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69화>
169화 순식간에
드라마와 영화의 성공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100% 확신하는 게 불가능하다.
관계자들이 모두 성공을 확실시하던 블록버스터 영화가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으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대박이 나는 경우 또한 더러 존재한다.
다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대중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작품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장 분위기다.
현장 분위기가 좋은 작품은 좋은 결과를 맞이한 확률이 높지만, 최악인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하곤 하니까.
『VVIP』의 현장 분위기는 단언컨대 최고였다.
일단 최창국과 김희숙 작가는 벌써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것인 데다, 주연 배우인 안시현과 우정태와 한나래가 동문이며 사이가 돈독하다.
거기에 조연 배우들 또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성격이 좋은 걸로 유명한 이들이 모였다.
성격까지 모두 고려하고서 캐스팅 한 건 아니지만, 모아 놓고 보니 촬영장에서 잡음이 날래야 날 수가 없는 캐스팅라인이 완성됐다.
거기에 주연 배우 3인방의 연기력 경쟁 또한 현장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덩달아 조연 배우들 또한 더 좋은 연기를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최창국과 김희숙 작가는 상대적으로 애드리브에 후한 편이다. 대본보다 애드리브가 더 좋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채용하곤 한다.
이는 안시현의 백성훈 연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백성아와 곽훈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사가 적은 백성훈의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서, 적절한 애드리브를 채택하며 감탄을 자아 낸 것이다.
안시현은 데뷔작인 『나는 간첩입니다』 때부터 좋은 애드리브를 종종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안시현과 함께 작품을 할 때, 애드리브를 자유롭게 허용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애드리브가 없어도 안시현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뽐냈지만, 애드리브를 허용했을 때 정점을 찍는 건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니까.
애드리브가 전적으로 허용되자 한나래와 우정태 또한 부담감보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자신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김희숙 작가가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김희숙 작가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본 덕분일까?
“최창국 PD님의 경우 한 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는데요. JM액터스의 콘텐츠 제작을 총괄했다고는 하지만, 사전 제작이기에 현장 경험의 부재가 뼈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창국 PD님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희숙 작가에 이어 정곡을 찔린 최창국 또한,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기자님께 죄송하지만 김희숙 작가님과 같은 대답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김희숙 작가님이 절 선택하신 게 실수인지 아닌지는 방송을 통해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 대신 시청률과 관련해서 공약 하나 하겠습니다.”
순간 기자들의 시선이 최창국에게 쏠렸다.
김희숙 작가에 이어 최창국마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대답을 피하자 실망하려는 찰나, 공약을 건다고 하니 관심이 집중되는 게 당연했다.
사실 최창국은 공약을 걸 생각이 없었다.
불과 몇십 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VVIP』를 제대로 연출했을지, 현장 경험의 부족으로 놓친 부분이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최종 예고편을 확인한 배우들과 김희숙 작가의 반응을 보고서야 확신을 품게 됐다.
자신의 연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VVIP』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덕분에 자신 있게 공약을 걸게 된 것이다.
“최고 시청률 30%를 넘으면, 홍대에서 아이돌 춤을 추겠습니다.”
“오. 그거 재미있겠네요. 30% 넘으면 저도 같이 할게요. 시현이 너도 할래?”
“아이돌 춤이라…… 그래요. 같이해요. 아이돌 춤이면 여럿이서 같이하는 게 낫죠.”
최창국의 공약에 흥미를 느낀 우정태와 안시현이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다만…….
기자들은 공약을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봤다.
김희숙 작가와 안시현의 재결합으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김희숙 작가의 드라마 중 처음으로 로맨스 요소를 배제한 게 더 화제다.
게다가 『VVIP』는 MBS 창사 50주년 기념 블록버스터 드라마인 『파일럿』과 경쟁해야 한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최고 시청률 30%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기자들은 최고 시청률 30% 공약 발언이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 사람이 진심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 * *
드라마의 시청률은 해당 드라마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대진운 또한 크게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타이밍만 잘 맞았다면 최고 시청률 30% 돌파 정도는 가뿐해 보였던 세 드라마가, 동시간대에 방영을 하며 서로 시청률에서 피해를 본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VVIP』의 최고 시청률 30% 돌파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종영을 6화 남겨 둔 10화에서 시청률 20% 돌파에 성공한 KNC의 『브라보 유어 라이브』, 『VVIP』보다 일주일 앞서 방영하는 MBS의 창사 50주년 기념 블록버스터 드라마 『파일럿』과 경쟁해야 한다.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김희숙 작가의 기존 스타일대로 로맨스를 적절히 버무린 드라마였다면 모를까, 로맨스 요소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재벌물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물론 안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안시현은 제작 발표회 당시 시청률을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했다.
“공약을 최고 시청률 30% 돌파로 걸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예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종 예고편을 보시면 저희가 자신만만하게 시청률을 낙관하는 이유를 이 자리에 계신 기자 분들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고 시청률 30%가 넘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기자들은 호기심을 품었다.
도대체 예고편을 얼마나 잘 만들었으면 다들 저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걸까, 마케팅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이 있는 걸까?
기자들의 호기심은 그날 저녁 곧장 해소됐다.
STS에서 『VVIP』의 최종 예고편을 내보내며 막바지 홍보에 힘을 실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공개된 최종 예고편은 제법 화제가 됐다.
『VVIP』 1차 예고편과 2차 예고편이 백성훈을 조명한 것과 달리, 최종 예고편은 백성아와 곽훈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쪽으로 편집이 됐기 때문이다.
『VVIP』는 방영을 2주 남짓 앞두고 있음에도 많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캐릭터들의 정보와 예고편, 그리고 최소한의 정보가 담긴 인터뷰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백성훈과 백성아와 곽훈의 비중은 전적으로 예고편에 의존해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1차 예고편과 2차 예고편은 백성훈이 핵심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안시현에게 많은 책임을 맡겼다는 게 티가 났고,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최종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로는 세 주연 중 누구의 비중이 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는 다분이 의도된 연출 방향이자 마케팅이었다.
궁금하면 본 방송을 통해 확인해라, 추가 정보는 눈곱만큼도 공개할 생각이 없다.
전략 덕분일까? 『VVIP』는 최종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김희숙 작가와 안시현의 재결합, 제작 발표회에서의 내건 공약의 기사화, 최종 예고편으로 인한 화제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안시현이 할 수 잇는 것이라고 해 봐야 홍보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는 것뿐이다.
‘『너와 나의 시간』 때가 떠오르네.’
방영을 앞둔 상황에서 안시현은 『너와 나의 시간』의 방영 직전의 시간을 떠올렸다.
당시 『너와 나의 시간』은 최고 시청률 50%를 향해 순항하고 있던 『거짓말』과, 블록버스터 드라마인 『사랑하고 싶어』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였다.
대다수는 『너와 나의 시간』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애국가 시청률을 넘기만 하더라도 다행이라는 냉소적인 시선 또한 제법 많았다.
하지만 『너와 나의 시간』은 최고 시청률 55%를 넘기며 대박이 났다.
‘제작비가 많다고 그게 꼭 드라마의 흥행과 직결되는 건 아니고, 뚜껑은 열어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안시현은 제작 발표회와 최고 예고편으로 인한 화제성이 『VVIP』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해 주길 지신으로 바랐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안시현이 외부 스케줄을 소화하며 틈틈이 『Timeless』의 준비를 위해 시나리오를 손에 집어 들었을 즈음.
9월 첫째 주 수요일 저녁.
『VVIP』의 첫 방영이 시작됐다.
* * *
『VVIP』방영 몇 시간 전.
안시현은 별장에서 부모님과 정혜영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요즘 들어 부쩍 부모님이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라온이를 위해 고기를 잘게 잘라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라온이의 재롱에 부모님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은 건 일종의 보너스였다.
저녁 9시 40분 즈음.
라온이를 재운 뒤 안시현이 가족들과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다 함께 여유롭게 『VVIP』의 첫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VVIP』의 포문을 연 건 백성훈, 즉 안시현이었다.
“실적 미달인 계약직 직원들과 계약 연장 안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봉은 직급과 상관없이 철저하게 성과제로 합니다. 불만 있으신 분? 있으면 옷 벗고 나가세요. 제 말에 토 다는 직원, 필요 없습니다. 불만이면 니들이 대표이사 하시든가.”
백성훈은 드라마의 시작인 V백화점 임원 회의에서부터 다분히 악역다운 면모를 보여 줬다.
백화점 실적 향상과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직원들을 일절 배려하지 않았으며, 비서인 곽훈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런 백성훈을 보며 입을 모아 말했다.
능력은 있지만 더럽게 싸가지 없고 재수 없는 사장이라고 말이다.
백성훈 다음으로 조명이 된 건 백성아였다.
“너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맞겠지. 쉽지는 않을 거다. 네 오빠 성훈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본인이 회장실을 차지할 거라 생각하는 오만한 오빠는, 기회가 오길 바라며 끊임없이 칼을 갈았던 제게 뒷통수를 거하게 맞을 테니까요.”
그녀가 V호텔의 리조트 사업을 배후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과, 그 성과를 인정받아 백왕국 회장이 V호텔을 맡기게 되며 마침내 전면에 나서게 되는 모습까지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지막으로 조명 받은 건 곽훈이었다.
백성훈과 함께 등장한 신들에서는 존재감 없는 비서로만 보였던 그였지만, 백성아가 귀국한 뒤 은밀하게 그녀와 접촉하면서부터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백성아 씨, 저와 거래하시겠습니까?”
“곽훈 씨와의 거래를 통해 제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죠.”
“백성훈을 파멸로 몰아 놓을 지름길. 당신의 계획에 부족한 디테일을, 제가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백왕국 회장님조차 저보다 백성훈을 잘 알지 못할 테니까요.”
“구미가 당기네요. 설명해 보세요.”
이후.
백성아가 백성훈을 만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을 예고하며 1화가 마무리됐다.
2화의 예고편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1화가 방송되는 내내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정혜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70분이 순식간에 가 버렸네요.”
정혜영의 말은 『VVIP』의 1화 시청자 반응을 함축적으로 요약해 줬다.
방영 직후.
인터넷은 『VVIP』과 관련된 이야기로 뜨거웠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한 가지 주제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백성훈과 백성아.
둘 중 누가 핵심 주연일까? 그것이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 사이.
『VVIP』1화의 시청률이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