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222화 (222/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223화>

223화. 별로지 않아?

안시현과 정혜영 부부는 육아와 관련해서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아이의 미래를 정하는 게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길을 걷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때문에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지 않아도 놔뒀고, 뭔가를 배우고 싶다 하면 흔쾌히 학원을 보내 줬으며, 얼마 못 가 싫증을 내고 그만두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닌, 어느 순간 스스로 원하는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설마 난데없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할 줄이야.

“배우가 되고 싶어?”

“응. 나도 아빠처럼 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로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고 싶어. 스크린 속에서 빛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

“힘들 수도 있는데?”

“아빠가 그랬잖아.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으니, 이왕 할 거라면 그나마 덜 힘든 일이나 가장 즐거운 일을 하라고. 난 연기가 가장 즐거울 것 같아. 너무 하고 싶어.”

라온이의 단호한 대답에 안시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라온이의 장래희망이 다시 바뀌더라도 괜찮았다.

원래 어릴 때는 장래희망이 수없이 바뀌지 않던가.

다만 배우를 꿈꿨던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 쌓아 나갈 수많은 경험들이 훗날의 선택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날 저녁.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안시현은 최정수에게 라온이와 나눴던 대화를 솔직담백하게 들려줬다.

“그래? 라온이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어?”

“네. 『위장취업』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뭔가 느끼는 게 있었나 봐요.”

“피를 못 속이는 건지, 아니면 단순한 변덕인 건지는 겪어 보면 알 수 있겠지. 라온이 데리고 간만에 극단 한번 와라.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그래도 될까요?”

“라온이의 미래를 위한 일인데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최정수의 제안에 안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개봉까지 열흘 남짓 남은 상황이고, 생각보다 홍보 일정이 빡빡하지 않기에 극단을 방문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라온이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부모로서 없는 시간이라도 쥐어짜서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 오후에 한번 들를게요.”

다음 날.

안시현이 라온이와 함께 극단 광대들을 방문했다.

최정수는 라온이를 데리고 다니며 극단을 구경시켜 줬고, 심지어 라온이가 오후 공연에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배역까지 만들어 줬다.

“아저씨, 엄마가 이거 주래요.”

대사 한 마디와 함께 편지를 건네주는 것.

연기를 평가하기에는 분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애당초 연기 경험이 전무한 초등학생에게 무언가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적절한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러운데?’

예상 이상으로 라온이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처음 연기를 해 봤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능숙했다. 오죽하면 백스테이지에서 라온이의 연기를 지켜보던 최정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건가?’

결과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라온이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대에 선 이후 더욱 굳건해졌다.

“아빠, 나 연기 가르쳐 주면 안 돼?”

*   *   *

안시현은 『위장취업』의 스케줄을 소화해 나가며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연기 학원 좀 보내 보자고. 『위장취업』의 상영이 끝날 때까지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가르쳐도 되는 거니까.’

그리고 고민 끝에 일단은 연기 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1. 자신이 곧바로 연기를 가르쳐 줄 수도 있으나, 지금 당장은 『위장취업』의 홍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위장취업』의 홍보 스케줄.

온갖 인터뷰를 하고 간만에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으며, 갓 개막을 한 프로야구에서 손해수와 함께 시구와 시타를 하는 등 꽤나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안시현과 손해수가 부지런히 홍보 스케줄을 소화하는 사이, 3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위장취업』의 개봉일이 다가온 것이다.

개봉 첫날.

안시현과 손해수는 서울을 시작으로 광역시 위주로 무대 인사를 다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위장취업』은 개봉 첫 날 29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성공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다.

개봉 둘째 날.

토요일이다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향했고,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개봉 당일부터 입소문을 제대로 탄 『위장취업』으로 관객이 집중되며 39만 명을 불러 모았다.

개봉 셋째 날.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인기와 입소문, 일요일이라는 이점이 더해지며 42만 명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위장취업』은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가뿐히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위장취업』, 3일 만에 100만 관객 돌파!

-『위장취업』, 2017년 첫 1000만 관객 돌파 가능할까?

-웃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영화, 간만에 나온 코미디 수작에 관객들이 열광한다.

-명불허전 안시현, 연기 변신에 성공한 손해수.

이에 『위장취업』과 관련된 긍정적인 기사들이 줄지어 쏟아지기 시작했고, 1000만 관객 돌파가 가능할 것이라는 다소 이른 전망 또한 나왔다.

1000만 관객 돌파와 관련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분위기가 조성됐다.

안시현과 손해수의 찰떡같은 코믹 연기, 철저하게 웃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깔끔한 스토리 라인,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실제로 『위장취업』의 흥행 가도는 순조로웠다.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 돌파, 개봉 9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 개봉 11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7년 개봉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는 관객 몰이를 보여 줬다.

개봉 30일 차.

『위장취업』도합 990만 관객을 동원하며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다.

당연히 이변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개봉 31일 차에 22만 관객을 추가로 동원하며 가뿐하게 1000만 관객들 돌파한 것이다.

이제 대중들의 시선은 『위장취업』이 최종적으로 몇 명의 관객을 돌파할까에 집중됐다.

역대 1위인 1770만은 관객 누적 추이로 봤을 때 노려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나란히 1400만 대를 기록하고 있는 2위와 3위 정도는 노려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그만큼 『위장취업』의 흥행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보고 나면 기분이 좋은 영화이다 보니 두 번 이상 보는 관객들 또한 제법 많은 게 흥행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1000만은 넘었고……. 최종적으로 몇 명을 동원한 채 마무리될까 궁금하긴 하네.’

안시현 또한 『위장취업』의 관객 동원 추이에 제법 많은 관심을 보였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며 상대적으로 홍보 스케줄이 줄어들었고, 라온이에게 간간히 연기를 가르치며 휴대폰으로 쉴 새 없이 『위장취업』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는 게 삶의 낙이 됐다.

회귀 전에 이어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결심한 위장취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박이 난 만큼, 최대한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다가온 5월의 마지막 날.

『위장취업』의 두 달간의 영정을 끝으로 상영을 마무리했다. 도합 1510만, 역대 2위의 흥행 기록을 세운 채 말이다.

*   *   *

『위장취업』이 상영을 마무리한 다음 날.

안시현은 간만에 JM액터스 사옥을 방문했다. 박정상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형, 비싼 밥 사주려고 부른 거 맞지?”

“저기요, 선생님. 저희 수입 차이가 몇 배인 줄은 아세요? 어째 갈수록 양심이 죽어 가시는 거 같네요?”

“에이~ 배당금 좀 받았을 거 아냐.”

“더러운 놈. 오냐. 밥은 내가 살 테니까, 커피는 네가 사라. 하여간 많이 버는 놈이 더해요.”

박정상은 투덜거리면서도 흔쾌히 안시현이 먹고 싶어 하는 점심 식사를 사 줬고, 이후 커피와 디저트를 사서 대표실로 들어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박정상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서류 봉투를 안시현에게 건넸다.

“너 건강 검진 결과 나왔다.”

“그래? 어땠어?”

“나야 안 봐서 모르지. 별일 없으니까 너한테 급하게 연락 안 한 거 아니겠냐?”

“하긴, 그렇겠지?”

박정상으로 서류 봉투를 건네받은 안시현이, 애써 떨리는 마음을 감추려 노력하며 내용물을 꺼냈다.

회귀 전, 『위장취업』 이후 췌장암이 발견되며 연기 활동을 잠정 중단해야만 했다.

그때와는 상황도 시기도 달라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강 검진을 받아 뒀고 뒤늦게 결과가 나왔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안시현이 애써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떨리는 심정을 티내지 않으며 건강 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신체 나이가 20대 후반 정도이며, 이상 소견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시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혹시나 싶었다.

회귀 전처럼 다시 한번 몸이 크게 아프면 어떻게 하나, 이대로 연기 생활을 잠정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심지어 그때와 달리 안시현에게는 가족이 생겼다.

철저하게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건강이라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기에 건강 검진을 받아놓고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받고 나서야 안시현은 더 이상 췌장암과 관련해서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박정상은, 그런 안시현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무슨 건강 검진 결과를 그렇게 신중하게 봐? 아파서 연기 못 할까 봐 걱정이라도 돼?”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이석재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연기하는 게 꿈이라고.”

“그래. 한 10년 더 연기하면 중견 배우 될 테니까 꿈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긴 하겠네. 그 전에 이것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지만 말이야.”

박정상이 안시현에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대한영화제 초대장이었다.

『위장취업』이 역대 흥행 2위 기록을 쓴 덕분에 각종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고, 그중 안시현은 손해수와 함께 나란히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자신 있냐?”

박정상의 질문에 안시현은 눈곱만큼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수는 『위장취업』을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고, 극중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며 많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 외에 남우주연상 후보들 또한 각자의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줬다. 그가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시현은 확신했다.

자신이 박철우를 통해서 다시 한번 대한영화제 남주주연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말이다.

“형, 대한영화제 남주주연상 최다 수상자가 누군지 알고 있어?”

“야. 내가 이래 보여도 JM액터스 대표 이사인데 그런 것도 모르겠냐? 너랑 회장님이 3회로 최다잖아.”

“잘 알고 있네. 근데 있잖아, 최다 수상자가 두 명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영 별로지 않아? 최고 기록은 공동보다는 단독이 더 의미 있는 법이잖아.”

안시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 최다 수상 기록은 김진석과 안시현이 3회로 공동이다. 그 밑으로 김진모를 비롯한 3명의 배우가 각각 2회씩 수상을 했다.

3회 수상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안시현은 거기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배우도 이루지 못한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 4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자신이 현시대 대한민국 최고 배우라는 걸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회귀 전부터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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