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94화>
194화. 알 것 같습니다
최고 시청률 30%.
흔히 말하는 대박의 기준점이 되는 시청률이지만, 케이블 채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박이 아니라 초대박이라고 봐야 한다.
20%만 넘어도 공중파의 40%에 육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30%는 케이블 드라마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꿈의 기록이다.
회귀 전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최고 시청률 29.1%를 기록했고, 국민 드라마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기자들이 본방 사수를 하며 기사를 쏟아 냈고, 그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를 장악해서 연예 기사는 『내 아내는 처녀귀신』과 관련된 것만 보일 정도였다.
안시현은 최고 시청률 30%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주연인 김진모와 분량은 조연인데 존재감은 주연이어야 하는 자신, 그리고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배우 김겨울이었다.
대본 리딩부터 보여 준 폭발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 안시현이 긴장한 기색이 없는 김겨울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눈곱만큼도 없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작년에 데뷔한 배우라고 생각하겠어.’
김겨울은 대한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다가, 한 학기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자퇴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자퇴 사유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가르치는 방향이 달라, 현장에서 발로 뛰며 배우는 게 낫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김겨울의 데뷔작은 엄청나게 화제가 된다.
수위 높은 노출신으로 인해 말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된 배우의 수위 높은 노출로 인해서 말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3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해가 지나 2013년.
김겨울은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수많은 배우 중 노출로 화제의 중심에 섰었고 연기력조차 검증되지 않은 배우를 쓰는 게 말이 되느냐, 아무리 신인을 발굴하는 걸 좋아하는 김희숙 작가라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었다 등 김겨울과 관련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물론 외부의 시선과 달리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은 김겨울을 다르게 평가했다.
당장 안시현만 하더라도 그랬다.
‘노출로 이슈가 돼서 그렇지 기본기가 아주 탄탄해. 호흡을 맞추는 배우에 따라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지만…… 상대가 진모이니까 문제없을 거야.’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호흡을 맞추는 배우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김진모는 김겨울의 재능을 120% 끌어내 줄 수 있을 만한 좋은 배우였다.
배우로서 김진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어느 배우와 붙여 놓더라도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는 것이니까.
안시현 다음으로 대본 리딩을 하게 된 건 김진모와 김겨울이었다. 주인공 커플의 첫 만남을 그린 신을 리딩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대본 리딩.
“진짜 나랑 계약할 거예요? 결혼해 줄 거예요? 저…… 성불할 수 있는 거예요?”
예상과 달리 김진모보다 김겨울이 더 돋보였다.
이는 김진모가 대본 리딩이기에 힘을 빼고 연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김겨울의 감정 표현이 기대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었다.
“잘하는데?”
“그러게. 전작은 노출 때문에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갈렸었는데, 지금 모습만 놓고 보면 잘하는데?”
“괜히 김희숙 작가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네.”
“하긴. 언제는 김희숙 작가가 틀린 선택을 했었어? 이번에도 이유가 있으니까 선택했겠지.”
김희숙 작가는 새 얼굴을 선호하는 작가다. 그로 인해 캐스팅 라인과 관련된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곤 한다.
웃긴 건 매번 새 작품을 들어갈 때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스팅 라인이 발표되자마자 김겨울에 대한 논란이 후끈 달아올랐고, 대본 리딩을 지켜본 기자들 중 일부가 김겨울에 대해서 칭찬하는 기사를 쓸 것이며, 방영이 시작되면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싹 사라질 게 뻔하다.
다만 방영 전까지 김겨울이 받아야 할 정신적인 고통이 문제였다.
실제로 김희숙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신인 여배우 중 한 명은, 데뷔하자마자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희숙 작가의 작품에 워낙 많은 관심이 쏟아지다 보니, 관심에 익숙하지 않은 신예 배우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특히나 김겨울의 경우 전작에서의 파격전인 노출로 인해서 관심이 더욱 큰 상황이다.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은 김겨울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꾸준히 연락을 취했지만…….
‘원래 주변 시선을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라고 했던가? 기자들이 뭐라 하건 아랑곳하지 않네.’
안시현이 봤을 때, 김겨울을 걱정할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았다.
워낙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도 하거니와, 일단 집중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그녀는 대본 리딩 이후 기자들이 뭐라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선배님, 방금 전 대사 말인데요…….”
그보다는 자신이 한 연기를 되짚어 보며 보완할 부분이 없는지 김진모에게 조언을 구하느라 바빴다.
‘배우 하기 참 좋은 성격이란 말이야.’
배우는 필연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간혹 그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고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한 채 무너지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김겨울의 경우 아예 시선 자체를 신경 쓰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시선을 즐기지 못할 거라면, 의식하지 않는 게 차선책이니 말이다.
첫 대본 리딩 이후.
취재를 한 기자들 중 상당수에 김겨울에 대해 공통된 평가를 남겼다.
김희숙 작가가 또 한 명의 배우를 스타로 만들 것이라고 말이다.
* * *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대본 리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김진모가 주연 배우로서 중심을 제대로 잡아 줬고, 안시현은 조연임에도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매 순간 드러냈으며, 김겨울의 연기는 두 번째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김희숙 작가는 김겨울을 주목했다.
“겨울 씨 연기, 꾸준히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작가님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확실히…… 대본 리딩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게 눈에 보여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이 끝나면 러브콜이 장난 아니게 쏟아지겠는데요? 작가님이 김겨울 씨를 선택한 이유,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김겨울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마다 안시현과 김진모에게 조언을 구했고, 실시간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넘쳐나는 재능이 김진모와 안시현이라는 좋은 조력자를 만나 빠르게 꽃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최창국은 새삼 김희숙 작가의 안목에 감탄했다.
캐스팅 라인을 결정한 건 김희숙이었다. 그 과정에서 최창국은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심 최창국 또한 김겨울을 주연으로 캐스팅 한 것을 두고 의문을 품었었다.
김희숙 작가의 작품 중 가장 큰 금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며 특수 효과팀을 할리우드에서 데려올 예정인데, 연기력 검증이 안 된 김겨울이 여주인공이다.
지금껏 김희숙 작가가 새 얼굴을 발굴하는 걸 선호했지만, 이번만큼은 연기력이 검증된 기성 배우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본 리딩을 거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선배 배우들의 조언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김희숙 작가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겨울은 여주인공 나장미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렸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고 쾌활했으며,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매사에 당당한 것까지 꼭 닮아 있었다.
마치 김희숙 작가가 김겨울을 모티프로 삼아 나장미 캐릭터를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최창국의 반응에 김희숙 작가가 어깨를 으쓱였다.
“캐릭터와 이미지가 어울리는 배우는 디렉팅만 잘해주면 항상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물론 김겨울 씨가 이렇게까지 잘해 줄지는 몰랐지만요.”
사실 김겨울의 놀라운 발전 속도는 김희숙 작가로서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촬영을 진행하며 섬세한 디렉팅을 통해 잠재력을 끌어낼 계획이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몇몇 주요 신에서 포인트만 제대로 짚어 주고 가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길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빨랐다.
이에 김희숙 작가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목표 시청률, 더 높게 잡아도 될 것 같은데?’
보통 대본 리딩 과정이 좋으면 고민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김희숙 작가는 대본 리딩이 진행될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당초.
김희숙 작가는 TV Y의 히트 상품인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기록했던 최고 시청률의 20%를 목표로 했었다.
자신이 지닌 네임 밸류,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작품성, 캐스팅 라인, 제작비, 할리우드 특수 효과팀 등을 모두 감안해서 선정한 목표였다.
하지만 대본 리딩을 진행하며 변수가 생겼다.
캐릭터와 이미지가 어울리는 신예 여배우를 캐스팅했더니, 대본 리딩 때부터 디렉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연기를 잘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김겨울의 연기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나자 김희숙 작가는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2013년 7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첫 촬영 날.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희숙 작가와 주요 배우들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김희숙 작가님에게 묻겠습니다. 『VVIP』와 달리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반사전 제작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전 제작으로 뚜렷한 성과를 냈음에도 이번 작품을 반사전 제작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TV Y 측에서는 선택권을 제게 넘겼고, 고민 끝에 제가 반사전 제작을 택하게 됐습니다. 『VVIP』와 달리 이번 작품은 후반부의 연출 중 일부를 시청자 반응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택해야 하기에 내린 결정입니다.”
사실 김희숙 작가는 사전 제작과 반사전 제작을 두고서 『VVIP』때처럼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반사전 제작을 결정하게 됐다. 12화까지 촬영을 끝마친 뒤, 13화부터 18화를 방영 기간 동안 나눠서 촬영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후반부의 주요 신들의 연출을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면서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시현 배우님과는 세 번째, 단막극까지 합치면 벌써 네 번째 함께하게 됐습니다. 이쯤 되면, 안시현 배우님이 작가님의 페르소나라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시현 씨가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동의한다면 앞으로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김희숙 작가가 선택권을 자신에게 넘기자, 안시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저야 김 작가님이 불러만 주신다면야 언제든지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죠. 흥행보증수표의 페르소나라고 불러 주면 저야 영광 아니겠습니까?”
안시현은 김희숙 작가의 페르소나라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녀와는 무려 세 작품째 같이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자신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흔쾌히 출연할 의사가 있었다.
인연이 쌓이며 어느새 자연스럽게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한 관계가 됐다고 봐야 했다.
곽상필과 최정수의 관계처럼 말이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자극적인 질문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캐스팅과 대본 리딩, 앞으로의 촬영과 관련된 질문이 주를 이뤘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한 기자가 대미를 장식할 질문을 던졌다.
“김희숙 작가님은 『내 아내는 처녀귀신』가 최고 시청률 몇 %를 달성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이에 김희숙 작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표 시청률을 이야기했다.
“최고 시청률 25%가 목표입니다.”
캐스팅 라인이 확정된 직후보다 5%가 오른 목표 시청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