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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59화 (59/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59화>

59화. 대세라 이건가?

1990년대에 해외로 수출된 한국 드라마가 없던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수출이 되기 시작하는 건 2000년대 초반부터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수출된 드라마들 중 일부는 유독 일본에 큰 인기를 누르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설마 『너와 나의 시간』이 해외 수출 드라마 대열에 합류하게 될 줄이야.

‘대세는 대세라 이건가?’

안시현은 『너와 나의 시간』의 일본 방영권 계약 소식을 듣고서 적잖게 놀랐다. 일본에 수출이 된다고 하니 다시 한 번 『너와 나의 시간』의 인기가 체감됐다.

언론에서 괜히 센세이션 타령을 하는 게 아니었다.

‘김 작가님의 다른 드라마처럼 대박이 나려나?’

김희숙 작가가 집필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해외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작정하고 해외 시장을 노려 사전 제작 및 중국에서의 동시 방영을 시도한 적도 있다.

결과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대박이 났다.

안시현은 내심 『너와 나의 시간』이 일본에서 대박이 나기를 바랐다. 국내 한정이 아닌, 해외에서도 통하는 드라마의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뜻밖의 소식에 놀란 건 안시현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와, 배우들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희 드라마가 진짜 일본에 방영돼요?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PD님?”

“내년 초 편성이라고 확답을 받고 오는 길입니다. 일본 방송사 측에서 흥행을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합니다.”

“와…… 이거 시청률 50%보다 더 큰 일 아닌가?”

“이러다 일본에서도 대박 나는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일본 여행 갔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그러는 거 아냐?”

“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해!”

희소식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가 한껏 살아났다.

오늘 방영될 12화를 기점으로 『너와 나의 시간』은 반환점을 돌게 된다. 18화의 촬영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촬영 기간 또한 고작해야 한 달 남짓 남았다.

이사회에서는 잊을 만하면 연장 방영을 권유하고 있지만, 최창국 PD는 여전히 눈곱만큼도 고민하지 않고서 제안을 거절하는 중이다.

『너와 나의 시간』은 무조건 24화에 종영한다.

과연, 앞으로 남은 13화를 방영하는 동안 얼마나 더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제작진과 배우들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까지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   *   *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너와 나의 시간』은 12화에서 시청률 42.4%를 기록하며 마침내 40% 돌파에 성공했다.

20%에 근접한 시청률로 방영을 시작했던 초반의 기세와 달리 어느새 10.5%까지 하락한 『벚꽃이 진다』와, 주연 배우가 하차하며 루머가 사실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게 된 시청률 2.5%의 『사랑하고 싶어』는 『너와 나의 시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실상 저녁 9시 55분 수목드라마는『너와 나의 시간』의 독주 체제가 확고해졌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오죽하면 방영 다음 날마다, 낮 시간대에 재방송 좀 자주 해 달라는 글이 MBS 공식 홈페이지에 수백 개가 넘게 올라올 정도였다.

말 그대로 『너와 나의 시간』 열풍이었다.

덕분에 MBS 드라마국은 연일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극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방영이 끝난 지 몇 달이나 지났다고, 수목드라마에서 시청률 50%를 정조준 중인 드라마가 탄생했다.

심지어 천덕꾸러기 취급했던, 제대로 된 지원조차 해 주지 않았던 작품이 사고를 친 거다.

뒤늦게 제작비를 올려줬더니 배우들이 단체로 마약 파티라도 하는 게 아니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MBS 드라마국에서는, 불과 한 달 여 전까지 KNC의 『거짓말』이 노렸던 최고 시청률 55% 내외도 가능할 거라 자체 진단하고 있었다.

잔칫집 분위기가 아닌 게 이상한 상황이다.

그리고 또 한 곳.

“흐흐흐…….”

JM액터스 또한 축제 분위기였다.

1년여 전 계약한 신인 배우가 최고 시청률 50% 이상이 유력한 24부작 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꿰찼다. 매 순간 엄청난 연기를 보여 주며 어느새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주연급 배우로 당당하게 성장했다.

보통 배우들의 몸값은 출연 작품과 인지도의 상승에 따라 단계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시현의 경우 중간 과정이 꽤나 생략됐다.

『형아, 동생』의 개봉과 『너와 나의 시간』의 방영이 불과 몇 달 차이가 나는데, 두 작품 모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덕분이었다.

덕분에 안시현을 향한 광고와 방송 출연 문의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 박정상과 김진석 대표의 선에서 1차와 2차로 걸러야 할 정도였다.

JM액터스는 안시현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광고 촬영을 비롯한 외부 스케줄은 최소한으로 소화시켰다. 지금은 『너와 나의 시간』의 촬영이 더 중요하다는 게 김진석 대표의 판단이었다.

혹여나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체력 저하로 드라마 후반부에 연기가 무너질까 우려했다.

어차피 시간은 안시현의 편이다.

촬영을 마무리하고, 휴식 기간에 외부 스케줄을 마음껏 소화하면 되니 급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안시현과 JM액터스는 제법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될 거다.

몸값을 올리는 게 어렵지, 일단 한 번 올리고 나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아, 요즘 자꾸 웃음이 나와서 큰일이야.”

『너와 나의 시간』 12화의 시청률을 확인한 김진석 대표는 박정상을 앞에 두고서 한참 동안 웃었다.

너무 좋아서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박정상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 역시 담당 매니저로서 안시현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뿌듯함을 느꼈다.

“시현이가 잘해 주고 있으니 이제 우리만 잘하면 되는 건가? 벌써 방영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군.”

『너와 나의 시간』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하는 사이, JM액터스가 자체 제작하고 MBS에서 방영하는 월화드라마 『너를 부르다』의 방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JM액터스의 향후 운영 방향을 결정하게 될 대형 프로젝트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분위기만 조금 더 좋으면 최고일 텐데요.”

“분위기가 왜?”

“진모에 대한 여론, 아시잖습니까.”

박정상은 썩 좋지 않은 분위기에 아쉬움을 느꼈다.

방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전부터 『너를 부르다』와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김진모와 관련된 기사였다.

낙하산 논란.

주인공 이진수 역을 따낸 게, 그의 역량이 아니라 JM액터스 김진석 대표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니셜만을 언급한 루머성 기사로 시작해, 최근에는 대놓고 실명을 언급한 기사까지 나왔다.

“아아. 그거 말인가? 난 또 뭐라고.”

심각한 분위기의 박정상과 달리, 김진석 대표는 지금의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KNC도 어지간히 속이 상한 거지. 주말이야 치고 박는 분위기라 쳐도, 수목에서 당연시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니 월화라도 이기겠다는 거 아니겠어?”

김진석 대표는 『너와 나의 시간』과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의 배후에 KNC가 있다고 확신했다.

뭐, 그렇다고 따로 대응할 생각은 없었다.

방송국과 대립하는 건 연예기획사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연예계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김진석 대표라도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물론 루머를 유포한 언론사를 고소한다고 해서 KNC가 발끈할 일은 없다. 만약 그랬다간 KNC가 루머 유포의 배후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하나 김진석 대표는 그마저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그 이유 또한 명확했다.

‘슬슬 노이즈 마케팅을 시작해 보실까.’

KNC 드라마국은 알지 못했다.

『너를 부르다』를 견제하기 위해 퍼트린 루머가, 오히려 김진석 대표를 돕는 행위임을 말이다.

*   *   *

JM액터스가 최근에 원하는 건 총 세 가지였다.

황영민이 원톱을 맡은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넘는 것, 『너와 나의 시간』이 시청률 50%를 돌파하는 것, 마지막으로 『너를 부르다』의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였다.

첫 번째 두 번째는 흘러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목표였다.

문제는 세 번째인데…….

김진모 낙하산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와중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방영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김진석 대표는 예고편을 통해 반전을 시도했다.

『너를 부르다』의 예고편을 본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당황했고, 두 번째에는 감탄했으며, 끝내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루머는 루머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

보통 방영 전 내보내는 예고편은 드라마 초반의 내용을 함축하거나,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장면 위주로 편집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너를 부르다』는 달랐다.

김진모가 오디션 당시 지정연기를 하는 모습의 일부를 편집 없이 예고편이라고 내보낸 것이다.

낙하산 논란이 있는 김진모의 연기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함과 동시에, 루머를 정면 돌파하며 노이즈 마케팅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너를 부르다』가 1화에서 11.3%, 2화에서 14.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쾌조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1화부터 오열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린 김진모를 극찬하는 기사가 쏟아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창 촬영에 매진하던 중, 안시현은 박정상을 통해『너를 부르다』의 1화와 2화 시청률을 전달받았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짜식, 역시나 잘하고 있네.’

아주 가끔, 옷을 가지러 오는 걸 제외하면 김진모는 두 달이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촬영장 근처 여관에서 장기 숙박하며 연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그 노력이 시청률로서 보답 받는 분위기였다.

‘나도 더 열심히 하자. 뒤처지면 안 되니까.’

18화의 방영까지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5번의 방영 이후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게 될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촬영도 막바지에 다다를 거다.

드라마 첫 주연은 안시현을 조금씩 지치게 하고 있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의 촬영 기간이 길기에 주연으로서의 책임감도, 메소드 연기로 인한 후유증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너와 나의 시간』을 촬영하는 동안, 안시현은 자신이 메소드 연기의 후유증을 심하게 겪는 편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만큼 드라마 주연으로서의 첫 일정은 고됐다.

힘들었지만 그 대신 명확한 성과가 따라왔다.

시청률과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기본이고, 촬영을 거듭할수록 스스로 연기가 발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너와 나의 시간』의 촬영을 끝마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연기와 관련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지금은 미래를 생각할 때가 아닌,『너와 나의 시간』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생각할 때였으니까.

“시현 씨, 지금 감정 괜찮아요?”

“네. 지금 상태면 MBS 사장님이 눈앞에 있더라도 시비 걸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하. 좋아요. 그럼 바로 들어가죠.”

잠깐의 휴식 이후.

안시현이 다시 촬영에 매진했다.

김진모도 『너와 나의 시간』의 흥행도,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웠다.

단 하나.

오롯이 정영빈만을 떠올리며 최선을 연기를 펼쳤다.

*   *   *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 나간 『너와 나의 시간』은 17화에서 시청률 48.5%를 기록했다. 어느 순간부터 제작진과 배우들의 공통된 목표였던 50% 돌파가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때마침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인 18화의 방영을 앞둔 상황에서, MBS 드라마국과 JM액터스는 『너와 나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다.

-『너와 나의 시간』 최창국 PD, ‘18화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 많은 관심 가져달라’

-악역의 정석 정영관의 악행 모음.

-『너와 나의 시간』, 일본에 이어 대만 방영 확정 겹경사!

-『너와 나의 시간』, 클라이맥스 맞아 시청률 50% 돌파 성공할까?

엄청난 수의 기사를 쏟아 내며 물량 공세 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기사의 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기사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너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니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다행히『너와 나의 시간』과 관련된 압도적인 수의 기사는 대중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어 주었다.

거기에 예고편 또한 기가 막혔다.

18화에 일어날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다가, 『너와 나의 시간』의 유일한 악역이라 볼 수 있는 정영관이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J그룹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필요하다면 가족 간의 연도 끊고 온갖 악행을 서슴없이 하는 저 미친놈이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정영빈과 안수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PD가 대놓고 언급한 클라이맥스이니,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나려는 거겠지?

라는 기대감을 품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18화의 방영을 1시간 남짓 앞둔 상황.

“여기 맞나? 전화 해봐야겠네.”

안시현이 흔히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는,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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