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92화>
192화. 어떻게 알았어요?
『Timeless』의 한국 홍보와 안시현이 출연한 작품들의 미국 재개봉 및 DVD 시장 진출을 기점으로, JP스튜디오와 JM액터스는 교류를 이어 나가게 됐다.
JP스튜디오는 한국의 영화 수입과 자사가 투자한 영화의 수출 및 홍보를, JM액터스는 한국보다 발전한 한국의 제작 기술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JP스튜디오와 JM액터스 모두에게 윈윈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JP스튜디오는 『형아, 동생』의 재개봉이 대박 났고, 그 외에 수입을 결정한 안시현의 주연작들 또한 DVD 시장에서 제법 짭짤한 수익을 거뒀으니까.
JM액터스의 경우 지금 당장 뚜렷한 성과가 난 건 아니었지만, JP스튜디오와의 교류가 자체 제작하는 작품들의 퀄리티를 올려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나 특수 효과 쪽에서 말이다.
다만 성과를 보기까지는 최소 1, 2년은 더 걸릴 테고, 아쉽지만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특수 효과를 JM액터스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김희숙 작가의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전작이었던 『VVIP』만 하더라도 STS와의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JM액터스의 자체 제작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최창국의 합류야 방송사가 TV Y일 때부터 예견됐었지만, 특수 효과가 문제였다.
JM액터스는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가장 잘 갖춘 연예기획사로 평가받지만, 전문 기술이 필요한 특수 효과 쪽으로는 마땅한 인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지금껏 특수 효과는 전부 외주를 맡겼었다.
실제로 JM액터스가 JP스튜디오와의 교류를 결정하게 된 것도, 한국보다 앞서 나가는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 기술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김희숙 작가는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특수 효과팀들을 찾았지만, 죄다 2014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협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해외의 특수 효과팀에 문의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최창국의 입에서 난데없이 미국행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심지어 『Timeless』와 『브레이킹 월드』의 특수 효과를 담당한 팀을 만나겠단다.
“『Timeless』와 『브레이킹 월드』요? 스케줄이 된대요?”
“『브레이킹 월드』 이후로는 스케줄을 잡아 놓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브레이킹 월드』의 작업을 8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니, 그 이후에는 저희와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팀이라니 솔깃하지만…… 돈이 많이 들지 않으려나요?”
할리우드 특수 효과팀이라면 『내 아내는 처녀귀신』에 필요한 특수 효과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가 있다면 돈이다.
김희숙 작가가 국내의 특수 효과팀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건, 비용 문제 때문이었다.
할리우드이니만큼 한국에 비해 몸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제작비가 높게 측정되긴 했지만, 할리우드의 눈높이에 맞춰 줄 가능성이 낮다.
때문에 김희숙 작가는 최창국의 제안에 솔깃했지만, 이내 현실적으로 계약이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러닝 개런티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시청률에 따른 페이 지급을 기본으로 하고, 광고 판매 수익에서 일정 지분을 요구했습니다.”
“러닝 개런티라……. TV Y쪽과 이야기해 봐야겠네요. 출국 전까지는 답을 받아 오도록 할게요.”
러닝 개런티가 항상 싸게 먹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당초 이야기했던 금액 이상으로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결과가 나온 후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기에 제작비 부담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때문에 제작비가 부족한 작품들 중 러닝 개런티 계약을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만약 러닝 개런티 계약을 한다면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팀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창국으로부터 조건을 전해 들은 김희숙 작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별일 없으면 허가가 떨어질 것 같네요. 근데 이 아이디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가요? 역시 대표님?”
“아뇨. 사장님이 지시하셔서 준비한 거예요.”
“정상 씨가요?”
“네. 제가 콘텐츠팀 직원들이랑 특수 효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부터 스케줄 체크해 달라 부탁받았어요. 김 작가님 연말에 귀국하자마자 다시 한번 스케줄 물어보면서 조건까지 확인한 거고요.”
“정상 씨에게 한턱 쏴야겠네요.”
김희숙 작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당연히 김진석 대표의 지시로 진행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김희숙 작가가 특수 효과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거라고 예상한 박정상이 지시한 부분이었다.
안시현의 매니저일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박정상이, 김희숙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최창국와의 미팅이 끝난 뒤.
김희숙 작가는 TV Y 사옥으로 이동하며 유럽 출장을 떠나 있는 박정상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한국 오면 한턱 제대로 쏠게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힘든 부분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지원해 드릴게요.
-괜찮은 남자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 집에서 마흔 되기 전에 시집가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아, 그건 좀…….
그로부터 며칠 뒤.
김희숙 작가는 TV Y로부터 할리우드 특수 효과팀과의 계약을 허가받았음을 최창국에게 알렸다.
고민거리였던 특수 효과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 * *
특수 효과팀과 관련된 문제는 박정상을 통해 안시현에게도 전달됐다.
‘할리우드 쪽으로 손을 뻗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회귀 전.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일본의 유명한 특수 효과팀과 계약을 했었다. 국내의 특수 효과팀들과 계약이 원활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안시현은 이번에도 일본의 특수 효과팀과 계약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안시현의 『Timeless』 출연으로 인해 인연을 쌓게 된 JP스튜디오를 통해서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팀과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레이첼 스타이너의 대표작인 아포칼립스 3부작의 기가 막힌 특수 효과로 몸값이 수직상승하게 될, 세계 최고의 특수 효과팀으로 불릴 이들과 말이다.
‘특수 효과의 퀄리티가 장난 아니겠는걸?’
『내 아내는 처녀귀신』는 회귀 전에도 특수 효과에 엄청난 공을 들인 드라마였다. 판타지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작품이다 보니 유독 신경을 썼다.
덕분에 김희숙 작가의 드라마 중 가장 고평가를 받게 된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특수 효과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얼마나 뛰어난 특수 효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김 작가님은 쉬지도 않고 착실하게 준비하시네. 나도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겠어.’
계약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김희숙 작가의 소식을 들으며 안시현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공개 오디션 일정을 발표한 이후.
안시현은 착실하게 연습에 매진하며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이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경쟁자가 사라져서 다소 힘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사실 대본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안시현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디션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회귀 전에 이현 배역을 맡았던 배우가 아포칼립스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변수가 발생했다.
할리우드 진출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오디션에 참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강력한 경쟁자가 없어진 상황.
힘이 빠질 법도 하건만, 안시현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디션뿐만 아니라 촬영까지 바라보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오디션 결과.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현 역에는 안시현의 캐스팅이 확정됐고, 발표 직후 TV Y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오디션 당시의 영상이 공개됐다.
그와 함께 호평이 쏟아졌다.
-명불허전 안시현, 2년 공색 무색한 완벽 연기.
-주연 씹어 먹는 조연의 존재감.
-안시현, 김희숙의 페르소나가 된 이유를 증명하다.
안시현이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오디션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지만, 오디션 영상 공개 이후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이현은 퇴마사였던 부모님을 죽게 만든 악귀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퇴마사가 된 캐릭터다. 당연하게도 끔찍하리만큼 귀신을 싫어하고, 모든 귀신을 잡아서 소멸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동생 이환이 뜬금없이 처녀귀신과 결혼하게 됐고, 술에 취해 덜컥 계약을 해 버려서 위반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안시현은 이 상황을 오디션에서 연기했다.
귀신에 대한 분노와 환멸, 동생에 대한 걱정이 공존하는 안시현의 감정 표현은 2년간의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완벽했다.
심지어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안시현은 2년 동안 휴식을 취한 게 아니라, 2년 동안 더 좋은 연기를 보여 주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디션 영상 공개로 인해 안시현의 연기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디션 결과 발표 이후.
안시현 부부는 길었던 별장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만 공교롭게도 일이 겹쳤을 뿐, 촬영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기로 한 이유는 단 하나.
라온이가 유치원을 갈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다녀오고 정혜영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라온이를 봐주고, 주말에는 안시현 부부가 라온이를 보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부탁드릴게요, 엄마.”
“부탁은 무슨. 너희 별장에 있어서 라온이 보러 가기 불편해 가지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진즉 맡겼으면 우리 라온이 자주 보고 얼마나 좋아.”
“군것질거리 너무 많지 주면 안 돼요.”
“하루에 하나만 주마.”
“이틀에 하나요.”
별장 생활을 청산한 덕분에 안시현은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배우들을 자주 보게 됐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최정수였다.
최정수야 휴식 기간 동안에도 종종 산 타고 막걸리 한잔하기 좋다며 별장에 놀러 왔지만,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온 이후에는 안시현이 연습을 위해 극단을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최정수는 신경질을 냈다.
“인마! 좋은 회사 연습실이랑 개인 별장 놔두고 굳이 왜 좁아터진 여기 와서 연습하고 지랄이야!”
“아, 전 선배님이랑 같이 있으면 연습이 유독 잘되더라고요. 그래도 진모는 안 데리고 왔잖아요.”
“진모 자식도 오후에 온다더라!”
“간만에 다 같이 모이겠네요? 강식 선배랑 영민 선배도 부를까요?”
“그냥 다 같이 꺼져 주면 안 될까?”
겉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최정수는 안시현의 연습을 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줬다.
물론 안시현이 이미 연기로는 경지에 올랐기에 조언해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 안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이현 캐릭터를 완성하려면 부족하다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끝없이 고민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흐음. 방금 전 대사, 좀 어색하지 않았나요?”
“어색은 무슨. 좋기만 하던데. 네가 눈높이가 너무 높은 거야. 조연이면 조금 더 힘을 뺄 줄도 알아야지. 조연인데 주연 존재감까지 잡아먹으려고?”
최정수의 말이 맞았다.
기본적으로 조연의 존재감이 주연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주객전도가 될 경우 드라마의 흥행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아주 가끔 조연이 주연의 존재감을 잡아먹고 비중이 늘어나며 드라마가 흥행한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조연은 주연의 존재감을 잡아먹지 않고 뒤를 받쳐 주지 역할을 수행하는 게 맞다.
다만…….
“어떻게 알았어요? 저 지금 진모 존재감 잡아먹으려고 난리 치는 거잖아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