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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28화 (128/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28화>

128화. 돌파하면

『칠전팔기』의 언론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기자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저 양반도 초청받았어?”

“의외네. 요즘 죄다 혹평 받고 성적 안 나와서, 당연히 안 부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지. 안시현이 원톱이잖아.”

“하긴. 안시현은 아직까지 실패한 작품이 없으니까. 이번에도 성공하려나?”

“보면 알 수 있겠지. 저 양반을 부른 게 자신감일지, 아니면 만용일지.”

그는 대부분의 영화에 냉정한 평가를 하기로 유명한, 촌철살인의 대가로 불리는 평론가였다.

오죽하면 그가 최고 평점 10점을 기준으로 5점을 주면 손익 분기점 돌파, 6점을 주면 500만 관객, 7점을 주면 1000만 관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실제로 해당 평론가가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영화는 곽상필 감독의『편지』였고, 그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준 영화는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인 『북파』였다.

판가름의 기준은 대중성, 즉 흥행 여부였다.

흥행할 것 같은 영화에게는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흥행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에게는 박한 점수와 냉정한 평가가 동반됐다.

그런 평론가가 『칠전팔기』의 언론 시사회에 초청됐다. 심지어 양상효 감독이 직접 영화를 보고 평가를 해 달라고 초청을 한 것이었다.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날 이용해서 홍보를 하려는 거라면 썩 좋은 선택지는 아닌데……. 심지어 스포츠 영화잖아.’

평론가는 양상효 감독이 어떤 의도로 자신을 초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영화의 완성도에 자신이 있는 건지, 혹은 자신을 이용해 홍보전을 하려는 건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있을 테니까.

시사회가 끝난 직후.

“손익 분기점은 가볍게 넘기겠는데?”

“지금까지 본 스포츠 영화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아. 쓸데없는 감성팔이도 없었고.”

“아…… 맞다. 이거 스포츠 영화였죠?”

“너무 완성도가 높아서 그런가? 스포츠 영화의 탈만 쓴 것 같은 느낌이야.”

언론 시사회에 참여한 대다수의 기자들은 『칠전팔기』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손익 분기점은 가볍게 넘을 거다, 스포츠 영화 역사강 최고 스코어를 기록할 거다, 스포츠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었다 등 대체로 긍정적인 소감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한 여기자가 굳은 표정의 평론가에게 다가가 물었다.

“최 평론가님이 보기에는 어땠어요?”

일순간.

기자들의 시선이 평론가에게로 집중됐다.

대다수의 평화에 혹평을 가하기로 유명한 촌철살인의 대가가, 완성도 높은 스포츠 영화인 『칠전팔기』에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했다.

“음…….”

평론가는 곧장 대답을 하지 못했다.

턱을 매만지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뒤에야, 어렵사리 생각을 정리하고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 예상을 벗어나는 영화였습니다. 아무래도…… 리뷰에 꽤나 쓸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다음 날.

한 언론사를 통해 해당 평론가의 『칠전팔기』리뷰가 기사화되며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6점.

평가 내용은 대다수의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성팔이가 없어서 좋았다, 그럼에도 감동적이었고 한 사람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본 것만 같아서 좋았다, 원톱인 안시현의 존재감이 빛났다 등.

아쉬운 부분에 이어서도 짚고 넘어가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라는 게 대중들의 반응이었다.

이에 대중들이 호기심을 가졌다.

최근 몇 년 동안 해당 평론가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흥행 결과와 맞아떨어졌다.

평점 6점, 부정적인 평가보다 많은 긍정적인 평가. 최소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수준의 평가라고 보는 게 맞았다.

해당 평론을 읽은 이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으면, 아무리 안시현이 연기를 잘했더라도 스포츠 영화라는 한계가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평가가 후한 것인지 말이다.

그에 맞춰 JM액터스에서는 언론사들을 통해 해당 평론가의 평가를 기사화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물론 과하지 않게, 언론 플레이라는 걸 들키지 않을 만한 수준에서 기사를 냈다. JM액터스의 전매특허인 언론 플레이가 언론 시사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렸다.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 이후.

실장으로 승진한 박정상이 김진석 대표에게 직접 결과를 보고했다.

“일단 분위기는 좋아 보입니다. 시현이가 주연이라는 점, 곽상필 고문님께서 자문을 맡았다는 점, 촌철살인의 대가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점, 그리고 최창국 팀장의 홍보 영상 등이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최 팀장 홍보 영상은 내가 봐도 예술이더군.”

“시현이와 두 작품을 같이했다 보니, 어떤 식으로 맛을 내야 할지 보인다 하더군요.”

“박 실장.”

“네, 대표님.”

“스코어 얼마나 나올 것 같나?”

“으음…….”

박정상은 김진석 대표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가는 분위기와 평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손익 분기점은 기본이고, 탄력만 제대로 받는다면 500만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500만이라…… 1차 목표가 나와 비슷하군.”

박정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500만 관객은 그가 안시현의 담당 매니저이기에 후하게 책정한 것이었다. 스포츠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500만조차도 어마어마한 운이 뒤따라야 가능했다.

한데 김진석 대표는 500만이 1차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인즉, 500만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할 거라고 예상한다는 것이었다.

“난 750만 정도 예상하네. 운 좋으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자네가 보기에도 그런가?”

“네. 500만을 넘을 수도 있겠지만…… 750만은 허들이 너무 높다고 봅니다.”

김진석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상의 말을 하는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박정상과 같은 평가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박정상에게 바라는 건 어느 정도의 안목이 아닌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것을 위해 파격적으로 실장 직함을 달아 주며 이것저것 가르치는 것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참 이상해. 왜 스포츠 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평가를 하려 드는 걸까? 『칠전팔기』는 스포츠 영화의 허울만 쓰고 있을 뿐인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

박정상은 김진석 대표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김진석 대표의 말이 맞았다. 그가 왜 750만 관객을 기준점으로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칠전팔기』가 스포츠 영화라는 선입견을 제외한 채 지금의 분위기를 놓고 보면, 1000만 관객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게 근접한 스코어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박정상이 500만이 후한 평가라고 생각한 건, 『칠전팔기』가 스포츠 영화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 실장, 선입견을 버려. 철저하게 결과물만을 놓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해. 그걸 못하면,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할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대표님.”

일련의 대화를 통해 박정상은 다시 한번 느꼈다.

자신이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JM액터스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진모는 경영에 관심이 없고, 대표님은 전문 CEO보다는 내부 승진을 통해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으려고 하신다. 내가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해. 조금 더 노력해야만 돼.’

박정상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더 높은 자리를 오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   *   *

『칠전팔기』의 개봉 사흘 전.

안시현이 류성웅과 함께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과 짤막하게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내내 분위기는 좋았다.

전문 리포터가 진행하는 인터뷰이니만큼 안시현과 류성웅에게 전적으로 분위기를 맞춰 줬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들의 경우 미리 거른 덕분이었다.

“요즘 배우분들 사이에서 작품의 흥행과 관련해서 공약을 하는 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두 배우님들은 『칠전팔기』의 흥행과 관련해서 공약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안시현과 류성웅이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류성웅이 미소를 지은 채 안시현의 등을 떠밀었다.

“이런 건 조연인 저보다 주연인 시현이가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아,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진모랑 식사하다가 공약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진모가 먼저 말하기 전에 제가 선수를 쳐야겠네요.”

“오. 혹시 김진모 배우님과 함께하는 건가요?”

안시현이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인터뷰 며칠 전에 질문 리스트를 건네받았고, 그중 공약 관련 질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박정상을 통해 PD에게 직접 부탁했다.

공약 관련 질문만큼은 무조건 해 달라고 말이다.

당연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 왔다.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 진모와 함께 합동 팬 미팅을 하겠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규모는 5천 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료 5천 석짜리 무료 합동 팬 미팅.

공약치고는 엄청난 스케일에 리포터의 두 눈이 커졌다. 공약과 관련된 질문의 대답을 사전에 듣지 못했기에, 연기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놀라는 것이었다.

“스, 스케일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스포츠 영화 사상 최다 관객 신화를 새로 쓰는 건데, 그 정도 공약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참고로 진모도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서 저와 공동으로 할 공약을 고민하고 있던데, 인터뷰 잘 따 보세요.”

“단독 정보인가요?”

“아직까지는요.”

“PD님! 이 부분 편집하죠! 그래야지 저희가 독점할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편집이 될 일은 없었다.

재미를 위해서는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다 내보내는 게 나을 거라는 걸, 현장에 있는 모두가 느꼈으니까.

인터뷰가 끝난 뒤.

또 다른 언론 인터뷰를 위해서 차로 이동하는 가운데, 안시현이 미소를 지은 채 박정상에게 물었다.

“형, 공약 아이디어 괜찮았죠?”

“괜찮은 수준이 아니지. 아마 네 팬이랑 진모 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영화를 볼걸. 어쩌면 관객 수 1명이라도 더 늘리려고 몇 번씩 볼 수도 있어.”

“거기에 홍보도 잘해 줄 테고요. 일단 초반 스코어가 확실하게 잘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죠.”

대박 영화는 보통 개봉 초반부터 판가름이 난다.

초반 스코어가 부진한 영화 중 중후반에 입소문을 타고서 대박이 나는 경우는 극소수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금적인 문제로 홍보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해서 초반 스코어에 불리하게 작용한 케이스다.

『칠전팔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자금에 이유 있고 언론 플레이에 자신 있는 JM액터스가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안시현은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자신과 김진모의 5천 석 규모의 무료 팬 미팅 공약.

이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김진모의 팬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초반 스코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그래도 원톱인데, 흥행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안시현의 목표는 단 하나.

『칠전팔기』가 작품성에 어울리는 최종 스코어를 기록하고서 상영을 끝마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손을 거들어 주는 것 정도야, 원톱으로서 얼마든지 해 줄 의사가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잔뜩 출연하려고 했지만, 단체 토크 쇼에 출연하는 것에서 그쳤다. 이번에는 오히려 언론에 많이 노출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김진석 대표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이 맞을지 틀릴지는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결과가 정답을 말해 주리라.

시간이 흘러 2006년 10월 15일.

마침내 『칠전팔기』가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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