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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60화 (160/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61화>

161화. 네가 생각했을 때

그동안.

안시현은 수많은 시상식에 참여하면서 웬만해서는 수상과 관련된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사 기대감을 드러내더라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돌려서 말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예 대놓고 남우주연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대한민국 대중들의 반응은 긍정을 넘어 응원 세례가 이어졌다.

대중들 또한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대한민국 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인 황금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경쟁을 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걸 말이다.

세계 3대 영화제에 진출하는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그중 일부는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한다.

그러나 남우주연상은 후보조차 거의 배출하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주연 배우의 혼이 담긴 연기를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보다는, 주제 의식이 명확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미를 살린 작품들이 초대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최정수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고작 2표를 받는 데에 그치며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지금까지 세계 3대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가장 근접했던 건, 『편지』에서 남궁수민을 연기해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완벽하게 표현하며 황금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던 안시현이다.

당시 안타깝게 수상을 놓쳤고, 몇 년 후 『90일』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 도전하게 됐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다.

이에 개봉 전 안시현의 인터뷰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

“『90일』의 제작비 절반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건 상업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시놉시스부터가 주연 배우의 연기에 많은 걸 의존한다는 게 보였고, 한노을을 연기하면서 제 연기가 어디까지 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안시현은 연기를 통해서 자신의 연기가 세계적으로도 통한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냈다.

거기에 평소 꾸준히 기부를 하고 팬들을 끔찍이 아끼는 안시현의 호감 이미지까지 더해지며,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바라는 폭발적 응원이 이어지게 됐다.

김진모는 그런 안시현을 밀착 취재했다.

다수의 기자들이 안시현을 취재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근처까지 다가와 촬영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건 김진모뿐이었다.

김진모가 쓴 기사가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데다, 다른 기자들의 취재 자체를 거부한 것도 아니기에 딱히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모공까지 찍을 기세인데?”

“기껏 프랑스까지 보내 줬는데 밥값은 해야지. 방금 전에 자신감 넘치던데?”

“내가 원래 자신감 빼면 시체잖냐.”

“똥 싸고 있네. 자신감만큼 결과도 좋았으면 하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괜찮지?”

“나 수상 소감 외우느라 밤샜다. 못 받으면 해변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수상 소감 말할 거야.”

“크흐흐. 미친놈.”

『편지』 때와 달리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이 손에 닿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안시현은 전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너무 긴장돼서인지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들지 못했고, 해변가를 산책하며 수상 소감을 외우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기자들은 해변의 산책하는 안시현의 모습을 취재할 수 있어 좋아했지만 말이다.

시상식장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긴장감이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편해졌다.

김진모가 일부러 장난을 치며 긴장을 풀어 주려고 노력한 덕분이었다.

안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한 번 긴장이 풀리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수상은 수상이고, 일단은 즐기자.’

남우주연상 수상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라지만, 변수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수상 결과가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종종 일어나기도 하니까.

안시현은 수상에 신경 쓰기보다는 순수하게 시상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와 감독이 수상자로 호명되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박수를 쳤고, 칸느에 와서 통성명을 한 몇몇 수상자에게는 직접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남우주연상 시상이 다가왔다.

5명의 후보가 차례대로 호명된 이후, 잠시간의 뜸을 들이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시상식 내내 즐겼던 안시현이지만…….

이때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 채, 마른침을 삼키며 시상자의 입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지난 며칠간 제 눈물을 쥐어짰던 분이시네요. 『90일』의 안! 시! 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황금영화제에 초청된 감독과 배우들 중 상당수가 극찬했고, 현지 언론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안시현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

“나이스!”

“꺄아아아악! 됐다, 됐어! 됐다고요!”

“짜식, 언젠가 사고 한번 제대로 칠 줄 알았다니까.”

“축하해요, 시현! 당신이 해냈어요!”

수상자가 호명되자마자 김진모를 비롯해 안시현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작 안시현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막상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일순간 머리가 멍해져서였다.

“뭐해, 안 올라가고? 다들 너만 보고 있잖아.”

“아…… 땡큐.”

안시현이 정신을 차린 건, 김진모가 그의 엉덩이를 가볍게 툭 치며 속삭인 이후였다.

안시현은 천천히 무대에 올랐다.

그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들의 축하를 받으며,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시상식장을 훑어보았다.

배우, 감독, 기자, 스태프 할 거 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상황.

‘뭔가…… 좀 울컥하네.’

회귀 후.

안시현은 수많은 시상식에 참여해 봤고, 수상 경험 또한 동년배 배우들 중 가장 많았다.

수상은 시상식의 규모와 관계없이 항상 기분이 좋은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감회가 남달랐다.

무려 세계 3대 영화제인 황금영화제다.

『편지』에서 몇 표 차이로 아쉽게 놓친 남우주연상을, 몇 년 후 『90일』을 통해 마침내 수상하게 됐다.

현지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황금영화제에 초청된 감독과 배우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이 뜻깊은 건, 상 자체보다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더 컸다.

안시현이 애써 울컥하는 마음을 억눌렀다. 미소를 지은 채 새벽 내내 외운 수상 소감을 떠올렸다.

“이 상을 받기까지…….”

*   *   *

-안시현,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두 번의 도전 끝에 정상에 서다.

-‘다시 한번 이 무대에 서겠다’, 당찬 포부 밝혔던 2분의 수상 소감.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안시현의 차기작에도 영향을 끼칠까?

-기욤 뒤자르댕, ‘더 큰 무대에서 시현과 함께하겠다, 기대해 달라’.

안시현의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은 프랑스 현지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에서도 엄청난 화제가 됐다.

수상 이후 이틀 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이 안시현의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과 관련된 것들로 차지했을 정도로 말이다.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쏟아졌고, 안시현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업체들은 이때다 싶어 수상 기념 이벤트를 하며 덕을 보기를 바랐다.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기점으로 업계 톱클래스인 안시현의 광고료가 더 치솟아 오르고, 차기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정작 안시현은…….

“아, 기분 좋다.”

“기분 좋다는 놈이 운동이나 하고 있어? 술 마시는 게 아니고?”

“운동 빼먹으면 천벌받고, 술 마시면 근육 빠져서 천벌 한 번 더 받아. 빠진 근육 다시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알아?”

“하여간 독종이라니까.”

“누가 누구한테 독종이래?”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넌 진짜 뇌가 연기로 꽉 차 있는 거 같아.”

쏟아지는 기사의 내용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 뒤, 곧장 호텔로 돌아와 운동에 매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한잔하러 가자는 김진모의 칭얼거림을 무시하고, 오히려 김진모까지 데리고 함께 운동을 하며 질색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날이니만큼 술을 진탕 마신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 한 명 없지만…….

안시현은 시상식 때문에 아침 운동을 빼먹었기에, 저녁에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운동 후에는 자신의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위해 도와준 사람들과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이미 파티를 위해 바 하나를 통째로 빌려 놓았다.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도와준 이들은 마음껏 마시고 취하며 분위기를 즐기길 바랐다.

두 시간 뒤.

혜인원 직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안시현이 논알코올 칵테일로 가득 채워 준 잔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노력해 주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홍보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언정 수상은 힘들었을 겁니다.”

안시현은 단순히 자신이 연기를 잘해서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수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박정상과 기욤 뒤자르댕이 『90일』의 황금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고, 초청 이후에는 혜인원의 직원들까지 칸느로 출장을 오며 홍보전에 사력을 다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마냥 낙관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안시현은 도와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고,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한번 파티를 열기로 약속했다.

칸느의 새벽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다들 한동안 황금영화제에만 집중하느라 멀리했던 술을 마음껏 마시며 분위기를 즐겼다.

한창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김진모가 녹음기를 든 채 안시현에게 다가왔다.

“기자의 입장으로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봐도 돼? 기사에 포함시키고 싶은 질문 하나가 떠올라서.”

“마지막이라니까 허락할게.”

“네가 생각했을 때, 황금영화제 남주주연상 수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신이 뭔 것 같아? 당사자는『90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네.”

“공헌이라…….”

『90일』에서 안시현은 매 신 좋은 연기를 보여 줬다.

그럼에도 유독 인상 깊었던 신이 여럿 있었고, 이는 곧 관계자들의 극찬으로 이어지며 안시현이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

놀이공원 신이 대표적으로 인상 깊었던 신이다.

과연 한노을을 연기한 당사자인 안시현은 어떤 신을 가장 인상 깊게 봤을까?

순간.

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안시현에게 쏠렸다.

안시현이 별 고민하지 않고 답을 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계속 같은 생각이었는, 신 81이 제일 인상 깊었던 것 같아.”

“신 81?”

“영정사진 찍으러 가는 신.”

“아아, 그 신이 왜?”

“놀이공원 신을 기점으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감정을 하나둘씩 드러내게 된 한노을이, 본격적으로…….”

그날.

안시현은 김진모와 오랜 시간 『90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자축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안시현이 일행들과 함께 귀국했다.

공항 한쪽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서, 안시현은 황금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이후 안시현은 김진모와 박정상과 함께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최봉팔의 차를 타고서 공항을 벗어났다.

동시에 최봉팔에게 부탁했다.

“봉팔 형, 정상 형이랑 진모 사옥에 내려 주고 촬영장으로 가 주세요. 한 신만 촬영하고 집에 갈래요.”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최봉팔과 김진모, 박정상은 안시현의 말을 듣고서 혀를 내둘렀다. 시상식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으니 며칠 쉴 법도 하건만, 곧장 촬영장으로 가 달라고 하다니?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진모마저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뇌가 연기에 절여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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