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71화 (171/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72화>

172화. 눈곱만큼도 없어요

2009년 9월 3일 저녁 9시 50분.

『VVIP』 2화가 방송됐다.

2화에서는 V호텔의 본부장으로서 백성아가 백성훈에게 후계자 경쟁을 할 것이라 선포하고, 그런 백성아를 혼쭐내 주기 위한 백성훈의 모습이 그려졌다.

백성아가 선전 포고를 하고 돌아간 뒤.

백성훈이 비서인 곽훈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곽 비서, 우리 VVIP 고객들 중에 V호텔 계열사를 이용하는 분들이 꽤 있지 않나?”

“호텔, 골프장, 스파 등을 연간 회원권을 통해 이용하시는 VVIP 고객이 도합 15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이용을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계산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매출의 10%까지도 타격이 있을 겁니다. V호텔 또한 VVIP가 매출의 상당 부문을 차지하니까요.”

“그렇겠지. 그럼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자고.”

순간 곽훈의 두 눈이 커졌다.

백성훈이 백성아를 견제하기 위해 V호텔의 매출에 피해를 주기로 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곽훈이 백성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걱정하지 마. 다시 되돌아오게 만들 거니까. 대관식을 치르기 전에 오냐오냐했더니 주제도 모르고 날뛴 동생에게 경영이 무엇인지 맛 좀 보여 주려는 거야.”

“으음. 네. 그럼 근시일 내로 VVIP분들을 파티에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잡아 줘. 초대하면서 이번에 나온 신상 들 보내 드리는 거 잊지 말고.”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이만 나가 봐.”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젖는 백성훈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인 뒤, 대표 이사실을 빠져나온 곽훈은 곧장 비서실로 향했다.

이내 자신의 방에 들어온 곽훈은, 터무니없는 계획을 진행하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던 백성훈의 방금 전 모습을 떠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예상을 벗어나질 않아요.”

곽훈은 백성훈의 뜻에 따랐다.

백성훈은 V호텔 계약사의 VVIP 고객들을 경쟁사로 넘어가게 만들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매출이 대폭 감소한 V호텔과 백성아를 압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백성훈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2화의 막바지.

백성아가 V백화점과 경쟁 관계인 업계 2위 백화점의 VVIP 고객을 V호텔 계열사로 데려온 건 물론이거니와, 빠져나갔던 VVIP 고객들 또한 다시 데려온 것이다.

심지어는 연간 회원권이 아닌, 평생 회원권을 흔쾌히 결제한 고객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백성훈의 계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V호텔의 매출은 오히려 상승하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성아가 있었다.

VVIP 고객들을 추가로 유치한 건 오롯이 백성아의 공이었으니까.

백왕국 회장으로부터 성과를 인정받은 뒤, 백성아가 V호텔에 백성훈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오빠는 VVIP 고객들이 늘어나는 게 좋아, 아니면 경쟁사에 뺏기는 게 좋아? 말 잘해야 할 거야. 오빠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내 선택이 달라질 거거든.”

“네가 쥐고 있는 패가 무엇이냐에 따라 내 대답도 달라지겠지. 먼저 까 봐.”

백성훈이 백성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백성아는 자신의 경쟁 대상이 아니며, 철 모르고 날뛰는 동생으로만 취급했다.

다만 백성훈의 오만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백성아가 자신이 들고 있는 패를 공개하자마자 대번에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행동을 해 주면, 뺏어 온 VVIP 고객들이 V백화점을 이용하게 해 줄게. 하지 않는다면, V백화점의 VVIP 고객들이 경쟁사 백화점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꼴을 보게 될 거야.”

“그럴 능력은 있고?”

“있지.”

백성아가 녹음기를 재생시켰다. 녹음기에는 백성아의 뜻에 따라 어느 백화점을 이용할지 결정하겠다는 V백화점과 경쟁 백화점 VVIP들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그제야 백성훈이 상황을 파악했다.

백성아가 V백화점의 매출 등락을 결정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는 걸 말이다.

“……원하는 게 뭐야?”

“별거 없어. 그냥 이 말 한마디만 따라 하면서 나한테 고개 숙이면 돼. 부탁드립니다, V호텔 본부장님.”

그 말을 끝으로 2화가 마무리됐다.

*   *   *

2화 내내 백성훈이 상황을 주도하며 백성아를 혼내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백성아가 뒤에서 백성훈의 계략을 제대로 받아치며 카운터펀치를 날린 거였다.

그래서일까?

안시현이 메인 주연이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2화 막바지에 짧은 분량만으로도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낸 한나래로 인해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 우정태가 정말로 주연이 맞느냐, 비중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2화의 출연 비중만 놓고 보면 안시현과 한나래와 우정태가 6대 3대 1의 비율로 나눠 가졌으니까.

물론 그와 별개로 시청률은 또 다시 상승했다.

KNC - 『브라보 유어 라이브』 - 27.5%

MBS - 『파일럿』 - 16.0%

STS - 『VVIP』 - 15.3%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다시 한번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상황이 잘만 따라 준다면 최고 시청률 30%라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게 됐다.

『파일럿』의 경우 16.0%로 소폭 시청률이 상승하긴 했지만, 15.3%를 기록한 『VVIP』에게 역전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만큼 『VVIP』의 상승세가 매서웠다.

물론 『VVIP』의 상승세에도  MBS 드라마국은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 『파일럿』이 어느 정도의 시청률만 유지할 수 있다면, 『VVIP』의 종영 이후 최고 시청률 30%를 넘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KNC의 입장은 달랐다.

남은 회차는 고작 2화.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30%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VVIP』의 상승세로 인해서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이에 KNC는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종영을 앞두고 어마어마한 반전이 있을 거라 예고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한 것이다.

일주일 후.

마지막 2화를 방영하는 동안 시청률 30%를 돌파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말이다.

*   *   *

KNC - 『브라보 유어 라이브』 - 28.8%

MBS - 『파일럿』 - 15.3%

STS - 『VVIP』 - 16.5%

마지막 화를 앞둔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28.8%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30%까지는 단 1.2%만이 남게 됐다.

반면 『VVIP』와 『파일럿』은 결국 시청률이 역전되고 말았다. 결국 『파일럿이』『VVIP』의 상승세와 이슈에 밀린 것이다.

이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에 비해, 『파일럿』이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낮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그나마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쟁쟁한 출연진들의 명연기 덕분이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별개로 스토리가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가 존재하기에, 『브라보 유어 라이브』의 종영을 기점으로 시청률의 향방이 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브라보 유어 라이브』 최종화, 『파일럿』 6화, 『VVIP』 4화가 맞대결을 펼치게 된 2009년 9월 10일 목요일.

전날부터『브라보 유어 라이브』의 최종화와 관련된 기사가 줄지어 쏟아졌다. 최종화를 앞두고 주인공이 오디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기가 막힌 반전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킨 것과 맞물려, 『브라보 유어 라이브』의 화제성이 『VVIP』와 『파일럿』의 화제성을 월등히 앞섰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가 질 무렵, 김희숙 작가가 언론을 통해 한 인터뷰 겸 스포일러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아마 3화까지 본방 사수를 하신 분들은 곽훈이 주연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 3화까지만 보면 그럴 테니까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3화까지 『VVIP』의 주연 3인방의 출연 시간을 정리한 게시글이 화제가 됐다.

그 결과.

곽훈은 3화까지 고작 4분 32초를 출연하는 데에 그치며, 몇몇 조연 캐릭터들에게마저도 출연 시간이 뒤처지는 굴욕을 맛보고 말았다.

이제 시청자들은 사실 곽훈이 주연이라는 건 제작진의 표기 오류가 아닐까 하는 시선까지 보냈다.

그런 분위기 속에 김희숙 작가가 대놓고 곽훈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4화를 보시면 곽훈이 어째서 주연인지를 알게 되실 겁니다. 사실상 곽훈이라는 캐릭터는 4화부터 진면모를 드러낸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VVIP』라는 드라마 자체가 캐릭터들에 대한 정보를 최소한으로 공개한 채 방영을 시작했지만, 곽훈은 그중에서도 신비주의가 더욱 심했다.

키, 몸무게, 나이, 성별, 직업.

다섯 가지만 공개한 뒤 그 외의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대한 짧은 설명조차도 없었다.

김희숙 작가가 직접 곽훈에 대한 언급한 기사는 이내 화제가 됐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방송된 4화에서 곽훈은 백성훈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2화부터 4화까지 몇 차례 있었던 백성훈과 백성아의 대결에서 백성훈이 패배한 게, 그가 첩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백성훈이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동시에 곽훈의 과거와 목표 또한 공개됐다.

그는 10년 전, V백화점 본부장으로 있던 백성훈으로 인해 실직자가 된 한 직원의 아들이었다.

문제는 해당 직원이 V백화점의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과 실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V백화점에 입사한 건,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어. 2년 전에 당신이 그랬지? 노조 만들려는 작자들은 다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거나 은밀한 방법을 통해 없애 버렸다고. 노조가 있으면 백화점의 수익을 극대화할 수 없고, 회장님께 능력을 인정받기 힘들 거라고. 그때 깨달았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백성훈이 아닌 백성아가 V그룹을 물려받게 만들고 좋은 기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하는 것.

그것이 곽훈의 목표였다.

백성아는 곽훈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이민에 필요한 자금과 절차를 지원하기로 했고 말이다.

4화의 막바지

결국 백성아가 4화까지 이뤄 낸 성과를 인정받고서 V호텔의 대표 이사로 임명됐고, 다시 한번 백성훈을 만나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이 시작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4화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집계된 시청률.

KNC - 『브라보 유어 라이브』 - 27.6%

MBS - 『파일럿』 - 14.9%

STS - 『VVIP』 - 17.5%

결국 『브라보 마이 라이브』는 30%의 고지를 넘지 못한 채 종영을 하고 말았다.

이는 홍보를 통해 예고한 『브라보 마이 라이브』의 반전 결말이 생각보다 시시했다는 것과 곽훈의 정체와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을 예고한 『VVIP』의 상승세가 함께 맞물린 결과였다.

실제로 『브라보 마이 라이브』의 순간 최고 시청률은 32.7%까지 기록되었다.

다만 곽훈의 정체가 공개된 시점부터 시청률이 줄어들면서 아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KNC 드라마국.

시청률표를 확인한 국장이 쓴웃음을 흘리며『브라보 마이 라이브』의 담당 PD를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줬다.

“고생했어, 정 PD. 포상 휴가 다녀와서 머리 식히고 다음 작품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고.”

“면목 없습니다. 30%를 넘겼어야 했는데…….”

“충분히 좋은 성과 냈으니까 위축되지 마. 30%는 다음에 넘으면 되는 거지. 보너스도 두둑하게 나올 테니까 마음 편하게 쉬어.”

국장은 시청률 30% 돌파 실패로 인해 짙은 아쉬움을 느끼는 담당 PD를 위로해 줬다.

담당 PD가 국장실을 나간 뒤.

그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시청률표를 구긴 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담당 PD로 있을 당시의 기억을 말이다.

“하여간 안시현이랑 김희숙은 도움이 되는 게 눈곱만큼도 없어요. 『너와 나의 시간』 때부터 발목을 잡더니, 이번에도 이 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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