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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71화 (71/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71화>

71화. 잘 지었네요

『빌딩 숲』의 공개 오디션 이후.

안시현은 다시 휴식에 들어갔다.

연기 연습은 6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난 다음에야 『빌딩 숲』의 대본을 손에 쥘 계획이었다.

‘직장인 연기야 자주 해 봤으니까, 캐릭터 구축은 크게 어렵지 않을 거야. 새로운 시도도『스무 번』에 단역으로 출연해서 변화를 테스트 해 볼 예정이니…… 괜찮을 거야.’

안시현의 휴식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일본에서 다시 한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너와 나의 시간』, 최고 시청률 다시 한 번 경신! 간사이에선 14.3% 기록!

-일본 열도를 사로잡은 정영빈.

-NHK, 안시현과의 인터뷰 위해 취재단 파견 결정.

-NHK, 『너와 나의 시간』추가 편성 결정.

-『너와 나의 시간』, 일본인 관광객 불러 모은다. 단체 관광 급증.

20화에서 10.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0% 돌파에 성공한 『너와 나의 시간』이, 최종화에서 10.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서 종영한 것이다.

일룡백화점의 매출이 수직 상승한 건 보너스였다.

주요 시청자인 일본의 기혼 여성들이 한국에 단체 관광을 와서, 작중 배경인 일룡백화점을 필수 코스로 들려준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간만에 안시현과 통화를 하게 된 정혜영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작년 대비 상반기 매출이 벌써 45%나 올랐어요. 일본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서 쇼핑하고 가는 게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더라고요. 방영 다 끝났는데 이렇게 수혜를 누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거, 제가 시현 씨한테 한 턱 쏴야겠는데요?

“쏘려면 6월 지나기 전에 쏴 주세요. 6월 말부터 저 촬영 있거든요.”

-아, 단막극 들어간다고 했죠?

“네. 단역이라 촬영 분량이 많은 건 아닌데, 슬슬 차기작 준비도 들어가야 해서요. 캐릭터 구축해야죠.”

-다시 바빠지겠네요.

“그래서 그 전에 보려는 거죠. 이제 곧 한량으로 놀 때가 그리워지겠네요.”

7월 초부터 시작될 줄 알았던 김희숙 작가의 단막극 『스무 번』은 6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첫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안시현은 슬슬 길었던 휴식기를 끝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   *   *

6월 초.

MBS 드라마국 회의실에서 단막극『스무 번』의 첫 대본 리딩이 열렸다. 대본 리딩에 참여한 안시현은 배우들 중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단역 면접 참가자 김 씨 역을 맡게 된 안시현입니다. 대사 몇 마디 없는 단역이지만, 단막극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휴. 이거 단역이 제일 빛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럴 일 없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해야죠!”

“옳은 말씀. 서로에게 폐 끼치는 일 없도록 다들 열심히 합시다. 안 배우님 덕에 단막극임에도 이례적으로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으니, 이 기회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소! 다 함께 힘내봅시다!”

일단 대본 리딩 현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배우들은 안시현이 단역을 맡았다는 거에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안시현의 존재감에 묻히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단 한 신에 출연해서 대사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인 안시현이기에, 대본 리딩 내내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이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 자체로도 즐거웠지만…….

‘연기대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될 배우의 연기를 이렇게 직관하게 될 줄이야.’

훗날 연기대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될 배우가 『스무 번』의 주연을 맡은 게, 회귀 전과는 달라진 그의 브라운관 데뷔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안시현을 즐겁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안광석.

그는 대본 리딩임에도 다년간의 극단 생활로 쌓은 연기 내공을 마음껏 뽐냈다. 괜히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게 될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같이 작품 한번 하면 재밌겠네.’

안시현은 훗날 안광석과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대본 리딩에 참여했다.

시간이 흘러 6월 말.

단막극 『스무 번』의 첫 촬영일이 다가왔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촬영장은 제법 소란스러웠다.

-단막극 『스무 번』 대박 기원합니다! - 배우 안시현 팬클럽 팔색조 일동

촬영장 앞에 떡하니 차려진 출장 뷔페와 그 위에 걸려 있는 커다란 현수막 때문이었다.

안시현의 팬클럽 팔색조에서 응원 차 보낸 것이었다.

“이야. 살다살다 단막극 촬영하는데 팬클럽에서 출장 뷔페 보내 주는 걸 보게 되네.”

“심지어 시현 씨는 오늘 한 신 촬영하는 게 전부인데 말이죠. 역시 이래서 성공하고 봐야 하는 건가?”

“아하하…… 저희 팬들이 좀 열정적이에요. 게다가 제가 상반기에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기죽지 말라고 보내 준 것 같아요.”

“기는 시현 씨가 아니라 저희가 죽을 거 같은데요? 와, 근데 진짜 냄새 죽이네요. 얼른 촬영 끝내고 먹었으면 좋겠어요.”

“NG 내지 말고 빠르게 끝냅시다!”

“촬영하기 전에 모여서 파이팅 한번 하고 하죠.”

“오케이. 기합 잔뜩 넣고 달려 봅시다!”

대본 리딩에 몇 차례 참여하며 배우들과 친해진 안시현은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촬영을 준비해 나갔다.

안시현이 촬영하는 신은 단 하나.

첫 날 오후에 곧장 촬영이 예정되어 있고, 주연인 안광석과 함께 촬영하게 될 신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오후 3시경.

“신35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배우분들 준비되시면 바로 시작합니다!”

“준비 끝났습니다. 광석이 형은 어때요?”

“나도 괜찮아. PD님, 바로 들어가셔도 되겠는데요?”

“오케이. 그럼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안시현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대사를 떠올렸다.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면서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촬영.

‘어라? 시현 씨…….’

연기에 대한 평균 이상의 안목을 지니고 있으며,『너와 나의 시간』을 통해 안시현과 함께했기 때문일까?

김희숙 작가는 안시현의 변화를 대번에 눈치챘다.

‘왜 눈을 안 감지?’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안시현이 눈을 감는 특유의 의식을 하지 않고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몰입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 생략됐다. 지금껏 촬영하면서 단 한 번도 생략하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의식인데 말이다.

필수 요소가 생략됐다고 안시현이 실망스러운 연기를 보여 줬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최종면접을 앞둔 두 사내가, 면접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긴장되세요?”

“조금요. 저 이번에 떨어지면 일곱 번째거든요. 아. 부모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면목이 없어요. 번듯한 4년제 대학 나와서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고, 이러다 영영 취업 못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미치겠어요. 요즘은 잠도 잘 못 자요.”

“전 열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오늘 떨어지면 열세 번이 되겠네요.”

“……정말요?”

“그런데도 포기는 안 할 거예요. 뉴스에서는 허구한 날 회사들 부도났다는 소식만 전해 주고, 한강에 뛰어내리는 사람이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해 버리면 제 인생은 정말로 거기서 멈춰 버리는 거잖아요.”

대사는 몇 마디 없었지만, 연기는 일품이었다.

12번이나 면접에 떨어지고 13번째에 최종 면접까지 온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불안함을 지워내기 위해 애써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냈다.

굳이 문제점을 찾아보자면…….

‘지금 이거, 메소드 아닌 것 같은데?’

안시현이 선보인 연기가, 메소드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 정도였다.

*   *   *

회귀 후.

안시현은 세 작품 연속으로 메소드 연기를 밑바탕에 두고 연기를 했다. 또한『형아, 동생』에서는 메소드 연기의 끝을 보기 위해서 노력했고, 『너와 나의 시간』을 촬영할 때도 한 차례 극한의 몰입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메소드 연기를 했기에 세 작품 만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메소드 연기에는 필연적으로 후유증이 따라온다. 안시현이 아무리 후유증의 영향을 적게 받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지속된 누적은 위험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안시현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너와 나의 시간』에서는 메소드 연기에 감정 표현을 더했고, 막바지에 가서는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메소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시도한 것이다.

촬영 기간 중의 변화 시도는 자칫 연기력이 무너지는 결과를 야기할 수는 위험한 선택지이지만, 결과적으로 안시현의 판단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메소드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적절히 분배하여 최적의 상황에서 사용해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메소드의 비중이 줄었음에도 『너와 나의 시간』 후반부에 보여 준 안시현의 연기는 호평 일색이었고, 이는 곧 그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제법 넉넉한 휴식기를 거치고 맞이한 6월.

안시현은 작정하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JM액터스 사옥 연습실에서 연습에 매진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 나갔다.

『스무 번』의 첫 촬영을 사흘 앞둔 시점.

“네 연기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지금의 연기를 보고서 놀라지 않을 재간이 없을 거다. 몇 달 사이에 전혀 다른 스타일로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 반응을 보여 주기만 하면 바랄 게 없죠.”

“메소드의 장점만을 취한다라……. 그래,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면 단점을 최소화하는 게 맞지.”

마침내 김진석 대표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안시현이 보여 준 새로운 연기 스타일은 메소드를 완전히 버린 게 아니었다. 메소드의 최대 장점인 몰입도는 일정 부분 가져가면서, 거기에 자연스러움을 더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메소드 연기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살리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메소드 위에 자연스러움을 덧씌운 것이기에, 대중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기존의 연기 스타일이 완전히 바뀐 걸로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김희숙 작가의 시선에서도 메소드가 아닌 걸로 보일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만큼 안시현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촬영이 끝난 뒤.

안시현이 김희숙 작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괜찮았어요?”

“연기 스타일이 확 바뀌었네요? 메소드는 버린 거예요?”

“정확히는 절반만 버렸어요. 기존의 연기 스타일로는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디까지 성장해야 만족할 생각이에요?”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배역을 다 맡아 보면 만족하지 않으려나요?”

“……팬클럽 이름 진짜 잘 지었네요.”

안시현이 성공적으로 새 연기 스타일을 선보이는 데에 성공했다.

*   *   *

『너와 나의 시간』이 일본에서 제법 흥행한 덕분에, 일본의 방송사 NHK에서는 안시현을 취재하러 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재방영을 하기 전 내보낼 특별편에 안시현의 인터뷰를 내보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안시현은 JM액터스 사옥에 들러 취재진과 만날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하게 됐다.

그렇게 잡힌 일정은 7월 첫째 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였다.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라 안시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할 예정이었기에, 도합 3일 동안 촬영을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촬영 일정이 확정된 뒤.

안시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정 확정됐으니 전 이만 가 볼게요.”

“네가 웬일이냐. 평소 같았으면 점심 먹고 가거나, 아님 연습실에 틀어박혔을 텐데 말이야.”

“선약이 있어서요.”

“애인?”

“그랬다면 매니저 형들이랑 대표님께 말했겠죠. 어떤 배우가 얼굴 좀 보자고 해서요. 내일 낮에 연습하러 와서 봐요.”

JM액터스 사옥을 나온 안시현이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한 카페로 향했다. 인적이 드물고, 룸 스타일로 된 특이한 형태의 카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왔어?”

“오랜만이에요, 선배.”

『빌딩 숲』의 공개 오디션 이후 간만에 류성웅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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