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95화>
195화. 논란은 없겠네요
김희숙 작가의 목표를 들은 기자들은, 그녀가 밝힌 목표가 의미하는 바를 대번에 눈치챘다.
20%나 30% 아니고 25%라는 데에서 말이다.
TV Y의 히트 상품인 대답하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최고 시청률 21.4%, 두 번째 작품이 최고 시청률 21.9%를 기록했다.
그 덕분에 TV Y는 드라마 명가라는 별명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김희숙 작가는 대답하라 시리즈의 최고 시청률을 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었다.
“20%도 30%도 아닌, 25%인 이유가 있습니까?”
“대답하라 시리즈가 기록한 TV Y의 최고 시청률을 뛰어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희숙 작가의 목표는 대답하라 시리즈의 최고 시청률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기자들의 추측이 그녀의 입을 통해 사실임이 확인됐다.
대답하라 시리즈는 1부와 2부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2015년 초 방영을 목표로 3부의 대본 집필에 들어간 상황이다.
명실상부 TV Y 드라마의 간판인 대답하라 시리즈의 아성을 뛰어넘겠다고 선포한 상황.
기자들은 그 목표가 참으로 김희숙답다고 느꼈다.
집필한 드라마들의 계속되는 흥행으로 부와 명예 모두를 잡았다. 현실에 안주할 법하건만, 그녀는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목표를 이루려 노력했다.
김희숙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로맨스 요소를 포함시키지 않았던『VVIP』와, 퇴마와 귀신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내세운 『내 아내는 처녀귀신』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작품에 로맨스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서 그렇지, 김희숙 작가는 매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유독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데뷔작인 『너와 나의 시간』 다음으로 집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기에 대본 리딩을 진행하며 확신이 생겨서일까?
대답하라 시리즈가 기록한 TV Y의 자체 최고 시청률 기록을 뛰어넘겠다고 포부를 밝힐 만큼 김희숙 작가는 자신감이 넘쳤다.
기자들의 질문에 확신에 차서 답을 한 김희숙 작가는 첨언 또한 잊지 않았다.
“첫 촬영을 지켜보면 아실 겁니다. 제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지 말이죠.”
* * *
보통 첫 촬영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기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 드라마 초반부에서 임팩트가 있는 신들을 고르는 경향이 강하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은, 심사숙고 끝에 새벽에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다급히 이환의 집을 방문한 이현이 나장미와 만나는 신을 첫 촬영하기로 결정하고서 배우들에게 통보했다.
이 신은 김희숙 작가가 기자들 앞에서 자신 있게 첨언을 한 근거였다.
‘대본 리딩에서 보여 준 대로만 해도 핵심 캐릭터 셋의 매력을 모두 보여 주는 게 가능해.’
김희숙 작가는 드라마 초반부에 핵심 스토리의 진행과 캐릭터들의 매력 어필을 동시에 하는 걸 선호한다.
잘못하면 산만해질 수 있는 이 방법은,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 평가받는 최창국과 함께하며 단점을 보완하게 됐다.
물론 최창국과 하지 않은 작품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내 아내는 처녀귀신』을 연출하는 게 최창국이라는 거다. 다소 무리해 보일 수 있는 구성도 완벽한 연출로 커버해 줄 게 분명하다.
첫 촬영이 예정된 신은, 김희숙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 현장에서 보면 너무 많은 걸 표현하려 해서 난잡해 보일 가능성이 있는 신이다.
그럼에도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이 해당 신을 선택한 건, 초반부 신들 중 두 주연 배우와 안시현의 연기력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신이라고 판단해서였다.
‘초반부에서 캐릭터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을 드러내기 가장 좋은 신이야. 내가, 그리고 우리만 잘하면 판타지 요소로 인해 불안하다는 시선을 지울 수 있을 거야.’
안시현을 비롯한 배우들은,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서 촬영을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
“현아, 무슨 일…….”
동생 이환의 연락을 받고 늦은 새벽에 다급히 집을 방문한 이현은, 동생의 옆에 찰싹 같이 붙어 있는 귀신나장미를 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이 녀어어언!”
이내 언제 어디서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매 순간 가지고 다니던 퇴마 도구를 꺼내며 소리쳤다.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구나. 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느냐?”
“저기, 상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네년이 구천을 오래 떠돌다 보니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해.”
“저 되게 제정신이고요, 지금 이 상황은…….”
“오냐. 이 손으로 미련을 없애 주마.”
이현은 계속해서 나장미의 말을 끊었다.
상황 설명을 하려던 나장미는, 거듭해서 말이 끊기자 결국 인상을 쓴 채 버럭 소리쳤다.
“아! 좀! 나도 말 좀 합니다, 아저씨!”
“악귀 녀석!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아니라고! 이 모지리 해칠 생각도 힘도 없으니까 말 좀 들어 보라고! 나 악귀 아니라니까!”
이현은 나장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귀신은 소멸시켜야 할 대상과 이미 소멸이 된 대상으로밖에 구분되지 않았으니까.
이현이 나장미를 향해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나장미를 소멸시킬 듯한 기세였다.
그리고 그 앞을 이환이 가로막았다.
“형, 진정해. 진짜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환아, 너 저 악귀한테 홀린 거야? 괜찮아. 형이 저 악귀 처리하고 정신 차리게 해 줄게.”
“나 멀쩡해. 눈 보면 알잖아.”
이현과 이환이 시선을 마주했다.
동시에 이현은 당혹스러운 속내를 숨기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진짜 멀쩡한데?’
이환이 나장미에게 홀린 거라고, 저 요망한 악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술수를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환은 눈동자는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귀신에게 홀렸을 때 특유의 변화가 없었다.
그럼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이현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여전히 퇴마 도구를 손에 쥔 채 나장미를 노려보며 의자에 앉았다.
“어이, 악귀. 무슨 일인지 설명해 봐. 날 납득시키지 못하면 바로 소멸시켜 버릴 거다.”
“악귀 아니라니까 그러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저 모지리와 내가 계약을 했어.”
“계약?”
“쟤가 내 한을 풀어 주고 성불시켜 주면, 그 대가로 내가 숨겨 놓은 재산을 주기로 했지. 아,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술 취해서 맺은 계약이니까.”
“……약은 년.”
“인정해. 내가 머리 좀 썼어. 근데 어쩌겠어. 한이 더 깊어지면 악귀가 될 텐데, 그 전에 목적을 이루고 성불하는 게 낫지 않겠어?”
“…….”
이현이 생각에 잠겼다.
귀신과 인간의 계약은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만약 둘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귀신은 존재가 소멸되고, 인간은 최소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따라서 계약을 파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장미가 계약 파기에 동의를 해 줄 리도 없거니와, 강제로 파기하려고 했다가는 이환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
따라서 이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숨겨 둔 재산이 얼마인데?”
“바이런 프레이스라고 들어 봤나요?”
“보물 열쇠?”
“네. 저서를 통해 보물을 숨겨 두었던 사람이죠. 저도 죽기 전에 그걸 해 놨어요. 숨겨 둔 보물 상자는 하나, 그 안에 유서를 가지고 변호사를 찾아가면 제 유산 100억을 상속받을 수 있죠. 책은 이번 달에 발간될 거고요.”
“네가 목표를 달성하고 답을 가르쳐 주기 전에 누군가가 정답을 알아낸다면?”
“아, 그건 걱정하지 마요.”
나장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정답, 제가 없으면 알아내지 못하게 톱니바퀴 몇 개를 일부러 빼 놨거든요.”
* * *
“역시…… 명불허전이네.”
“안 배우는 조연이라는 게 너무 아까운 연기력인데?”
“본인이 선택한 건데 어쩌겠어. 그래도 이현 캐릭터는 안시현이 아니었으면 소화하기 힘들었겠는데?”
“확실히 난이도가 좀 있어 보이네. 저런 식의 거친 감정 표현은 조금만 잘못 표현해도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잘한 것 같아.”
“김진모는 어떤 거 같아?”
“주인공이 찌질한 게 평소의 김진모네. 이환도 김진모가 아니었으면 어색했겠는데?”
“인정. 김희숙 작가가 작정하고 김진모를 위한 캐릭터들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결과적으로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이 선택한 신에서는 세 캐릭터의 매력과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에 대한 정보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부모님을 죽게 만든 악귀를 찾겠다는 목표를 지닌, 대한민국 최고의 퇴마사 이현.
형과 달리 영적 능력이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전혀 모른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 이환.
거액의 유산을 탐나는 친척들에게 시달리다가 이유도 모른 채 죽고 한이 맺혀 귀신이 된 나장미까지.
김진모와 안시현의 연기야 더 이상 두말하면 입 아프다.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 준 두 배우는, 각각 이환과 이현 캐릭터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소심한 성격의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나장미와 결혼하고 인생이 달라지는 이환과 부모님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귀신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된 이현은 대본을 김희숙 작가가 대본을 쓰며 떠올린 이미지 그 자체였다.
여기까지는 기자들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김진모와 안시현이 좋은 연기를 보여 줄 거라고 내다보지 못한 연예부 기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다들 나장미 쪽은 어떤 거 같아요?”
“김희숙 작가는 캐릭터와 이미지가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하던데, 연기까지 잘하네요?”
“대본 리딩 때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연기력이 안정적인데요?”
“방영하면 캐스팅 논란은 없겠네요.”
나장미 역을 맡은 김겨울의 연기는 대부분 기자들의 연기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대외적으로 밝혀진 김겨울의 캐스팅 이유는 나장미 캐릭터와 이미지가 가장 어울린다는 거였고, 이에 기자들은 김겨울의 연기력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첫 대본 리딩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 줬음에도 평가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문자 그대로 선전 수준일 뿐, 김진모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주연 배우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연기력이었던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첫 촬영에서 보여준 김겨울의 연기력은 기자들의 예상 이상으로 좋았다.
영문도 모른 채 귀신이 돼서 한이 남았음에도 매사에 당당하고 구김 없는 나장미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 발성이야 원래부터 좋았고, 대본 리딩 때보다 눈에 띄게 발전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김진모나 안시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냐면 아니다. 많이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두 사람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김겨울의 연기력에 고평가를 하는 건, 나장미 캐릭터에게 요구하는 연기력 허들이 이환이나 이현처럼 높지 않아서였다.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보여 주는 배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장미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됐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김겨울이 나장미 캐릭터와 이미지가 워낙 잘 어울리는 덕분에 딱히 흠잡을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첫 촬영 후.
-연기 구멍 없는 『내 아내는 처녀귀신』, 첫 촬영부터 열연 이어져.
-명배우들의 조언 흡수한 김겨울, 눈에 띄게 발전한 연기력에 호평.
-『내 아내는 처녀귀신』, 부정적 시선 이겨 내고서 대박 터트릴까?
-안시현이 조연을 자처했던 이유.
호평 일색의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며, 김희숙 작가가 회식 자리에서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