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221화 (221/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222화>

222화. 어떻게 해야 돼?

2016년이 지나고 2017년이 다가왔다.

2017년 1월에 개봉한 영화 하나가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3월 초 해외의 한 명작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가 개봉 4일 차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예상치 못한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위장취업』의 최종 예고편이 광고되기 시작했다.

혜인원은 자신들이 투자 및 유통하는 영화의 마케팅을 잘해 주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위장취업』의 경우 평균 이상으로 마케팅에 힘을 실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최한수 감독의 은퇴작이니만큼 최대한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서, 그리고 『위장취업』이 마케팅에 힘을 실어 주면 1000만 관객 돌파까지도 가능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내린 결단이 아니었다.

혜인원 대표는 3월에 개봉한 영화들의 성적, 그리고 4월과 5월에 개봉 예정인 영화들의 기대치를 저울질하며 냉정하게 계산했다. 사업가이니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 과도한 투자는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계산한 결과.

‘아무리 봐도 4월과 5월에 마땅한 경쟁작이 없어. 500만? 아니야. 죄다 300만을 넘기기 힘든 라인업이야. 홍보만 제대로 하면, 코미디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 돌파도 가능할 수 있어.’

혜인원의 대표는 『위장취업』을 작정하고 밀어준다면 1000만 관객 돌파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아, 감독』이라는 걸작을 통해 최한수 감독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은 코미디 영화다.

그리고 최한수 감독은 『위장취업』에서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적받아 왔던 단점을 개선하고,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그가 지금껏 만들어 왔던 작품 중 최고라고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였다.

설령 기대치에 조금 못 미치는 반응이 나오더라도, 마케팅을 통하면 1000만 관객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작품인 건 분명했다.

혜인원 대표는 스스로의 안목이 관계자들 중에서 유독 정확한 편이라고 자신했고, 실제로 지금껏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몇 작품을 혜인원에서 투자할 만큼 좋은 성과를 보여 주기도 했다.

혜인원을 대한민국 최고 규모의 영화사로 성장시킨 건 대표의 안목이 7할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혜인원 대표가 『위장취업』이 대박이 날 거라 확신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소한 마케팅이 부족해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   *   *

3월 중순.

여러 버전의 예고편을 수없이 내보내는 가운데, 예정대로 『위장취업』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최한수 감독의 은퇴작이라는 상징성과 『형아, 동생』에서 빛나는 연기를 보여 줬던 손해수와 안시현의 재결합이라는 이유 덕분일까?

언론시사회에 참여한 기자와 평론가의 수는 꽤나 많았다. 손해수와 안시현이 지닌 연예계에서의 입지 덕분에 동료 연예인들을 비롯한 다수의 업계 관계자가 흔쾌히 언론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중에는 할리우드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레이첼 스타이너 감독, 아포칼립스 3부작의 주연을 맡으며 할리우드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는 류성웅,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름 앞에 세계 최고의 거장이란 별명이 붙는 기욤 뒤자르댕, 최정수와 김진모를 비롯한 톱배우들까지.

심지어 레이첼 스타이너는 아포칼립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시나리오 집필을 진두지휘하고 있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방한을 한 것이었다. 기욤 뒤자르댕과 간만에 얼굴을 보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에서의 일정이 전무함에도 말이다.

방한 목적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레이첼 스타이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시현이 주연을 맡았기에 왔습니다. 그는 어떤 배역을 맡건 항상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위장취업』도 분명 좋은 작품일 거라 확신해요.”

기자들이 『위장취업』의 언론 시사회에 참여한 이들을 취재하느라 바쁜 사이, 안시현은 언론 시사회를 앞두고 간만에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외식을 한 뒤 영화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간만에 외식하니까 좋네. 자주 좀 해야겠어.’

『위장취업』의 촬영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게 됐고, 이에 안시현은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박의준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대로 다시 차기작을 준비해야 하고, 심지어 한국이 아니라 할리우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유가 있을 때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특히나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어릴 적 정혜영과 판박이가 된 라온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라온이가 데려온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 건 안시현의 행복한 일상이었다.

또한 요즘 들어 잔병치레가 많은 부모님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큰 병이 없는 건 다행이지만, 연세가 연세이다 보니 건강과 관련해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다.

간간이 부모님과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같이하고, 온갖 건강 식품들을 챙겨 드렸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테지만, 그때까지 최대한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게 자식으로서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된 안시현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외식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웬만한 음식은 집에서 다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안시현이 요리에 자신이 있어서였다.

“라온아, 파스타 맛있어?”

“응. 아빠가 만들어 준 것보다 조금 더 맛있어.”

“미안. 앞으로 파스타는 안 만들게.”

“에이~ 농담이야, 농담.”

“응. 아빠도 농담 한번 해 봤어.”

간만의 외식에 신이 난 라온이를 보며 안시현이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종종 외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도착한 영화관.

안시현은 김진모를 비롯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가족들과 함께 『위장취업』을 보기로 했다. 지인들과는 기자 간담회까지 마무리된 이후, 저녁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얼굴을 볼 예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언론 시사회.

『위장취업』이 상영되는 내내 영화관 안에서는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최한수 감독이 의도한 부분에서는 여지없이 관객들이 웃었다.

그 모습에 안시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코미디 영화이니만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기분 좋게 웃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일단 언론 시사회 반응만 놓고 보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평가해도 무방했다.

‘박철우를 다시 한번 연기하기로 결심한 건, 돌이켜 보면 최고의 선택이었어.’

최한수 감독이 『위장취업』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안시현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위장취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된다면, 박철우를 연기하는 건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돼야 한다고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 왔으니까.

회귀 전 자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안겨 줬던 캐릭터를 다시 한번 연기해서, 그때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 주고 싶다는 욕심이 줄곧 있었다.

다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안시현의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회귀 전의 자신이 연기한 박철우라는 라이벌과 지겹도록 싸워야만 했다. 이미 한 번 연기해 봤던 배역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애초에 회귀 전 박철우 캐릭터의 완성도 자체가 높았고, 안시현의 인생 캐릭터라고 불렸던 만큼 더 좋게 만드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안시현은 해냈다.

캐릭터를 더 굳건히 다지고, 긴 준비 기간 동안 위트 있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데에 힘썼다.

그 결과.

회귀 전보다 박철우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사실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수는 있다. 애드리브 몇 개를 제외하면 캐릭터가 탄탄하게 구축됐다는 것 정도가 사실상 유일한 차이이니까.

안시현이 감상에 젖었다.

회귀 후 매 순간 연기에 열정을 불태웠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회귀 전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순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관객들은 『위장취업』을 보며 쉴 새 없이 웃었지만, 안시현은 울컥해서 눈물을 참느라 고생해야 했다.

정혜영은 그런 안시현의 손을 말없이 잡아 주었다.

*   *   *

언론 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 간담회.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언론 시사회 당시 쉴 새 없이 웃음이 이어진 게 그 원인이었다.

장르에 따라 재미의 기준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코미디 영화는 얼마나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느냐가 흥행의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면 이는 곧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라는 뜻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괜찮은 코미디 영화를 찾아보는 게 힘들어졌다.

기존의 틀을 따라가는 코미디 영화는 식상함으로 인해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코미디 영화는 방향성을 잃고서 이도 저도 아닌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죽하면 코미디 영화는 손익 분기점만 넘어도 양반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진부한 전개 방식을 보여 주지 않으며, 동시에 철저하게 웃음에만 집중한 『위장취업』이라는 영화가 떡하니 등장하게 됐다.

심지어 『형아, 동생』 정도를 제외하고 최한수 감독의 단점으로 줄곧 지적됐던 정신 사나운 전개라는 단점 또한 보완이 된 상황.

이에 닳고 닳은 연예부 기자들은 직감했다.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위장취업』이 4월의 흥행을 주도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최한수 감독님에게 묻겠습니다. 코미디 영화임에도 기립박수가 나올 정도로 언론 시사회 반응이 좋았습니다. 흥행을 자신하고 계십니까?”

“네. 자신하고 있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합니다. 『형아, 동생』보다도요. 연인이, 혹은 가족들끼리 단체로 영화관에 와서 기분 좋게 웃고 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흥행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한수 감독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했다.

혜인원 대표를 통해서 수차례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거니와, 언론 시사회에서의 반응이 너무 좋았기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최근 몇 년간, 순익 분기점을 넘은 코미디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한때 흥행보증수표라 불렸던 코미디 장르의 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이 코미디 영화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 대단히 안타까운…….”

기자 간담회에서 최한수 감독에게 예상 이상으로 많은 질문이 쏠렸다.

『위장취업』이 최한수 감독의 은퇴작이기도 하거니와, 기존에 지적받았던 단점을 완벽히 보완했기에 관심이 쏟아지는 게 당연했다.

반면 의외로 안시현에게 그리 많은 질문이 할당되지는 않았다. 이는 투톱인 손해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화르 본 기자들이 특정 배우보다는 작품 전체를 놓고서 질문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안시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인상 깊은 질문이 많지 않았다. 초점이 최한수 감독 쪽으로 몰렸기에 뻔히 예상됐던 질문들만이 나와서였다.

그렇게 기자 간담회가 마무리된 뒤.

지인들과 자리를 가지기 전,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안시현이 백미러를 통해 라온이의 분위기를 살폈다.

언론 시사회 때까지만 하더라도 평소와 똑같이 활발했던 라온이가, 지금은 어째서인지 말 한 마디 없이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라온이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말이 없을까? 피곤해서 그래?”

안시현의 질문에 라온이가 곧장 답을 했다.

“아빠,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다만, 그 답은 안시현과 정혜영 부부 입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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