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69화 (169/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70화>

170화. 별 거 아니야

『VVIP』의 1화가 끝난 직후.

김희숙 작가는 미리 예정했던 대로 인터뷰를 통해서 한 가지 정보를 밝혔다.

바로 곽훈은 메인 주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김희숙 작가가 직접적으로 정보를 공개했음에도 대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애초에 1화에서 보여준 포지션을 보더라도, 곽훈은 메인 주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캐릭터였으니까.

백성훈과 백성아.

존재감을 보면 둘 중 한 사람이 메인 주연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심지어 예고편도 1차와 2차는 백성훈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는데, 최종 예고편에서는 난데없이 백성아의 존재감을 부각시키지 않았던가.

이에 인터넷에서는 백성훈과 백성아 중 누가 메인 주연이냐를 놓고서 의견이 엇갈렸고, 기자들조차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며 『VVIP』의 1화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인터넷에서의 반응을 확인한 후.

안시현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더 좋아.’

백성훈과 백성아 중 누가 메인이냐를 놓고 논쟁이 오간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VVIP』의 첫 방송을 흥미롭게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작품이 인터넷 상에서 화젯거리로 떠오를 이유가 없었다.

『VVIP』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당장 예고편과 제작 발표회에 대한 관심만 하더라도 꽤나 괜찮았으니까.

다만 안시현이 예상한 것보다 더 뜨거웠다.

12화에서 시청률 23.5%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 갱신에 성공한 『브라보 유어 라이브』, 일주일 앞서 방송하며 나름대로 호평을 받은 『파일럿』과 관심의 정도가 비슷할 정도였다.

‘역시…… 이번 승부, 확실히 해볼 만해.’

최근 들어 방송 3사 모두 좀처럼 수목 드라마에서 시청률 30%를 넘은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기로 따지면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다.

그나마, 립싱크만 하던 잊혀진 90년대 아이돌 가수의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기를 소재로 한『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30%를 돌파하지 않을까 하는 시선이 많았다.

다만 영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종영을 앞두고 『파일럿』과 『VVIP』를 연달아 만나게 됐으니까.

분위기상 25%라면 모를까, 30%는 넘기지 못한 채 종영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시선은 『파일럿』과 『VVIP』로 집중될 거다.

한쪽은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MBS가 작정하고 준비한 블록버스터 드라마, 다른 한쪽은 김희숙 작가와 안시현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브라보 유어 라이브』의 종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청률 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안시현은 1화가 방영된 이후 쏟아지는 관심과,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이 채택한 홍보 전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 둘수록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테니까.

‘『파일럿』은 30부작이잖아? 우린 18부작이니까 일단 이기고, 그 다음에 『파일럿』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안시현이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   *   *

한편.

최창국은 편집실에서 DMB로 『VVIP』의 첫 방송을 모니터링했다.

드라마 후반부의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기에 느긋하게 모니터링을 할 여유가 없어서였다.

‘후반부 편집에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될 거야.’

최창국은 혹여나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 있는지, 연출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초점을 맞추고 첫 방송을 시청했다.

그리고 70분이 훌쩍 가 버렸다.

2화의 예고편을 보며 최창국이 턱을 괸 채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실수한 부분은 없었어. 딱히 연출적으로 보완할 부분도 보이지 않았고. 이랬는데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면, 내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결과적으로 『VVIP』의 첫 방송은 최창국과 김희숙 작가의 의도대로 연출이 됐다.

너무 깔끔해서 뭐 하나 흠잡을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는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예고편이 끝난 직후.

최창국은 아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무대 정리하고 단원들이랑 회식 와서 본방 사수했어. 다들 반응 좋네. 나도 재밌게 봤고. 자기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유독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

배우 출신인 최창국의 아내는 3년 전부터 다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단, 스크린과 브라운관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전에 몸담았던 극단에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연기를 통해 돈을 벌고 인지도를 올리는 것보다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푹 쉬었음에도 연기력이 준수하다 보니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단호하게 거절하고 극단 활동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VVIP』의 첫 방송이 있는 날은 아내의 공연 날이었기에, 최창국은 아내가 모니터링을 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내는 평소 선호하지 않는 회식 자리까지 마련해 가며 극단원들과 함께 본방 사수를 했다.

그리고 평가는 아주 좋았다.

아내의 긍정적인 평가를 들은 뒤에야 최창국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지인들로부터 온갖 연락이 오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역시 마누라가 최고야.’

잠시간의 기쁨을 만끽한 뒤, 최창국이 지인들로부터 받은 연락에 일일이 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1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이후에야 다시 편집에 몰두하려 했지만…….

“본부장님.”

문을 열고 편집실에 들어온 한 사내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는 STS 드라마국 CP이자, 한때 최창국과 MBS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분을 쌓았던 후배 중 한 명이었다.

사내의 등장에 최창국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성 차장님. 호칭 좀 똑바로 합시다. 내가 너희 회사 본부장이냐? 누가 들으면 뒤에서 욕해.”

“거 둘이 있을 때는 좀 봐주십쇼. 편집 아직 안 끝났습니까?”

“밤샐 거 같다. 왜, 도와주려고?”

“밑에 있는 애들이 죄다 담당 거부했는데 제가 도와주면 뭐가 되겠습니까. 이거 주려고 왔습니다.”

사내가 최창국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것은 약 1시간 전 시청률 경쟁을 펼쳤던 수목 드라마의 시청률 표였다.

“CP 후배 있으니까 좋네. 맨날 아침까지 기다렸다 받아 보거나, 아님 언론 통해서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알면 좀 잘하십쇼. 이제 남남인데 이렇게까지 챙겨 주는 후배가 또 어디 있습니까?”

“아침 살게. 그나저나 넌 이거 확인했어?”

“확인했죠. 선배가 기대한 만큼 잘 나왔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래? 한번 확인해 볼까?”

최창국이 미소를 지은 채 시청률표를 확인했다.

KNC - 『브라보 유어 라이브』 - 26.2%

가장 먼저 『브라보 유어 라이브』의 경우, 26.2%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자리를 굳건히 했다.

종영까지 3화가 남았기에 시청률 30% 돌파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종영에 가까워질수록 호평 일색이며 시청률이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MBS - 『파일럿』 - 15.5%

3화가 방송된 『파일럿』은 15.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화보다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

다만 기대했던 것보다 시청률 상승 폭이 미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STS - 『VVIP』 - 13.7%

『VVIP』가 13.7%로 스타트를 끊어 버리며 『파일럿』의 상승세를 막아 버렸으니까.

최창국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시청률표를 확인하고 나자 일말의 불안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가 예상했던 1화 시청률이 얼마인지 알아?”

“흐음. 제가 아는 선배라면, 10%만 넘어도 감지덕지라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잘 알고 있네. 근데 무려 13.7%라니…… 우리 드라마, 30% 넘을 거 같은데?”

“『브라보 유어 라이브』 종영에 맞춰 흐름을 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KNC 쪽에선 『브라보 유어 라이브』 다음으로 편성할 드라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들었어요. 사실상 『VVIP』와 『파일럿』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걱정하지 마.”

최창국 PD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컸는데, 결과를 확인하고 나니 불안함 대신 지산감이 가득 찼다.

“3파전이 골치 아픈 거지, 2파전이라면 무조건 이길 자신 있어. 30% 꼭 넘어서 홍대 가서 춤추고 온다.”

“춤추러 가면 구경 갈게요. 아. 가는 김에 촬영도 해놔야겠다. 우울할 때 꺼내 보면 딱 좋겠네요.”

*   *   *

시청률표를 확인하고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편집에 매진하기 전, 최창국은 몇몇 사람들에게 시청률을 알려주기 위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 첫 대상은 바로 김진석 대표였다.

박정상과 해외 출장을 나가 있던 김진석 대표는 호텔에 들어오는 길에 최창국의 연락을 받았다.

“박 실장.”

“네, 대표님.”

“『VVIP』 말이야, 13.7%로 스타트 끊었다고 최 본부장으로부터 방금 연락 왔네.”

박정상의 두 눈이 커졌다.

흥행보증수표인 김희숙 작가의 작품이니만큼 시청률이 저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1화부터 13.7%나 나올 줄이야.

심지어 최근 1년 동안 방송 3사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수목드라마에서 낸 성과다.

순간.

박정상의 머릿속에 긍정적인 가정이 떠올랐다.

“흐름만 잘 타면 30% 노려 볼 수 있겠는데요?”

“먹을 거 없는 잔칫집만 아니라면 가능할지도. 1화가 최고 시청률이 아니기를 바라야지.”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김 작가님과 최 본부장이 전략을 아주 잘 짰어요. 초반의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려는 것 같아 인상 깊었는데, 초반부터 시청률이 따라 주는 걸 보니 기분 좋네요.”

“확실히 그 전략은 인상 깊었지.”

“나래 씨가 연기를 잘해 줘야 통하는 전략인데, 시청률을 보아하니 기대 이상이었나 봅니다.”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은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종영하는 4화까지가 고비고, 5화부터는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4화까지 어느 정도 시청률이 확보돼야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거다.

최소한의 동력조차 없으면 추진력을 얻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백성훈과 백성아의 존재감을 이용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연히 안시현이 메인 주연일 거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에게, 백성아를 들이밀면서 둘 중 누가 메인 주연일지를 맞춰 보라는 식으로 예고편과 초반 4화의 편집 방향을 잡았다.

단, 이 전략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안시현과 경쟁을 해야 하는 한나래의 연기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건데…….

1화에서 한나래는 절정의 연기력을 뽐냈다.

악역을 연기해 오던 그녀였기에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1화에서는 복수와 야망을 위해서 오랜 시간 이를 간 백성아를 제대로 표현해 내며 호평을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곧 13.7%라는 시청률로 이어졌다.

분위기만 계속 이어 갈 수 있다면,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종영하는 4화 이후엔 상승세를 이어 가며 시청률 20%대 진입을 노릴 만도 했다.

소속 배우 세 명이 나란히 주연을 맡은 『VVIP』.

쾌조의 시작에 미소를 짓던 김진석 대표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박정상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VVIP』에 신인 배우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나? 곽 고문이 캐스팅한 친구 말이야.”

“아, 네. 백씨 집안 막내아들로 출연했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재밌는 그림이 떠올라서 말이야.”

“이럴 때 보면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별거 아냐. 분위기 잘만 타면, STS 연기 대상 주요 부문을 우리 쪽이 싹쓸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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