. 그래, 화단은 미처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아침 내내 정진우의 메시지를 들여다보다 시간을 놓친 탓이었다. 개관 시간 전에 화단까지 꼼꼼히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모두 내 실수였다. 대체 그 메시지가 뭐라고.

잠시간 양팔에 고개를 묻고 있다 핸드폰을 들어 정진우에게 연락했다. 합의된 사항을 전달하고 의견을 물어야 했다. 신호가 세 번이 가기 전에 정진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갑작스레 물어오는 안부에 당황해 하려던 말을 까먹고 멈칫했다. 정진우의 느린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들은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보통은 메시지나 메일로 일정을 공유하곤 했다. 정신이 없어서 대뜸 전화를 해버렸는데, 막상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쿵, 쿵. 뛰었다.

“다친 건 너잖아. 괜찮아? 아프진 않아?”

-정말 괜찮아요. …걱정은 계속 해주면 좋고.

“…그래. 괜찮다니 다행이다.”

-선배는, 정말 괜찮아요? 한 소리 안 들었어요?

“……. 네가 신경 쓸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그래요.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정자세로 앉아 있던 다리를 꼬고 입가를 계속해서 매만졌다. 입술을 한 번 축인 뒤 변경된 일정을 확인했다.

“다른 게 아니라, 퍼포먼스 말이야. 네 상태를 전달했는데, 다음 주 수요일까지 2회 분을 취소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 괜찮으면 다른 일자로 바꿔서 진행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아, 아예 취소가 아니라 일정을 바꾼다고. 다음 주 수요일…….

뭔가 움직이는 중인지 수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깐만요. 정진우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누군가에게 독일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에 응수하는 여자의 우아한 발음이 들렸다. ……카트린. 둘이 같이 있었네.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비볐다.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갈피 하나 못 잡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바람에 작가가 다쳤다. 내 실수 하나로 미술관과 작가 양측에 커다란 피해를 끼친 거였다. 한동안 카트린과 이야기 하더니 대충 정리가 됐는지 고맙다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 떨어뜨려 놓았던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좋아요. 정확한 일정은 나왔나요? 전 웬만하면 란 쪽에서 제시해줬으면 하는데.

“그것까지는 아직. 내일 오후 중으로 메일 발송할 수 있어.”

-네. 변경된 일정까지 합쳐진 문서는 에이전시 쪽으로도 공유 부탁해요.

“응. 그럴게.”

이야기는 마무리됐는데 전화를 끊을 타이밍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든 채로 흩어지는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껏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긴장이 풀리려는 걸 바로잡고 말을 꺼내려는데 정진우가 나를 불렀다.

-선배.

“…응?”

-나 상처 꿰맨 거 소독하러 이틀에 한 번은 병원에 가야 한대요.

펼쳐 놓았던 스케줄러를 닫았다. 딱딱한 겉표지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혼자 못 다닐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소독하고 붕대 갈고 하면…….

“…….”

-아니, 혹시 많이 바쁘지 않으면,

“같이 갈게. 진료 예약도 잡아야 해?”

횡설수설하던 정진우가 침묵했다. 스케줄러와 펜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을 벗어나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제가 할 수 있어요. 제가 묵고 있는 데서 가까운 병원으로 가려고. 선배 퇴근할 때쯤 맞춰서 야간진료 되는 데로 예약할게요.

“그래. 퇴근하고 바로 호텔로 갈게. 1층 로비에서 보자.”

-네. ……모레 봐요.

끊어진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다 귀를 긁었다. 정진우의 목소리를 담았던 귀가 간지러웠다.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다 빛나는 메신저 창을 발견했다. 퇴근한 뒤 술 한잔하자는 내용에 오늘은 별로. 다섯 글자만 적어 보냈다. 곧장 온 메신저를 다시 확인했다.

[큐레이터님 명령이다. 너 무조건 나랑 가야 돼.]

비어 있는 큐레이터님의 자리를 힐끗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가 땅을 파고 들어갈까 봐 신경 써 주신 것 같았다. 승원 형이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술만 먹자는 게 아니라 저녁 먹으면서 간단히 반주 하자는 거야. 다른 사람들한텐 얘기하지 마라, 나랑 너랑 선재만 갈 거니까. 고개를 빼고 맞은편을 쳐다봤다. 파티션 너머에 앉아 있던 하선재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눈을 들어 나에게 윙크했다.

[방금 선재가 나한테 윙크했어. 술 먹고 싶다.]

승원 형이 웃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내왔다. 픽 웃다가 자리로 돌아온 큐레이터님께 인사했다. 큐레이터님이 뒤를 지나며 내 머리를 슬쩍 흩트렸다.

각 팀과 상의한 일정을 정리해 큐레이터님께 보고했다. 최종적으로 확인 받은 뒤 관장님께 메일을 보내고 기지개를 쭉 폈다. 내가 친 사고로 인해 미술관 인원 전체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일은 미안하다고 커피라도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정진우도.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다 짜놓은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추가 비용 문제나 기타 복잡한 일들은 그렇다고 쳐도, 본인의 운신 자체가 불편해진 상태였다. 오전에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놓고 얼굴을 쓸다가 하나둘 퇴근하는 사람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레. 괜찮다는 사람에게 거듭 사과하는 것도 실례였다.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내가 정진우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도와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엊그제까지 단단히 체해 있었던 내 속을 배려해야 한다고 나를 둘러싼 하선재와 승원 형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픈 파티 때 아무것도 못 먹었던 나를 데리고 술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았다. 오랜만에 셋이 식당에 앉아 맑은 대구탕을 앞에 놓고 식사부터 했다. 뜨끈한 국물이 이른 추위에 잘 어울렸다.

밥공기를 반 정도 비웠을 때 승원 형이 소주를 시켰다. 내가 어떤지 계속 신경 쓰는 것 같아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 괜찮았다. 체한 거야, 하루 이틀 밥 안 먹고 버티면 다 낫는 거였다. 곧이어 나온 소주병을 받아든 하선재가 뚜껑을 돌렸다.

“와 나 오늘 완전 쫄았잖아. 진선 쌤 그렇게 화나신 거 처음 봤어.”

하선재가 승원 형에 이어 내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형이 하선재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병을 받아들고 하선재의 잔을 채웠다.

“나도 처음 봤어.”

“진짜?”

“야, 나도 처음 봤어.”

형도 동조했다. 내가 정말 큰일을 치긴 했구나 싶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형이 내가 정진우와 병원에 있을 때의 상황을 말해줬다.

“융 소식 듣고 우리 팀장님이랑 송팀 완전 빡쳐가지고 난리 났는데 큐레이터님 서슬 파란거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니까. 너 큐레이터님한테 그렇게 깨지지만 않았어도 아마 우리 팀장님한테 오다가다 한 번씩 최소 세 마디는 들었을 거다.”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은 승원 형이 하얀 국물을 떠먹었다. 하선재가 옆에서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내 생각엔, 아마 큐레이터님이 다른 팀 사람들한테 너 싫은 소리 들을까봐 더 오버한 것 같아. 너랑 같이 나갔다가 들어오실 때 마주쳤는데 나한테 바로 그러더라. 오늘 요한이 데리고 맛있는 것 좀 먹이라고.”

그러니까 너 사고 치지 말고 잘해 인마. 그런 상사가 어디 있냐. 고개를 끄덕이고 술을 쭉 넘겼다. 알싸한 게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반주만 하자던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자리를 옮겨서 더 마실까 말까하고 있는 와중에 문득 정진우의 생각이 났다. 밥은 잘 먹었나. 꽤 깊게 박힌 것 같았는데, 안 아플까. 원래 상처는 밤 되면 더 아픈 거 아닌가. 메시지라도 보내볼까 하고 핸드폰을 켜서 만지작거리다가 숙자 아줌마가 보냈던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 연락 드려야 되는데. 나 잠깐 전화 좀. 만담 중인 하선재와 형에게 말을 건네며 외투와 담뱃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하늘로 흩어지는 연기를 응시하다 숙자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줌마 말씀대로 내 생일 때쯤 한 번 보고 지금까지 제대로 연락도 못 드렸다. 바빠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내 상태가 별로여서기도 했다. 정진우가 오기 몇 달 전부터, 아니 정진우의 전시가 결정된 순간부터 누군가를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요한~! 잘 있었어? 밥은 잘 챙겨 먹고?

“네. 잘 지내셨어요? 다른 아줌마들은요?”

-우리야 뭐~ 똑같지, 아들딸 걱정, 남편 걱정~!

오랜만에 아줌마의 웃는 목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아줌마들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고작 몇 년 안 엄마를 불쌍히 여기고, 엄마의 아들인, 따지자면 완전히 남인 나에게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음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 기일에 맞춰 아침에 납골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뒤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쌓여 있던 아줌마의 소식들을 한참 들었다. 소녀처럼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던 아줌마가 문득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세요?”

머뭇거리며 말을 끌던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요한아.

“말씀하세요.”

-내가 나 사는 얘기 하자고 너한테 연락하라고 했던 게 아닌데, 정신머리 좀 봐.

아줌마가 장황하게 말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아 잠자코 기다렸다.

-요한아.

“네. 듣고 있어요.”

-……정말 네 아버지한테 연락 한 번도 안 드릴 거야? 정말 네 연락처 가르쳐 주지 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두 개비째의 담배를 빼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후 내뿜었다.

-나도 너한테 계속 이래도 되나, 고민했어. 그래도 아버지잖어. 다 죽어가는 사람이 아들 한 번 보고 싶다는데,

“그 사람 제 아버지 아니에요. 아줌마는 다 아시잖아요.”

엄마랑 제가 어떻게 버려졌는지. 엄마한테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끝말은 아주 작았다.

아줌마가 아니 그래도, 하며 이으려는 말을 끊었다. 남의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만 신경 쓰면서 살아가기도 충분히 바빴다.

“그쪽에서 자꾸 연락이 와요?”

-아니 자주는 아니고…….

“이제 더 이상 그쪽 연락 받지 말아주셨음 좋겠어요. 그 사람이…… 바로 오늘 죽는다 해도. 저는 찾을 생각 없어요. 소식 같은 거 듣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만 반복하던 아줌마가 내 단호한 태도에 결국 알았다고 대답했다.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매정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아줌마한테는 항상 감사드리는 거, 아시죠.”

-그럼, 알지. 내가 미안하다. 죽일 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을병 걸렸다고, 죽기 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보고 싶다니까 짠해서……. 내가 주책이지?

“아니에요. …저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엄마 장례를 치를 때 아줌마가 엄마가 가지고 있던 연락처를 찾아 아버지 쪽으로 연락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올해 아줌마가 나에게 아버지의 병환을 전하지 않았으면 엄마에 이어, 숙자 아줌마와 아버지가 드문드문 내 소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었다. 몰랐던 사실을 모두 알게 되자, 지금까지 그래도 아버지라고 잠깐씩 그를 떠올렸던 내 지난날이 허무해졌다. 가증스러웠다.

나와 엄마를 한순간에 버리고,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픈 걸 알고 있었음에도. 엄마는 그 남자를 눈 감는 날까지 사랑했다. 그 남자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으면서. 죽을병에 걸렸다고 이제와 제 혈육을 찾는 꼴이 역겨웠다. 차라리 그냥 앓다가 죽으면, 안타깝게라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양 뺨을 조금 문지른 뒤 의식적으로 입을 한 번 쭉 찢어 웃었다. 어차피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괜찮았다.

외투를 벗어 들며 안으로 들어섰다. 하선재와 형의 얼굴이 나란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만 마셔. 소주병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더니 동시에 나를 노려보는데, 얼굴들이 아주 우스웠다. 지금 여기 나 맛있는 거 먹이자고 온 자리 아닌가.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랬던 것 같은데. 어이가 없었다. 내 손을 피해 요리조리 잔을 옮기던 하선재가 신난 말투로 외쳤다.

“자리 옮길까? 현이 형 온대!”

“……강현 작가?”

“어!”

어, 그래……. 주정뱅이들을 함께 책임져줄 사람이 온다는 데 쌍수를 들고 반겨야 할 판이었다. 잔을 부술 기세로 술을 따르는 둘을 보다가 머리를 짚었다. 큐레이터님이 선견지명을 발휘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 둘이랑 있으면 우울해할 틈도 없었다.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이 도착했다. 비어 있는 내 옆자리에 앉은 강현이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는 형과 하선재를 가리켰다.

“아까만 해도 선재 멀쩡했던 것 같은데?”

“…선재가 술 들어가면 연기를 잘해요.”

혀가 360도로 꼬부라져 있던 하선재가 강현에게 위치를 알려줄 때는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저렇게 멀쩡하게 말할 수 있었다니. 술 취한 게 연기인지 멀쩡한 게 연기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전화를 끊은 뒤 요하니혀어어엉 하면서 매달려 볼에 뽀뽀를 해대는 꼴을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취하긴 했구나. 강현이 맥주를 하나 시키고 돌아왔다. 반쯤 비어 있는 내 잔을 보더니 요한 씨, 술 마셔도 돼요? 물어온다.

“그럼요. 그냥 체한 거였어요.”

“그래. 튼튼하네.”

곧바로 나온 본인의 잔을 든다. 장단 맞춰 내 잔을 강현의 잔에 살짝 갖다 댔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마른안주를 집어먹었다.

“선재 보러 오셨는데 저렇게 취해 버려서 어떻게 해요.”

“선재 때문에 온 거 아닌데.”

“예?”

“요한 씨 있다고 해서 온 거예요.”

아, 예…….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땅콩을 한 움큼 집었다. 픽 웃던 강현이 금세 잔을 비우고 한 잔을 더 시킨 뒤 자리로 돌아왔다. 강현이 일어났다 다시 앉을 때마다 자리가 비좁아졌다.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뭘…….”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요한 씨한테 꽤 연락 많이 했었어요. 우리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요한 씨가 지었던 표정이 계속 생각나더라고.”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지. 기억이 날 리 없었다. 강현이 전시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선재와 셋이서 저녁식사를 했을 때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정진우의 전시가 확정된 후 몇 달은 지금보다 더 정신없이 살았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사람들과의 교류도 모두 끊어버리고, 회사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때도. 마음이 복잡해서 무슨 표정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어쨌든, 답장도 없고, 전화도 안 받아서 인연이 아닌가보다 했지. 근데 이렇게 다시 보고, 또 그때 같은 요한 씨를 보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

“요한 씨가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어요.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강현이 나를 보고 웃었다. 머쓱하고 불안한 마음에 입가를 매만지며 쿨쿨 잠들어 있는 형과 하선재를 힐끔거렸다. 내 행동을 눈치챈 강현이 허탈한 표정을 했다.

“나 지금 요한 씨한테 가볍게 넘길 만한 말 한 거 아닌데.”

“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신경 쓰여요?”

“그건, ……네. 미안해요.”

솔직히 말하고 사과했다. 내가 매너가 없었다. 강현이 빈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말을 고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지금 하신 말씀, 작가님이 저한테, 음, 관심이,”

“맞아요. 나 요한 씨한테 관심 많아요.”

남자한테 이런 종류의 말을 들어본 건 처음이라 약간 당황했다.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테이블 위에 고개를 처박고 잠든 형과 형의 등에 얼굴을 박고 코를 고는 하선재를 확인했다. 남은 맥주를 모두 마셨다.

“음, 저한테 관심 가져주시는 건 감사한데…….”

“감사한데?”

“제가 누굴 만나고 할 여유가 없어서요.”

불빛을 노랗게 반사하는 맥주잔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요한 씨한테 긍정적인 답 바라고 한 말 아니에요.”

“…….”

“그럼 이제부터라도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는 있을까?”

평소 울림이 큰 목소리가 한껏 작아져 있었다. 나를 배려해서 하는 행동인 걸 안다. 강현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마음을 강요하지 않고, 제 감정만 깔끔하게 전한 뒤 멋대로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문득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내 손가락을 가져가 천천히 붙잡았던 하얗고 마른 손이 떠올랐다. 버석한 손바닥의 감촉이 선명해졌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요한 씨가 언제까지 생각하든 충분히 기다릴 수도 있어요.”

“…….”

“그 정도 기회는 줄 수 있지 않나?”

기회. 저한테 기회를 줘요. 정진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강현의 남자다운 목소리 위로 겹쳤다.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약한 고갯짓을 본 강현이 말했다. 고마워요.

하선재를 택시 태워 보낸 뒤 집 앞까지 함께 걸었다. 힘든 기색 없이 늘어진 형을 들쳐 업은 강현이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본인의 유학 생활이나, 작품을 할 때의 에피소드였다. 지금은 사무직에 있지만 대학 내내 나도 무언가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형을 침대에 눕히고 양말을 대충 벗긴 뒤 부엌으로 나갔다. 식탁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강현이 나를 보고 웃었다.

“두 분이 같이 사는 줄은 몰랐네.”

“동기여서 대학 때부터 같이 살았어요.”

“그래요. ……그럼, 대학 때 만나던 사람도.”

“아니. 형은 몰라요.”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봤다. 왜 안 가지. 잠시 마주보고 서 있다가 어색하게 말했다.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고마워요.”

차를 마시는 강현 앞에 앉아 가벼운 대화를 조금 더 나눴다. 다 식어버린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어요. 저 갈게요.”

“집 앞까지 같이 나가요.”

“아니에요. 연락할게요.”

내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힌 강현이 외투를 챙겨 입었다. 현관을 나서는 강현의 뒷모습이 계단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문을 닫았다. 씻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얼마 후 핸드폰이 진동했다. 집에 잘 들어갔다는 강현의 메시지에 짧게 답장하고 잠시 망설이다 정진우의 이름을 꾹 눌렀다. 일정을 공유하는 사이사이 식사는 했냐, 집에 잘 들어갔냐는 물음들이 끼어 있었다. 한 번도 답장을 한 적은 없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이었다. 자겠지. 갈 곳을 잃은 손가락이 메시지 창 위를 누르지 못한 채로 떠돌았다.

전 팀이 바쁘게 움직인 덕에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모든 사항이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일정을 바꾸면서 드는 비용 문제나 정진우 측에서 어떻게 반응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작가 본인이 너그러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대충 인사하고 일어나 정진우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서울에 가족이 있는 집이 있는데 굳이 호텔 투숙을 고집했던 정진우의 의중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스무 살. 부모의 억압이나 집착, 간섭 같은 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완전히 타인인 내가 봤을 때도 정진우의 어머니는 무서웠다.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만으로 자신의 몸을 망설임 없이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무서웠다. 호텔 로비에 앉아 정진우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생각했다. 그렇게 무서운데도 너는, 어떻게 다시 나와 시작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천장에서 반짝이는 샹들리에에 달린 유리조각들을 하나씩 셌다. 스무 개쯤 세었을 때 눈앞에 불쑥 정진우의 얼굴이 나타났다. 샹들리에를 가리며 나타난 정진우가 나를 내려다보며 슬쩍 웃었다. 그림 같은 입매가 말려 올라가며 입가의 점이 함께 들렸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곧장이라도 내 얼굴로 쏟아질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얼굴에 놀란 거라고 속으로 되뇌며 웃는 얼굴에 말했다.

“빨리 내려 왔네. ……발은 어때. 좀 괜찮아?”

“괜찮아요. 걷는 거랑 씻는 게 좀 불편하긴 한데, 이렇게 다친 게 처음도 아니고.”

여상하게 말하는 정진우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말 그대로였다. 정진우의 몸에는 문신뿐만 아니라 상처 또한 가득했다. 작업하다 생긴 상처들이겠지. 그럼에도 서글펐다. 수많은 문신에 가려진 상처들, 허벅지부터 종아리, 발목까지 이어진 여러 긁힌 자국들은 정진우의 작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정진우를 옆으로 물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진하게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똑바로 시선을 맞추던 눈동자가 조금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시간 늦겠다. 가요.”

“택시 불러야 하지?”

“아니에요. 바로 길 건너면 있는 데여서, 그냥 걸어도 될 것 같아요.”

절뚝이며 걷는 정진우의 팔을 잡았다. 천천히 가. 팔을 어깨에 걸치고 허리를 감쌌다. 도톰한 야상 아래로 정진우의 딱딱한 몸이 느껴졌다. 잠시 굳어 있더니 푸흐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귓가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정진우의 말대로 병원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병원인지 아주 깔끔했다. 상처 부위에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간 정진우를 부축해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 도착해 푹신한 소파에 앉은 정진우가 나를 올려다봤다. 불빛을 반사하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맑고 깊은 시선에 잠시 몸이 묶였다. 잘 움직이지 않는 온몸의 근육을 억지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 수는 있지? 잘, 들어가고. 나 이제 가 볼게.”

“…….”

“내일, 카트린이랑 같이 나올 거야? 벤 예약해놨으니까 나오고 싶으면 나와.”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주워 담았다. 벤이 아니라 일반 택시를 예약해도 정진우의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다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정진우가 다치는 바람에 나와 정진우, 니시카와는 퍼포먼스를 다시 재개할 때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셋이 본격적으로 함께 움직인 지도 3년이 되어 가는 마당에 정진우와 니시카와가 배웅을 안 나올 리가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무언가가 내 걸음을 저지했다. 고개를 내려 밑을 확인했다. 정진우의 손가락이 내 코트 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식사, 아직이죠.”

“…….”

“저녁 먹고 가요. …많이 불편하지 않으면.”

말끝을 흐린 정진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손의 악력에 의해 구김이 간 코트 끝자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자동반사적으로 옅은 한숨이 나왔다. 핏기가 사라진 손끝에 잡혀 있는 코트를 천천히 빼냈다. 까만 머리는 내가 코트를 완전히 빼낼 때까지 미동이 없었다.

“그래. 평소에 식사는 어디서 해?”

“…….”

“저녁 안 먹을 거야?”

고개를 쳐든 정진우가 옅게 기침했다. 낮은 목소리가 더듬더듬 장소를 말했다. 평소에는, 호텔에서 해결해요, 지금, 음, 여기 레스토랑 괜찮아요. 연어 스테이크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아 생선 별론가. 고기는……. 횡설수설하는 정진우를 일으켜 세웠다. 내 팔을 잡은 정진우가 작게 속삭였다.

“거절할 줄 알았어요.”

다시 만난 뒤의 정진우는 가끔, 굉장히 연약해 보였다. 나보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어디 하나 연약한 구석이라곤 없는 몸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 정진우의 모습을 접할 때면, 감정이 끝 간 데 없이 가라앉아 울렁였다.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인 것들이 제멋대로 엉겨 뭉근하게 파도쳤다. 움직이는 감정의 물결 위로 가끔씩은 분노가 올라오고, 가끔씩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연민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어딘가, 나도 모를 수 있도록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가장 격렬한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정진우는 많이 웃었다. 카트린, 니시카와와 비는 시간 동안 서울 관광을 한 이야기나, 미술관과 호텔 근처 맛 집을 찾아다닌 이야기와 함께 날렵한 눈매가 둥글게 휘어지기를 반복했다. 딱히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그냥 정진우의 노래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고기를 썰어 입에 넣는 걸 반복했다. 정진우가 함께 시킨 와인으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입가를 닦았다. 원형 그대로 온기를 잃어가는 정진우의 연어 스테이크와 말간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눈치챈 정진우가 끝없이 이어가던 말을 멈췄다. 제 접시와 내 접시를 확인하는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다, 먹었네. …언제 다 드셨어요.”

내가 너무 빨리 먹었나. 시계를 확인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시간을 눈치챈 정진우의 얼굴이 점점 시뻘게졌다. 포크를 들어 접시를 뒤적거리는 행동에 챙, 맑은 소리가 반복해 울렸다. 정진우가 너무 민망해해서 괜히 나까지 민망해지는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편하게 먹어. 나는 괜찮아.”

“네.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했죠. 죄송해요.”

언제 웃었냐는 듯 우울한 표정으로 얼마간 스테이크를 이리저리 건드리던 정진우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와인을 들어 몇 모금 마시더니 그것도 그만둔다. 손가락으로 잔을 쓰다듬는 걸 보고만 있었다.

“선배는, 말이 없네요.”

정진우의 예쁘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이 빠르게 움직였다. 길고 마디가 굵은 검지가 보울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더니 스템을 꽉 잡는다. 손등의 뼈마디가 불거져 나왔다.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아래를 향했던 시선을 들었다. 핏줄이 선 손과는 다르게 얼굴은 예쁘게 웃고 있었다.

“같이 식사해줘서 고마워요.”

“……. 더 안 먹게?”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어차피 밤에 우리 팀끼리 술 한잔하기로 했고. 말을 마친 정진우가 밥값을 계산했다. 잘 먹었다. 고마워. 아니에요. 서로 인사를 반복하다가 상황이 우스워지기 전에 정진우를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다. 내일 봐요. 닫히는 문 사이로 정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층수가 변하는 엘리베이터에 대고 말했다. 그래.

정진우가 묵고 있는 호텔은 미술관과 우리 집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한 집 안은 불이 꺼진 채로 깜깜했다. 퇴근했을 텐데. 형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만 가고 안 받는다. 혜연 누나와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안 들어오겠네. 아침에 쌓아뒀던 설거지를 하고, 내일 입을 셔츠 다림질도 끝내 놓으니 금세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왔다.

샤워를 마친 뒤 침대로 가다가 비죽 튀어나온 캔버스에 발을 찧었다. 어느새 캔버스가 책상과 수납장 사이에서 반 이상 기울어진 채로 튀어나와 있었다. 악 소리도 못 내고 아픈 게 가라앉을 동안 쭈그려 앉아 발을 붙잡고 있었다. 일어나려는데 발로 차는 바람에 찢어진 종이가 눈에 걸렸다. 제대로 끼워 넣으려던 캔버스를 잡아 뺐다. 감싸놓은 종이가 다 찢어져 뒷면이 만신창이였다. 어쩌지. 잠깐 고민했다. 모르겠다. 다시 벌어진 틈 사이로 넣어놓으려 캔버스를 집어 들다 찢어진 종이 사이로 뭔가 보이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01/ 17,08,20XX

8년 전, 정진우에게 이 그림을 선물 받았던 내 생일날이 적혀 있었다. 왜 지금까지 몰랐지. 캔버스 틀에 아주 작게 새겨져 있어서 못 보고 지나간 것 같았다. 사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던 적도 별로 없었다. 형태가 어땠는지 이젠 잘 생각도 안 났다. 보기는 싫은데 버리질 못해서 정진우가 사라진 뒤로 아무렇게나 종이로 둘둘 말아놓고 처박아 놓기만 했으니 그럴 수밖에. 불쑥 일어난 신경질에 캔버스를 틈 사이에 꽂아 놓고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고개를 돌려 배게 옆에 자리한 핸드폰을 툭툭 건드렸다. 전원 버튼을 꾹 누르니 어둠 안에서 새파란 불빛이 반짝였다. 서서히 옅어지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비행기 시간에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예약한 밴을 아침 일찍부터 호텔 앞에서 기다렸다. 아직 정진우 일행은 나오지 않았다. 시계를 확인하니 내가 30분 정도 일찍 나와 있었다. 시간이 좀 뜨네. 커피 한잔하고 있을까. 고민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바깥에서 기다리기엔 날이 많이 추워서 일단 로비로 들어가려고 하려는데 강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여보세요.”

-요한 씨, 뭐 하고 있어요? 란인가?

“…아니, 잠깐 일이 있어서. 밖이에요.”

-아……. 그래요. 시간 되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하려 했는데. 안 되겠네.

“음, 네. 오늘은 조금.”

-뭐, 어쩔 수 없지. 일은 언제 끝날 것 같아요?

별 생각 없이 대답하려던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전화로라도 얘기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봤던 술집에서, 본인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냐고 묻는 강현에게 고개를 끄덕였던 건, 감정적인 마음이 앞서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은 적어도 나를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버리진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됐다. 나는 애초에 누군가와 연애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강현이든 누구든. 정진우라도.

“저, 강 작가님.”

-네?

“음. 어…….”

-왜 그렇게……. 전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오늘이나 내일, 시간 날 때 잠깐 볼까요?

낮고 굵은 목소리가 다정한 제안을 했다. 누군가에게서 애정 어린 배려를 받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턱을 쓸면서 느리게 대답했다.

“내일까지는 좀 무리일 것 같고. 다음 주중에 볼 수 있을까요.”

-좋아요. 언제든 시간 날 때 연락 줘요.

“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수화기 너머로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하게 웃던 강현이 대답했다.

-요한 씨도.

끊어진 핸드폰을 든 채로 찬바람을 조금 맞았다. 담배를 한 대 더 피웠을 쯤 호텔 앞에 벤이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나올 거예요. 기사님께 말을 건네자마자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카트린이 나왔다. 차례로 짐을 싣고 벤에 올라타 공항으로 향했다. 뒷좌석에서 셋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한창 운전을 하고 가시던 기사님이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끔대더니 나에게 작게 소곤거렸다.

“저 말은 어디 나라 말이에요?”

“아… 독일어예요.”

“아. 그래, 영어는 아닌 것 같았어. 신기하네.”

“네…….”

대답하며 나도 기사님처럼 뒷좌석을 흘끔거렸다. 카트린은 장시간의 비행 때문인지 맨얼굴에 머리를 늘어뜨려 묶은 채였다. 결이 좋은 금발이 얼굴 옆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었다. 계속해서 카트린과 니시카와, 사이에 앉은 정진우를 훔쳐보는 와중에 룸미러를 통해 머리를 넘기던 여자의 파란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여자의 우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진우가 왜 웃냐고 물어보는 소리를 듣다가 화끈거리는 귓불을 잡았다. 항상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짓곤 하던 카트린의 의미심장한 표정 때문인지, 나도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마음을 카트린에게 전부 들킨 것만 같았다.

비행기 수속을 마치고 담배를 피우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이 만나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형식적인 대화였다. 탑승 시간 전 출국장으로 들어서려는 카트린이 문득 정진우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정진우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항상 너에게 행운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융. 감겨 있던 카트린의 눈이 천천히 열리며 멀뚱히 서 있던 내 모습을 오랫동안 담았다. 정진우에게서 몸을 떼어낸 카트린이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요한.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저도예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진심으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카트린의 깊은 눈매를 마주하다 약하게 고갯짓을 했다. 니시카와와 정진우를 한 번씩 쓰다듬은 카트린이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자 정진우가 니시카와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예약해놓은 공항택시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란으로 바로 들어가야 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잠깐. 예, 여보세요.”

만나기로 한 구역을 확인한 뒤 전화를 끊고 정진우에게 물었다. 왜. 정진우가 뒷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니시카와는 따로 볼일이 있다는데, 같이 점심식사 하고 들어가실래요.”

정진우를 한참 응시했다. 내 시선을 받아내던 정진우가 입매를 쓸어내린다. 점심 잘 안 드신다고, 그랬나. 머리를 흩트리다 도착해 있을 택시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니시카와와 정진우에게 손짓했다.

“니시카와가 따로 볼일이 있다는 거, 정말이야?”

“…….”

“진우야. …난 너랑 어떤 것도 시작할 마음, 없어.”

정진우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그대로 자리에 멈췄다. 어린애처럼 구는 정진우의 팔을 잡고 끌었다. 앞서 걷던 니시카와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갑자기 왜,”

“요즘 내 태도가 너한테 어떤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정진우와 니시카와를 뒷좌석에 태운 뒤 목적지를 말했다. 강현이고 정진우고, 다 정리해 버려야 했다. 정진우에게 내 마음을 전하며 깨달았다. 정진우가 다친 뒤로 나는, 정진우에 이어 나까지 합리화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다쳤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연락 한 번은 해도 되지 않을까. 얼굴 한 번은. 봐도 되지 않을까. 기가 막혔다. 호텔 앞에서 나를 붙잡는 정진우의 손을 느리게 밀어냈다. 미술관까지 혼자 걸으며 생각했다.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것이 정진우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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