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86화>
186화. 아실 거라 믿습니다
개봉 초반 스코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수백 번을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초반에 흥행이 저조하더라도 입소문을 타며 점차 탄력이 붙는 작품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초반의 관객 동원력이 작품 전체의 흥행을 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괜히 영화사들이 날이 갈수록 마케팅 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게 아니다.
이는 『Timeless』 또한 마찬가지였다.
JP스튜디오는 회사의 자본과 역량을 총동원해서 힘썼다. 『Timeless』의 흥행이 곧 회사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직원들이 힘을 합쳐 마케팅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거기에 한국에서는 JM액터스가 홍보를 전담하며 마케팅에 힘을 실어 주기까지 했다.
그 결과가 바로 개봉 첫날 29만 관객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좋은 소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 그리고 『Timeless』가 음원 차트 5위에 올랐습니다. 형님 이러다 1위 하시는 거 아닙니까?”
“5위? 음원 어제 오픈했는데 5위라고? 농담 아니지?”
“노래 좋다고 난리입니다. 한국어 버전이 15위인 거 보면 진짜 1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위는 모르겠고, 최종 스코어나 잘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
안시현은 OST의 음원 순위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관객들이 『Timeless』를 재밌게 보고 OST를 좋아해 주는 거라고, 그만큼 『Timeless』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500만 충분히 가능하겠는데?’
개봉 첫날부터 무려 29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고, OST에 대한 뜨거운 관심까지 감안한다면 국내에서는 500만 관객 돌파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개봉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안시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흥행 여부를 놓고 오판을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 돌파,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 돌파, 개봉 1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 간 것이다.
미국에서도 10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견고히 지켰고,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할 만한 작품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당분간은 순항을 이어 가리란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영화의 흥행 덕분에 덩달아 OST의 반응 또한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다만 한미 양국의 반응이 전혀 다르기는 했다.
미국에서는 알렌 그레이가 부른 OST가 빌보드 차트 3위까지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반면, 한국에서 안시현이 부른 OST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식한 것이다.
안시현이 부른 OST의 경우 원본인 『Timeless』와 한국어 버전인 『영원』이 나란히 대부분의 음원 사이트에서 10위권 내에서 꾸준히 버텼다.
심지어는 1위도 이틀 동안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Timeless』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컸고,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은 대중들이 OST를 찾아 듣는 선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Timeless』의 흥행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던 JP스튜디오는 일찌감치 손익 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었다.
고작 개봉 11일 차에 말이다.
안시현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Timeless』는 한국에서 500만 관객이 아니라 1000만 관객 돌파를 정조준하며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 나갔다.
개봉 26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둘 줄은 몰랐는데,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 마땅한 경쟁작이 없으니 죄다 『Timeless』를 보러 오는 게 당연하지.’
안시현의 『Timeless』가 한국에서 1000만 관객 돌파를 노려 볼 수 있게 된 건, 작품성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운이 따라 준 결과라고 판단했다.
이는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2월과 3월에 흥행작이 나오지 않았다. 기대를 모았던 작품들은 개봉 후 혹평과 함께 흥행을 이어 나가지 못했고, 볼만한 영화를 찾지 못한 관객들이 『Timeless』를 보러 오게 된 것이다.
거기다 한국에서는 곽상필을 비롯한 다수의 배우들이, 미국에서는 기욤 뒤자르댕과 작품을 한 이력이 있는 배우들이 극찬을 하며 홍보에 힘을 실어 줬다.
물론 흥행 돌풍은 기본적으로 『Timeless』가 좋은 작품이기에 가능한 것이 맞았다.
다만 경쟁작이 없는 것과 스타들의 극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맞물리며 기대 이상으로 더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감독인 기욤 뒤자르댕 또한 『Timeless』의 흥행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개봉 51일 차.
『Timeless』가 마침내 한국에서 10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안시현 개인으로서는 『편지』에 이어 생에 두 번째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였다.
기념비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안시현의 영상 인터뷰가 JM액터스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가 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안시현은 아직 한국에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공개했다.
“다음 주, 저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차기작을 위해서라면 좋겠지만 아닙니다. 어쩌면 추억팔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제게는 뜻깊은 일이 될 것 같아 이 자리를 통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4월 말, 미국에서 『형아, 동생』이 재개봉하게 됩니다. 이에 저는 언론 시사회 및 현지에서의 홍보를 위해 당분간 미국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 * *
개봉 40일이 넘어가며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Timeless』의 흥행이 다소 주춤해졌다.
개봉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JP스튜디오 입장에서도 기세가 가라앉는 게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른 국가에서도 『Timeless』가 순차적으로 개봉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그 즈음.
JP스튜디오 측에서 『형아, 동생』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혜인원과의 조율을 통해 개봉 일정을 확정했다.
4월의 마지막 날.
『형아, 동생』의 재개봉이 확정됐다.
이에 안시현이 매니저 하정남과 단둘이서 다시 한번 미국을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배우님.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JFK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마중을 나온 JP스튜디오의 직원이 안시현과 하정남을 픽업했다.
직원이 두 사람을 리무진에 태웠다.
한국에서도 촬영 때문에 한 번 타 본 게 전부인 리무진을 다시 타게 됐다.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JP스튜디오 직원은 안시현의 스케줄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그 와중에 하정남은 리무진에 비치된 와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값비싸 보이는 와인 때문인지 좀처럼 브리핑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안시현이 실소를 흘렸다.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마셔. 오늘은 스케줄 없잖아.”
“아, 아닙니다. 브리핑 중인데 제가 어떻게…….”
“이미 한국에서 한 번 들은 거잖아. 잘못 전달된 부분이 없는지만 체크하면 되는데 뭐. 그동안 업무 때문에 정신없었을 텐데, 미국에 있는 동안이라도 느긋해지는 게 좋지 않겠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Timeless』의 개봉 전후로 안시현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고, 덩달아 하정남 또한 수면 시간까지 줄여 가며 극도로 많은 업무를 소화해야만 했다.
안시현이야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기만 하면 되지만, 그것을 조율하는 건 매니저인 하정남 몫이다. 안시현이 바쁜 만큼 하정남은 그 이상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안시현은 미국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하정남이 편하게 있기를 바랐다.
미국에서의 스케줄은 JP스튜디오 측에서 전적으로 케어를 할 예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스위트룸에 리무진이라……. 돈 많이 썼네. 하긴,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데.’
『Timeless』의 흥행으로 JP스튜디오는 단숨에 미국 내에서 20위 권 내에 드는 영화사로 평가받을 만큼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국가도 더러 있고, 2차 시장은 공략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말이다.
JP스튜디오의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DVD 시장 공략을 위한 감독판 준비는 일찌감치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Timeless』 주연 배우들의 작품을 재개봉하고 DVD 발매 일정까지 속전속절로 잡았다.
그 시작이 『형아, 동생』이었다.
JP스튜디오는 주연 배우 대접을 제대로 했다.
안시현을 위해 1일 숙박비가 한화로 1천만 원이 넘는 숙소를 잡았고, 이동 수단으로 리무진을 선택하며 안시현이 편하게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JP스튜디오는 배우 대접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 혜인원을 통해 내가 주연을 맡은 다른 작품들도 전부 수입해서 DVD로 발매할 거라고 하던데…… 돈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네.’
안시현은 JP스튜디오가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통해 최대한 이익을 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 *
『Timeless』의 흥행 덕분일까?
재개봉임에도 『형아, 동생』은 제법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A급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B급 영화보다는 많은 수준이었다.
언론 시사회 며칠 전.
함께 식사를 하게 된 JP스튜디오의 대표는 퀭한 눈빛으로 안시현을 바라보며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지쳐 보이는 기색과 달리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상영관 확보를 위해 팀을 따로 꾸려서 밤낮 없이 일했습니다. 때마침 『Timeless』가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2.5배를 벌어들일 정도로 흥행해 준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다수의 상영관을 확보한 만큼 흥행이 뒷받침됐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흥행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작품은 언어와 무관하게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안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JP스튜디오 대표가 말한 대로, 감동적인 작품들은 대체로 언어와 무관하게 여러 국가에서 호평을 받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안시현이 기욤 뒤자르댕이라는 감독을 좋아하게 된 것 또한, 그가 메가폰을 받은 영화를 보며 적잖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 아니던가.
“『형아, 동생』이 미국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었으면 하네요.”
“저라면 주위 눈치 보지 않고 펑펑 울 겁니다. 개인적으로 『형아, 동생』을 아주 재밌게 봤거든요. 특히나, 제 관점으로 봤을 때는 안시현 배우님이 가장 열연을 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지성 연기는 다른 배우가 절대로 따라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안시현과 JP스튜디오 대표는 늦은 시간까지 영화와 관련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관점이 제법 비슷한 두 사람이었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어느새 대화 장소는 안시현의 숙소로 이동됐다.
이른 새벽임에도 잠을 청하지 않고 굳이 옆을 지키는 하정남을 위해 룸서비스를 시켜 준 직후, JP스튜디오 대표가 미리 준비해 온 와인을 개봉하며 슬쩍 안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실은 안시현 배우님께 조심스레 드려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곤란한 이야기인가요?”
“그게……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안시현 배우님을 캐스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JM액터스와 접촉하기 전에, 저희 쪽으로 먼저 연락해서 슬쩍 분위기를 떠보더군요.”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뒤자르댕 감독님의 제자가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고요. 안시현 배우님께는 동양인 주연 배역을 제안하겠다고 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하정남의 두 눈이 커졌다.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무려 주연 배역을 맡기고 싶다는 어마어마한 제안이 안시현에게 들어왔다.
『Timeless』의 흥행으로 안시현의 입지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였다.
물론…….
“제 대답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안시현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