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72화 (172/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73화>

173화. 가능하겠어?

KNC 드라마국 국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김희숙 작가와 안시현의 악연은 무려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짓말』의 담당 PD였던 그는, 『거짓말』이 최고 시청률 50%를 가뿐히 돌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너와 나의 시간』의 선전으로 인해 시청률 50%를 눈앞에 두고서 좀처럼 벽을 넘지 못했고, 결국 최고 시청률 49.9%를 기록한 채 50%를 기록하지 못한 채 종영을 하고 말았다.

0.1%

단 0.1%가 모자라서 50% 돌파에 실패했다.

물론 49.9% 또한 엄청난 성과다. 실제로 『거짓말』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국장까지 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김희숙 작가의 악연은 『VVIP』까지 도합 세 번째고, 안시현과의 악연은 두 번째라는 거다.

김희숙 작가와의 두 번째 악연은 2004년이다.

그가 CP로서 엄청나게 신경을 쓴 드라마 『스트레이트』가 시청률 4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김희숙 작가의 신작 『베니스의 연인』이 방영을 시작했다.

『스트레이트』는 최고 시청률 39.7%를 기록한 뒤, 이후 4화에서 시청률이 조금씩 감소하며 최종화에서 36.5%를 기록하며 종영하게 됐다.

그리고 『베니스의 연인』은 고작 5화에서 시청률 30% 돌파하고, 8화에서 시청률 40% 돌파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매김했고 말이다.

당시 『스트레이트』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진심으로 『베니스의 연인』을 원망하고 욕했다.

만약 『베니스의 연인』이 일주일만 더 늦게 방영했더라면, 최고 시청률 40%의 벽을 넘을 수 있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국장이 된 첫해부터 다시 한번 김희숙 작가와 안시현으로 인해 발목이 잡히게 됐다.

첫 번째는 최고 시청률 50%, 두 번째는 40%, 그리고 세 번째는 30%.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모두 고비를 넘지 못하며 뒷맛이 씁쓸한 채 종영하고 만 상황.

KNC 드라마국 국장이 쓴웃음을 흘렸다.

“김희숙 작가와의 첫 만남이 좋았다면 우리도 한 작품 정도는 같이했을 텐데 말이야. 이제라도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가?”

김희숙 작가와 KNC의 관계가 틀어진 건, 김희숙 작가가 『너와 나의 시간』의 방영 후 단막극『스무 번』을 준비하면서다.

당시 김희숙 작가는 『너와 나의 시간』의 제작 준비 단계에서 MBS의 홀대로 인해 쌓인 앙금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방영 중에 사과를 받긴 했지만…….

그 전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 뒤끝이 남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고민 끝에 KNC에서 단막극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가장 먼저 대본을 보여 줬다.

하나 KNC 드라마국은 거절 의사를 드러냈다.

그냥 거절했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거다. 돈이 되지 않는 단막극의 제작을 거절한다고 해서 김희숙 작가가 서운해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나온 한 CP의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관점에 따라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김희숙 작가는 기분이 제대로 상해 버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

김희숙 작가는 KNC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MBS와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는 STS와 내리 세 작품을 연속으로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KNC 측과는 어떠한 대화조차 오가지 않았다.

MBS와도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말이다.

제작 과정에서의 앙금이 남았던 MBS보다, 자존심을 건드린 KNC를 더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VVIP』의 종영 이후 김희숙 작가와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봐야겠어. 차기작을 우리가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두 작품 하고 은퇴할 건 아니잖아? 관계를 개선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동안.

KNC 드라마국은 자존심을 부리는 김희숙 작가를 외면하고 비웃었다. 흥행보증수표이니 뭐니 언론에서 떠받들어 줘도, 결국 언젠가 한 번은 무너지고 자존심이 꺾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김희숙 작가의 주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KNC 또한 인정해야 할 때였다.

김희숙 작가가 흥행보증수표라는 걸, 그녀와 함께하면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걸 말이다.

*   *   *

『VVIP』의 4화의 마지막, 후계자 경쟁을 예고한 백성아의 모습이 꽤나 많은 화제가 됐다.

백성훈이 곽훈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백성아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이 슬슬 메인 주연이 누구인지를 눈치챈 것이다.

안시현이 메인 주연이 아님에도 시청자들은 딱히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반응이 좋았다. 안시현의 찰진 악역 연기 덕분에 백성아의 존재감이 한껏 살아난 덕분이었다.

거기에 곽훈의 사연이 드러나고 백성훈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며, 주연이 아닌 것 같다는 일각의 부정적인 반응을 대번에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VVIP』에 정영빈은 없다.

-또다시 연기 변신에 성공한 안시현.

-카리스마 CEO 백성아, 시청자를 사로잡다.

-곽훈은 주연이었다, 김희숙 작가가 맞았다.

-우려를 연기력으로 종식시킨 『VVIP』의 주연들.

호평 일색인 기사가 쏟아졌다.

『VVIP』에 로맨스가 없다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맨스 없이 철저하게 재벌가의 후계자 구도와 인물들 간의 갈등만 집중했기에, 김희숙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한껏 살아났다.

이는 곧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됐다.

일각에서는 로맨스를 완전히 배제한 게 신의 한 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동 시간대 시청률 1위이던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종영했으며, 『VVIP』가 고작 4화 만에 17.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시청자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에 쏠렸다.

과연 『VVIP』는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종영한 상황에서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세를 탈까?

그리고 방영 전의 기대감과 달리 『VVIP』에 밀리는 모양새인 『파일럿』은 2파전에서는 반전을 일으킬 수 있을까?

*   *   *

『파일럿』에 대한 MBS 드라마국의 기대감은 상당했다.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작정하고 만든 드라마이니만큼 시청률이 잘 나오기를 바랐다.

다만 대진운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최고 시청률 30%를 내다보는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VVIP』가 일주일 늦게 방영을 시작한 것이다.

나름 기분 좋게 방영을 시작했던 『파일럿』이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VVIP』에게 시청률을 역전당하고 말았다.

『브라보 유어 라이브』가 종영했음에도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화제성에서 『VVIP』가 『파일럿』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게 문제였다. 시청률 경쟁이 2파전으로 진행된다고 한들, 『VVIP』를 제치는 게 힘들어 보였다.

MBS 국장은 『VVIP』의 1화부터 4화까지를 수차례 보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결론을 내렸다.

“『VVIP』가 종영할 때까지는 2위에 만족하자고.”

『VVIP』가 방영하는 기간 동안은 『파일럿』이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는 건 어렵다고 말이다.

『파일럿』은 분명 좋은 드라마다. MBS 드라마국에서 작정하고 준비한 만큼 스토리와 출연진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VVIP』라는 벽이 너무 높았다.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재밌는 드라마가 동 시간대에 방영된다면, 조금 더 재밌는 쪽으로 시청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파일럿』의 입장에서는 『브라보 마이 라이브』처럼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문이라면『파일럿』은 『VVIP』가 종영한 후에도 10화를 더 방송한다는 것,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VVIP』가 종영하면 막바지에 상승세를 노려 볼 수도 있는 상황.

MBS 드라마국 국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김희숙 작가에게 전권을 주더라도 데리고 올 걸 그랬어.”

사실 『VVIP』를 제작할 기회는 MBS에게도 있었다. 김희숙 작가가 MBS와 STS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조건을 조율하던 시기가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VVIP』를 가져간 건 결국 STS가 됐다.

MBS에서는 김희숙 작가에게 전권을 주는 건 일부분 허용할 생각이었지만, 사전 제작을 한다는 걸 탐탁지 않아 하면서 최종적으로 조율에 실패한 것이다.

MBS 드라마국장은 당시의 결정을 후회했다.

물론 후회한다고 해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VVIP』의 화제성 속에서 『파일럿』이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였다.

몇 분 후.

국장실에 『파일럿』의 담당 PD와 CP가 들어왔다.

“연장 가능하겠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작가님하고 주연 배우들하고 회의하고 왔습니다. 36화까지 연장하는 것에 다들 동의했습니다. 시청률에 따라 적절한 추가 보상 또한 약속했고요.”

“36화라……. 조금 더 늘어난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퀄리티는?”

“분량 문제로 인해 잘려 나갔던 내용들을 다시 집어넣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가자고. 입단속 잘하고. 『VVIP』의 종영 후, 시청률 상승 추이를 보다가 가장 적절해 보이는 시점에 연장 이야기를 꺼내야 돼.”

6화 연장 방영.

창사 50주년 기념 드라마『파일럿』의 흥행 성공을 위해 MBS 드라마국이 승부수를 던졌다.

*   *   *

KNC와 MBS가 『VVIP』의 화제성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것과 별개로, STS 드라마국은 간만에 수목드라마에서의 압승이 점쳐지는 상황에 축제 분위기였다.

특히나 국장의 입가에서는 『VVIP』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프라하의 연인』 이후 간만에 다시 손을 잡은 김희숙 작가가 이토록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해 줄 줄이야.

김희숙 작가가 외부 PD와 작업한다며 투덜거리는 일부 PD들도 있었지만, 국장은 그런 이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혀를 찼다.

“그러게 권한이 줄어들더라도 덥석 물었으면 얼마나 좋아. 김 작가님 눈치 볼 일도 없었을 거고 말이야.”

최창국을 데려오기 전까지 김희숙 작가가 마음고생을 했던 걸 생각하면, 국장은 PD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게 가당치도 않게 들렸다.

애초에 그들이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았더라면, 외부인인 최창국이 담당 PD를 맡을 일도 없었을 터다.

한편으로는 PD들이 욕심이 부려 준 덕분에 지금의 『VVIP』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VVIP』의 완성도는 김희숙 작가의 대본, 배우들의 열연, 최창국의 명불허전 연출력이 더해져서 나온 결과이니까.

당시의 고민거리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당시에 놀고 있던 PD 중 최창국 만한 연출력을 지닌 PD는 없었으니까.”

STS 국장은 『VVIP』의 시청률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지원을 일절 아끼지 않았다.

고작 4화가 방영된 시점에서 일찌감치 포상 휴가를 약속했으며, 『VVIP』의 화제성을 위해서 홍보에 최선을 다하며 재방송 편성 또한 넉넉하게 해 줬다.

“많이는 안 바라니까 딱 30%만 넘어 줘라. 그 이상 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국장의 기대감에 보답이라도 하듯.

『VVIP』는 6화에서 시청률 20% 돌파, 8화에서 시청률 25%를 돌파했으며, 10화에서는 마침내 29.5%까지 시청률이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은 회차는 도합 8화.

10화의 반응 또한 여전히 뜨겁다는 걸 감안해 보면, 30% 고지를 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40%까지는 무리겠지만 35%는 충분히 노려 볼 만한 상황. STS 드라마국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종영하기를 바랐다.

그 즈음.

『VVIP』의 화제성에 손을 거들기 위해, 안시현이 한 언론사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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