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201화>
201화. 만들어 주세요
2013년 12월 6일 저녁.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끝마친 안시현 부부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첫 방송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일찌감치 2층으로 향햇다.
라온이는 신이 나서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안시현은 라온이가 평소처럼 9시 전후로 잠이 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웬일인지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방영 직전까지도 잠이 들지 않았다.
결국 라온이는 안시현의 품에 안긴 해 『내 아내는 처녀귀신』 첫 회차를 함께 보게 됐다.
“아빠다!”
라온이는 아직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안시현이 TV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혜영과 단둘이 있을 때면 TV에서 아빠 나오는 거 보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12세 이용가인데 라온이랑 같이 봐도 괜찮을까 모르겠네. 뭐…… 드라마 내용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기는 하지만.’
안시현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것일까?
정혜영이 미소를 지은 채 안시현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요. 곧 잠들 거니까.”
정혜영의 말이 맞았다.
팔팔해 보이던 라온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10시가 되자 귀신같이 잠이 들었다.
안시현은 라온이를 안은 채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준 뒤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정혜영과 둘이서 여유롭게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첫 회차를 모니터링할 시간이었다.
‘특수 효과 미쳤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연출이었다.
1화의 대부분은 철저하게 이환과 나장미의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를 집중 조명했는데, 그 과정에서 할리우드 특수 효과팀을 섭외한 이유가 제대로 드러났다.
귀신과 영적 능력을 표현하는 특수 효과의 퀄리티가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엄청났다. 조금 과장하자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의 특수 효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엄연히 따지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할리우드 특수 효과팀이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특수 효과를 담당했으니까.
『Timeless』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안시현의 눈으로 봤을 때도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특수 효과인 것만은 분명했다.
‘서로 영혼을 갈아 넣은 덕분인가?’
안시현은 딱 한 번, 일산에서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는 특수 효과팀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3교대로 24시간 쉬지 않고서 특수 효과 작업을 했고, 일주일 중 일요일에만 푹 쉬면서 쌓인 피로를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안시현은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첫 회차를 보고 나니 그때의 빡빡한 스케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최창국이 최근 들어 하루 2, 3시간을 자며 연출에 집중한 덕분에, 거액의 들인 특수 효과가 1화부터 제대로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TV Y는 첫 회차이기에 90분으로 특별 편성을 했지만, 특별 편성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90분이 삽시간에 지나갔다.
“네 이녀어어어어언!”
이환의 집을 방문한 이현이 나장미를 발견하고서 고함을 내지르며 영적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1화가 마무리됐다.
2화의 예고편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안시현이 슬쩍 정혜영을 곁눈질했다. 그녀는 예고편이 나오고 있음에도 뭔가에 홀린 듯 반쯤 넋이 나간 채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안시현이 눈앞에서 몇 차례 손을 흔드니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아…….”
“뭐해요. 정신 차리고 빨리 시청 후기 말해 줘야죠.”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정혜영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1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말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스타일의 몰입도가 미친 드라마? 저 진짜 90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봤다니까요. 와, 이거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아니지. 내일은 그렇다 쳐도 다음 주 금요일까지 다시 어떻게 기다리지? 아, 이거 밤마다 재방송 챙겨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정헤영의 속사포 후기를 들은 안시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극찬 고마워요.”
* * *
케이블 채널의 경우 공중파와 시청률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케이블이 공중파에 비해 시청률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TV Y는 자사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2% 대에서 시작하면 준수, 3% 대에서 시작하면 흥행 조짐이 보인다고 판단했으며, 4% 이상의 시청률로 시작하면 공중파의 40% 이상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급의 흥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TV Y에서 지금까지 4% 이상의 시청률로 첫 회차를 시작한 드라마는 단 한 작품뿐이다.
바로 첫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방영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끌었던 대답하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1화에서 기록한 시청률이 6.7%로, 마케팅에 그리 큰 공을 들이지 않은 공중파 드라마들의 첫 시청률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했고, 화제성으로만 따지면 그 해에 방영된 드라마 중 단연 1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첫 방송에서 몇 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할까?
일단 첫 방영 후 분위기는 TV Y 드라마국과 『내 아내는 처녀귀신』 제작진의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90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술.
-할리우드 영화 수준의 특수 효과,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다.
-귀신과 퇴마, 김희숙 작가가 하면 통한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 첫 번째 OST, 7일 정오 음원 발매 예정.
-연기 구멍 없는 캐스팅 라인, 김희숙 작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김겨울, 180도 연기 변신 대성공.
쏟아지는 기사의 양이 많기도 했거니와, 기본적으로 평가 자체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 결과.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첫 회차에 6.9%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TV Y 드라마 사상 가장 높은 첫 회차 시청률을 갱신한 것이다.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첫 방영 다음 날, 최창국과 김희숙 작가는 촬영장으로 향하기 전에 TV Y 사옥에 들렀다. 촬영 장소가 사옥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촬영으로 한창 바쁜 시기에 TV Y 사옥에 들르지 않았을 터였다.
주차를 하고 1층으로 올라가니, 드라마국 국장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이고!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촬영 장소가 근처라서요.”
“자, 자. 날도 추운데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드라마국 국장은 두 사람을 국장실로 데려갔다. 손수 차를 타서 두 사람에게 내준 뒤, 미리 준비해 놓은 카드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바쁘실 테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금일봉이 든 카드입니다. 편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곧 촬영장에 패딩 100벌이랑 핫팩 10박스가 도착할 겁니다. 촬영하면서 추운데 몸 상하면 안 되잖아요?”
최창국은 흔쾌히 카드를 건네받았다.
TV Y 드라마 역사상 첫 회차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는 성과를 달성했으니, 금일봉이나 추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첫 방영 다음 날 국장이 직접 미팅을 요청할 만한 이유가 몇 없기도 했고 말이다.
“사양하지 않고 스태프들과 잘 쓰겠습니다.”
“제작비 문제로 혹시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가 편성을 해 드릴 테니까요. 김 작가님과의 첫 미팅 때부터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TV Y는 앞으로도 김 작가님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김희숙 작가는 『내 아내는 처녀귀신』 외에도 두 작품을 더 TV Y에서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방송 3사와는 달리 어떤 시놉시스를 들고 와도 전적으로 김희숙 작가의 의견을 존중해 줬으며, 제작비 또한 넉넉하게 편성하며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주니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까지 쓴 마당에 다 잡은 물고기라 생각할 법한데도, TV Y 드라마국 국장은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전이야 따 놓은 당상이지만, 최대한 시청률을 높게 기록해서 이득 좀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방송사가 자선 사업을 하는 건 아니니까.’
시청률이 치솟을수록 광고 단가 또한 오른다. 지금 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분위기는 대답하라 시리즈 때보다 더욱 긍정적이다.
신예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했던 대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내 아내는 처녀귀신』는 김진모와 안시현이라는 톱배우가 캐스팅 라인에 이름을 올렸기에 화제성 자체는 더 높다.
6.9%라는 첫 회차 시청률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반사전 제작임에도 PPL을 통해 이미 절반 이상의 제작비는 회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광고만 적절하게 팔아도 TV Y가 손해 볼 일은 절대 없다.
TV Y 드라마국이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에게 추가 지원을 약속한 건, 『내 아내는 처녀귀신』를 통해 최대한 많은 수익을 거두고 싶어서였다.
추가 제작비 편성?
최고 시청률 20%를 넘는다고 가정하면 광고 수익을 통해 그 이상의 벌어들일 수 있다. 돈을 아끼기보다는, 추가 투자를 통해 더 높은 시청률을 노리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준다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지. 금액이 문제인데…….’
안 그래도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은 제작비 문제로 제법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제작비가 부족한 건 아니다. 애초에 TV Y 측에서 넉넉하게 제작비를 편성해 줬기에, 남으면 남았지 부족할 이유는 없었다.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제작한다면 말이다.
“그럼 제작비 추가 편성,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말씀드리려던 차였거든요.”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 주시면 결재 올리겠습니다.”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이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사옥으로 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했던 금액을 이야기하자, TV Y 드라마국 국장의 두 눈이 커졌다.
김희숙 작가가 요청한 추가 제작비가 그의 예상을 2배 이상 상회했기 때문이다.
“으음. 꽤 큰 금액이군요.”
“안 될까요?”
혹여나 김희숙 작가의 감정이 상할라, TV Y 드라마국 국장이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됩니다. 다만 이유 정도는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결재 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 후반부에 특수 효과를 더 많이 넣으려고요.”
“특수 효과라…… 1화만 하더라도 엄청났는데 그 이상을 생각하시나 보군요.”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다는 가정 아래, 최고 시청률 30%를 넘겨 보일게요. 만약 넘지 못한다면, TV Y와 계약한 두 작품 중 하나는 고료를 일정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파격적인 조건이군요.”
김희숙 작가의 제안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최고 시청률 30%.
공중파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대박이 난 작품들만 넘을 수 있는 기준점을, 대답하라 시리즈를 제외하면 최고 시청률 10%를 넘은 드라마를 배출하지 못한 TV Y에서 해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대신 추가 제작비를 꽤나 많이 요구하긴 했지만, TV Y 드라마국 국장의 입장에서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임이 분명했다.
설사 최고 시청률 30%를 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원하는 수준으로 추가 제작비를 편성하더라도 TV Y는 무조건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김희숙 작가에게 짐을 하나 씌우는 게 더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으니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TV 드라마국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희숙 작가와 최창국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다.
“요청하신 추가 제작비보다 조금 더 많이 요청하겠습니다. 그 대신, 『내 아내는 처녀귀신』를 국민 드라마급의 인기를 누릴 드라마로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