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01화>
101화. 살다 살다
곽상필 감독은 『편지』의 크랭크인 전부터 몇몇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유독 많은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그 때문일까?
촬영 스타일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대본 리딩에서부터 디렉팅을 하며 배우들의 캐릭터 구성에 개입한 것부터가 이례적이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평가는 냉정했던 이전과 달리, 부드러운 제스처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철면이란 별명과 어울리지 않는 태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곽상필 감독과 한 작품 이상 같이해 본 경험이 있는 배우들은 실감했다.
아, 정말 마지막 작품이구나.
이에 많은 배우들이 슬픔을 느꼈다.
곽상필 감독으로 인해 데뷔하면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가 여럿이었고, 최정수 같은 경우는 필모그래피에서 곽상필 감독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은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곽상필 감독의 결심은 확고했다.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닌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뜯어말린다고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았다.
은퇴를 막을 수 없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수의 배우들이 2차 촬영이 끝날 때까지 스케줄을 비웠다. 오로지 『편지』의 촬영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덕분에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돌이켜 보면 곽상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 중 『편지』만큼 OK 사인에 관대한 작품은 없었다.
그만큼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완성해 왔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연기에 임해 준 덕분이었다.
신 119의 촬영이 끝나고 세 시간 뒤.
밤새 내릴 것 같던 눈발이 잦아들었다. 스태프들은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펜션 주인이 미리 준비해 준 숯을 달구며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 나갔다.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자 배우와 스태프 가릴 거 없이 모두가 잔뜩 들떴다.
그중 가장 들뜬 건 최정수였다.
“하. 드디어 소주를 입에 대게 되는구나. 그동안 진짜 잘 참았다.”
“허허허. 가끔씩 한잔해도 된다니까요. 오히려 너무 참는 게 더 스트레스였을 텐데요.”
“술을 안 마셔서 그런지, 빨리 촬영 다 끝내고 술을 마시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몰입이 잘 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두 번 다시는 이런 짓 안 할 겁니다.”
“역시 정수 선배는 술과 함께해야죠!”
“암요! 소주 모델이 소주를 안 마셔서 되겠습니까!”
연예계에 소문난 주당인 최정수였다.
그는 『편지』의 대본 리딩이 끝나자마자 금주를 선언했다. 회식 자리에서 맥주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술을 멀리했다.
금주가 최정수의 연기력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금주까지 할 정도로 촬영에 올인했기에, 최정수의 필모그래피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와 잔뜩 준비된 술과 음료, 그리고 좋은 사람들까지.
저녁 식사의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맥주를 몇 모금 마신 곽상필 감독이 쓴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다 끝났군요.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나면 이 시간이 눈물 나게 그리워지겠지요.”
일순간.
배우들이 곽상필 감독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다들 곽상필 감독에게 진심을 전했다.
“저희도 감독님이 그리울 겁니다. 특히…… 엄청나게 혼난 게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하하하.”
“음. 전 솔직히…… 데뷔할 때 감독님 욕 속으로 많이 했습니다. 한 신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촬영했던 거 기억나세요? 솔직히 그때 미칠 것 같았어요. 이러다 필름값이 내 출연료를 넘어설 것 같지, 선배님들이랑 스태프분들은 땀 뻘뻘 흘리고 있지. 근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그때의 고난들로 인해 제가 배우로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더라고요. 그때 감독님이 절 혼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감독님과…… 무려 다섯 작품을 같이했네요. 제 배우 인생은 감독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앞으로 감독님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 은퇴하고도 가끔 밥 한 끼, 술 한잔 같이하면서 많이 조언해 주세요.”
배우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으며, 곽상필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철면이니 뭐니 해도 메가폰을 내려놓으면 평범한 60대 노인이었다.
은퇴를 앞두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과 함께 했던 많은 배우들의 진심에, 꾹꾹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곽상필 감독이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 없이, 그 동안 함께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을 일일이 안아주었다. 백 마디 말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했다.
* * *
『편지』의 마지막 촬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며 곽상필 감독이 메가폰을 내려놓게 됐지만, 아직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시사회를 비롯해 개봉 전후로 홍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곽상필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홍보에 매진하는 상황이기에, 홍보 스케줄에 곽상필 감독님이 빠질 리가 없다.
또한 은퇴 기념 기자 회견과 파티도 열 계획이었다.
이미 파티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배우들이 N분의 1을 해서 지불하기로 했고, 『편지』의 개봉 시기에 맞춰 파티 장소를 예약할 예정이었다.
촬영이 모두 끝난 거지, 감독으로서의 스케줄까지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곽상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일은 없으니까,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
반면 안시현의 심정은 조금 달랐다.
아쉬움을 느낀 건 매한가지였지만, 동시에 만족감 또한 느끼고 있었다.
‘곽 감독님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것 같아 다행이야.’
회귀 전의 곽상필 감독은 『나는 간첩입니다』의 손익 분기점 돌파 실패 이후 메가폰을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편지』를 만들지 못한 채 2009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만다.
반면 지금은 『나는 간첩입니다』가 손익 분기점을 가뿐히 넘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편지』 또한 2005년 내로 개봉할 예정이기도 했다.
사전 홍보에 대한 관심도와 촬영장에서의 분위기와 결과물만 놓고 보면, 아마추어에게 편집을 떠맡기는 게 아닌 한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물론 그 정도로 성에 차지는 않을 터였다.
‘1000만…… 가능할까?’
사실 1000만 관객 돌파에 대한 기대감과 별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제약이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피할 수 없는데, 청소년 관객을 배제하게 되는 꼴이기에 흥행에 썩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중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진 뒤에야 가능한 이야기다.
2005년인 지금은 낙관하기 어려웠다.
‘1000만 관객 돌파에 실패해도 실망하지 말자. 손익 분기점은 무조건 넘을 거고, 곽 감독님도 배우들도 좋은 평가를 받을 거야. 그거면 충분해.’
안시현은 욕심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몇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연기하면서 모두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영화의 퀄리티와 별개로 환경적 요소와 운까지 따라줘야 1000만 관객 달성이 가능하기에, 모든 요소들이 손을 들어 주길 바랐다.
‘6월 말 개봉이 목표라서 다행이야. 연말에 일정이 잡혔다면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와 맞대결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 대박 날 영화끼리 맞붙어서 서로 관객 수 갉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겠어.’
일단 개봉 일자는 『편지』의 편이었다.
『편지』는 6월 말에 개봉해서 추석 연휴 무렵까지 상영하는 게 목표였다. 연말에 개봉 예정인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와 상영 시기가 겹치는 건 피할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대박이 날 영화와 상영 일자가 겹치는 것만큼 흥행에 악영향인 요소는 많지 않다.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개봉 예정일만 놓고 보면 상영일이 단 1일조차도 겹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 * *
『편지』의 촬영이 끝난 뒤.
안시현은 설 연휴가 끝날 때까지 집과 고향에서 휴식을 취했다. 집에서는 내조에 충실했고, 고향에 내려가서는 부모님의 일손을 거들 때를 제외하면 낚시를 하면서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했다.
‘차기작은 좀 천천히 들어가자.’
안시현은 차기작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을 사로잡는 시나리오나 대본이 있냐 없냐가 중요했다.
『편지』가 개봉하기 전에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다면 좀 더 휴식기를 이어 갈 생각 또한 있었다.
생각해 보면 회귀 후에는 작품 운이 꽤나 따랐다.
『나는 간첩입니다』와 『형아, 동생』까지는 반드시 출연하고 싶어서 오디션 준비에 목을 맸고, 『너와 나의 시간』과 『빌딩 숲』은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 덕분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거기에 곽상필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편지』까지 출연하게 되며, 안시현의 필모그래피는 동년배의 배우들 중에서 가장 화려했다.
그나마 비교할 대상이 있다면 김진모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인 『북파』의 조연을 맡은 류성웅의 필모그래피 또한 대단하지만, 아직 안시현과 김진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회귀 전과 달리 연기력을 인정받고 스타성 또한 갖춘 주연 배우로 성장했으니, 차기작에 급할 이유가 없었다.
‘다작 욕심으로 필모그래피에 흠집을 낸 선배님들도 여럿 봤고 말이지.’
다작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흥행 성적이 기대 이하인 작품에 출연했을 때, 배우의 명성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거다.
현재 안시현의 목표는 국민배우다.
이대로만 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이제 슬슬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목표다.
다작 욕심으로 인해 목표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작품 수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를 하고 싶었다. 출연한 모든 작품이 흥행할 순 없겠지만, 그렇게 작품을 선택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설 연휴가 끝난 뒤.
서울로 올라와 내조에 집중하며 여유로운 일상을 즐겼다. 『편지』의 1차 촬영이 마무리되고 목표로 했던 한식자격증을 준비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3월 초.
정혜영에게 학원에서 배워 온 요리를 해 주는 게 인생이 낙이 된 안시현에게, 김진석 대표가 간만에 연락해서 뜻박의 소식을 전했다.
“정말요?”
-그래. 궁금하면 지금 당장 오던가. 계약서에 도장 찍고 밥 먹으려던 참이니까.
“네. 항상 가던 거기로 가면 되죠? 바로 갈게요.”
30여 분 후.
안시현은 어이없어하고 있는 김진석 대표와 별일 아니라는 듯 반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최정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배님, 진짜 JM액터스와 계약했어요?”
“어. 5년짜리 했다. 계약금이고 조건이고 귀찮으니까 알아서 해 달라고 했다.”
놀랍게도 최정수는 신인 때부터 함께했던 배우 전문 연예기획사와의 전속 계약이 만료되고 이틀 뒤, JM액터스 사옥을 찾아와 김진석 대표에게 알아서 계약 조건을 맞추어 달라며 계약을 해 달라고 졸랐다.
안시현은 어이가 없었다.
톱배우가 계약 조건을 연예기획사에 일임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게 될 줄이야.
“내 참. 살다 살다 톱배우가 직접 찾아와서 계약 조건 알아서 해 달라며 계약서 쓰자는 경우는 처음 봤다. 심지어 10년 해 달라는 거, 나중에 문제될 수 있다고 뜯어말려서 5년으로 한 거다.”
“아, 그럼 명색이 제가 곽 감독님 페르소나인데 같이 가야지 않겠습니까?”
“인마, 아직 계약서 안 썼다니까.”
“기정 사실 아닙니까.”
심지어 JM액터스와 계약한 이유도 어이가 없었다.
곽상필 감독이 은퇴 후 JM액터스의 콘텐츠 제작 고문을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JM액터스와의 계약을 결정한 것이었다.
‘원래 곽 감독님은 은퇴하고 어떤 외부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셨고, 정수 선배님은 첫 소속사와 계속 계약을 유지했었는데……. 뭔가 많이 달라졌네.’
다시 한번 안시현이 알고 있는 역사가 바뀌었다.
다만, 그 결과가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