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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7화 (17/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7화>

17화. 하고 싶습니다

김진모가 굳은 표정으로 안시현에게 다가갔다.

전날 저녁.

연습실을 떠나기 전부터 김진모는 안시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며 지금은 동거하는 사이이다 보니 안시현의 미묘한 변화를 캐치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할까 싶었지만, 고민 끝에 관뒀다.

어쩌면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자신이 망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안시현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잠을 안 잔 게 분명한 몰골로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김진모는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괜찮아?”

“안…… 괜찮은 거 같아.”

“너 지금 되게 위험해. 감독님께 말해서 촬영 미루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아버지를 통해서 많이 듣고 봤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촬영, 할 거야.”

“야!”

김진모가 보게 드물게 소리를 질렀다.

굳은 얼굴로 안시현을 노려보았지만, 고함의 대상인 안시현의 표정에선 기이하리만큼 감정의 고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무슨 짓을 해도 찾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오늘 촬영하지 않으면 난 분명 후회할 거야. 뜯어 말린 널 원망할 거고.”

“하아.”

김진모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화를 내면서도 얼추 예상하긴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안시현이 고집을 꺾을 않을 거라고 봤다. 다른 일에서는 유독 순한 놈이, 연기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도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안시현을 설득할 근거가 부족하기도 했다.

지금 안시현은 경계선상에 놓여 있다. 원하는 바를 얻으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거고, 실패한다면 지독한 슬럼프를 겪거나 다른 부작용이 있을 거다.

위험부담이 있다고 성장의 기회를 포기해라?

곧이곧대로 들을 배우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아오, 담배 땅기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대신 정말로 위험하다 생각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뜯어 말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고맙다.”

“고마우면 제발 미친 짓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내라. 무리하다가 가랑이 찢어져서 무너진 선배들 많이 봤어. 너까지 그러는 거, 난 죽어도 못 본다.”

안시현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김진모의 마음이 느껴졌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모님 다음으로 자신을 가장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김진모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안시현은 답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랐다.

신 22 이후 느끼고 있는 모종의 감정.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   *   *

신 99를 촬영하기 전, 황영민과 곽상필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베스트 컨디션이 아닌 걸로 보이는 안시현의 상태를 감안해 황영민이 촬영을 미루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곽상필 감독이 보더라도 안시현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신이다 보니 무리해서 연습을 하고 온 게 확 티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뭐,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요.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그때 신 99는 미뤄서 촬영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촬영을 미루는 선택을 하진 않았다.

지금껏 안시현은 단 한 번도 곽상필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디션 때부터 시작해서 대본 리딩과 촬영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좋은 연기를 보여 주며 발전해 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촬영 후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다 갑자기 연습에 몰입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메소드 연기의 후유증이라 여겼지만…….

지금 보니 또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메소드 연기의 후유증이라면 매 신을 촬영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고 일상에도 지장이 가는 게 보통인데, 안시현의 경우 일상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촬영 후에도 멀쩡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았다.

게다가 피곤해 보이는 와중에도 정신만큼은 또렷해 보였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뚫어져라 대본을 읽는 걸 보면 집중력은 확실히 살아 있었다.

곽상필 감독은 안시현이 밤새 연습을 하고 온 이유를 짐작했다. 오랜 감독 경험 덕에 안시현과 비슷한 증상을 겪는 배우들을 몇 번 봤다. 심지어 완벽히 유사한 케이스도 존재했다.

‘어쩌면, 최 배우가 예전에 겪었던 그 현상일지도 모르겠어. 흐음. 조금 더 지켜볼까?’

때문에 곽상필 감독은 안시현의 상태와 무관하게 촬영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그 현상을 안시현이 겪고 있는 거라면, 촬영을 연기하는 게 아닌 강행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곽상필 감독은 안시현을 따로 불렀다.

“안 배우.”

“네, 감독님.”

“디렉팅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촬영이라는 걸 잊고, 당신의 리수철을 마음껏 보여 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안시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았다 뜨고서 리수철이 됐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리수철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했다.

그 모습에 곽상필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저 정도의 집중력이라면 현 상태와 무관하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액션.”

최철만 상위가 운영하는 고아원.

운동장에 발을 들인 리수철은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봉사자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보육 시설에 봉사를 온 게 처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보육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해 본 적 없는 12명이, 때마침 리수철이 고아원을 방문한 날짜에 처음으로 봉사를 왔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리수철은 의심했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 갔다.

최근 들어 계속해서 연락이 끊긴 남파공작원들, 최진웅의 사망과 뉴스 보도, 편지로 알게 된 최철만 상위가 이중 간첩이라는 정보까지.

결국 리수철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저들은 봉사자들이 아니다. 아마도 최철만 상위와 내통한 국가안전기획부 직원, 혹은 경찰…….’

저들은 봉사자들이 아니라고,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나 경찰이 위장을 한 거라고 말이다.

리수철이 추측을 하던 그때.

“수철 아저씨! 도망쳐요! 이 사람들 경찰이에요! 아저씨 잡아갈 거라고 원장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거 제가 다 들었어요!”

목청껏 소리친 고아원 아이 덕분에 리수철의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남파공작원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 리수철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아원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을 잘 챙겨 줬던 좋은 아저씨일 뿐이었다.

덕분에 리수철은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시발! 저 새끼 잡아!”

“그냥 쏴 버려! 어디 한 군데 날려 버리라고!”

“죽어도 되니까 그냥 쏴! 남파공작원 한 새끼 죽인다고 아무도 뭐라 안 해!”

국가안전기획부 직원과 경찰들의 다급히 위장을 벗어던졌다. 총을 꺼내고 리수철을 겨눴다. 당장에라도 발포할 기세로 리수철을 포위하려 했건만…….

“꺄아악!”

“이, 이 간나 새끼들! 움직이지 말라우!”

그보다 리수철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재빨리 고아원 여선생에게 접근한 안시현은 그녀의 뒤를 잡고서 칼로 목을 겨눴다.

“싹 다 죽여 버리갔어! 내래 리수철이야! 백두조장 리수철! 어디서 개수작이가!”

그리고는 악에 받친 채 소리쳤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 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연습으로 인해 밤을 지새우면서 충혈된 눈은 리수철이 처한 상황을, 궁지에 몰린 남파공작원의 처절함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됐다.

“리, 리수철! 진정해! 일단 그거 내려놓고…….”

“닥치라우! 에미나이 죽는 거 보고 싶어? 어디서 개수작이가!”

“인질이 죽으면 너도 죽는 거라고, 이 자식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내가 급식소에서 나왔다.

강석우.

큼직큼직한 사건을 일으킨 남파공작원들을 잡아들이는 그림을 그리던 이장혁 2차장의 뜻을 거스르고, 최대한 많은 남파공작원을 포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안전기획부 직원.

그는 리수철과의 거리를 조심스레 좁혀 나갔다.

“백두조장 리수철. 침착하게 내 말 들어. 위에서는 널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어. 너만 원한다면 이 상황, 아무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더, 더러운 남조선 쌍간나 새끼들! 내래 공화국의 혁명전사다! 자본주의의 개들에겐 굴복하지 않는다우!”

“정신 차려, 리수철! 북한은 이미 널 버렸어! 오랜 시간 꽁꽁 감춰져 있던 네 정체를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됐을 거 같아? 북한에서 넘긴 거라고, 북한이 남파공작원의 신변으로 우리와 거래를 했다고!”

리수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렴풋이나마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남파공작원들과 하나둘씩 연락이 끊기고,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최진웅은 일련의 사건을 일으키고서 사살 당했다. 거기에 최철만 상위가 변절자라는 정보까지 알아 버리고야 말았다.

이 모든 걸 당에서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이 이번 일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추측하는 것과 그것이 사실이 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리수철이 칼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당장에라도 인질의 목을 그을 기세였다.

충격적인 진실을 접했음에도.

“증, 증거 있어? 증거 가지고 오라!”

리수철은 여전히 현실을 부인하려고 했다.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증거가 없는 한 간악한 국가안전기획부의 모략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증거? 증거라면 여기 있어.”

“원장님!”

“강석우 씨,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안으로 옮깁시다. 듣는 귀는 적을수록 좋으니.”

상황을 지켜보던 최철만 상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상황을 진정시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봤다.

이미 원하는 규모의 사건은 모두 일으켰다.

그가 리수철에게 바라는 건 변절해서 대한민국에 정착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거였다. 자신을 버린 당에 끝까지 충성하는 머저리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남과 북, 양쪽에 발을 걸친 채 살아가는 최철만 상위가 옛 제자에게 느끼는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동, 동무. 동무, 정말…… 변절했습네까?”

“음. 뭔가 오해가 있군. 난 당에서 내린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만?”

“남조선 아새끼들과 내통하는 게 당에서 내린 명령이란 말입네까? 당이 정말로 그리 명령했습네까?”

“리수철 동무, 내 임무는 국가안전기획부와 내통해 당에 이익을 가져오는 거다. 서영만을 넘기는 걸로 쌀을 받았고, 추가로 남파공작원 몇 명의 정보를 제공하는 걸로는 돈을 받기로 약속했다. 거기에 남파공작원들이 사고를 치며 당에서 받아 낼 게 늘어나는 거였고.”

“쌀과 돈이 동생보다 중요했습네까? 동무, 내가 아는 최철만 상위가 맞긴 한 겁네까?”

“동생? 아, 최진웅?”

피식.

최철만 상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최철만 상위는 리수철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최진웅은 아니었다. 연민은커녕 매 순간 경멸했다. 단 1분 1초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과감히 최진웅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였다.

“길바닥에서 빌어먹던 거지 새끼와 내가? 재밌는 농담이네. 뭐…… 그래도 당에 이익이 되는 죽음이었으니 사람 구실을 다한 거 아니겠어?”

“사람…… 구실?”

“그래도 리수철 네 입장은 최진웅보다 나은 편이야. 무려 선택지가 있거든.”

“……말해 보시라요.”

“첫 번째. 이 자리에서 소란을 일으키다가 최진웅처럼 사살된다. 두 번째. 변절하고 적당한 정착금과 신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네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하, 하하하……. 크흐흐흐흐! 아하하하하!”

리수철이 웃었다. 한 번 터진 웃음은 멈추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웃겼다. 웃겨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웃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하게.

리수철의 안면이 굳어 갔다.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최철만 상위를 응시했다.

“내레…… 뭘 해야 할지 알겠습네다.”

최철만 상위의 말로 인해 리수철의 마음속 혼란이 사라졌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마침내 결정할 수 있었다.

사실 리수철의 선택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평생을 당의 명령에 충실하며 살아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당의 명령에 눈곱만큼도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풀린 자물쇠는 혼란을 주는 것에 그쳤다.

평생을 부품으로 살아온 남자의 왜곡된 신념을 씻어 내기엔 파도가 너무 약했고, 풀린 자물쇠가 가려질 만큼 풀리지 않은 자물쇠가 너무 많았다.

퍽!

리수철이 인질을 발로 걷어찼다. 더 이상 인질을 잡는 건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동시에.

“김일성 장군…… 만세!”

푸욱!

인질을 겁박하는 수단이었던 날붙이가 리수철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리수철!”

“……멍청한 자식!”

강석우와 최철만 상위가 리수철을 향해 내달렸다. 경찰들이 그 뒤를 따랐다.

최철만 상위가 다급히 맥을 짚었다. 칼이 파고든 부위를 응시하며 안시현의 상태를 살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가능성 없소.”

“왜……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만 주어지면 리수철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를 왜 몰아붙인 겁니까!”

“진실을 알려주고, 선택하게 해 주고 싶었소. 그게 교관으로서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소.”

“당신, 지금 그걸 말이라고…….”

강석우와 최철만 상위가 다투는 가운데.

뚝. 뚝.

리수철의 눈에서 눈물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흐려지는 의식 속, 리수철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최대한 멀리 내뻗으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속삭였다.

“공화국…… 만세…….”

*   *   *

촬영 이후 줄곧 그러했듯이 안시현의 연기를 걱정하는 건 기우에 불과했다.

안시현은 궁지에 몰린 남파공작원을 제대로 표현했다.

분노, 혼란, 원망, 체념.

여러 감정을 보여 줘야 하는 장면에서 곽상철 감독이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수준의 적절한 표현이었다.

역시나 마지막 자살 장면은 화룡점정.

안시현은 날뛰었다. 촬영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곽상필 감독이 요구한 대로 마음껏 연기했다. 촬영이라는 것도 망각한 채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여기서 뭘 더 요구해야 하는 걸까?

곽상필 감독은 마땅히 떠올리지 못했다.

“OK.”

고개를 끄덕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대로 가겠습니다.”

안시현도, 황영민도, 김진모도 다들 연기가 좋았다. 곽상필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카메라 감독들은 세 배우의 열연을 최고의 구도에서 필름에 담아냈다.

이 정도의 결과물이라면 관객들도 만족할 거라 봤다.

황영민과 김진모도 자신들의 연기에 만족했다.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감독님. 죄송한데,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촬영장에서 단 한 사람.

안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간첩입니다』촬영 이후 처음으로 배우가 먼저 리테이크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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