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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80화 (80/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80화>

80화. 축하합니다

일단, 신인상은 『빌딩 숲』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뭐…… 다들 예상했던 결과이니까.’

그럼에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빌딩 숲』의 출연 배우들은, 심지어 후보에 오른 당사자마저도 신인상 수상 여부를 비관적으로 바라봤으니까.

출연 배우들 중 신인상 후보 기준을 충족하는 배우가 한 명뿐인데, 여직원이 직장 생활 중에 겪는 문제점을 표현하는 데에 목적을 둔 캐릭터였으니까.

그마저도 8화에서 퇴사하며 다른 신인왕 후보들에 비해 작중 존재감이 확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솔직한 말로 『빌딩 숲』의 인기가 워낙 엄청나서 후보에 들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문제는 신인상은 인기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빌딩 숲』의 인기와 별개로 신인상을 수상할 정도의 연기나 존재감을 보여 준 게 아니었고, 결국 신인상 수상은 다른 배우의 손에 쥐어지게 됐다.

수상이 불발됐음에도 해당 배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수상 못 할 거 알고 있었는데 실망할 게 뭐 있겠어요? 내년에 더 큰 상 받으면 되죠. 안 그래요?”

“오오. 자신감 넘치는데?”

“배우는 자신감 빼면 시체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이왕이면 목표는 높게 잡아야죠.”

“하하하. 맞는 말이야.”

아쉽게 신인상 수상은 좌절됐지만…….

“우수상 수상은…… 축하합니다! 『빌딩 숲』의 진광욱 선배님!”

조연을 자청하면서까지 『빌딩 숲』의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진광욱이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은…… 『빌딩 숲』입니다!”

“인기상은…… 어…… 축하합니다! 저입니다! 이대로 상패 가져가면 되는 건가요?”

올해의 작품상은 『빌딩 숲』이, 인기상은 안시현이 압도적인 득표율 차이를 기록하며 수상했다.

그 과정에서 인기상의 전년도 수상자인 안시현이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가, 스스로를 수상자로 호명하고 당황하며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빌딩 숲』의 김진모! 축하한다, 친구야!”

전년도 최우수상 수상자로서 시상을 위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 안시현이, 김진모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무대 위에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주요 수상 부분에서 『빌딩 숲』이 사실상 싹쓸이를 했다. 시청자 투표로 결정되는 인기상과 올해의 작품상은 물론이거니와, 우수상과 최우수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상 부문 또한 MBS 드라마국과 기자들이 안시현을 보이콧 한 게 아니라면 수상을 못 하는 게 이상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경쟁작들에 비해 『빌딩 숲』이 거둔 성적이 압도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디어…….’

이쯤 되자 안시현 또한 내심 대상 수상을 기대하게 됐다.『빌딩 숲』이 흥행했고, 투톱 중 한 명인 김진모가 최우수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김진모보다 존재감이 컸던, 사실상 원톱이라는 의견까지 존재하는 안시현은 인기상만을 수상한 채 대상 후보에 올라 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언제 올지 몰라. 부디…….’

정성 들여서 수상 소감까지 준비한 안시현이, 미소를 지은 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최창국 PD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 최창국 PD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받을 때라고 믿었다.

대상 수상을 앞두고 진행된 올해의 PD상 수상.

올해의 PD상의 경우 기자들이 아닌 MBS 드라마국 PD들의 투표로만 선별되는 것이기에 PD들에게는 올해의 작품상만큼이나 뜻 깊은 상이다.

그리고 보통, 해당 년도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담당 PD가 수상을 하는 상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어의』의 담당 PD가 수상했던 것처럼, 올해는 최창국 PD의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시상식에 참여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축하드립니다.『솜사탕』의 임혁 PD님!”

MBS 드라마국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   *   *

연기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MBS 드라마국의 PD들은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바로 올해의 PD상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MBS 드라마국 PD들의 투표만으로 결정되는 상이고, 그 해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담당 PD에게 투표하는 게 관례인데…….

단 한 번 예외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아마, 2001년 연기대상 시상식은 두 번째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쟁사의 핵심 PD가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상까지 주면서 몸값을 올려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의합니다.”

“그럼 대체자는 누구로?”

“임혁 PD가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최고 시청률 40%를 넘었으니, 논란이 있긴 하겠지만 생각보다 크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단 한 번의 예외는, 바로 해당 년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담당 PD의 퇴사 및 타 방송사 이직이 결정됐을 때에 발생했다.

그 해에 MBS 드라마는 시청률 풍년이었다.

최고 시청률 50%를 넘긴 드라마를 무려 네 개나 배출했기에, 다른 PD가 수상을 했음에도 논란이 일어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빌딩 숲』의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워낙 압도적이라, 다른 드라마의 담당 PD가 올해의 PD상을 수상하면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퇴사를 앞둔 최창국 PD에게 올해의 PD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최창국 PD는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MBS 드라마국 내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연기대상을 며칠 앞두고는 언론에서도 최창국 PD의 퇴사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결국 MBS 드라마국은 공식적으로 최창국 PD가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인수인계를 끝마치는 2월 초에 퇴사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히게 됐다.

입사 때부터 줄곧 아웃사이더였던 최창국 PD의 퇴사는 반갑지만, 그가 올해의 PD상을 수상하고서 몸값을 최대한 올리고 타 방송사로 이직하는 건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이에 다른 PD에게 올해의 PD상을 수상할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MBS 드라마국 PD들이 머리를 싸맸다.

작품성이 더 좋았다, 기획 의도를 잘 살렸다, PD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등 온갖 핑계를 준비하고서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랐다.

부디, 논란이 크지 않기를.

*   *   *

올해의 PD상 수상자가 호명되자마자, 배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빌딩 숲』의 테이블로 향했다.

정확히는 최창국 PD에게로 집중됐다.

수상이 당연시됐던 PD가 아닌 다른 PD가 수상을 한 상황을 다수의 배우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같은 PD들 중에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와……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선배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시청률이든 연출이든 당연히 선배가 수상해야 하는 거잖아요. 퇴사한다고 상 안 주는 거 맞죠? 그렇죠?”

이를테면 입사 때부터 줄곧 최창국 PD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퇴사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사직서부터 제출하고 온 후배 조연출이 그랬다.

얼굴이 붉어진 채 목에 핏대까지 세운 채 말하는 후배 조연출을 바라보며, 최창국 PD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선배를 향해 박수를 쳤다.

“예상 못했던 거 아니잖아. 퇴사 앞둔 PD에게 올해의 PD상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습니까. 아마 내부 평판이 좋은 PD였다면 퇴사를 앞두고 있었어도 상을 줬을 겁니다. 이건 선배가 싫어서 안 준 거라고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뭐, 어쩌겠냐. 회사 생활 못한 내 탓이라 생각해야지.”

『빌딩 숲』의 출연 배우들은 최창국 PD의 무덤덤한 반응에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화를 내거나 어이없어했다면 그게 맞춰 반응했을 텐데, 너무나도 담담하게 반응하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반면 안시현은…….

‘이러니까 MBS에서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절대로 작품을 안 하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한 치 앞밖에 못 보는 안목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MBS 드라마국 PD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어리석은 판단이라 생각했다.

회귀 전 최창국 PD는 2005년에 퇴사했다.

이후 JM액터스의 투자를 받아 외주 제작 회사를 직접 설립한 뒤, 김희숙 작가의 파트너로서 10년 넘게 작품 활동을 같이한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최창국 PD의 퇴사 이후 김희숙 작가의 드라마가 MBS에서 방영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다.

KNC와 STS와는 꾸준히 작업을 했다. 심지어 케이블 채널인 TV Y와 두 작품을 연속으로 함께하는 동안에도, MBS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최창국 PD는 요지부동이었다.

당시에도 퇴사 당시에 내부에서 잡음이 꽤나 많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김희숙 작가와 두 작품을 같이하고 나니 불륜 관계 아니냐는 악의적인 루머가 퍼졌고, 이는 최창국 PD의 퇴사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말았다.

MBS를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때처럼 불륜 루머는 돌지 않겠지만, 최창국 PD가 모욕을 당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동료 PD들에 의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을 뺏긴 거다.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방영하는 드라마마다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드라마의 OST는 항상 음원 차트 상단을 싹쓸이하며, 화제성으로는 단연 압도적임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 PD라는 최고의 파트너를 아집으로 인해서 놓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도움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안시현은 MBS 드라마국이 아닌 최창국 PD의 편이었으니까. 내색하지는 않지만, 그 역시 최창국 PD의 올해의 PD상 수상 불발에 적잖게 화가 난 상태였으니까.

‘좋게 마무리됐으면 최 PD님 성격상 친정을 무시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멍청한 사람들. 최 PD님이 KNC나 STS로 갈 거라고 생각한 건가? 경쟁사의 핵심 PD가 될 수도 있으니 몸값 올려 주지 말자, 뭐 그런 생각인가 보네.’

장내가 술렁이긴 했지만, 대놓고 무슨 문제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다만 아직 대상 수상을 하지 않았음에도 기자들이 다소 소란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MBS 드라마국과 최창국 PD 사이의 불화.

이슈화시킬 만한 소스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고, 실제로 통화를 위해 대상 수상을 지켜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기자들 또한 많았다.

그 정도를 빼면 큰 소란은 없는 가운데.

진광욱이 무대 위에 올랐다.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진광욱의 시선은 『빌딩 숲』의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을 향해 있었다.

“작년에는 수상을 위해서 올랐던 무대에, 올해는 시상을 위해서 오르게 됐네요. 그럼에도 전 행복합니다.『빌딩 숲』과 함께한 하반기는, 단 한순간도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실 마지막 부문의 시상을 진행하겠습니다.”

진광욱은 무대에 오르면서 미리 건네받은 수상자 명단을 확인했다.

잠시 후.

진광욱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빌딩 숲』의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맺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상식에 참여한 대부분의 배우와 관계자들이, 한 배우의 연기대상 수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올해의 PD상에서 이변이 발생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변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리에 따르지 않은 대상 수상은 시상식의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2001년 MBS 연기대상 영예의 대상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빌딩 숲』의 안시현 배우님!”

이내 진광욱의 입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수상자가 호명됐다.

안시현이,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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