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64화 (64/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64화>

64화. 딴따라가 아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는 계속 나오고, 좋은 연기를 통해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스타덤에 오르는 배우들 또한 꾸준히 등장한다.

이를테면 『너를 부르다』와 김진모가 그러했다.

15화에서 시청률 30%를 돌파한 『너를 부르다』는 18화에서 36.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안시현의 회귀 전, 자체 최고 시청률이었던 35.5%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종영까지 6화를 남겨 둔 시점에서 기록하게 된 것이다.

『너를 부르다』가 김진모를 스타덤에 올려 준 작품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대박이 났던 건 아니다. 2000년에 최고 시청률 35.5%였으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선전한 괜찮은 작품 정도라고 보는 게 맞았다.

반면 지금은 40% 돌파가 유력해 보이는 상황.

그 중심에는 김진모가 있었다.

회귀 전과 달리 메소드를 차용하며 입체감을 더한 이진수 캐릭터의 매력이, 더 많은 시청자들을 TV앞에 앉히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덕분에 안시현만큼은 아니지만, 김진모 또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여성 팬들의 비율만 놓고 보면 안시현보다 더 높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시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너와 나의 시간』이 방영할 때처럼 매일 기사가 나는 건 아닐지라도, 안시현의 행보가 기사화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건 여전했다.

광고를 촬영하든, 화보를 찍든, 아니면 외출을 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든 대부분 기사가 났다.

그 기사들은 안시현의 팬클럽 카페에 공유됐다.

팬들은 안시현이 다음 작품 촬영에 언제쯤 들어갈까 궁금해 하며 『너와 나의 시간』의 재방송을 보거나, 『나는 간첩입니다』와 『형아, 동생』을 비디오나 DVD를 통해서 다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안시현의 스케줄이 잠잠해졌을 때, 하나의 게시글로 인해 안시현 팬클럽 카페가 후끈 달아올랐다.

몇몇 연예인의 팬클럽 카페를 모니터링하던 연예부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단독 타이틀을 달고 기사를 작성했다.

안시현의 팬들을 흥분시킨 게시글은 바로…….

[팬 미팅 안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시현입니다. 요즘 소식이 뜸했죠? 준비할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좋은 소식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카페에 글을 남겼을 당시, 팬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씀 드렸던 거 기억하시나요? 날짜와 장소를 확정 지어 이렇게 직접 여러분께 안내를 하게 됐습니다.

날짜 및 시간: 2000년 11월 18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장소: 대한대학교 대강당.

참여 인원: 500명

참여 방법: 댓글을 달아 주신 분들 중 추첨합니다.

참가비: 없습니다. 저녁 식사 제공됩니다.

준비물: 사인 받을 물건.

추신: 회장님이 공지하신 팬클럽 이름 투표에 참여해 주세요. 10개 후보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이름을 선정하려 합니다.

안시현이 직접 작성한 팬 미팅 공지였다.

*   *   *

10월 한 달 동안 안시현이 한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외부 스케줄 소화였다.

공익 광고를 포함한 광고 몇 건과 화보 촬영, 인터뷰 등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건수 자체는 많지 않았다.

과한 이미지 소모를 우려한 김진석 대표가 마구잡이로 스케줄을 잡기보다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제안 위주로 선별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수익은 컸다.

JM액터스와 계약할 당시 선금으로 받았던 5억 원을 모두 갚은 건 물론이거니와, 추가 정산까지 들어왔다.

러닝 개런티로 계약한『형아, 동생』이 390만 관객을 동원한 것, 『너와 나의 시간』의 출연료 및 해외 방영권 판매 등으로 인한 추가 정산, 외부 스케줄 소화를 통한 수익을 모두 더하니 액수가 꽤나 커졌다.

‘와…… 이러니까 다들 한 번 정상을 맛보면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아 하는 거였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나네.’

정산을 받은 안시현은 자신이 스타 반열에 올랐음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휴식이었다.

세 작품 연속 강행군으로 인해 쌓인 피로와 후유증을 씻어 내기 위해, 유독 애착을 느꼈던 캐릭터인 정영빈을 떠나 보내기 위해서 휴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스케줄이 많지 않았기에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휴식 기간 동안 안시현은 대본 비슷한 것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침 운동과 발성 및 안면근육 연습을 제외하면 연기와 최대한 거리를 뒀다.

심지어는 그 좋아하는 영화마저도 보지 않았다.

『너를 부르다』 또한 기사를 통해 시청률과 반응만을 접하는 데에 그쳤다.

‘괜히 이것저것 보다 보면 차기작 생각나니까, 푹 쉬고 나서 다시 접하는 게 맞아.’

주말마다 가는 봉사는 안시현의 삶에 또 다른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형아, 동생』을 준비할 때부터 인연을 이어 온 보육원을 비롯한 몇몇 보육원에 공익광고 출연료를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바로 팬 미팅 준비였다.

“그래도 팬 미팅인데, 그냥 가서 덜컥 인사만 하고 밥만 먹는 건 좀 그렇겠죠?”

“흐음. 뭐 하고 싶은 건 있고?”

“일단 『너와 나의 시간』 OST를 직접 부를 생각이고요. 그리고 즉석에서 질의응답 시간도 가지고, 또…….”

안시현은 팬 미팅을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해 나갔다. 휴식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만나러 오는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팬미팅 5일 전.

추첨을 위해 박정상과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던 중, 한 댓글을 본 안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형. 이분만큼은 추첨이 아니라 초대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보자…… 음. 그래. 네 말대로 이분은 우리가 모시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연락해 볼까?”

“제가 직접 할게요. 그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추첨 준비하는 동안 연락해 봐.”

12,000개가 넘는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 안시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댓글을 단 팬만큼은 추첨이 아닌 초대를 해서 팬미팅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팬 미팅.

12,000여 명이 신청자들 중 추첨을 통해 뽑힌 500명의 팬들이 대한대학교 대강당의 좌석을 꽉 채웠다.

오후 2시 정각.

안시현이 아닌 우정태가 마이크를 잡고서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누군지 아시나요?”

“정영철! 정영철! 정영철!”

“하하하. 감사합니다. 『너와 나의 시간』에서 정영철 역을 맡았던 배우 우정태라고 합니다. 안시현 배우와의 인연으로 인해 팬 미팅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우정태는 안시현의 팬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이렇게 환호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참고로 전 얼마 전에 차기작에 캐스팅됐습니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고 비중 있는 조연입니다. 안 물어보셨다고요? 시현이 보고 싶다고요? 네. 헛소리 그만하겠습니다.”

대한대학교 연극영화과 내에서 입담이 좋고 붙임성 있기로 유명한 우정태는 기대 이상으로 진행을 잘해 주었다. 안시현의 팬들에게 익숙한 정영철 역을 연기했던 것 또한 진행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몇 분 후.

정장을 입은 안시현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의 환호성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안시현이 미소를 지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싶었지만, 팬 여러분께 부담을 주지 않고 팬 미팅을 진행하려다 보니 500분밖에 모시지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돈 많이 벌어서, 더 많은 분들을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팬 미팅 진행에 필요한 비용은 안시현과 JM액터스가 전액 부담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와 숙박을 해야 하는 팬들에게는 숙소까지도 잡아 줬다.

덕분에 팬들이 챙길 거라고는 차비와 사인 받을 물건, 안시현에게 줄 선물 정도가 전부였다.

500명의 팬들의 시선이 안시현에게 집중됐다. 몇몇 팬들은 그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뺨을 때리거나 감동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안시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팬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 소모한 돈도, 이날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며 할애한 시간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들 좋아해 주시는데 돈을 안 쓸 수가 있나.’

안시현이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동시에 대강당이 침묵에 잠겼다. 직후 안시현은 다시 재차 입을 열었다.

“이 자리를 통해 팬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팬 미팅에 참여한 500분의 팬 여러분 중, 유일하게 추첨이 아닌 제가 직접 초대한 분입니다. 오늘 점심 식사를 저와 함께하기도 하셨죠.”

대부분의 팬들은 안시현이 말한 팬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팬 미팅 관련 공지에 달린 댓글 중 유일하게 안시현이 직접 답을 해 주었고,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댓글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 후.

안시현이 무대 뒤에서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휠체어에 앉은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분은 몇 달 전, 뺑소니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걸 다 포기하려는 찰나에 『너와 나의 시간』을 보며 희망을 이어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2주 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반신의 감각이 살아난 것이죠.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재활을 통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댓글을 보고서 이분만큼은 꼭 팬 미팅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하반신 마비 판정 후 기적적인 신경 회복, 그 과정에서 희망을 준 『너와 나의 시간』.

댓글을 본 안시현은 해당 팬을 꼭 만나기로 결심했다.

팬 미팅에 초대해서 희망을 주고 싶었다. 자신과의 팬 미팅이 어려운 재활 과정을 이겨 낼 동기 부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감수성이 풍부한 몇몇 팬은 안시현이 소개한 팬에게 얽힌 사연을 듣고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제가 딴따라가 아닌 배우라고 스스로를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건, 절 사랑해 주는 팬 여러분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날.

500명의 팬들은 안시현으로 인해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저녁 식사를 포함한 6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삽시간에 지나갔다. 팬 미팅 이후 3시간 넘게 이어진 사인회까지,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황홀한 시간임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안시현의 팬 카페 ‘팔색조’에는 팬 미팅 참여 후기가 하나둘씩 올라왔다. 수없이 많은 글이 올라왔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시현이 배우 활동을 그만두는 그날까지 팬을 계속하겠다고, 배우 안시현이 아닌 사람 안시현에게 반해서 팬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이다.

안시현의 첫 번째 팬 미팅은 500명의 평생 팬을 확보하고서 성황리에 끝이 났다.

*   *   *

팬 미팅 이후 안시현은 백수가 됐다.

12월 말까지 단 하나의 외부 스케줄도 소화하지 않고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외출이라고 해 봐야 세 가지에 불과했다.

루틴을 지키기 위한 운동, 작정하고 서재로 꾸민 작은 방의 책장을 채울 서적의 구매를 위해 서점 가기, 둘째 주 주말에 정혜영을 만난 게 전부였다.

정말 철저하게 휴식을 위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과의 접촉 횟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줄어들어도 너무 줄어들었다는 거다.

외출을 해야 기사를 내든가 말든가 하는데, 허구한 날 집에 틀어박혀 있고 운동 나가고 서점 가는 게 일상의 전부이니 기사를 낼 건수가 없었다.

정혜영을 만나는 연예인 아파트는 방문객 검사가 철저해서 기자들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고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기자들은 안시현에 대해 기사를 쓸 만한 소재가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오죽하면 모 언론사의 연예부 간판 기자가 JM액터스에 전화해 혹시 안시현이 입대를 한 것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안시현은 입대를 하지 않았다.

군 입대 문제를 놓고 김진석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입대할 일은 없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팬 카페에 글을 남긴 걸 제외하면 작정하고 휴식을 취하며 두문불출했으니, 군 입대를 했다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긴 했다.

‘이제 슬슬 좀 돌아다닐 때가 되긴 했네.’

아무리 휴식기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안시현은 김진석 대표와 통화를 하고서 슬슬 그 시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12월 31일에 열리는 MBS 연기대상.

MBS 드라마국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안시현에게 반드시 참여해 달라며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정장 협찬받으러 가야겠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