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81화 (181/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82화>

182화. 별 경험을 다

제안을 받은 안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연하는 배우가 직접 OST를 부르는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영화들의 경우 주연 배우가 OST를 부르며 인기몰이를 하곤 하니까.

다만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일수록 OST마저도 신중을 기해 제작하는 경향이 강하다.

OST 또한 영화의 흥행과 수입에 직결된다.

역대급으로 흥행한 영화의 OST를 많은 대중들이 오랜 시간 기억해 주는 것만 보더라도, OST의 중요성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한데 기욤 뒤자르댕은 그 중요한 OST를 안시현에게 맡기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메인 OST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상황 파악을 위해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것 같았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내일 오전에 식사하러 오시겠어요? 아, 대외비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입단속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날.

안시현과 식사를 하면서 기욤 뒤자르댕에게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JP스튜디오와 저는 시현이 데이비드 킴 테마 OST를 맡아 줬으면 합니다. 『Timeless』의 엔딩을 장식하게 될 OST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요한 OST를 제게 맡기겠다고요?”

“OST는 이미 만들어 놨습니다. 가이드 녹음까지 끝마쳤고요. 다만 가수를 찾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래의 분위기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데이비드 킴의 감정을 100% 이해하는 사람이 불러야 더 의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선 겁니다.”

“저 아니면 이석재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OST를 부르시기는 힘들 테니…….”

“네. 그래서 시현에게 부탁하게 됐습니다. 시현의 노래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 몇몇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서 이미 확인했고, OST를 부른 경험 또한 있지 않습니까. 부족함을 없으리라고 봅니다.”

JP스튜디오와 기욤 뒤자르댕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OST를 만들어 놓고 마땅한 가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안시현에게 부탁하는 심정이 오죽 할까 싶기도 했다.

‘아주 뽕을 뽑을 작정인가 보네.’

한편으로는 비싼 몸값을 주고 캐스팅한 주연 배우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안시현이 심사숙고했다.

JP스튜디오와 기욤 뒤자르댕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OST를 부르는 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속사인 JM액터스와의 조율도 필요했다.

이에 안시현은 잠시 마당으로 나와 박정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전속결로 JM액터스와의 의견 조율을 끝마치기로 한 것이다.

-OST라…….

“부르는 게 좋을까요?”

-나쁠 거 없지. 『Timeless』 제작비 규모가 JP스튜디오 기준으로 저예산 영화 20편은 만들 수준인데, 가수 섭외할 돈이 없는 건 아닐 거란 말이지. 네가 정말 OST에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일 거야.

“일단은 제 생각도 그래요.”

-노래 한번 들어 봐. 들어 보고 마음에 들면 불러. 혹시 알아? OST가 제대로 대박 나서 빌보드 차트 1위를 할 수도 있잖아.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관객들이 좋은 OST였다고 기억해 주는 정도만 돼도 감지덕지죠. 아무튼 들어 보고 결정한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요.”

통화 후.

안시현은 집안으로 들어가 기욤 뒤자르댕에게 OST를 들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기욤 뒤자르댕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안시현과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USB에 저장해 둔 OST를 곧장 재생시켰다.

OST를 들은 이후.

안시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좋네.’

기욤 뒤자르댕의 들려준 OST는 올드 팝의 느낌이 물씬 풍기며, 감성을 자극하는 잔잔한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였다.

노래를 듣자마자 어째서 기욤 뒤자르댕이 데이비드 킴의 감정을 100% 이해하는 사람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OST를 들었으니, 이제는 선택을 내려야 할 차례가 다가온 것이다.

고민 끝에 안시현이 입을 열었다.

“OST 타이틀이 뭔가요?”

“타이틀과 똑같은 『Timeless』입니다.”

“여행 기간 동안 녹음을 끝마치지 못하면 한국에서 녹음하는 게 제 조건입니다. 받아들이신다면, 녹음하겠습니다.”

“귀국 일정에 맞춰 OST 팀이 방한할 겁니다.”

기욤 뒤자르댕이 미소를 지은 채 안시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에 안시현 또한 기분 좋게 웃으며 기욤 뒤자르댕과 악수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지만…….

안시현은 결과적으로 OST를 부르는 게 자신에게 득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   *   *

OST 제안 이후.

안시현은 기욤 뒤자르댕과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JP스튜디오 사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뉴욕 여행에 집중했다.

애초에 JP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건 테마파크를 즐기고 촬영을 구경하는 선에서 끝났어야 했다.

OST 촬영 때문에 일정이 조금 늘어지긴 했지만, 가족 여행을 왔다는 방향성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안시현은 정혜영과 라온이와 함께 뉴욕의 관광 명소 곳곳을 돌아다닌 뒤, 만족스러운 여행을 뒤로한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며칠 뒤.

『Timeless』의 OST 팀이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방한을 했다.

영화 개봉 전까지 안시현이 부를 데이비드 킴 테마의 OST에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쪽이 마케팅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녹음을 진행한 곳은 JM액터스가 소유하고 있는 마포의 한 녹음실이었다.

“가볍게 목부터 풀고 할까요? 부르고 싶은 노래 있으면 반주 깔아 드릴 테니 편하게 불러 보세요.”

OST 팀과 함께하고 있는 프로듀서는, 안시현 또한 익히 얼굴을 아는 이였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게 참가자들에게 냉철한 피드백을 하며 눈길을 끌었고, 독설과 별개로 좋은 곡을 만들어 이슈가 되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 되었으니까.

대한민국에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불게 만든 프로그램이기에, 안시현 또한 정혜영과 아주 재밌게 본 기억이 있었다.

미국에서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프로듀서를 데려와 OST를 제작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JP스튜디오가 『Timeless』에 거는 기대감이 크다고 봐야 했다.

‘이거, 괜히 부담스러워지려고 하네.’

순간 안시현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프로듀서를 데려왔을 정도로 기대간 큰 OST를 자신이 불러도 되나 걱정했지만, 전날 받았던 기욤 뒤자르댕의 문자메시지를 기억하면서 긴장감을 떨쳐 내려고 노력했다.

-시현 씨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한 게 프로듀서예요. 가수들로는 무슨 짓을 해도 답이 안 나올 것 같다나 뭐라나. 디렉팅만 제대로 따라가면 좋은 곡이 나올 테니, 부담가지지 말고 녹음에 임해요.

그랬다.

기욤 뒤자르댕이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안시현을 낙점한 건 프류듀서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원한 걸까?

안시현의 의문을 녹음을 시작하자 대번에 해소됐다.

“배우님, 지금 이 상황을 OST를 녹음하러 온 게 아니라, 시간여행 중에 헬렌 킴과 함께 오붓하게 와인 한잔하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까?”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른다?”

“네. 녹음이 아니라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프로듀서는 안시현에게 연기를 하는 것처럼 노래를 불러 달라는 요구를 했다.

다른 배우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음. 몇 분만 주시겠어요? 데이비드 킴 연기를 안 한 지 제법 시간이 돼서, 집중력을 끌어올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거든요.”

“오래 걸려도 되니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안시현이 잠시 녹음실에서 나왔다.

동시에 안시현과 프로듀서의 대화를 듣자마자 녹음실 밖으로 나갔던 매니저 하정남이 손에 『Timeless』의 시나리오를 든 채 안시현에게 다가왔다.

“여기 시나리오 있습니다, 형님.”

“땡큐.”

연기하는 것처럼 녹음을 하려면, 안시현에게 시나리오가 필요할 거라고 판단해서 차에 다녀온 것이었다.

안시현이 『Timeless』의 시나리오를 손에 쥐었다.

한창 데이비드 킴을 연기했던 3월의 기억을 떠올리며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 지 10분.

‘나는 데이비드 킴이다. 나는 데이비드 킴이다. 나는…….’

의식까지 치른 끝에, 마침내 안시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에 하정남은 아무 말 없이 조심스레 녹음실의 문을 열어 줬다.

마이크 앞에 선 안시현이 시선을 옆에 뒀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벽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헬렌, 오늘 따라 기분이 너무 좋구려. 내 당신을 위해 노래 한 곡 불러 보겠소.”

안시현을 지켜보고 있던 프로듀서가 조심스럽게 반주를 재생시켰다.

오랜 프로듀서 경험을 통해 그는 안시현이 녹음할 준비가 됐음을 느꼈다.

일반적인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녹음 스타일이고, 이게 녹음이 맞는지조차 그 스스로도 의아하긴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곡만 잘 나오면 되는 거지.

그렇게 시작된 녹음.

프로듀서는 안시현에게 아무런 디렉팅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반주를 반복적으로 재생시켜 주며, 안시현이 몇 차례 노래를 하는 걸 통째로 녹음하기만 했다.

도합 12번.

목이 살짝 쉴 때까지 노래를 불렀을 즈음, 프로듀서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녹음한 걸 잘 짜깁기하면 괜찮은 곡이 나올 것 같습니다. 며칠 걸릴 것 같은데, 곡이 완성되는 대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뭘 한 건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정상적인 녹음 방식은 아니었지만, 결과물은 잘 나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래는 디렉팅을 제대로 할까 싶었는데, 뒤자르댕 감독님께서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시도해 봤습니다.”

색다른 녹음 방식은 안시현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한 기욤 뒤자르댕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안시현은 노래를 꽤나 잘하는 편에 속한다.

배우로서는 말이다.

예능에 나와 노래 좀 잘 부르는 배우로 비춰지고, 간혹 이벤트성으로 OST를 부를 수 있는 수준.

안시현의 가창력은 딱 그 정도다.

노래를 잘하는 건 맞지만, 『Timeless』의 메인 OST 중 하나인 데이비드 킴 테마를 맡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누구에게 맡겨도 안시현보다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거라고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란 거였다.

가창력이 단기간에 늘면 좋겠지만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기욤 뒤자르댕은 녹음을 연기하듯이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프로듀서가 수용하며 독특한 스타일로 녹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감독님 덕분에 별에 별 경험을 다 해보네. 뭐, 그래도 덕분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만.’

하다하다 연기를 하듯이 OST를 녹음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결과물이 좋다고 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작품 할 때마다 OST 불러 보는 건 어때요? 곡만 잘 만나면 작품의 흥행에 도움이 될 정도로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은데요.”

“오늘 녹음해 보고 깨달았어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OST를 부르는 건 도저히 못해 먹겠다고요. 오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녹음했으면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아마 며칠은 걸렸겠죠. 이렇게 빨리 녹음이 끝난 게 기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JP스튜디오에서 보내 준 대형 인형들이 별장에 도착해서 라온이의 방을 그럴 듯하게 꾸며 준 직후.

안시현이 하정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형님, 작업 끝났다고 합니다. 지금 픽업하러 가겠습니다.

OST 작업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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